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편집위원 일리브
지난 10월 26일 광화문에서 제1회 서울 매드프라이드가 개최됐다. 매드프라이드는 1993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정신장애인들의 권리보장을 말하는 행사다. |
처음 정신의학과에 발을 디딘 순간이 떠올랐다. 의사와 마주 앉아 내 우울지수와 불안지수에 대한 검사결과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20점 이상부터는 증상이 있다고 판단하고요, 30점 이상부터는 약물치료를 권합니다. 이정수 수치면... 아주 힘들었겠어요. 그동안 어떻게 버티셨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하굣길 만원버스에 타는 일이 무섭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정도가 심한 날에는 식은땀이 넘쳐 흘러 목적지의 반도 채 가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려 숨을 고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아무런 증상 없이 장시간 하굣길을 버텨내기도 한다.
꽤 어릴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쾅, 하고 문을 닫는 소리. 탁, 하고 펜을 내려 놓는 소리. 의미 없는 길가의 소음들. 그런 게 모두 나를 향한 질책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잦았다. 식은땀이 흐르거나 심장이 너무 세게 쿵쾅대 갈비뼈가 아파왔다. 삶의 아주 많은 부분을 그런 나를 진정시키는 데 쏟아야 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병원을 찾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미 나는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아 온 터였다. 대부분은 내 증상들 때문이었을 테다. 쟨 좀 음침해. 쟨 뭔가 기분 나빠. 타인에게 별다른 피해를 끼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질병이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근거가 될 때, 가장 쉬운 선택지는 나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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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병원을 찾길 망설이던 몇 년 사이, 상황은 꽤나 달라졌다. 우울증은 마치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와 같은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다룬 도서들이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 위에 놓이고, 연예인들이 풀어놓는 공황장애 경험담은 더 이상 아주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근대 이후의 현대인들은 모두 하나쯤 마음의 병들을 안고 살아가는 듯도 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흔한 질병 정도로 여겨지는 와중 새로운 종류의 혐오가 부상했다. 언론에 연일 보도된 강력범죄 사건들과 그들의 정신병력 때문이다. 나는 그저 조금 기분 나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으로 취급받을지언정 사회와 완벽히 격리되어야 할 사람으로 취급받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만약 조현병 환자였다면?
당신이 상상하는 정신장애인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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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편견과 다르게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율이 비 조현병 환자 강력범죄율의 1/6 미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이, 결국 그들이 질병을 부정하게 만들고 세상과 공존하기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누군가 물었다. 너는 왜 약을 먹어?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정신병력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 사건과 경험, 인과관계가 얽혀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세상에 대면한다. 누군가의 대면은 어느 누군가의 것보다 조금 더 극적일 수 있다.
광화문에서 우리는 직접 색칠한 가면을 쓰고 거리를 걸었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깃대를 들었다. 그 어느 정신장애인이 뉘여 제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을지도 모를 침대를 끌고 광장으로 나섰다.
조금 더 극적인 채로, 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다름을 스스로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우리의 대면을 보다 어렵게 한다. 혐오와 격리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상태에서, 사회와 어울릴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내 문제를 알려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을 방법을 함께 고민해 나갈 수도 있다.
스스로를 부정해야 했던 그 모두에게 전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세상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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