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채효석
편집위원 김민지
학생자치 하기에 올해 참 힘들었습니다. 나름의 기획을 가지고 있던 학생자치자들에게도, 한창 여러 행사에 참여해보고 싶었을 신입생들에게도 힘들었을 겁니다. <중앙문화>는 ‘비대면’이 강타한 올해 학생자치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고자 했습 니다. 이를 위해 50여 명에 달하는 자치자들을 만나 함께 고민해보았습니다. 뒤에 나올 두 기사에 표기된 자치자들의 ‘직함’은 인터뷰 당시를 기준으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인터뷰는 대부분의 대표자들의 임기가 끝난 12월 1일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
단절과 연결
“학생자치 속 많은 문화들의 명맥이 끊길 것 같다”
정치국제학과의 학생이 인터뷰 중 한 말이다. 이는 20학번들의 상황 때문이다. 비대면 학습이 1년을 이어지며 아직 캠퍼스도 못 밟아본 새내기가 수두룩하다. 학생자치는 소위 말하는 ‘민주화’ 이후로 유례없는 경험의 공백을 맞았다. 학생자치의 위기라고 십 년은 넘게 말해온 것 같은데, 드디어 명맥이 끊기며 망할 위기에 처한 것만 같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그것이 납득이 되기도 한다. 2019년 대비 2020년에는 학생회의 사업 수가 대폭 감소했다. 2019년에는 단과대학 학생회들의 평균 사업 수가 21.6개였다면, 2020년에는 13.5개였다 1. 그나마 이뤄진 사업들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져 아직 미숙한 점이 많았다. 중앙문화가 만난 학생자치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2 내년 학생회의 주축이 되어야 할 20학번들은 아직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코로나로 인해 관습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을 못 하게 됐다. 대안을 찾다 보니 사업들을 원점에서부터 되돌아보게 됐다.” - 독일어문학전공 박소연 학생회장
하지만 이 일 년간의 ‘단절’을 계기로 학생자치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했다. 기존의 사업들, 관습적으로 진행됐던 사업을 못 하게 되니, 대안적인 사업과 자치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학생회, 학생자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문제점들을 돌아보기도 했다. 비대면 상황이라는 강렬한 경험은, 오히려 학생사회가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학생자치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학생회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감소했고, 학생사회의 관심사는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의 크기는 커지다 못해 우리의 수업을 대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학생자치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학생자치의 모습 중 ‘지켜서 발전시켜야 할 것’과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하고, ‘새롭게 만들어 가야할 것’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학생자치의 모습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혼자 노력하지 않는 이상 주변의 좋은 사례들을 확인할 기회가 적기 마련이라 너무도 쉽게 관성에 젖는 듯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좋은 사례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그것을 수용할 만한 선의를 가진 대표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 이상민 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학생회장
<중앙문화>는 그 세 가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많은 학생자치자들을 만났다. 팬데믹 이후의 학생자치가 지향해야 할 자치에 대해 물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답을 주었다. <중앙문화>도 그들의 답변을 바탕으로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좋다고 생각되는 사례들도 소개해봤다. 지금의 물음과 고민이 학생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기폭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을 준비했다.
‘단절’을 새로운 무언가로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단절 뒤에 공백이 올지, 미래로의 ‘연결’이 올지는 학생들 손에 달렸다. 그것이 자치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며 중앙대 학생사회 속의 모든 분들이 미래의 자치를 그리는 데에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삶을 바꾸는 자치, 삶을 가꾸는 자치
학생자치는 불필요하다? 위기 속에서 빛나리니
비대면 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학생회와 자치 기구들의 운영이 흔들거렸음에도, 오히려 학생자치의 필요성이 일깨워진 한 해였다. 처음 겪는 비대면 학사 운영으로 학사 변동, 학습권 침해, 등록금 문제, 성적 장학금 축소 등 곳곳에 현안들이 산재했다. 학생들이 기댈 곳은 결국 학생들의 자치 기구, ‘학생회’였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등록금 반환 협의, 학사 협의 등에서 학생사회가 무력함을 보여줬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 만, 위기 속에서 학생자치의 효능감을 보여준 단위들도 있었다. 특히, 단과대나 학부/학과 같은 경우는 각자의 특수성에 기반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자치’의 의의를 보여줬다.
간호대학 학생회는 교직원, 교수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학사일정, 종합고사 시행방식, 교내실습 운영방식 등을 조정함에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간호대학은 학기 중 병원 실습을 진행하며, 학사를 일주일씩 앞당겨 운영한다. 따라서 타 단과대에 비해 선제적 협의의 필요성은 더욱 컸다.
처음부터 논의가 수월하게 진행되진 않았다. 교수와 학생 모두 각자의 불편과 요구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손준영 학생회장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협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학사 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요구안, 설문결과 등과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교수님들과 대화했다. 대화가 이어지며 학생-교수 간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견이 있는 부분에서는 학생회 측에서 중재안을 준비하여 이견을 좁히고 계획을 보완했다.
