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이지형
이따금 낙엽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고사를 막 끝낸 주말의 캠퍼스는 고요했다. 가을바람이 닫힌 유리문 틈으로 들어와 울었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행인들은 팔짱을 끼고 좁은 보폭으로 걸었다. 해가 물들기 시작한 오후 네 시 반, 오가는 이 없는 대학원 앞에 김산(심리학과 2) 씨가 나타났다. 배낭에서 사료를 꺼내자 수풀 속에서 까만 고양이가 나타난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릇을 바라보던 녀석은 고양이용 통조림을 뜯자 이내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턱 아래 콧물이 맺혀 있네요. 구내염에 걸렸나 봐요. 다음부터는 약을 같이 줘야겠어요.”김산 씨는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 ‘냥침반’ 회원이다. 자신을 “친환경주의자이자 녹색당원”이라 소개한 그는, 학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냥침반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견 대학교 캠퍼스는 사람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캠퍼스 곳곳에서 많은 동물이 삶을 지탱하고 있다. 고양이도 그중 하나다. 서울캠퍼스 고양이 돌봄 동아리 ‘냥침반’은 작년 9월부터 이 고양이들을 보살피는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모여 고양이를 돌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냥침반의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김하얀 (중국어문학전공 3) 1기부터 활동했고 냥침반 회장을 맡고 있는 김하얀입니다.
김선홍 (전자전기공학부 3) 2기부터 활동하고 있는 김선홍이라고 합니다.
김산 2.5기부터 활동하고 있는 김산이라고 합니다.
냥침반은 어떤 일을 하나요?
김하얀 우선 매일 급식소에 물과 사료를 배급해요. 고양이들의 보금자리 마련을 도와주고, 건강검진과 중성화 수술도 진행하고 있죠. 종종 학교에 아픈 고양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으면 구조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동아리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김하얀 저는 사람들이 동물의 삶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도시가 개발되고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에 살던 동물들은 피해를 보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늘 동물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죠. 그 와중에 국민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길고양이를 돌보는 동아리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대세에 따라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지요. 3~5명의 부원이 모여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홍보글을 올리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게 활동의 시작이었어요.
현재 서울캠퍼스에는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나요?
김하얀 육안으로 확인된 고양이는 15마리 정도에요. 하지만 개체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는 못해요. 사람 눈에 안 띄게 생활하는 고양이들도 많거든요. 사료량으로 계산했을 때는 약 30마리 정도인데, 비둘기들도 사료를 먹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아요.
중성화 수술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지도 궁금해요.
김하얀 지금까지 총 2회 집중TNR(중성화수술)을 진행해서 13마리 정도를 시술했어요. 하지만 개체 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TNR 진행률도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대략 전체 고양이의 4~50%정도가 수술을 받은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성화 수술이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반응도 있어요.
TNR(Trap Neuter Return) |
김하얀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중성화 수술의 결과는 외부인에게 잘 보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지금 대학원을 보면 고양이들이 엄청 많이 늘어났잖아요. 다른 분들은 보시기에 “중성화 수술한다더니 더 늘어 났네”하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그나마 개체 수 조절을 한 결과가 그 정도인 거죠. 수술을 안 했다면 수가 더 늘어났을 거예요.
활동하면서 보람 있었을 때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김산 처음 TNR을 했을 때요. 케이지를 놓아 고양이를 포획하기로 했는데, 아직 수술을 할 수 없는 새끼고양이가 잡혔어요. 병원에 데려가서 검진을 해보니 건강할 줄 알았던 아이가 자궁축농증 진단을 받았어요. 죽을 수도 있었던 아이를 운 좋게 발견한 거죠. 지금은 치료해서 잘살고 있는 걸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김선홍 저는 소소한 곳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저는 저번 학기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개인 일정이 있어서 배식 활동에 한 번밖에 참여를 못 했어요. 대신 방학 때부터 열심히 배식 활동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활동이라 좋아요.
김하얀 처음 동아리를 만들 때는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끌고 가자”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그간 활동을 하면서도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설득하도록)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한번은 철학과 쪽에서 후원을 해주겠다고 해서 만난 적이 있어요. 펀딩을 주도하신 분이 자신은 별로 동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함께 공존하자는 동아리의 취지에 공감해서 후원을 제의했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학교 바깥에서는 길고양이 돌봄 활동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김하얀 처음 동아리를 만들려고 부원 모집 글을 올렸을 때,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어요. 왜 밥을 주느냐, 캠퍼스에서 왜 동물과 같이 살아야 하냐는 등이요. ‘정말 가시밭길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적대적인 반응을 직접 표출하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요. 오히려 페이스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있어요.
한번은 환경미화원께서 고양이 급식소를 버린 적이 있어요. 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찢어 놓는다고요. 동아리가 있는 줄 모르셨대요. 저희가 찾아가 “우리가 밥을 주면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안 뜯는다”라고 말씀드리고 좋게 끝났어요.
다른 대학에도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많아요. 다른 대학 동아리들과 교류는 없나요?
김하얀 카라 1에서 주도해 월 1회 정기 모임을 해요. 그 외에도 길고양이를 어떻게 돌보는지 업무 관련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카톡으로 각 대학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공유해요. 최근에는 고려대에서 구조된 고양이의 수술비 모금을 함께 홍보하기도 했어요.
