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저는 지금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유인문캠프, 이름만 들어선 무슨 단체인지 잘 모르겠다. 슬로건인 “자기교육운동 해방의 인문학”을 봐도 잘 와닿지 않는다. 자유인문캠프(이하 '자캠')는 구조조정 등 중앙대에 불어 닥친 대학기업화의 맥락에서 탄생했다. 다시 말해 교육으로 운동하는 단체다. 잠망경은 자캠 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독립저널이다. 오프라인 신문과 온라인 홈페이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학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최근에는 영상 매체인 잠망경TV도 개국했다. 09학번, 강남규 〈잠망경〉 편집장은 자신을 두산 1세대라고 소개했다. 자유인문캠프가 탄생한 맥락을 통해 당시 중앙대 상황을 알아보고 자치 현실에 대한 그의 분석을 들어봤다.
"자기교육운동, 해방의 인문학"
중앙문화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강남규 정치외교학과 09학번이고요, 지금 자유인문캠프 기획단으로 있으면서 자캠에서 내는 독립저널 잠망경에서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앙문화 자유인문캠프 소개 좀 부탁드려요.
강남규 2008년 두산재단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이런저런 종류의 대학개악을 시도했어요.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던 진중권 교수가 겸임교수보직에서 계약 해지를 당하고, 인문·예술·사회과학 학과들이 취업률이 안된다는 이유로 통폐합되는 등의 일들이 2010년까지 이어졌어요. 그리고 2010년 이후에는 학생들이 재단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한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생겼죠. 그런 상황에서 몇몇 대학원생과 학부생들이 중앙대 안에서의 기업화와의 싸움은 장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자유인문캠프를 만들게 됐어요. 자캠은 학내 단위 간, 학내외를 잇는 네트워크 역할을 지향하고 있어요.
중앙문화 자캠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강남규 2010년 가을에 자유인문캠프가 처음 결성돼서 ‘아주 근본적인 세 가지 물음’을 주제로 무료 강연을 연 것을 시작으로 여름, 겨울마다 공개강연과 연속 강좌를 개설하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상영회 <다큐나이트>나 여러 단위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라운드 테이블> 같은 행사를 비정기적으로 열기도 해요.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뒤풀이를 나누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넓혀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자캠 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 겨울에는 〈잠망경〉을 창간했어요. 그때는 〈중앙문화〉가 예산 탄압 이후에 빈사 상태에 있던 시절이고, 〈중대신문〉은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학교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고 있었죠. 그래서 대항적인 독립언론으로 만든 게〈잠망경〉입니다. 지금까지 정기호는 총 13호, 통권호로는 16호까지 발간했어요.
중앙문화 자캠 기획단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강남규 다양해요. 2010년 만들어질 때부터 참여했던 대학원생들도 아직 함께하고 있고요. 저는 군대에 다녀와서 2013년부터 참여했어요. 최근에는 자캠 사업에 참여했던 중앙대 학생 중에서 저희와 뜻이 맞아서 새로 들어오신 분들도 있어요.
중앙문화 자캠이 ‘학내외를 잇는 네트워크’ 역할을 지향한다고 하셨는데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강남규 저희는 대학문제가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학의 문제도 결국 사회적인 맥락 위에 있다고 봐서 다양한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사회를 바꾸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역사 교과서, 청년 일자리, 세대론을 주제로 강연을 열었어요. 이런 이슈들도 깊이 들어가보면 대학이 가진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이 항상 있고요.
또 이런 사업을 할 때마다 행사 시작 전에 저희가 왜 탄생했는가를 소개해요. 그러면 가령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강연회를 오신 분들에게 자캠의 문제의식을 알릴 수 있잖아요. 세월호를 매개로 해서 대학의 문제까지 알리는 거죠. 이런 장이 있어서 대화가 생기고 네트워크의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니면 저희가 어디가서 누구한테 ‘대학에 이런 문제가 있다’ 하고 말하겠어요.
중앙문화 자캠은 ‘자기교육운동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데, 교육운동이 뭔가요?
강남규 저는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들에게 막막함을 풀어갈 단초가 될 다양한 기획들을 제공하는 것이 자캠의 운동방법인 것 같아요.
중앙문화 특히 중앙대에서 교육운동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강남규 중앙대는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하면서 다양한 학문 단위를 없앤다거나, 구성원 간의 경쟁을 심화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있잖아요. 자캠도 그 맥락에서 생겨났구요.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해요. 자캠의 강의에는 학점도 출석도 없어요. 그러니 평가기준에 수업을 맞출 필요도 없죠. 기획단이 배우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제안을 드리면 선생님들이 직접 수업을 설계하세요. 이런 시스템적인 부분에서부터 지금 대학교육과 구분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대학 강연만 들었던 사람들은 자캠에 와서 “제가 대학 다니면서 얻은 것보다 겨울방학 6주 동안 더 많이 배웠어요”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이런 강연,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하시는 거죠. 현재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교육의 가능성을 자유인문캠프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자유인문캠프의 이런 활동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세요?
