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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봄여름, 66호 <대학을 밟지 마시오>

학칙보다 우선하는 규범, 교육보다 앞서가는 통제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5.

편집위원 이찬민

1.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은 철거한다
   작년 12월이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중앙대 역시 피해갈  없었다. 법학관 벽면은 안녕하지 못함을 고하는 자보로 도배됐다. 1월에도칭소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100만원 자보[1] 학교 곳곳에 나붙었다. 그러나 서울행정지원처장은 (대자보로 인해) 우리 대학이 힘들게 쌓아온 이미지가 너무나도 쉽게 실추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며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과 대자보에 대하여는 부득이하게 철거”한다고 알렸다.[2] 중앙대에 붙은 70 장의 대자보는 철거 공지 하루만에 모두 떼어졌다. 

2. 징계 받은 자에게는 장학금을   없다.
   지난 학기, 표석 (국어국문학과 4) 평점 4.21 성적을 받았다. 그는 성적장학금 커트라인(평점 4.1) 넘겼지만. 장학금 대상 명단에 없었다.  씨는 2010 학문단위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한강대교에서 고공시위를 벌여 유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대학 본부는 이러한 사실 때문에 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4  찍힌 징계 이력은 주홍글씨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3. 성적이 낮은 자는 선거에 출마할  없다.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가 무산됐다. 지난해 11, 올해 3월과 4,  번째다.  차례 선거에서 후보는   , 김창인 씨뿐 이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학점미달과 징계전력을 문제 삼아  씨를 후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학본부의 입장과 상관없이 학생회칙을 가장 우선시하여 선거를 진행했다. 그러자학교본부는 선관위 전원을 상벌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인문대 선거는 무산됐다. 지난 5 7일,김창인 씨는 중앙대를 자퇴했다. 

   위의 사례는 최근 중앙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대학본부는  사건 때마다 행정적 근거로 ‘어떤 규범을 제시한다. 학생들의 대자보를 뜯어내고, 장학금과 피선거권을 박탈시킨 어떤 규범’은 대체 무엇일까? 

학칙을 보완하는 제 규정

   <고등교육법〉제6조에서는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규칙(이하 학칙)을 제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학칙은 학사 일반과 운영에 관한 내용을 명문화한 규칙이다. 그러나 학칙에 모든 행정 지침을 담을 순 없다 만일 모든 행정의 기준과 절차를 학칙에 명시한다면, 그 분량은 수백 쪽에 달할 것이다. 학칙은 총칙과 학사 행정의 기본적인 원칙 정도만 나타낸다. 그 외에 구체적인 사항은 '() 규정’이라는 규범을 통해 정한다. 제 규정에는 ‘규정’, 지행세칙’, ‘내규’가 있다. 각자 역할은 다음과 같다.

   위의 구분과 같이  규정은 학칙의 내용을 구체화해 업무 수행을 돕는다. 그러나 단순히 학칙을 보완하는 역할만 수행하고 있을까? 

학생 통제의 역할

   앞서 언급한 대자보 철거 사건의 주역엔 〈학생홍보물 게시에 관한 내규>(이하 '〈홍보물 내규〉’)가 있다.〈홍보물 내규〉는 홍보물을 게시하려면 학생처의 도장을 받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규칙을 위반한 홍보물은 관리처장이 지체 없이 회수·철거”하며, “허가받지 아니하고 무단으로 홍보물을 게시한 학생은 학칙에 의거 징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홍보물 내규〉는 사실상 학생들의 게시물을 검열하는 도구 로 활용되고 있다. 작년 12,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도장을 받으러 간 학생들은 학생처 권영욱 주임으로부터 "정치적인 내용이 게시물은 못 붙인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난 5 12일에는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도장을 받으러 갔다. 학생처 김진식 팀장은 팩트가 없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했다. 교직원이 학생들의 대자보를 읽고 내용을 판단하는 행위는 명백한 검열이다.