“원래 학생회 측에서 말을 잘 안 해왔으니까, 이전에는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을 배려하시는 차원에서 일을 진행하였으나, 묻고 반영하는 과정이 생략돼 학생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곤 했어요. 근데 이런 부분을 계속 조율해 나가니까 교수님께서도 저희에게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소통이 잘 되니까 갈등 없이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도 있었고요.” - 손준영 학생회장
이와 같은 성과의 바탕은 내부 소통이었다. 간호대학 학생회는 비대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매 학기 학생대표자 회의를 열었다.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나흘간 1,222명의 학생들의 답변을 받아 학교에 제출할 요구안을 만들기도 했다. 시험 기간 변동 등의 큰 학사변동이 있을 시에는 대표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내부적 의견 수렴과 외부 협의 과정을 병행하여 결국 학생들과 교수, 양 당사자 모두가 합의한 내용으로 2020년 학사일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소통 잘하는’ 학생회는 학생들에게 관심과 신뢰를 받았다. 손준영 학생회장은 “학우 분들께서 많이 믿어주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고 말한다.
전자전기공학부 학생회도 코로나 국면에서 자치의 성과를 보여줬다. 공대를 비롯해 실험실습이 보편적인 단위들에서 실험실습비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적으로 있었다. 총장단과 대표자 간의 대화 자리인 리더스포럼에서도 여러 차례 질문이 나온 바 있다. 올해 비대면 학사 진행으로 등록금 문제가 불거지고, 제대로 된 실험실습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실험실습비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자전기공학부 학생회는 이번 2학기 초 통일공대 학생회를 통해 본부에 ‘실험실습비 반환 관련 단위 요구안’을 제출했다. 본부는 실험실습비 사용계획서를 공지하라고 단과대별로 요청했고, 10월 28일 공대 홈페이지에 사용계획서가 게시됐다. 전자전기공학부 학생들은 이를 보고 실험실습비 예산 항목과 총액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회는 문제 제기를 기반으로 문제 상황을 파악했고, 다른 주체들과의 접촉도 시작했다. 학생회는 본부, 학부장, 통일공대 학생회와 계속해서 면담을 진행했다. 공과대학 대표자회의에서는 상황 공유를 통해 공론화를 이끌었다.
전자전기공학부 김건 학생회장은 이후 공과대학 운영위원회를 통한 꾸준한 공론화와 학부 단위에서의 의견 수렴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론화를 이끌어 내어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예전과 무엇이 문제인지 아는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는 공론화의 의의를 밝혔다. 또한 그는 “요즘 학생회에 학우들이 관심이 없는 이유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실험실습비 문제와 같은) 이런 상황을 잘 해결하게 된다면 앞으로의 학생자치에도 학우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건 학생회장의 말대로 효능감은 관심을 이끌고, 이는 학생자치의 힘이다. 자신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확장하여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하고,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면 참여율은 높아진다.
코로나 국면에서 학생사회가 쏟아낸 갖가지 불만과 요구들은 학생들이 단순한 ‘복지 학생회’를 원했던 것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복지 학생회는 언젠간 그 존재의의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학생회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조직은 사회에 많기 때문이다. 통일공대 공승환 학생회장(건축공학전공)은 ‘취업 정보, 대학원 정보를 주는 것은 학생회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과 이혜원 학생회장은 학생자치와 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며, “기본적으로 학생회는 학우들의 권리를 위해 힘써야 하며,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권리침해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결국 학생자치가 그 존재의의를 증명해내기 위해선 늘 소통하며 학생들의 의제에 귀 기울여야 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공론화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 노력이 학생들을 학생자치로 불러올 수 있다.
삶과 공동체를 가꾸다
이렇듯 학생자치는 코로나라는 위기 상황에서 가치를 드러냈다. 하지만 학생자치는 그 전에도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학생자치는 학생들의 권리를 지킬 뿐만 아니라, 공동체 형성의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치는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고, 구성원들은 자치 단위의 활동과 사업을 통해 모여 공동체를 느낀다. 사람들은 때때로 공동체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에, 자치는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한다. 자치에 참가해 공동체로부터 얻은 ‘좋은 경험’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치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학생자치자들에게서 ‘사람이 좋아서’ 하고 있다는 말을 빈번하게 듣는 이유다.
하지만 많은 자치 활동과 사업들은 참여 학생 수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이전에 ‘학생들을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실패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자치 단위의 탓으로만 돌릴 순 없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자치도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학과/학부 단위의, 소위 말하는 ‘기층’ 단위의 사업은 공동체만의 특성을 살려 창의적인 기획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독일어문학전공 학생회는 작년에 학술제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2019년 10월 말에 진행된 독문전공 학술제 ‘독토버’는 학술제의 딱딱하고 진부한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다른 어문 전공들과 마찬가지로 독문전공에서도 과거 학술제를 진행해왔으나, 학생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교수들의 간섭도 있어 결국 학생들에게 부담이 돼 사라졌다.
독문전공 학생회는 학술제를 다시 열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강의실을 대여하여 발표를 진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핼러윈’을 콘셉트로 하여 야외 부스를 설치하고 드레스코드를 정했다. 서로의 코스튬을 구경하고 같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각 학회와 소모임은 부스를 자유롭게 꾸렸다.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며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박소연 학생회장은 “학생들과 교수님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웃을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 즐겁게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1학년으로 학술제에 참여했던 독문전공 최수경 학생은 “독토버는 가히 독일어문학전공 모두의 축제였다”며, “선후배 분들과 교수님까지 한 자리에 모였고,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마련됐다”고 전했다.
박소연 학생회장은 ‘독토버’의 경험이 학생자치에 매우 유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는 “30명 정도가 모인 것을 보고 학생들이 관심이 없지 않고, 모일 수 있고,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감동했다”며, “이런 즐거운 경험이 학생자치가 이어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독토버를 경험한 학생들은 자치 활동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됐다. 올해는 학생회에서 온라인 학술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작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박소연 학생회장은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모여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어도 결국 일이 잘 풀렸다”고 전한다.
