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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79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사회

‘공짜 밥’ 기본소득을 논하다

by 중앙문화 2020. 12. 24.

2020 가을겨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편집위원 문민기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민생경제 역시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었다. 병들어가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치권은 앞다퉈 다양한 처방전을 내놓았다. 그중 전주시 지역경제 지원정책[각주:1]이 촉발한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타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이를 본떠 지역 화폐와 현금을 비롯한 재난 소득의 도입을 고민하고 나섰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재난지원금이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 수준의 무조건적 소득을 보장하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경제 정책이었다.

 

  한 차례의 재난지원금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의 장기화에 따라 경기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이에 정치권은 ‘n차 재난지원금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진보와 보수는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집권여당과 진보정당은 물론 보수야당까지 앞서 신규 지원 얘기를 꺼낼 만큼[각주:2] 정치권은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에 거듭 공감했다. 그렇게 2, 3차 재난지원금이 논의되고 지급되었다.

 

  2020년 한해를 뜨겁게 달군 재난지원금’, 여기서 집중해야 할 본질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전 국민에게 공짜 밥이 주어진 전례 없는 경험은 우리에게 기본소득의 정체를 확실히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재난지원금에 대한 여야의 합치된 태도는 그 속에 숨겨진 기본소득 논의의 시의성을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 글에서는 재난지원금이 촉발시킨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과 그 논의의 필요성을 살펴보겠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이 있듯이, 시류를 잘 만나 급물살을 탄 기본소득 논의를 짚어보는 것으로 미래에 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가늠자로 삼을 수 있다.

▲ 긴급재난지원금 현장 신청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기본소득의 정의

  먼저 기본소득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지난 수백 년간의 정치·경제·철학적 담화를 바탕으로 쌓아올려진 유서 깊은 개념이다. 멀게는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수당을 나눠준 고대 아테네에서, 가깝게는 지대 소득에서 국가 기금을 거둬 노년층과 성년에 기본소득을 줄 것을 제안한 토머스 페인의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각주:3] 이렇게 시대를 관통하는 기본소득의 공통된 목표는 사회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 재원은 토지, 자연물과 같은 공유 자원에서 생산된 공유부()로 마련되며, 그 공유부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되돌아가는 것이 기본소득의 정신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흔히 회자되는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지칭한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각주:4]에 따르면 보편적 기본소득이란 자산심사나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정기적인 현금이전으로, 수백 년간 계승되어온 기본소득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다. 즉 개인의 경제적 배경이나 수령 의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가가 일정한 현금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의 구성 요소인 무조건성’, ‘보편성’, 그리고 개별성의 부분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차별된다.[각주:5]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가 제시한 기준에 의하면 우리가 지난봄에 받은 1차 재난지원금, 그리고 2·3차에 걸쳐 산정된 추가 재난지원금은 엄밀히 말해 보편적 기본소득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1차 재난지원금은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 각 가구의 세대주에게 지급되었으므로 개별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 2, 3차 재난지원금 역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고용취약계층 등에 선별적으로 지급되었으므로 무조건성과 보편성 원칙과 어긋난다. 그리고 재난지원금 정책은 정치권의 논의에 따라 수차례로 나뉘어 단발적으로 시행되었기에 정기성이라는 대전제에 위배된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은 재난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공유부를 환원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의 정신을 공유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재난지원금 정책은 일반 대중에게 기본소득의 정체를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전에도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배당 등의 사회수당 정책을 가지고 기본소득 논의를 이끌려는 노력[각주:6]이 있었으나, 이만큼 전국적인 규모에서 기본소득과 근접한 시도가 이뤄진 적은 없다. 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으로서의 정확한 개념적 요건은 만족시키지 못할지라도, 마침내 국내에서 적극적인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아직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나라로부터 공짜 밥을 받아간다는 생각은 단순한 이질감을 넘어 불편하기까지 하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선 조세 구조, 행정 체계의 상당한 개조가 요구되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아직 시기상조인 정책으로 비춰지고 있어 이를 두고 엇갈린 입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비판과 이에 대한 재반박을 조명해 보았다.

