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김지우
인권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프랑스 혁명 이후, 우리는 줄곧 이 빛나는 근대화의 산물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인권이 보편 권리라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동의할 테지만 아직 그 수준이 미흡하기에, 우리는 여전히 인권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 기간 나누어주는 공약집 한쪽에는 ―설령 그 실효성이 부족할지라도― 항상 인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나 학생 대표자의 자리에서 총학생회는 학내 구성원의 인권 증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 9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김민진 전 제61대 알파 총학생회장이 단독으로 깜짝 발의한 수정안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라 믿는다. ‘민주주의는 전공하지 않아 잘 모르는’[1] 학생 대표자지만, 직접 다양한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니 적어도 인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전학대회 이후 해당 수정안은 사실상 인권의 후퇴라는 비판이 거셌다. 물론 수정안에 담긴 내용은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위)를 폐지하고, 당시 상정 안건이던 장애학생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와 통폐합하여 ‘학생인권위원회’(이하 학인위)를 꾸리겠다는 말뿐이었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생 사회에 영향을 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통폐합이 인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의문은 전 총학생회장이 학기 초부터 ‘혼자’ 고민하다가 ‘어젯밤’[2] 고안한 내용임을 참작하면 비로소 납득 가능하다.
인권복지위원회(이하 인복위)가 인권보다는 복지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전 학생회장의 제안은 어느 정도 유의미할 수도 있다. 다만 학생 사회에 지속적이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는 발의 치고는 논의 없이 혼자 생각하여 아쉬운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 글을 통해 전 총학생회장의 짧은 고민을 돌아보고, 제62대 총학생회 win:D가 실현 가능한 다양한 학내 정치의 제도적 가능성을 열어 보고자 한다. 부디 win:D가 인권을 향해 가는 길을 잃지 않기를, 혹은 너무 멀리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3]
‘특별자치기구’까지 직진입니다
- 여기는 ‘인권’ 보호 구역입니다
“오늘 안건으로 상정된 장애 인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유학생, 교환학생에 대한 인권, 또한 현재 대학생들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또는 취직 이후 겪을 노동권, 자취하고 계시는 대학생분들이 겪을 거주권 등 학우분들이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 전학대회 수정안 발의 中 |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은 ‘더 많은 인권 보장’을 위한 방법이라며 성평위·장인위의 통폐합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편은 학생 자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보다 성평위·장인위의 역할과 의의를 고려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 통폐합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둘은 회칙상 관습적으로 ‘산하 위원회’ 혹은 ‘산하기구’로 분류되고 있지만, 총학생회 산하 홈페이지인 중대중심에서는 ‘특별자치기구’로 불리고 있고, ‘특기구’로 명명되기도 한다. 통폐합 대상이었던 성평위가 실제 운용되는 방식은 학생 자치 기구로서, ‘산하 위원회’나 ‘산하기구’와 달리 총학생회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Q. 각 위원회 사업에 대한 청원이 올라왔을 때 총학생회는 어떻게 대응하실건가요? A. 우선 말씀해주신 것처럼 학칙 상에는 해당 위원회들이 총학생회장 산하기구라고 명시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자체적으로는 특별자치기구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위원회에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된다는 데에도 동의를 합니다. - 이인재 당시 총학생회장 후보, 후보 합동 공청회 발언 中 |
총학생회 win:D 역시 후보 합동 공청회에서 각 위원회를 ‘특별자치기구’(이하 특기구)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성평위에 대한 전 총학생회장의 지속적인 탄압과 성평위 축소 시도, 단독 파면 결정이 특기구의 독립성을 상당히 저해한 만큼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인재 현 총학생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Q. 별도의 특별자치기구로서 귀 위원회가 갖는 역할과 의의는 무엇인가요? KUDA 고려대학교의 장애인 정책의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도, 정책을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다 실질적으로 학교에 재학중인 장애학우들의 편의와 권리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장애 학우 당사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학생회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특기구만의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지속적인 (여학생 인권을 위한) 활동과 (학생 자치에) 개입을 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특기구는 당사자들의 요구를 의제화하기 용이하다. 특기구를 통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학생 자치에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며, 독자적인 사업을 진행한다. 중앙대 성평위의 경우, 봄 축제 인권 부스를 운영하거나 학생대표자를 위한 혐오 발언·성폭력 사건 매뉴얼 제작, 대표자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 학내 성폭력 사건 캐치업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내 소수자 인권의 경우, 독립적인 자치 기구의 필요성은 더욱 중요하다. 이는 특기구가 총학생회의 인권 관련 사업에 자문하기도 하고, 반인권적인 학생 정책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기구는 다수 학생에 집중하는 총학생회 정책에 소수 학생이 배제되지 않도록 힘쓴다. 중앙대 성평위의 ‘정책지원국’ 역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성평위에 따르면 정책지원국은 “총학생회와 연계하여 진행하는 사업들을 담당하여, 진행 사업들을 성인지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검토”[4]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총학생회의 정치적 입장과 진행 사업들을 눈에 띄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아쉬움에 대해서도 역시 새 총학생회에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Q.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KUDA 현재 장애인권위원회에서 당장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는 학내 배리어프리 지도 제작이 있습니다. 원래 총학생회와 함께 하려던 일이었지만, 현재 총학 선거 시즌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집행력이 없는 상황이 되어, 현재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과 따로 미팅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리프트밴을 학내에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그간 자막이 없던 1학년 필수교양이자 온라인 강의인 '자유정의진리' 교과목에 자막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
특기구는 일 년 단위로 교체되는 총학생회와는 달리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사업이 가능하다. 총학생회의 경우 임기가 일 년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사업에 한계가 있고, 장기적인 사업이 어렵다. 그러나 특기구는 상대적으로 기간의 한계로부터 벗어난다.
