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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9 가을겨울, 77호 <사이버 대학>

선량한 시민한테 왜이러십니까? - 선량한 차별주의자 서평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3. 30.

수습위원 김시원

 

같은 출발선 앞에 선 청년 21. 어쩌면 평범해 보이는 질문 56. 하지만 질문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뒤로 가야 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선 청년인가요?”

스브스뉴스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소셜 실험 영상이다.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던 청년들은 질문이 하나씩 쌓여갈 때마다 뿔뿔이 흩어졌다. 도대체 어떤 질문이기에 그들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걸까.

'가족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당했다면 한 발 뒤로'

'결혼 혹은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두렵다면 한 발 뒤로'

'공공장소에서 조롱이나 시선을 받지 않고 애인과 스킨십 할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근처 어떤 화장실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소셜실험...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 / 소셜실험 ‘너라면?’ ⓒ 스브스뉴스

차별이 보이나요?

똑같은 질문임에도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갔고, 누군가는 씁쓸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이 장면은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무시해왔던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왜 이제야 차별이 보이는 걸까. 실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의문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다. 실험의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그렇기에 볼 수 있는 건 나의 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이다. 몸을 틀어 뒤를 보지 않는 한 뒤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받은차별은 잘 알면서 하는차별은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무관심, 혹은 의도적인 무시로 인해 차별은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차별로 인한 불이익에서 벗어나 있거나 때로는 차별로 이익을 보기도 하는 가해자들은, 차별을 이야기하는 피해자들을 외면한다. 불평등한 현재를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끼고, 자연스럽게 차별에 가담한다. 그렇게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은 특권층이 된다.

세상에 차별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했다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분명 문제다. 애초에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차별의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차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교수는 모두 함께 차별에 대해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랐다. 스스로가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위한 책을 썼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주로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민에 관련된 논쟁과 사건들을 담았다. 나는 차별의 가해자가 아니라는 생각, 차별의 피해자들은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 우리 사회는 충분히 공정하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대목은 공감되는 반면, 어떤 대목은 이게 정말 차별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끝까지 읽을 때만큼은 열린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비판적 수용이라는 명목하에 책의 메시지를 취사 선택하는, ‘비판적인 편식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당부하며 글을 시작한다.

선량한 시민한테 왜 이러십니까?

우리가 차별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말, 내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특권이었다는 말은 분명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저는 선량한 시민일 뿐입니다.’라고 답하거나 나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누리는 특권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말을 바꿔보자. ‘우리는 차별의 수혜자야.’라고 말하면 어떨까. 누군가 뒤로 가야만 했을 때 태연하게한 발 나올 수 있었다면, 차별에 대해 무지했고 무관심했던 것이 의도는 아니었으나 그로 인해 모두가 얻지 못하는 이득을 보고 있었다면 이마저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쯤 보다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 ‘차별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나? 왜 출발선보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뒤돌아보지 않았을까?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우리는 차별이 나쁘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하여 나는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둘째, 차별은 너무나 익숙하다. [각주:1]

근처 어떤 화장실이든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고려가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잘못된 것처럼 보이기가 어려울 정도로 익숙하다. 저자가 드는 또 다른 예시는 교통수단이다. 많은 사람이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같은 교통수단을 타면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시외버스가 서울에서 부산, 전주, 당진, 강릉을 오가는 4개 노선에만 있는 데다가 버스 자체도 총 10대밖에 없는 상황에서_이마저도 20191028일부터 운행된 것이며, 교통약자법이 시행된 지 1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_ 시외버스를 타는 일은 모두에게 당연하지 않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각주:2]

