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문화 편집위원회
미국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최근 미국 내 성사된 결혼 중 1/3은 온라인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었다. 온라인이 생활의 근거지가 되며,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아직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편이나, 그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역시 온라인 데이팅 시장규모는 커지고 있다.
누군가는 데이팅 어플이 관계의 규칙들을 해체 시켰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데이팅 어플의 시스템이 관계의 책임을 가볍게 만든다고 하고, 누군가는 관계의 가능성을 확장 시킨다고 한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온라인이 관계 맺기의 가장 일반적 형태가 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의 아웃팅 위험이 뒤따르는 퀴어가 그렇다.
분석에 앞서 현상을 짚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데이팅 어플을 사용하는, 다양한 이들의 경험과 데이팅 어플에 대한 시선을 엮었다.
홍차를 좋아하세요?
레이디그레이
초등학교 사회시간이었던가, 인터넷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홍차를 좋아하는 학생일 경우, 주변에서 함께 홍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라면 쉽게 홍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전 세계 곳곳에 있는 홍차 애호가들과 연결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정말 배웠던 것인지, 사후에 조작된 기억인지는 알 수 없다. 내겐 틴더가 그랬다. 어디선가 그런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온라인을 통해 맺어진 커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서로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곧바로 신뢰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위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그럴 듯도 하다.
데이팅 어플에서 상대방을 고르는 선택지는 (틴더, 서울을 기준으로) 체감상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난다. 그들과 연결되는 과정 또한 지나치게 간단하다. 마음에 드는 상대의 프로필을 오른 쪽으로 스와이핑 하는 것이다. 상대 역시 내 프로필을 오른 쪽으로 스와이프 했다면 서로는 ‘매치’된다. 내게 제시된 아주 많은 선택지 속 가장 마음에 든 바로 그 상대를 선택하고, 아주 간단한 과정을 통해 연결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오직 내가 필요한 순간에.
누군가 내게 데이팅 어플의 장점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 ‘선택지의 다양성’을 꼽을 것이다. 나는 주변에 흔치 않은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홍차 대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혹은 온갖 종류의 차를 모두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인기 없는 감독의 영화 대사를 프로필에 적어둔 사람, 미처 몰랐지만 내 취향이었을 밴드의 음악을 추천해주는 사람, 평소라면 깊게 마주칠 일 없었을 일식 요리사나 재활 치료사를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차 따위 관심 없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음은 아주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후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대학에서만 맺은 내 주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접점이 많은 편이었다. 같은 전공을 배우거나, 같은 취미를 갖거나, 대개 비슷한 생활환경을 누렸다. 오프라인에서라면 그저 스쳐갔을, 나와 접점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오래도록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그 관계가 이성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더라도 재밌고 즐거운 일이었다.
한편 데이팅 어플의 ‘간편함’에 대해서라면 나는 조금 복잡해진다. 특히나 간편함에서 나오는 사용자 경험을 강조하는 틴더라면 더욱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어플을 켜고 상대방을 만나기까지 내가 하는 일은 사진이 크게 걸린 상대방의 프로필을 넘겨보며 그들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프로필에 기재된 정보는 제한적이기에 사용자는 상대의 외모와 느낌 같은 것을 기준 삼아 상대를 평가한다. 그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등록했고, 내가 어플에 접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그들을 손쉽게 평가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서로를 대상화할 관계가 그대로 괜찮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투입된 노력이 적은 만큼 관계가 가벼워지는 데이팅 어플의 경향성을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아마도 나는 데이팅 어플을 켜게 될 것이다. 홍차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그와 가벼운 첫만남을 가질 것이고, 그 이후에 가볍거나 가볍지 않을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다.
유투브 뮤직 알고리즘이 내게 추천해준 음악은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인트로만 들은 채 평가하고, 쉽게 재생목록에 추가하거나 삭제할 테다.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된 후 직접 찾아 다운로드 받은 음악 보다는 쉽게 질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래도록 듣고 싶은 음악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굳이 찾아야 할까, 같은 의문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틴더의 열다섯 가지 얼굴
해이
*이 글에 언급된 이름들은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데이팅 앱 ‘틴더’에서 만난 사람들은 종종 내게 ‘틴더에서 무엇을 찾고 있냐’고 물었다. 원나잇? 섹스 파트너? 아니면 애인? 그 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정해놓지 않았어.” 미리 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명확히 연애 혹은 섹스를 원했다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관계를 이어 나갔다. 누군가와 채팅을 한 후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만난 후엔 그 사람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싶었고 그런 다음날엔 그 사람을 다시 볼 만한 흥미가 있기도 했고 없기도 했다. 그 사람을 한 번 더 보고 싶으면 만나자고 했고 그게 두 번 세 번이 되었다.