강남규 자캠은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동아리는 회원제라는 벽이 있고. 학생회는 집행부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고, 다른 운동 단체들은 굉장히 빡셀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자캠같은 경우는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죠. 부담없이 이런저런 행사에 자주 찾아오는 (저희의 표현대로라면) ‘자캠의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기존의 단체들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자캠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캠 행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종의 ‘주체화’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죠. 혼자일 때보다 옆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목소리 내는 게 더 쉬워지잖아요. 자캠이 그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전통의 단절이 자치의 실력을 잃게 만들었죠”
중앙문화 그럼 지금 입학하시고 6년 정도 지났잖아요. 체감하는 학내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강남규 제가 2009년에 입학하고 4월인가에 처음 봤던 플랑을 아직도 기억해요. ‘내창이 형 보고 싶어요’라고 써있어서 내창이 형이 누군가 했더니 중앙대 이내창 열사였어요. 근데 그걸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걸었어요. 비권 총학도 중앙대 열사를 추모하면서 친근하게 내창이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학생자치의 역사가 계승되고 있던거죠.
진중권 교수가 해임됐을 때는 깃발을 들고 100명, 200명 학생들이 다 같이 본관에 가서 총장면담을 요구했어요. 그게 당시에는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또 학생총회도 매년 3~4월이면 당연히 열었어요. 지금은 총학생회 선거공약이 학생총회에요. ‘성사시킨다’도 아니고 ‘개회한다’를 내거는 수준이죠.
중앙문화 왜 그런 변화가 생겼을까요? 단순히 시대적인 변화라기에는 고려대, 동국대, 청주대 등 다른 대학들에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왜 중앙대만 이렇게 급격하게 변했을까요?
강남규 저는 구조조정이 가져온 단절의 시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 적게는 10년부터 3~40년까지 이어지던 학과공동체가 붕괴됐잖아요. 단과대가 합쳐지고 학과가 통폐합되고 하면서 완전히 1대로 돌아가는 학생회도 많았어요. 기존의 실력과 노하우가 계승되기 어려워지는 거죠. 또 하나는 대기업 재단이 주는 희망고문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우리가 재단만 믿고 따르면 상황이 더 나아질거라는 기대가 작용하면서 자치의 실력이 무너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역량을 잃어버리고 다시 쌓으려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거죠.
중앙문화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강남규 요즘 학생단체는 노하우가 계승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기록이나 관례도 단절적이죠. 멤버십의 지속기간이 1〜 2년 정도잖아요. 근데 자캠은 지금 5년째 됐고, 대학원생들도 있기 때문에 지속기간이 훨씬 긴 편이죠. 그동안 실무적인 노하우를 꾸준히 저장해왔고 여러 제반 배경지식들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요. 학내 조직과 함께 행사를 하면서나 잠망경을 통해 제시하면서 학생사회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답답하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강남규 공간 문제가 가장 커요. 회의 장소나 자료를 보관한다거나 그런 문제도 있지만 어떤 단체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구성원들끼리 일상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희는 대학 안에 공간이 없고 이런저런 공간들을 전전한다거나 하기 때문에 결속력이 쉽게 만들어지기 어렵죠.
또 학교에서 저희를 외부단체로 규정하기 때문에 행사 포스터 도장을 찍어주지 않거나, 강의실을 잘 빌려주지 않거나 하는 일이 많아요. 잠망경도 취재를 하러가면 ‘인터뷰를 하거나 자료를 줄 의무가 없다’ 이렇게 나오죠. 그런 문전박대 당하는 일이 일상이에요.
중앙문화 자캠은 자치조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배후세력이 있냐는 말도 나오는 걸로 알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남규 잠망경이 처음 나왔을 때 ‘대학생이 이런 신문을 만들 리가 없다’, ‘저건 백퍼센트 배후세력이 도와줘서 만든 거다’ 이런 얘기가 있긴 했어요. 배후가 있면 돈도 주고 좋죠. 근데 아쉽게도 저희가 하나하나 인디자인(프로그램) 독학하면서 만든 거예요. 저희가 특별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공공적인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활동하는데 어려움도 많고, 중앙대 자치 상황도 녹록치 않아 보이는데요. 지금 중앙대에서 학생자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세요?
강남규 네. 의외로 맞다고 생각해요. 메르스 사건 때 느낀 건데 이제 사람들이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 어렴풋한 상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봐요. 위기상황에서조차 총학생회는 계속 학교 입장을 전달하고 학교는 학생의 말을 듣지않는 모습을 본거죠. 예전에는 운동권 프레임이 적극적인 활동을 못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사람들이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운동이 낡은 구습으로 취급되는 시절을 지나서 지금은 오히려 본 적이 없어서 신선하게 느끼나봐요.
중앙문화 그럼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강남규 운동권이라는 딱지가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저는 지금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현 상황에서는 학생회장이 면담을 요구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대학본부는 행정과 재정권력을 쥐고 있고 학칙도 만들 수 있고. 징계도 줄 수 있는 반면에 학생회장은 아무리 대표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위임받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빈껍데기나 마찬가지죠. 지금 학교는 학생회장을 무시했을 때 닥치는 실질적인 두려움이 없어요. 왜냐면 학생회가 운동을 무서워하고, 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출마하니까요. 그럼 학생회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운동이 웃긴 표현일 수 있지만 단순히 빨간 머리끈 두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모으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로부터 오는 권력을 얻는 거예요. 그 권력을 통해서 학생들의 권리를 학교에 요구하는거죠.
중앙문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강남규 기성용이 물의를 일으켰던 말이 있잖아요.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저는 이 말이 대학에서 유효하다고 봐요. 왜냐면 대학에는 지금 뛰고 있는 선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뭔가 기획하고 실행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부족해요. 이런 상황에서 학생자치가 답답하면 본인이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대학도 하나의 작은 사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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