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시작까지 약 8시간 남겨놓은 11월 24일 새벽 0시 40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결국 기호2번 ‘함께바꿈’ 선본(이하 ‘기호2번’)의 후보자 자격을 박탈한다. 이로써 의혈중앙 제58대 총학생회 선거는 단선으로 치러졌다.
커피 한 잔의 향응과 사진엔 없던 비표
11월 16일, 기호2번 송종원 정후보는 모 학과 학생회장을 만나 1700원짜리 커피를 사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는 “향응을 제공했다”며 주의 1회를 부과했다. 송 정후보는 “해당 학생회장의 고충과 고민, 총학생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접대성 만남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중선관위는 “커피 한 잔이라도 사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징계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의 처분은 19일 합동공청회 자리에서 나왔다. 기호1번은 기호2번 선본원이 ‘비표를 착용하지 않은 채 유세 활동을 했다’며 증거사진을 첨부해 이의제기했다. 이에 기호2번은 “분명히 비표를 착용하고 있었으나 다만 점퍼 안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선관위는 “기호2번은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다”며, “비표와 관련된 두 번째 이의제기” 1라는 이유로 주의 1회를 부과한다. 결국 기호2번은 주의 2회 누적으로 경고 1회가 되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아무리 적은 금액의 재화도 대가성으로 비칠 수 있다. 비표 미패용으로 인한 주의 역시 사전에 양측 선본이 만나 합의한 바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다. 두 차례의 주의 조치는 ‘비교적’ 온당한 처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부과된 징계는 기호2번 선본과 중선관위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의도적 데이터 누락
‘대형강의 축소’는 기호2번의 주요 공약이다. 기호2번은 선전물에서 대학알리미에서 발췌한 그래프를 제시하며 중앙대가 ‘타대학보다 약 2배 이상’ 대형강의가 많다며 해당 공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호1번 측에선 위 데이터에 대해 이의제기를 해왔다. 기호1번은 ‘100명 이상의 강좌 수’는 비교대학에 비해 낮다는 사실을 근거로 “기호2번이 일부러 이 데이터를 누락시켜서 중앙대의 대형 강의의 질이 낮음을 과도하게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중선관위는 이의계기를 받아들여 기호2번에 주의 1회를 부과했다. 이에 기호2번은 “자료를 일부 누락 시킨 것은 맞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의혈하다'='함께바꿈'?
경고 1회/주의 1회가 누적된 기호2번에 경고 1회의 중징계가 추가로 내려진다. 사유는 '사전선거운동'. 기호2번은 선 전문에 ‘의혈하다’라는 학생자치모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중선관위는 ‘의혈하다’가 기호2번의 “사조직”이라며, 그 근거로 기호2번의 부후보가 ‘의혈하다’의 대표를 맡고 있고, ‘의혈하다’의 회원 대부분이 기호2번의 선본원이라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의혈하다’가 9월에 시행한 설문조사를 선전문에 사용했다는 건 “설문조사는 후보자 추천 기간에만 가능하다.” 2는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이하 시행세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표가 누구이고, 회원이 몇 명 일치하느냐와 같은 정황적 근거는 사전선거운동기구로서의 여부를 알아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판별 기준은 ‘의혈하다’가 기호2번의 ‘선거 당선’을 위해 활동했는지에 대한 사실관계다. 3
기호2번은 “‘의혈하다’는 선본과 별개의 단체”라고 선을 그었지만, 중선관위는 정황적 증거만으로 경고 1회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후보자자격 박탈과회복, 그리고 다시 박탈
투표 11시간 앞둔 23일 22시. 기호2번은 후보자 자격을 박탈당한다. 비표 미착용으로 또다시 주의 1회를 받아 총 경고 3회가 된 것이다. 뒤이어 열린 재심의에서 기호2번은 구제받는다. 앞서 ‘의도적 데이터 누락’ 건으로 받은 주의 1회가 ‘시정명령’으로 하향 조정됐기 때문이다(24일 0시 15분). 기호2번의 누적 징계 현황은 다시 경고 2회/주의 2회가 되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약 30분 뒤인 0시 40분경, 중선관위는 또다시 기호2번의 후보자 자격을 빼앗는다. 기호2번이 23일 자정까지 철거하기로 한 선전물을 일부 수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에 기호2번은 “선본 자격과 의무가 정지되었던 3시간가량을 인정하지 않고 징계 조치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중선관위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단선으로 선거를 진행했다. 약 3시간의 시간 동안, 기호2번은 후보자 자격을 두 번 박탈당한 셈이다.
중선관위 입장문과 선거 단행
이후 기호2번은 대자보와 기자회견을 통해 “공정성과 중립을 지켜야 할 선관위가 노골적으로 기호1번의 편을 들고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SNS와 피켓팅을 통해 투표 보이콧 운동을 전개했다.