총학생회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진행하는 사업은 제대로 맺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총학생회 집행부의 경우, 선거 기간에는 특히 일정이 빠듯해 단축 근로를 실시하는 만큼 무언가를 새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KUDA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독립적인 기구의 존재는 총학생회가 집행력을 잃어도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지속성의 확보는 특기구가 사업 진행뿐만 아니라 이미 진행된 사업들을 지속해서 검토하고, 보완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즉, 특기구를 통해 더 다양한 사업을, 꾸준히, 그리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Q. 귀 위원회는 전문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나요? KUDA 동아리 박람회나 인권주간 행사 등에서 부스 운영을 하며 위원회 홍보 및 활동을 하고, 각종 축제에서 배리어프리존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 지속적으로 내부 세미나(반성폭력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성폭력 사건 대응을 위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되는 한에서 구성원 중 일부가 성폭력 상담 자격증을 취득해오기도 했습니다. |
무엇보다 특기구는 전문성의 측면에서 필요성이 강조된다. 독립성과 지속성, 그리고 전문성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총학생회의 임기와 무관하게 구성원이 유지되기 때문에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총학생회의 인권 정책 방향에 제한받지 않고, 사업과 조직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속성의 확보는 곧 전문성의 축적으로 이어진다. 특기구는 대변하는 당사자들의 상황에 대해, 인권에 대해, 그리고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타 단위와는 달리 전문성이 보장된다.
100m 앞, 학생인권위원회에서 U턴입니다.
특기구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아직 왜 성평위와 장인위가 별도로 존재해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정안에서 제시된 학인위 역시 특기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평위와 장인위가 특기구의 위치가 아닌 특기구 산하 국으로 격하되는 순간 발생한다. 산하 국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특기구를 통해 확보한 독립성·지속성·전문성은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린다.
수정안은 힉인위로의 개편과 동시에 인권복지위원회(이하 인복위)와 성평위의 기존 산하 국을 전면 삭제하고 장애국, 여성국 등으로 재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기존 산하 국에서 나누어 담당했던 업무들은 인권 관련 국들의 몫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특기구로 존재할 때, 사업 방향 및 세부 집행 내용에 따라 담당국들을 통해 가능했던 분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예산 분배와 인력 배치를 놓고 각 산하 국은 어디에 더 배치하고 어디에 덜 배치할지 선택해야 한다. 국의 편성이 사업 방향 및 세부 집행 내용이 아닌 인권 증진이 필요한 당사자성을 기준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우선성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생긴다.
가령 학인위는 한정된 예산을 어느 산하 국에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해야 한다. 예산의 분배는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의 개수와 그 크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하 국들은 각축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혹은 ‘봄 축제 인권 부스의 주제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각각의 국들마다 부스를 설치하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 인복위에서도 다양한 인권 관련 이슈 중 ‘흡연권’을 단일 주제로 선정하여 부스를 구성한 바 있다. 이렇게 각 국들이 어떤 인권이 더 중요한지를 두고 논박할 놓일 가능성은 각 특기구가 독립적으로 운용된다면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수정안은 인권의 다양성과 독립적 위상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고, 학내 구성원들 간의 연대를 더욱더 위태롭게 만든다.
