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학생들이 스스로 자치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5년 3월, 개강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 중앙대에서 구조조정은 새로운 이슈가 아니었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학과제를 폐지하고 거의 모든 단과대를 학부제로 전환한다는 갑작스런 통보였다. 이로써 대부분의 학과는 구조조정의 당사자가 됐다. 게시판마다 교수들과 학생들의 대자보가 줄줄이 나붙었다.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2주가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두가 총학생회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조조정 학생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학생 공대위)가 발족됐다. 공대위는 “소통 없는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며 학생여론의 포문을 열었다. 공대위의 결성을 주도한 사회학과 학생회장 김재경을 만나 발족 이유를 물었다. 2015년 중앙대 캠퍼스에서 자치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았다.
2015 공대위의 시작
중앙문화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재경 저는 제15대 사회학과 학생회 포커스에서 학생회장을 맡았던 김재경이라고 하고, 올해 구조조정의 학생공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중앙문화 2015년 학생 공대위를 직접 만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만들게 된 문제의식이나 시작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김재경 구조조정이 터지고 나서 총학생회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어요. 시간만 계속 지체되는 상황이었죠. 학생회에서 구조조정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면 이게 영향이 클 텐데 하고 걱정이 됐어요. 잘 할 수 있을지,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진 않았지만 적어도 할 말은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생공대위를 꾸리게 되었습니다.
중앙문화 공대위를 만들 때 사회학과 학생회장으로 다른 학생회장들에게 제안을 한 거잖아요. 만드는 과정에 대해 더 들을 수 있을까요?
김재경 그때가 3월 11일 정도였던 것 같은데요. 학생 공대위를 만들기 전에 ‘진정한 학교 발전을 위한 학생회장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래도 한 학과를 이끌어가는 학생회장은 조금 더 학생의 권리나 구조조정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아서 제안했어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합의점을 모아서, 한 단위가 이야기하는 것 보다 여러 단위가 힘을 모아 같이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큰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최종적으로 4개 단과대의 20여 개 학과가 모이게 되었고, 이걸로 두 차례 정도 회의를 진행했어요. 상황공유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회 중심으로 돌아가되 일반 학우들까지 함께 힘을 합쳐서 이야기를 하자고 논의했어요.
중앙문화 그렇다면 일반 학우들에게 제안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김재경 공대위 서포터즈 형식으로 모으기 시작 했구요. 학생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받았어요.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 홍보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진정한 학교 발전을 위한 학생회장 모임’에 속해있는 학생회장들이 각 학과 게시판에 포스터를 올리거나, 이걸 인쇄해서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는 식으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중앙문화 공대위가 결성된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김재경 일단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명서를 통해 내용을 알리거나, 토론회에 참석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식으로 활동했어요. 공대위 자체적으로 진행한 건 강의실 방문이나 광장사업을 하면서 서명운동을 받은 거예요. ‘나는 000이라서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라는 문구를 받아서 소통의 벽을 만들기도 했구요.
중앙문화 주로 활동한 사람들은 학생회장들이 많나요, 아니면 일반 학생들이 많았나요?
김재경 2달 가까이 활동했던 것 같은데, 처음 한 달은 학생회장들이 참여해서 내용을 많이 만들었고, 그리고 후반부로 진행을 하게 되면서 일반 학우들의 힘을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문화 2013년도에도 구조조정이 있었잖아요. 그때 만들어졌던 공대위와 올해 공대위가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김재경 사실 적극성을 따지자면, 13년도가 조금은 더 크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해요. 13년도 때는 본관을 점거하기도 했고, 천막도 치기도 했었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되게 얄은 수준에서 진행을 했었던 것 같아요. 속도도 많이 느리고, 파급력도 별로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예전과는 상황이 달라져서 소수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크게 키운다고 학교가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렇기에 수적으로 힘을 더 확보하려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큰 뜻은 같지만 방식이 다르다”고?
중앙문화 공대위를 만들고 행동하는 게 비판적인 활동이잖아요. 이런 게 일반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신경이 쓰였을 것 같아요. 부정적인 여론이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그리고 이런 점이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세요?
김재경 당시 활동을 할 때는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안 썼어요. 왜냐면 중앙인이라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오프라인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없었거든요. 강의실을 찾아다니면서나, 서명 운동을 할 때도요. 2015년도 구조조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잘 모르고 알려줘야 하는 일반 사람들의 여론에 더 신경을 많이 쓰면서 활동했던 것 같아요.
중앙문화 그런 사람들의 여론이 공대위가 나타나기 전까지 표출되지 않았잖아요. 당시 총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세요?
