본문 바로가기
지난호보기/2015 봄여름, 68호 <그들만의 비지니스>

[노동]아직 끝나지 않은, 끝나지 못한 이야기 -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의 과거와 현재

by 중앙문화 2023. 3. 17.

편집위원 이누리

 

“쓰레기 만진 손으로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누르지 마라. 팔꿈치로 눌러라.”

 

이는 불과 2년 전, 중앙대학교 학내에서 근무 중인 청소노동자들을 향해 관리소장이 했던 말이다. 당시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그 작은 행위에서조차 그들의 당연한 권리를 말 할 수 없었다. 각 건물의 시설 관리 노동자와 청소노동자는 지하 기계실, 화장실, 쓰레기통 근처에서 일하며 말 그대로 ‘유령’처럼 캠퍼스를 떠돌았다.

 

2013년 9월, 중앙대에 노동조합[1] 이 결성되고 파업과 함께 맞았던 추운 겨울은 드디어 지나갔다. 이제 학내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본부와 업체 측의 부당대우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앙대 뿐 아니라 대학가 전반에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의지할 곳 없는 섬처럼 살아왔다. 무엇이 그들을 유령으로 만들었고,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권리를 외칠 수 있었을까. 또 새롭게 닥친 어려움은 무엇 인지 함께 알아보자.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지켜지지 못한 노동권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모든 노동자로, 직접고용 기간제/간접고용/특수고용/단시간 노동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이중 현재 대학 내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간접 고용 노동자에 해당한다. 간접 고용이란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곳에 직접 고용되지 못한 고용형태이다. 대학에서 근무하는 청소, 시설, 방호 노동자들은 모두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는 곳은 대학 본부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이다. 만약 원청(대학본부)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게 되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어 간접고용이 아닌 파견근로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 때 파견 근로[2] 의 형태로 2년 넘게 계약하게 되면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 해야 한다.[3]  실제로 중앙대의 경우 본부 산하 시설팀에서 시설관리노동자들에게 건물 벽에 붙은 자보들을 떼라는 지시를 내리곤 하는데, 이러한 행태가 아무런 제재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부가 학내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는 내리면서 그들의 권리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업체 내에서도 1년 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기간 계약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학내 노동자들을 간접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던 때는 IMF외환위기가 닥쳤던 90년대부터다. 당시 도입된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를 대거 정리해고하고 그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우는 행태가 모든 산업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대학 안의 노동시장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라 학교의 환경, 시설, 방호를 책임지는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게 됐다. 그렇게 자리 잡은 비정규직노동자 간접고용형태는 지금까지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태생적으로 해고가 용이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고, 사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노동환경 또한 훨씬 열악하다. 대학 내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강도 높은 노동 부담과 관리자 횡포, 부당업무 지시, 임금 체불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새벽 5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할 수 없었으며 작업복과 작업화가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않아 불편함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 강도 또한 높은 편이었다. 실제로 서울 시립대에서는 혼자서 화장실 70칸을 맡아 청소를 진행하거나 3000평 주차장을 혼자 청소하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처리는 엄두도 못 내고 행여 입원하게 되면 열에 아홉은 해고수순을 밟았다. 불안정한 고용형태로 인해 노동자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갔다.

 

중앙대의 경우 대학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이나 잔디밭 등의 공간을 이용할 때도 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2월에 학교와 용역업체가 맺은 미화관리 도급 계약서 내용에는 ‘작업 도중 잡담이나 콧노래를 삼가며 휴식시 도박행위를 금지하며 사무실 의자 및 쇼파 등에 앉아 쉬지 않도록 한다.’ ‘작업시간 중 교내에서 외부인사와 면담을 알절 삼가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대학을 터전 삼아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는 캠퍼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학내 노동조합 출범, 투쟁, 그리고 변화

2000년 서울대에서 서울권 대학 중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출범한 뒤, 사정은 달라진다. 학내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 ▲임금인상 ▲생활임금 보장 ▲고용승계를 외치며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2004년 고려대에서, 2008년 연세대에서, 2010년에는 이화여대, 홍익대, 동국대 등에서 노조가 출범한다.

