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들>
객원편집위원 권혜인, 김시원, 오유진
<1부. 돌봄 현장>
[편집자 주] 10만 200명. 2020년 기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수다. 전체 등록 장애인 수 263만 3000명 중 3.8%에 불과하다. 이처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국내에서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현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장애인들도 서비스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서비스 이용자의 48.1%가 ‘먼저 확대 시행해야 할 장애인 복지사업’으로 ‘생활 지원 서비스’를 지목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장애인의 생활 전반을 지원한다. 식사를 돕고, 몸을 씻겨주고, 소변통을 교체하고, 함께 산책도 한다.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자 하는 장애인을 돕고, 이들을 돌보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 2011년 10월에 정착해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시설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나선 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들을 지원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려고 1부에서는 취재진이 찾은 돌봄의 현장을 담았다. 취재진은 총 40시간의 이론 및 실기교육, 10시간의 현장실습을 이수해 활동지원사 자격을 얻었다. 또 활동지원사 8명을 만나 그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을 연결하는 활동지원기관 5개소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나아가 활동지원사 인력과 활동지원 시간 등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4개 기관(고용노동부, 국민연금공단, 보건복지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1부 ①“제 팔꿈치를 잡아주세요.”, 20대 예비 활동지원사의 현장실습기
[장애인 돌봄 현장 점검]
#1. 2021년 8월 3일 오후 1시, 김민재(가명) 할아버지와 현장실습을 하게 된 취재진 가운데 김OO(23세)은 서울 연신내로 향했다. 그곳에는 민재 할아버지와 절친한 지선호(가명)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취재진의 손과 팔을 만지며 인사를 건넸다. “저희는 손이 눈이라 이렇게 인사하거든요.” 민재 할아버지는 취재진이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도 단박에 알아챘다. 두 분은 잔존시력이 없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이날은 선호 할아버지의 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인 강민지(가명) 씨가 동행했다. 강 씨는 시각장애인 두 명과 허둥지둥하는 실습생 한 명 사이에서 밥 짓기, 장보기 등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냈다. “오빠(선호 할아버지)는 대식가이고, 아저씨(민재 할아버지)는 입맛이 엄청나게 까다로워요.” 그는 활동지원을 오래 하다 보면 장애인 이용자와 가족 같은 사이가 된다고 말했다.
강 씨가 말한 대로 선호 할아버지는 1인분 이상을 거뜬히 먹었다. 취재진이 만든 라볶이는 “너무 짜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식사 중에는 식사 보조도 해야 했다. 접시에 음식을 덜거나 밥 위에 반찬을 올렸다. 그러던 중 강 씨의 단말기는 휴게시간임을 알렸지만 쉴 겨를도 없이 식사를 거들었다. 이후 식탁을 청소하고 식기를 정리하는 일도 지원사의 몫이었다.
#2. 8월 6일 오후 2시, 그날은 선임 지원사 없이 김OO 혼자 활동지원을 해야 했다. 민재 할아버지와 선호 할아버지를 만나 3호선 불광역 인근의 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시장에 가기로 했다. 백화점은 연신내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였지만, 날씨가 궂어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콜택시를 부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에선 “연신내역 인근에서 13명이 대기 중”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약 30분을 기다린 끝에야 콜택시를 탈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분 가운데에 서서 두 분이 팔꿈치를 각각 잡도록 하면서 백화점 안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좁은 시장을 걷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두 분이 손잡이, 난간 등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손과 팔을 일일이 짚어드려야 했다. 계단의 시작과 끝부 분도 알려드려야 했다.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할 때 ‘이쪽, 저쪽’처럼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를 버릇처럼 사용해 말을 고치는 일이 잦았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됐다. 전날 선임 지원사가 해 놓은 볶음밥과 계란 프라이로 식사를 준비했다. 긴 문자 보내기, 로또 번호 읽어드리기 등 잔심부름도 했다. 시간을 쏜살 같이 달려 저녁 7시가 됐다.
#3. 9월 15일 오전 11시, 취재진 가운데 권OO(23세)은 시각장애인 김상현(가명) 씨와 택시를 타고 서울 종로에 있는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려 했지만 오래 기다려야 해서 일반 택시를 탔다. 김 씨는 음식점으로 가는 길을 꿰뚫고 있었다. “지구대 옆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어요. 골목길 왼쪽에 음식점이 있는데 보이면 말해주세요.” 취재진은 이동하는 동안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렸다. 김 씨는 그것만 들어도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요금을 할인해주는 장애인 복지카드로 결제하려는데 계속 결제 오류가 났다. 좁은 골목길에서 뒤차가 빨리 비키라고 클랙슨을 계속 누르자 택시운전자가 차를 벽에 바짝 붙였다. 권○○는 마음이 급해져서 김상현 씨에게 다른 카드가 없는지, 자신의 카드로 결제해도 되느냐고도 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끝까지 장애인복지카드로 결제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 단말기 전원을 껐다가 켜고 나니 비로소 결제가 됐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은 뒤 김 씨의 직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김 씨와 400~500m 정도 되는 길을 걸었다.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는 차나 자전거가 불쑥 나타날까봐 마음을 졸였다. 인도로 다닐 때도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 수시로 이를 알려야 했다. 특히 고정되어 있지 않은 콘크리트 블록에 걸려서 까딱하면 넘어지기 쉬웠다. 큰 표지판이나 조형물은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거리에 있는 작은 화분들이었다. 권○○은 바닥에 널려 있는 화분들을 도로 옆으로 치운 뒤 김 씨의 이동을 마저 지원했다.