처음 틴더를 다운로드 받아 시작했을 때, 나는 두 달 반 간의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태국의 어느 폭포에서, 정글에서, 말레이시아의 랑카위 섬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들을 따라가 그들의 침대에서 잤다. 몇 시간 전에 처음 눈빛을 주고받았던 때를 믿을 수 없을 만큼 은밀하고 사적인 접촉이 이어진 후 캄캄한 방 안에서 이어지던 긴긴 이야기와 그 다음날 낮의 평범한 데이트, 혹은 그냥 깔끔하게 안녕. 그런 모양의 관계는 한국에서는 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색다른 관계를 더 찾고 싶었던 나는 자연스레 틴더에 이끌리게 되었다.
한국에서 연애와 원나잇은 대개 정형화되고 이분되어 있는 것 같다. “~하면 ~다”라는 규칙들이 통용된다. 일단 고백을 받았으면 사귀거나 남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일단 사귀면 상대를 사랑해야 하고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 그래프로 그리자면 계단형으로, 사귐이라는 지점을 넘어가는 순간 의무의 정도가 수직상승해 같은 수치로 쭉 유지되는 것이다. 헤어지고 나면 그래프가 수직하락해 상대를 차단하고 다시는 보지 않는다. ‘썸’을 한 달 이상 타면 상대가 마음이 없는 것이니 그를 버려야 한다. 한편 첫 만남에 자고 나면 연애로 이어질 수 없다. 틴더로 만나면 무조건 원나잇이다.
과거의 나는 그런 규칙들에 메여 바보 같은 연애를 했었다.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가 ‘고백’을 하면 사귀거나 관계가 끝나거나 둘 중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곤 했다. 호감이 있으니 멀어지는 것보단 사귀는 게 나은 선택이겠다 싶어서 연인 관계가 되고 나서는 그를 사랑해야 하고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헤어지면 그와 나의 관계는 끝이고 나는 그와 관계를 끝내고 싶지는 않으므로 사랑하지 않는데도 관계를 질질 끌어가곤 했다. 상대에게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우리 사이를 아직 사귀는 사이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결국 유야무야 사귀는 사이가 되어 버린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지거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나를, 사회의 보편적 규칙에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았다. 그런 규칙을 갖고 있지 않은 외국인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틴더를 하면서 점점 규칙들로부터 벗어나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틴더에서 처음 만난 사람인 알렉스는 한국에 온지 두 달이 된 호주인이었다. 틴더가 원나잇용 앱으로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알렉스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아마 오늘 그와 자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강남의 어느 술집에 앉아 세 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국의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러고 나서 내 예상대로 그의 집에 가서 잤다. 그 후 어느 쪽에서도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틴더의 전형에 맞는 만남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꼭 원나잇이 아니기를 바란 적도 원나잇이기를 바란 적도 없으니까.