 

물론 노조 출범과정에서 대학본부나 용역업체의 탄압이 있었다. 홍익대 분회의 경우, 노조가 결성된지 한 달 만에 본부는 조합원을 포함한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해고를 통보해서 노동자들이 새 해 첫 날 그대로 출근하기도 했다. 홍익대 본부는 2010년 말 내년도 계약 체결 중 노조와 학교 사이의 마찰이 있었던 점을 해고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매년 치르는 임금 협약 및 고용 안정을 포함한 단체협약에 대한 협의가 불발 되었다고 전 직원을 무더기로 해고한 것은 명백한 노조탄압이었다. 이후 홍대분회는 본관 점거농성에 돌입했고, 49일 만에 본래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후 2014년까지 서울권 각 대학에서 연이어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연대하여 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4] 2011년에는 이화여대, 고려대, 연세대 세 개 대학에서 연대하여 생활임금 5180원을 요구하며 공동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투쟁을 벌인 후에야 비로소 각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이 보장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5] 수준이었던 임금은 투쟁과정에서 눈에 띄게 올랐다. 실제로 중앙대의 경우에는 노조가 출범했던 2013년 이후로 현재까지 시급 5200원, 5700원, 6200원으로 변화했다. 생활임금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매해 최저임금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인상된 결과다. 노동절(5월1일), 개교기념일과 같이 관행처럼 무급으로 일했던 날들 또한 유급휴일로 인정받게 됐다. 이화여대의 경우 2011년 3월,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과 점거농성을 벌인 결과 기존시급에서 9.5% 인상된 임금을 받게 되었고, 식대 61만원 인상, 경비직 휴게시간 [7] 중 1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받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노사관계 안에서 노동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 일터에서 무엇이 가장 크게 변화하였냐는 물음에 노동자들은 ‘관리자를 대하는 태도, 또 우리의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입을 모았다. “노조의 ‘노’자도 몰랐던” 그들이 몇 번의 투쟁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중앙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A씨는 노조 활동 후 “학내에서 자신의 노동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며 이제는 “우리도 똑같은 중앙의 구성원” 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현재의 위기

최근 중앙대의 경우, 용역업체에서 ‘업무평가제’를 도입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업무평가제는 매달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노동자들의 업무능력을 B부터 D단 계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그리고 이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성과급여를 지급하는데, 이 때 B등급 을 받은 노동자는 한 달에 15만원, C등 급으로 분류된 노동자는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D등급을 받은 노동자는 따로 성과급여를 받을 수 없다. [8] 심지어 업무반장은 D등급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번 달 말까지 일하게 하고 자르겠다.’ 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다시 확인하자 관리소장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해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근무 중인 한 청소노동자는 ‘이 제도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동료노동자들 중 누군가는 D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며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지만 ‘똑같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고 말하며 지금과 같은 업무평가제가 계속 시행 된다면 ‘노동자들끼리의 경쟁을 부추겨 결국 동료가 동료를 잡아먹게 될 것’ 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얼핏 들었을 때 ‘노동자들의 업무능력을 평가하여 기존에 없던 성과금을 지급하겠다’는 이 제도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듯싶다. 그러나 청소 노동이 가지는 업무의 성격을 따져 보면 등급기준자체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등급을 나누는데 사용되었던 주요자료는 사진이었는데, 업체 측은 노동자 한명 당 배당된 구역의 청소 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평가를 실시했다. 흔히 사진은 객관적인 자료라 생각되지만, 사진을 찍는 시기에 따라 그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하물며 사진이 올바로 찍혔다 해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깨끗하다’, ‘깨끗하지 않다’ 의 정도차이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기준이 불분명한 업무평가제는 노동자들 간의 분열을 조장했으며 해고를 명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올해 들어 여러 대학들은 비용 감축을 이유로 청소·경 비·주차관리 등을 맡고 있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줄줄이 잘라내고 있다. 서울여대 26명, 건국대 37명, 경희의료원 20명, 외국어대(용인캠) 13명 등 서울권 소재 대학 중 9개 대학에서만 10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건국대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청소영역에서는 16명, 주차 관리·경비 영역에서는 40명에 가까운 인원을 감축했다. 외국어대 청소 노동자 12명, 연세대 송도캠퍼스 기숙사 청소노동자 23명 또한 작년 겨울 해고당했다. [9] 서울대는 학내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기간제 노동자 2명을 재계약 거부 형식으로 해고한 바 있으며 인덕대에서도 업체 변경과정에서 경비, 청소노동자 5명을 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10] 

 

해고사유는 무인화시스템도입, 설비확충, 업체 변경 등으로 꽤 다양한데, 그 중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안’[11] 도 한 몫 했다. 대학이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노동자 인원도 감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여대 전혜정 총장은 올해 4월 24일,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2015년도에 학교가 마주하는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및 대학 구조개혁 등의 험난한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입학정원 축소, 학사제도 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 및 예산 삭감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학교가 어렵다’ 는 말과 함께 대학은 갖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어렵다?

대학들은 모두 입을 모아 재정적으로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학의 말처럼 학교의 재정상황이 정말 어려울까? 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학교에 부담이 되는 수준일까?

