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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7호 <내일로>/대학

등잔 밑 인문학

by 중앙문화 2024. 12. 29.

2024 가을겨울 87호 <등잔 밑 인문학>

 

등잔 밑 인문학

편집위원 이진주

 

 

Chapter 1. 들어가며

 

인문학의 부활

2024년 10월, 대다수가 감히 예상하지 못한 경사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을 탄 아시아 최초 여성 작가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반가운 뉴스를 접하자 번뜩 고등학생 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독후감을 썼던 경험이 떠올랐다. 한강 작가의 기쁜 소식은 순식간에 나를 동호와 함께 울고 웃었던 2017년으로 데려갔다.

 

▲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 The Nobel Prize  홈페이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한강 열풍이 일어났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강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려 품귀 현상까지 나타났다. 항간에는 “나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됐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좀처럼 언어에 능통한 자가 아니라면 번역이라는 2차 과정을 거쳐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접할 수 있었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아무래도 번역본은 원작자가 아닌 번역가가 맡기 때문에, 대체로 글에서 원작자가 독자에게 주고 싶은 세밀한 뉘앙스를 온전히 담아내기에 힘들다는 특성이 있다.

 

  이렇듯 너도나도 나서서 책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모여 텍스트힙(Text-Hip) [각주:1] 유행이 일어나게 된 건 실로 생소하고도 반가운 광경이다. 그도 아닐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 성인의 독서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각주:2] 문체부가 올해 18일 발표한 ‘2023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서 일반 성인의 종합독서율[각주:3]이 43%에 그쳤다. 이는 2021년 대비 4.5%P 감소한 수치다.

 

  한강 작가가 일으킨 문학의 재조명은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은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앞서 제시한 수치를 보더라도 현대사회에서 독서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과로로 녹초가 된 사람들은 글자 한 자, 문장 한 줄 읽는 것이 부담스럽다. 점점 줄어가는 독서 인구와 맞물려 출판업계도 고요해진 작업 현장을 피할 수 없었는데, 급격히 늘어난 독서에 대한 관심은 드디어 시들어가는 인문학이 부활한다는 여론을 몰고 오기도 했다. 잠깐, 인문학의 부활이라니?

 


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가 이 글을 단순히 밥줄이 느슨해진 인문학도의 호소라 느끼지 않도록 간단히 필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사회과학대학 정치국제학과 학생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엄연히 다른 학문인데, 사회과학도인 필자는 왜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쓰려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면 당신은 이 글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결국 사회과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뿌리가 인간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은 ‘인간의 활동이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의 작동 양상’에 대해 다루는 학문이다. 이때 사회과학에서 필요한 ‘인간의 활동’은 한 개인이 가진 인간성과 감수성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에 속하면서 집단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집단이 뭉쳐 이룬 사회에 의해 정의, 윤리와 같은 관념적 요소들이 조금씩 명확해진다. 집단과 사회에 물든 인간의 특성을 분명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사회 속 인간에 초점을 두는 대신 인간의 상태 자체에 대해 보다 고차원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인문학을 알아보자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문학을 다룬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인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인문학으로 봐야 하는가? 광활한 인문학을 정의하는 데 있어, 이 글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빌리고자 한다.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 2016. 8. 4.] [법률 제13940호, 2016. 2. 3., 제정]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인문”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
2.  “인문학”이란 인문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언어학ㆍ문학ㆍ역사학ㆍ철학ㆍ종교학 등의 학문 직관ㆍ체험ㆍ표현ㆍ이해ㆍ해석 등 인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제반 학문  이에 기반을 둔 융복합 학문 등 관련 학문분야를 말한다.


