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문화 편집위원회
중앙문화: 중앙대에서 학과 성평위는 아직은 익숙치 않은 기구입니다. 학과 성평위로서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광고홍보학과 성평위(이하 광홍): 저희가 하는 사업의 방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예방과 해결, 다른 하나는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문화 사업이에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예방과 해결에 관해서는 성폭력 사건 대응 가이드라인 제정, 사건 접수와 상담을 위한 SNS 채널 운영, 학과 행사에서 지켜야 할 반성폭력 가이드라인 공유, 매 학기 성폭력 실태조사 시행, 학생회장에게 성평등 질의서를 발송하고 답을 얻는 등의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성평등 문화 확산과 관련해서는 세미나, 성평등 의식 조사 사업, 칼럼 프로젝트, 영화 상영회, 초청 강연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입니다. 학과에 페미니즘을 중심적으로 다룬 수업이 없어 세미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영화학과 성평위(이하 영화): 영화과도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희 학과의 경우 특성상 워크숍 1에 참여할 일이 많아요. 한 워크숍에 참여할 때마다 장기간 촬영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매 학기 워크숍 시즌 전에 ‘든든’이라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에 요청을 하여 성희롱,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학우들이 들을 수 있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워크숍 중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만들어 배부하고,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학기에 한 번씩 여성영화인 강연도 진행하고 있고, 일 년 동안의 활동이나 개개인의 칼럼을 엮어서 ‘불꽃’이라는 문집을 매 해 발간하기도 하고 있어요.
광홍: 저희는 신입생 대부분이 참여하는 학과 행사인 ‘광고홍보전람회’가 있는데요, 행사 진행에 앞서 반성폭력 관련 교육을 했으며 전람회 전 성평위 자체 심의를 거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람회의 콘텐츠 중 사용된 멘트가 이성애 중심적이라는 문제 제기가 있어 시정 요청을 한 경우도 있었어요.
중앙문화: 학과 특성을 반영한 사업들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학교들에서도 단과대 성평위가 아닌 학과 단위의 성평위는 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처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광홍: 광고홍보학과의 성평위는 2018년부터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평위가 만들어지기 전에 강의 중 차별 및 혐오발언, 그리고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가 대두되었어요. 하지만 대나무숲 등 페이스북에서만 화제가 될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문제시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해결 절차 마련 및 논의가 필요하다는 학우 분들의 요청으로 성평위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공동체적 대응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영화: 영화학과의 경우, 학과 내에서 성평위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 페미니즘 이슈가 다뤄지고 있었어요. 학과 커리큘럼상 학교 외부와 협업해 촬영을 해야할 때가 많은데, 촬영 도중 권위주의적, 성차별적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2017년 즈음 학과 교수님께서 먼저 학과에 성평위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2018년 중 학과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여 그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학생 위주의 조직이 되었어요.
중앙문화: 페미니즘 학회나 소모임이 아닌 ‘성평위’로 형태를 갖추신 이유가 있을까요?
광홍: 학회나 소모임의 경우 성폭력 사건 대응에 있어 역할이 제한적일 것입니다. 문화 측면에서는 학회나 소모임도 괜찮을 수 있지만 사건 대응에 있어서는 권한이 필요하니까요. 한번은 ‘미투가 발생하지 않은 학과에는 성평위가 왜 필요하냐’는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 있습니다. 보통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성평위가 만들어지는데 사건을 예방하고, 만약 발생한다면 대응하기 위해 사건 발생 전에 성평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문화: 학과 성평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만큼 그동안 어려운 점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광홍: 학과 내에선 성평위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어요. 학생회비를 예산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학생회 세칙에 따라 설립된 기구임에도 일부 학우들에게서 자신의 학생회비가 원하지 않는 사업에 쓰인다는 말이 나오고, 예산 편성에 대한 항의가 들어오기도 하고요.
영화: 저희는 설립 초반에 특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서로 경험이 없었기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저희만 겪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서울캠 예술대학 소속 학과인 연극과 학생회에서 영화과 성평위의 예대 성평위로의 확장하면 어떻겠냐는 요청을 주신 적 있어요. 그런데 과 특성이 달라 협업을 하더라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 사업을 감당하기도 벅찬 상황이기도 했고요.
중앙문화: 영화과에서 말씀하신 어려움은 성평위에서 진행예정이었던 FOC사업의 취지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FOC 사업의 추진배경과 목표를 다시 한 번 듣고싶어요.
