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박지은
안녕? 난 중문이. 중앙대학교 24학번으로 입학한 새내기지. 합격증을 받은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 이 학교에 오기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체감했지. 물론 여기만 지원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하하. 아쉬움이 남지는 않냐고?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합격증을 두 눈으로 봤을 때 어찌나 떨리던지… 야호! 나도 드디어 대학생이다! 새내기로서 해봐야 할 일도 정말 많아. 과 활동도 많이 하고, 동아리도 들어가고… 무엇보다 가장 기대되는 건 과잠! 나도 동기들이랑 과잠 맞춰 입고 서울 여기저기를 누빌 테야.
🔔 봄을 알리는 시작, 과잠 공동구매
새내기인 만큼 과잠을 구매한다!
중문이는 학과 사람들과 과잠을 구매한다! 중문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 과잠이 도대체 무엇인가. 학잠은 ‘학교 잠바의 줄임말’, 과잠은 학교 로고와 함께 학과와 학번이 새겨진 의류 1를 뜻한다. 야구잠바의 형태를 띤 것이 대부분이다. 각 학교와 학과를 대표하는 의류인 학잠/과잠은 대학생의 상징과도 같다. 숫자 24가 멋지게 박힌 과잠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한 자신이 기특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선배들과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진정한 대학생이 된 것 같다. 과잠을 입은 것만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소속감이 충만해진다.
A씨: “중앙대학교는 제가 1년 동안 목표한 꿈의 학교입니다. 이 학교, 이 과에 오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합격한 후 기쁜 마음으로 과잠을 구매했어요. 오늘은 학잠도 수령해서 입은 채로 인터뷰 중이네요. 학잠과 과잠에 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저는 만족합니다. 수험생일 때까지만 해도 중앙대는 저에게 과분한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상상한 대학 생활을 그대로 실현 중이에요. 올해는 제 생애 최고의 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최고!”
많은 신입생이 대학 생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다. 위의 A 씨는 1년의 재수 생활을 끝내고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길었던 입시를 끝내고 입학하게 된 학교에 만족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A 씨의 동기들 또한 새 학기, 학교 잠바를 갖춰 입고 학과 활동을 할 생각에 기대로 가득 찼다.
두 갈래의 길: 반수의 등장
설레는 마음으로 과잠을 주문한 중문이는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친해진 동기들에게 과잠 구매 여부를 물어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지 않겠다는 의견도 제법 보인다. 이유를 묻자 뒤따르는 말은 “반수를 생각하고 있어서”. 학교에 만족하지 못해 반수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기들을 본 중문이의 마음도 소란해진다. 분명 처음에는 만족했는데, 은근한욕심이생긴다. 밑져야본전, 눈 딱 감고 한 번 더 해?
▲ 2012년부터 2022년까지의 학교급별 학업중단율 2
매년 수능을 응시하는 N수생 비율이 늘어나는 현상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해에는 6월 모의평가에서 ‘졸업생 등 응시자' 비율이 모의평가 접수자 통계를 공식 발표한 2011학년도 이후 최고치(19.0%)를 기록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대학생의 학업중단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학업 중단율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재수 및 반수이다. 2년간 대학 학업 중단율은 7.6%에서 8.6%로 13.16% 3의 상대 증가율을 보였다. 증가하는 대학생 학업 중단율에서 중앙대학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1년 기준 중도 탈락학생 비율 3.2%로 824명을 기록하며 서울 주요 대학 15개교 중 4위에 올랐다. 4어느새 처음 들어온 대학은 한 단계 더 ‘높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의대’를 가기 위해서 발판으로 여겨지고 있다.
🔔 학기의 하이라이트 축제가 다가온다
축제를 즐기려면 유니폼은 필수!
대학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축제지! 중문이는 동기들과 맞이하는 첫 축제에 잔뜩 들떠있다. 2024 LUCAUS 축제기획단이 선착순으로 배부한 청용오름 티셔츠도 수령하고, 중앙대학교의 특색이 묻어나는 농구 티, 하키 티, 야구 티도 일찌감치 구매했다. 모두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본 중문이는 생각에 잠긴다. 나, 어쩌면 중앙대를 사랑하는 걸지도?
