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평화
― 코로나 시대, 싸우기 싫은 사람들에게
편집위원 김지우
시간은 흐른다. 하지만 모든 시계가 똑같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초침은 더 느리게 움직인다. 2019년에는 자정 2분 전이었던 ‘지구 종말 시계[1]’의 시간은 올해 20초나 줄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초침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다.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질수록 지구 멸망이 다가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0초뿐이다.
핵무기를 둘러싼 문제는 ‘지구 종말 시계’의 시간을 정하는 기준 중 하나다. 처음 고안된 계기도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을 경고하기 위함이었고, 오늘날도 기후 변화와 파괴적 기술들을 포함해 핵 실험이나 핵무기 보유국 간의 핵 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된다. 전쟁의 위험이 커질수록, 핵무기 위협이 잦을수록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현대의 전쟁은 곧 과학 기술의 집약이다. 핵을 비롯해 지금도 개발 중인 전쟁 무기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음속보다 5배 빠른 미사일, 한 번의 충전으로 1000회를 발사할 수 있는 레이저 소총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구 종말이 초 세기를 앞둔 지금,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가 필요하다. 유엔헌장도 세계’평화’와 안전을, 세계인권선언도 세계 ‘평화’의 기초를 강조한다. 평화가 대체 무엇이길래?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대로 ‘평온하고 화목’하다든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그렇다면 70억 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에서 어떠한 전쟁도, 분쟁도 없는, 일체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과연 가능한 걸까.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한 전 지구적 비상 사태 아닌가.
코로나 19가 바꾼 오늘, 세계는
당장 코로나 19로 내 앞가림 하기에도 급한데 느닷없이 ‘평화’라니. 너무 팔자 좋은 소리다. 왜 하필 지금이냐는 물음이 들리는 것도 같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이라서 해야 한다. 그동안 기술·교통의 발달과 국제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마치 ‘국경 없는 세계 시민’처럼 살았다. 모두가 그런 시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19가 본격화된 이후 보이지 않던 경계를 새삼 실감했다.
장면 #1. 오늘부터 문 닫습니다
자유롭게 세계 곳곳을 오고 갔던 일이 어느새인가 까마득하다. 4월 1일까지 총 181개국이 외국인 입국을 통제했다. 그 중 124개국은 아예 국경 봉쇄를 선언했다. 국제 인적 교류를 사실상 전면 중단한 상황에서 물자라고 제대로 오갈 리 없다. 각국의 약품, 식량, 위생용품들도 연이어 수출이 중단됐다. 베네수엘라는 병원에서조차 깨끗한 물이 부족해 의료진이 식수를 싸 와야 했으며, 북한은 엄격한 자가 격리 감시밖에 전염병 대응책이 없어 자가 격리자가 아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에 이탈리아가 긴급 지원을 호소했지만 다른 26개 유럽 연합 국가 중 어느 곳도 응답하지 않았다. 거기다 국경 폐쇄로 인해 솅겐 조약[2] 역시 무력화됐다. 혼란 속에서 ‘하나의 유럽’은 다시 여럿으로 쪼개졌다.
코로나 19의 놀라운 전파력이 주는 공포는 세계화와 세계시민주의를 외치던 목소리를 너무나도 손쉽게 지워냈다. 유럽 연합―과 소수의 비연합국―의 ‘열린 국경’ 원칙이 흔들리는 모습은 (브렉시트만큼이나) 충격적이다. 해당 원칙이 20세기의 국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실험으로서 가지는 혁신적 의의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장면 #2. 그건 아마 내 잘못은 아닐 거야 (네 잘못이야)
유럽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19의 근원지를 놓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모든 나라가 혼란한데 소위 G2라고 불리던 초강대국도 해결은 뒷전이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그동안 국제 경찰을 자처했던 미국은 각국의 호소에도 ‘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히려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미국인이라면 중국 정부에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3] 중국은 코로나 19 중국 책임론을 두고 누명이라며 잡아떼는 중이다. 그동안 세계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느라 온갖 문제에 개입하던 두 초강대국조차 싸우느라 바쁘니 이제는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국제 공조가 절실한 나라들이 있는데도 국제 기구 역시 가야 할 길을 못 찾고 팬데믹 혼란에 일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의료진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마스크의 실효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고집했다. 결국 WHO는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퍼져 심각한 수준이 되고 나서인 6월 5일에야 마스크의 실효성을 인정하며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사실상 잘못된 권고를 유지하며 일을 키웠음에도 WHO는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WHO 사무총장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는 “이미 1월 30일에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 사태’를 선언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때 세계는 WHO의 권고를 주의 깊게 들어야 했다."고 뒤늦게 큰소리쳤다.