알렉스 이후에도 몇 사람과 더 그런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온 빌리와는 처음 채팅할 때부터 느낌이 달랐다. 이건 연애다, 직감했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던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긴긴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에게 조심스러웠으므로 잠자리는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우리는 3주 정도 간질간질한 만남을 이어나갔었다. 틴더로도 연애가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나는 홍콩에서 온 샘의 서울 여행 가이드가 되어 주기도 하고, 인도인 유학생 로힌과 낮 열두시에 만나 공원에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눈 후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도 했다. 제이슨은 첫 만남에 친구 네 명을 데려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 여섯은 그냥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기도 했다. 이게 끝이야 정말? 이렇게 건전해? 한편으론 어떤 불문율이 지배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 같아 좋았다. 나 또한 그들 덕분에 틴더로 만나면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브라질에서 유학 온 가브리엘은 나와 저녁을 먹고 우리 집에 와서 잤다. 나는 가브리엘과 살을 맞대고 누워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메이카인 간호사 코리는 처음 만난 날 밤에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이후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주한미군 출신의 제이를 만나서는 술을 마시고 이태원 밤거리에서 춤을 췄다. 제이는 내가 가장 진지하게 만났던 사람이었는데, 틴더하는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섹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약 1년 간 한국과 외국에서 틴더를 통해 만난 열다섯 명의 남성들과의 시간은 그들의 국적과 개성만큼이나 달랐다. 사람들이 틴더가 이렇다 저렇다, 틴더하는 사람들은 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틴더를 이상화하고 싶진 않다. 원나잇을 목적으로 틴더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특히 상대가 남성일 경우 그로부터 폭력을 당할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소위 말하는 ‘양남’을 이상화하고 싶지도 않다. 여성혐오적, 인종차별적이거나 예의 없는 남성들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남성에게 있지 틴더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데이트 폭력은 대부분 틴더 외의 평범한 경로로 만난 남성으로부터였다.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남성을 만나는 일은 여러 위험이나 회의를 수반하곤 하지만, 그 속에서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가 정한 규칙대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연애 그래프의 모양이 계단형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연애나 원나잇의 모양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틀에 갇히지 않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다양한 가능성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꼭 틴더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만남에서.
우리의 자만추는 10101
토마토
저는 팬로맨틱 1, 팬섹슈얼 2여성입니다. 상대의 젠더에 상관없이 그를 사랑합니다. 어쩌면 그를 사랑하고 난 후에는 그의 몸과 사회적으로 구성된 부분들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동안 숱한 남성 애인을 만났습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세상이 이성애만을 허용하는 낯선 곳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이 문장을 보게 되었고, 몇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성이라서 사랑으로 착각한 우정과, 동성이라서 우정으로 착각한 사랑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중학교 일학년 때 뒷자리에 앉았던 아이는 참 예뻤습니다. 쌍커풀 없는 큰 눈에 긴 생머리, 콕콕 박힌 주근깨가 보였습니다. 그 애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부아가 일었고, 어느 날에는 입술만 보여서 그 감정이 입밖으로 튀어나온 적도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친구가 볼에 뽀뽀를 해준 날 잠을 잘 수 없었고 나중에야 용기 내어 그 애에게 뽀뽀를 했습니다. 속으로 세상에, 우정의 표현으로 뽀뽀를 하는 정 많은 아이가 있다니 감탄을 연발했지만 제가 며칠 동안 망설였던 이유는 비단 우정만이 아닌 감정 때문이었겠지요.
퀴어에게 ‘자만추’는 쉽지 않습니다. 여성인 제가 남자를 만나는 건 썩 어렵지 않아요. 그렇지만 남성패싱 3되지 않는 사람에게 게이더 4가 돌고 호감이 생길 때는 심사숙고를 거쳐야 합니다. 일단 노트북의 스티커를 봅니다. QUEER 스티커나 무지개 또는 저와 취향이 비슷한 어떤 걸 열심히 탐색해요.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어도 퀴어포비아가 아닌지, 앨라이 5인지 퀴어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실례이니까 제가 먼저 커밍아웃을 하곤 했습니다. 퀴어임을 숨기지 않는 저이지만 아웃팅 6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거 하나 알자고 사실 많은 것을 감수하는 것이죠.
연애도 연애이지만 일단 사람을 좀 만나고 싶습니다.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위와 같은 어려움은 당연합니다. 많은 퀴어들이 숨어 살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으면 어플을 다운받습니다. 깔았다가 며칠 만에 현타―나는 왜 이렇게 사람을 만나야 하지?―를 느끼고 지우곤 했지만, 어김없이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요. 저는 어플 가를 씁니다. 어플 가에는 메가폰과 랜덤전화 기능이 있습니다. 메가폰에는 주로 자신의 취향, 스타일, 바디 프로필, 만나고 싶은 사람, 감정, 번개 등이 올라와요. 솔직히 메가폰은 제 취향이 아니어서 저는 주로 랜덤전화를 합니다. 전화를 받을 상대의 스타일을 고르면 매치가 되는데, 수 초 만에 연결될 때도 있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할 때도 있습니다. 드디어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알림음이 나오면, 굉장히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누군가는 그 정적을 깨야 하는 순간이 와요. 여보세요,
랜덤 전화의 매력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데 있을 겁니다. 그가 사는 지역, 나이, 키와 머리길이, 아무것도 모른 채 목소리에 맡기게 됩니다. 제가 현실에서 타인을 볼 때에는 아무래도 시각이 먼저 작용하곤 하는데, 목소리가 첫인상인 경험은 생소하면서도 떨립니다. 보통 안녕하세요 뭐하고 계셨어요 몇살이에요 어디사세요 같은 질문이 오갑니다. 저는 상대방이 너무 멀리 산다고 하면 기대가 확 줄어요. 직접 만나기는 어려울 테니 그냥 한 차례 재밌게 수다를 떨고 끊곤 합니다. 어플이니까 상대방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도 몰라요. 그저 우리는, 음질 안 좋은 인터넷 전화를 붙잡고, 초과요금을 물어 가며 다른 퀴어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목소리밖에 없으니까 그를 상상하게 되는 것도 있고 그에게 완전히 빠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플의 목적이 애인을 구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역시 애인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벽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내 얘기를 하며 나름 위안을 얻습니다.
