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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르네상스: 붕괴와 재건>/학내 인권

전화 너머 사람, 사람 너머 시스템

by 중앙문화 2023. 7. 9.

2023 봄여름 84호<르네상스: 붕괴와 재건>

 

부편집장 문휘진

수습위원 김예진

 

 다음과 같은 채용공고가 올라온다면, 지원할 사람 누가 있을까.

 

 사실 이는 학교 홈페이지 행정 인턴 채용공고를 참고해 제작했다.

 

 행정 인턴은 누구일까? 행정 인턴은 중앙대학교 각 학과(부) 사무실이나 행정 부서에서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다. 조교와 혼동하기 쉽지만, 엄연히 다르다. 대학원 신입생 및 재학생 신분인 조교와 달리, 행정 인턴은 졸업생 또는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모집한다. 급여와 근무 형태도 다르다. 조교는 장학금 형태로 등록금을 고지 감면 받지만, 행정 인턴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다. 행정 인턴은 9시부터 6시까지 풀타임 근무를 하지만 조교는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주 25시간 반일제 근무를 한다.

 

 학교에서 경력직이 졸업생 신분을 대상으로 직원을 뽑는 이유는 순전히 대학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매년 일정 수준의 취업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직으로만 채용해야 한다. 그래서 2년이 지나면 재계약이란 절대 없다. 마치 부품을 교체하듯 새로운 행정 인턴으로 갈아 끼운다.

 

 이러한 인력 ‘소모’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①비전문가인 행정 인턴 에게 막중한 업무를 맡긴다는 것 ②학과사무실에서 지시하는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물론 학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비교적 업무량이 여유로운 학과는 이러한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과사무실의 행정 인턴들이 보수 대비 과한 업무들로 고통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8 명의 전현직 행정 인턴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A씨 인문대학 1년 근무
B씨 비공개 2개월 근무
C씨 비공개 2개월 근무
D씨 비공개 2개월 근무
E씨 비공개 -
F씨 비공개 6개월 근무
G씨 비공개 전직
김 씨 정치국제학과 전직

 

 행정 인턴은 말 그대로 학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괄한다. 기본적으로는 학과사무실로 걸려 오는 전화에 응대한다. 학생들의 궁금증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다. 이외에도 ▲입학 ▲졸업 ▲학과 행 사 ▲학적 관리 ▲시간표 ▲수강 신청 ▲수업 지원 ▲특강 ▲교원 관리 ▲예산 등 학과 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도맡는다. 

 

 

 

 

① 막한 업무

 갓 대학을 졸업한 행정 인턴에게 유사 업무 경험이 많을 리 만무하다. 심지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학과에 배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전문성을 담보하는 성격의 직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정 인턴들은 지나치게 전문적인 자질을 요구받는다.

 

 특히 졸업 관련 업무는 한 사람의 대학 학위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점 관리부터 졸업 논문(시 험), 한자 및 영어 자격증 등 졸업 요건이 복잡한 탓에 단기간에 준비하기 까다롭다. 특히 과마다 조건이 조금씩 달라 체계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담당자가 불명확한 탓에 자세한 졸업 요건을 몰랐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학교 차원에서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에 대한 교육이나 안내를 진행했더라면 문제조차 되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관련 제도가 미비한 현재로서는 오로지 행정 인턴의 재량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인문대에서 1년째 근무 중인 A씨는 “졸업 요건 자체가 명확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며 “단과대 교학지원팀 조차 정확한 요건을 잘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다 보니 졸업 사정(졸업 가능 여부) 확인 절차에서 미충족자를 발견해도 신속한 대처가 힘들다는 것. 자칫 섣부른 판단으로 책임지지 못할 일을 만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2개월째 근무 중인 B씨는 “졸업 요건을 묻는 전화가 오면 내가 잘못 말해 피해를 겪을까봐 학사 가이드를 찾아보라고 한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전화 응대가 주요 업무인 행정 인턴에게 졸업 요건 관리는 부수적인 업무일 뿐이다. 그들의 업무 태만이나 미숙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교양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의 채용 또한 행정 인턴 소관이다. 교수채용계획서는 교무처에서 보내주며 채용 절차 중 학과심사 등 학과에서 주관하는 부문을 행정 인턴이 담당하고 있다. 2개월차 행정 인턴C씨와 D씨 는 “채용 관련 업무의 경우 계약서 내용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미숙한 행정 인턴이 처리하기에 부담스러운 업무”라고 입을 모았다. 사회초년생의 판단에 기대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묻기도 까다롭다.