문제는 관습적 사업 진행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사업이라도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있다면 학생 참여를 이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관습적 사업 진행이다. 이는 학생자치의 가능성을 막곤 한다. <중앙문화>가 만난 많은 학생자치자들은 관습적인 사업 진행과 그에 따라 의미가 퇴색된 채 진행되는 사업들의 모습을 ‘지키지 말아야 할’ 학생자치의 모습으로 꼽았다. 자연과학대학 이재유 학생회장(생명과학과)은 청산해야 할 학생자치의 모습으로 관습적 사업 집행을 말했고, 인문대학 전유진 학생회장(역사학과) 또한 관습적인 사업 진행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전의 사업을 맹목적으로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학생사회가 더 발전된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접할 수 있는 사업 속에 학생회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담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자치 단위는 그 사업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어떤 사업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업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어야 한다.
올해엔 ‘독토버’와 같은 오프라인 사업을 진행하지 못해 한계가 많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코로나로 강제로 멈춰선 자치는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가졌다. 제51대 경제학부 학생회 성수원 학생회장, 김대영 부학생회장은 퇴임사에서 “(기존의 행사와 사업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것, 새로운 것,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학생자치는 이와 같은 물음과 고민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물음과 고민을 멈추지 않아야
코로나로 많은 것이 멈춘 와중에도, 돌파구를 찾아 새로운 사업을 진행한 단위들도 있다. 다른 사업들이 멈추자, 기존에 당연시 여겼던 것들부터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 낡아 아무도 이용하지 않던 홈페이지였다. 인문대의 학과와 전공들, 그리고 안성캠 예술대학 학생회가 그랬다.
안성캠 예술대학은 올해 단과대 학생회 홈페이지를 새로 개설했다. 중앙대 예술대학은 국내 최대 규모로, 전공들 하나하나가 그 분야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운영되는 홈페이지가 없는 곳들이 많았다. 따라서 예술대학을 브랜드화함과 동시에 학생회의 대내외적 소통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홈페이지였다. 예술대학 주연성 부학생회장(실내환경디자인전공)은 “작년 실내환경디자인 학생회장을 하면서 학생회의 적극적인 홈페이지 홍보 및 SNS 운영은 분명 대내외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또한, 학생자치는 학생자치를 통해 홍보해야 함을 강조하며 “하나의 과, 단과대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학생회, 동아리, 과 대표들이 서로 소통하며 성과를 만들고, 그것이 대내외적으로 홍보가 되어 의지가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예술대학 홈페이지는 단순한 소통 창구를 넘어서는 플랫폼을 구상 중이다. 기존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20개 전공의 작품 사진, 공연 영상을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다. 플랫폼을 통해 각 전공 간의 콜라보 공연과 전시가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 그 작품의 판매까지 이뤄지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주연성 부학생회장은 “하나하나 우리들의 밑거름을 쌓아간다면 분명 하나의 거대하고 튼튼한 인프라로써 작동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인문대에서는 단일 전공, 학과를 넘어 인문대 운영위원회를 통해 문제의식이 공유됐다. 독일어문학전공, 중국어문학전공 등 기존에 홈페이지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소속 단위들이 고민을 나누고 논의를 진행한 것이다. 논의는 노후한 과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이를 통합하여 관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표자들은 의견을 정리하여 학교본부에 전달했다. 본부와 교수님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각 전공, 학과들은 홈페이지 개편에 들어갔다.
빠르게 홈페이지 개편에 성공한 것은 중문전공이었다. 다른 학과 홈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중문전공 홈페이지는 콘텐츠가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내용마저 오래되거나 열람이 불가능했다. 학생들, 외부인들이 학과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홈페이지임에도 관리는 너무 미흡했다. 비대면 상황은 이런 문제를 부각시켰다. 중문전공 이경민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면 상황으로 인해 재학생들에게도 학과 홈페이지의 중요성이 높아졌다”고 말한다. “가장 수월하게, 많은 학우들에게 동시에 학과의 중요 공지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학과 홈페이지”라며, “원활하게 학우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재정비가 필수적이었다”고 전했다.
중문전공 학생회가 홈페이지 개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중문전공 학생들의 정보 접근성이었다. 이경민 비대위원장은 “학과 홈페이지만 참고해도 중문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학교와 학과에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또한 원어연극회, 학회, 소모임 등 학과 소속 자치 단위들이 직접 참여하여 홈페이지에 관련 활동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이경민 비대위원장은 “정보 접근성이 더 높아졌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한다.
독문전공 박소연 학생회장은 이번 개편 과정을 통해 풀뿌리 자치의 가능성을 경험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학생회가 요구하지 않았다면 학교가 나서서 홈페이지를 보수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잖아요. 이런 기본적인 사안들이 확인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작은 단위들이 관심을 가지며 큰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실제로 홈페이지 개편도 독문과와 중문과를 시작으로 인문대 내에서 의제화되어 여러 과가 홈페이지 현황을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시작은 학과 차원에서의 내부적인 물음이었고, 이에 대한 공감이 커지자 안건이 되어 상위 기구에서 논의되었다.