이주민의 경우는 어떨까. 2011년 부산의 한 사우나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귀화한 한국인인 구수진씨가 입장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 주인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더라도 얼굴이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구수진씨는 112에 신고했지만, 사우나 주인이 외국인이라 에이즈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손님들이 사우나에 외국인이 오는 걸 싫어한다며 사정을 호소하자 결국 경찰은 구수진씨에게 다른 사우나로 가라고 안내했다. [각주:3] 2019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거리를 자유롭게 거니는 것은 모두에게 당연한 권리일까? 거리로 나온 장애인, 애인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성 소수자, 생김새가 다른 이주민에게 노골적인 시선을 보낸 적은 없는가? 거리를 걸을 때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편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 것도 특권일 수 있다. 무언의 시선은 압박이 되고, 그들을 장소에서 밀어낸다. 거리라는 중립적인 공간도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표지. ⓒ창비

우리는 항상 선량한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오찬호 교수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비록 차별주의자이지만 겉으로는 차별을 반대한다. 차별은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차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정한 차별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그 극단에 있는, 괴물이 된 20대를 그린 책이다. 몰랐던 차별은 인지하는 순간 많은 희망이 보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공정하며 정당하다고 믿는 차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만큼이나 아이러니한 공정한 차별은 능력주의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다. 능력주의는 누구나 능력 있고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다. [각주:4] 이는 흑인은 백인보다 열등하다. 성차별은 어쩔 수 없다.’ 같은 말보다는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린다. 성별이나 인종은 노력이나 능력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가 아닌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의 관점에서는 많은 차별이 정당화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과 남성, -서울대학교와 지방대를 똑같이 대우하는 게 오히려 더 불공정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다른 것은 다르게는 능력주의의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능력주의의 필수 전제를 지적한다. 능력주의의 함정은 누구나에 있다. 정말 누구든지 열심히만 하면 똑같이 성공할 수 있을까?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 규칙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전제가 있다. 무슨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평가 기준을 만들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편향이 없어야 한다.” [각주:5]

우리는 이런 능력주의에서 중요한 전제를 잊고 있으며, 그 전제가 지켜지는지에 대한 관심도 감시도 없다. 편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능력주의의 체계를 지나치게 믿고 있다. 저자는 현재 보편화 된 많은 평가 기준은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편향되어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학교의 간판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평가 기준이며 대학의 입시 제도는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편향이 없는 공정한 규칙이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 지역적 차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 비싼 학원비나 입시 컨설팅비를 낼 수 없는 지방의 가난한 학생과 대치동에서 유명 강사에게 사교육을 받고 입시 컨설팅을 받는 부유한 학생의 조건은 절대 같지 않다. 대학의 명성은 좋은 직장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고 그는 임금 격차로 경제적 불평등을 낳으며 부의 대물림까지 이어질 수 있다. 편향된 기준에 의한 능력주의는 끊임없이 차별을 낳는다.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 구조적 차별에 대하여

앞서 말했던 차별들이 모르고 하는 차별과 알고도 하는 차별이라면, 구조적 차별은 오랫동안 굳어진 사회 구조 안에 있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다. 구조적 차별의 위험한 점은 차별의 피해자도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가까이에서 본 새장은 철망 한 줄에 불과하지만, 물러서서 바라보면 갇힌 새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새장을 가까이에서 보면 철망이 한 줄씩 보인다. 철망은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얇은 선 하나가 새의 비행을 방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새장에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아야만 그 철망들이 모여 새장을 이루고 있으며 이 새장이 새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주:6]

우리나라의 직종 간 성비를 보면 임금이 낮은 직종에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경향이 있다. 이는 단지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노력해서 임금이 높은 일자리를 구한 것일까? 대학교에서는 항상 남초과여초과가 구분된다. 특정 학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어느 대학이나 여학생이 많은 과나 남학생이 많은 과가 정해져 있다. 흔히 기계, 컴퓨터, 토목 관련 전공은 남학생의 비율이 높고 교육, 간호, 인문사회 관련 전공은 여학생의 비율이 높다. [각주:7] 

여학생이 많은 전공계열

여학생이 적은 전공계열

유아교육(96.4%)

기계·금속(7.7%)

교육일반(82.4%)

전기·전자(12.5%)

