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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7 가을겨울, 73호 <시차>

주휴수당 청구기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4. 11.

<73호> 2017년 가을겨울

김고운 (경영학과 3)

 

  저, 사장님, 지금까지 일한 거... 주휴수당 주세요.”

  어렵게 말을 꺼낸 것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한 지 3개월이 지난 6월에서였다.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하루 만에 다른 곳에서 잘린 후에 구한 아르바이트였기에, 나를 자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처지였다. 주휴수당에 대해선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주휴수당을 준 곳은 한 곳뿐이었다. 임금이나 제대로 챙겨주면 다행이었지, 열아홉 살 때 처음 아르바이트했던 프랜차이즈 빵집은 주휴수당은커녕 첫 3개월간은 수습 기간이라며 최저시급마저 제대로 주지 않았다. 예전에 면접을 봤던 한 편의점은 처음 온 아르바이트생은 일을 못해 오히려 가게가 손해를 본다며, 일을 가르쳐주면서 임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라며, 처음 며칠간은 임금을 주지 않겠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 공고 사이트를 꼬박 뒤져봐도 주휴수당을 준다고 공지하는 곳은 가물에 콩 나듯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사장은 너만큼 일 잘하는 애 없어. 제발 그만두지 말아줘하고 부탁했다. 주휴수당을 요구할 결심을 겨우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숙련된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잘리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지 뭐, 나는 일을 잘 하니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였다. 또 조금의 공백이 생계에 지장을 주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심하지만 정확하게, ‘일 잘함을 무기로 시급 인상과 주휴수당을 요구했다.

  너 지금까지 내가 밥 사줬잖아. 식대는 제하고 줘야지.”

  “아니, 식사 제공이라고 처음 면접 볼 때 말씀하셨잖아요.”

 고운아, 내가 네 돈 떼먹으려는 게 아니라... 원래 4대보험이란 걸 가입해야 하는데, 그 보험료랑 식대 제하면 주휴수당이랑 같아. 오히려 네가 더 내야 할 수도 있어. 그래서 네 생각해서 내가 4대보험 가입 안 하고 주휴수당을 안 준거지.”

  “아니 비슷하다고 퉁치고 넘어갈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계산을 해야죠.”

  물론 내게 들어오는 월급이 같다고 해도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과 가입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미래에 받게 될 연금도 조금씩 쌓이고, 산재·의료·고용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주휴수당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4대보험료보다 훨씬 많다. 한마디로 사장의 말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속임수였다. 또 식사를 제공하기로 한 게 아니었다면 그때까지 계속 밥을 사준 건 뭐란 말인가?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사장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4대보험 소급 가입하고, 네 주휴수당에서 보험료랑 식대 제하고 이 금액 줄게.”

  “아니 사장님, 처음에 식사 제공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내가 주휴수당을 안 줄 거로 생각했을 때 이야기지. 주휴수당도 주고 밥도 주면 난 남는 게 뭐니?”

  “주휴수당은 당연히 주셔야 하는 거고요, 식대는 주기로 약속하신 거잖아요. 애초에 식사 제공이라고 안 하셨으면 제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에휴... 고운아, 세상을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어. 양보하는 것도 있어야지.”

  처음엔 식사 제공이라고 한 적 없다고 했다가, 그건 주휴수당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때라고 했다가, 주휴수당을 줘야 하는 줄 몰랐다고 하는 등 앞뒤가 전혀 안 맞는 말들 투성이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어리다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기, 내가 널 위해주는 거라는 척, 사람 좋은 척하기는 마치 모든 사장님이 매뉴얼로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뻔하고 치사스러웠다. 처음에 약속하신 거잖아요, 법적으로 줘야 하는 거잖아요... 나는 자명하고도 당연한 말을 기계처럼 열 번쯤 반복한 후에야 식대를 제하지 않고 4대보험료를 제한, 지금까지의 체불된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사장은 나를 4대보험에 가입시키겠다고 했지만 미심쩍었다.

  사장님, 소급 가입하면 벌금 내야 한다던데, 아세요?”

  “그래, 원래 가입해야 하는 거니까 벌금 내고서라도 가입해야지 뭐.”

  몇 개월 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는 이런저런 바쁜 일들로 이 일을 거의 잊을 뻔했다. 이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되었고 4대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다. 우편함에서 내게 온 의료보험카드와 4대보험 관련 안내문을 발견하자 이 일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에는 이런 우편물을 전혀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그 당시 4대보험에 가입된 이력이 없었다. 내게 임금을 조금이라도 적게 주기 위해 사장은 거짓말을 한 거였다. 알바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하자 바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기를 권했다. 고용노동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사업장 정보, 내 정보, 체불임금 금액 등 간단한 서식을 작성하는 것으로 임금체불 진정이 가능했다. 곧 몇 월 며칠 몇 시에 출석하라는 문자가 왔다.

