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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5 봄여름, 68호 <그들만의 비지니스>

[노동]한국 사회의 노동과 노동자의 자화상 - 한국 사회 복지국가 담론의 한계

by 중앙문화 2023. 3. 17.

편집위원 최윤용

 

지난 18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복지정책을 꺼내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했다. 복지정책은 흔히 진보 정당들이 지향하는 정책인데, 보수 정당에서 복지정책을 전면에 내걸면서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 정당도 이에 질세라 더 강력하게 복지정책의 확대를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두 진영 간의 정책적 차이는 크지 않아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너도 나도 복지를 이야기하는 상황 속에서 노동정책에 주목하는 정치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

떠오르는 복지국가, 홀대받는 노동정책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로의 변혁을 막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제안된 해결책이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이사 브릭스는 사회 복지가 자본주의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내재한 위기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이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1] 이처럼 복지국가 담론은 19세기 말에 나타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 먼저 제기됐다.

 

한국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처음 제시되었던 역사적 맥락도 서구 유럽과 비슷하다. 1962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는 시정 연설문을 통해, “구조와 보험을 기간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하여 국민생활 향상과 복지사회 건설을 또한 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국민교육과 사회보장 시책은 단기적으로는 평가를 불허함으로 가능한 한 졸속주의와 급진적 계획은 이를 신중히 다뤄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이 실질적으로 복지정책을 펼 쳤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명목상으로나마 한국에서 최초로 복지국가를 지향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복지정책이 반공국가나 자본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아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가 점차 경제발전에 더 중점을 두면서 복지국가 담론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요즘 들어 한국 사회에서 다시 복지국가 담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역사적 맥락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또한 각국의 정부들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다시 복지국가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복지국가 담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 적으로는 소득불평등과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맞물리게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이전까지는 급진적인 좌파담론으로 인식되었던 복지국가 담론이 공론 장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얻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복지국가 담론을 적극적으로 선점한 보수진영의 행보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복지국가 담론은 18대 대선 시기와 겹치면서 사회적으로 매우 중대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에서도 앞다투어 내세웠던 정책 구호는 바로 ‘경 제민주화’였다. 그 당시 제기되었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복지정책을 이용하여 한국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은 3-5세 누리과정(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등을 대표적 정책으로 내세우며, 자신들이 당선되면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라고 언급했던 것이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복지정책의 중요성을 새누리당보다 더 강하게 주장하면서 복지국가로 나가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두 거대 양당의 정책 대결은 방향성의 대결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18대 대선을 통해 속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복지국가로 나아갈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것이 단순히 복지정책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일까? 복지정책은 시장을 통해 여러 가지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심각한 불평등과 격차를 감소시키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여 2차적으로 재분배 하는 정책이다. 복지정책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은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분명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차적 분배과정2 (시장에서의 자본과 노동의 분배과정과 노동자들 간의 분배)에서의 불합리적 요소들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자본과 노동이 결합해서 얻은 이윤 중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이다. 전체 이윤 중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의 상대적인 비율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경제적 양극화는 심각하게 나타나게 된다.

 

또한, 노동자들 간의 임금이나 지위의 심각한 격차도 1차적 분배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평등이다. 비슷한 가치의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대기업의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는 서로 차별화된 임금을 받는다. 같은 기업 내에서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등적인 임금을 받게 된다. 노동과 자본 간의 경제적 분배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간의 임금 차이를 통해 불평등은 중첩적으로 심화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복지국가 담론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정치집단들은 단순히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보편적 복지정책을 주장하거나 국가 재정건전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별적으로 복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식의 논쟁만을 벌이고 있다. 이런 식의 논쟁은 1차적 분배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

 

2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복지정책이 많아지면, 노동자들의 삶도 좀 더 나아질까?