카라를 통하지 않고 학생들의 독자적인 연합체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계속 늦어지고 있어요. 이런 고양이 돌봄 동아리들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많은 동아리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2년이면 오래된 편이에요. 여전히 내부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동아리가 많아서 여력이 없어요.
그간 활동을 통해서는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보시나요?
김선홍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에 많은 변화가 보여요. 냥침반에 들어가기 전에도 냥침반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안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 게시물을 보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80%가 욕이었는데, 이제는 70%가 좋은 반응이더라고요. “나도 냥침반 활동하고 싶다”라는 댓글도 있었고요. 인식이 전반적으로 괜찮아진 것 같아요.
학교 고양이들에 대해서 “왜 동물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종종 보여요.
김하얀 사람들의 일상에 동물착취가 개입하지 않는 지점이 없어요. 고양이는 사실 우리의 도움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인데, 우리가 개발해서 도시화를 했기 때문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거예요. 그런 의무감을 갖고 동물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동물들은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최약자잖아요.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조차 없어요. 최근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그런 진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선도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실천 중의 하나가 냥침반 활동이고요.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은 여기가 집이에요. 여기에서 태어나 여기를 집으로 삼고 살아온 동물들이에요. 왜 캠퍼스에서 고양이가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은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 아닐까요.
김산 저는 공동체주의자인데, 인간끼리는 물론 다른 생명체들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모두의 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게 모두가 행복한 길이라고 생각해요. 고양이를 돕는 건 그 시작이에요.
김선홍 학교는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장소잖아요. 동물을 보호하는 동시에 동물로 인해 사람이 불편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해요. 중성화 수술의 목적이 바로 그런 일을 방지하는 거죠. 개체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사람들의 불만도 많아지거든요.
곧 겨울인데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캠퍼스 내 고양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하얀 먼저 얼어 죽는 고양이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올봄에 태어난 애들은 이번 겨울이 처음 맞는 겨울이잖아요. 그때 생존율이 엄청 낮아지거든요. 그래서 겨울 집을 만들려고 하지만,임시방편에 불과해요.
물이 어는 문제도 있죠. 길고양이들은 수분 섭취가 정말 중요한데, 날씨가 추우니 저희가 주는 물마저 얼어버려요. 따뜻한 물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몇 시간 못 가요.
캠퍼스 안의 고양이들을 위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산 활동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고, 큰 돈이 아니라도 후원을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사룟값이 많이 들고, 고양이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니까요. 또 먹다 남은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는 경우가 꽤 많은데, 고양이에겐 짜고 기름진 음식이 정말 해로워요. 고양이에게 그런음식을 주는 걸 보고 제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하얀 요새 저희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건, 대학원 고양이들이에요. 보시면 알겠지만, 아이들이 사람과 많이 가까워졌어요. 원래는 길고양이들이 사람과 친해지는 게 좋지 않아요. 웬만하면 눈으로만 봐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산이도 말했듯이 직접 도와주실 수 있는 건 후원이겠죠. 그나마 지난 1년 동안은 사료 업체에서 후원을 받아 왔는데, 지금은 그것도 끝난 상태에요.
학교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김하얀 고양이에게 음식물을 주지 말라거나, 고양이와 공존하는 법을 주제로 학교 차원에서 팻말을 세워 주시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먼저 의식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대학교에서 동물을 케어해야 하냐”고 학교 직원분들이 말씀하시거든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가 고양이 돌봄 활동에 “개입하지 않지만 도와줄 수도 없다”라는 입장인데,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단순히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학생들의 봉사활동”이 아니고, 우리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필요해요.
김산 우선 공간이 없는 게 문제죠. 지금은 사료나 물품들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 임시로 학생 사물함을 쓰고 있거든요. 동아리 방이 있으면 (구성원끼리) 교류도 잘 되고요.
김선홍 지금은 회의도 매번 강의실을 빌려서 해요. 재정적 지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방이 있으면 동아리 내 연대가 더 잘 될 거에요.
그간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요?
김선홍 처음에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도와주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제가 고양이를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 막상 고양이한테는 피해가 될 수도 있고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어요. 그런 상식이나 정보를 많이 얻어가고 있어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 관해서도요.
김하얀 먼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자기 만족감이 있어요. 또 일 년 동안 제 의식이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동물의 권리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물의 권리를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니, 나중에는 사회 전반의 소외된 소수자들까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산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운동이 필요하죠. 냥침반이 공식적인 기구가 되어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도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해요.
김선홍 가장 이상적인 건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죠. 인식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니까요. 최소한 중앙대만이라도 사람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좋겠어요.
김하얀 소소하게는 학교 고양이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일이 가장 우선이죠. 거창하게는 많은 학교에서 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생겨나고 있는데, 냥침반이 그 움직임을 이끌었으면 해요.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고양이 돌봄 동아리들이 자리 잡는 데) 냥침반이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도록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김하얀 냥침반을 단순히 고양이 애호가들의 모임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고양이가 좋아서 밥 줄 거야”라는 취지로 활동하는 게 아니에요. 고양이와 사람이 공생하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책임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니 냥침반의 활동에 대해 인식이 안 좋은 분들에게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2002년 시작된 비영리 동물보호 시민단체. 현재 ‘대학 길고양이 돌봄 사업’을 통해 중앙대를 포함한 전국 8개 대학 고양이 돌봄 동아리의 중성화 사업, 급식소 운영 등을 지원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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