기호2번의 움직임에 중선관위는 기호2번의 자보에 대한 입장문 4을 발표하며 빠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입장문은 그동안 중선관위에 제기되었던 편파성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입장문이 발표된 총학생회 페이스북 계정에는 적지 않은 문제제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중선관위는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중선관위는 후보자 징계 보고 결과 게시물에 징계 근거 조항을 없는 조항으로 잘못 올리기도 했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중선관위는 징계 결과 보고 게시물을 삭제하고, 수정된 징계결과 보고를 새로 업로드했다. 이 과정에서 중선관위는 어떠한 사과도, 공지도 하지 않았다.
투표율은 낮게 나타났다. 투표 첫 날 투표율은 24.65%로 개표를 위한 기준치인 5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편 중선관위는 투표 당일 학생들에게 선거 경품을 알리며 투표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총학생회 선거 경품은 매년 있어왔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선거 당일, SMS와 중앙인 앱 푸시를 교차로 사용한 다량의 메시지는 학생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 5
결국 아무도 뽑히지 않았다
25일 투표율은 48.81%로 미달됐다. 하지만 시행세칙에 따라 하루 동안 연장투표가 진행됐다. 단선으로 치러진 선거가 투표율 부족으로 연장투표까지 진행된 것은 선관위의 공정성 논란과 투표보이콧 운동의 영향으로 보인다.
26일까지의 연장투표 기간을 거쳐 총 투표율은 54.3%로 마감되었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찬성 득표율은 48.689%을기록해 과반을 넘지 못했다. 반대와 기권 득표율은 각각 39.58%와 11.74%에 달했다. 이에 중선관위장 한웅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 (찬성)득표율이 50%를 초과해야 당선을 인정”하기로 했으며, “따라서 58대 총학생회 선거는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시행세칙 54조 2항에 따르면 1, 2위 간의 득표차가 전체 투표수의 무효표 수를 초과해야 당선이 인정된다. 하지만 시행세칙은 경선 상황을 가정할 뿐. 단선으로 치러진 선거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었다. 한 중선관위원장은 “1위 득표자를 찬성, 2위 득표자는 반대로 가정했을 때,무효표 수는 기권표로 볼 수 있다”며, “적어도 1위 득표수, 즉 찬성 득표율이 50%를 초과해야 시행세칙 54조 2항이 성립”됨을 밝히며 선거 무산을 다시 한 번 선언했다.
이후 논의는 재선거냐 재투표냐로 이어졌다. 선거 무산이 확정되고 재선거가 시행될 경우 후보자 등록부터 시작해 선거가 처음부터 다시 치러진다. 반면 재투표가 시행될 경우에는 투표만 다시 한 번 시행된다. 하지만 재투표를 명시한 시행세칙 6또한 단선일 경우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한 중선관위원장은 “중선관위 회의를 거쳐 공식적으로 공지를 해드리겠다”며 개표식을 마무리했다. 27일 0시 38분, 중선관위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선거 무산이 확정되었음을 공고했다. 결국 아무도 뽑히지 않았다. 선거는 내년 3월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
중선관위의 아전인수에 선거 무산으로 답하다
중선관위에 대한 논란은 11월 17일에 열린 합동공청회(이하 공청회)에서 불붙었다. 편파적인 질문 선정이 문제였다.
일반 학생에게는 선본 당 4개의 질문이 허용됐다. 질문을 적어 제출하면 중선관위에서 질문을 선별하는 방식이었다. 한웅규 중선관위원장은 질문 채택에 앞서. “1순위는 중복 질문을 걸러내는 것"이며 “2순위는 (해당 선본에 대해) 최대한 다양한 분야의 질문을 채택하는 것’이라고 채택 기준을 밝혔다.
질의응답이 모두 끝난후, 한 학생이 채택되지 않은 질문을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중선관위원장은 요청에 따라 채택되지 않은 질문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7채택되지 않은 질문 중에서는 기호1번 부후보의 ROTC 신분에 관련된 질문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몇몇 학생들이 채택 기준을 들며 문제를 제기했다. ‘중복 질문을 걸러낸다는 1순위 기준에 따른다면 가장 많이 제출된 질문이 채택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중선관위원장은 “공약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은 최대한 배제시키는 쪽으로 진행했다”며 ‘공청회는 두 선본의 공약 실현 가능성과 문제점을 체크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이어 “ROTC와 관련된 내용은 개인에 대한 지적이기 때문에 선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호2번 부후보가 ‘의혈하다’ 소속임을 문제시한 질문은 채택됐다. 중선관위의 논리대로라면 이 또한 "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중선관위원장은 “(공약 중 하나인) 사회참여가 우려된다는 부분이 핵심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다”며 해당 질문의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질의응답은 끝나지 않았다. 한 학생은 ‘ROTC에 소속된 신분으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가의 문제도 정책적 부분’이라며 형평성을 지적했다. 중선관위원장은 “그럴 의도로 질문을 선별한 것은 아니다”며 ‘형평성 문제는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이의제기를 해달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공청회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에는 교내에 위치한 기호1번의 선본 사무실에 관한 질문도 다수 있었다. 중선관위원장은 해당 내용에 대해 기호2번이 이의제기를 신청하여 논의가 예정돼있다는 이유로 질문을 채택하지 않았다.