 

 

Chapter 2. 사회에서

 

 

‘문송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사람들에게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인문학을 탐구하지는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전공자에게도 말이다.  “문송합니다.”라는 인사말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게 느껴질 테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말로 취업난 속에서 문과생들이 사용하는 자조적 표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는 게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모든 사람이 전공에 완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테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러한 현상을 감안하더라도 인문학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놓인 이들이 인문학에 애정을 가지는 대신, 자발적으로 인문학을 경시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직장인 706명을 대상으로 전공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다. ‘본인의 전공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78.0%가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 만족한다는 답변은 16%, ▲ 잘 모르겠다는 답변은 6%에 그쳤다. 이때 불만족한다고 말한 전공은 ▲ 법학이 84.6%, ▲ 인문학이 83.9%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재선택한 전공은 무엇일까? 1위는 28.7%를 차지한 공학 계열, 그 뒤는 의학 계열이 16.7%를 차지했다. 모두 취업이 잘 된다고 알려진 전공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공을 재선택한 기준도 취업의 용이성 정도에 달려 있었다. 전공을 재선택한 이들에게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 복수 응답으로 물어본 결과, ▲ 취업이 잘될 것 같다는 답변이 61%를 차지했다. ▲ 흥미로운 분야 같아서 선택했다는 답변도 34.3%였다.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교에 다니는 이유가 취업과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현실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학문의 실용성을 갖추지 못하게 된 인문대생들의 쓴웃음이 사라지기는 힘들 듯하다.

 

▲ 잡코리아, “직장인 78.0% '대학 전공 다시 선택할래!'... 인기 학과 1위 '공학계열'”, 2023.10.20.

 

 

 

가깝지만 먼 것

인문학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사람들은 인문학을 점점 잊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인문학에 인색한 사회의 기조가 기술 주도적인 사회상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1900년대 중반부터 어느덧 기술은 인간의 삶에 완전히 스며들게 됐다. 단순히 반복 노동을 대신 수행하던 1차 기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술의 발전에는 끝이 없다더니, 어느새 기술의 발달은 정보 접근의 발달로 이어졌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가정에 TV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더욱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기술의 발달은 자본을 욕구하는 시대상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도 실용성효용성이 최고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한다.

실용성(實用性): 실제적인 쓸모가 있는 성질이나 특성.
효용성(實用性): 쓸모나 보람이 있는 성질.

 

 

  우리는 어떠한 것의 가치를 판단할 때 ① 빠르게 ② 유의미한 결과를 내며 ③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살핀다. 단시간 내에 구체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기술로 창출한 자본이 더 큰 자본을 부르는 메커니즘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는 인문학은 고리타분한 허상으로 전락했다.

 

  일각은 기술 주도 실용주의 사회가 인문학과 대척점에 있다고 여기곤 한다. 점점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시대의 경향에 따른다면 인문학이 설 자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기술 주도 실용주의 사회는 그 어느 것보다 인문학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연구되고, 숙련되고, 사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아래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다. 거대한 자본 아래에 묻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행위, 모든 게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에서 거래되지 말아야 하는 무언가를 지정하는 행위, 기술과 윤리가 충돌할 때 우선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행위, 인간이 누려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보다 자본이 앞서지 않도록 저지하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은 기술과 인문학이 건강하게 결합한 사회에서 기인한다.

 

  인문학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기술 주도 실용주의 사회를 완벽히 전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건 가치를 판단하는 데 있어 효율성만을 중시하고 인문학을 경시하는 시대상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과, 인문학을 향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면밀히 살펴봐야 할 우선순위의 최전선에 있다.

 

 

Chapter 3. 대학교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 가르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대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굉장히 다양한 답변이 들려올 수 있지만, 사실 그리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교에 진학하고, 학위증을 밑거름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사회에서 그런대로 잘사는 삶이라고 여겨진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정형적인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 대학교 ’ 를 검색한 결과 .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대학교는 교육을 베푸는 교육 기관으로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대학교는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라 인류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지혜를 일깨우는 기관이다. 이 지혜에는 사고(思考)와 사유(思惟)를 할 수 있는 역량이 포함된다. 대학교는 일종의 잘 자란 나무라고 할 수 있다. 나이테가 셀 수 없이 빼곡한 나무에서 기초 학문이 뿌리를 내리고, 이 뿌리를 통해 충분히 얻은 영양분으로 실용 학문이 잘 익은 열매를 맺는다. 대학교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존재한다. 그러니까, 취업에 필요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수단적 공간이라는 단편성을 가진 곳으로 변모하기 이전엔 말이다.

