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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7호 <내일로>/정치

함께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by 중앙문화 2024. 12. 28.

2024 가을겨울 87호 <함께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함께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편집위원 박지은

 

 

Part I: 남과 북, 같은 땅에 관한 다른 시선들

우리가 마주한 통일의 양상은:

가끔은 돌아가 보곤 한다. 파주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가까이에서 북한 땅을 마주했던 고등학생의 그날로 말이다. 눈앞에는 철책과 군사 초소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멀리 북한의 산줄기와 건물들이 보였다. 아무 소리 없이 고요했지만, 그 적막 속엔 분단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장면은 내게 분단의 무게와 남북이 마주할 미래를 처음으로 고민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한민족이지만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땅의 단절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한민족, 한겨레라는 사실을 겨우 이 얇은 선 하나로 갈라놓을 수 있는 걸까?’ 그 순간, 내가 이 분단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통일과 민족 통합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묵직하고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제3땅굴과 판문점에서 마주한 북한의 풍경은 한반도의 분단을 생생하게 실감하게 했다.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우리의 현실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분단의 선을 마주했던 그날로 돌아가, 두 조항을 바라본다.

 

 

헌법 제3조: 영토조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제4조: 통일조항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이상하다. 같은 헌법 안에서 두 조항이 서로 어긋나는 것 같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간주한다.[각주:1] 그러나 통일을 지향한다는 조항은 북한을 협력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한반도는 우리의 영토인가, 아니면 협상의 대상인가? 통일 논의는 이 헌법 속 모순을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에는 현재 북한 지역을 포함한 행정 구역인 이북오도[각주:2]가 존재한다. 정부는 통일 대비하여 이북오도를 남한에 두고 있으며, 이북오도청이라는 행정기관이 이를 관할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을 통치할 권한은 없지만, 이북오도라는 행정 구역의 존재는 한반도가 여전히 하나의 영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어쩌면 이 모순은 한반도 통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사회의 최우선 과제였던 통일 문제는 이제 경제적 어려움과 국제적 갈등 속에서 점차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은 통일을 현실적인 과제로 여기지 않으며,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역시 무관심하다.

      그렇다면 통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일까? 아니면 그저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남북한의 미래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까? 이 글은 통일이 ‘필수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다시금 통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제 막연한 의무나 당위에서 벗어나, 통일을 우리의 현실과 연결된 문제로 바라보려 한다. 통일이 실현되어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 통일을 생각하고 논의하는 그 과정에서부터 남과 북은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우리가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 더 가까이에서 나누고, 그 이야기가 단지 먼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 가능성으로 다가온다면, 남북한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준비를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 강조해 본다. 이 글은 통일이 필수적인 목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다만 통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그 관심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어쩌면 통일은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가 아닌, 함께 걸어가야 할 여정인지도 모른다. 이제 필자와 함께 북한을 바라보던 그 시선에 동행해 보자.

 

 

무뎌지는 경계 너머의 질문들

      언젠가 북한에 관한 뉴스를 볼 때였다. 2024년 5월, 북한 관련 뉴스들이 유독 빈번하게 들려왔던 때.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동해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스쳐 지나갔고, 이어 서울 도심에 울려 퍼진 재난 문자 소리도 들려왔다. 북한이 남한으로 던진 오물 풍선에 대한 재난 문자 역시 울렸다. 사람들은 잠시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젠 북한과의 크고 작은 갈등이 더 이상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단어에 점점 무뎌지고, 그것이 불러올 변화에 대한 감각조차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쓰레기 풍선 안전안내문자[각주:3]© 네이버 블로그

 

 

▲ 북한 오물 풍선 도발 일지[각주:4] © 시사인 

 

 

▲ 북한이 날린 대남 쓰레기 풍선[각주:5] © 서울신문

 

 

▲ 최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일지[각주:6] © 연합뉴스

 

 

      북한 소식을 전하는 재난 문자가 울렸을 때, 누군가가 “또 북한이야?”라며 피곤하다는 듯이 웃어넘기는 장면. 누구나 그 장면의 주체가 되어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서 들려오는 북한 이야기는 그만큼 당연하고, 때로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곤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내수 침체와 청년 실업난 같은 시급한 문제에 얽매여, 통일이라는 주제를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통일이라는 단어에 무관심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철책 너머로 북한 땅을 바라보며 느꼈던 벅찬 감정이, 오늘날의 현실 앞에서 무뎌진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려 한다. 과연 통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앞서 말했지만, 필자가 독자들과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부분이라 다시 한번 말해본다. 이 글은 통일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당위적 과제라기 보다는, 통일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남북 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통일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유효한 논의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남북 상호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자 한다. 이상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실제 법안과 정책은 어떻게 규정되고 움직이고 있을까? 