김재경 그때는 (총학생회를) 많이 이해하려고 했어요. 속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이해해보려고 한게 총학생회는 공식적인 기구고 권위가 있잖아요. 근데 공대위는 공식적 지위가 없는 상태에서 총학에 등을 돌리면서 활동을 하면 오히려 저희한테 화살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총학생회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결집시킬 수 없어서 어떤 입장을 밝히기가 되게 어렵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 늘 이런 식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서명 전달식에 동행 제안을 거절했을 때도 “큰 뜻은 같지만 방식이 다르다”이런 말을 했구요.
돌이켜 생각하면 이런 말은 미사여구 정도에 불과하지 않았나 싶어요. 총학생회라는 기구는 연속적이지만 회장, 부회장의 임기는 되게 단절적이잖아요. 그래서 자기 임기 안에만 안정적으로 마치게 되면 괜찮다고 여기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중앙문화 그러면 구조조정 같이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 대표자들에겐 어떤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재경 어떤 사안이든 간에 학우 100%의 의견을 모두 다 반영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학생회장이면 본인만의 가치관이나 생각들이 있을거고, 자신이 먼저 나서서 학우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장마다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하나의 단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나왔다면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확실히 말해야 한다고 봐요. 학우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먼저 나서서 짚어줄 수 있는 게 최소한의 역할이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중앙문화 당시 일반 학과 회장이었잖아요. 이 상황에서 학교 전체 공대위원장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김재경 엄청 부담이 됐죠.
중앙문화 그런 부담을 감당하고 공대위를 꾸린 이유가 원가요?
김재경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어요. 학생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그냥 적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 틈에서 상황을 그대로 흘려보내면 안되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과 학생회장이었기에 영향력이 조금은 있어서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중앙문화 공대위원장을 하고 난 뒤에 개인적으로나 학과 차원에서 압박을 받는 경우가 있었나요?
김재경 당장 생각나는 사례는 강의실 대여 문제에요. 사회학과 행사를 하려고 집행부원이 강의실을 빌렸는데 행정실에서 다시 연락이 와서 ‘어떤 행사냐’, ‘누가 오냐’고 물어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내용을 알아야하니 회의록을 다 보내라’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충격이었죠. 이후에도 행사를 기획할 때 저한테 직접은 아니더라도 과사를 통해서 연락이 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중앙문화 심적인 부담감도 들었겠어요.
김재경 워낙 목소리 내고 활동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저한테 역할이 많이 부여되는 것 같아요.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넌 당연히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고, 대응은 또 이렇게 해야 하고’ 이런 기대가 많아요. 또 제가 아무 말도 안하면 “왜 안하지?” “끝났어?” “지쳤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구요.
다른 측면으로는 소위 찍어 놨다가, 벼르고 있다가 나중에 되게 교묘한 방식으로 해코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 노출이 되니까 나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구요. 시작할 때부터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지장이 없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고민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중앙문화 왜 안 그래졌어요?
김재경 공대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내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단과대 회장들도 있고, 총학도 있는데 그냥 학과 회장이 큰 목소리를 내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잖아요. 약간 슬럼프처럼 그랬죠. 그런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중앙대 학생인 건데 목소리를 못 낼 게 뭐냐, 문제가 있는걸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 그리고 너가 학교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다고 쉽게 쫓아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뿐인데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사회에 나가서보다는 학교에 있을 때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학과 학생회장을 지난 1년간 하셨잖아요. 요즘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학생회가 왜 있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본인이 학생회를 하면서, 공대위원장을 하면서, 학생회, 학생자치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김재경 학생회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요. 왜냐면 대부분의 학생회는 당장의 편의를 위한 활동만 하고 횡령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학생회는 학생이 운영을 하잖아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스스로 운영하는 게 일종의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학교(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학생이 생각하는 건 엄연히 다를 수 있어요. 학생자치가 없으면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그러면 중앙대의 학생자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재경 중앙대 답없다. 망했다. 요즘 이렇게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지난 학기 총학생회의 모습도 그렇고. 이번 선거 문제도 그렇고... 총학생회면 가장 큰 기구인데 여러모로 잘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전 다른 학교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이 교지도 그렇지만. 아직 학생자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작게나마 뭉쳐있는 자치 단위들도 많으니까요. 적어도 문제의식이 있으면 저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직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그럼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하세요?
김재경 저는 지금이 고비라고 봐요.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자치의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부가 만든 틀 안에서 학생들에게 면담결과만 전달하는 게 자치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학생의 영역을 확장하는 실천적인 방향으로 간다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중앙문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재경 전 이제 4학년이 되고, 중앙대에 있는 시간이 딱 1년밖에 안 남았어요. 저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는 게 필요해요. 저는 지금 우리가 새터 가고, 과 사람들, 교수님 만나고 하는 게 다 학생자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우리가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고 봐요. 그런데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면 갈수록 줄어들 거예요.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기보다 멈춰서 돌이켜봤으면 해요. 학생자치에 의문이 든다면 직접 참여해서 만들어 봤으면 한다는 말도 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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