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신호 87호 <내일로>/문화

우리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by 중앙문화 2024. 12. 29.

2024 가을겨울 87호 <중앙대 인권 대전 - <우리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우리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편집위원 고다연

 

 

▲ 네이버에 스몰토크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연관검색어.

 

개인 시간의 침범 : 스몰토크, 어쩌면 나만 어려운 걸까?

 

 

 포털 사이트에 스몰토크를 검색해 보자. 가장 먼저 스몰토크 주제가 연관 검색어로 따라온다. 그만큼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시작할 때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필자는 처음 만난 이들과 주로 MBTI 이야기를 하며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편이다. 이 외에도 최근에 나온 영화를 봤는지 혹은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으로 시작될 수 있다. 이렇게 스몰토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단어이지만 우리는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스몰토크의 정확한 정의와 기능은 무엇일까?

 스몰토크란 사교적인 상황에서 이뤄지는 가볍고 소소한 대화이다.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보다는 초면이거나, 초면은 아니라도 서로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주로 지칭한다. [각주:1] 이러한 스몰토크는 사회적 감정 공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능을 한다. [각주:2]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스몰토크는 그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스몰토크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그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처음 보는 사람과 어색함 없이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고, 애초에 모르는 사람과와의 대화가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스몰토크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화 사이에 있는 어색한 정적때문이다. 모르는 사람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소위 기가 빨리는 일이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어색하게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또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스몰토크는 많은 일상생활의 장소 속에서 쉽게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는 바로 택시와 미용실이다.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택시나 미용실에서의 스몰토크에서 불편함을, 혹은 더 나아가 불쾌함을 호소하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 필자 또한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님께서 계속해 말을 걸어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물론 서비스직이니 고객과의 친밀감 형성을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의 개인 시간을 침범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은 나의 사적인 부분까지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기곤 했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 중 내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영역까지 밝히게 되는 것에서 불편함은 시작된다. 물리적인 거리를 넘어 심리적으로도 내 영역이 침범되는 느낌을 받는다.

 

▲ 유튜버 <전핑콩>의 ‘또 안가게 되는 가게’라는 제목의 영상. ⓒ 전핑콩

 

 최근 필자는 유튜브 숏츠를 보다가 <또 안 가게 되는 가게>라는 제목의 영상을 접했다. 그 짧은 영상에서 식당 주인이 그 전에 한 번 방문했던 손님을 기억하고, 그 손님에게 계속 말을 붙이며 친근감을 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영상의 댓글에서 사람들은 식당 주인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거는 것이 불편하다, 부담스럽다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밥을 먹을 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만의 시간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이다. 혼자 있어도 인터넷으로 타인과 늘 연결된 상태가 유지되는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때 식당 주인이 말을 거는 것은 온전히 홀로 즐길 수 있는 개인 시간의 방해로 여겨진다. 스몰토크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현대인들이 많은 이유도 이와 비슷한 인식에서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자신이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무관하게 개인의 영역을 타인에 의해 침범당하는 것.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됐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물리적인 영역의 침범 또한 일어난다. 출근 시간에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등교해야 하는 그 시간을 상상해 보자. 개인 공간은커녕, 편하게 주위를 둘러보기도 힘든 환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곳에 집중적으로 모이다 보니 개인이 불쾌함을 느끼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 공간조차도 확보할 수 없다. 또한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 시간대이기에 누군가가 다 내리기도 전에 밀치듯 지하철에 탑승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우리는 대화와 같은 심리적인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 모두에서 개인의 영역을 침범당할 때가 많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선 자기 영역의 범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을 정확히 규정할 수 있을까?

 

 

심리적 영역의 침범: 우리는 어느 정도로 떨어져야 해?

 

▲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에 나온 사회적 거리를 단계별로 표현한 삽 ⓒ 창의 도시 재생지원센터 웹진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숨겨진 차원이라는 책에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 거리로 분류했다. 친밀한 거리는 50cm 미만, 개인적 거리는 120cm 이내, 사회적 거리는 3m, 공적 거리는 3~4m 이상[각주:3]으로 정의된다. 물리적인 거리에서의 개인 영역은 이렇게 수치로 정의할 수 있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수치화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스몰토크가 어려운 대표적인 이유이다. 누군가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는 너무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과의 거리를 측정할 때, 물리적, 그리고 심리적인 거리가 모두 중요해졌다.