“하지만 방금 대표 발의하신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현재 장애 학생들께서 특기구 산하위원회 신설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상설기구가 아닌 국 또는 사업으로 장애 인권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지게 되면 총학생회장의 의지에 따라 변동의 폭이 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달받았습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 전학대회 수정안 발의 中 |
또한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칙에 의해 ‘산하 위원회’ 위원장을 단독으로 임명 또는 파면할 수 있다. (제5장 제30조 ⑦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산하 위원회의 위원장, 위원을 임명 및 파면할 수 있다) 학인위 위원장이 총학생회장에 의해 임명될 때, 매년 학생회의 기조에 따라 사업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독립성의 측면에서도 문제지만 특기구가 다양한 사업을 총학생회와 무관하게 진행하며 보장했던 지속 가능성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인권위 산하 국으로의 축소는 인력 감축을 의미한다. 위원장은 국장으로 지위가 격하되고, 기존 국장들은 운영 위원이 된다. 기존 성평위 산하 국은 정책지원국, 문화홍보국, 연대사업국, 일상사업국, 학술국으로 총 5개였다. 국당 한 명씩만 고려해도 다섯 명으로, 기존의 분업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인원이 학인위 산하 국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국 단위로 진행했던 사업들을 한 명이 모두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또한 전 총학생회장이 언급한 인권만 해도 다섯 가지인데, 현재 위원회 평균 인원은 개별 특기구 수준의 인력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지워질 수 있다.
따라서 수정안의 경우, 개인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력 감축이 필수적이다. 인력을 줄이니 당연히 가능한 사업의 개수도 줄어든다. 실제로 사업당 인력 배치를 묻자 KUDA는 배리어 프리 지도 제작 사업에 7 명이 배치되었다고 밝혔고,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는 행사를 기획·진행할 때마다 전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산하 국으로 통폐합된다면 성평위는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에서 일부를 포기하거나 기존의 사업보다 규모를 축소해야만 한다.
현재 인복위는 다수의 학생 중심으로, 복지 위주의 사업을 진행한다. 명색이 ‘인권’복지위원회지만 ‘인권문화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인권 관련 사업이 전무하다. 현재 학내 인권을 위한 학생 자치 기구는 성평위가 유일한 셈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복위를 학인위와 학생복지위원회로 나누자고 제안했다면 이는 어느 정도 납득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수정안대로라면 총학생회는 임기 내내 꾸준히 제기되었던 인권 외주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기존 특기구의 통폐합을 전제로 하는 주장은 ‘다양한 인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특기구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독립적이고 지속적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학생 자치 기구이다.
한편 올해 가결된 장인위는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의 ‘배정 가능한 공간이 없다’는 주장에 부딪혀 난항을 겪었다. 전 총학생회장은 직접 발의한 수정안에 대해 ‘특기구가 학인위에 통폐합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복위가 둘로 나뉘어 사라진 성평위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체 특기구의 수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학인위도 똑같이 겪을 문제다. 전 총학생회장의 말대로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인권들은 매우 다양하고,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학인위 산하 국도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학인위 산하 국이 늘어날수록 위원회 위원들의 숫자도 점점 커진다. 결국 학인위의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추가 공간이 요구된다.
공간은 학생 자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하나의 주요한 흐름이지 특기구 설립의 걸림돌이 아니다. 학인위도 역시 겪게 될 문제다. 따라서 성평위와 장인위를 학인위 산하 국으로 격하시키는 수정안은 명징하게 인권에 반하는 주장이며, 학생 사회는 오히려 특기구가 필요하다.
200m 앞, ‘인권국’ 방향으로 우회전입니다
“(현재)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총학생회에서 보장해야 하는 인권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현재 성평등위원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성과 관련된 인권, 인권복지위원회와 집행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인권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은 더 다양합니다.” -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 전학대회 수정안 발의 中 |
그렇다고 수정안 부결에 만족하며, 현재 학내 정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이 직접 이야기했듯 ‘총학생회에서’ 보장해야 할 학내 인권은 다양하다. 총학생회까지 직접 닿기 어려운 여러 목소리를 위해 더욱 다양한 특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장 인권 증진에 필요한 모든 특기구를 신설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준비 기간도 필요하고, 절차도 복잡하다. 장애학생인권위원회 역시 가결되기 이전 총학생회의 납득하기 어려운 반대를 여러 차례 마주해야했다. 그러나 필요한 모든 특기구들이 다 만들어질 때까지 그 필요성을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학생회가 필요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을 꾸릴 수 있는 수단이 요구된다. 산하 위원회도, 특기구도, 특기구 산하 국도 아니다. 총학생회 산하 국, 즉 인권국이다.