 

 


 

 

Part II: 통일의 문 앞에서 되묻다. 법이 가야 할 길은?

통일의 문 앞에 선 두 얼굴의 법

      처음 북한 땅을 마주한 그날. 철책 너머의 풍경이 그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이 아니라, 하나였던 우리의 또 다른 절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매정하리만큼 다르다. 한반도를 바라보면,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은 단지 지리적 분리가 아닌, 법과 사고방식의 깊은 차이로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통일을 향한 길에는 법이라는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나라의 존립을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을 통제하고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한마디로, 북한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법이랄까? 그런데 이 법이 북한과 협력을 시작하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장벽처럼 등장해 우리 발걸음을 묶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1조(목적등)
①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국가보안법은 본래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 반국가 세력을 규제하고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은 북한과의 협력을 가로막는 규제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제7조는 북한을 찬양하거나 그 활동을 고무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어, 통일 논의의 다층적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 고무등)
국가의 존립 ·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 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위의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한정합헌결정을 받은 후 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험의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각주:7] 그러나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전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는 달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파트너로 전제하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각주:8]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남북한 방문)
남한의 주민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북한의 주민이 남한을 방문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통일부장관의 방문승인을 받아야 하며, 통일부장관이 발급한 증명서(이하 “방문증명서”라 한다)를 소지하여야 한다.

 

 

      두 조항은 목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분명 한반도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각과 목표는 상반된다.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북한을 “위협”으로 여기고, 또 다른 하나는 북한을 “파트너”로 바라보는 셈이다. 이렇게 통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법적으로도 나뉘어 있다 보니, 우리는 통일의 준비 과정에서조차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다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선은 단지 물리적인 경계에 그치지 않고, 남과 북의 법과 사고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우리는 통일의 길목에서조차 서로를 다른 눈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두 법이 담고 있는 상반된 메시지 속에서, 우리는 통일을 향한 준비를 해가면서도 북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함께 걸어갈 이웃으로 볼 것인가. 우리는 통일의 길목에 그 시선의 균형 맞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 너머의 사람들이 단지 ‘반국가단체’의 일원이 아니라, 언젠가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야 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통일을 위한 법적 틀도 달라져야 함이 분명하다.

 

 

반공의 틀 속에서 통일을 고민하다

      통일이 이루어진 한반도는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통해 국제적인 위상을 강화하고 인도주의적 가치를 실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수없이 배워왔고, 희망을 얘기해 왔다. 하지만 현실 정치와 사회에서도 그러한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언제 적 이상을 이야기하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통일 논의는 남북한 간의 정치적사회적 긴장과 법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가운데 특히 국가보안법은 남북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법적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이 법은 반국가적 행위를 방지하는 국가안전보장의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남북 간 협력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지적되고 있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반국가적 활동을 억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의 기초를 견고히 다지며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안보의 방패막이 되어 왔다. 이 법이 유지하는 엄격한 반공 논리와 적대적 시각은 안보에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기도 하며, 법적 장치로서 국가의 통일성을 지키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는 이러한 기능이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통일이 절실한 과제가 된 오늘날, 국가보안법은 그 역할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법의 고착된 안보 기조는 북한을 절대적인 적대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더 나아가 통일을 위한 장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통일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의 경직된 조항들은 남북이 상호 이해를 넓히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좁히며, 나아가 통일 준비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통일 논의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의 재해석 및 개정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 2021년 국가보안법폐지 국민행동[각주:9] © 시사타파 

 

 

▲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등 참석자들의 기자회견[각주:10] © 프레시안

 

 

통일의 문턱에서 멈춘 남북의 걸음

      통일 준비 과정에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남북 협력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0년대 초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던 시기에 여러 남한 기업이 북한과 경제적 협력을 시도했으나, 국가보안법에 의해 대북 사업의 규모와 내용이 제한된 사례들이 있다. 남북한 경제협력 사업에 있어 국가보안법이 제약을 가한 구체적인 사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통해 파악해 보자.