   중앙대학교 학칙은 게시물을 부착하려면 사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3] 반면 학칙의 하위 규범인 <홍보물 내규>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내규를 상위법인 학칙보다 우선 적용하면서까지 게시물 부착을 막는 것은 대학본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통제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자보가 철거된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과 대자보를 철거합니다.”


   징계 전력이 있는 표석 씨는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장학금 지급 규정> 15조는 '학칙 또는 관련규정에 의하여 징계를 받은 자’에 대하여 장학금 지급을 제한하고 있다. 받은 장학금마저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16조는 징계처분을 받는 사실이 있는 경우 장학금 지급을 중지하거나 회수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2 1학기에 장학금을 받은 노영수 씨와 김창인 씨는 제16조 조항으로 인해 장학금을 도로 내놓았다.[4] 또한, 국가의 보조로 운영되는 국가장학금유형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5]

   징계처분을 받은 자에게 장학금 지급을 제한한다는 조항은 2012년에 신설됐다. 공교롭게도 이런 조항이 생기기 직전인, 2010년과 2011년은 무더기로 징계가 내려진 해다. 모두 대학본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해 내린 처분이다.[6] 징계전력이 있는 A 학생은''장학금 지급제한 조항의 도입 시기가 상당수 학생의 징계 이후인 것을 보면 연관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A 학생은 대학본부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기한도 없이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있다.

   지난 5 7. 김창인 씨가 중앙대를 떠났다. 그가 자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 파행’이었다. 김 씨는 작년 11원 인문대 선거에 나갔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그의 출마를 막아섰다.〈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는 학생회장 피 선거권 자격을 규정한다. 학생회장이 되려면 전체 이수 학업성적이 평균평점2.0이상이어야 하며, 학사 및 기타 징계 사실이 없어야 한다. 김씨는 피선거권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는 학생회칙을 가장 우선시하여 선거를 진행한다는 입장이었다. 대학본부는 선거를 강행할 시 선관위 전원을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인문대 선지는 무산됐다. 올해에도 두 차례 보궐선거가 열렸으나 위와 같은 절차가 되풀이됐다.

   사실 지금까지 학생회 선거에서 결격사유를 가진 후보는 김창인 씨 외에도 많았다. 그러나 서울캠퍼스에서〈학생자치기구 선거 시도 내규>가 효력을 발휘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7년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사문화된 학칙을 김창인 씨에만 적용한 이유가 뭘까 세 차례 선거를 진행했지만, 대학본부는 왜 번번이 막아섰을까.

인문대 선거관리 위원회는 대학본부의 선거 개입에 반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 

 

 불편한 열람 방법

   게시물 철거, 장학금 박탈, 학생회 선거 무산. 제 규정이 갖는 힘은 실로 막강하다. 그러나 이렇게 학생행정과 밀접한 규범에 학생은 접근하기 힘들어 보인다 제 규정은 학교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제 규정이 올라와 있는 것은 아니다. 제 규정 중 ‘규정’만 공시 의무가 있을 뿐, 시행세칙과 내규는 안 올려도 그만이다. 인문대 선거가 한창 쟁점이 될 때 ,〈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규정집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중앙도서관 3층 참고자료실이다. 그러나 누가 도서관까지 가서 내규를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하랴. 그 마저도 2005년 판본까지만 공개돼있다.

손쉽게 만드는 독소조항

   제 규정은 학칙[7]에 비해 입법절차가 훨씬 간단하고 폐쇄적이다. 먼저, 제 규정은 주무부서가 입안한다. 입안된 규정안은 대학 운영위원회[8]의 심의를 거친다. 제대로 된 심의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운영위원회는 대학본부의 구성원으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심의를 거친 규정안은 총장의 재가로 시행된다. 그러나 시행세칙이나 내규를 제·개정할 경우에는 이 간단한 절차마저 생략할 수 있다. 주무부서장이 기획처장의 협조와 총장의 재가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학생활동을 좌지우지하는 내규가 주무부서장의 권한으로 이렇게 단숨에 만들어질 수 있다.

