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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5 가을겨울, 69호 <폐허, 가능성의 조건>

[인터뷰] 학생자치의 가능성을 묻다 ― ① “자치가 사라지면 더 이상 물음표를 그릴 수 없죠”_ 노영수 독어독문학과 03학번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1. 31.

2015 가을겨울 <폐허, 그 가능성의 조건>

01|"자치가 사라지면 더 이상 물음표를 그릴 수 없죠"

2003년 입학, 2014년 수료. 학교 참 오래 다녔다. 대학의 달라진 분위기를 직접 체감했을 시간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중앙대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진중권 교수의 해임, 시위, 징계, 구조조정, 고공농성, 삭발, 삼보일배로 국토대장정, 퇴학과 소송 그리고 복학, 정말 다양하다. 그의 이름 옆에는 아직도 중앙대가 붙는다. 노영수가 싸우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중앙대에서 한국사회 전반으로 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구조조정과 투쟁은 대학의 보편적인 문제가 됐다. 노영수의 행동이 중앙대 학생사회에 미친 파문이 컸다는 이유도 있다. 아직까지도 학내 온라인 게시판에서는 그의 이름이 간간이 거론된다. 물론 운동권혹은 종북의 꼬리표를 달고 말이다. 그래서 만나봤다. 오랜 시간 학생으로 살아온 노영수에게 학생사회의 가능성을 물었다.

학생회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중앙문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노영수 안녕하세요. 독어독문학과 03학번 노영수입니다. 2014년에 수료 했어요.

중앙문화 지금 새내기가 16학번인데 03학번이면 차이가 좀 나네요. 그동안 대학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입학하고 수료할 때까지 자치의 달라진 풍경을 설명해주세요.

노영수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학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학생이 사회를 끌고 갈 수 있는 시절도 있었죠. 2004년에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국회에 입성했어요. 금은 당원이라고 하면 엄청난 혐오를 받아서 스스로도 밝히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 중앙대에 민노당 대학생위원회가 300명이 넘게 있었어요.

저는 당시에 당원은 아니었는데 어떤 사회적인 사안이 있으면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열심히 대자보도 바로 붙이고 유인물 나눠주고 했어요. 지금이야 학교에 플래카드 하나 걸기도 어렵지만 그때는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죠. 정당 학생위원회뿐만이 아니라 그냥 자치의 분위기가 그랬어요.

중앙문화 입학할 당시 학교 내 사안에 대한 분위기는 어땠나요?

노영수 (본부와의) 대화의 창구가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열려있었어요. 물론 일정 부분 서로 필요한 업무를 조율하다 보면 의견이 안 맞고 그 정도 선에서의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교직원이랑 학생이랑 서로 적대시하지 않았죠. 힘의 균형이 있어서 순리에 맞게 때로는 양보도 하고 했었어요.

상징적인 사건으로는 교직원들이랑 뜻이 안 맞아서 논쟁을 하다가 교직원이 학생한테 반말을 했는데 학생들이 단체로 가서 항의하고 처장 사과를 받았어요. 학생들을 쉽게 막 대할 수 없었죠.

중앙문화 다른 사례가 있나요?

노영수 예를 들어서 당시 문과대 학생회가 학생여론을 수렴해서 교양과목 개설을 요청했고 그게 열렸어요. 그때는 이렇게 학생회가 학생들 요구를 모아서 전달하면 수용되는 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자치역량도 상당했죠.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 생각해야 하는데 이맘때 열리는 전국노동자 대회 전야제를 중앙대에서 했던 걸로 기억해요. 수만 명이 찾아오는 대규모 행사를 학생사회가 끌어올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당시 학교는 시설물에 부담이 가니 행사 구역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하자, 이런 입장이었어요. 이런 게 순리잖아요.

중앙문화 지금은 학생회의 성과가 보이지 않아 그런지 학생회가 월 할 수 있겠어라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학생회의 가능성이나 잠재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영수 저도 뭐 학생회가 이래야 한다- 이런 당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저한테는 경험적으로 학생회의 활동이 당연하게 생각됐어요. 학생회는 정말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마을 버스 이번에서 파업을 하면 학생회가 가서 연대하고, 학교 앞 노점상 문제를 학생회가 개입하고 했어요. 학교 울타리를 넘어서 학생 다수가 이용하는 거니까, 노점상은 사회적 약자니까 해결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안을 던지고 관철시키기 위한 활동을 했었죠. 저도 보면서 학생회가 마땅히 저 정도 역할은 해 줘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이런 사례를 봤을 때 학교 안의 일들은 그냥 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2007년 총학생회 후보는 총장직선제 공약을 내걸기도 했어요. 당선이 안됐긴 했지만, 학교의 통치구조의 근간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게 당연했던 거죠.

