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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봄여름, 66호 <대학을 밟지 마시오>

지금 내가 떠나는 이유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 중앙대 자퇴생 김창인 인터뷰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4.

  2014 5 7일 수요일. 중앙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김창인(24) 씨가 자퇴했다.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가 쓴 대보는 자퇴생이라는 이유로 게시를 허가 받지 못했고, 붙인 다음날 도로 떼어졌다. 학교는 금세 조용해졌다. 

  중앙대는 산학협력 사업을 따냈고. 대성학원 포스터에는 서성한중’이라 표기되었다. 경영경제관은 지어지고 있고, 교내 게시판에는 기업 포스터가 여전했다. 학교 앞 술집은 붐볐고,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평화로웠다.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가 자퇴하며 던진 물음은 무엇이었을? 그저 학교를 떠나는 운동권 학생의 호기였을까? 이제는 학교를 떠난 김창인씨를 만나 물어보았다. 한사코 학교 주변 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김창인 씨,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사소한 대학생활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철학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철학과에 지원했다”

중앙문화 2009년 중앙대 철학과에 입학한 걸로 알고 이싿. 당시 이미 두산이 재단으로 들어온 상황이었는데 중앙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철학과를 선택한 계기도 궁금하다.

김창인 두산은 2008 2학기에 중앙대를 인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고3 수험생이었는데, 주위 선생님들도 두산이 들어와서 좋은 학교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중앙대를 선택한 이유다.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철학을 배우면 좀 똑똑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철학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철학과에 지원했다.

중앙문화 입학하기 전 어떤 대학 생활을 기대했나? 

김창인 대학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대학생이라면 사회적으로 가져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취직 준비를 해야 하지만 다른 직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학생이 아니라 스펙 쌓는 운동권 사입니다. 따라서 아직도 1980년대 의식에 젖어있는 운동권은 ‘나가놀아라’라는 교육적인 메시지를  입니다     

2010년 안국신 부총장

중앙문화 중앙대의 대표적인 운동권으로 불렸는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창인 아버지께서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고 계신데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나 이런 때가 되면 항상 장애인 센터나 양로원에 데려가셨다. 그런 경험들이 나한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정환경도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주위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노력하는 사람만 잘 사는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력은 너무 주관적인 요소다. 사람이라면 지향해야 될 가치가 있고,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사실 지금의 대학은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힘든 구조다. 학생회 활동하는 것조차 자기 인생에 손해가 된다는 인식이 많다. 의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나도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고 후배들 도 같이 하면 좋겠지만 나처럼 살고 싶을까 하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할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잘 살고 있지도 않고. 욕도 많이 먹다 보니까. (웃음).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가치있는게 무엇인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같다. 

2010년 구조조정 반대 시위, 김창인(오른쪽)씨는 법원으로부터는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학교로부터는 명예훼손으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세상이 진흙탕인데 거기서 싸움을 하려면 진흙이 묻을 수밖에 없다.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문화 수차례 징계를 받으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심정적으로 공감을 하더라도 대부분 활동을 꺼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끈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김창인 지사불망재구학(志士不忘在溝塾) 용사불망상기원(勇士不忘傷其元)이라고 맹자가 한 말이다. 뜻이 있는 선비라면 언제든지 진흙 구렁텅이에 빠질 준비가 있어야 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목이 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옷이 젖을 수밖에 없다. 세상이 진흙탕인데 거기서 싸움을 하려면 진흙이 묻을 수밖에 없다.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회의감도 들고 무력감이 들 때도 많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럴 때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작년 구조조정이 있었을 때 많은 학생들이 울었다. 그 자리에 같이 있으면서 같이 절박해지고 책임감이 들었다. 결국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버티는 것 같다. 

방학 때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학기 중에는 밤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낮에는 학교생활을 했다.”

중앙문화 그러면 대학 다니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김창인 2011년도 초반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집안에서 문제가 생겨 당시 집을 나와서 활동을 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돈도 없었고, 빚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방학 때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학기 중에는 밤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낮에는 학교생활을 했다. 고시원에 들어가서 생활했는데, 돈이 없어서 후불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반년정도 그렇게 지냈는데,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중앙문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학교를 다녔다. 졸업을 할 수도 있는 시기인데, 긴 대학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은 없나? 

김창인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추억이 많이 남는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끈끈한 정 같은 게 많이 생기니까. 그리고 과에서 오래있다 보니 과 사람들과 보냈던 추억이 많은 것 같다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2010년 김예슬 씨의 자퇴 사진 (출처: 나눔문화)

  2010년 고려대학교에서 김예슬 씨[1]가 자퇴한다.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그만둔다.’는 그녀의 선언은 대학이라는 공간에 사회적 고민을 낳은 첫 단추였다.

중앙문화 김예슬 씨와 비교되고 있다. 김예슬 씨는 지금의 대학 제도 자체를 비판헀다. 대학이 이제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창인 기본적으로 큰 틀에 서 문제의식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가 대학 기업화다. 학교가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돈 안되면 구조조정하고 학문의 자율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선봉에 중앙대가 있다.