      2000년대 초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같은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은 통일을 향한 희망의 첫 단추처럼 보였다. 그때 남한의 많은 기업들은 북한에서 생산한 제품이 남북한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올 거라 기대했다. “이제 북한과 손을 잡고 뭔가 해낼 수 있겠구나!” 그러나 그때마다 이들 기업은 국가보안법의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하게 됐다.

      국가보안법은 남북한 간 협력을 순수한 경제 교류로 보기보다 정치적 안정의 문제로 간주해, 사업자들에게 제약을 가해왔다. 기업들이 겪은 경제적 타격도 상당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의 매출 증대가 기대됐으나, 법적 제한 때문에 계획했던 확장을 이루지 못해 수익의 폭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단지 몇몇 기업의 이익 손실에 그친 것이 아니라, 남북한 간 경제적 상호 의존을 통한 신뢰 구축의 기회를 빼앗긴 결과로 이어졌다. 남북한이 함께 경제적 의존을 쌓아가며 통일의 작은 디딤돌을 마련하려 했지만, 국가보안법의 존재로 인해 그 꿈은 미완으로 남은 것이다.

      또한, 통일과 협력에 대한 개별 인사들의 발언과 활동이 국가보안법의 규제를 받아, 사상과 담론의 양성이 제한된 사례들도 통일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의 필요성을 부각한다. 통일 논의가 본격적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의견과 시각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은 자유로운 논의와 비판적 담론을 억제할 우려를 안고 있다. 특히 통일 문제에 대한 청년층과 학계의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보안법의 제한적인 성격은 통일 논의의 다층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듯 국가보안법은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재해석될 필요가 있으며, 법적 장치로서 통일의 걸림돌이 아닌 촉진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미래 지향적이고 장기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일과 협력에 대한 자유로운 담론이 국가보안법의 규제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는 현실은 통일을 준비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나, 통일에 대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오가는 논의의 장이 필요할 때, 국가보안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사상과 담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청년층과 학계에서도 통일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접근과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법적 규제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모습이 아쉽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인도의 정치와 문화, 역사 등을 연구하고 경희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 강사로도 출강하던 이병진씨는 200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됐다. 북한의 조국통일위원회의 초청으로 1993년과 1994년 북한을 방문하거나 그 후 베이징, 캄보디아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났다는 이유 등이다.[각주:11]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국가보안법이 학문적 연구의 범위를 제한할 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한,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협력보다는 경계에 가깝게 유지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법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활동했던 개별 인사들의 발언이나 연구에서조차도 검열의 주체가 되어 왔다. 어떤 이는 “통일을 위한 논의마저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한다면, 진정한 화합은 요원한 것 아닌가?”라며 한탄하기도 했다. 한반도가 언젠가 하나가 되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유로운 논의가 오가는 환경이 필요하다. 통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마음 놓고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통일은 단지 책 속의 이상에 그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이제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을 통일을 준비하는 촉진제로 전환할 시점이 왔는지도 모른다.

 

 

안보의 이중주, 통일을 향한 고민

      서문에 제안했던 그 경계로 돌아가 보자. 단순히 철책 너머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쌓아온 수많은 경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단지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넘어,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신뢰를 쌓는 과정을 포함한다면, 법적인 경계도 언젠가는 허물어져야 함이 틀림없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원래 우리 사회를 보호하고 국가의 존립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반국가 세력을 통제하고, 우리의 자유와 민주적 질서를 지키겠다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목표다. 그러나 이 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위한 남북 간의 협력보다는 여전히 경계를 그어놓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국가보안법은 안전과 자유라는 양가성을 동시에 지닌다.

      남북 간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에 있어 보안법의 존재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이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에 장애가 된다면 그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지 의문도 든다. 통일은 단지 남북이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법의 틀 속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순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일의 준비 과정에서조차 북한을 협력보다는 경계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이제는 통일을 준비하는 법의 존재가 남북 간 신뢰를 쌓는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일지도 모른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히 두 나라의 물리적 통합이 아닌, 법적으로도 남북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다.

