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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79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문화

기억하고 낙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읽는 이야기, <소녀 연예인 이보나>

by 중앙문화 2020. 12. 24.

2020 가을겨울, 79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황가현 (한양대학교 학부생)

 

  가끔, 거리 위의 모든 사람이 각자분()의 이야기를 갖고 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곤 합니다. 우리는 나만의 이야기를 친구와, 가족과, 남과 나눕니다. 그 속에서 서로의 씨실과 날실이 되어 하나의 무늬를 만들기도 하지요. 이야기는 이렇게 기억되고, 살찌워지고, 또 보존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철저히 수납되고 배제되어온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게 존재도 모른 채 숨겨져 있던 이야기 중 몇몇은 풍화되어 사라지기도 할 것입니다. 오래 회자되고 사랑받는 이야기는 주류가 되고, 제도를 형성하며 더욱 견고해질 테고요. 어떤 이야기들에 시간은 서로 다르게 작용합니다. , 우리는 기억됨의 기회조차 불공평한 세상에서 이야기를 듣고,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토록 혐오와 배제가 쉬워진 사회의 한 가운데, 희소한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가 더더욱 소중한 이유입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장편 <줄리아나 도쿄> 2019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한정현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입니다. 전작에서 모국어를 잃은 여성 한주와 동성애자 유키노를 데이트 폭력 피해자라는 공통점으로 묶고, 동아시아의 역사적 비극과 현대의 잔흔을 아울러 드러냈던 것처럼, <소녀 연예인 이보나> 또한 개인을 통해 사회 전체를 조망합니다. 조선 시대부터 21세기 대한민국, 미국의 뉴욕과 일본의 작은 섬을 넘나들면서 이곳저곳에 투명하게 붙어있던 삶에 이야기라는 숨을 불어넣습니다.

©《별건곤》제 11호 '기괴천만·중성남성의 떼'

 

  전체 여덟 편 중 여섯 편의 단편은 커다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점인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조선 후기 만신[1]이었던 유순옥에서 시작해1980년대의 제인까지 이어진, 무려 4대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곧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폭력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유순옥은 만신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뒤를 이어 역시 만신이 된 희는 자식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희의 자식인 주희와 주희의 조카 제인은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여성이라고 여겼기에 죽거나 수많은 아픔을 겪습니다. 이후 소설은 서사의 방향을 전방위로 확장하고, 이 가족과 관계 맺은 사람들로 초점을 옮겨 갑니다. 

  「오늘의 일기예보」는 트랜스젠더 제인을 사랑했던 한서와 그의 조카 보나가 남겨진 사람으로 현대의 일상을 영위해가는 방식을, 「생물학적 제인」은 소녀 연예인 주희의 팬이었던 미군의 손녀 메리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제니가 생모 제인을 찾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권력에 의한 상흔의 연속성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과학 하는 마음」은 보나의 친구이자 연구자인 경아가 조선적 재일 연인 사츠케와 만들어갈 미래를,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은 지방 출신 경아가 고향의 친구들과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는 하룻밤을,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메리와 엄마 선영을 통해 조선시대 동성 연인 경준 안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괴수 아키코」와 「대만호텔」은 앞의 세계관과 이어지지 않는 상이한 현대사를 다룹니다.

  처음엔 같은 인물이 또 등장하고,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이 나타나기 때문에 꽤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재회에 가깝습니다. 작가가 한 캐릭터를 단순한 장치가 아닌 진실한 인격으로 마주하고 있음을 느낄 기회이자, 역사 속 개체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n번째 만남인 거죠.

©unsplash

 

조명받지 않은 사랑, 흔치 않은 고통을 말하다 

  제 방에는 멋진 영화 포스터 세 장이 걸려있어요. 모두 퀴어 장르로 분류되는 영화입니다. 동성 커플이 손을 잡거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죠. 그런데 이를 본 사람마다 모두 짠 듯이 게이 영화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물었어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여성과 남성이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면 헤테로 영화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묻지 않을 테니까요. 그저 로맨스 장르의 팬이라고 여기거나 아예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익숙한 서사의 스펙트럼의 협소함에 대해서, 닳고 닳은 이야기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저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보고 싶었습니다. 흔히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줬습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비롯한 여섯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소설은 서로 겹치는 인물이 거의 없고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도 다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성 요소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류 사회에 의해 호명되지 않는 사람. 이상하다고 치부되며 증명을 요구받는 사람. 사회가 정한 이분법을 거부하고 경계선에서 서성이는 사람. 그런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생물학적 제인」 제목의 제인 제니를 낳아준 기지촌 여성의 이름입니다.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 이 죽으며 딸에게 생물학적 어머니를 찾아보라고 일렀죠. 제니가 용산에서 알게 된 역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나 이혼한 여자와 같이 한국 사회가 정한 여성상에서 벗어난 이들이 기지촌으로 유입됐다는 것, 포주가 여성에게 손님을 데려오라며 건넨 세코날, 이 기억을 외면해온  한국 사회 그런데 제니는 제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와중에 자꾸만 자신과 존을 떠올립니다. 혼혈이자 트랜스젠더이자 여자를 사랑하는 본인이 느꼈던 외로움과 짐바브웨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에게서 보였던 어떤 간절함이 겹쳐진 것이죠.    