 

‘나라가 어려운 이 시기에 경제성장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여러 가지 변용이 있을 수 있지만, 박정희 정권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용돼 왔던 보수정권의 수사법이다. 이 수사법이 아직까지 강력하게 사용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강렬한 추억의 향수 때문이다. 수출 100만 달러 시대에는 1%의 경제 성장률이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고도의 경제성장을 마친 한국에서 더 이상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뉴스에서는 연일 한국의 수출규모가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4분기 수출액을 집계 한 결과 한국은 1477억달러로 세계 6위로 올라섰다. 이는 중 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다음의 순위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수출규모가 세계 12위에 오른 후 꾸준히 상승한 결과다. [3] 한편, 정부의 복지정책 예산 또한 해마다 늘 어났다. 이는 보수정권, 진보정권 할 것 없이 누가 집권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의 수출 규모 순위가 상승하고 복지정책 예산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들 의 삶은 좀 더 나아지고 있었을까?

우리들의 삶이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률과 비교하여 실질임금의 증가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대부분은 소득을 국가가 생산한 전체 이윤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을 제외한 임금의 형태로 얻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8%를 기록했으나 실질임금 증가율은 2.1%에 그쳤다. 경제성장률만큼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제대로 증가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전 세계적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은 3.2%였으나 실질임금 증가율은 0.5%에 불과했다. [4] 2000년대 들어서 실질 임금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차이가 더욱 심각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삶을 성장시키지 못했으며, 이익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나 2008년 이후, 노동자들의 몫은 더욱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노동자들과는 괴리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으로 인한 이윤은 어디로 갔을까? 여러 지표를 살펴보면, 경제성장의 이윤은 대부분 기업소득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의 이윤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가져갔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소득분배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한다. [5] 국민 계정 통계를 수정하여 추정한 노동소득분배율 연구에 의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노동소득분배율은 1998년 80.4%였으나, 2000년 75.4%로 낮아졌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70.9%로 더 하락했으며, 2011년 67.6%, 2012년 68.1%로 이 통계가 작성된 197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6] 이처럼 기업이 창출해낸 이윤 가운데 노동자들이 가져가는 몫의 비율이 점차 낮아지면서,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률이 증가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임금은 그에 맞춰 상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국민 대다수의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악화됨에 따라 소비가 크게 위축되었다. 소비가 지나치게 위축되면서 내수경기는 얼어붙었고,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3

그들만의 ‘소득주도성장’

박근혜 정부는 악화되는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이하 부총리)는 2014년 취임 당시부터 국민 전체의 소득을 늘려서 소비를 진작하여 내수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겠다[7] 고 밝혔다. 그러나 부총리가 추진한 ‘초이노믹스’ 경제정책은 노동소득분배율을 상승시켜 국민 대다수의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촉진하는 ‘소득주도성장’과는 매우 달랐다. 초이노믹스는 쉽게 말해, 부동산을 담보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하고, 금리를 낮추고, 기업이 소유한 돈을 배당확대 및 사내유보금 과세 등으로 시장에 유통시켜 내수활성화와 소비 진작으로 불황을 벗어나겠다는 정책이다. [8] 그러나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거나 기업의 배당확대 같은 방식을 통해 시장에 돈을 푸는 것은 노동소득분 배율을 증가시켜 실질적인 국민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부동산 규제를 완화시켜 주택거래를 활성화하는 정책은 오히려 가계부채를 증가시켜 실질적으로 소비를 더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데 사용한다면, 그 빚을 갚아야 하기에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은 더 줄어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골목시장에서의 소비는 더욱 위축되고 내수경기가 회복되는 것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사내유보금[9]을 시장에 풀기 위한 초이노믹스의 3대 세제 정책(기업소득환류세제[10], 배당소득 증대세제[11], 근로소득 증대 세제)은 노동소득분배율을 상승시키기보다는 금융시장만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기업소득환류세제와 배당소득 증대세제 정책은 노동소득을 높여주기보다는 주로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의 배당금을 늘려주기 위한 정책이다. 3대 정책 중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켜 줄 수 있는 정책은 근로소득 증대세제 정책이다. 근로소득 증대세제 정책은 당해 연도 평균임금이 최근 3년 평균 상승률 이상 증가한 모든 기업에 대해 3년 평균 상승률 초과분의 10%(대기업은 5%)를 세액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에 강제로 과세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내기 힘들어 보인다.