 

  최근 대학교는 인문학을 포기하는 방향을 택한다. 실용성과 효용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흐름에서 결코 대학교도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이다. 덕성여자대학교(이하 덕성여대)는 2025년부터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에 신입생을 들이지 않는다. 학교 측은 학과의 저조한 인기, 인구 감소 추세에 대한 위기 대응을 사유로 제시했다.[각주:4] 덕성여대 이전엔 동국대학교(이하 동국대)가 있었다. 동국대의 2010학년도 입학정원조정안을 보면, 더 이상 독어독문학 전공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탈(脫)인문학 경향은 서울 소재의 대학교뿐만 아니라 지방 소재의 대학교에서 더욱 활발하게 보인다. 아무래도 인구 감소의 영향이 직접적인 이유일 테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다른 전공보다 수요가 적은 기초 학문에서 폐과의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학과의 수요라는 기준에 기대어 눈앞에 닥친 인구 감소 문제를 대처하다 보면 결국 인문계열 학과들이 하나둘 총알받이로 전락하게 된다. 여러 대학교가 고수하는 인문계열 구조조정은 최선의 해결책이 아닌 그저 장래를 어둡게 만드는 미봉책(彌縫策)이라는 결론이다.

 

 

그림자를 유심히

2010년, 중앙대학교도 인문계열 구조조정을 거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중앙대학교에는 유럽문화학부가 있다. 중앙대학교 학우임에도 다른 학과에 대해 큰 관심이 있지 않다면 ‘유럽문화학부’를 처음 들었을 때 유럽문화에 대해서만 배우는 학부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사실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러시아어문학과가 통폐합된 학부다. 이때 통폐합이란 같거나 비슷한 여러 기업·기구 따위를 없애거나 합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현재 하나의 학부 아래 독일어문학전공, 프랑스어문학전공, 러시아어문학전공으로 남아있다. 일본어문학과, 중국어문학과는 각각 일본어문학전공, 중국어문학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문화학부로 통폐합됐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됐다.

 

▲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홈페이지.
▲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아시아문화학부 홈페이지.

     

 

  그럼에도 인문학은 살아야 한다. 여전히 인문학에 소신을 가지고 인문계열에 원서를 내는 수많은 학우들이 있다. 통폐합이라는 과거를 뒤로 하고, 독일어문학전공에 지원한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24학번 새내기 허진혁 학우를 만났다.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인문대학 유럽문화학부 독일어문학전공 1학년 허진혁입니다.
 
 
Q. 단순히 성적에 맞춰 진학한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왜 독일어문학전공에 진학하게 되었나요?
 
A. 어릴 때 약 2년 반 동안 독일에 거주했던 경험이 자연스럽게 독일에 대한 친숙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도 독일이라는 나라와 언어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도 외국어고등학교 독일어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의 사회, 문화, 그리고 언어에 매력을 느꼈고, 이를 더욱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Q. 독일어문학전공은 인문대학에 속하잖아요. 그렇다면 진혁님은 인문학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인간의 특성이 모여 생긴 사회와 문화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문학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사고의 확장을 돕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학문이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Q. 진혁님은 에브리타임과 같은 대학교 커뮤니티, 강연과 같은 외부 프로그램, 혹은 또래끼리의 대화 등에서 인문학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적이 있나요?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A. 다양한 매체 혹은 실제 대화 등을 통해, 타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인문학도 중에서도 인문학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같은 학우들과 얘기할 때, 많은 학우가 전과 생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과의 이유 중 현재 자신의 전공이 잘 맞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앞으로 뭐해먹고 살지”와 같이 취업과 관련된 이유도 꽤 많았습니다.
 