장면 #3. 진짜를 찾아라
국제 기구도, 국가도 도움을 주지 않으니 살아남는 일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몫이 됐다. 지구를 불안에 떨게 만든 이 재난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따지는 사이에 국가의 이름으로 주고받는 비난은 개인이 서로를 공격하는 논거가 된다. 그 결과 “‘나’의 생존은 ‘너’의 잘못”이라는 간결하고 명백한 질타가 난무한다. 잘못 있는 ‘너’는 중국 책임론과 맞물려 ‘중국인’으로 특정된다. 이때 중국 국적이냐 아니냐보다는 비난의 대상인 ‘중국인’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종처럼 보이는 것’의 경계가 뚜렷해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인종은 황도 12궁 별자리만큼이나 인위적인 개념이다.[4] 그 자체로 백인과 ‘타자’로서의 유색 인종을 구별해내기 위한 차별적 속성이기도 하다. 애초에 누가 진짜 ‘중국인’인지 정의할 수 없으므로 코로나 19 사태 속 많은 인종 차별의 가해자[5]는 본인이 진짜 ‘중국인’을 찾아냈다고 착각할 뿐이다.
당연히 코로나 19는 결코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인종의 잘못도 아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인종 차별 문제는 결국 개인의 힘만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공포를 자신이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약자에게 쏟아내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중국계’인지 ‘중국 국적’인지, 아니면 중국에 가 본 적도 없는 아시아계 혹은 아시아 국적 사람인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결국 인종 차별은 기존에 있던 동양인 혐오에 팬데믹에 대한 비이성적 공포가 더해진 결과다. 전파 초기에 편리하다거나 정식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명·지역명을 이용해 전염병을 지칭한 것, 국가가 나서서 책임 소재를 따지고 언론은 이 내용을 반복해서 기사로 써낸 상황이 모두 이를 부추겼다.
장면 #4. 큰 정부가 돌아왔다
인종의 층위에서 공포와 권력의 결합은 인종 차별로 드러났다. 인종이 아닌 정치의 영역이라면 어떨까. 대중의 공포와 비이성은 효과적인 정치 기반이 된다. 국가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폭력과 강제의 지배라는 형식이어도 생존의 문제를 코앞에 둔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다.
여러 국가들이 팬데믹을 두고 ‘국가적 비상 사태’를 선언했다. 민주주의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이스라엘의 경우, 비상 사태를 이유로 의회를 봉쇄했고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휴대전화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긴급 법안을 의회의 동의 없이 직권으로 가결했다.[6]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권한을 확대했다. 질병 확산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전국 혹은 일부 지역에 비상 사태와 비상 준비 태세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국가 비상 사태는 대통령이, 지역별 비상 사태는 지방 정부가 선포 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이 법률안 개정으로 모든 권한은 정부(총리)에게로 넘어갔다.[7] 이미 모스크바에 얼굴 인식 카메라가 17만 8천여 개 설치됐고, 시민 감시를 위해 경찰도 도시 곳곳에 잠입해 있는 상황[8]이다.