 

이처럼 초이노믹스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상승시켜 탄탄한 소비층을 형성하려는 노력보다는 단기적으로 내수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는 부동산 경기나 기업의 배당금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소득분배율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간접적이고 피상적인 조세 정책을 뛰어넘어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과 노동 자간의 몫 분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들도 중요하다. 이는 한국의 기업들이 지나치게 쌓아둔 사내유보금을 직접적으로 노동소득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커져가는 임금격차, 분할되는 노동자들

1차적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노동과 자본 간의 분배 과정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간의 격차에 의해서 더 심화된다. OECD 통계 시스템에 의하면, 2011년 상용 근로자[12]의 총소득 분포에서 한국은 최상위 10%의 임금 소득 수준이 최하위 10% 의 임금 소득 수준의 4.8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OECD 회 원국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게다가 2000년 이후로 이 격 차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0년에는 4.0배였으나 2005년에 는 4.5배로 최상위 10%와 최하위 10%의 격차가 확대되었고, 2010년에는 4.7배, 2011년에는 4.8배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3] 이처럼 한국 사회는 노동소득분배율의 저하로 인한 노동과 자본 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간의 불평등도 심화됨으로써 사회 전체의 위계화가 더 촘촘해지고 격차가 넓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의 주요한 원인은 그들 간의 지위격차다. 현재의 노동자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어느 기업을 다니는가에 따라 지위가 달라지고 또한 기업 내에서도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 이런 위계화된 지위가 점차 복잡하게 분화될수록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더 불평등하게 지급되는 경향을 보인다. 먼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를 살펴보자.

 

 

5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으로 인한 임금격차

 

2011년 2월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운찬은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정책을 제시했다. 그는 이 정책의 취지를 설명 하면서, “초과 이익이 나는 것은 대기업의 노력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의 노력도 있다”면서 “대기업 이익을 주주-임직원뿐 아니라 협력기업(중소기업)까지도 공유하게 만들 것”[14] 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기업들은 크게 반발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두고,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고 말하면서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거센 재계의 반발 때문에 초과이익공유제는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과연 초과이익공유 제와 같은 정책들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2015년 2월 22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사업체 규모별 임금 및 근로조건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각각 359만8,000원 과 204만원으로 조사됐다. 10년 전(대기업 238만원ㆍ중소기업 142만원)보다 모두 올랐지만 상대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됐다. 대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100으로 할 때 2004년 중소기 업 근로자의 월급은 59.8이었으나 2014년에는 56.7에 그쳤다.[15]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더 심각해져 가는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불평등하고 불합리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본래 시장경제 체제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들 간의 합리적인 교환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중재자의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기업 거래구조는 거대 자본을 소유한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윤만을 고려하여 중소기업들에게 여러 가지 불합리한 강압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우위적인 자본권력을 이용하여 공공연하게 중소기업들에게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탈취’같은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전형적인 무한 경쟁 시장에서의 갑질행위이다. 이러한 갑질행위는 대기업(원청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중소기업(하청기업)들에게 무리하게 단가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다음 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단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몇몇 분야에서 독점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기에, 그들에게 한 번 잘못 보이면 그 이후에 새로운 계약을 따내기가 무척 어렵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의 기술이나 특허를 탈취하는 행위 또한 그들 간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대기업들이 시장에서 자신들의 우위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계약을 맺는 대가로 중소기업들에게 부당하게 기술 공개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소기업들의 기술을 입수한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그 기술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원래 그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의 경쟁업체에게 기술을 넘겨주어 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대기업들은 부품단가를 낮추도록 중소기업들을 압박하여 이윤을 얻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자신들 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지 못하게 된다.

 

대기업들이 이런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있는 것은 1차적으로는 그들이 시장에서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기업들은 시장을 어느 정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중소기업들을 도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적으로는 이러한 대기업들의 횡포를 중재할 수 있는 정부가 사실상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2008년 정부는 기업 간의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납품단가 연동제’[16] 의 시행을 검토하였으나, 대기업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이처럼 정책을 입법하는 과정에서도 대기업들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여 불공정거래의 시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관계는 단순히 기업들 간의 영업이윤실적이 크게 차이 나는 문제 정도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평등한 수직관계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이중적으로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부당하게 대기업에게 밀려 자신의 정당한 이윤을 획득하지 못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수록, 그곳의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낮은 임금을 감수하는 상황으로 계속해서 내몰리게 될 것이다.