 

왜 나비를 좋아해요, 아버지?

 나비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름다우니까. 자신의 아름다움을 증명하지 않고도 아름다우니까. -168p

 

  제인은 존에게 석주명이라는 나비 박사를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존은 죽을 때까지 나비 도감을 읽으며 나비로 환생하고 싶어 했고요. 평생 무해한 시민임을 증명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싸워야 했던 존은 늘 절박함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비는 그저 아름다운 날개로 자유롭게 날기만 하면 그만이었지요. 그러니까 존이 바랐던 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기득권의 위치가 아니라, 나비와 같은 초월적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외면받아온 소수자를 향한 인력(引力)과 애정은 작품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작가의 특징입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 인물 하나하나가 사회적 특수성을 띠고 촘촘히 존재하고 있어요. 그렇게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사이 내 안의 보편이라는 기준에는 차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름과 인생 모두 내 손으로 만드는 삶 

  태어나자마자 받는 선물 중 가장 오래 써야 하는 것. 나의 것 중에 가장 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것. 바로 이름입니다. 두서너 글자에 이름의 주인이 살길 바라는 인생을 담아 건네지만, 어쨌든 사용하는 사람과 짓는 사람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지요. 그래서인지 이름은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빗대어지곤 합니다. 온전히 타의로 형성된 글자를 평생 내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고 지내야 하니까요. , 세상이 지어준 이름 대신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나를 호명하는 행위는 곧 저항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르지 않고, 원하는 삶의 지도를 그리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소설에도 부여받은 이름을 거부하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주희의 조카, 제인의 등본상 이름은 재성입니다. 생물학도인 그는 금발 가발을 썼고 국비 유학생으로 소련에서 성소수자를 공부할 계획이었습니다. 가끔 미군 클럽에서 반짝이는 원피스를 입고 노래를 불렀지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제인은 학생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의 오발탄에 맞습니다. 명석한 서울대학교 학생이 허무하게 생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제인이 이상 행동을 일삼던 금발 여장의 명문대생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조용해졌지요.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속 탐정 소설 작가 경준의 본명은 경아, 국민 등록증상 여성이기 때문에 떳떳한 작가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경준을 사랑하는 친구이자 제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산모의 건강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안나 서. 수양 아버지는 그를 화련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안나는 어디서든 제중원 초대 간호원의 정신을 받아 지은 이름, 안나 서라고 자신을 소개했어요. 이름 모를 어머니는 안나를 출산하고 죽기 직전, 이 아이에게 이름을 주세요. 이름을 불러주세요.라는 부탁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름이 곧 삶의 방향을 정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을 위해 진실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이 정한 이름을 말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인을 사랑했던 한서는 클럽에서 노래하는 그를 보고 나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나라고 자문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했으니까요.

  이름을 스스로 짓는 이. 다른 말로 하면 사회가 지어준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이. 이들 앞에 펼쳐진 길이 평탄하기를 기대할 순 없습니다. 메리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 다르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비극을 위한 비극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가끔 소수자를 재현하는 작품이 오히려 납작하고 타자화된 묘사에 그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그 특수성을 대표하는 인물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한정현 작가는 그런 함정을 경계하며 주인공의 행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합니다. 다채롭고 성실한 재현을 통해 고정관념에 싸여있던 독자를 놀라게 하지요. 제인은 누구보다 당당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경준과 안나는 누구보다 강한 이타심과 삶에 대한 애착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듯이 말이에요. 삶의 질곡이 어쩔 수 없는 슬픔을 안기더라도 제자리로 찾아가는 길을 터주고 응원하는 것. 엔딩의 명암과 별개로, 몰입할 수 있는 독서를 돕는 창작자의 태도이자 현실과 가상의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shutterstock

 

응시를 통한 낙관, 낙관으로 그리는 미래 

 

응시하다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보다.

낙관하다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다.

 

  ‘낙관. 참 속 편한 단어처럼 들립니다. 근거 없는 낙관만큼 무모한 마음가짐도 없지 않나요? 그러나 <소녀 연예인 이보나>가 끈질기게 독자에게 요구하는 바 또한 낙관하자는 것입니다. 소설 속 인물은 차가운 마음 앞에 상처받고 무너지고도 미래를 그리고 희망을 찾지요. 그런데, 이들 모두가 낙관(樂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응시(凝視)입니다. 기쁘게 보기 위해서는 똑바로 봐야 한다는 뜻일까요.