덕분에 통제를 명목으로 한 공권력의 폭력도 어영부영 정당화되고 있다. ‘비상 사태’는 납득 불가능한 상황을 설명하는 가장 성의 없는 핑계임에도 불구하고 공포로 마비된 이성은 판단력을 흐린다. 예컨대 필리핀 정부는 봉쇄 기간에 군인과 경찰을 따르지 않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국민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사살 명령은 봉쇄된 시의 빈민 지역 주민들이 경찰의 해산 명령을 어기고 구호품 제공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 체포된 뒤 나왔다. 주민들은 “봉쇄로 일자리를 잃었는데 식료품을 받지 못해 가족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주장했다.[9] 결국 명령 삼 일 뒤 실제 사상자가 나왔다. 주민들은 굶어 죽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만 유례 없는 전염병을 보다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은 폭력의 명분이 되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벽이 있어 ― 벽을 넘어 평화로
혼돈을 삼킨 국가는 점점 커진다. 반대로 개인의 힘은 약해지고 공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활동 역시 제한된다. 전염병 확산은 정부 주도의 권력 행사로 막을 테지만 그 과정에서의 생존과 혐오는 알아서 감당하란다. 그래서 2020년은 각자도생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통제의 시대다. 덕분에 언뜻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국경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세계화의 기반이었던 ‘보편성’은 흔들린다. 공포와 폭력, 국가의 강조, 강력한 정부 사이에서 나와 타자의 기준이 명확해진다. 비상 사태니까, 당장 내가 두려우니까. 이런 이유들로 타자에게 관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기준은 더 좁은 ‘우리’가 되고, 비이성은 묵인된다.
문제는 생존과 결합되어 국경’선’이 ‘벽’이 될 때다. 이 과정에서 세계 평화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나’라도, 혹은 좁은 의미로서의 ‘우리’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범람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일부다. 인종과 혈통을 강조하는 문화 민족주의와 공통의 정치적 규범·헌법 가치를 강조하는 시민적 민족주의가 교묘하게 비틀려 있다. 팬데믹이 중국 책임론을 등에 업고서 동양인 인종 차별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원인이 됐고, 동시에 국가가 개개인의 통제를 강화하는 명분이 됐다. 정치적 패권을 가져가려고 하는 권력 운용의 맥락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의도적으로 생산·재생산·확산된다.
국가주의·민족주의에 기반하여 내부의 결속이 보다 단단해질 때, 이는 한편으로 외부로의 배타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우리는 국제 연대의 위태로움도 앞서 확인한 바 있다. 코로나 19가 촉진한 폭력과 비이성의 결합이 두려운 이유다. 예컨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3일 웨스트포인트 졸업 연설에서 더 이상 미국은 세계 경찰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또한 ‘적’들에게 알리겠다면서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지금부터 우리가 싸운다면 우리는 싸워서 이길 것"이라는 트럼프의 연설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그 어떤 세계화 앞에서도 국경은 희미해졌을지언정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책상에 그어진 선 밖으로, 경계 밖 우리가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밀어냈을 뿐이다. 미등록 외국인이나 난민이 처한 국경의 문제들은 지금도 새로울 것이 없는 것처럼. 코로나 19 사태는 국제주의의 해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국경은 단순한 선이 아닌 ‘체제’로서의 경계다. 존재만으로도 ‘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자율과 통제, 접근과 거부, 이동과 통제 사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경 지역은 “준군사 지역으로 압축”되고, 국경 수호는 “통과에 대한 통제에서 국경선 전체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 [10]로 점차 변화한다.
우리는 ‘국경’이라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길 바란다. 경계의 정치를 허물고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길 바란다. 종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우리의 시계가 거꾸로 흘렀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국가 권력에 기대지 않고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국제적 연대를 통해 폭력이 아닌 평화로 향해야 한다.
평화로, 반전 평화와 탈핵으로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까?”