퇴색되는 노동, 누가 힘들게 일하고 싶어 할까

  기본소득을 논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묻게 되는 질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힘겹게 노동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지급으로 모든 이에게 적절한 삶을 보장할 만큼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더이상 전처럼 열심히 일할 이유를 잃게 된다. 사회 전반의 노동 의욕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수십 년 전 미국의 가족부조계획(Family Assistance Plan)’ 도입 시도에서 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자녀가 있는 모든 가구에 연 1600달러를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이 정책은 다수 미국인의 지지를 받으며 1972년 하원을 통과했다. 하지만 개인의 근로 노력과 연계되지 않은 정부의 지원은 도덕적 가치를 파괴하며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주장[각주:7]이 대두되었고, 상원에서 부결되며 무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음의 소득세[각주:8] 관련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당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정부는 시범사업까지 벌였다. 하지만 사업 참여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지역 및 인종에 따라 3~8%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며[각주:9] 이 또한 노동 의욕 저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각주:10]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회

  이처럼 노동 의욕 저하는 기본소득 논의에 있어 아직 중대한 해결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인간이 노동을 아예 못하게 될 수도 있는 미래를 더 걱정해야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가 소위 ‘4차 산업혁명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을 필두로 한 새 산업의 바람은 기존 경제 체제에 커다란 균열을 내고 있다. 더이상 근면한 인간 노동이 안정적인 소득과 생활을 보증하지 않고, 새로운 산업과 직종이 곧 인간 고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빠른 속도로 대체되면서 생산 과정의 인간 소외가 두드러지고, 일자리 창출에 쏠려있던 전통적 복지 정책은 그 의미가 퇴색된다.

  여기서 기본소득은 다가올 인공지능 경제에서 인간 존엄을 지킬 최후의 보루로 제시된다. 앞서 언급된 고대 아테네의 시민 수당 모델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노예 계급이 생산 활동을 전담하며 공유부를 창출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은 공유부의 배당을 받으며 문화생활, 그리고 정치 활동에 정진할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된 미래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생산한 공유부에 대한 배당으로 기본소득을 지급받고, 이 기본소득으로 일정량의 구매력과 생활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의 기본소득은 마크 주커버그, 빌 게이츠, 그리고 일론 머스크와 같은 미래 산업 전문가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기본소득은 공산주의다

▲ 무소속 홍준표 의원이 기본소득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 .  출처 :  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기본소득이 공산주의적이라는 주장은 특히 보수 진영에서 꾸준히 제시되고 있는 비판이다. 지난 6월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당시 정치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주의 배급 제도를 실시하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보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입각해 사유재산과 경쟁, 개인의 노력을 핵심가치로 삼는 시장경제를 중시한다. 반면, 사회 전반의 부를 전용하여 근로 의사가 없고 노력을 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공평하게 나눠주는 기본소득은, 마치 재산몰수와 배급제를 통해 평등을 실천하고자 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연상시킨다.

  일부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마르크스 이론에 주목하며, 기본소득의 뿌리를 공산주의에서 찾는다. 기본소득의 이론체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벨기에 경제학자 판 파레이스 역시 그의 저서 공산주의로의 자본주의적 길(A Capitalist Road to Communism)에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사회주의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기본소득을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각주:11]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소득이 기본소득으로 전환되면 마르크스 이론에 따른 '필요에 따른 분배'가 가능한 공산주의 사회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본주의다

  반면 최근에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보완하고 두텁게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논의가 가능한 것은 점차 자본주의의 가치창출 방식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12] 기존 산업사회에서 임금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에 따라 제공되었다. 노동은 곧 소득을 의미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학자 앙드레 고르는 경제이성비판에서 사회의 생산력이 점차 발전하며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는데 전보다 더 적은 노동이 요구되고, 전처럼 노동의 양에 따라 소득이 결정되면 임금은 당연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지탱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따라서 노동이 소득을 보장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균형을 맞추기 위한 보완책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한편 보편적 기본소득이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발판을 마련해 줌으로써 시장과 사회의 총체적인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기본소득이라는 안전망을 바탕으로 노동자는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거나 높은 급여를 협상할 수 있고, 학업 지속을 통한 전문지식 취득으로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등 자신의 노동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일부 국가들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감소가 심화하고 있는데, 보편적 기본소득은 청년층의 경제적 불안 요소를 덜어줌으로써 이들의 경제활동 진출과 가정 형성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잠재성장률을 확충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각주:13]

 

정확한 기본소득의 정의가 전제돼야

  하지만 기본소득의 가장 큰 맹점은 그 개념적 정의가 명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여러 나라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한 전 세계 차원의 일관적인 기준은 확립된 바가 없다. 앞서 우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가 제시한 보편적 기본소득의 정의와 요건을 살펴보았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금민 이사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의 개념 정의는 다른 제도와 비교할 때의 유형적 차이만을 드러내 줄 뿐이다. “기본소득의 원천은 무엇이며, 지급수준은 어느 정도이어야 하며, 지급주체와 수령권자는 누구인가처럼 정책의 결정과 판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이 기존의 기본소득 정의에서 전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각주:14] 현실이 이렇다 보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저마다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하는 복지정책들이 각 지자체에서 난립하는 추세다.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정책 결정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개념 남용과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실전으로: 해외 사례