  중앙대가 바뀌어야 다른 대학들도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동국대에서 구조조 정을 할 때 중앙대처럼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고 들었다. 모교였던 학교이기에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김예슬 씨와의 가장 큰 차이는 내가 학내에서 활동을 해온 점이라고 생각한다

중앙문화 중앙대가 대학 기업화의 선두 사례로 있는데, 중앙대만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중앙대가, 보편적으로 대학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김창인 대학의 본질을 잊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자 동시에 성인으로서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배우는 곳이다. 대학에 나와서 취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목적을 넘어서 본질까지 흐리게 하면 안 된다. 모두가 운동권이 되는 대학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존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이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학생회라는 공동체 생활이 대학 이전에 경험했던 생활과는 정말 달랐고 좋았다.” 

중앙문화 배우고 싶은 대학에 들어온 건데 자퇴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태까지 여러 차례 징계를 받은 상황에서도 자퇴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 결정에 어떠한 계기가 있었나? 

김창인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회 활동을 주로 해왔다. 학생회라는 공동체 생활이 대학 이전에 경험했던 생활과는 정말 달랐고 좋았다. 그래서 학생회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학생들의 권리문제나 대학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의 구조조정 과정의 불합리함과 학생 자치 탄압에 투쟁하면서 세 차례 징계를 받았다. 그럼에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활동했었다.

  자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이번 인문대 학생회 선거 파행이었다. 파행 이후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대학 생활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중앙대가 대학다워지기 위해서 여러가지 활동을 해왔지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자퇴라는 선택을통해서 표현했다.

징계자는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현재 중앙대학교 인문대 학생회장은 공석이다. 2013 11, 2014 3월 선거는 진행 중 무산되었다. 2014 4월 선거는 투표 기간 중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전부 김창인 후보 단독출마였다.

중앙문화 인문대 선거 파행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 

김창인 학생회 활동을 꾸준하게 해왔고 학생 대표자로서 활동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대표자를 하면서 만들고 싶었던 학생회, 대학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 말, 선거 준비 중에 징계 전력이 있고 학적이 미달되는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았다 학교는 선거를 계속 진행한다면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인 학생 회장들에게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후보자에서 사퇴했다.

  올해 같은 경우는 출마할지 안할지 고민하다가, 주변의 권유도 있어서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인문대 선관위에서 후보 자격에 대해 인정해서 선거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투표 기간 중에 협박을 했고, 공지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선관위 위원들이 학교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해서 선거가 파행되었다.

중앙문화 몇 년 전에도 자격요건 미달의 학생이 학생 대표자를 했던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학교 측에서 기존에 적용되지 않던 학칙을 지금에 와서 적용시킨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창인 학교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 이번 학칙 개정 원안에도 학생회, 징계에 관한 부분을 총장이 정하고 소급 적용한다고 나와 있었다. 애초에 선거가 치러졌을 때 징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규정상 선관위가 아닌 후보자에 대한 징계는 명확한 조항이 없어서 애매한 상황이었다. 인문대 선거가 파행되자 기존 개정안이 중단되고, 중재안이 통과된 것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앙문화 학생회장 후보 자격관련해서 징계이력 외에도 학점이 문제가 되었다. 배우고 싶은 학과에 합격을 했는데 학점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창인 그 점은 내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12년 동안 그래도 나름 공부를 했는데, 대학을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사실 대학 공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성적이 떨어진 것 같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문화 자퇴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자퇴를 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아는데, 반대하지는 않으셨나?

김창인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게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옳다고 동의를 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자퇴란 결정이 한 개인으로서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많이 하셨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말로 최대한 믿음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존중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중앙문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의견도 많았다. 조용히 자퇴를 할 수도 있었는데 학교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창인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퇴라면 조용히 했겠지만 자퇴라는 선택을 통해서 중앙대 구성원들에게, 대학 구성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이걸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이라 생각해 선택했다.

“너무 두려웠다 예전에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었는데, 현실로 다가오니까 두려웠다.

중앙문화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혹시 후회를 하지는 않았나?

김창인 자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들었다. 기자회견하기 전날이 최고조였다. 너무 두려웠다. 예전에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있었는데, 현실로 다가오니까 두려웠다.

  기자회견 때 선후배, 동기들, 친구들이 와주고 같이 있어주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은 그래도 대학 생활을 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인생을 그런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중앙문화 김창인 씨의 자퇴 대자보가 떼어졌다. 본인이 학교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남긴 것이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김창인 우선 안타까을 뿐이다. 그런 대학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인데. 진심이 어느 정도 전달되기를 바랐는데 학교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자퇴 후 무엇을 할지 묻는다면 앞으로 대학이 무엇을 할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중앙문화 이제 대학생 신분이 아니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 계획인가?

김창인 일단 정치에 관심이 있다. 시민사회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지금 당장은 개인적인 일을 할 계획이다. 미필이라 군대도 가야하고....... 지금도 조금 늦은 감이 있어서, 우선 군대를 다녀오고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지 고민할 계획이다.

  정치에 관심을 둔다고 하면, 운동권 스펙을 쌓아서 정치인이 되려고 한다는 비판이 많은데. 정치가 기성 정치인들이 하는 눈에 띄는 활동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정치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나 지역에서 묵묵히 일 하시는 분들도 많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운동권 스펙보다는 대학의 학위가 먹고 사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중앙문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김창인 아무리 경쟁이 중요하고 각박한 사회더라도 대학은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대학은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고 부끄럽다. 결국 떠나게 되었는데, 남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있다. 하지만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기자회견장에 함께 했지만, 떠나는 그는 혼자였다.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김창인 씨, 그가 우리 앞에 두고 간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현재 김예슬 씨는 시민단체 나눔문화에연구원으로있다.재입학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눔문화 문의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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