“학우들 개개인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지만, 그 쉽지 않은 것을 어떻게든 해내려 노력하는 것이 학생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학생회의 효용을 체감할 수 있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학생들의 곁에서, 학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대안 자치는 이러한 점에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대학 전유진 학생회장
작은 물음과 고민도 자치를 통해 커질 수 있다. 나의 고민이 모두의 고민이 되고, 공동체가 그것을 해결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학생자치는 학생들의 삶을 바꾸고 가꿀 수 있는 것이야 한다.
학생자치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건 플랫폼
“조금 더 단순히 말하자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쉽게 학생자치에 대한 고민을 접하고 큰 부담 없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합니다.” - 이상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전 학생회장
“언제든지 우리가 모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이 생겨야 합니다.” - 장애인권위원회 정승원 위원장
팬데믹 이후의 학생자치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관심’은 필수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자치가 그 효용성과 효능감을 보여준다면 기대도, 관심도, 참여도 늘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학생들의 관심사는 다양해졌고 그들을 학생자치로 모으기 위해선 ‘플랫폼’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은 학생들이 자치에 무관심해졌다고 말한다. 물론 과거 학생운동이 왕성하던 시절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해진 것은 맞겠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관심의 총량이 부족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학생들은 코로나 상황의 교육권, 등록금, 학사 등 공통된 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학생자치의 상징’인 학생총회가 작년엔 인문대에서 성사됐다. 한때 2013년까지 6년 동안 정족수 문제로 성사되지 못하던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2013년 2학기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3
여러 학생자치자들도 학생들이 자치에 무관심하다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원회 인권국장이자 여러 자치 단위에서 활동 중인 정윤호 학생(정치국제학과)은 “(학생자치가) 단순히 ‘위기다’라고 말하고 싶지만은 않다”며, 학생자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이상민 전 학생회장도 “특별히 학생들이 학생자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저는 사실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무리 취업난과 스펙 쌓기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한 번뿐인 대학 생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길 원하는 학생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학생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앞서 ‘코로나 상황의 공통된 의제’에 대해서 말했지만, 매번 공통된 의제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학생들의 관심사는 총학생회, 학생회라는 단일화된 체계가 담지 못할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내부 관심사를 다 포괄하지 못하는 학생회의 영향력은 전보다 작아졌다. 굳이 표현하자면 현재 상황은 자치의 위기라기보단 ‘학생회의 위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학생회가 학생들의 의제에 귀 기울이며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학생들에 대한 학생회의 영향력이 작아졌다는 것 자체는 자치에서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기성 정치에서도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환경 변화가 급격해짐에 따라 ‘분권’이 주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것을 두고 ‘중앙정부의 위기’라고 하지 않는다. 분권을 통해 중앙정부에서도, 지방정부에서도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생자치에서도 단일한 학생회 조직이 비대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것보단, 다양한 자치 단위들이 연계했을 때 더 큰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 학생회는 학생자치의 큰 틀이 되어주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만약 학생들의 관심사가 스펙 쌓기라면, 학생자치는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자치 안으로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학생자치의 틀 안으로 가져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
플랫폼 1. 제도권 내의 플랫폼 – 동아리, 학회, 소모임
우선 제도권 내에서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동아리, 학회, 소모임의 확장이다. 동아리, 학회, 소모임은 –그 구성원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학생자치의 기층에서 큰 역할을 한다. 사회학과 사회과학 학술소모임 ‘포헤’의 강서윤 학회장은 소모임이 “과 내 문제에 대해 함께 공론화할 수 있는 주체이고, 학생회와는 다른 또 다른 독립적 학생 자치 단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 역할을 설명한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학회 ‘또아리’의 김정진 학회장은 학회가 부담감 없이 학생들끼리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돼주어, “자연스럽게 학생자치의 통로 역할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학생이 주체가 되고, 힘을 합하여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소속감을 통한 유대감 형성을 형성하고” 학생자치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부 경제학회 ‘S-kian’의 홍승기 부회장 또한 “경제학부의 학회들은 서로 소통하며 매년 열리는 경제학부 포럼, 행사에 같이 참여하면서 활발한 학생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도 학생들이 동아리, 학회, 소모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쉽사리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를뿐더러, 만들고 싶다 하더라도 필요한 요건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눈은 외부 연합동아리와 대외활동으로 쏠린다. 누구나 관심사에 따라 자치단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여있도록 하여, 자치의 문턱을 낮추고 ‘자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정윤호 학생은 “이전보다 기후위기, 비거니즘, 노동, 성소수자, 난민 등 많은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면서, “‘왜 이 사람들의 활동 영역을 학교 안에 둘 수 없었을까’라는 고민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사회도 이런 고민을 지속해오고 있는 듯하다. 유의미한 논의들도 있었다. 제10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단 선거에서 <RE;ACT> 선거운동본부는 ‘사회과학대 동아리 활성화’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2018년에 사회과학대 동아리 회칙이 제정됐으나, 등록된 학회와 동아리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RE;ACT>의 김민정 정후보(사회학과)는 학생회장 후보단 합동 공청회에서 “동아리 설립 기준이 너무 높아서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며, 설립 기준을 완화할 것을 약속했다. 해당 공청회에서는 다른 여러 대책들도 오갔다. 활동 공간을 마련하고, 예산 자치제를 시행하여 기반을 마련하며, 사회과학대 차원의 동아리 홍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현실화되길 바란다.
