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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0 가을겨울, 79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디지털 플랫폼이 약속하는 미래, 과연 혁신일까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12. 23.

2020 가을겨울 <비가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서준상(중앙대학교 사회학 석사)

 

“대체로 플랫폼은 타자가 교류하는 텅 빈 장소로 자신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권력관계(politics)를 내재한다.”

- 닉 서르닉, 『플랫폼 자본주의』[각주:1]

 

  코로나19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감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확산되면서 비접촉·비대면 상호작용이 일상화되었고, 그에 따라 재택근무나 배달·택배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했다. 택배노동자의 잇따른 과로사와 배달노동자들의 불안전한 노동 환경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사회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슬로건 아래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기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지금이야말로 국가가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디지털 경제에 대한 낙관, 다른 한쪽에서는 그것이 미치는 파급력에 대해 우려 하는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현재 급변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

  이 글은 디지털 플랫폼이라고 하는, 우리에게 친숙한 주제이지만 그 내부 메커니즘을 제대로 탐색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 다룬다.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같은 모바일 앱을 사용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실태나 실제 노동 체험기를 다룬 글들은 많이 나와 있는 편이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을 비판하는 상당수의 논자들에게는 플랫폼 기술 논리를 탐색하는 시도보다는 기존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보호라는 맥락에서 관련 대안을 모색하려는 방어적 입장이 우세하다.[각주:2] 플랫폼 노동의 문제만으로 포착되지 않는 디지털 플랫폼의 특징과 여러 쟁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노동 일반의 문제에서 산업의 전반적인 구조로 전환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의 개념,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 배경, 플랫폼 노동의 특징과 쟁점을 중심으로 플랫폼에 관한 여러 이슈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디지털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플랫폼은 정거장이라는 뜻으로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언어이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의 맥락에서 플랫폼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서 플랫폼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각주:3] 의미한다. 이는 생산자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뿐인 기존의 단선적인 파이프라인 모델과 분명히 구별되는 지점이다.[각주:4] 가령 에어비앤비(Airbnb)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기존 숙박시설보다 싼 값에 방을 구하는 소비자의 욕구와 남는 방을 대여하려는 공급자의 욕구가 만나 새로운 거래 행위가 발생한다. 플랫폼이라는 매개가 없었다면 두 행위자의 욕구가 그저 잠재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들은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IT 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Google, Apple, Facebook, Amazon, GAFA로 통칭), 그리고 공유 경제를 표방하면서 등장한 스타트업 우버(Uber), 에어 비앤비 등의 성공은 이들이 채택한 플랫폼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플랫폼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효용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를 가리켜 ‘네트워크 효과’라고 하는데, 이제는 전국민적인 대화 수단이 된 카카오톡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카카오톡의 가치는 비단 그 메신저의 편의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그 메신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네트워크가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 우버의 선순환에 대한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의 냅킨 스케치는 플랫폼의 양면시장 모델과 네트워크 효과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운전자가 늘어나면 승객의 대기 시간이 줄어들고, 마찬가지로 운전 중단 시간이 줄어들어 더 낮은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수요가 확보되면 그만큼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출처: 마셜 밴 앨스타인·상지트 폴 초더 리·제프리 파커, 이현경 옮김, 2017, 『플랫폼 레볼루션』, 2장.)