얘기가 재미있어서 오픈카톡으로 옮겨 가면 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아는 것은 목소리뿐인 사람과 연락을 오래 이어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화를 할 때에는 이 사람이 귀엽고 친해지고 싶다가도 환경이 활자로 바뀌어 목소리가 사라지면 아예 다시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 김이 샙니다. 오프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나에게 부담스러운 요구를 하면 어쩌지, 그가 장기매매를 알선하러 온 사람이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됩니다. 카페에서 손을 옴찔거리며 기다리다 그가 도착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 차를 마저 마시며 얘기를 나눕니다. 대부분은 가치관이 다르거나 만났던 목적이 서로 달라서 더 연락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시 전화를 하게 돼요. 이불 속에서 뜨뜻하게 다른 퀴어와 놀면서 마음에 안 들면 끊어버리거나 마음에 들면 아침 해가 뜰 때가지 통화하는 게 저에게 더 잘 맞습니다.
지난 연애를 마무리하고 화났던 건 시스젠더 7 헤테로 8 남자친구가 나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 한다는 게 더 적절할 겁니다. 퀴어로 살면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주변 사람이나 국가로부터 안전과 복지를 보장받으며 생존할 수 있을지 많이 걱정됩니다. 30대 이상의 퀴어 모델이 다양하지 않고, 내가 머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상상되지 않으니 자꾸만 제 삶은 스물아홉 언저리에서 끝날 것 같아 우울증세를 겪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이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기 피곤합니다. 솔직히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제 일상의 맥락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요. 퀴어에게는 더 다양한 퀴어 서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 전화에 손이 가는 것 같아요. 전화를 하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 나이를 한 살 더 부르는 고등학생, 직장을 다니며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트랜지션을 한 사람, 전 여자친구를 잊고자 방황하는 사람,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새삼 이 세상 모든 곳에 퀴어가 있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데이팅 어플이 받는 편견이 있습니다. 위험하거나 현실에서 밀려난 인간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겨지기도 하죠. 그렇지만 현실 세계(라고 불리우는 것)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요? 많은 퀴어들은 숨어 있습니다.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오히려 퀴어들에게는 어플까지가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시작된 헤테로 연애는 의심과 걱정을 많이 받곤 합니다. 생활 반경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아 연인으로 발전하는 게 전형적인 서사라고 생각되니까요. 퀴어끼리의 연애는 오히려 어플이 매뉴얼입니다. 친구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플을 지배하는 가장 큰 분위기는 연애예요. 이쯤 하여 여러분이 궁금하셨을 만한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답니다. 언니와의 전화는 유독 재미있었어요. 혹여나 잘못 눌러서 끊기면 서로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얼른 카톡으로 옮겨 보이스톡을 했습니다. 밤을 꼴딱 새고 몇 시간 후면 학교를 가야 하는데 당장 만나러 가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어플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언니도 저도 처음입니다. 이 설렘이 어플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의심하면서, 실제로 만났을 때 좋은 감정이 와르르 무너질까 걱정하면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이어 나갔습니다. 언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다정하고 유머 감각 있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어플 밖에서, 그리고 스마트폰 밖에서 만난 언니는 더 멋졌습니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저희가 어플 가 최고의 아웃풋이라고 얘기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어플로 만난 언니가 제 인생에 들어왔는데, 어플도 현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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