 

지난 해 겨울 연세대 송도캠퍼스 기숙사 청소노동자 23명이 해고되었을 때, 대학본부는 ‘학교가 돈이 없기 때문에 용역비를 줄여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교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시정요구와 협상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만나주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돈이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4월 16일에는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이 학생전체에게 메일을 돌리기도 했다. 그 메일은 “노동자들이 너희를 속이고 있다. 학교는 돈이 없다. 학부생 등록금의 12%가 용역비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부생 등록금 중 12%가 용역비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은 학생사회를 요동치기에 충분했다. 연세 대학교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그 때는 이제까지 노동자분들에게 속은 건가’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본부가 제공한 정보가 불충분 하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이 수치가 어떻게 산정되었는지 알기 위해 학교가 외부언론에게 전달한 보도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학본부가 제시 한 12%의 수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드는 용역비를 학부생 한명의 1년 평균 등록금으로 나눈 값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대학원생 등록금을 누락한 값이며, 대학 예산과 관련해서는 등록금 회계 뿐 아니라 비등록금 회계까지 따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적용하여 다시 산출 하면, 대학본부가 발표했던 12%의 수치는 3%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대학의 1년간 전체운영비 중 이들의 1년 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 을 알아보고 그 수치가 얼마나 유의미한지 따져봐야 한다. 아래 표는 대학정보공시시스템에서 제공된 2014년 회계자료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전체임금을 비교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표에서 제시 된 바에 따르면 전체 운영비 중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매우 적은 수준이다. 학교 재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야한다는 대학의 주장은 1%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수치를 통해 힘을 잃게 된다. 한편 캠퍼스 안에 건물을 올리고 유지하는 데 쓰이는 비용은 전체 운영비 중 12.1% [17]를 차지했다. 그 건물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질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역설적인 결과다.

 

있으나 마나한 근로조건 보호지침

본부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도 문제가 된다. 정부는 2012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추진지침’ 을 통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을 승계해야 하고, 근로조건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이 사항을 어기면 해당업체를 계약해지 하거나 입찰 자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내용에 따르면 노동자들과 업체가 계약하는 과정은 이러하다. 먼저, 대학에서는 근무할 인원을 못 박아 두고, 시중노임단가 [18] 를 적용 시킨 예정가격을 작성해야한다. 노동자들에게 배당될 임금을 먼저 산정한 후에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대학에서는 이 지침 내용을 무시한 채 시중노임 단가를 적용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책정하지 않고 ‘총액 최저 입찰제’ 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곤 했다. ‘총액 최저입찰제’ 란 대학본부가 공개 입찰을 통해 용역비 총액을 제시한 여러 하청 업체들 중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를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학교가 노동자들에게 법적으로 책정된 시중노임 단가를 지급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청인 대학이 총액 최저 입찰제로 용역업체와 계약하는 행태는 한동안 잠잠했다가 최근 연세대를 필두로 다시 고개를 들 고 있다. 이러한 대학본부의 입찰방식은 명백히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위배되지만,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이를 발표한 정부마저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19] 

 

현재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시급은 6000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생활임금을 보장하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얼마 전 서울여대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계약직도 월 120만원밖에 못 받는다.”며 작년 임금보다 적은 금액으로 계약한 본부 측의 행태를 정당화했다.

 

학생사회의 움직임

계속되는 탄압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학내에서 투쟁을 이어나 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의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이 알려지자 학생사회 안에서는 업체와 본부 측의 부당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문제해결을 위한 여러 논의들이 이어졌다. 의지 할 곳이라곤 노동조합뿐이었던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이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투쟁이 한창이었던 2011년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의 연대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 겨울 숭실대에서 용역비 횡령, 미지급 수당 등의 문제에 반발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하자, 숭실대 학생들은 ‘파랑새’라는 연대를 꾸려 지지를 보냈다. 2013년 중앙대 분회의 투쟁 당시에도 학생사회에서는 ‘비와당신’ 서포터즈를 발족하여 함께 싸움을 이어나갔다. 이외에도 이화여대 ‘이화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학생대책위’ ▲ 연세대 ‘연세대 국제캠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 ‘연세대학교 비정규직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 서강대 ‘맑음’ ▲ 서울여대 ‘보듬걸음’ ▲ 한국예술종합학교 ‘빗자루 네트워크’ 등 각 학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학생연대가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학생들의 연대가 있어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롭지 않았다.