 이렇게 개인의 영역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강조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정책 중 하나인 사회적 거리 두기는 손에 꼽히는 핵심 정책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정책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정부 주도의 정책에 따라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등과 같은 배달 음식 앱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식문화에서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쿠팡의 로켓배송과 같은 비대면 배달 및 운송 서비스가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또한 이제는 극장 혹은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집에서 개인 화면으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고, 이제 이것이 완전히 자리 잡은 문화 현상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면대면으로 직접 사람을 상대하는 게 기본이었던 생활 환경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사회적 거리 두기이후 완전히 전환됐다. 사람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기보다는 어떠한 매체를 거쳐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에 더욱 익숙해졌다. 이에 따라 사람들 간의 심리적 거리도 함께 멀어지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적 거리 두기정책을 잘 지킨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함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한다. 누군가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내가 그에게 질병을 전염시킬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내 영역을 침범했을 때 그가 나에게 질병을 전염시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이러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필사적으로 지키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영역 침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를 겪은 후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존 위협을 겪으며 자기 삶의 방식을 많이 바꿨다. 비대면 활동이 익숙해지고 활성화되며, 사적인 공간, 예컨대 내 집에서 소수의 인원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편안함을 맛보고 나니 공개된 장소에서 낯선 사람이 내게 접근하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됐다.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급증하면서 인터넷 세상에 접속해 있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던 시기를 기억하는가. 외출에 사회적으로 제한이 있던 당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활동 중 OTT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작품을 시청하는 새로운 취미가 등장했다. 코로나19라는 (질병) 위기 상황과 정책적으로 집 안에 고립된 당시의 시대 모습과 맞아떨어져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은 창작물들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영역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음에서 오는 공포와 불편함을 그려내 대중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던 대중매체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OTT 플랫폼 넷플릭스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각주:4]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자.

 

▲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포스터 ⓒ 넷플릭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라는 작품은 주인공 이나미가 분실한 스마트폰을 오준영이라는 남자가 주우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준영은 그녀의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휴대전화를 통해 이나미의 가족관계부터 취미와 취향, 일상생활 반경 등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그녀를 살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직접 그 계획을 실행한다. 가장 먼저 그녀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 단골인 척하며 찾아갔다. 처음 보는 남자가 단골 행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미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한 번에 깨닫지 못했다. 이유라 함은 그녀는 손님들보다는 그녀의 SNS 계정과, 휴대전화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은 카페에 있지만, 정신은 휴대전화 속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 작품에서 잠시 벗어나 고개를 들어보면 대부분의 현대인이 나미처럼자신이 접하고 있는 실생활 속보다는 가상 세계 속의 자신에 더 집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한 사람의 스마트폰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무수히 많다. 어떤 이의 이름, 나이, 성별, 가족 관계,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생활 반경이 어떠한지 등. 사람들이 이 기기 하나에 의존하면서 스마트폰 하나를 통해 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더욱 많아졌다. 우리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한 불안을 느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스마트폰을 해킹해 누군가 나의 개인정보를 모두 조사하고, 휴대전화의 렌즈를 통해 나의 행동 하나하나 모두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이 영화의 설정에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타인에 의해 본인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침범당한다는 느낌을 화면 너머로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르기에 어떠한 공간이라고 확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추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그 공간이 바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영역이라고 인식하는 곳이 침범당할 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더 나아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침범받게 된다. , 어느 정도의 선 안에서는 타인의 침범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영역 침범을 용인할 수 있는 선은 어느 정도일까?

 

 타인의 개인 영역 침범에 대한 인식은 본인이 어느 정도로 예민한가와 같은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 및 기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HSP’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준말로, 매우 예민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1995년 일레인 아론 박사의 민감한 사람들의 유쾌한 생존법이라는 저서[각주:5]의 출간으로 도입됐다. HSP는 세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 타인에게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 그리고 주위 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각주:6]이 카테고리 중 어디에 해당하느냐에 따라서도 타인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 자신이 HSP인지 확인할 수 있는 셀프 체크리스트. 14개 이상에 ‘그렇다’고 답했다면, HSP일 확률이 높다. ⓒ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

 

 이러한 예민함은 이제 단순히 지하철과 같은 물리적인 공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이제 인간관계와 같은 심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SNS나 카카오톡과 같은 가상의 공간도 자신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스마트폰은 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공개하고 싶은 범위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와 같은 SNS를 통해 공개하기도 하고, 나의 하루 계획을 투두 메이트[각주:7]와 같은 일정 관리 앱에 기록하기도 한다. 또한 토스나 카카오페이와 같은 인터넷 뱅킹 앱을 통해 현금을 거래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스마트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빠른 과학 기술의 발전은 키오스크나 현금 없는 버스 등으로 확대되어 기술에 낯선 이들을 일상생활에서 배제하는 일을 낳기도 한다. 이들은 디지털 소외 계층이 되어, 사회의 각 영역에서 소외된다.