  지정된 일시에 맞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관악지청으로 갔다. 조사는 원래 근로감독관, 진정인, 사업주의 삼자대면으로 진행되지만, 사업주와 내가 시간이 맞지 않아 감독관이 각각을 만나게 되었다. 사장의 이야기를 먼저 들은 감독관은 내게 말했다.

  사업주 말로는 식대를 제하고 주휴수당을 주기로 합의가 되었고, 주휴수당을 다 지급했다고 하던데요.”

  나는 그의 뻔뻔함에 황당해하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나와 사장의 말이 맞지 않자 감독관은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 입장을 전했다. 사장은 나를 바꿔달라 해서는 진심으로 화를 냈다.

  네가 먹은 밥값은 제해야지. 그때 그러기로 했잖아.”

  사장은 자꾸 밥값을 물고 늘어졌다.

  “내가 언제 밥 사준다고 그랬니? 네가 배고프다고 밥 사달라고 했잖아.”

  물론 그런 적은 없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증거 있으세요? 저는 그때 녹음해 놓은 것 있거든요. 사장님이 식대 제공 인정한 거요.”

  사업주와 이야기할 땐 꼭 녹음하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 주휴수당 이야기를 꺼냈을 때 녹음을 해 놓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유도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경우엔 당시 사장님이 처음에 식대 제공하기로 하셨잖아요라는 말을, 사장이 그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했다. 해서 그랬지라는 말을 끌어냈고, 그 말은 고스란히 내 녹음파일에 남아있었다.

  감독관에게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장은 당연히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자료가 없었다. 거짓말인데 증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사장은 계속 억지를 부렸다.

  “돈 줄 테니까 우리 집 와서 받아가.”

  “제가 왜요? 계좌이체 해주세요.”

  사장은 감독관에게 말했다.

  “쟤가 안 받아간다는데 어떻게 줘요?”

  감독관이 말했다.

  “선생님, 근로자가 계좌이체를 원하면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야, 너 알바 어디서 해? 내가 놀러 가려고.”

  “그걸 제가 왜 알려줘요?”

  “너 밥 먹은 거 다 토해내. 네가 먹은 건 네가 부담해야지.”

  감독관은 한숨을 쉬며 여러 번 말했다.

  “선생님, 식대와 임금은 상계가 안 돼요.”

  “야, 네가 인간이라면, 인간적으로 밥값 5만 원 정도는 빼고 받아도 되지 않겠니?”

  “사장님이 인간이라면, 인간적으로 보너스 5만 원 더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대타도 엄청 많이 해주고, 다른 알바생 열쇠 없다고 마감 때 가서 문도 잠가 주고, 1년 가까이 일했잖아요.”

  내가 받아야 할 금액은 33만 원이었는데, 사장은 처음엔 절대 10만 원밖에 못 주겠다고 했다. 감독관은 어차피 형사고소까지 가면 내가 시간과 돈을 써야 한다며 10만원에 합의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알바상담소에서 받아야 할 금액보다 적은 금액에 절대 합의하지 말라고 한 것을 기억했다. 사실 30만 원 남짓의 소액을 가지고 고소까지 갈 생각은 없었지만, 전액을 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러자 다시 사장은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참 논쟁 후에 15만 원, 또 한참 논쟁 후 20만 원, 또 논쟁 후 3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마다 감독관은 그 금액에 합의할 것을 권유했다. 사장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내가 원래 받아야 할 금액을 굳이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33만 원 전액을 고수했다. 전액을 지급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시간여 간의 지난한 논쟁 끝에 사장은 전액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마지막으로 내게 욕 문자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하기 전 사장에게 전화가 왔었다. 그때 분명 돈을 다 주지 않았냐며, 그는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나는 적어도 그가 4대보험에 가입하겠다며 나를 속인 것에 대해 미안해하면서 나를 구슬려보려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며 내가 자신의 돈을 뜯어가려 하는 악독한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

  “돈 필요해?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미친년아. 이거 완전 미친년이네.”

  그는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당연하게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건 대부분의 다른 사업주들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권리를 착취하는 관행은 너무나 만연해있기 때문에, 그게 잘못이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뻔뻔함과 상황 파악 부족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에서 비롯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이 일이 단순히 그 사장 개인의 악독한 성격 문제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대신 화를 내주었지만, 나는 고용노동부를 나오면서 불쾌하기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당한 관행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냈다는 이유가 더 컸다.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최저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과 과한 노동, 주휴수당 미지급 등 만연한 착취에 침묵하기만 한다면 사업주들은 그 관행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탓은 아니지만, 나처럼 권리를 요구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늘어갈수록 사업주들은 불법을 자행하기를 점점 주춤할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출석하기 전에 조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들, 구제 방법을 모르거나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는 것이 낯설어 시도해보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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