   제 규정은 학칙과 달리 개정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학생은 어떤 규정이 언제 어떻게 변했는지 알 방도가 없다 만일 제 규정 개정안에 독소조항이 포함된다면, 막기는커녕 문제를 제기할 기구조차 없다. 비록 의결권을 갖진 못해도, 학칙개정에선 대학평의원회가 심의를 한다. 평교수와 학생대표자가 참여하는 평의원회는 대학본부의 개악에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9] 그러나 제 규정 개정에서는 그 마저도 없다. 누군가 제 규정의 이의를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 규정의 해석상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총장의 위임을 받아 조정부서장의 해석에 따른다.”[10] 조정부서장은 기획처장을 지칭한다. 결국, 제 규정의 모든 결정권한은 대학본부에 있다.

< 학생홍보물 게시에 관한 내규 >, < 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 >, < 장학금 지급 규정 >  등 현재 문제가 되는 제 규정은 모두 학생처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 

 

제 규정 심의기구 설치

   제 규정에 관한 모든 사항은 대학본부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제 규정은 앞서 <학생홍보물 게시에 관한 내규>에서 보았듯이, 학칙보다 더 우선하여 적용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학교행정이 제 규정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만일 제 규정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통계하는 데 이용된다면 비판적인 목소리는 사라질 것이다.

   지난 4 15. 대학평의원회는 규정검토위원회’ 신설을 대학 본부에 요청한 바 있다. 규정검토위원회는 제 규정의 재정, 개폐 등을 심의하는 기구이다. 연세대학교는 일찍이 1984년부터 ‘규정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다. 연세대학교 규정심의위원회는 대학본부 측 인사뿐만 아니라 '법률학 또는 심의규정 관련분야의 전공교수 중에서 위원장의 추천으로 총장이 위촉한 자’가 심의위원으로 참여한다.[11] 비록 연세대 같은 경우도 학생참여가 배제돼있고. 총장의 재량으로 심의위원이 선출될 수 있다는 허점이 있지만 아무런 제동장치를 갖지 못한 중앙대에 비하면 안전해 보인다.

   심의기구는 개정 전에만 심의하는 것이 아니라 개정 후에도 기능해야 한다. 시행 중인 제 규정에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이를 검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조항에 대해 주무부서에 수정권고를 내리는 권한을 심의기구가 갖는다면 좀 더 수평적인 권력관계가 가능할 것이다.

   이외에도 심의기구에 학생대표의 의결권을 보장하거나,학생에 관한 행정에 한해 참여를 보장하는 등 다양한 모델을 고려할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규정관리체계는 명백히 학생의 의사가 반영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을 배제한 행정은 언제든지 학생에게 위험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악순환을 반복하는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

 


[1] 학교본부가 청소노동자를 상대로 교내에서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를 외칠 경우 1회에 100만원을 물리는 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이것은 100만원짜리 자보'라며 대자보를 붙였다.

[2] 학내온라인커뮤니티<중앙인>, 「교내 대자보 철거에 따른 사전 안내문」, 2014.1.6

[3] 중앙대학교 학칙 64(활동  간행물)

[4] 노영수 씨와 김창인 씨는 2010년도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징계처분을 받았다.

[5] <중앙대학교 국가장학금(||유형)운영 내규> 8

[6] 서울캠퍼스에서만 2010년도 구조조정 시위로 5, 2011 년도 200 원탁회의’로 3명이 징계처분을 받았다.

[7] 학칙개정은 비교적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주무부서가 발의하면 조정부서는 개정안을 받아 검토한  20 이상 공고해야 한다. 학칙개정안은 공고된 날로부터 60 이내에 교무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친  총장의 공포로 확정된다.

[8] 대학운영위원회는 총장, 교학/ 연구/ 행정/ 안성/의무 부총장, 기획처장, 교무처장, 법인상임이사  66 법인 사무처장으로 구성한다. 〈중앙대학교 학칙13조의 2(대학운영위원회) 2항〉

[9] 지난 4 학칙개정에서도 대학평의원회의 심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10] 〈규정관리 규정〉제12(규정의해석)

[11] 연세대학교〈규정심의위원회규정〉제3(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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