 

6

2등 시민으로서의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들은 고용된 기업의 규모뿐만 아니라 고용형태에 따라서도 지위가 달라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한 모든 노동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 ‘직접 고용’되고, ‘정년을 보장’받고, 여러 가지 ‘기업복지 혜택’을 받는다. 이에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러한 3가지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지위’의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17] 

 

정규직 노동자가 가진 3가지 권리를 기준으로 그것들이 보장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종류를 나눠보면, 크게 간접 고용 노동자, 기간 계약직 노동자, 단시간 노동자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을 살펴보자. 비정규직 노동자 들 중 대부분이 자신이 일하는 곳에 직접 고용되지 못한 상태이다. 각종 파견업체(용역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은 고용되는 기간 내내 원청업체에서 근무하고 원청업체의 요구에 따라 근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법적인 책임은 원청업체에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원청업체는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을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낮게 설정하고, 기업복지 혜택을 제공하지 않아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 중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기간 계약직 노동자들 또한 비정규직의 한 고용형태이다. 그들은 1년마다 혹은 2년마다 계약을 새로 갱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항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기업 측에 대해 절대적인 약자가 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요구할 수 없으며, 다음 계약 시에 다 시 고용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근무시간이 일반적인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짧은 단시간 노동자(파트타이머)들도 비정규직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전적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절박하지 않다거나 여유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피치 못할 사정(학업, 육아 등)으로 인해 하루 종일 노동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일자리의 유형이다. 하지만 단기간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대부분 무시되기 일쑤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44.4%까지 상승했다가 2011년 38.7% 를 기록하며 40% 아래로 떨어진 뒤 해마다 1% 내외로 하락하는 추세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의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 비교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 1년 뒤에 정규직이 된 경우는 11.1%, 여전히 비정규직인 경우 69.4%, 실업자가 된 경우는 19.5%로 조사됐다. [18] 결국 어떤 노동자가 한 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면 그 굴레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왼쪽의 그래프에도 나타나 있듯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도 심각했다. 2015년 4월 2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4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1만 1463원이다. 이는 정규직 시간당 임금총액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안 (案) 주요 내용인 1만8426원의 62.2%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2013년 64.2%보다 정규직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 총액은 2013년보다 1.8% 올랐지만, 월 임금 총액 상승률만 놓고 보면 2013년(1404원)보 다 5.1% 감소한 1333원에 그쳤다. [19] 노동자들 이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 가입률에 대해서도 고용형태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국민연금의 경우 정규직은 96.7%가 가입한 반면 비정규직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2%만 가입했다. 또 고용보험, 건강보험에서 정규직의 가입률이 95%를 웃도는 것에 비해 비정규직은 각각 63.0%, 51.2%에 불과했다. 특히 일일근로 자와 단시간근로자는 산재보험을 제외하고는 50% 내외 수준(다만, 일일근로자의 건강보 험, 국민연금 가입률은 10% 미만)으로 가입률이 저조했다. [20] 그렇다면 현재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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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법(비정규직 종합대책안)과 최저임금 1만원 정책

2014년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미생’은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중들 사이에 비정규직 고용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정규 직 종합대책안(이른바 장그래법)을 내놓았다. 장그래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비정규직의 계약기한을 2년 제한에서 4년까지로 늘린다는 것’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비정규직 보호법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계약 기간이 2년을 넘을 수 없으며, 그 이상을 초과할 경우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전환될 수 있도록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업에서 2년이 지나기 전에 계약을 파기하는 방향으로 이용되었다.