 
Q. 진혁님이 생각했을 때 인문학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져야 할까요?
 
A. 네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실리와 기술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에서, 인문학은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인문학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합니다. 여러 의견을 들으며 스스로도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인문학의 한계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인문학이 다른 학문과 연계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학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 역시 그 학문 안에서만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문들과 연계하여 탐구할 때 그 학문의 진정한 의미와 강점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진혁님은 졸업을 한 후 전공을 살릴 의향이 있으신가요?
 
A. 네 그렇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1학년 학부생이기에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 꿈은 외교관으로 독일에서 근무하는 것입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거주하고 근무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만큼 현재 제가 공부하고 있는 독어독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언어와 사회, 그들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고 탐구하는 건 외교관이라는 저의 꿈을 이루는 데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Chapter 4. 인문학의 미래

 

 

인문학과의 공생

2024년 11월 2일. 고장 난 줄만 알았던 이북리더기가 기적같이 생환했다. 다른 기기를 장만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웬걸! 공짜로 돈을 번 기분으로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읽었다. 이틀 동안 강렬하게 경험했던 세계는 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이다. 태린이 선오, 이제프, 그리고 쏠과 함께 겪었던 길고 긴 여정을 고작 단 며칠만에 훑어보니, 아쉽고도 시원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범람체는 우주에서 떨어진 지성 생명체다. 그들이 떨어진 데에는 대단한 이유가 없다. 그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우주의 법칙 속 하나처럼 말이다. 그들은 지구에 호기심을 가지고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과 함께 살아가려 한다. 이 소설에는 범람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한편 범람체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파견자들>은 그동안 인간이 스스로 규정해 온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결국 공존, 나아가 다른 개체와의 공생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있어야 할까?’ 있어야 한다. 모든 학문과 기술은 인문학이 확장되고 긴밀히 연결된 결과의 산물이다. 인문학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도 하나, 수많은 학문의 토양이 되기도 한다. 사회가 가진 고질병을 가시적으로 정의하는가 하면, 이 고질병의 해답을 찾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기초 학문으로서 공고한 토대로 기능하는 인문학은 실용 학문에 밀려 사라져야 할 존재가 아니다. 다만 공생해야 하는 존재다.

 

 

다시 돌아갈 차례

글의 첫 문단으로 돌아가 볼까. ‘한강 작가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삶의 연약함을 드러냈다.’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가 한강 작가에게 상을 주기로 결정한 이유다. 한강 작가는 우리나라가 지나온 과거를 세심하게 어루만졌다. 그의 소설에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여럿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시대적 및 인문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가령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소년이 온다>는 5.18 사건을 다루며 분명 지나온 일들이지만 지나왔다는 사실을 잊는 현대인에게 이를 상기시키는 한편, <채식주의자>는 다양한 범주와 영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안일하게 바라보는 사회를 꼬집는다.

 

  거창한 게 아니다. 인문학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한 통계로 수치화 되거나 자본으로 환산될 수 있는 무언가보다도, 우리가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넌지시 건넨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이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야말로 진정으로 인문학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문학이 자신의 존재 정당성을 스스로 내세워야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문학을 지켜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텍스트 힙(Text-Hip)이란글자를 뜻하는텍스트(Text)’멋있다,개성 있다라는 뜻의 은어힙하다(Hip)’를 합성한 신조어다. [본문으로]
  2. 한경 BUSINESS, “정부 지원 없으면 사상누각”…다시 온 책의 시간, 부흥의 조건 [책이 돌아왔다③]”, 2024.10.20, 정채희. [본문으로]
  3. 종합 독서율이란,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4. 조선일보, “AI 번역에 밀려나는 어학과? 덕성여대 독문·불문과 폐지 수순”, 2024.04.24, 신지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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