  그런데 네트워크 효과는 그 재화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달려 있으므로 플랫폼은 더 많은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독점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이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인 네트워크를 확립하게 되면, 추가적인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있어 서버 비용 외에는 추가 비용을 거의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플랫폼 기업들이 검색엔진, 상거래, SNS 등 각각의 분야에서 시장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만 봐도 플랫폼의 파급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결국 플랫폼 모델은 ‘승자 독식의 원칙’이 강하게 관철되는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오늘날 플랫폼이 일상화된 데에는 디지털 기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몇 번의 클릭이나 터치만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을 가능케 함으로써 물리적인 시공간을 극도로 압축시켰다. 이러한 기술 발전이 플랫폼 이용자의 편익을 증대하는 측면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볼 때 플랫폼 기업의 독점 구조 하에서 소비자의 효용을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생산자를 더 궁핍하게 만들 가능성은 언제든지 상존한다. 소비자가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무상으로 데이터를 공급하는 행위가 독점적 플랫폼 기업의 부를 증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이 정말 ‘혁신’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21세기의 자본주의가 과거와 구별되는 지점은 데이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온라인상에서 이뤄짐에 따라 이용자의 막대한 데이터가 온라인 공간에 축적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터넷 공간에 무분별하게 펼쳐져 있는,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의 원료가 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이윤 창출의 목적에 맞게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여기서 플랫폼은 인터넷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용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외양을 취하면서,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독점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세계 전반적으로 글로벌 IT 기업들이 플랫폼의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개별 시장을 독점하는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오늘날 자본주의를 플랫폼 자본주의[각주:5]라고 명명하는 닉 서르닉의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비교적 긴 관점에서 볼 때 플랫폼 자본주의의 등장은 어쩌면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의 우위와 노동조건의 악화를 동반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산물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제조업 부문의 장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통화를 더 많이 발행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의 욕망과 맞물리면서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00년의 닷컴 버블과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자산 버블의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90년대 중반 IT를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들에 금융투자가 집중되면서 디지털 경제의 기초적인 하부 구조가 이때부터 구축되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 국가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와 느슨한 통화정책이라는 정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은 아직 수익성이 증명되지 않았지만 장래에 높은 수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회사에 투자를 집중한다. 기업들 또한 조세 회피[각주:6]와 자금 조달이 용이한 조건을 활용해 더 높은 수익을 위한 위험한 투자를 감행한다. 초기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로 수익 모델을 확립한 기업들은 기업 공개와 주가 상승을 통해 막대한 금융 수익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요약하면, 오늘날 IT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주요 기업들의 급성장은 초저금리 상황에서의 금융자본 집중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자본이 더 많은 자본을 벌어들이고 있는 이러한 상황과 반대로 노동의 조건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압력 하에서 많은 기업들은 금융시장에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수적인 사업들을 외부로 이전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이에 더해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업으로 하여금 일자리를 세부 단위로 쪼개 고용을 외주화하는 것을 더 편리하게 했다. 그에 따라 오늘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점차 희소한 자원이 되어가는 반면, 용역, 하청, 파견 등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점점 늘어나는 균열 일터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각주:7] 게다가 노동자들은 일감 단위로 잘게 쪼개진 마이크로 노동을 놓고 해외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각주:8]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오늘날의 플랫폼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 경제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자본 과잉과 노동 과잉이 병존하는 상황에서, 광범위한 산업예비군에 기초해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약속하는 플랫폼 기업에 부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플랫폼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제 그들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공유 경제라는 이데올로기

▲ 한국의 대표적인 온디맨드 플랫폼인 배달의민족과 쿠팡은 자사의 임시 인력을 충원하는 광고의 경우처럼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의 노동자 자율성을 강조한다. (출처: 배달의민족, 쿠팡 Youtube)

  플랫폼 노동[각주:9]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유휴 자산이나 노동을 공유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고 보는 공유 경제(sharing economy)의 시각이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하여 일을 할 수 있으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추가적인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다. 일례로 쿠팡플렉스나 배민커넥트는 경험이 없어도 소량의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쉽게 일을 할 수 있고, 유동적으로 스케줄을 관리해서 자신이 원할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의 반대편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의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강조하는 긱 경제(gig economy)[각주:10]의 시각이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고정적인 임금이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사회보장체계로부터 배제된 채 상시적으로 더 많은 돈을 주는 일을 찾아야 하는 조건에 내몰려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입장이 맞는 것인지 분간하기 위해서는 재현과 실재의 간극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남는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상호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공유 경제의 이상은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가?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공유 경제 플랫폼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동일한 조건 속에 놓여있지 않다는 점이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또는 은퇴 후 소일거리를 찾아 부가 수입을 창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플랫폼 노동을 주 수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앱에 뜨는 콜 하나하나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유 경제라는 단어는 서로 다른 노동자들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노동이라는 정체성 또한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실질적으로는 돈을 받고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기업은 공유 경제 일자리를 단순히 부업으로 치부함으로써 노동자로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효과적으로 묵살한다.[각주:11]

