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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꿈속의 정말, 정말 속의 꿈 - 연극전공 제작공연 <둥둥 낙랑둥> 성황리 막 내려

by 중앙문화 2025. 10. 24.

▲둥둥 낙랑둥 포스터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꿈속의 정말, 정말 속의 꿈 - 연극 전공 제작공연 <둥둥 낙랑둥> 성황리 막 내려

편집위원 장희수

 

    본교 연극 전공 학생들이 올린 연극 <둥둥 낙랑둥> (작 최인훈, 연출 오경택, 학생연출 박소현)이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공연예술원 Space 1959에서 총 4회에 걸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연극학과는 매 학기 두 차례의 공연제작실습과 여름•겨울 창작워크숍의 흐름으로 공연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개발하며, 최종 공연작은 PT 발표와 내부 심사를 통해 확정된다. 이후 오디션을 거쳐 배우를 선발하고, 연출•기획•조명•무대•의상 등 각 분야 스태프를 구성해 하나의 프로덕션 팀을 완성한다. 또한 종합 예술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패션, 공간연출, 무용 등 타 전공과의 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체계적인 사전 제작 시스템을 통해 완성도와 전문성 높은 공연들이 대학로 공연예술원에서 수많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 공연은 2025학년도 2학기 공연제작실습 작품으로, 지난여름 내내 이어진 뜨거운 연습 끝에 그 결실을 가을에 선보였다.

 

   <둥둥 낙랑둥>은 한국 현대문학계의 거목이자, 소설 <광장>의 저자인 최인훈 작가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희곡에 실린 일련의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자명고’ 설화에 일란성쌍둥이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자명고’ 설화는 다음과 같다.

 

자명고 설화
고대 국가 ‘낙랑’의 공주와 사랑에 빠져 혼인하게 된 고구려의 호동 왕자.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적의 침입을 알리는 낙랑의 ‘자명고’를 찢어달라 부탁한다.
공주가 북을 찢은 덕분에 고구려는 낙랑을 정복하고, 낙랑공주는 낙랑 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최인훈 작가는 이 설화에 뛰어난 상상력, 은유와 상징의 세계를 입혀 <둥둥 낙랑둥>이라는 새로운 희곡을 탄생시켰다.

 

시놉시스
호동왕자는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 덕분에 낙랑을 정복했지만, 사랑하는 낙랑공주에 대한 죄책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한편, 고구려에는 낙랑공주의 일란성 쌍둥이 언니가 왕비로서, 또 고구려의 어미 무당으로서 호동의 귀국을 맞이한다. 호동과 왕비는 서로에게서
낙랑의 모습을 보고, 낙랑에서의 행복했던 시절을 재현하는 놀이를 하며 그리움을 채워간다. 

하지만 호동의 방에서 낙랑의 불상이 발견되고, 두 사람의 운명은 굿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표면적 줄거리만 살펴본다면 작품이 기존 설화의 후속편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호동과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환상과 현실의 교차를 통해 기존 설화의 의미와 정서가 한층 확장, 증폭되었다.

 

▲둥둥 낙랑둥 공연사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깊어지면, 그 간절한 마음은 어느새 꿈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 마치 거울을 비추듯 닮은 호동왕자와 왕비의 꿈과 슬픔은 관객들의 마음에 서서히 안착했다. 이처럼 진득한 정서와 밀도 높은 서사는 연출적 장치들을 통해 무대 위에서 섬세하게 구현되었다. 무엇보다 작품 곳곳에 배치한 한국적 색채를 담은 요소들은 또 다른 묘미로 다가왔다.

▲둥둥 낙랑둥 공연사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우선 원작과 달리 '창자'를 등장시켜 희곡 곳곳에 녹아있는 운문을 노래로 풀어낸 점이 매우 돋보였다. 창자가 노래로 불러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관객들의 마음에 와닿아, 인물들의 내면과 서사에 몰입할 수 있는 촉매로 작동했다.

 

살어생전 못 다 풀은 한도 풀고 원도 푸르셔 다시 태어나서 낮에도 달이 뜨고 밤에도 해가 뜰 때 행복하고 행복하게 극락왕생 하옵소서

 

특히 마지막 장에서 호동과 낙랑공주를 꽃배와 함께 떠나보내며 부른 노래는, 두 사람이 살아생전 풀지 못한 한과 사랑이 맺을 결실을 관객들의 마음속에 진하게 새겼다. 

▲둥둥 낙랑둥 공연사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작품의 상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제의'도 관객들의 깊은 몰입을 이끌어냈다. 작품은 제의를 매개로  설화의 문을 열고, 다시 제의를 통해 끝맺는다. 극 중 왕비가 거행하는 굿은 진오귀굿에서 착안한 것으로,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극의 말미, 호동의 방에서 낙랑의 부처가 발견된다. 왕실은 낙랑의 혼을 달래고, 백성에게 저지른 호동의 죄를 씻기 위해 굿판을 벌인다. 호동은 낙랑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며, 빚을 갚기 위해 낙랑의 북을 울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호동의 무의식 세계에 자리한 낙랑공주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북의 울림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호동이 마침내 걱정과 번뇌가 없는 영원의 세계에 닿았음을 읽어낼 수 있다.

▲둥둥 낙랑둥 공연사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앞서 언급한 창자의 노래와 제의는 라이브 연주를 통해 재현됐다. 연주자 김정현(연희예술20)과  장한백(연희예술25)은 각각 태평소•대금, 소리북•장구•북•징•정주 등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은 각 악기의 고유한 소리를 층층이 쌓아올려 빚어낸 선율로 극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잦게 몰아가는 장단’을 의미하는 자진모리장단 속에서 선율의 다양한 변주는 장면의 긴장감과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또한 왕비와 호동의 재현놀이 중 펼쳐진 낙랑 숲속 자연의 소리와 다양한 효과음이 악기와 어우러져 극의 생동감을 한층 높였다.

▲둥둥 낙랑둥 공연사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제공

   무대와 조명 같은 미학적 요소들도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지탱했다. 반복적으로 교차되는 현실과 환상, 개인과 국가의 두 세계는 빛의 흐름과 공간의 구성으로 무대 위에서 구현됐다.

무대 중심의 원은 찢어진 낙랑의 북에서 출발해, 죽은 공주와 기억이 깃든 추억의 장소이자 깊은 연못, 그리고 제의적 장소로 변주된다. 무대디자인을 맡은 엄지용(공간연출 21), 이수지 (공간연출 23)은 미니멀한 구조 속에서 관객이 인물들의 내면과 서사의 깊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전했다. 조명은 빛의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나누거나, 때로는 경계를 흐려 모든 것을 뒤섞는 등 다층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조명디자인을 맡은 최진아(연극22), 구나영(공간연출23)은 낮과 밤,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키는 빛의 변화를 통해 관객들이 두 세계를 자연스럽게 오가도록 연출했다고 전했다.

  낙랑공주•왕비 役 안수진(연극23),  호동왕자 役 박윤호(연극21), 창자 役 진서현(연극23), 왕•부장 役 김도겸(연극21), 달래 役 이윤나(연극21) 5명의 배우들 또한 뛰어난 기량과 각자의 매력으로 무대를 받쳐주었다. 사극 특성상 일상의 언어와 달라 자칫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음에도,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호흡에서 고심의 흔적이 느껴졌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공연예술원을 꾸준히 찾는 관객들의 뜨거운 성원 덕분이다. 공연의 완성은 언제나 관객과 함께한다. 지금도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는 작품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 학교 학우들의 공연에 많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공연 문의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https://theatre.cau.ac.kr/ 혹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인스타그램 @cau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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