플랫폼 2. 제도권 내의 플랫폼 – 특기구
다양한 의제를 다룰 수 있는 ‘정치’ 조직도 생각할 수 있다. 바로 특기구다. 중앙대의 경우 총학생회 산하로 인권복지위원회, 문화위원회, 졸업준비위원회, 성평등위원회, 장애인권위원회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중 최근에 생긴 성평등위원회와 장애인권위원회는 실무적 성격을 띠는 다른 위원회들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단일한 체계의 학생회는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복잡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힘들다. 따라서 해당 의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특기구를 만든 것이다. 다른 학교의 경우, 성소수자·유학생·편입생을 위한 특기구도 존재한다. 특기구는 인권 의제 외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서울대의 경우 총학생회 산하로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를 운용해 서울대 행정을 연구, 감시하고 개선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중앙대도 학생자치에서 학생회 차원의 돌파구를 찾고 싶다면, 학생회 산하의 특기구들을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해당 의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서 제도권 내로 영향력을 주고 싶은 학생들이 참여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다. 해당 의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곳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의제에 대한 논의가 모이고 퍼지게 하는 ’의제 플랫폼’ 역할도 할 수 있다. 제도권 내의 기반을 활용하여 관심을 이끌고, 그에 따라 의제가 더 활발히 논의되도록 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학생들을 자치의 영역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중앙대에선 학과 단위의 특기구도 만들어지고 있다. 광고홍보학과와 영화학과에선 성평등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광고홍보학과 성평등위원회 측은 작년 <중앙문화>와의 인터뷰에서, “저희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의의를 밝혔다. 물론 큰 고민 없이, 단발성 사업으로 특기구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발전의 발판이 된다.
플랫폼 3. 제도권 밖의 플랫폼
다소 틀이 정형화된 제도권 내의 단체만 생각하기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 제도권 밖에서도 자치에 학생들의 접근성을 높이거나, 자치자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중앙대 기반의 제도권 밖 단체로 꼽히던 건 2010년에 결성된 ‘자유인문캠프’다. ‘자유인문캠프’는 ‘자기-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강의를 열었다. 또한, 학내외 단체와 활발히 연계하여 여러 의제에 목소리를 냈으며, <잠망경>이란 독립저널을 발간하여 학내에 배포함으로써 대학과 학생사회에 대한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현재는 그 활동이 다소 뜸해졌지만 ‘자유인문캠프’는 한동안 획기적인 자치 플랫폼으로 자리했다. 이처럼 이전부터 제도권 밖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올해도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탈곡기 프로젝트’(이하 탈곡기)란 단체다. 탈곡기는 자치를 그 목적으로 한다. 탈곡기에서 활동 중인 정윤호 학생은 “탈곡기는 다양한 성과가 있지만 전에 없던 자치 단위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크다”고 말한다. “선출직 제도권 단위도 아니고, 특정 부문에 대한 단위도 아니”라며, “학생들이 학생을 위한 조합의 성격으로 형성했다는 것이 이색적”이란 것이다.
탈곡기는 ‘세련됨’을 그 무기로 한다.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알리고,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이는 비대면 상황에서 더욱 효과적이었다. 여러 노력들이 더해져 코로나 상황에서 학생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탈곡기의 시도가 빛을 발했다. 탈곡기의 일원인 조안시연 학생(경영학부)은 “학생회가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논의해보겠습니다’ 같은 허울뿐인 말이었는데, 탈곡기처럼 실제로 논의했는지 얘기했는지 묻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전반적인 자치가 잘 흘러가게 된다면 그게 저희가 바라는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말한다. 제도권 외의 단체가 자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학생들의 자치에 대한 관심도 이끌 수 있는 것이다다. 이혜원 학생회장도 “가장 좋은 것은 제도권 내의 학생회와 제도권 밖의 단체가 협동하는 것”이라며, “(제도권 외 단체들이) 더욱 방향성이 명확하고 직설적인 의제를 학생사회에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탈곡기의 지향점은 ‘학생자치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다. 조안시연 학생은 “‘인문, 사회대 다니는 애들이나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치가 나에게도 해당되는 문제고, 나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학교 내에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자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정윤호 학생은 이에 대해 “기층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관심사와 관점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재원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탈곡기는 제도권 외의 단체라는 점에서, 기반의 한계를 가진다. 제도권 내의 단체들, 특히 학생회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시도들과 제도권 학생자치가 만나 더 활발한 학생자치를 만들 수 있다.