 

 

정치권에서의 통일 논의

      이번에는 법안에서 정치권으로 넘어가 보자. 통일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화두지만, 그 논의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절박하게 느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각 정당에서 통일을 다루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입장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통일 비용을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통일이야말로 한반도의 장기적인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통일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매우 복잡한 색채를 띠고 있다. 이것이 통일 비용과 같은 실질적 문제를 두고,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통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념적 갈등도 통일 논의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보수와 진보 간의 시각 차이는 남북문제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보수 쪽에서는 보통 강경한 대북 정책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접근을 중시한다. 반면 진보 쪽에서는 남북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는 방향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 차이는 남북 관계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어렵게 하기도 하고, 통일이 단지 정치적 논쟁의 소재가 되는 듯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결국, 통일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다. 통일을 그저 한 정당의 정책 목표로 보아서는 안 된다. 무조건적인 반대와 혐오로 쌓인 선거용 공약으로 내거는 것 역시 아니어야 한다. 많은 국민과 함께 평화로이 꿈꿀 수 있는 미래로 만들어 나가려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Part III: 통일을 준비하는 정보, 신뢰를 묻는 말

휴민트 사건, 그 신뢰의 무게

      요즘 휴민트(HUMINT)[각주:12]  사건[각주:13]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듣거나 읽어볼 수 있다. 그것이 주는 울림이 크다고 느낀다. 이는 통일이 우리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이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남북 관계와 안보를 위해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남북 간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사람 간의 관계도 신뢰가 중요한데, 남북 관계에서도 그 신뢰라는 게 큰 역할을 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일에는 언제나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법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요하게 살펴보자. 어쩌면 우리는 통일을 위해 북한을 더 잘 알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정치, 경제, 일상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통일의 첫걸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 수집 활동이 과도할 때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진 것, 즉 통일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 대북정보 수집 체계[각주:14] © 네이버 블로그

 

 

      휴민트(HUMINT) 사건은 남북 간의 관계에 깊은 불신의 파동을 일으킨 사건으로, 국가정보원이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남북 간 신뢰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사건이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마치 안개 속의 산처럼 가까이 다가올 듯하면서도 멀어진 듯한 이 상황에서 이 사건이 가져온 파장은 통일 논의의 중요한 화두가 됐다. 사건이 공개되자 남북 간 신뢰는 크게 손상됐고, 대북 첩보 활동의 긴장과 갈등이 다시금 조명됐다. 이러한 갈등은 단순한 오해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의 여파로 북한은 남한의 행위를 적대적 태도로 해석하면서 추가적인 대립의 가능성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남북 간의 신뢰 회복은 더욱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통일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남한이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여건을 파악하는 일은 남북 협력의 진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휴민트 사건과 같은 민감한 정보 수집 활동이 양국 간의 신뢰를 흔드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균형은 한없이 어렵다. 통일이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길이며, 그 과정에서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철책 너머로 펼쳐진 그 땅은 분명 낯설었지만, 동시에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한 조각을 다시 본 것처럼 익숙하고 애틋했다. 그때 내게 통일은 그저 책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만큼은 그 단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 경계 너머로 피어나는 가능성이, 그날의 여운이 문득 되살아난다.

      휴민트 사건이 세상에 공개된 이후, 그 여운은 현실의 무게로 바뀌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길은 상처 입기 쉬운 길이자, 한순간의 오해와 경계가 깊은 불신의 벽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통일이라는 단어가 결코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이 불신의 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2023년 3월 국가정보원, 북한 관련 정보 수집 시작

남북 간 신뢰와 안보 강화를 위해 북한 주요 인물과 정치경제 동향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2023년 5월 민간 협력 확대

대북 정보망을 강화하기 위해 민간 조직의 협조를 얻어, 북한 내부 정보를 더 깊이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2023년 7월 북한 측의 반발

북한이 남한의 정보 수집 활동을 적대적인 행위로 인식하며 불만을 표명하기 시작했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다.
2023년 10월 사건 공개와 신뢰 훼손

사건이 공개되면서 남북 간의 신뢰가 큰 타격을 입었고, 불신의 벽이 더욱 두꺼워졌다.
2023년 12월 신뢰 회복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화와 협력이 논의되었으나,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됐다.

 

 

      날짜별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정보는 일부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통일은 그저 이상이나 바람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아물지 않은 상처를 함께 감싸는 긴 여정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통일이란 단순히 국경을 지우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통일이란 상처 난 마음을 감싸고 서로의 이야기를 채워주는 길이며, 그 길의 끝에는 새로운 한반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통일을 위한 작은 창, 그 너머의 그림자

      휴민트 사건은 통일을 향한 길에 놓인, 정보 수집의 복잡한 두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남북한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거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의 정보, 즉 정치와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는 그 어떤 협력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휴민트 사건이 의미하는 것과 같이, 지나친 비밀스러움과 불투명함은 오히려 서로를 향한 불신을 더 두껍게 만들 뿐이다. 상대가 보내는 정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협상의 중요한 과정이다. 단순히 정보 파악의 문제를 넘어 역사와 심리적인 요소가 작용하기에 더욱 어렵다.