총학생회 산하 인권국은 총학생회가 매년 총학생회의 기조에 따라 다양한 인권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이다. 총학생회는 앞서 다양한 인권에 관심 가지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인권국 신설은 총학생회의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첫 번째 단계다. 총학생회는 인권국을 통해 인권 외주화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인권 정책을 특기구에 일임하지 않고 총학생회가 직접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대 총학생회> Q. 건국대학교 내 인권국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건국대학교 총학생회는 매년 15개국 이내에서 국을 꾸려 활동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총학에서는 9개국의 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생활복지국’이라는 이름으로 인권 사업을 진행합니다. 2016년에 설립 시도가 있었고, 2017년에 총학생회 산하 인권 관련 국, 단과대학별 인권국, 인권위원회가 정착되었습니다. 이전 신입생 OT에서 젠더 관련 문제가 있었으며, 이에 대한 반성으로 진행된 사항입니다. |
이미 많은 대학에서 총학생회 산하 인권국을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인권연대국,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인권안전국이 운영되고 있고, 제주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2018년 인권국을 신설하였다. 인권국 신설’은 당시 제주대 총학생회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건국대학교 역시 총학생회 산하 생활복지국에서 학내 인권을 직접 다루고 있으며, 회칙을 통해 단과대별 인권국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Q. 다른 단위와 총학생회 산하 인권 관련 국과의 협업이 진행되는지요? KUDA 네, 협업도 합니다. 올해 저희는 인권연대국과 협업해 앞선 답변에서 언급했던 사업인 자유정의진리 자막 도입과 리프트밴 도입을 확정지었습니다. (…) 협업하는 이유는 집행력 때문입니다. 단순히 장인위 이름만으로는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총학의 협조를 얻으면 일처리가 매우 수월해지고 각 단과대에 협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 큰 사업들은 대부분 총학과 연락을 취해 함께 공유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총학생회 진행합니다. 우선, 총학생회의 구성원, 학생지원팀, 그리고 중앙동아리 일부가 모여 한 학기에 2번씩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앙동아리의 경우, 성소수자 동아리와 장애 학생 인권 동아리가 참석합니다. 이는 학생들의 요구를 직접 듣고, 총학생회 차원에서 반영될 수 있게, 나아가 학교 차원에서 반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함힙니다. 건국대학교 예술에서 장애 학생 관련 동아리 구성원들이 캠페인 부스를 만들고자 하여 이를 지원한 바 있습니다. |
총학생회 산하 국은 집행력이 보장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기구의 인권 사업이 실질적으로 학생 사회에서 효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총학생회와의 연계가 요구되기도 한다. 즉, 특기구가 총학생회로부터 독립된 기구이기 때문에 가지는 집행력의 한계는 총학생회를 통해 극복할 수 있고, 보다 체계적인 연계를 위해 인권국의 필요가 강조된다.
<건국대 총학생회> Q. 생활복지국의 업무 중 ‘인권 센터와의 연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생활복지국, 단과대 인권국 및 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 센터가 학내 구성원 간 일어날 수 있는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연계하며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19년 총학생회에서는 특히 임기 초부터 이러한 부분을 신경 써서 진행하였습니다. 가장 도움을 받는 부분은 인권 문제에 대한 자문뿐만 아니라 교육입니다. 인권 센터가 세 차례에 걸쳐서 인권 관련 강연을 진행하고, 이를 의무 수강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첫째, OT 때 모든 학생 대상으로 인권 교육 의무 수강을 진행합니다. 둘째, OT 기획단들 역시 인권 교육 수강이 의무입니다. 셋째, 회장단을 포함한 총학생회 역시 인권 교육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합니다. |
인권국은 교내 특기구 및 인권 센터, 외부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전문성을 보장할 수 있다. 특기구는 전문성이 있으나 집행력의 한계가 있고, 반대로 인권국은 집행력이 보장되지만 전문성이 아쉬울 수 있다. 특기구와 인권국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둘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서 특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다면 마찬가지로 인권국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500m 앞, ‘연석 회의’로 진입합니다
“모든 인권, 특히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를 위해 총학생회 산하 위원회를 개편하는 것에 대해 수정 안건 발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 전학대회 수정안 발의 中 |
지금까지 인복위는 복지 위주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성평위·장인위 통폐합이라는 독단적인 결정을 제외하면, 인복위를 ‘학생인권위원회’와 ‘학생복지위원회’로 개편하려는 시도는 일정 부분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총학생회의 새로운 시도를 충분히 기대해 봄 직하다. 학인위를 연석회의 기구로 활용하여 학내 인권 증진이라는 목적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서강대학교 성평등위원회(서강대학교 총학생회 답변) 성평등위원회의 경우, 중앙집행위원회로서 각 학생회, 연합회, 협의회의 추천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학생회 성평등주체인 집행위원장이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평등위원회의 사업의 경우, 모든 학생회, 연합회, 협의회의 협조 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학내인권단체협의회(고려대 여학생위원회 답변) 현재 학내인권단체협의회 회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내인권단체협의회는 학내 소수자 인권단체들의 공통의 논의기반 마련을 목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서로 다른 소수자성 간의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연대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또한 학내외에서 발생하는 소수자인권침해사안 공론화의 중심 주체로서 총의를 수렴합니다. 