  「과학 하는 마음」 속 사츠케와 경아는 자그마치 10년을 함께한 연인입니다. 그러나 함께 있는 미래는 결코 상상하지 않습니다. 조선적(朝鮮籍) 재일 사츠케는 한국 입국이 불가능하니, 계획을 세우며 생겨날 상처와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지요. 서로를 사랑하지만, 암묵적 합의로 외면을 택한 겁니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사츠케의 어머니(조선적 재일) 결혼에 관해 묻자, 겨우 유지되던 아슬아슬한 침묵은 결국 깨지고 맙니다. 경아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10년간 사츠케와 나 사이에는 금기어가 몇 개 있었다. 우리, 미래, 사랑, 결혼, 국적.  10년을 그의 어머니가 한 번에 뛰어넘어 준 거였다. 그러니까 역시 무언가를 뛰어넘는 건 오롯이 그러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194p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란 명령이 아닌 영혼의 무게, 즉 사랑에서 생겨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자 하는 마음인 의지는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뜻이지요.그래서 괴로운 현실과의 눈 맞춤은 자포자기가 아닌, 낙관과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유일한 열쇠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물학적 제인」의 국가 폭력 연구자 메리는 기지촌에서 일했던 캔디를 인터뷰하며 의아함을 느낍니다. 캔디는 당시 함께 살았던 미국 병사에게 낙태를 종용받으며 맞기까지 했는데, 여전히 그를 사랑했던 연인으로 추억하기 때문입니다. 메리는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운 위안부의 착각으로 여겼지요. 그런데 메리는 용산의 전쟁기념관에 새겨진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고 감격합니다. 순간 정의와 역사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닫게 된 그는 늦게나마 캔디의 행복을 그저 응시해보겠다고 말합니다. 덕지덕지 붙여진 수식어를 제거한 뒤 남은 캔디라는 사람의 행복을 말입니다. 이처럼 응시는 바깥으로 향하는 동시에 내면을 날카롭게 관철하기 때문에 더욱더 괴로운 작업입니다. 

  눈 감고 모른 척하고 싶을 만큼 비극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재앙과 개인적 차원의 절망은 유리되지 않기 때문에 비관은 점점 깊어집니다. 상실과 부조리를 직면하기란 분명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비극적인 역사를 이야기로 승화시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작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더러울 정도로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지요. 어쩌면 먼지 쌓인 이야기를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응시의 일종인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 핍박받는 주인공들이 응시를 통해 자기의 사랑으로 나아간다면, 현시점에서 독자인 우리에게 응시란 잊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의지이자 과거를 초월할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unsplash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를 변화시킨다 

  책을 덮은 후 한동안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곱씹었습니다. 일단 알지 못했던(혹은 모른 척했던) 역사가 이리도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가 아닌, 그런 사람들의 삶이 분명하게 존재했다로 듣는 이야기에는 더 강한 울림이 있었어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어제가 떠올라 얼굴이 홧홧해졌습니다. 동시에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성실히 연구해온 학자와 소설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통해 알게 된 인물의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 책 뒤편에 나와 있는 참고서적을 하나하나 읽어나갔고, 그렇게 제 세계는 또다시 확장되었습니다.

  이처럼, 연구와 창작의 과정에서 탄생했으나 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는 저 같은 독자의 마음을 한 움큼씩 쥐고 몸을 점점 불려갑니다. 누군가의 뇌리에 묵직하게 머무르는 동시에 더욱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을 준비를 하면서요.

  얼마 전 성전환 군인이 강제 전역을 당했을 때 우리 사회는 마치 제인의 죽음을 묵인했던 그들처럼 조용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동성 부부는 서로를 배우자가 아닌 기타 동거인으로 표시할 수밖에 없어 많은 부부가 착잡함을 느꼈고요. 전태일이 죽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고, 남겨진 사람들의 지연된 슬픔은 지겹다는 눈총을 받지요. 수도 없이 그어진 경계에 베이고 상처받은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짙게 피어오르고 있을 것입니다.

  윤리와 정의는 거창한 마음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더 많은 이야기를 기억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남은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흔적은 오랫동안 형태를 바꾸며 존재할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는 지금, 현재,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나의 오늘은 어찌 됐든 무탈합니다. 그래서 값싼 연민을 베풀고 이 정도면 착한 나를 뿌듯해하는 기만을 저지를까 봐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이 두려움으로, 오늘도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우리 앞에 꺼내놓은 소설가에 감사하며 책을 펼칩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당연한 사실은 없음을, 소위 말하는 정상성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조금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대신 어떤  이후에는 이전과 완벽하게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치 있을 것입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가 여러분께 그런 기회가, 혹은 그러한 경험의 시작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1] 여자 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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