― 아인슈타인이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
① 코로나 냉전 시대를 안전하게 지나기 위해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넘어간 세계 패권과 소련의 몰락은 영원한 미국의 시대를 가져올 것 같았지만 중국은 놀라운 속도로 미국의 단독 질주를 위협해 왔다. 미국이 중국에게 ‘관세 폭탄’을 던지며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은 점차 외교·기술·정치·군사적 영역까지 확장됐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코로나 19는 중국 책임론과 함께 양국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코로나 냉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을 두고 신 냉전 시대라고도 한다. 직접적인 협박과 비난이 오가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도 있다”고 했고, 중국은 곧바로 트럼프를 두고 “구석에 몰린 짐승” 같다고 비난했다. 홍콩의 자주권 침해 문제와 함께 미국과 중국을 앞세운 갈등은 극에 달했다. 실제로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는 “현재 미국이 반중정서를 주도하는 가운데 양국 간 대립이 고조되면 무력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중국 최고 지도부에 전달하여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평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막막하다. 다시 평화의 정의를 떠올려 보자. 평화는 ‘일체의 전쟁도, 분쟁도 없어야’ 한다. 가야 할 길은 먼데 목표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 우선 한 걸음부터 시작하자. 단번에 모든 전쟁과 분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일단 ‘폭력의 물질적 토대를 제거’해 물리적 충돌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실제로 무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더 많은 충돌을 야기한다. 김정은과 트럼프는 ‘핵 단추’를 가지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2018년 김정은이 신년 연설에서 자신의 책상 위에 핵 단추가 항상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트럼프는 자신의 것은 더 크고 강력하며, 작동도 한다(“My button works!”)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조롱했다. 이러한 공방은 결코 가볍게 지나가지 않고 늘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6월 12일, 리선권 북한 외무상은 "최고지도부는 당중앙군사위 7기 4차 확대 회의에서 국가 핵 발전 전략을 토의하고 미국의 장기적 핵 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나라의 '핵 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엄숙히 천명했다"고 밝혔다.
이미 단 두 차례의 핵 무기 사용만으로도 수많은 사상자와 피해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았지만 세계는 아직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2015년 미국은 가상 핵실험 토론회 등 기념 행사를 진행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의 산하 기관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슈퍼 컴퓨터로 구현한 가상 현실에서 핵 실험을 하는 방안 등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미국이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사막에서 실시한 원자폭탄 실험의 70주년 기념행사 가운데 하나다. 연구소는 오히려 "1945년 실험은 핵무기를 진짜 세상에서 완전한 규모로 실험한 첫 사례"라고도 했다.[11]
② 대한민국 + 청년 세대 = 탈핵?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다. 이 폭탄은 히로시마 600m 상공에서 폭발했다. 폭발 당시 사망자만 8만 명,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수십 만 명에 달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학적 도박을 했다”며 성공적인 핵 폭발을 자축했다. 미국은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 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은 6일 뒤 항복을 선언했다. 나가사키에서 첫 넉 달 동안에만 6~8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12]
대한민국은 당시 일본 거주 자국민이 많아 제2의 원자 폭탄 피해국이다. 동시에 동북아 외교의 중심에 있어 앞으로 피해자일 가능성이 큰 국가 중 하나다.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직접 피폭된 한국인은 약 7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3만 명이 생존했고, 그 중 2만 3000명이 한국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범위에는 피폭자 개인뿐만 아니라, 자신은 피폭당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원폭으로 잃은 유족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원자 폭탄은 개인의 신체뿐 아니라 심리적 건강, 사회적 관계, 공동체 등 매우 다양한 측면과 수준에서 피해를 초래한다.[13]
덧붙여 청년 세대는 핵 전쟁이 일어난다면 직접 경험하게 될 당사자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2019년 6월부터 10월까지 세계 16개국의 20~35세(16288명)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내 생애 중에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 비율이 47%에 달했다. 그만큼 전쟁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청년들이 많다는 의미다. ‘향후 10년 내에 핵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54%나 됐다.[14]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인 것이다.