  기본소득의 효용성과 정체성에 대해 첨예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와중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각국의 상황을 고려한 각양각색의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기본소득의 실과 허를 직접 검증해보자는 움직임이다. 1974년 실행된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민컴 프로젝트(The MINCOME Project)'는 최초의 기본소득 실험으로 알려져 있다. 민컴 프로젝트에 따라 무작위로 선정된 관내 1,300개 가구를 대상으로 가구 크기에 비례한 기본소득이 3년간 지급됐다.[각주:15] 도중에 지방정부의 집권당이 교체되며 실험은 중단됐지만, 이후 이를 연구한 논문들에 따르면 민컴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의미 있는 성과를 보였다. 청소년층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늘었고, 정신질환과 외상으로 인한 입원율은 떨어졌다. 여성은 출산 직후 곧바로 직장으로 돌아가기보다 기본소득을 이용해 산후 휴가를 늘렸다. 또한 노동 시간 총량은 이전과 비교해 약 1~3% 가량밖에 감소하지 않아 일각에서 우려한 노동 의욕 저하는 불식되었다.[각주:16]

 

 

  미국 알래스카 주는 주 헌법에 따라 알래스카영구기금(APF)’를 설치해 1982년부터 주민들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생산된 석유와 천연자원의 수익으로 재원이 마련되어, 현재는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모든 주민에게 약 1천 달러가량의 배당이 주어진다. 이는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발판으로 작용하며 주내 빈곤율과 소득 불평등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foonote]<월간 옥이네>, “캐나다 '민컴'부터 이재명의 '청년배당'까지”, 2020.10.[/footnote]

 

  그러나 기본소득 실험이 항상 성공으로 이어진 것만은 아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부터 약 2년간 25~58세의 실업자 2천 명을 임의 선정해, 아무런 제한이나 조건 없이 1인당 매월 560유로를 지급하는 기본소득보장제를 실험했다. 당시 높은 실업률을 꺾고 고용을 촉진하려는 취지에서 실험이 진행됐으나, 전반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실험 첫해엔 수급자 그룹과 비수급자 그룹에서 각각 18%가 근로활동에 나섰다. 실험 2년차 때는 수급자 27%가 취업했다. 비수급자보다 불과 2%포인트 높았다. 같은 기간 기본소득은 수급자의 취업일수를 엿새 늘리는 데 그쳤다.[각주:17] 기본소득보장제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정부는 실업자들의 취업과 재정적 인센티브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각주:18]

 

 

 

기본소득을 실전으로

▲ 충북도의회 정책복지위원회가 지난 9월 ‘청소년 기본소득 논의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월간 옥이네

 

  국내에서는 각 지자체가 앞다퉈 제시한 각종 수당 정책들이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는 중이다. 경기도와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최근 지자체 기본소득의 주요 사례로 자리 잡았다. 이는 언론에 수차례 대서특필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시민사회 역시 민간에서 흥미로운 기본소득 실험을 시도해 특기할 만한 결과를 내고 있다. 정부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인 기획으로 실험이 이뤄졌다는 점은 이들의 시도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충북 옥천군에서는 지역 시민단체와 사회적 기업이 기획한 '옥천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이 지난 9월부터 총 6주 동안 진행됐다. 안내중학교 전교생 18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총 2회에 걸친 2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 향수ok카드를 통해 지급받았다. 이 돈은 옥천군 내에서 사용처의 제한 없이 쓰일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담은 일지를 작성해야 했다.[각주:19] 이 실험은 충북도의회의 청소년 기본소득 논의를 위한 정책토론회'로 이어져 지역사회의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이후 기본소득 관련 조례로 입안될 수 있도록 지방정부 차원의 정책적 노력이 이어졌다.[각주:20]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는 지난 2017년 최저시급 6,470원 이상을 후원한 청년 177명 중 3명을 추첨해 6개월간 매달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띄어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문화생활이나 개인계발을 하는데 기본소득이 큰 도움이 됐다며, "기본소득이 지급되면서 하고 싶은 일이 늘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더 계획적으로 소비하게 됐다", "아르바이트 해서 학원비 내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난 후 공연도 볼 수 있어 삶이 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와 같은 긍정적인 후기를 남겼다.[각주:21]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고안되고 있는 사회보장 정책들이 기본소득으로 잘못 포장되고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예컨대 국내에서 기본소득 도입의 대표 사례라고 여겨지는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엄밀히 정의한다면 사회수당의 성격에 가깝다. 시민사회에서의 실험은 기본소득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을 모아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무조건성·보편성·개별성과 같은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기엔 민간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기본소득을 논하자