이처럼 법에 대한 악용이 지속되자, 원천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는데 엄격한 제한을 두고 비정규직이 허용되지 않는 분야에서는 완전히 그것이 철폐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론에 대응하여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서 비정규직의 계약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겠다는 정책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2년에서 4년으로 비정규직 계약 기한을 늘리는 것은 기업에게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기간을 더 늘려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장그래법을 통해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장그래법은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소득분배 개선분을 추가 반영하고, 수습기간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10%를 감액 하는 것들을 금지했다. 그리고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던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골프장 캐디’등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 환하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21] 

 

그러나 다른 사기업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공공기관조차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올해 들어 간접 고용 노동자들의 비율을 오히려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 시킨다는 계획에서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 11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인 알리오를 보면 올해 1분기 말 현재 340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소속외 인력’(간접 고용)이 6만5748명으로 지난해 말 (6만5029명)에 비해 700여명 늘었다. 2010년(5만5923명)과 비교하면 5년 사이에 약 1만명(18%)이 증가했다.[22] 

 

한편,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보 정당들은 한국의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가 증가하여 내수경기도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7% 정도’의 인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노동계와 진보 정당들의 입장이다. 최저임금 문제가 대두되면서 공공부문의 임금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예규는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에게는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여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중노임단가는 매년 중소기업 중앙회가 발표하는 것으로, 제조업 부문의 평균 임금 수준으로 책정된다. 올해 시중노임단가는 시간당 8천19원으로 최저 임금(5천580원)보다 43.7% 많다. 그러나 많은 공공기관에서 이러한 법적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근로 감독을 강화하여 지금의 상황을 시정하기만 해도 실질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요구와 시중노임단가 적용 요구는 사실상 최소적 요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조치들만을 가지고 단번에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조차 경총과 같은 기업단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으며, 이미 법적으로 규정된 공공기관에 대한 시중노임 단가 적용조차 정부에서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8

각개 전투는 이제 그만, 좀 더 거시적인 전략의 틀을 구상해야 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을 때, 우리는 흔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처리하기에만 바빠서 전체적인 문제의 골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나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빈곤문제가 극심해지는 상황 속에서는 여기저기서 사건,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대응해왔던 매뉴얼에 따라 단기적인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그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구상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경제를 주도해서 개선해나가려는 노력보다는 유동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방어적인 정책만을 사후에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복지정책도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1차적 분배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해서는 무대응 또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다가 이후에 재분배를 통해서 보완하겠다는 전략에 불과하다. 그러나 1차적 분배과정을 통해 지나치게 불평등의 격차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재분배만으로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복지정책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내고 있다. 급기야 정부는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다시 예전처럼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성장 전략으로 회귀하려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주류 야당들도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정책효과에만 매달리는 것은 비슷하다. 그들이 말하는 복지국가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채 복지정책이라는 보완적 정책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앞의 선거와 인기만을 바라보면서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에는 눈을 감은 채 복지정책만을 이야기하기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외과적 수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약물치료만을 고집하는 의사와 비슷하다.

 

1차적 분배 과정에서의 자본과 노동 간의 분배, 노동자들 간의 분배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재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하고 있는 일시적인 규제완화나 조세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부양시켜서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진 것처럼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또한 장그래법과 같은 대책안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어떻게든 유지시키려는 임시방편의 땜질적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에서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면서 여당과 정부를 비판 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틀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부의 대안과 엇비슷한 정책안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오히려 여러 가지 정책들을 복합적으로 구상하여 한꺼번에 구조를 개혁하는 방식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여러 가지 제도적 정비 와 전체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했듯이,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9

대안을 상상하라!

거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항상 막연하고 추상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인 실체로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의 상상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비슷하게 존재하는 대안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내가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마찬 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어느정도 최소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통해 사회적인 안전망을 튼튼히 확보한 스웨덴이라는 국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다. 많은 유럽의 복지국가들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제쳐두고, 스웨덴을 내세운 이유는 단순하다. 스웨덴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의 상황 속에 서도 어느정도 안정적인 사회적 시스템을 통해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은 다른 국가의 모델들과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책은 스웨덴 복지국가의 특수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에 그 책의 내용 을 참고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스웨덴 복지국가가 가진 여러 가지 특수성이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미국과 영국이 1929년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당시 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케인스주의적 관점과의 차이점이다. 케인스주의의 기본 원칙은 이전까지의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생산에만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수요나 소비의 관리에는 소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를 정부가 개입해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러한 케인스주의적 관점에 입각해서 복지정책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국가의 정부는 기존의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수요와 소비를 함께 진작시키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들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조차 구매하기 힘든 경제적 약자들에게 복지정책을 통해 돈을 지급하거나 직접적으로 물품,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소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복지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인력충원을 위해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렸고, 국가 주도의 인프라 사업을 실시하여 일자리를 대폭 증가시켰다. 일자리가 많이 증가하자 실업률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결과적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복지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의 소비여력이 높아지게 되자 과잉생산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경제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케인스주의는 완벽하게 위기를 대처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케인주의적 모델에서 이야기하는 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개입과 복지정책들을 통해 완전고용과 소비증가는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시중의 화폐가 계속해서 증가 하면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비효율적인 산업 부문들이 잔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23] 