현재는 총학생회 인권연대국, 장애인권위원회, 소수자인권위원회, 여학생위원회,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 사람, 이주민인권 동아리 위드MI, 고려대 채식주의자-페미니스트 모임 뿌리침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회의는 한 달에 한번 담당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학생인권위원회(건국대학교 총학생회 답변) 건국대학교 학생인권위원회는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서 총학생회 및 각 단과대 및 중앙기구 단위별 연합체입니다. 위원은 총학생회 집행국과 단과대학 학생회, 중앙자치기구의 국장으로 각 1명씩 두고 있으며, 정기 인권위원회 소집은 매월 2회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현재 많은 학교에서 연합체, 혹은 협의회의 형태로 연석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연석회의에는 총학생회 산하 인권국, 특기구, 단과대학 학생회, 관련 동아리 등 다양한 단위별 대표자가 참석한다. 이러한 학내 정치 방식은 앞서 전 총학생회장이 지적한 ‘모든 특기구를 다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 연석 회의는 다양한 인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이면서 동시에 총학생회와 특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위 간의 지속적인 연결 고리가 된다.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집행력과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한다는 의의가 있다.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총학생회의 의지에 따라 인권의 논의가 좌우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단위별 대표자들의 참여로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학생 사회 가까이에서 이루어지는 인권 사업이 가능해진다. 가령 단과대 축제 내 배리어프리 존, 단과대별 성평등위원회 설립 추진 등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학인위로의 개편이 어렵고,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덜 혼란스러울 것이라 예상된다면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특기구 장이 배석하는 방법도 있다. 특기구 장이 대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의결권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배석을 통해 집행국 업무 집행의 조정 등 특기구의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배석을 통해 집행국 업무 집행의 조정 등 특기구의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동아리연합회나 단과대학과의 꾸준하고 정기적인 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새로운 위원회의 신설이 아니기 때문에 알파 총학생회에서 장인위 설립 반대의 이유로 강하게 주장했던 공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 가능성 있다.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의 수정안은 특기구를 ‘학생인권위원회’라는 이름 아래 욱여넣는다. 해당 수정안의 근거가 ‘학내 인권 보장’이라면 이는 단지 허울 좋은 명분에 그칠 뿐, 사실상 지금 있는 특기구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정안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 매우 짧은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다행히 수정안이 부결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학내 인권을 위해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총학생회를 맞이하게 된 지금, 이 제언은 인권을 위해 고민하는 총학생회에게 더욱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하나, 우리는 특별자치기구가 필요하다. 둘, 총학생회는 산하에 인권국을 신설하여 인권 외주화라는 지적을 극복하고, 직접적인 인권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셋, 연석회의 마련이라는 총학생회 및 특기구 개편을 통해 학내 인권 사업의 실효성을 획득할 수 있다.
전 총학생회장의 수정안이든 이 제언이든 결국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 ‘인권’이다. 제62대 총학생회 win:D가 출범했다.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캠퍼스 내 배리어프리 실현”과 더불어 학내 인권에 대한 세부 정책 및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인권을 향해 가는 총학생회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학생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걸음을 옮겨야 한다. 부디 총학생회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며 이상으로 경로 안내를 종료한다.
[1] 총학생회가 생각하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민진 전 총학생회의 대답은 “제가 민주주의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민주주의를 제안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지만”으로 시작했다.
[2] 김민진 전 총학생회장은 2019년 2학기 전학대회에서 특기구 개편을 공고 안건이 아닌 장인위 설립 안건의 수정안으로 발의한 것이 ‘성평위 폐지’에 대한 논란을 축소시키기 위함이 아니냐는 지적에 “전학대회 전날 밤부터 고민한 사안이기에 사전에 공고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3]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고려대학교의 장애학생위원회(이하 KUDA)와 여학생위원회, 서강대학교 제47대 총학생회 도래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 내용을 직접 인용하였다. 건국대학교 제51대 총학생회 청심의 취재는 유선상으로 이루어져 녹취를 바탕으로 일부 문장을 어법에 맞게 재구성하였음을 밝힌다.
[4] 제61대 알파 총학생회 성평위 신입위원 모집 공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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