 

  공유 경제가 급부상하게 된 맥락 또한 무시할 수 없다. 2008년 대침체 이후 실업과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남는 시간이나 자본을 공유해야평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사회경제적 현실이 공유 경제 열풍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다.[각주:12] 실업률이 증가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들은 줄어드는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 온디맨드(On-Demand)[각주:13] 플랫폼에 뛰어드는 소위 ‘N잡러가 되어가고 있다. 몇 번의 클릭 내지 터치로 당장의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플랫폼의 편의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한 현실을 은폐하는 언어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공유 경제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더 타당한 접근일지도 모른다.

 

 

 

플랫폼 노동의 문제

  공유 경제의 약속과 달리 플랫폼 노동자들은 실제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자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플랫폼 기업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계속 붙들어 두기 위해 서비스의 품질을 일정 정도 유지해야 하며, 그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들을 자사의 통제 아래 두고자 하는 욕망을 자연스레 품게 된다. 이에 플랫폼은 일견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알고리즘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한다. 가령 플랫폼은 고객 별점 시스템에서 평가가 낮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일정 시간 동안 앱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또한 플랫폼은 수요가 집중되는 시간대나 장소에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노동 단가를 높이거나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등 유연하게 노동력을 관리한다. 플랫폼 노동은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경쟁을 가시화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 사이에서 일거리를 잡기 위해 지속적으로 앱을 킨 채 호출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각주:14] 노동자들을 상시 대기 상태로 머무르게 하는 것 또한 플랫폼이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방식 중 하나다.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는 최소 47만 명, 최대 54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국내 취업자의 약 1.7~2%에 해당한다.[각주:15]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디지털 경제가 일상화된 오늘날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앞으로의 노동시장에서 점점 더 중요한 의제로 대두될 전망이다. 플랫폼 노동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이들이 실제로 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함에 따라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이때 쟁점이 되는 것은 노동자가 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속된 채 노무를 수행하는지의 여부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통제하면서도, 형식상 고객과 노동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

 

  국가는 실제로 근로자와 유사한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2007년 산재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 종사자)를 위한 특례를 설정하였다. 사업주와 특고 종사자가 보험료를 절반 부담하면 노동자는 업무상 재해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때 노동자는 어느 한 사용자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전속성규정을 충족해야만 한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자는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일감에 따라 단기적으로 플랫폼과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전속성을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각주:16]또한 특고 종사자의 경우 산재보험이 의무가입이 아니므로, 기업이 산재보험법 적용 제외를 조건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였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수는 많지 않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는 고용인으로서, 하물며 특고 종사자로서 받을 수 있는 보호에서 모두 배제된 채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각주:17]

 

 

  이른바 디지털 특고라고 불리는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기반을 둔 기존 법과 제도가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디지털 뉴딜이 가져올 미래를 섣불리 상찬하기 전에 사회적 뉴딜에 대한 논의를 우선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자본 쪽에 급격히 기울여진 지형 속에서,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디지털 뉴딜과 같은 일견 미래지향적인 수사들을 남발하는 것은 현실을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잘못이 없다

  디지털 플랫폼이 가져올 미래는 과연 혁신일까? 혁신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이 자사 이용자의 데이터를 수취하여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문제가 향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쇼샤나 주보프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데이터로 전환되어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 위한 정보의 원천에 불과해져 버린 감시 자본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각주:18]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 이용자의 검색 기록에 근거해 개인화된 광고를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까지,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술 문화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침투해 버린 상황이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어느 TV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플랫폼이라는 도구 자체가 천성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도구를 누가 어떤 목적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가령 미국의 사무실 관리 플랫폼 매니지드바이큐(Managed by Q)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복지 혜택을 늘리는 이른바 좋은 일자리전략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 대표적인 사례다.[각주:19] 온디맨드 플랫폼이라고 해서 모두가 우버처럼 값싸게 노동력을 고용하고 새로 갈아치우는 모델을 채택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노동자가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협력적 플랫폼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플랫폼을 통제할 힘을 가진 국가가 공공 플랫폼의 개발에 앞장서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각주:20]