 

 

② 막한 업무

 행정 인턴도 일개 시간제 최저임금 근로자일 뿐이다. 추가 업무를 맡는다고해서 성과급이나 계약 연장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근로 시간 내 맡은 바를 다해내기엔 역부족이다. 1명이 최대 250명의 졸업예정자를 담당했던 사례도 있었다.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엔 명백하게 벅찬 업무량이다. 조교와의 업무 분담도 녹록치 않다. 봉사 개념으로 일하는 조교와 달리 행정 인턴은 고용된 인력이다. 행정 인턴의 상사라 할 수 있는 학과장 역시 2년의 임시 겸직이기에 전반적인 업무 현황을 훤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일의 총괄은 자연스럽게 행정 인턴의 몫이다. 중요한 점은 실질적으로는 총괄의 지위임에도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까지는 없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할 수 없는 무늬만 상사인 셈이다.

 

 개인적인 호의에 기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행정 인턴 G씨는 조교에게 졸업사정 관리 업무 중 일부에 대해 도움을 청했지만 “본인 업무가 아니”라며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G씨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다. 출근 첫날부터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공문을 보내라는 지시를 받고 주말 출근을 한 적도 비일비재했다. 물론 초과근무 수당은 없었다.

 

 학과장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G씨는 메일 수신 기록만 봐도 주말까지도 근무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에 힘이 빠졌다고 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교수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교수들은 “조교는 월급을 받는 입장도 아니고 학생이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할 수 없다”며 행정 인턴이 업무를 더 부담할 수 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각주:1]. 한때 수업을 들었던 교수들의 냉담한 반응에 해결되지 않은 업무 과다 문제까지 더해져, 그는 끝내 우울증을 앓다 타 학과로 근무지를 옮겼다.

 

 

③ 막한 관계

 “행정 인턴은 ‘샌드위치’예요”

 

 행정 인턴 김 씨는 자신의 처지를 두고 이같이 표현했다. 교수, 교학지원팀, 전화기 너머의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 하다 보니 감정노동이나 다름없다. 6개월차 행정 인턴 F씨는 “졸업식 관련 정보를 듣지 못한 졸업예정자들의 민원이 쏟아져 업무가 마비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 졸업예정자는 단톡방에 초대되어 있지 않아 졸업식 관련 공지를 뒤늦게 알게 됐고, 이에 대해 학과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과 단톡방에 관한 업무는 행정 인턴과 무관하지만,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는 이유만으로 시달린 것.

 

 업무를 명령하는 주체, 즉 상사가 많다 보니 여러 지시가 혼재하기도 한다. F씨는 지시 주체마다 업무 스타일이 달라 충돌할 때도 종종 있다고 했다. 교수와 교학지원팀의 요구사항이 상충될 때 그 사이에서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 은 행정 인턴의 몫이다. 교수와의 소통에 오류가 있거나 교학지원팀과 마찰을 빚으면, 비위를 맞추든지 도움을 요청 할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 F씨는 중간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내 편’이 없어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늘 불안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G씨는 “교학지원팀에서 정보를 누락하거나 틀리면 몇 번씩이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교수들의 분노는 행정 인턴을 향한다”고 하소연했다.

 

 

고충관리위원회를 아시나요

 사실 행정 인턴들의 고충을 달래줄 기구는 있다.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무처와 노동조합사무실에 설치 된 ‘고충관리위원회’다. 중앙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겠다는 취지에서 2001년 설립됐다. 하지만 인지도가 미비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여덟 명의 취재원 중 단 한 명만이 위원회의 존재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 씨조차도 고충을 겪을 당시에는 몰랐고, 행정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나기 며칠 전에 우연히 노조 사무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표지판을 보고 나서야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고 답했다.