      생각해 보면 정보 수집이란 우리가 경계 너머를 바라보는 작은 창문과도 같다. 그 창을 통해 남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고,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건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그 창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면 그로 인해 우리의 시야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정보전의 역할은 통일을 향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열쇠를 잘못 사용한다면 통일이라는 문은 오히려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휴민트 사건의 교훈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진정한 통일을 위해서는 투명성과 신뢰성이 담긴 정보 활동이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걸음에서, 신뢰는 가장 섬세하고도 중요한 기초이므로. 그렇기에 통일을 위한 정보 활동은 북한과의 민감한 관계를 고려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보다 투명하고 협력적인 정보 수집 방식이 필수적이다. 휴민트 사건은 정보 수집이 통일 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불신과 오해를 증폭시킬 위험도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북한과의 신뢰 회복이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로가 제공하는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한 발짝 내딛는 일조차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 언젠가는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할 때다. 물론 지금 당장 모든 정보가 완전히 투명해지긴 어렵겠지만, 작은 교류부터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서로에게 의심의 여지 없이 나눌 수 있는, 비정치적이고 일상적인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신뢰의 틀을 조금씩 쌓아가는 작은 노력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환경 문제에 대한 데이터나 보건 분야의 협력 방안을 나누면서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행동으로 이행할 수 있다. 이렇게 남과 북이 공감대를 쌓아가며, 작은 신뢰가 더 큰 신뢰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간다면, 언젠가 그 끝에 더 나은 통일의 길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통일이란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에 달린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될 수 있다.

 

 

▲ 군사 기밀을 표현한 일러스트[각주:15] © 경향신문

 

 


 

 

Part IV: 통일과의 거리감, 다시 좁혀지려면…

경제 앞에 선 통일

      앞에서 꽤 많은 사건과 현상을 다루었지만 어쩌면 이 질문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일 수 있겠다. 한반도의 통일 문제는 미래 세대가 주도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이 무관심의 배경에는 청년들이 처한 복잡한 현실적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통일 문제는 경제적 부담으로만 다가온다. 청년들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와 취업난 속에서 당면한 경제적 현실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통일이 그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통일이 개인의 삶에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청년층에게 통일은 이익보다 비용이 더 커 보이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적 부담감은 통일이 단지 이상적인 미래가 아닌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과제로 다가오게 한다. 통일 문제는 청년층에게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여겨지며, 비용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현실적 한계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맥락이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통일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감소하고 있다.[16] 이는 청년층이 통일을 멀리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청년의 눈에 통일을 담는 방법

      이렇듯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통일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통일이 단지 경제적 비용으로 평가될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이 함께 발전할 기회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일은 새로운 경제적 기회와 한반도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통일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 접근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날, 군사분계선에서 마주했던 북한 땅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낯선 땅이었지만,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이 경계 너머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통일이 그저 교과서에나 나오는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졌지만, 눈앞의 경계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 단어가 현실의 무게를 지닌 듯했다. 그러나 우리 또래 청년들에게 통일이란, 어쩌면 점점 멀어져 가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문제는 불안정한 취업과 경제적 압박, 결국 현실적인 생존이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다가올 미래의 부담이자, 구체적인 혜택이 불확실한 국가적 과제로만 느껴질 때가 많다. 시간이 흘렀기에 그때의 아픔과 상처, 당시를 기억하는 생생함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과는 늘 그리고 반드시 남는다. 통일이 정말로 우리 세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통일이 부담이 아닌 우리 세대가 함께 성장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통일을 통해 남북이 하나의 경제적 흐름 속에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낀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북한의 자원과 결합한다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들이 생길 가능성이 큰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통일이 꼭 멀리 있는 국가적 목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통일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커지지 않을까? 20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는 앞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안정성 등의 중요성이 크다. 다시 말해, 국가의 과제를 내 과제로 인식하기에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과제가 이미 많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의 관심사와 통일의 접합점을 찾아 다양한 프로그램의 확장을 고려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이 관심을 두고, 배우고, 토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세미나의 확장을 기대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가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 예를 들어 웹툰이나 다큐멘터리, 혹은 SNS를 통해 통일의 다양한 가능성을 담아내면 어떨까? 남북한 친구들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웹툰을 본다면, 통일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통일이 단순한 정치적 담론을 넘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렇듯 통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를 놀라게 했다. 이와 같은 행사는 단순히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친구들과 통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현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서만 그치지 않고 작은 이행으로도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 웹툰으로 말하는 통일미래 이야기 공모전 포스터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통일교육선도대학사업단

 

 

      다시 그 경계 앞에 선다고 상상해 본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군사분계선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았던 그 경계 너머의 땅. 그때 느꼈던 벅찬 감정이 지금 내게 묻는다. ‘언젠가 그 경계가 사라진다면, 그때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까?’