③ ‘있으나 마나 한 것’과 ‘사실상 있는 것’
그렇다고 국제 사회가 핵 무기 사용에 아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파괴력과 위험성이 이미 증명된 바 있는 핵 무기는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 피해가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비판의 연장에서 1970년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이 체결됐다. 핵물질의 공급이나 수출을 통제하는 원자력원료공급그룹(NSG)과 각국의 핵 활동을 감시하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원자력 발전 등)을 지원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를 돕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자발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1991년 핵 비보유국으로서 NPT에 가입하였고,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내 핵무기를 러시아 연방에 이전하고 1994년까지 모두 핵 비보유국으로 이 조약에 가입하였다. 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수년 간의 상호 경쟁 관계를 극복한 후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 비보유국으로 조약에 가입했으며, 쿠바와 동티모르는 각각 2002년과 2003년 NPT를 비준했다.[15]
그러나 NPT는 그 방점이 ‘비확산’에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조속한 일자에 핵무기 경쟁의 중지를 성취하고 또한 핵 군비 축소의 방향으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당사국의 의사를 선언”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국가의 협조를 촉구”하고 있지만 핵 무기의 실험이나 사용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조약의 제1조와 제2조 역시 핵 무기나 그와 유사한 핵 폭발 장치를 양도하거나 양도받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NPT는 근본적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보유 중인 핵은 인정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NPT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다섯 개국의 핵 보유만을 인정하고 있다.
NPT에 가입하기를 처음부터 거부하거나 가입했다가 탈퇴한 나라들은 공공연하게 핵 실험을 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의 핵 실험,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파키스탄의 핵 실험은 두 국가 간의 전쟁이 발발하며 본격화됐다. 파키스탄은 북한, 이란, 리비아에 핵 무기를 개발할 때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가스 원심 분리기 기술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역시 자국의 무기 보유 현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협력을 받아 195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실시한 바 있다.[16]
게다가 NPT에는 비핵무기국의 안전 보장을 위한 약속이 부재하다. “교섭을 추구하기로 약속한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사실상 핵무기국들이 핵 군축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북서대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17]를 통해 공식적으로는 핵 보유 금지인 국가들에서도 핵 무기를 공유·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NPT가 아닌 다른 국제 공조를 도모해야 한다.
④ 아래에서 시작하는 세계화
다양한 시도 중에서도 201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인 ICAN의 방식이 되짚어볼 만하다. ICAN은 세계 100여 개국 소속 300여 개 비정부기구의 연합체로,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TPNW는 핵무기 완전 철폐를 목표로 핵무기의 개발·시험·생산·비축·사용·사용 위협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2017년 7월 7일, UN총회에서 의결되어 122개국이 찬성했으나 정작 NPT가 인정한 핵 보유국들은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해당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50개국 이상의 서명과 비준이 필요하지만 2020년 3월 기준으로 오직 81개국이 찬성하고, 36개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동안 탈핵과 탈원전을 정책 기조로 내세웠음에도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해서는 표결 참여와 가입을 거부했다.
각종 시위와 서명 운동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핵 무기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는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전쟁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자 미국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열렸다. ‘No War’이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문구가 미국 70개 도시를 뒤덮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현장에서도 한 국내 시민 단체가 한국의 UN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촉구하는 ‘전 세계 비핵화·핵 전쟁 반대' 캠페인과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탈핵 운동의 한 축으로 지역 탈핵 전문가 양성에 힘쓰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에너지정의행동의 주최로 탈핵 관련 강연을 진행하는 ‘탈핵 학교’가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종류의 시민 교육은 탈핵의 필요성과 반전·탈핵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 결국 시민과 시민 단체의 요구에서 출발하는 반전 평화와 탈핵 운동은 결국 가장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평화로 이끈다.