플랫폼 4. 온라인 자치 플랫폼
새로운 상상력은 새로운 자치 단위를 만드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플랫폼 혁신’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학생회 단위의 ‘온라인 자치 플랫폼’ 구축이다. 많은 대표자들은 올해 아쉬웠던 점으로 소통의 부재를 뽑았다. 온라인 소통 기반이 충실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 수렴과 소통이 어려웠다. 학생회는 학생들과의 단절로 더욱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대부분의 학생회는 온라인 소통 수단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을 사용하고 있다. 기층 단위로 갈수록 그나마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은 SNS들은 일방적인 의사 전달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화’가 이루어지거나 ‘담론의 장’이 형성되기 어렵다. 자치는 의견을 주고받는 절차를 필수로 요한다.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사회복지학부 학생회장인 허유림 학생은 SNS 매체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소통의 한계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앞으로 비대면의 상황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전염병과 같은 재난 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환경 변화 때문에 비대면 강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온라인 자치’의 기반이 다져져야, 학생자치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온라인 자치’의 의의에는 학생자치의 문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자리도 필요하지만, 온라인에서 누구나 학생자치에 상시적으로 의견을 내고 그에 대한 논의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자치는 풍성해진다. 심리학과 왕충민 학생회장은 미래의 ‘대안 자치’로 온라인 자치를 꼽았다. 현재 온라인 자치가 미약한 것은 아직 적응을 못 했을 뿐이라며, “끝내 학우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자치 플랫폼에선 커뮤니티를 통해 의견을 나눌 수도 있고, 설문 조사를 손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 온라인 학생총회를 여는 등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도 꾀할 수 있다. 다른 대학에서도 이 같은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경희대 서울캠 최인성 총학생회장은 “본래 대면 모임과 회의를 전제로 하고 있던 자치조직의 선출 및 의결, 실무 과정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식하기 위한 회칙개정과 가이드라인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4
또한 새로운 플랫폼엔 정보 공개, 아카이빙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대표적인 학생회 공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은 아카이빙에 취약하고, 올릴 수 있는 콘텐츠에도 한계가 있다. ‘정보 공개’는 학생 참여와 학생회의 신뢰도에 직결된다. 회계 자료, 회의록 등을 올리고 아카이빙하는 정보 공개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 정책 자료를 모아두는 ‘자치도서관’도 만들 수도 있다. 학생자치자들의 짧은 활동기간은 항상 자치의 한계로 지적되곤 했다. 업무 처리 방법, 상황에 대한 대응 방법, 정책과 기조, 문제 의식 등이 잘 남지 않는다. 과거 자료가 남아있다면과거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참고해 더 나은 자치를 할 수 있다. 일종의 역사책 같은 역할이다. 서울대의 ‘관악자치도서관’ 등이 이런 아카이빙 역할을 해왔지만, 중앙대에는 그런 기구가 없다. 온라인 도서관은 정보 검색도 쉬워진다는 점에서 더 가치있다.
물론 활발하게 이용되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학생사회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학생자치도 혁신을 위해서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현재 학생사회가 가진 자원들을 살펴보자. ‘중앙인’은 학교본부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이기 때문에 자치 플랫폼으로는 부적합하다. ‘에브리타임’은 접근성은 높지만 외부 업체가 운영하여 자치 단위가 주체적으로 플랫폼을 변형할 수 없고,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한계가 있다. 익명성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학과 홈페이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학과 홈페이지에 주요 학생회 공지를 올리는 단위도 있다. 하지만 학과 홈페이지는 외부인과 교수님, 조교 및 직원들까지 이용한다는 점에서 온전한 자치 플랫폼으로 활용하기에는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은 서울캠 총학생회 홈페이지인 ‘중대중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중대중심은 총학생회의 홈페이지지만, 개편을 통해 각 단과대와 학과/학부의 자치 플랫폼을 포함시킬 수 있다. 중대중심 개편은 제63대 서울캠 총학생회로 당선된 <오늘>의 공약이기도 하다. 공지를 전하고, 의견을 모으는 동시에, 다양한 고민을 구현시킬 수 있는 활동 공간이 자치에 필요하다.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다
앞서 학생자치가 효용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과 학생들이 모이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들이 있어도 기존 학생자치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들이 남아있다면, 결국 학생들은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좋은 경험’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치를 이어가게 만든다면, ‘나쁜 경험’은 그 반대다. 학생자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버려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투명성은 연결의 기본
학생자치의 투명성은 참여의 기본 전제 조건이다. 투명성은 크게 ‘논의의 투명성’, ‘회계의 투명성’으로 나눌 수 있다. 자치 단위가 현재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당연히 관심도 갖지 못하게 되고 참여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치 단위의 회계가 불투명하여 구성원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면, 자치 단위는 불신을 떨칠 수 없게 된다.
현재 학생사회는 두 측면의 투명성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전체 학생자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중앙운영위원회조차 논의의 투명성이 부족하다. 중앙운영위원회의 경우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긴 하지만 회의 이후 한참 뒤에 몰아 올리고 그 내용도 부실하다. 단과대나 학과/학부 단위로 가면 공개조차 하지 않는 곳이 많다. 학생회 선거에서 ‘회의록 공개’와 같은 공약이 종종 나올 정도지만,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생회가 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지는 못할망정, 소극적인 정보 공개조차 소홀히 하는 것이다.
