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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5 봄여름, 68호 <그들만의 비지니스>

[사회]우리는 제대로 대표되고 있는가? - 선거제도 개편과 정치개혁

by 중앙문화 2023. 3. 17.

편집위원 최윤용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논쟁이 있다. 지지율 1위인 정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의 통합과 연대의 문제다. 특수한 몇몇 시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1위 인 정당은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개혁 세력이 모인 새정치민주연합이나 그 밖의 여러 진보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후보 단일화’라는 카드를 들고 나 왔다. 이런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들의 통합과 연대를 권력을 잡기 위한 야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이 통합이나 연대를 하지 않으면 의회에 진출할 수 없는 선거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기도 한다.

 

총선에서 지지율이 낮은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경우, 투표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이념이나 정책적 지향을 따진다면,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은 소수정당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소수정당의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고 해서 그 후보가 당선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투표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현 선거제도가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을 제대로 배분하지 못하고 지지율이 높은 거대 양당들이 독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표는 사표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의 선거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현재 국회의원의 총 정원은 300명이다. 그 중에 지역구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82%(246명)이고, 비례대표가 차지하는 비율은 18%(54명)이다. 지역구 의원은 각 지역에서 득표율이 1위인 후보자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비교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단위로 하며 지역구선거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과 비례대표선거에서 유효 투표총수의 3/100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대하여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얻은 득표비율에 따라 각 정당이 제출한 명부 순으로 당선인을 결정하는 정당별 득표비례구속명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1] 다시 말해, 비례대표제 선거는 후보자 개인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선거이며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한다. 이때, 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획득한 각 정당은 미리 순위를 정해놓은 후보자 명부의 순서대로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국회에 등원시킨다.

 

국회의원의 82%를 차지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소선거구제 비교다수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소선거구제 비교다수대표제는 쉽게 말해,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한 사람만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A, B, C 총 세 명이 후보로 출마해서, A가 50%, B가 40%, C가 10%를 득표했다고 치자. 그러면 A가 선출되고 나머지는 모두 탈락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소선거구제 선출방식은 A를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50% 유권자의 의사는 모두 사표가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의 표를 사표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유권자들은 실제 투표과정에서 전략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소수정당 후보인 C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에 A와 B 중에 자신이 원래 지지하는 당과 그나마 비슷한 노선을 가진 정당을 찍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지지율이 가장 높은 두 당의 후보들만이 최종적으로 선거에서 유의미한 후보로 남아있게 된다.

 

이러한 소선거구제 하에서 많은 사표 발생과 거대 양당의 독식을 그나마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제도가 전국구 비례대표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례대표 의원의 정원은 국회의원 총 인원의 18%에 불과하다. 이는 지역구에서 나타나는 사표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수준이 아니다. 결국, 거대 양당을 제외한 정당들을 지지하는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전체 국회의원 수의 4/5가 넘는 부분을 결정할 때,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찾아온 기회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최대-최소 인구 편차가 3대 1인 현행 선거구에 대해 헌법 불일치 판정을 내리고, 2015년 12월 말까지 인구편차가 최대 2대 1을 넘지 않도록 선거구를 재획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로써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가 다시 불붙게 되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편차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5년 12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당시 선거구들 간의 인구 편차가 지역들 간의 공정한 대표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여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4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1년 10월 25일에는 그 기준을 3대 1로 낮추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30일에 다시 헌법재판소는 최대 2대 1의 인구 편차를 상한선으로 제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의 판결에 따라 여러 번의 선거법 개정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지역구 소선거구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올해 2월 24일 내놓은 정치 관계법 개정안은 주목해 볼만하다. 정치 관계법 개정안에는 새로운 선거제도를 제안하는 내용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의 권역(서울, 인천·경기· 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북·전남·제주, 대 전·세종·충북·충남)으로 나누어 인구 비례로 의석을 배분하면서, 비례대표의 비율을 전체 1/4에서 1/2로 대폭 늘리는 방안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실행되면 국회의 총 의원 수는 300명으로 변화가 없고 지역구 의원이 246명에서 200명으로 축소되며 비례대표 의원은 54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선관위는 여기에 석패율제까지 함께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석패율제를 통해 한 지역구에서 아쉽게 떨어진 후보자가 비례대표를 통해 구제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2] 

선관위가 제시한 새로운 선거제도는 사실상 독일식 정당명 부제와 아주 유사하다. 다만, 독일은 정당 득표율을 전국단위에 적용했다면, 선관위가 제시한 대안은 권역별로 정당 득표율을 적용하여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비례대표제가 확대되면, 소수정당들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지게 되고, 다수정당의 불합리한 과대대표 현상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물론 독일식 선거제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선관위의 제안은 상당부분 한국 정치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개선책으로 보인다. 또한, 비례대표의 확대는 지역적 선거의 특징을 약화시켜 지역주의를 해결하는 데에도 일정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각 정당들의 움직임과 전망