중문이는 학교 축제를 즐기면서 학교에 대한 애정과 학생들의 ‘하나 됨’을 느꼈다. 이러한 소속감의 발원지는 축제를 위해 산 유니폼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한 공간에서 나눈 열기가 중문이의 소속감을 고취했다. 통일된 옷과 소속감이 연관이 있다는 예를 더 살펴보자. 군대에서 모두 같은 군복을 입고, 경찰관이 경찰 유니폼을 입는 것은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목표를 같이한다는 일체감도 형성한다. 유니폼은 공동체 의식과 단결력을 증진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우학소: 우리 학교 과잠을 소개합니다
상도역, 흑석역에서 중앙대학교로 걸어가는 길. 10분 남짓한 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옷은 다름 아닌 학잠(과잠)이다. 과잠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학과의 특징에 따라 디자인과 색상이 천차만별이다. 산업보안학과는 아이보리색, 정치국제학과는 검정색, 영어교육과는 와인색, 사회학과는 빨간색 등 학과마다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과잠에 독특한 요소를 더해 학과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본적인 야구잠바 형태의 학잠 외에도 롱패딩, 플리스, 반팔 등의 다양한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봄부터 겨울까지 입을 수 있는 학교 잠바는 대학생의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의류로 기능한다. 또한 같은 학교, 학과 학생이라는 유대와 축제에서 느꼈던 연대감처럼 여러 역할을 하는 학잠은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입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가 근처가 아니더라도 서울 곳곳을 누비다 보면 여러 대학의 학교 잠바도 심심찮게 보인다. 중앙대 학잠에는 용이 새겨진 것처럼 호랑이, 독수리, 꽃 등 다양한 학교의 상징물이 잠바를 수놓는다. 학교 잠바는 미디어의 다양한 콘텐츠로도 활용된다. 우리 학교의 입학 홍보대사는 중앙대학교의 학잠과 과잠을 소개하고 이를 이용한 여러 코디를 보여주는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또한 건설대학원의 공식 채널에는 로고 샵에서 학잠을 구매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게시되어 있다.
🔔 청룡과 함께 흑석 밖으로
학잠을 입고 서울을 누비자
벚꽃과 함께 학기 초의 설렘은 지나고 어느덧 학기 중반에 접어들었다. 새것 같았던 학잠도 이제는 교복이 다 됐다. 오늘 뭐 입지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오늘도 학잠을 껴입고 학교로 향한다. 아뿔싸, 수업이 끝나고 홍대에서 약속이 있는 걸 깜빡했다. 처음으로 학잠을 입고 흑석동을 벗어나는 날이다.
▲ <한국일보>, 이름 없는 과잠 = 학벌주의 그림자 5
서울시 내에 대학만 38개 6가 있는 만큼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학잠 또한 다양하다. 특히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와 같이 많은 대학이 밀집한 마포구와 서대문구 부근은 대학생들의 중심지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부푼 마음으로 대학가로 놀러 온 중문이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하다. 흑석동과 상도동에서는 자연스러웠던 학잠 등판의 청룡이 신촌으로 오니 튀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신촌에 있는 학교와 중앙대가 비교되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다. 흑석동에서 중앙대 과잠은 어디를 가나 보였지만, 신촌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괴리가 느껴진다.
'굳이' 학교 잠바를 입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학교 잠바를 입고 나선 건 아니었지만, 중문이는 왜인지 위축이 된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가 많아서일까. 고등학교 내내 들었던 SKY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더, 더 높은 대학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미 없는 상상이 중문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한국의 대학생에게 피할 수 없는 논제가 바로 학벌주의이다. 학교의 앞 글자만을 따서 만든 열 글자의 대학교 순위는 이미 수험생들의 머릿속에 교리처럼 자리 잡았다. 재학생으로 구성된 ‘에브리타임'에서는 새학기 마다 학교 라인을 언급하며 ‘급’을 나누는 게시글들이 커뮤니티 핫 게시글의 절반을 차지한다. 게시판에는 모두가 중앙대학교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타교에 대한 무비판적인 선망의 글, 반수 또는 재수를 언급하며 자교를 폄하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신촌 대학가에 다녀온 중문이는 마음이 복잡하다. 주변에는 반수를 생각하는 동기들이, 미디어에는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정기전 9으로 올해도 떠들썩하다. 학교 축제가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유독 학생들의 단합심과 유대감이 돋보인다.