그냥 대자보 한 장으로 끝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중앙문화 그러면 입학하시고부터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노영수 짧게 얘기하자면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대표자를 해본 적은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과대표를 한번 했었는데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렵고요. 당시에는 대학생위원회나 당원도 아니었고요. 공식적으로 (직함을) 달진 않았지만 그냥 학교 재밌게 다니면서 학생회에서 농활이나 이런저런 행사 준비하고, 참여하고, 선생님들이랑 소통하고 했어요. 공부는 열심히 안했지만 과에도 굉장히 애정을 갖고 살았죠. 그러다 2009년에 진중권 교수가 해임되면서 처음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어요.

중앙문화 200912월에 대규모 구조조정[각주:1]이 발표됐잖아요. 당시 학생회는 어떻게 대응했나요?

노영수 2010년을 이틀 앞두고 발표됐던 구조조정 계획안이 굉장히 파격적이고, 기존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였어요. 이전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랑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협의가 안된 상태로 일방적으로 발표했죠. 그래서 다음날 총학에서도 바로 성명서를 내고, 유인물 열심히 뿌리고 게시판 통해서 입장발표도 했어요. 사실 사안 자체가 엄청났지만 학생회는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하던 방식으로 대응했던 거죠.

중앙문화 다른 활동은 뭐가 있나요?

노영수 천막농성을 할 때쯤 중대 전체 교수학생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저는 비대위는 아니었지만 비대위토론회를 개최하고, 학교 공청회에도 참석해서 할 말하고, 대자보나 현수막 걸고, 학교가 제시하는 이벤트성 약속들도 조목조목 반박하는 유인물을 뿌리는 등의 가시적인 활동을 전개했어요.

중앙문화 학생회장이나 비대위가 아니었는데 그럼 어떤 의도로 타워크레인에 오르신 거예요? 당시 상황도 말씀해주세요.

노영수 그때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봐야할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48일 당일 오전에 구조조정 이사회를 열고, 오후에는 총학생회장이나 몇몇 학생의 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어요. 저도 여러 군데에 엮여서 우회적으로 교수들을 통해서 중징계가 예정돼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상황이었고요. 당시에 (학생사회)분위기가 착 가라앉아있어서 이사회에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어차피 징계가 예정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여론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중앙문화 당시에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고 올라가신 걸로 알아요. 왜 그랬나요?

노영수 일반적인 건 아니잖아요. 물리적으로 굉장히 위험하고 극단적인 방법이었죠. 그리고 학교에 건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구성원들에 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사과를 했었어요.

중앙문화 이사회를 통과하면 구조조정이 성사되는 것이니, 마지막 수단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지금 돌이켜 봤을 때 그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노영수 이건 자기평가의 문제인데 저는 좋은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졌던 의도가 관철되는 부분도 있었고, 부작용도 있었죠. 당시에는 학교가 추진하는 일련의 계획들을 막아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물리적인 파열음을 크게 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이사회를 열고, 학생을 퇴학처분 내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냥 대자보 한 장으로 끝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충격의 여파는 거의 학생들 몫이었고 그것들로 인해서 한동안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당시 비대위와 학생전체를 생각했을 때 돌출적인 행동이었던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후배들이 구조조정에 대응할 때 물리적인 충돌 이외의 행동을 열심히 해줬어요.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처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학생사회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앙문화 타워크레인을 탄 이후 퇴학처분을 받고, 손해배상금만 2500여만 원이었잖아요. 어땠어요?

노영수 진중권 교수 해임 때 처음으로 징계위원회 회부가 됐었는데 그때는 굉장히 가벼운 징계를 할거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심리적으로 엄청 위축되더라고요. 군대에서 영창만 5일 가는 것도 엄청난 쇼크인데 평범한 학생한테는 굉장히 부담이 큰 사건이죠. 수위가 가볍든, 무겁든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서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에도 기자회견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공이 몇 개나 붙은 손해배상 청구 내역을 건네받았을 때 그냥 뭐 앞이 안 보였어요. ‘결국 잘 풀리겠지이런 마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든 손은 부들부들 떨렸죠. 경제적으로 녹록치 않은 형편이었기 때문에 2500만 원을 제가 어떻게든 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손해배상은 다행히도 공론화가 되면서 학교에서도 부담을 느꼈는지 철회가 됐어요.