선관위가 제시한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해 각 정당들의 입장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해 “이번 개정안은 선거관리 전문기관의 입장에서 본 현 선거제도의 개선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이해한다”[3] 고 밝히면서, 직접적으로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강석호 제 1사무 부총장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는 지역구 특히 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말하면서 비례대표제가 지나치게 확대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4] 특히, 새누리당 내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담당하는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하 위원장)은 “지역구가 그래도 비례대표보다는 국민의 뜻이 더 잘 반영”[5]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적절치 않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반면에 선관위가 제시한 ‘완전국민 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의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문수 위원장은 “완전국민경선제야말로 정당 민주화, 정치부패 일소, 국민주권의 완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법”[6] 이라고 말하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완전국민경선제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는 별 관심이 없고, 완전국민경선제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은혜 대변인을 통해,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근본취지와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하며, 큰 틀에서 환영한다”[7] 고 말했다. 새누리당보다는 선관위의 제안을 좀 더 긍 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야당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두고 “사실 저희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래 전부터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방안 중 하나로써 이미 제안을 했던 선거제도입니다.”[8] 라고 말하면서 선관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진보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들은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이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사표를 양산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투표가치의 평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비례성을 확보하고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9] 고 말하면서 선관위의 선거제도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 나아가, 심의원은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축소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선거제도를 개혁하자”[10] 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정당들은 정당별 득표율이 의석수에 잘 반영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정치 구도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그동안의 선거법 개정 논의는 거의 대부분 헌법재판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거구 재획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국회의 대다수 의원들이 지역구 대표였기에 자신의 선출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지역구 소선거구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 논의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 선거제도로 인해 어느 정도 이익을 보고 있었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 양당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대 양당의 틀 속에서 국회가 계속 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자, 선거제도를 바꿔서라도 양당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다당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에서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수정당의 과대대표와 소수정당의 과소대표의 문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한국의 선거제도가 다수정당들에게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전체 국회의원의 82%가 소선거구제로 선출되는 상황에서 다수정당들은 실제 획득한 득표율보다 과대대표 된다. 쉽게 말하면, 다수정당들 이 실제로 국민들이 지지하는 수준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그 결과, 소수정당들은 상대적으로 과소대표 될 수밖에 없으며 국회 진출을 저지당하게 된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지역구 선거결과를 살펴보면, 다수정당의 과대대표와 소수정당의 과소대표 문제를 좀 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제 19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체 득표율은 43.3%였다. 그런데 새누리당 이 차지한 의석수는 127석으로 전체 의석수의 약 51.63%정도 이다. 따라서 실제 득표율보다 8.33%정도 더 많이 의석을 가져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 1야당으로서 또 하나의 다수정당인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도 마찬가지였다. 민주통합당의 전체 득표율은 37.9%였지만, 실제 가져간 의석수는 전체 의석수의 약 43.09%에 달했다.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두 다수정당들은 실제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감으로써 과대대표 되었다. 반면에 소수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은 오히려 과소대표 되었다. 자유선진당의 전체 득표율은 2.2%였는데 실제로 가져간 의석수의 비율은 1.22%정도였다. 통합진보당도 전체 득표율은 6%였는데, 실제 가져간 의석수의 비율은 2.85%에 그쳤다.

 

이처럼, 현재의 지역구 선거제도는 다수당에게는 유리하고 소수정당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역구를 단위로 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각 지역구마다 승자독식의 형태로 의석이 배분되기에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표들은 대부분 사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선거제도는 소수정당들의 득표율을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의회의 대표성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양당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모델이 바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우리나라의 선거제도와는 달리 지역구보다 전국적 비례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선거제도이다. 독일 연방하원의 총 의원수는 598명이 기본이며, 선거 결과에 따라 유동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기본 정원 인 598명의 절반인 299명이 지역구 의원이고 나머지 299명이 비례대표 의원들로 채워진다. 따라서 한국에 비해 비례대표 의원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정당별 득표율이 강력 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12]

 

선거 개표를 마친 이후에 의석수를 배정할 때는 비례대표 선거 결과(정당에 대한 투표 결과)를 가지고 우선적으로 전체 의석수를 배분한다. 이때, 득표율이 5% 미만이거나 지역구 당선자가 3명 미만인 정당은 탈락시키고 이 조건을 통과한 정당들만을 가지고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게 된다. 각 정당은 자신의 정당이 득표한 비율만큼 정당 소속의 의원을 등원시켜야 하는데,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들은 자동적으로 우선 등원한다. 그러고 나서 정당이 득표한 만큼의 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전에 작성해 놓은 명부에 적힌 순서에 따라 추가적으로 비례대표들을 등원시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독일 선거 제도의 흥미로운 점이 등장한다. 어떤 정당이 자신의 득표율 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켰을 경우, 이들을 모두 당선된 것으로 인정해준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국회의원 수가 기 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늘어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13] 예를 들면, A정당이 비례대표 선거 득표율에 따라 전체 30석을 가져간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정당이 이미 지역구 선거에서 31석을 획득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원래 A 정당은 30석만 가져가야 하지만 지역구에서 이미 31석을 획득 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당의 비례대표는 한 명도 선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B당이 전체 득표율에 의해 20석을 가져가야 한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B당은 지역구에서 1석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B당에게는 20석이 할당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작성해 놓은 정당명부의 순서에 따라 19등까지의 비레대표를 등원시킬 수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의회의 전체 의석수를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기 때문에 비례 대표적인 요소가 강한 선거제도이다.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 는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보다는 전국적인 계급정당들이 발달할 수 있고 다양한 소수정당들이 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따라서 독일은 다당제적 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한 당이 다수당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연립정부가 자주 구성된다.