 

 코로나19 이후 키오스크의 도입으로,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지 못하여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또한 2024년 이용객이 급증한 스포츠 시설인 야구장이나 명절에 타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탑승해야 하는 KTX, 혹은 고속버스의 표도 모두 휴대전화로 예매해야 하기에 예매하는 법을 모르거나 익숙지 않은 이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서비스에서 격차가 벌어져 소외되고 있는 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개인 간의 거리감이 충분히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화적 계급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는 우리의 영역이 가상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그리고 그러한 가상의 영역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제 심리적인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가상의 영역에서의 거리를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디지털 소외 계층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고 있고, 그 활용의 중심점에 있는 세대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필자 또한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일상생활에서 나의 영역이라고 인식되는 공간의 침범에만 집중해 왔다. 예를 들어 SNS를 할 때 다른 의견이 보인다면 그것에 대해 왜 이러한 의견이 존재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도록 아예 계정을 차단해 버리고는 한다. 나의 영역에 무언가 거슬리는 것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때문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피곤을 유발하는 게시글을 포함한 계정들도 수없이 차단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SNS의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또한 새로운 형식의 고립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쉽게 고립시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놓치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고립이 나의 영역에 견고함을 더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적 고립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년층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그러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고립이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임을 인지해야 한다.

 

너도 공존이 불편하니?

 

 인터넷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의도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현상에 대한 타인의 생각이나 타인의 사생활을 접하게 될 수 있는 통로들이 많아졌다. 필자도 SNS의 한 종류인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며 의도치 않게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 혹은 예전에 다녔던 학원 선생님의 계정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바로 사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쌓이는 데이터로 매번 진화하는 알고리즘의 영향이다. 인스타그램은 개인의 연락처를 동기화하거나, 몇 명 이상의 팔로워가 겹치면 추천 친구로 계정을 보여주곤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원하지 않는 사람의 계정을 추천받아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게 된다. 가끔은 아예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추천 친구로 계정이 뜨기도 한다. 이는 내가 사용하는 계정 또한 마찬가지로 원치 않음에도 타인에게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공간은 타인과 공유되고 있는 가상의 공간이기에 더 이상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시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카카오톡의 멀티 프로필기능도 큰 호응을 얻었다. 카카오톡 이용자들은 본인이 선정한 사람들에게만 원하는 프로필을 드러낼 수 있는 이 기능을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가상의 공간에서도 자신의 영역과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것이 드러난다.

 

 이렇게 자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이 빈번해지고 있는 사회 속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우리 세대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바로 프라이버시 역설에 대한 연구이다. 프라이버시 역설개인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염려가 증가하게 되는 역설적인 현상의 발생[각주:8]을 의미한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각주:9]들은 다른 세대들에 비해 프라이버시 염려는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SNS 이용률은 가장 높다는 점에서 프라이버시 역설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점 더 ICT 기술이 발전하고, 휴대전화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프라이버시 역설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SNS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세대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각 개인이 스스로 정보를 얻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활동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며 자기중심적[각주:10]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또한 유튜브나 SNS 등을 보면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19세 제한이 걸린 영화가 유튜브 숏츠 등으로 짧게 편집된 영상들이 연령 제한 없이 올라오기도 한다. 혐오와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가상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므로 모두 각자 개인의 공간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할 뿐, 함께 사용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는 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모순을 아니?