회계의 투명성은 더 심각하다. 자치 단위의 회계 문제는 오랫동안 자치의 발목을 잡아 왔다. 당장 올해만 해도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 회계 문제로 사퇴했다. 5 서울캠 총학생회는 작년 가을 축제의 통장 사본을 아직도 제시하지 못한다. 6 가장 큰 단위의 돈을 다루는 양캠 총학생회조차 회계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층 단위에서는 회비 운용에 대한 제대로 된 학생회칙이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문제가 크다. 왕충민 학생회장은 “기존 학생자치 중 가장 체감되었던 문제점은 학우 사이의 정보 불균형”이라며, “공개적이고 공정한 정보 전달을 요하는 학우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정보 불균형이 단순한 개인적 소외감을 넘어 학생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자치 단위의 대표자들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논의의 투명성’은 대표자들의 책임감, 그리고 학생들의 관심과 요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선 그걸로는 부족하다. 올해부터 서울캠에선 중앙운영위원회 산하의 ‘중앙감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자치 단위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주연성 부학생회장은 “가장 확실한 것은 명문화된 규칙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실내환경디자인전공 학생회장 시절 전공 학생회비 운영규칙을 만들었다. “일부는 이러한 회칙과 기관의 설립이 학생회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오히려 학생들이 학생회를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성폭력에 취약하며 권위주의적인 문화는 학생자치의 가장 어두운 면이었다. 많은 학생을 배제하고 억압해 ‘나쁜 경험’을 제공하고, 학생들을 자치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더군다나 이런 문화는 학생회 사업 전반에 녹아들 수 있기에 더욱 문제가 된다. 최근에는 많은 단위에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못했다. 특히 올해 서울캠 부총학생회장은 성희롱 사건으로 사퇴했고, 총학생회 내부의 2차 가해 문제가 불거졌다. 7 아직 권위주의가 남아있는 곳도 있다. 음악예술전공 학생회 과대표인 박채영 학생은 “청산해야 할 안 좋은 학생자치의 면들은 학생회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주의”라고 집었다. 건강한 공동체로의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융합공학부 조대안 학생회장은 “이러한 문제들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관심으로 악습이 대물림 되는 과정을 전복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과는 반성폭력과 반권위주의 문화를 이끄는 모범 사례 중 하나다. 사회학과의 ‘반성폭력회칙’ 제정에 참여했던 김윤진 학생은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반성폭력, 반권위주의 기조가 비교적 잘 자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학과는 새내기배움터나 총엠티 등의 행사가 있을 때 반성폭력, 반권위주의적 행동을 실천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을 담아 내규를 작성하고, 반성폭력 주체와 반권위주의 주체를 뽑아 관련된 문제가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학과 행사인 ‘소시오 위크’에서는 ‘반성폭력·반권위주의 포럼’을 진행한다.
올해는 ‘숙원사업’이었던 반성폭력회칙을 제정했다. 김윤진 학생은 “사소할지라도 스스로 성폭력적, 권위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과 문화 전반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방관과 2차 가해로 일관하는 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지금까지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을 다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사회학과는 반성폭력과 반권위주의 문화를 이끄는 모범 사례 중 하나다. 사회학과의 ‘반성폭력회칙’ 제정에 참여했던 김윤진 학생은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반성폭력, 반권위주의 기조가 비교적 잘 자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학과는 새내기배움터나 총엠티 등의 행사가 있을 때 반성폭력, 반권위주의적 행동을 실천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을 담아 내규를 작성하고, 반성폭력 주체와 반권위주의 주체를 뽑아 관련된 문제가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학과 행사인 ‘소시오 위크’에서는 ‘반성폭력·반권위주의 포럼’을 진행한다.
올해는 ‘숙원사업’이었던 반성폭력회칙을 제정했다. 김윤진 학생은 “사소할지라도 스스로 성폭력적, 권위주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과 문화 전반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방관과 2차 가해로 일관하는 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지금까지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을 다시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도 작년에 임시총회를 열어 반성폭력회칙을 제정했다. 당시 학생회장이었던 이상민 전 학생회장은 반성폭력회칙을 통해 모든 구성원이 학생자치의 주체로서 평등하게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반성폭력회칙 제정 준비 모임의 공개적인 모집에 나섰고, 매주 회의를 가진 끝에 나온 초안을 토대로 두 차례 의견 수렴회를 가졌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몇 차례 걸친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왜 반성폭력회칙을 만드는지, 학내에서 공론화된 성폭력 사건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총여학생회 폐지와 성평등위원회 설립은 어떤 역사를 지니는지,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라는 개념은 무엇인지 등을 공유했다. 이상민 전 학생회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반성폭력회칙이 필요한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데는 대표자뿐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참여와 관심도 중요하다. 이상민 전 학생회장은 반성폭력회칙 제정은 어쩌면 출발점에 불과하다며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 뜻을 이어가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하나의 이벤트에 그치기 쉽다”고 말한다. 앞으로 반성폭력회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고민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관련 주제로 꾸준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주연성 부학생회장은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위로부터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인 청산의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부 전공 학생회의 귄위주의적 특성은 전공단위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분위기 때문에 쉽사리 건들지 못하는 일종의 시한폭탄”과도 같았지만, “학우분들의 의식이 높아져” 이제는 달라졌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은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원동력이다.
학생자치 영역에서의 반권위주의·반성폭력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은, 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을 ‘공동체적 해결’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으로 이어진다. 인문대학 전유진 학생회장은 “개인이 가진 문제를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학생자치가 가지는 효용성”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전 학생회장 역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법 절차를 밟거나 학내 인권센터에 신고할 수도 있지만 이는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클뿐더러, 보수적인 결정이 내려질 염려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동체적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직접 가해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에 그치기 때문에 큰 한계를 지닌다”고 밝혔다. 학생사회의 자치적인 노력은 ‘공동체의 문화와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작은 잘못들을 그동안 용인하진 않았는지’, ‘2차 가해가 이어지진 않았는지’, ‘피해자를 위축시켜 추후의 신고를 어렵게 만들진 않았는지’ 등의 성찰과 반성이 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학생사회가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반성폭력·반권위주의 문화는 자치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사회학과의 반성폭력·반권주의 포럼에 참여했던 사회학과 윤설 학생은 “학교에 입학한 후 저희 학과에서 반성반권 기조를 추구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이런 분위기는 학과 활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불필요하게 긴장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고 전했다. 사회학과 김어진 학생 또한 “이러한 기조의 정착은 결과적으로 학우들이 공동체를 믿고 함께 연대하는데 중요한 기제로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모두를 공동체 안으로 – 장애학생, 유학생
“공동체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학생사회는 더 많은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유학생이나 장애학생 등 학생사회에서 암암리에 배제되어 왔던 구성원들을 학생자치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오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 인문대학 전유진 학생회장
반성폭력·반권위주의 문화를 통해 배제됐던 구성원들을 자치 안으로 불러들였다면, 이제는 더 시야를 확장할 때다. 최근 장애학생과 유학생이 학생자치의 주체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온전한 주체로서 자치에 참여하는 데에는 여러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다. 온전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은, 학생자치가 이들의 관점에서 조성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한계는 있지만, 최근 중앙대에는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다. 우선 올해부터 ‘장애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가 활동을 시작했다. 장애학생 자치권 확대를 위한 몇 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8 장인위는 특히 올해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장애학생 관련 지원책을 대학본부에 요구하고,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장애학생 대상 간담회 개최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 장애학생 온라인 수업 지원 개선에 관한 논의를 끌어냈다. 장애학생 학습권 보장을 논의하는 교육부와의 간담회에서도 장인위 정승원 위원장은 직접 목소리를 냈다. 모든 요구가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장인위는 비대면 학습 환경에서 장애학생의 학습권 침해를 나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자치 단위가 이런 의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노력이 필요하다. 이상민 전 학생회장은 “장인위가 설립되었음에도 행사를 기획하면서 배리어프리를 중요하게 고려하거나 공지에 대체 텍스트를 병기하는 단위는 극히 일부”라며 여전히 장애학생의 참여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말했다.