 

 당시 고충관리위원회를 몰랐던 김 씨에게 남은 통로는 인권센터 뿐이었다. 하지만 인권센터는 ‘사건’ 해결 을 위한 기구이다. 업무 과중 문제나 수당 없는 야근을 하게 되는 문제가 아닌 명확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 해야만 '사건'으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직 구조나 문화 개선에 도움을 받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다빈치교양대학 교학지원팀에서 일할 때 심한 업무적 압박을 받아 인권센터를 찾아 갔지만 당시 연구원은 김 씨에게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다면, 사건 접수 자체가 어렵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다” 라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상사에게 직접 문제제의를 하라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더이상 없다고 느낀 김 씨는 인사팀을 찾아갔다. 인사팀도 부서 이동 외에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보다 ‘폭탄 돌리기’ 식으로 회피하는 셈이었다.

 

 이후 김 씨는 정치국제학과 사무실로 배정받았지만 업무적 압박은 오히려 더 심했다. 김 씨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학과의 교과목 설명서를 쓰도록 지시받았다. 타학과 전공인 김 씨로서는 당연히 정치국제학에 대한 지식이 미흡했고, 그는 교수들을 찾아가 물었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김 씨는 이러한 고충들을 상위 행정 부서 직원에게 털어놨다. 그러나 "제3자가 개입할 수 없다”며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런 업무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김 씨는 업무 중 교수에게 폭언까지 들었다. 당시 그는 다른 행정 인턴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임자의 인수인계도 부재했다. 담당 교수는 생소한 업무로 난항을 겪는 김 씨의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은 채 그의 더딘 업무 속도만 탓하며 무차별적인 폭언을 퍼부었다. 당시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녹음을 했고, 그 녹음본이 ‘확실한 증거’가 되어 인권센터에 사건을 접수할 수 있었다. 결국 해당 교수에게는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이렇게 노동자를 보호하는 공식적 기구들은 여럿 있지만 막상 행정 인턴이 찾아갔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2년 뒤면 학교를 떠날 한시적 비정규직. 교학지원팀과 학과사무실, 그 어느 곳에도 속하기 애매한 위치. 불안정한 환경이 행정 인턴들을 고립으로 내몬다. 학교 인사팀이 채용한 직원에게 문제가 생길 시, 상위 부서 관리자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하면 그에 맞는 조치가 응당 따라와야 한다. 그러나 행정 인턴이 문제를 제기하면 상위 부서에서는 학과의 문제로 치부하고 학과에서는 상위 부서에 책임을 떠넘긴다.

 

 

피해의 부메랑

 학교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전형 일정에 따르면, ‘신규임용 교육 시간’이 1시간 배정되어 있다. 마치 인수 인계 시간처럼 보이지만 행정 인턴들의 답변에 따르면 성폭력 및 장애 인식 교육 등 필수이수교육 안내와 급여 수령, 복무지침과 같은 계약 관련 내용들뿐이었다.

 

 업무 처리 절차 등에 관한 상세한 교육은 받지 못하고 오직 과거의 자료들을 모아놓은 인수서인계’서’에만 의존한 채 바로 실전에 던져지는 것이다. 전임자에게 연락해보고, 과거 메일 내역을 찾아보며 직접 부딪히는 건 그들의 몫이다. 실수와 수습을 반복하며 미숙함을 채워 나간다. 김 씨와 같이 전임자가 갑작스레 그만두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행정 인턴들은 인수인계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다. 공식적인 인수인계 자료가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전임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것. 기본적인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그 내용이 복잡해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물어볼 사수나 선배가 따로 있지도 않아 타 학과 행정 인턴에게 개인적으로 조언을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행정 인턴의 모든 업무가 학생들의 학습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행정 인턴은 수업 계획을 짜고 수강 신청 기간 대부분의 문의에 답변한다. 대외활동이나 채용공고 등 학교 생활 전반을 함께한다. 시험, 장학금 같은 중요한 사안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졸업까지 관여한다. 문의 창구가 다양하지 않은 학생들로서는 행정 인턴이 제시한 답변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행정 인턴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획일화하지 않은 시스템과 학교 본부의 미온한 대응은 일선의 행정 인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결국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업무 수행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학과마다 상황이 다르다. 배정받는 학과가 어디냐에 따라 행정 인턴이 부담하는 업무량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인터뷰이들 중에는 “학과 특성상 업무량이 많지 않아 부담될 정도는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제기에 대한 목소리가 모이기 힘든 현실이다.