 

 


 

 

Part V: 선택할 자유, 나아갈 결심

      통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거창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에게 통일은 멀리 있는 교과서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필수적인 통일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통일이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정치적 목표가 아니어도 되고, 모두가 같은 의견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남과 북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실질적이고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통일 문제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됐다. 선택은 강요할 수 없기에 더 가치 있기도 하다. 우리가 통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다른 길을 걸어온 이웃을 이해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매우 긴 과정에서 남북 간 평화적 관계를 충분히 유지 혹은 개선할 수 있는 길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 그 여정의 출발은 거대한 변화를 향한 거창한 발걸음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통일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는 그 순간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통일을 위한 법적사회적 장치들도 이 관심 속에서 변화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든, 휴민트 사건이든, 이런 사례들이 단순한 정치적 논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는 실질적인 논의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원래 목적은 사회의 안전과 안보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지만, 그 법의 무서울 정도의 엄격함이 남북의 이해와 신뢰를 저해할 때가 많다고 여겨질 수 있다. 특히나 학문과 담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면이 있어서, 남북 문제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따라서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준비할 때, 협력과 이해를 방해하지 않도록 국가보안법의 재해석 및 개정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휴민트 사건은 남북 간의 정보전이 얼마나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통일이 서로를 알게 되고 믿음을 쌓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 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진솔한 소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나치게 비밀스럽거나 공격적이라면 불신과 상처만 남는다는 사실이 그 상처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

      학술적 차원에서는 통일에 관한 논의가 다양한 시각을 담아낼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교육’[각주:16]과 같은 학술적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문화적으로는 통일 관련 전시회나 영화 상영회 등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높일 수 있겠다. 대학에서는 통일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고, 실질적인 통일 이해를 증진할 수 있도록 토론 학술회나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통일이 이루어져야 할 의무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동안 한반도는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는 평화의 길목에 서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날 북한 땅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자. 그러나 그날 경계선에서 느꼈던 감정은 잊지 말자. 통일은 어쩌면, 우리의 관심과 꿈을 담아낼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Part VI: 보론

무관심의 벽을 넘어서

     일부 독자에게는 이미 익숙하고 지겨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한 번쯤 다시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론으로 실었다. 이 부분이 통일 논의에 있어 도움이 되는 글이기를 바란다.

      한때 우리 사회는 북한 사람들을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처럼 여겼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북맹[각주:17]의 단면을 보여준다.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왜곡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북맹이라는 표현은 남북 간의 교류의 이해가 필요함을 또 한 번 보여준다.

      그러나 북맹을 옆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오히려 다른 면이 보인다. 적어도 북한에 대한 부정적 정보만을 수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심으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무서운 것은 바로 통일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관계 개선과 통일을 논의하는 데 있어 큰 장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한 내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은 다양한 요인에 기인한다. 우선,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남한의 내수 경제는 침체 상태에 빠졌으며, 기업들이 잇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가계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하면서, 국민들은 삶의 현실적 문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통일 논의는 국가적 우선 과제로 인식되기보다는 우선순위의 후미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통일 예산이 투입되기보다 경제 안정화와 복지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

      청년들이 통일에 관심을 두기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의 고용난에 기인하는 듯하다. 요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취업이 정말 힘들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팬데믹과 경기 침체 속에서 청년 고용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고, 안정된 직장을 얻기란 예전보다 더욱 힘겨워졌다. 이렇게 당장의 현실이 버겁고 고달플 때, 통일이라는 주제가 과연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까? 통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국가적 과제' 혹은 ‘아직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눈앞의 생존과 미래 설계가 먼저인 이들에게, 통일은 어쩌면 나와는 상관없는 멀리 있는 이야기로 느껴질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문득, 통일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의 국제 분쟁 또한 통일에 대한 논의 열기를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3년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전 세계에 분쟁의 공포와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한반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전쟁은 민족 간 갈등과 그 장기화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힐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이는 한반도 통일을 더 큰 회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통일 문제에 대한 접근 자체가 무기력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경제적 사회적 불안은 통일이라는 국가적 과제마저도 현실 문제의 뒤로 밀어내고 있는 상황을 드러낸다. 한때 사회적 대의로 자리 잡았던 통일 논의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맞닥뜨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다시 찾는 일