한편 유학생의 자치는 장애학생의 자치보다도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영어영문학과 김도현 학생회장은 “아직까지도 학교에는 유학생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장인위라는 자치 조직이 당사자가 의제를 공론화하는 기반이 되는 반면, 유학생은 당사자가 자치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 현저히 부족하다. 올해 사회과학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진행한 ‘유학생 주체’ 사업은 이러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긍정적 사례다. 해당 사업을 기획한 정윤호 학생은 “유학생들 자체적으로도 자신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고 말한다. 유학생 주체 사업에서 유학생들은 공지를 번역하여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거나, 사업 기획안을 모니터링하여 비상대책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한다. 정윤호 학생은 더 나아가 ‘유학생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이 안정적인 자치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이런 긍정적인 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후대 학생회의 지속적인 노력 또한 필요하다.
우리는 더 건강한 학생자치를 위해 소외돼 있던 주체를 포괄해야 한다. 그렇게 포괄된 주체들은 학생자치에 더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김도현 학생회장은 지향해야 할 대안 자치로 “학생들에게 안전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자치”를 말했다. ‘안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구성원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공동체에 온전히 소속되어 있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존중받아야 비로소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 다스리다
긴 글을 통해 여러 가지를 고민해봤다. 길게 얘기했지만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결국 ‘지켜서 발전시켜야 할 것’, ‘지키지 말아야 할 것’, ‘새롭게 만들어 가야할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고무적인 것은, 이러한 고민을 적지 않은 사람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민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고민은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모두가 학생자치에 깊이 빠져들 필요는 없다. 조그마한 고민과 관심, 참여도 자치의 힘이 된다. 자치는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고, 자신의 역할을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겐 각자의 자치가 있다. 자치의 활로는 자치로 찾아야 한다.
“왜 학생자치를 하냐고 묻는다면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위한 작업이 자치이죠. 삶의 주인이 되고,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상상을 할 수 있는 뇌와 마음의 근육을 길러주는 게 학생자치입니다. 대학은 또 우리가 언젠가 떠날 공간이기도 한데요, 그런 의미에서 학생자치는 “대학에서 내가 이런 걸 해봤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경험도 제공해주죠. 하나라도 개인에게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해요. 주인되고, 배우고 성장하는 게 재밌어서 저는 자치합니다.” - 정윤호 학생
한때는 학생운동과 자치가 필수적이라고 느끼던 시절도 있었고, 한때는 학생자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쿨’하다고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엔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 2013년 1학기까지 6년 동안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정족수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는 매 학기 열리고 있다. 학생자치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혹여나 지금 조금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한 대표자는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표현을 썼다.
앞으로는 학생자치가 ‘재밌고, 유쾌하고, 유용한 것’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고, 모두가 안전하며, ‘나쁜 경험’은 피하도록 해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각자의 자치를 통해 각자의 공동체를 사랑하게 됐으면 한다.
- 사업 수 파악이 어려웠던 예술대학, 의과대학, 약학대학, 체육대학과 신설 단위인 예술공학대학 제외. <중앙문화> 79호, “2020, 학생자치 안녕하셨습니까”, 2020.12. 참고 [본문으로]
- <중앙문화> 79호, ‘2020, 학생자치 안녕하셨습니까’, 2020.12. [본문으로]
-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열리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확대운영위원회로 대체되어 1, 2학기에 열렸다. [본문으로]
- <대학주보>, “학생자치, 변화의 요구 앞에서도 지켜내야 할 것은”, 2020.09.19. [본문으로]
- <중앙문화> 79호, “2020, 학생자치 안녕하셨습니까”, 2020.12. 참고 [본문으로]
- <중앙문화> 79호, “2020, 학생자치 안녕하셨습니까”, 2020.12. 참고 [본문으로]
- 온라인보도 “가해 지목인 3人, ‘파면 및 탄핵 요구’ 303명 연서명에도 징계 없이 임기 마쳐” 참고 [본문으로]
- <중대신문>, “장애인권위원회 발족, 노력 끝에 결실 맺다”, 2020.04.13.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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