운명의 시곗바늘을 뒤로 감으며
코로나 19로 숨어 있던 국경이 우리 눈앞에 드러났다. 거대한 벽의 모습이었다. 거대한 전염병의 파도 앞에서 생존은 각자의 몫이며, 동시에 비대해진 정부의 통제가 ―설령 수단이 폭력일지라도― 정당화되고, 국제주의는 낱낱이 해체되고 있다. 당황스럽지만 낯설지는 않다. 국경이 ‘경계’가 되어 국경 밖 타자를 배제하는 방식은 이미 권위에 기댄 전(前)근대식 국가주의에서도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관심 갖지 않는 곳에서도 반복됐다. 그동안 모르는 척했다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평화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이고, 우리는 모든 바람을 다 막아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평화의 촛불이 꺼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의 기반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쟁과 핵 무기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안 듣는 게 더 힘든 단어다. 평화를 고민할 때 반전 평화와 탈핵을 빠트릴 수 없는 이유다. 안전하고 싶은 욕망,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공포와 비이성을 넘어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폭력과 평화. 두 가지 선택지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우리를 지구 종말로부터 멀어지게 할지, 무엇이 운명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릴지 너무나 명백하다.
[1]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불린다. 인류에게 핵 위협 등을 경고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고안 당시에는 원자 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핵 물리학자들이 주도하였고, 현재는 미국 핵과학자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2] 솅겐 협정은 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하여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해 국가 간의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협정이다.
[3] 현재, 국제법상 외국 영토에 있는 중국의 행위는 ‘국가 면제’의 보호를 받아 미국 국내법 적용에서 면제된다.
[4] 19세기 말부터 인도인이 미국 대륙으로 향했다. 첫 번째 인도 출신 인물이 미국 시민권을 받을 당시 분류된 인종은 ‘백인’이었다. 그러나 이 시민권은 1923년 연방대법원에 의해 박탈된다. “인도인은 코카서스인이지만 ‘백인종’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미국 시민권 대상에서 제외”라는 판결 때문이었다. (1946년부터 인도인의 미국 국적 취득이 다시 가능해지긴 했다.)
[5] “그게 뭐 어때서? 아시아인이라면 다 똑같은 거 아니야?”와 같은 비상식적 태도는 고려하지 않는다.
[6] 노재현, 이스라엘 정부, 코로나19 대응 위한 휴대전화 정보수집 승인, 2020.03.16.
[7] 이진희, 모스크바는 지금 - 어떤 상태? - 푸틴, 비상사태 선포 권한 총리에게 위임, 바이러시아21, 2020.04.02.
[8] 모스크바 시장은 “국경 봉쇄 이전에 중국에서 입국한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경찰과 의사들이 호텔, 학교 기숙사, 아파트 등지에 잠입해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전했다.
[9] 김정은, 필리핀 두테르테 "봉쇄령 어기면 사살", 한국경제, 2020.04.02.
[10] 최은주, 「정치적으로 전유되는 이주국경에 대한 고찰」, OUGHTOPIA 34(1),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p.86.
[11] 장재은, 연합뉴스, 최초 원폭실험 70주년…'가상 핵실험' 토론회 등 기념행사, 2015.07.16.
[12]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위 자료, 2016 정책연구용역보고서.
[13] 이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회원,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들을 기억하십니까, 프레시안, 2018.11.09.
[14] 조사 대상은 아프가니스탄, 콜롬비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러시아, 남아프리카, 시리아, 스위스, 영국, 우크라이나, 미국으로 흔히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와 내전을 비롯해 각종 전쟁 상황을 목격한 국가가 섞여 있다.
[15] 외교부 국제기구정책관, 핵 비확산 조약(NPT) 관련 주요 이슈, 외교부 홈페이지, 2007.10.10.
[16] BBC News,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핵무장을 했을까?, 2017.10.05.
[17] NATO는 1949년 소련의 서유럽 침공을 막기 위해 출범한 군사 동맹이다. 1949년 12개국으로 출발하여 이후 2017년까지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영국, 미국, 터키, 그리스, 독일, 스페인, 체크, 헝가리, 폴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총 29개국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소련은 나토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1955년에 비슷한 성격을 가진 '바르샤바 조약 기구'를 만든다. 소련 패망하는 해인 1991년까지 존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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