      북한과 남한을 가로지르는 그 경계 너머에서 흐르는 공기, 길게 이어진 산맥과 적막한 고요가 필자에게 전해지던 그 감각은 단지 하나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함께 품어야 할 새로운 가능성처럼 다가왔다.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그동안 매체 속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직접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그들이 겪어온 날들,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북한의 여성들, 또 다른 문화와 언어 습관을 지닌 아이들… 이런 일상적이고도 깊은 이야기들이 비로소 우리의 현실 속에 스며들 수 있다. 통일이란, 단지 ‘하나의 나라'가 되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다시금 찾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남북의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성장하는 날을 그려본다. 한글이라는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오랜 세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아이들이, 같은 언어 속에서도 서로 다른 말투와 정서를 배우며 우리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모습은 분명 상상 이상의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질적인 생활 방식이 하나로 융합된다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혹은 모르는 채 외면하고 있던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통일이란, 그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한반도를 향해 떠나는 여정이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꿈꾸어야 할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 세계의 만남, 잃어버린 조각을 맞추다

      북한, 그것은 마치 낯선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철책 너머의 풍경은 우리와 같지만 다른, 하나의 민족이면서도 분리된 두 세계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순간, 한반도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 서게 된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쌓아 온 기억과 문화를 지닌 두 사회에 비로소 한 공간을 공유하는 날이 될 테다. 남북한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기에, 서로를 알아가는 일은 결코 짧고 단순한 과정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문을 열면서 동시에 문화적 재통합이라는 끝없는 여정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생각해 보자. 남한에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상들이 북한 주민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예컨대, 자유로운 언론과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남한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 있지만, 북한의 가치관 속에선 낯선 개념일 수도 있다. 반대로, 북한에서 강조하는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 사고방식은 남한 청년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이렇든 두 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마주하며 하나가 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통일의 시작일 것이다. 이 여정 속에서 서로의 언어와 삶을 배워가며 한반도는 진정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청년들의 새로운 지평, 같은 내일을 향해

     무엇보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우리 청년 세대가 있다. 통일 후의 한반도는 남북 청년들에게 거대한 기회와 도전의 장이 될 것이다. 남북이 하나의 경제와 사회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려면,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넘어 경쟁하고, 협력하며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테니까. 북한 청년들은 남한의 교육 체계와 정보 환경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독창적 시각과 경험을 남한 사회에 녹여낼 것이다. 반대로, 남한 청년들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더 큰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겠다. 취업난과 같은 현실 속에서 통일이 과연 기회가 될지, 또 다른 위기가 될지는 우리 세대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그 어려움 속에서 더 큰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라난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펼쳐질 테니까. 우리에게 통일은 단순히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나누고, 그 차이를 뛰어넘어 더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장이 될 것이다.

      통일이란, 우리 모두가 함께 걷는 여정이다.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한민족이 다시금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 길의 끝엔 우리가 그려갈 새로운 한반도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며, 마음을 열고, 각자의 자리를 마련해 가는 과정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라 할 수 있겠다.

     

 

변화의 문턱에 닿을 통일의 이야기

      그러나 통일 과정에는 여전히 현실적인 도전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남북한의 정치 체제 차이는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장벽으로 작용하며, 서로 다른 이념과 통치 방식이 융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남북 간 경제 격차는 막대한 통일 비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부담은 남한 사회에 새로운 경제적 과제와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으로, 신중하고도 체계적인 대비가 필수적이다.