  기본소득은 갑툭튀하지 않았다. 수백 년간의 사회 발전에 덩달아 그에 대한 고찰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져 왔다. 그런데도 기본소득이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적어도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된 적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한편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우리가 알던 이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양상일 거란 예측이 점차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기존의 경제 문법과 자본주의가 더이상 전처럼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등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정치권에 기본소득 논의의 장이 무르익게 된 건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기본소득을 무조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할 것은 기본소득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따라서 이전보다 더욱 면밀한 대화가 공론장에서 이뤄져야 하겠다. 기본소득에 찬성한다면 심도 있는 토론으로 성공적인 도입 방안을 모색하면 되고, 반대한다면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하여 함께 대안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비록 당장은 의심과 혼란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기본소득의 논의 과정을 응원하고 잘 지켜보자.

 

  1. 전주시는 지난 3월 의결된 전주시 저소득 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조례에 따라 전국 최초로 관내 비정규직·실직자 5만여 명에게 1인당 527천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본문으로]
  2. <매일신문>, “국민의힘'3차 재난지원금' 급물살주도권 뺏긴 ”, 20.11.26. [본문으로]
  3. <주간경향>, “기본소득의 역사”, 19.05.06. [본문으로]
  4. 1986년 유럽의 경제학자·사회과학자들이 창립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에서 시작되어, 이후 세계 곳곳의 기본소득 학자들이 모인 국제 학술 단체. 기본소득 관련 연구와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다. [본문으로]
  5. 사회보험은 수혜자의 직접적인 기여를, 사회부조는 수혜자의 일정한 필요(실업, 빈곤 등), 사회수당은 수혜자가 특정 인구 집단(아동, 노인 등)에 소속됨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6. 이상협,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소득 제도에 관한 연구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 사회보장법연구, 2017. [본문으로]
  7. Philip Heyman, “The Family Assistance Plan: Abridged”,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1985. [본문으로]
  8. 정부가 최저소득보장 수준을 설정하고 여기에 미달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4인 가구 기준 최저소득 보장선이 연 3000만원이고 부의 소득세율이 50%일 때, 2000만원의 근로소득을 올린 가정이 있다고 하자. 정부는 보장선과의 차액 1000만원에 소득세율 50%를 곱한 500만원을 지급하게 된다. (출처: 한국경제) [본문으로]
  9. Robert A. Moffitt, “The Negative Income Tax: Would it Discourage Work?”, Monthly Labor Review, 1981. [본문으로]
  10. <한국경제>, “기본소득 실험 '근로의욕 저하' 해결 못해결국 EITC로 전환”, 20.10.12. [본문으로]
  11. <매일경제>, “[팩트체크] 재난기본소득이 공산주의 제도라고?”, 20.03.20. [본문으로]
  12. 백승호, 이승윤, “기본소득 논쟁 제대로 하기“, 한국사회정책, 2018. [본문으로]
  13. 보편적 기본소득 찬반논란과 시사점”, KIF 금융브리프, 2019. [본문으로]
  14.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연속기획 토론회, “기본소득의 정의와 기본소득 논쟁”, 20.07.07. [본문으로]
  15. Evelyn L. Forget, “The MINCOME Project and Ontario’s BIG Experiment”, LSEE Research on South Eastern Europe, 2018. [본문으로]
  16. Hum, D. and W. Simpson, “Income Maintenance, Work Effort, and the Canadian MINCOME Experiment”, A study prepared for the Economic Council of Canada. 1991. [본문으로]
  17. <한국경제>, “핀란드 정부 "기본소득 실험 효과 없었다"”, 20.05.08. [본문으로]
  18. Olin Kangas, “Evaluation of the Finnish Basic Income Experiment”, Ministry of Social Affairs and Health (Finland), 2020. [본문으로]
  19. <월간 옥이네>, “전교생에 20만원... 옥천에서 청소년 기본소득 첫 실험”, 2020.10. [본문으로]
  20. <청주일보>, “정책복지위, 청소년 기본소득 논의를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20.09.23. [본문으로]
  21. <경향신문>, “‘기본소득 실험 6개월청년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7.09.0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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