중앙문화 법원에서 퇴학 처분 무효 판결을 받아 복학하셨잖아요. 그 이후에 징계로 인한 영향은 없으셨나요?

노영수 징계자는 학생회장도 출마가 안되고 장학금도 받지 못해요. 저 같은 경우는 복학 후 첫 학기에 복지 장학금을 받았는데 두 번째 학기에는 징계자라서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첫 학기에 받은 것도 다시 돌려달라고 했고요. 이게 국가장학금인데도 불구하고 학교를 통해서 지급되는 거라서 줄 수 없다고 했죠. 저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랑 같이 징계받았던 학생은 복학해서 열심히 학업에 임해서 성적장학금 대상자가 되었는데도 학교 측에서 지급할 수 없다고 했어요. 학교의 규칙이나 징계가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장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건데 이건 보복에 가깝죠. 낙인찍어서 블랙리스트처럼 관리하려는 것 같아요. 이런 징계는 학교 본연의 기능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해요.

“물길을 막는다고 바로 댐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중앙문화 1학기에 박용성 이사장의 이메일 공개나 박범훈 전 총장의 비리 같은 사건들로 시끄러웠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노영수 솔직히 그냥 어리둥절했어요. ‘어떻게 저런 일이 다있지했죠. 뉴스 기사 슬슬 나오는거 보면서 그동안 뒤에서 했던 그런 일들, 계략들이 정말 여지없이 사실로 드러났잖아요. 막 박용성 이사장이 현수막 내용까지 일일이 지시를 하고... 밝혀진 내용들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심지어 모두 사실이었는데도 결과가 좀 아쉬웠어요. 그걸 받아들이는 학생들이나, 솜방망이 판결이나.

중앙문화 그런 학생들의 여론이 드러날 수 있는 곳이 사실 온라인 커뮤니티 중앙인밖에 없잖아요. 또 거기서 노영수 씨나 특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계속 거론하면서 운동권 혐오를 표출하기도 하고요. 중앙인이 학생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노영수 굉장히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커뮤니티도 두산재단이 들어오면서 만든건데 구조조정이나 학교측의 일들을 단순히 공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여론을 움직이는 거. 학생들의 표현에 대한 판단을 교직원도, 교수도 아닌 두산 홍보실 출신 사원 한 명의 잣대로 가위질하는 것만 봐도 객관적으로 잘못된 운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예 아이디가 박탈이 됐어요. 타워크레인 직후 학교가 발표한 글에 반박하는 글을 썼는데 글이 삭제되고 아이디도 아예 영구 박탈됐어요. 온라인 커뮤니티가 제일 큰 소통의 창구인데 비판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장을 점령당한 거죠.

중앙문화 운동권이나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들을 험오하는 여론이 가시적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학생대표자들이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 된 것 같아요. "이걸 했다가 욕을 먹으면 어쩌지"하고 검열하게 되는 것도 있구요.

노영수 자기 검열은 혐오(표현)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저 또한 굉장히 부담스럽고요. 일이 있는 순간순간마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건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그렇고요. 굉장히 이 안에서 큰 제약을 받은 것 같아요.

중앙문화 어떤 학생들은 "학생회가 월 할 수 있겠어?”하고 반문하거나 그냥 없어지고 학교 행정으로 대체하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 학생자치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영수 자치가 사라지면 더 이상 물음표를 던질 수 없어져요. 주면 주는 대로 하게 되는 거죠. 지금은 특히 학교의 운영 주체가 기업이라 그런지 비용의 문제로 모든 것을 환산하기 때문에 자치의 역량이 떨어지면 학생이 대학사회에서 누려야 마땅한 권리를 제약받을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의 일반론에서 봐도 관심 부재의 결과는 소수의 천박한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좌지우지 되는 거잖아요.

학생들이 학생회의 역할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건 당연해요. 그냥 학생회가 뭔가를 바꿔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적이 없는거죠. 그래도 표면화되지 않는 자치의 욕구들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물길을 막는다고 바로 댐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꼭 학생회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훌륭히 자치를 해왔다고 봐요. 학교 내 비중은 많이 위축됐지만 자치 언론이나 이런 소소한 활동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그때그때 마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으니까요. 최근의 경향들도 그런 것들이 천천히 작용한 결과 같아요. 중앙대는 아직 자치의 불씨를 계속 움켜쥐며 왔고 그렇기에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 20091229일 본부는 외부 언론을 통해 구조조정 초안을 발표했다.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학과 77개를 40개로 통폐합하는 대규모 계획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문화64구조조정은 오래 지속된다를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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