 타인과 공존하며 사는 세상에서 나의 목소리만을 내세우는 건 불가능하다. 가정에서, 혹은 가장 일찍부터 시작하는 교육 기관에서도 배우기에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가상의 공간에서 강한 공격성을 가지고 타인을 대한다. 가상의 공간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홍대의 만남의 광장에 내가 있다고 해서, 내가 그 광장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공간 속에서 서로를 침범하는 모순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와의 모순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사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사생활을 침해당하기는 더욱 쉬워진 사회가 됐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중요하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오히려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어딘가에 입력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 중요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각자 개인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공공의 가상 공간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영역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가상 세계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현실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개인의 영역이 확장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사회와 고립되는 일도 동시에 일어난다. 결국 이는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고 인식하는 상황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나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영역을 유지하며 살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영역이 지니는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으며, 가상의 공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개인의 영역을 어디까지라고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영역으로 인지되는 곳이 침해된다고 생각되면 불쾌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만을 생각할 뿐 타인의 영역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모호해지고 있는 만큼 적절한 개인 영역 간의 거리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영역이 어디인지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며, 타인이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나의 공간을 침범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바이다. 우리는 자신의 계정과 피드가 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피드는 타인의 영역을 공유받는 것이며, 우리의 계정 역시 타인의 영역에 공유되는, 서로 공존하면서도 침범하는 공간인 것이다. ,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 영역의 침범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이다. 우리는 가상의 공간에서든, 현실 세계에서든 서로에게 필연적으로 침입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타인이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대한 개인의 용인 범위는 모두 다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도 다르며, 이러한 개인의 성향은 시간에 따라서, 사회의 흐름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성별과 나이, 사회적 지위에 따라 어떠한 행동이 공격성을 띠는 행동으로, 혹은 그렇지 않은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물리적인 영역보다 가상공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며 현대인들은 프라이버시와 같은 개인 영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더욱 예민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정적인 공간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더 노출되기 쉬운 환경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개인의 공간을 견고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고립되기 쉬워진 환경이라는 것도. 이제 우리는 그러한 지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때이다. 과연 우리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들이 정말 온전히 우리의 영역을 지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타인을 나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존재로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타인이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충분히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타인을 온전히 배제한 채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위치해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찾는 동시에 타인의 영역과 공존하기 위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공존할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영역을 고립시키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의 영역이 단순히 가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개인의 영역은 타인의 영역과 공존할 때 지켜질 수 있.

 

본고의 초반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의 영역(퍼스널 스페이스)’와 이를 침범하고 침범받을 때 느끼는 공격성의 정도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이기에 쉽사리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개인의 침입을 통제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개된 장소와 폐쇄된 공간에서 모두 드러나는 공격이 난무하는 요즘, 잠시 멈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타인을 향해 느끼는 공격성의 정도는 어떠한가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공격성을 어떻게 적응하고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물론 어떠한 집단을 대표하는 의견이 존재하고, 그 의견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 여론이 집단 구성원 개인의 온전한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단을 넘어서 개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본고가 이러한 논의의 또 다른 장이 되길 바란다.

 

 

 

  1. 더칼럼니스트, “‘스몰토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1)”. 2023, 신지영 [본문으로]
  2. 오석환(Seok Hwan Oh)·손승연(Seung Yeon Son), 스몰 토크가 도움행동과 일-가정 갈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감정공유의 매개효과, 2024, 인사조직연구, 32.2. [본문으로]
  3.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가 오피니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문화 변동: 말레이시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2020, 홍석준. [본문으로]
  4. 넷플릭스(Netflix)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성한 이름으로 전 영화와 드라마, TV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의 매우 다양한 장르의 컨텐츠들을 언제, 어디서나 무제한으로 모든 기기에서 볼 수 있는 플랫폼이다. [본문으로]
  5. 한국심리학신문, “남들보다 민감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 HSP(Highly Sensitive People)”, 2022.01.14, 유하경. [본문으로]
  6. VOGUE, “혹시 당신은 프로 예민러?”, 2020.02.04, 송보라. [본문으로]
  7. 할 일과 루틴을 계획하고 친구들과 서로의 계획을 공유하거나 응원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래너. [본문으로]
  8. 고흥석, 디지털 세대의 연령-시기-코호트 효과 탐색 : SNS 이용과 프라이버시 염려를 중심으로, 2023, 광고PR실학연구, 16(2), 28-50. [본문으로]
  9. 인터넷 등 디지털 기기를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고 친숙하게 이용하는 세대 [본문으로]
  10. 미래경제뉴스 리더스칼럼, “디지털 세대, 변화와 갈등”, 2021, 이영기. [본문으로]

'최신호 87호 <내일로> >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로의 항해  (3) 2024.12.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