 

한 국가의 의회 구성은 어느 정도 선거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뒤베르제에 따르면, 소선거구제는 양당 체제를 야기하고, 비례대표제는 다수 정당체제를 유도하는 경향적 추세가 있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법칙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국회의 구성 비율을 볼 때, 소선거구제가 양당체제를 야기한다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독일이 비례대표제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선거제도를 통해 다당제적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례대표제는 다수 정당체제를 유도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가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선거제도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

 

더 나아가 의회의 정당 구성 비율이 득표율에 따라 가장 잘 반영되는 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한국의 선거제도는 전국적 득표율과는 상관없이 한 지역구에서 1등하는 후보에게만 대표권을 부여하는 방식이 토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전체 국민들이 지지하는 정당 비율과 실제 정당의 의석수의 비율 간에는 큰 왜곡이 발생했다. 하지만, 전국적인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먼저 의석수를 보장 하는 독일의 제도는 유권자들을 더 정확하게 대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도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같은 형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 신물이 난 당신이 선거법 개정에 관심 을 가져야 하는 이유

흔히 민주주의는 그저 ‘다수에 의한 정치’로만 인식되기 쉽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 충분한 토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소수정당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지율만큼의 의석도 얻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대신에 지지율이 높은 다수정당에게 그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의회의 대표성을 왜곡시키고 있다. 따라서 현 선거제도에 대해 ‘과연 우리가 제대로 대표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선거는 보통선거, 직접선거, 비밀선거, 평등선거라는 4대 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그런데 소수정당을 찍은 유권자들의 표는 국회 의석수 비율에 전혀 반영이 되지 않거나 축소되어 반영된다. 이는 소수정당을 찍은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다수정당 지지자들의 의견만을 과대대표 한다는 점에서 평등선거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의회를 구성하는 정당의 비율이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면, 정당들은 더 이상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게 된다. 특히나 거대 양당은 더욱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무리 못해도 2위”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더라도 그들은 정치를 새롭게 혁신할 생각보다는 ‘이번에는 어떻게 새누리당(혹은 새정치민주연합)을 공격할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왜냐하면 자당은 아무리 못해도 2위가 보장되기 때문에 상대 당을 공격함으로써 1위를 탈환하는 싸움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양당은 지역주의를 온존시키는 현 선거제도를 통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게 됐다. 새누리당은 영남지역에 서 출마하기만 하면 당선이 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에서 출마하면 당선이 보장된다. 따라서 거대 양당은 더 이상 국민들의 눈치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에 안주하게 됐고, 의회 정치와 민심 간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기만 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정치혁신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정치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구성이 변화해야 한다. 의회 구성의 변화는 양당체제의 해체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수정당이 자신들이 득표한 만큼 의석수를 차지하고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의회의 구성이 다변화되고 새로운 정책 들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더 나은 정치로의 변화도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 이 너무나 많다. 의회의 구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1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2015 . 02 . 25 .) 참고 

3  < NEWSIS >,「여야, 선관위 개정의견 ‘환영’…”신중히 검토할 것”」, 15 . 02 . 24 

4  [ KBS 1Radio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2015 년 2 월 26 일, 인터뷰 내용 중 일부 발언 인용

5  [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5 년 3 월 24 일, 인터뷰 내용 중 일부 발언 인용 

6  <아시아 경제>,「김문수 “국회의원 증원, 국민이 찬성하겠나”」, 15 . 03 . 16 

7  < NEWSIS >,「여야, 선관위 개정의견 ‘환영’…”신중히 검토할 것”」, 15 . 02 . 24

8  [ 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2015 . 04 . 01 인터뷰 중 일부 발언 인용

9  정의당, [보도자료] 국회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 “사표양산 현 선거제도, ‘투표가치의 평등’ 훼손”, 2015 . 04 . 01

10  <시사포커스>, 「심상정 “국회의원 특권 축소해 선거제도 개혁해야”」, 15 . 03 . 15

11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2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식 정당명부제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13 <프레시안>, 「독일식 선거제도, 새누리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14 . 12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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