 

 현재 학교 본부와 행정 인턴의 관계는 하나의 버스와 같다. 버스 본체가 학교 본부라 했을 때 이를 지탱하는 것은 바퀴다. 네 개의 바퀴들은 서로 크기와 모양이 같아야만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중앙대는 모든 바퀴가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지나치게 큰가 하면 또 다른 것은 너무 작다. 물론 버스가 아예 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승객, 즉 학생들은 이리저리 치이며 당장이라도 내리고 싶을 것이다. 버스에서 뛰어 내린 학생들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바퀴만을 탓하며 불만을 토로할 것이다. 애초에 누가, 왜 제각기 다른 형태의 바퀴를 끼웠는지는 모르고 말이다.

 

 위의 비유에서 바퀴는 무엇일까. 버스에 탄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버스를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존재, 바로 행정 인턴이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행정 인턴직은 중앙대 졸업생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행정 인턴은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초년생이다. 그들은 앞으로 잎이 움트고 꽃이 피어날 씨앗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얼마든지 클 수 있다. 씨앗이 싹을 틔울 때는 흙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흙에서 자란 꽃과 나무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물론 흙이 좋지 않아도 발아할 수는 있다. 질 나쁜 흙에서 자란 꽃과 나무는 그런 대로 적응을 할 것이다. 행정 인턴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처음이기에 비교 대상이 없다. 잘못된 구조 속에 놓여 있어도 부당함을 인지하기 힘들다.

 

 사회초년생의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행정 인턴의 ‘첫 직장’인 학교는 매우 중요하다. 양질의 환경을 경험해야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립할 수 있다. 배우고(學) 가르치는(敎) 공간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처음부터 업무 과다와 부당 대우로 시달린 씨앗은 미처 싹을 틔우기도 전에 땅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 버릴지 모른다. 모교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일선에 남은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공간이 비옥토까지 못 돼도 황무지가 돼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무의 범위를 줄여야 한다. 물이든, 비료든,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A씨는 행정 인턴직을 두고 ‘정류장’이라고 표현했다. 말 그대로 “지나치는 곳”이라는 것. 그는 “(행정 인턴들이)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자신의 이름조차 남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인수인계서를 만들려는 의지조차 꺾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도, 미래도 보장되지 않은 직장에서 열정을 불태우라는 말은 가혹하다. 취업률만 고려하며 2년마다 새로운 인력을 끌어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2년 간 닳도록 일을 시키다가 지쳐 떨어지면 새로운 인력으로 충원하는 식은 안 된다. 적어도 그에 합당한 보수라도 제공해야 한다. 초과 근무나 지시 외 업무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 후대에 뿌려질 씨앗들이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지반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보다 먼저 교육 체계를 다져야 한다. 대다수의 직장에서는 수습 기간을 따로 둔다. 회사의 일원이 될 이들이 해야 할 일을 교육받고, 배운 것을 토대로 선임의 보호 하에서 숙련하는 기간이다. 업무 유형별 대처 방안 등 행정 서비스에 관한 전면적인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통해 몸소 깨닫는 지금의 방식이 아닌 조직적인 학습을 거치면 학생들에게도 균일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학과에서는 재량에 따라 인수인계를 자세하게 받고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 누군가의 호의로 이루어지면 안된다는 점 이다. 근무 전 거치는 당연한 순서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몇몇 행정 인턴들의 근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직접적으로는 교직원들의 편리와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사회에 발돋움할 미래의 중앙인들을 위한 것이다.

 

 

 학과사무실에 전화하면 늘 나오는 음성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폭언 등으로 받는 정신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법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닌 세심한 고민과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에 앞서 행정 인턴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한 곳에 화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전화 너머의 사람을, 사람 너머의 시스템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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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인의 전공과 무관하게 학과에 배치되는 행정 인턴과 달리 조교는 자신의 학과에서 일을 한다. 지도 교수의 밑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아 오히려 보이지 않는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글은 조교가 행정 인턴보다 업무 부담이 적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행정 인턴이 교수와의 관계성에서 겪는 어려움이 조교가 겪는 어려움과는 다른 국면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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