한쪽은 빨간색, 다른 한쪽은 파란색 유니폼으로 맞춰 입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각자의 학교를 응원한다. 유니폼은 개인에게 자신이 속한 곳에서 스스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각 학교가 서로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경쟁심과 동시에 단합심이 고양된다. 두 학교의 정기전은 소속 대학 학생에게는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여한다. 해당 학교 학생이 아니라면 입장이 불가하다는 것에서부터 다른 집단에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 홀로 외로운 입시의 시간을 보내는 수험생에게 단단한 그들의 결속은 대학 생활의 로망과도 같다. 우스갯소리로 연고전, 고연전이라는 축제 문화를 즐기고 싶어 반수나 재수를 꿈꾸는 이가 있을 정도니까.
옷으로 만든 바운더리
유니폼은 이렇듯 집단의 경계를 가시화한다. 더구나 학교 잠바는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학생에게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더불어 다른 집단과의 차이를 확연히 구별해주는 장벽이 된다. 이는 최근 미디어를 통해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화제가 된 연애 프로그램 〈환승연애 3〉의 한 출연자는 출연 기간 동안 학교 잠바를 입고 생활하는 등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누리꾼의 비판을 샀다. 학교 잠바를 입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키고, 그리고 타인과의 경계를 나누려는 시도는 입는 행위 자체로 외부와의 막을 형성한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 조각이 아니다. 옷을 입는 것이 소속감과 타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면, 의상은 우리의 심리와 떼서 설명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의상 사회심리학(dress and social psychology) 12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의상 사회심리학에서는 의상과 패션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심리적,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다. 이 개념을 학교 잠바에 적용해 본다면, 동일한 의상(유니폼)을 맞춰 입는 것은 집단 응집력과 사회적 인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의상을 입지 않은 타인에 대해 배타적 감정도 느끼게 되는데, 이는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 잠바라는 하나의 의상에서 우리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앞서 신촌 대학가로 간 중문이가 느낀 감정처럼, 학교 잠바를 입고 우리 학교 부근을 다닐 때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을 거닐 때의 마음은 달라지곤 한다. 중앙대학교라는 소속감을 드러내는 의상을 낯선 공간에서 입고 있을 때, 장소와 의상 간의 거리감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학교가 모여있는 가운데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생각에 자연스레 스스로를 ‘타자화' 함으로써 느껴지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타자화가 심화되고 타 집단과 나의 경계가 분명해지면 경쟁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리고 그 경계에 높낮이가 생기는 순간 이는 학벌주의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된다.
김 모(22) 씨. 서울 소재 H 대학교 3학년
Q. 과잠에 학교 이름이…
A. 맞아, 같은 학교인데 과마다 달라. 우리 과는 문과라 학교 이름 아래에 ‘UNIV.’를 새겼는데 상대적으로 입결이 높은 공대는 ‘TECH’, 의대는 ‘MED’를 박아 넣더라고. 학교는 같아도 우리 과잠은 공대나 의대에 비하면 왠지 초라해 보여.
Q. 과잠이 창피해?
A. 약간… 그렇다고 학교가 싫은 건 아닌데, 가끔 우리 학교 앞에서 Y대 과잠 입은 애들 보면 ‘쟤들은 우리 동네까지 서슴없이 오지만 우리는 신촌으로 못 가겠구나'라고 생각했어.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과잠을 입고 신촌 갔다가 머리카락으로 학교 이름을 가리고 다닌 적도 있어. 쟤들이랑 우리랑 수능 한두 문제 차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억울한 느낌 같은 게 들더라.
Q. 과잠은 자부심 아닌가?
A. 물론, 우리보다 입결이 낮은 학교 과잠을 보면 약간 으쓱해지긴 해. 또, 우리 학교랑 이름이 같은 여대가 있는데 가끔 여대라는 뜻의 ‘W(women)’가 빠진 과잠 입고 다니는 애들이 보여. 그러면 ‘쟤들이 홍대나 신촌 가서 우리 학교 학생 행세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짜증이 마구 날 때도 있어.