 

특히 최근 연세대의 경우에는 국제캠퍼스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의 해고가 철회되기까지 학생연대체가 큰 역할을 했다. 작년 겨울, 매년 말 청소노동자 계약 과정에서 업체는 노동자들의 인원을 감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원래 근무시간인 8시간을 5.5시간으로 줄이고, 그만큼 임금을 120만원에서 95만원으로 줄인 계약서를 쓰게 한 것이다. 작업할 건물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 한 작업시간을 줄이겠다는 방침은 그만큼 노동 강도를 높이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고, 이를 문제 삼아 업체는 23명의 조합원들에게 근로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출입카드를 정지시켜 일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자 해고된 노동자들 은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신촌으로 향했다. 맨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가장 가까이서 접했던 송도 국제캠퍼스 1학년 학생들이 모여 연대단위를 꾸렸다. 학생회 선거가 끝나고 난 후, 이 단위에 총학생회장과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이 가담하게 되면서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바람개비 연대)’ 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가장 처음 진행했던 작업은 캠퍼스 곳곳에 대자보와 함께 직접 제작한 로고를 붙이는 일이었다. 일반 학우 대중들에게 이 사안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특히 노동자들의 복직을 원하는 수많은 학우들의 ‘바람’을 모으겠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바람개비’ 캠페인은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상징으로 작용하여 큰 효과를 거두었다.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는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정문 공사장 벽에 바람개비를 그리고, 길가에는 바람개비를 만들어 꽂으며 학내에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했 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나 입학식에서 발제를 하거나,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일반 학우들의 플랑을 다 같이 거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학생사회의 지속적인 연대활동이 빛을 발한 것일까. 지난 5월 1일 108일 만의 투쟁 끝에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 해고노동자 23명 중 3명의 이탈자를 제외한 전원이 복직되었다. 20 이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에서 연세대 청소노동자 김미향씨는 ‘학생들과 함께하지 않았으면 이 싸움을 버티지 못했을 것’ 이라고 말하며 ‘학생들의 가슴이 아직 따뜻해서 다행이다. 이런 학생들이 있는 한 대학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며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가 아닌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다.

 

‘우리학교가 욕먹는 거 보니 진짜 청소노동자들 싹 다 쫓아냈으면 좋겠습니다.’[21]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당하고 있다.’[22] 

 

위 글은 작년 1월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의 천막농성 중에 학생커뮤니티 ‘중앙인’에 게시 되었던 글의 일부다. 당시 이 커뮤니티에는 “저 청소부들 아직도 해고 안됐나요? 짜증을 넘어 역겹습니다.” 와 같은 혐오 섞인 댓글도 게시 된 바 있다. 이들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기말고사 기간 학내 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으며 캠퍼스 내에서 노동자들이 집회활동을 하며 발생한 소음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 활동으로 인해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여대 총학생회는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에 걸어 두었던 현수막과 자보들을 곧 진행될 축제를 위해 철거했다. 울산 과학대에서도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총학생회는 학습권 보장을 이유로 학교의 현수막 강제철거에 동참한 바 있다. 지금까지 가장 장기간 동안 파업을 진행하고있는 울산과학대의 상황은 학생들이 등을 돌리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5월 21일에는 총학생회가 총대의원회와 함께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항의방문까지 했다. 이들은 항의 방문서를 통해 ‘잦은 집회로 학생들의 수업과 학습에 지장이 있다’ 며 ‘학생안전과 학습권 보장이 이행되지 않을 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학생들은 이제 노동자들의 투쟁활동을 두고 불편해 하는 것을 넘어 그들을 비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노동권은 학생의 학습권과 맞닿아있다

여기서 잠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면 정말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당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노동권과 학습권은 상충되는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학생들이 학내 공간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는 우리가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단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사뭇 위험하다. 학생들은 몇 년 동안 일터로 삼아온 곳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져보아야 하며, 그 이유 뒤에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무책임한 대학본부와 용역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비난의 화살을 노 동자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현재 학내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이들과의 관계에서 ‘갑(甲)’ 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대학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대학에서는 노동권 뿐 만아니라 학생들의 주권과 학습권 또한 침해당하기 십상이다. 대학본부가 생활임금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주면서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학본부가 진행하는 정책 사안에 있어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뿐 아니라 학생 또한 약자가 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 올해 여러 대학에서 학과 구조조정에 대한 계획안을 발표했을 때, 각 대학들은 논의과정에서 당사자인 학생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홍익대 조형학과의 경우 자신의 학과가 내년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신입생모집요강을 통해서 확인했을 정도였다. 대학본부를 향한 ‘함께 살자’는 외침은 어느새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 모두의 것이 되었다.