중선관위는 2번선본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6, 7차 중선관위 회의(17일, 18일 진행) 결과 따르면 기호1번은 학칙에 따라 “비어있는 공간을 직접 찾아서 시설물사용신청서를 작성 후 대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중선관위는 “기호1 번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는 이유로 2번 선본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1월 23일 철학과, 중어중문학과, 사회학과 학생회장은 대자보 8를 통해 ‘일반 학생들이 잘 알지 못하는 100주년 기념 사업팀 공간을 어떻게 20여 일 동안 대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이들은 기호1번이 중선관위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시설물사용신청서’가 학칙에 위배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학칙 3-49 교내 시설물 사용 규정 9에 따르면, 시설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3일 전까지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기호1번의 ‘시설물사용신청서’는 사용 당일 작성해 제출되었다.
한편 기호2번 대표참관인인 조영일 씨는 SNS를 통해 시설물사용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기호1번의 선본원이 아니라 학생지원처 모 주임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시설물 사용 허가서의 ‘지도교수(책임자)’ 란에는 조 씨가 언급한 학생지원처 모 주임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시설물 사용 허가서를 제출한 기호1번 선본원은 이번 총학생회 선거 참여를 위해 ‘온에어’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을 사퇴한 인물이다.
계속되는 의혹에도 중선관위는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24일 내놓은 입장문 10에서 중선관위는 “기호1번의 주장이 사실임이 확인”되었고, “기호2번의 기호1번에 대한 본 이의제기에는 아무런 증거자료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황적 근거”를 이유로 2번 선본에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며 징계를 내렸던 중선관위는 “근거 없는 비방을 즉각 중단”하고, “선동”당하지 말라고 말했다.
2번 선본의 후보자 박탈로 단선으로 진행된 58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선거는 결국 선거 무산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에서 벌어진 중선관위의 파행은 적잖은 시사점을 남겼다. 그 중심에는 부실한 선거시행세칙이 있다. 시행세칙에는 선거가 단선으로 치러질 경우에 대한 규정조차 부재했다. 또한 공청회의 목적과 징계의 횟수에 대한 타당성도 논의의 여지가 필요하다.
모호한 세칙을 바탕으로 중선관위는 자의적으로 공청회의 목적을 규정하고, 징계를 남발했다. 해당 내용에 대한 학우들의 적극적인 비판 여론이 있었음에도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소통하지 않았다. 이에 중앙대 학우들은 선거무산으로 답했다.
2016년 3월 58대 총학생회 선거는 처음부터 다시 실시된다. 그때까지 해야 하는 일은 뚜렷하다. 남은 3개월 동안 공정한 선거가 가능한 구조와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 17일 기호1번은 기호2번의 선거운동원 2명이 비표를 착용하지 않은 채 선본복을 착용했다며, 증거사진 제출과 함께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CCTV 확인 결과 사진 속 선거운동원 2인은 비표가 제공되지 않는 후보자였다. 기호1번의 오인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두 번째 주의 처분에서 징계 수위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본문으로]
-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3장 11조, “2) 추천 기간 중 아래와 같은 활동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는다 ① 후보자 추천, 설문조사, 후보자 추대 모임 등은 사전 선거운동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3장 11조 1항, “선거운동이라 함은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한 제반 행위로 규정한다”, 2011.04.07. [본문으로]
- [기호 2번의 선거 비방 자보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 - 모든 중앙인 여러분은 기호 2번의 我田引水격 해석에 선동당하지 마시고, 선거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문으로]
- 24일 20시 30분 기준. 지식경영학부만 22시까지 투표할 수 있었고 나머지 학부 학생들은 18시까지 투표할수 있었다. [본문으로]
- 〈총학생회 선거시행세칙〉 53조 4항 “1, 2위 간의 득표차가 무효표 수 이하일 경우 재투표를 한다.” [본문으로]
- 한웅규 중선관위원장은 ‘시간상 모든 질문들을 읽어줄 수 없기에 핵심 키워드만 발표하고 질문 본문은 페이스북에 업로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질문 본문은 업로드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정한 총학생회 선거를 보장하라’ [본문으로]
- 학칙 3-49 “제2조(시용허가절차) ① 본교의 학생 또는 교수 및 직원은 공연장, 회의실, 강의실, 실습실 등을 대여하고자 할 경우 시설물사용신청서[서식1]를 사용 예정 개시일로부터 3일 전까지 시설물 관리 부서에 제출하여 사용 허가받는다.” [본문으로]
- [기호 2번의선거 비방자보에 대한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 - 모든 중앙인 여러분은 기호 2번의我田引水격 해석에 선동당하지 마시고. 선거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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