      통일 비용에 대한 예측은 연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일 과정에 드는 초기 비용은 수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남한 사회가 새롭게 직면하게 될 경제적 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씨가 되기도 할 것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망을 넘어,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함께 지고 나갈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통일이 가져다줄 더 큰 가능성을 기억해야만 한다. 통일 비용이 크고 현실의 장벽이 높을지라도, 시간이 지나 남북한의 경제 통합이 안정된다면 그 과정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기회와 이익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통일 문제는 단지 남과 북 사이의 일이 아니다. 그 너머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가 하나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 순간은 남북한뿐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커다란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 파동이 한반도의 외교정책에 미칠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각국의 전략적 셈법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그 앞에 놓인 수많은 외교적 난제는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언젠가, 남북한 청년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자유롭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그날이 일상화되길 고대한다.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일본의 청년들과 한반도 안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고,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는 통일 이후 동북아에서의 협력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선을 넘어 북한의 학생들과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목표를 이야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가끔 이런 기회를 느끼곤 한다. 우리 학교에서 개설되는 북한 관련 강의를 수강하면서, 우리는 통일이 단순히 역사 속에 머물러 있는 주제가 아니라 우리 미래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주제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특히, 친구들과 통일을 주제로 토론하거나 강연을 들을 때, "언젠가 우리도 북한 학생들과 함께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하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통일에 관한 관심이 일상에서 작은 대화와 생각을 통해 확산된다면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는 그날이 조금씩 다가올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글을 써본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 속에서, 한국의 청년들이 통일된 한반도를 위해 세계와 손잡고 나아가는 멋진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통일은 단기적 과제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할 과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통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준비는 남북한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며, 평화 정착의 토대를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날 북한 땅을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필자는 꿈꿔 본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더 넓은 세계와 함께 나아갈 우리의 미래를. 진정한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의 새길을 열어가는 시작점에 설 수 있는 그날을.

 

 


 

 

  1. 헌법 제3조에 따르면 북한은 하나의 ‘국가’로서의 실체는 인정되지 않고, 반국가활동을 하는 불법적 ‘단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이준일, 『인권법: 사회적 이슈와 인권』, 홍문사, 2021.08., p. 215). [본문으로]
  2. 이는 헌법이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황해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의 다섯 개의 도를 이북오도라 부른다. [본문으로]
  3. 노**, "대북 풍선이 날라오는 진짜 이유! 🚨 (왜 언론에서 말을 잘 안 하는가)", 네이버 블로그, 2024.10.12. [본문으로]
  4. 시사인, “오늘도 또 왔네⋅⋅⋅ ‘오물 풍선’ 제대로 알기”, 2024.10.23., 이은기. [본문으로]
  5. 서울신문, “남북 서로 띄운 수천개 풍선… 접경지에 ‘쿵’ 불안이”, 2024.10.10., 한상봉. [본문으로]
  6. 연합뉴스, “[그래픽] 최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일지”, 2024.11.05., 원형민. [본문으로]
  7. 이준일, 『인권법: 사회적 이슈와 인권』, 홍문사, 2021.08., p. 215. [본문으로]
  8. 이준일, 『인권법: 사회적 이슈와 인권』, 홍문사, 2021.08., p. 215-216. [본문으로]
  9. 시사타파, “민주주의와 헌법까지 짓밟는 국가 [김용택 칼럼」”, 2024.04.20., 김용택. [본문으로]
  10. 프레시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민주노총 전 간부, 징역 15년형⋅⋅⋅ “국면전환용””, 2024.11.06., 최용락. [본문으로]
  11. 오마이뉴스,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된 정치학자의 옥중 서신”, 2018.12.07., 김광철. [본문으로]
  12. 휴민트란 ‘인간 정보'를 뜻하는 Human Intelligence의 약어로, 정보기관이 인간 자원을 통해 얻는 정보 수집 방식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13. 국정원은 북한 관련 정보를 보다 정확히 확보하기 위해 휴민트 자원을 활용한 대북 정보 수집 활동을 지속해 왔다. [본문으로]
  14. 루*, “영어_어원_#휴민트 #HUMINT #대북정보수집체계 #이민트 #시긴트”, 네이버 블로그, 2024.07.11. [본문으로]
  15. 이 이미지는 ‘휴민트 사건’의 무게감에서 오는 압박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다. ‘군사기밀’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들에게 잠시 숨 쉴 여지를 주고 사건의 핵심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경향신문, “블랙요원 정보 넘긴 군무원 ‘간첩’ 혐의 적용⋅⋅⋅ 군 당국, 북한과 연계성 판단”, 2024.08.08., 곽희양). [본문으로]
  16. 정부는 자유인권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통일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 의식 및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통일부, 2024 통일백서, 2024, p. 182). [본문으로]
  17. ‘북맹'이라는 단어는 북한을 잘 알지 못하거나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표현으로, 북한을 ‘맹목적으로' 모르는 상태를 지칭한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한적으로 접하거나 부정적인 편견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에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제한적이었고,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과 교육이 이어지며 북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생겨났다. 이러한 북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남북 간의 단절과 교류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북맹이라는 용어는 이제 남한 사회 내에서 남북 간의 교류와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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