 

케인스주의적 복지정책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편적 복지(재분배 정책)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1차적 분배과정에 개입 하는 정책)을 통해 새로운 복지국가의 모델을 제시했던 국가가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정책 입안자들은 단순히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복지정책만으로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1차적 분배과정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동시 에 필요하다고 보았다. 복지정책과 같은 재분배 정책만으로는 소비를 촉진하는데 한계가 있고 지나치게 정부의 재정을 많이 확대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그러나 복지 정책뿐만 아니라 1차적 분배과정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질 경우 1차적 분배과정에서 어느 정도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예산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정부가 재정을 많이 지출할 필요가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아지게 된다.

 

스웨덴에서 실시되었던 적극적인 노동정책으로는 ‘연대 임금 정책’이 있다. 연대 임금 정책은 케인스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스웨덴의 전국노동조합인 LO(Labor Organization-노동조합총연맹)에 소속되어 있던 렌과 메이드네르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안된 정책이다.

 

 

렌과 메이드네르는 노동 시장을 기업 간, 개인 간의 계약에 맡겨두는 대신에, 산별, 나아가 전국 단위에서 ‘동일노동, 동 일임금’의 원칙에 입각해 동일 산업 내의 임금 격차 속에서 중간의 어느 수준을 찾아내고 이 동일 임금을 모든 사업장에 서 일률적으로 계약에 적용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2011, 248p~249p-

 

이처럼 연대 임금 정책은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를 줄임으로써 그들 간의 연대를 강화했다. 한편 이렇게 한 산업 내의 노동자들에게 모두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게 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었던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예전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된다. 기존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된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들은 추가 자본을 통해 고용을 더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게 된다. 반면에 정해진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줄 수밖에 없었던 비효율적 기업들은 도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도산한 기업의 노동자들을 위해 실업급여와 직업교육과 같은 보편적 복지가 제공된다. 결과적으로 동일 산업 내의 노동자들의 격차는 사라지고 그들 간의 연대의식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 그러나 연대 임금 정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산업 분야 간의 임금 조정까지를 목표로 한다. 동일 산업 내의 노동자들이 임금이 평균화되었던 것처럼 산업 간의 격차도 줄어들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 간의 격차도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도 동일 산업 내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생산성 있는 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게 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산업분야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또한 사라져가는 산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에게는 동일 산업 내에서 복지정책을 제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실업급여와 적절한 직업교육을 국가에서 보장한다. 이처럼, 연대 임금 정책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에도 개입하여 산업구조를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변화시키면서도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를 최소화하여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24] 

 

그러나 연대 임금 정책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어느 정도의 한계를 보이게 된다. 그 이유는 연대 임금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생산성 높은 대기업들이 그 이윤을 고용을 창출하는 데 온전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대기업들은 이 정책으로 인해 얻은 이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권력을 확장하고, 노동자들의 힘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LO에서는 다시 ‘임노동자 기금’이라는 새로운 구조 개혁적 정책을 내놓았다.