 

연세대 국제캠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활동에 참여했던 사회과학대 회장 황윤기씨는 ‘우리가 생활하고 자리 잡고 있는 대학이라는 터전이 구성원의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며 ‘그런 대학을 꿈꾸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싸움을 통해 앞으로 대학공동체가 그러한 가치를 향해 나아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이 생겼다’ 며 웃음 지었다.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 우리가 터전 삼아 생활하고 있는 이 공간은 구성원의 권리를 지켜야 마땅하다. 공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 대학은 공동체의 가치를 망각할 수밖에 없다. 유령처럼 캠퍼스를 떠돌던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학교안의 자리를 조금 내어 주는 것. 학생들이 그들의 싸움을 지지해야하고, 이 투쟁에 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1  2013 년 9 월 27 일, 민주노총 서경지부 소속 중앙대분회 출범 2013 년 11 월 18 일, 한국노총 철산노조 소속 중앙대 지부 출범 

2  파견 사업주가 고용한 근로자, 파견업체에서 고용된 다음에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체에서 사용사업자의 명령을 받음. 

3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6 조의 2

4  아직도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서울권 대학으로는 한양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등이 있다.

5  2010 년 최저임금 : 4110 원 2011 년 최저임금 : 4320 원 2012 년 최저임금 : 4580 원 2013 년 최저임금 : 4860 원 2014 년 최저임금 : 5210 원 2015 년 최저임금 : 5580 원 

6  2009년 연세대의 경우 비정규 직원 한 달 식대로 1 만원을 지급했을 정도로 지급수준이 낮았다. 식대 자체를 아예 지급하지 않는 학교들도 많았다.

7  현재 학내 경비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24 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아침 6시에 출근해 서 다음날 아침 6시에 퇴근을 하고 그 다음날 저녁 6시에 출근을 하는 형태이다. 이때, 시급* 24 시간으로 임금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야간휴게 3시간, 점심 저녁 2시간 합해서 5시간을 뺀다. 다른 학교와 달리 중앙대의 경우는 휴게시간으로 8시간을 뺀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휴게 시간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경비노동자를 제외한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따로 휴게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8  원래는 A부터 D까지의 등급으로 나누어 차등적으로 성과금을 지급했으나, 노동자들의 반발로 A등급을 없앤 뒤 성과금 격차를 줄였다.

9  올해 5월 1일, 해고되었던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청소노동자 23명 중 이탈자 3명 제외하고 전원 복직결정되었음. 그러나 지난 6월 1일 업체에 의해 복직이 거부된 상태임. 

10  대학구조조정 공대위 보고회_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발제문, 2015 

11  2014년 1월,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로 입학정원을 16만명여 줄여야 한다는 계획안을 발표한바 있다. 

12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2013 단체협약 참고

13  처음 사측과 노조가 올해 임금에 대한 협의를 했을 때, 6300 원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본 부측에서 이를 6200 원으로 조정하였고, 임금협약 역시 6200 원으로 체결되었음. 그러나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액 100 원을 업무평가제를 통해 성과상여금으로 지급 한다고 함.

14  입찰 방식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선택한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 

15  “통합경비시스템 도입과 관련,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안전한 학교, 개인정보 등 인권이 보장되는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협의를 이루고, 실태를 점검하며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노력한다.”

16  이상훈, 남우근, 한지원 『서경지부 교섭 및 조직구조 발전 전략 연구』. 사회공공연구원. 2014 . p . 41

17  2014년 중앙대 학교 회계 자금예산서 건설가계정 8.3%와 시설관리비 3.8 %를 합한 값

18  정부가 물가 상황을 고려하여 책정한 생활임금으로,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 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올해 책정된 보통인부 시중노임단가는 8,019원이다.

19  2015 5월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정부세종청사는 올 해가 아닌 지난해의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한 임금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불했으며, 근무일수도 하루 적게 산정했다. 더불어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할 때에는 근로기준법이 명시하고 있는 내용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20  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연세대 바람개비 연대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복직이 예정 되었던 스무명의 노동자들이 업체의 거부로 아직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 이었다. 지난 6월 1일, 용역업체는 이들에게 해고와 전환배치가 가능한 근로계약서를 제시했고, 노동자들은 이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자 용역업체는 노동자들의 복직을 ‘거부’ 했다.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약속 받은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듯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못했다. ‘끝이 났다’ 고 해서 이를 ‘끝’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  2014.03.01, 작성자 닉네임 그날이오면은, ‘청소노조들 언플하면서 계속’ 게시글 중 일부

22  2014.03.26, 작성자 닉네임 하루하나, ‘청소노동자분들 교양학관에서 수업할 수가 없네요’ 게시글 중 일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