Q. 과잠은 서열 패션?
A. 동의해, 나도 모르게 학벌 중심, 서열주의에 끌려다니는 현실도 고스란히 과잠에 들어 있어. 솔직히 내가 취업하고 싶은 분야의 경우 능력보다 학벌 위주로 뽑는 분위기야. 근데, 만약 내가 취업해서 채용하는 입장이 돼도 이런 악순환을 반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때 좀 더 좋은 과잠을 입어보기 위해 편입도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어. 그래도 학벌 때문에 꿈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작은 가능성이라도 몇 배로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으니까. 13
위의 인터뷰는 학교 잠바가 학생들에게 우열과 고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인식된 사례를 보여준다.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배타성을 강화하는 현상도 함께 드러난다. 따라서 학교 잠바를 입는 이유에서 다른 대학 학생들과의 경쟁, 즉 타대학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토대로 한 배타적 태도가 심연에 존재한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학교 잠바에 출신 고등학교를 새긴 사례는 동일한 소속 대학 내에서 이차적 구별을 통해 다시 한번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경계를 공고히 한 경우라 볼 수 있다.
‘학벌’ 잠바?
B 씨: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필수 아닌가요?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22)
C 씨: 사실 전 중앙대학교보다 더 높은 학교를 가고 싶었어요. 높일 수 있을 때 높이는 게 학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게 학벌이라고 생각해요.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22)
D 씨: 약대에도 학벌이 있다는 거 아셨나요? 저는 목표했던 약대만 가면 끝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약대에도 학교 타이틀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원래 다니던 약대를 자퇴하고 재수해서 중앙대로 오게 되었어요. (중앙대학교 약학부, 23)
학교 잠바가 타인과의 차이를 명확히 한다는 점, 그리고 차이에 높낮이가 생기는 순간 학벌에 따른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앞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우리는 ‘학벌’을 경계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학벌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내가 얼마나 아는가?’와 ‘내가 어디를 나왔는가?’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학력과 학벌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위의 인터뷰에서 B, C, D 세 학생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것은 학벌이다. 이들이 초점을 둔 건 학교를 다니면서 학문을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아니다. 사회가 통상적으로 그어 놓은 선에 따라 1점이라도 높은 학교에 ‘입학’했느냐의 여부이다. 학력이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면, 학벌은 출신 학교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을 의미한다. 결국 학벌은 그 정의 자체에서 ‘나’라는 주체보다는 내가 속한 ‘집단’에 주목함을 알 수 있다.
대학생의 65%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과잠을 볼 때 ‘일부러' 학교 이름을 확인한다고 응답 14
한 연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학교 잠바를 통해 타인을 계층화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학교 잠바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보다는 등판에 새겨진 출신 학교가 개인을 판단하는 지표로 이용된다. 학교 잠바라는 한 겹의 껍데기로 내가 속한 집단이 얼마나 우월한지, 그리고 소속된 집단의 우월성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된다. 학교 잠바가 ‘학벌’ 잠바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대학에 드리운 학벌의 그림자
지금까지는 소속감, 그와 상반된 배타성, 더 나아가 학벌주의와 이를 인식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학교 잠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학교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중앙대학교는 학벌주의의 틀에서 자유로운가.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슬프지만 우리 학교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어떤 학교도 학벌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 힘들다. 에브리타임 인기 게시물의 상당수는 입시 결과, 학벌의 중요성, 타대학과의 비교를 포함하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대학에 급을 매겨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우월한지를 토론한다. 마치 자신이 교육에 통달한 사람인 것마냥 수많은 대학을 몇 자리 숫자에 따라 자신의 기준을 만들어 저울질한다. 익명의 공간 속에서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이 결정된다.
E 씨: 우리 대학은 좋은 학교다. 친척들에게 중앙대학교 입학을 발표했을 때는 반응들이 좋았다. 나는 친척들에게 은근한 인정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이 나의 모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하나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를 생각하면 가끔은 한심해질 때도 있다. 지하철에서는 중앙대 학잠을 입은 내 모습에 취할 때도 많다. 대학만으로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나 스스로가 싫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라는 것만으로, 특히 우리 학교 잠바를 입고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으로 우월감에 휩싸일 때가 더 많다. (중략)
F 씨: 연고대를 떨어지고 중앙대에 왔다. SKY 중 한 곳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여기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많은 활동을 하면 연고대에 대한 미련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학벌에 대한 미련은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있다. 요즘은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더 낫다’라는 속담에 더 이상 동의할 수가 없다. 학점이 낮아도, 활동을 하지 않아도 ‘연고대'라는 타이틀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대를 뱀, 연고대를 용이라고 비유한 점은 부끄러우나, 취업 시장에서는 아직도 연고대 우선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
위의 인터뷰 내용과 에브리타임 게시글은 허구가 아니다. 실제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 속에 학벌주의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학교 잠바는 대학생의 사고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학벌주의를 실체화하는 매개가 된다.