간호(81.2%)

교통·운송(13.5%)

미술·조형(77.0%)

토목·도시(15.8%)

초등교육(70.7%)

컴퓨터·통신(21.8%)

특수교육학(68.2%)

산업(23.4%)

이렇듯 수상할 정도로 극단적인 성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여자는 수학, 과학에 약하다.’는 오랫동안 사회에 남아있는 편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견이 그렇듯,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이나 과학을 못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불분명하다. 2018 수능 결과를 보면 국어, 수학 가형, 수학 나형에서 모두 여학생의 표준점수 평균이 높았다. 다만, 이공계열 진학에 필요한 수학 가형에 응시하는 여학생의 비율은 낮았다. 2018학년도 수학 가형에 응시한 여학생은 34.4%, 64,4%였다. [각주:8] 왜 여학생들은 수학 가형에 응시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여학생들이 수학이나 과학 과목의 성적이 부족하여 이공계열 진학을 포기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이공계열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쪽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여성은 수학에 소질이 없다는 편견은 고정관념 압박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능력을 저평가하여 수학 관련 진로 선택을 피하게 되고, 결국 직종 선택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성별 간 임금 격차를 낳는다. 대한민국의 성별 간 임금 격차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문제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본인조차도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용어와 쉽게 매치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구조적 차별을 지속시키는 메커니즘이다.

 

차별의 교차로에 선 사람들

아직 내가 차별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낯설다면, ‘차별의 교차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차별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 집단을 구분하는 범주는 성별, 지역, 학벌, 성적지향, 국적 등 아주 다양하다. 만약 여성, 흑인, 동성애자인 사람이 인종차별로 인해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하자. 여기서 인종차별 문제가 해결되면 이 사람은 불이익 없이 취업할 수 있을까? 만약 성차별과 성 소수자 차별이 남아있는 세상이라면, 그는 다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차별을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다른 차원에서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딱 한 가지 문제만 해결되면 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으며, 어디에서도 구제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돌아가서, 56개의 질문에 뿔뿔이 흩어졌던 21명의 청년은 어떻게 구제될 수 있을까? 출발선으로부터 열두 걸음 뒤에 있던 사람은 장애인이자 성 소수자이자 수급자였다. 이렇듯 다차원으로 넘어가는 논의를 모두 풀어내는 것은 아직 요원하며,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차별의 경험은 어느 한 가지 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러한 다중성을 생각해야 비로소 내가 차별을 받기도 하지만 차별을 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각주:9]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연대이다. 나의 기준에서 그 사람은 주류일 수 있지만, 그의 기준에서는 내가 주류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른 불편함과 부당함을 공감해주면서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단단해진 우리는 세상의 차별과 더 강하게 맞설 수 있다. 같은 출발선에서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마지막 질문과 함께 글을 마친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결혼 혹은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두렵다면 한 발 뒤로

나의 가족 형태를 사람들에게 종종 설명해야 한다면 한 발 뒤로

1, 2년 단위로 집을 옮겨야 한다면 한 발 뒤로 

공공장소에서 조롱이나 시선을 받지 않고 애인과 데이트할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근처 어떤 화장실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한 발 앞으로

내 식습관을 구구절절 설명한 적이 많다면 한 발 뒤로

대학이나 직장에 학교 동문회가 있다면 한 발 앞으로

자신의 성별, 장애, 신체 등이 미디어에서 희화화된 적 있다면 한 발 뒤로

가족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당했다면 한 발 뒤로

휴학하고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면 한 발 뒤로

 

 

 

  1. 팟캐스트 듣똑라에 출연한 저자의 말 인용 [본문으로]
  2.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29[본문으로]
  3.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119[본문으로]
  4.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105[본문으로]
  5.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106[본문으로]
  6.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78[본문으로]
  7.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69[본문으로]
  8.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도자료: 2018학년도 수능성적분석결과발표[본문으로]
  9.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 58[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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