총학생회 성평위(이하 총학성평위):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성평위를 조금 더 작은 단위로도 만들어 네트워킹하겠다는 것입니다. 총학성평위가 더 작은 단위에서 활동하고 네트워킹 될 수 있다면 사건 대응 측면에서도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네트워크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사건 대응의 속도와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작은 단위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는 공론장을 만들고, 안 보이던 페미니스트들을 가시화할 수도 있고요.
중앙문화: 총학생회 성평위가 단과대나 학과에까지 사업을 진행하거나 사건 대응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인가요?
총학성평위: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저희 총 인원이 10명이 채 안되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저희 활동은 총학생회와 협의가 필요하기에 세세하게 많은 개입을 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다만 FOC를 통한 각 단위별 성평위와의 연대가 가능했다면 각 단위들의 사건 대응 매뉴얼 등의 작성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총학생회 성평위에서는 ‘학생 대표자 대상 혐오발언/ 성폭력 사건 접수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한 바 있습니다. 작성 과정에서 해바라기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외부 단체에서 많은 자문을 받았기에 사건 대응에 필요한 정보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교류는 제도화되어있지 않다면 불안정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기에 자체 사업을 통한 제도화를 계획했었어요.
중앙문화: 성폭력 사건 대응에 관한 답변이 많은 만큼 관련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학생회나 총학생회 성평위, 인권센터가 아닌 학과 성평위에서도 관련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영화: 학과 상황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과에서는 졸업한 선배들이나 학과 외부 인원들과 함께 촬영할 때가 많아요. 또한 학과 워크샵 중 사건이 발생했으나 피해자가 수료생이나 졸업생인 경우 총학생회 등에서는 자신들의 회원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기도 하고요. 촬영장에는 복잡한 구성만큼 특수한 맥락이 있을 수 있는데요, 이런 경우 학과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학과 성평위가 수행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광홍: 저희가 성폭력 실태조사를 했을 때 그동안 공식적으로 접수되지 않은, 실태조사를 통해 최초로 밝혀진 사건들이 많았어요. 피해자 중에는 학과 학생회와 피해사실 공유를 원치 않는 경우도 많아요. 처리 과정에서도 사건이 커지길 원치 않고,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총학 성평위와 같이 보다 큰 단체에 사건을 알리고싶지 않은 경우들이 존재합니다. 그때 학과 성평위는 도움이 필요한 학우가 보다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요.
중앙문화: 인권센터라는 전문단체가 있는데 왜 학생들로 구성된 성평위가 사건 해결에 필요하냐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광홍: 성평위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센터가 피해자의 의사와는 다르게 사건을 처리하려고 할 때도 있어요. 저희 과에 접수된 사건 중 하나는 피해자가 중재를 원한 것이 아닌데, 인권센터가 중재를 거쳐서 처리하려 했는데요. 학생은 중재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에 사건 접수를 했고 저희에게 제보해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총학성평위: 인권센터는 아무래도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학교의 내부기관이기 때문에 학교에 피해가 가지 않거나 우호적인 방향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는 한계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학생자치기구, 인권센터, 학교 외부의 인권센터가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일 수 있어요. 저희는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고 학생 입장에서 대변할 수 있는 성평위가 인권센터와는 또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문화: 성평위가 생긴 후 학과 내의 변화가 있었나요?
광홍: 저희를 필요로 했던 사람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사건을 접수하거나, 학과 콘텐츠 등에 문제제기를 하려던 사람들이 성평위를 거치기 시작했어요. 개강 총회나 학과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반성폭력 교육을 하고 대응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과 행사에서 이런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총학 성평위는 하기 어려운 일일테니까요. 학과 학생회에 질의서를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영화: 영화과 특성상 어떤 재현을 해도 ‘영화니까 받아들여질거야’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는데 학과 성평위가 이에 대해 많은 목소리를 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이제 문제적인 상황이 있으면 지적하고, 대응을 아카이빙하고, 다같이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떤 절차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됐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학우들의 반응도 있었어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문화: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영화: 다른 학과 성평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끝내지 못한 사건대응 매뉴얼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혹시 성평위를 설립하고 싶은 다른 단위가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광홍: 오늘은 왜 학과 성평위가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음에는 더 많은 성평위들과 함께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실기 과제를 위해 진행되는 영화촬영과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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