 

...(전략)... 이것은 대기업의 초과 이윤을 회수하기 위해서 이윤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 많은 자금을 납부토록 하여 이를 하나의 기금으로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자금은 현금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신규로 발행한 주식의 형태로 납부된다...(중략)...임노동자 측은 이 기금을 통해 개별 기업들의 의사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나아가 기업의 전략적 경영과 투자 계획을 조종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기금 자체를 이용해 산업부문마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갖춘 체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본의 흐름을 돌릴 수 있다.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2011, 281p-

 

이처럼 임노동자 기금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몫을 조금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자체를 민주적으로 변화 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정책은 스 웨덴의 여론이 보수적으로 변화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25 

 

위에서 살펴본 두 개의 정책(연대 임금 정책, 임노동자 기금) 들의 예시를 통해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구조 개혁적 정책 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일시적인 경기 변동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구조적으로 형성된 자본과 노동 간의 관계, 노동자들 간의 관계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특히,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이 정부의 정책마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의 힘을 제어하지 못 한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자본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라는 영역의 힘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힘이다. 그런데 지금 노동자들의 힘은 강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은 단위로 분할되어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가 극심하고, 지위가 치밀하게 분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웨덴에서 제시되었던 연대 임금 정책이나 임노동자 기금과 같은 혁신적인 정책이 우리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러한 대안들을 통해 한국 사회도 작금의 부실한 복지국가 담론에서 벗어나 “공동체가 함께 행복해지는 복지국가”를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1  김연명 외 4명, 『대한민국 복지』, 도서출판 두리미디어, 2011, 31p

2  제이콥 해커 예일대 교수가 사회 복지와 세금 같은 재분배와 노동자들이 1차적으로 받는 임금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이는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원 분배의 과정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몫을 나누는 과정과 노동자들 간의 임금 분배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3  <뉴스핌>, 「한국 수출 ′세계 6위′ 도약…프랑스 제쳤다」, 15.04.02 

4  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헤이북스, 2014 , 35p 

5  [네이버 지식백과] 노동소득분배율 [ ratio of compensation of employees to National income ]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6  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헤이북스, 2014 , 37p

7  <한국경제>, 「문재인의 경제 키워드 ‘두툼한 지갑론’…”가계소득 늘어야 소비 늘고 경제 성 장”」, 15.02.26 

8  위키백과, 초이노믹스 

9  기업의 이윤 중에서 노동소득과 세금을 제외하고 남은 돈 

10  투자와 배당, 임금 증가 등이 당기순이익의 일정 비율 이하인 경우 미달액에 대해 10 %의 법인세를 추가로 매기는 제도. 자기자본 500 억원 이상 법인 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 대상으로 2015 년부터 3 년 동안 적용된다.

11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이 각각 시장 평균보다 20 % 높고 총배당금이 10 % 이상 증가하거 나 배당지표가 시장 평균의 50 % 이상이면서 총 배당금이 30 % 넘게 늘어난 상장기업에 적용되는 세제. 배당을 받는 주주는 소득세를 감면 받는다.

12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 통계청에서는 고용계약기간 1 년 이상, 노동부에서는 3 개월 중 45 일 이상으로 규정 [네이버 지식백과] 상용근로자 [常用勤勞者]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13  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헤이북스, 2014 , 25p

14  <조선일보>, 「“대기업 초과이익, 中企와 나누자”」, 11 . 02 . 24

15  <한국경제 tv >, 「"이래도 대기업 포기하고 중소기업 취업하라고"..대기업-중소기업 임금 격차 심화」, 15 . 02 . 23 

16  하도급 계약기간중 원부자재 가격이 변동될 경우 이를 반영하여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납품단가연동제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 경제신문/한경닷컴) 인용

17  [네이버 지식백과] 비정규직 [ atypical Job , non - standard Job , contingent Job , 非正規 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8  < KBS NEWS >, 「국내 비정규직 비율 35 %…“ 1 년뒤 10명 중 1 명만 정규직 전환”」, 14 . 10 . 26

19  <아주경제>,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 정규직의 62 % 수준...“불합리한 임금격차 여전”」, 15 . 04 . 28

20  <아주경제>,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 정규직의 62 % 수준...“불합리한 임금격차 여전”」, 15 . 04 . 28

21  <조선닷컴>,「[비정규직 종합대책] 비정규직 6 명 중 1 명만 4 년까지 연장 가능」, 14 . 12 . 30 

22  <경향신문>, 「[단독]정규직 늘린다더니… 용역·파견만 늘렸다」, 15 . 05 . 12

23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2011 , 252p

24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2011 , 246p ~ 250p 

25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책세상, 2011 , 279p ~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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