 

 

  플랫폼이 진정으로 혁신적인 부분은 플랫폼이 없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잠재적인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플랫폼의 그런 부분,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장려해야 한다.[각주:21] 상당한 장점을 가진 디지털 플랫폼이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은 권력 관계가 자본에 기울어져 있는 현재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플랫폼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새롭게 재편하여 플랫폼의 효율성을 민주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정치다.

 

 

  1. 닉 서르닉, 심성보 옮김, 2020, 『플랫폼 자본주의』, 킹콩북, 53쪽 [본문으로]
  2. 이광석, 2020, 『디지털의 배신』, 인물과사상사, 75쪽. [본문으로]
  3. 마셜 밴 앨스타인·상지트 폴 초더리·제프리 파커, 이현경 옮김, 2017, 『플랫폼 레볼루션』, 부키, 35쪽. [본문으로]
  4. 파이프라인 모델이 생산자가 생산한 재화나 서비스가 소비자로 향하는 단면 시장이라면, 플랫폼 모델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플랫폼이라는 중간 매개를 통해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양면 시장이다. 이처럼 플랫폼에서는 누구든지 생산자 또는 소비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플랫폼 노동자의 성격을 애매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으로 기능한다. [본문으로]
  5. 닉 서르닉, 위의 책. 이하 두 문단의 내용은 책의 1장을 참고했다. [본문으로]
  6. 기술회사는 지적 재산권만 해외로 옮기면 탈세에 성공하므로 다른 업종에 비해 조세회피에 더 유리하다. 위의 책, 37쪽. [본문으로]
  7. 데이비드 와일, 송연수 옮김, 2015,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 황소자리. [본문으로]
  8. 메리 그레이·시다스 수리, 신동숙 옮김, 2019, 『고스트워크』, 한스미디어. [본문으로]
  9. 플랫폼 노동은 웹 사이트나 모바일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일감을 얻어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의 수행에 대해서 보수를 지급받는노동을 의미한다. 국가인권위원회, 2019,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32. [본문으로]
  10. (gig)이라는 단어는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일회성으로 연주자를 섭외해서 연주(gig)하게 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 이 단어를 따서 만들어진 긱 경제(gig economy)’라는 용어는 불규칙한 수요에 맞춰 그때그때 임시직을 고용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11. 그렇기에 우리는 공유 경제에서 공유라는 단어가 편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어는 오직 내가 선택한 의미만 의미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김고명 옮김, 2020,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롤러코스터. 58. [본문으로]
  12.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위의 책; 알렉스 로젠블랏, 신소영 옮김, 2020, 우버 혁명, 유엑스리뷰. [본문으로]
  13. 플랫폼 이용자의 수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필요한 노동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뜻하며, 우버, 에어비앤비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본문으로]
  14. 일거리를 찾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 또한 노동시간의 일부를 구성하므로, 이러한 무급노동시간까지 계산하면 실제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더 길다고 볼 수 있ek. [본문으로]
  15. 김준영 외, 2019, 플랫폼경제종사자 규모 추정과 특성 분석, 고용정보원. [본문으로]
  16. 국가인권위원회, 위의 글, 160~164. [본문으로]
  17. 20201026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에 적용되는 전속성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전속성 폐지와 근로자성 인정은 층위가 다른 문제이므로, 플랫폼 노동자에게 있어 근로자에 부합하는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제도적 개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18. Zuboff, S. 2019. 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The Fight for a Human Future at the New Frontier of Power. New York, NY: Hachette Book Group. [본문으로]
  19. 새라 케슬러, 김고명 옮김, 2019,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더퀘스트. [본문으로]
  20. 닉 서르닉, 위의 책, 128~130. [본문으로]
  21.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이영주 옮김, 2020,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숨쉬는책공장, 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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