옷장을 열고
태초의 학교 잠바는 학생들의 단합심을 모으기 위해 등장했다. 1980년대 대학 민주주의가 대두되었을 때, 같은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 유니폼은 2000년대 대학생의 ‘교복’으로 자리 잡았다. 공동체 의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던 학교 잠바는 시간이 흐르며 너와 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계선이 됐다. 나의 집단과의 동일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동시에 너의 집단과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의상은 개인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자신의 선택에 따라 속하게 된 학교와 학과의 통일된 학교 잠바를 입는다는 것은 자아정체성을 표현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 잠바는 소속한 집단에 대해 안정감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다른 집단과는 구별되는 특색을 보여주는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그저 다름을 나타낼 뿐, 우열을 가리려는 순간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된다. 학교 잠바는 자아정체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일 뿐이며, 그 자체로 나를 온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 내가 소속된 집단이 나라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학잠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나와 타인 사이에 우열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몸의 가장 바깥을 감싸는 존재가 우리의 내면이 되지 않도록. 올가을 다시 학교 잠바를 옷장에서 꺼내는 날 뒤에 새겨진 청룡의 의미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 김어진, 「[청년의 시선] 우리는 왜 과잠을 입을까?」, 『유레카』 Vol.422, (주) 유레카엠엔비, 2019.01, p.143. [본문으로]
- 지표누리, “학업중단율”, https://www.index.go.kr/unity/potal/indicator/IndexInfo.do?cdNo=2&clasCd=10&idxCd=F0079#. [본문으로]
- 상대 증가율 = (증가분 / 원래 값) * 100 [본문으로]
- 김지연, “작년 대학생 4.9% 학교 그만뒀다...SKY도 1천 971명", 〈연합뉴스〉, 2022.09.21. [본문으로]
- 한국일보, “이름 없는 과잠 = 학벌주의 그림자", 박서강, 2015.07.01. [본문으로]
- 서울열린데이터광장, “서울시 대학교 통계”, https://data.seoul.go.kr/dataList/210/S/2/datasetView.do. [본문으로]
- 중앙대 재학생 인증을 거쳐야만 글 작성이 가능한 ‘에브리타임'이라는 앱에서 본인의 대학교를 비하하고 있다. [본문으로]
- 이화여대 즉, 타대학에 대한 은근한 비하뿐만 아니라 어떤 입시를 거쳐 입학하였느냐에 따른 갈등 또한 조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 흔히 연고전 또는 고연전으로 불린다. 연세대학교에서 주최시 고연전, 고려대학교에서 주최시 연고전으로 부를 것을 원칙으로 한다. 1925년 처음으로 양 학교의 대항전이 진행되었으며, 이후 대표적인 대학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본문으로]
- 〈연세 문화〉, 〈http://about.yonsei.ac.kr/kor/YonseiSpiritCulture.html〉. [본문으로]
- 위와 동일. [본문으로]
- 특정 집단 내에서 의상을 통한 동질성과 차별화를 연구한다. 이는 특정 집단의 유니폼이나 드레스 코드가 그룹 동질성을 강화하거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지 등을 포함한다. [본문으로]
- 박서강, “이름 없는 과잠 = 학벌주의 그림자", 〈한국일보〉, 2015.07.0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7010576241425〉. [본문으로]
-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2013, p.168. [본문으로]
- 언뜻 보면 중앙대을 칭찬하는 글인 듯하지만 글 속의 ‘서성한중'(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중앙대의 머리글자만 따서 만든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학을 줄 세우는 학벌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고가 드러난다. 중앙대를 ‘강남 학군 학생들이 선호하는 마지노선’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대학을 수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본문으로]
-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인서울 대학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입시 결과에만 매몰된 전형적인 학벌주의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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