#4. 9월 29일 오전 8시 30분, 취재진 가운데 오OO(23세)은 서울 보라매역 근처에 있는 정 기호(가명) 씨의 집 앞으로 갔다. 도착했다고 말하자 정 씨가 1층으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 계세요?”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비가 와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근처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정 씨는 병원 가는 길에 익숙했다. 운전사에게 "오늘은 유턴 안 하세요?"라고 물었고, 집에서 병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첫 번째 난관이 발생했다.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19검사 전자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는데, 시각장애인 혼자 문진표를 작성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은 사람들로 붐볐고 바닥은 비가 와서 미끄러웠다. 왼쪽 겨드랑이에 우산을 끼우고, 왼손에는 진료신청서를 들고, 오른팔은 정 씨에게 내어준 채 조심조심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진료를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진료실을 나가려는데 정 씨가 옆에 드레싱 이동 카트가 있는 줄 모르고 부딪혔다. 허리까지 오는 이동 카트에는 수술용 가위, 핀셋 등 위험한 의료기구 들이 올려져 있었다. 오OO은 한 손에 우산 2개를 들고 있던 터라 말할 새도 없이 나머지 한 손으로 다급하게 이용자를 막고 봤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병원 건너편에 있는 약국으로 가던 중 큰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보행신호등과 음향신호기가 없는 비신호 횡단보도였다. “아직 빨간 불이어서 조금 기다렸다가 건너야 해요” 시각장애인이 비신호 횡단보도를 지원사 없이 혼자 건너기는 위험해 보였다. 이날은 나비콜(장애인 바우처택시)을 타기도 어려웠다. 비가 와서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서인지 나비콜을 예약하고 30분이 지나서야 탈 수 있었다.
나비콜을 타고 회사로 도착해서는 정 씨의 문서 작업을 도왔다. 온라인 카페에 올릴 사진을 대신 올려드리고 파일 이름을 바꾸는 일이었다. 오전 실습을 마쳤더니 비가 그쳤다.
◇ 7일,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되는 시간
현장실습은 만만치 않았지만, 지원사 양성교육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지원사가 되려면 10시간의 현장실습 이전에 40시간의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을 들으면 된다. 돌봄 노동자들 대부분은 단기간에 따기 어려운 자격증이 요구되지만, 활동지원사는 그렇지 않다. 표준교육과정과 실습만 이수하면 지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의 자격증을 소지한 경우에는 표준교육과정에서 실기교육이 빠진 전문교육과정을 들으면 된다. 둘 다 별도의 시험은 없다.
교육 신청에 관한 정보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인활동지원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취재진은 활동지원사 교육기관 중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에 전화를 걸어 교육을 신청했다. 직원은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 장애 유무, 국적 등을 확인한 후 문자가 갈 테니 안내된 계좌에 교육비 15만 원을 입금해달라고 말했다. 이후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온라인 강의 링크와 공지사항, 교재 파일 등을 전달했다.
교육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어려워져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수강생 60명 중 ‘50대 여성’이 절반 이상, 남성은 열댓 명 남짓했다. 20대는 취재진 3명이 전부였다. 지원자의 평균 연령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취재진은 활동지원기관에 실습을 신청하러 갔을 때 “나이도 어린 분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 평균 연령 50대의 줌 적응기
“제 얼굴 잘 나오고 있나요?” “마이크를 끄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강생 대부분이 비대면 교육에 익숙하지 않았다. 줌 화상회의 방은 각종 생활 소음과 혼잣말로 소란스러웠다. 운전 중이거나 외부에서 다른 일을 하며 강의를 듣는 수강생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수강생들은 비대면 교육에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현장성이 떨어지는 데다 매일 8시간씩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에 수강생들의 집중력은 낮은 편이었다. 강사들은 틈틈이 수강생들에게 “많이 힘드시죠?”라고 물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하지만 수업의 호응도는 높았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모든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오히려 비대면 교육에 익숙한 취재진이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일례로 교육 둘째 날, 강사는 안내견을 동반하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을 틀어줬다. 영상에는 사람들의 인식 부족으로 입장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왔다. 수강생들은 “너무 화가 난다” “벌금을 더 올려야 한다” 등의 안타까운 반응을 드러내며 수업에 더 집중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인권 강사가 직접 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강사의 지원사가 옆에서 실시간으로 언어통역을 지원했다. 수업은 언어장애인이 말하는 문장을 맞히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탓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반복해서 들으니 조금씩 알아듣게 됐고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 어제도 오늘도 실습 찾아 삼만리
교육이 끝난 후 바로 실습 기관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실습할 기회를 얻기 쉽지 않았다. 실습은 활동지원기관을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는데 이를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코로나19로 실습생을 많이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취재진은 활동지원기관 10개소에 전화하고 겨우 한 군데서 실습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마저도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최선이었다. 취재진 3명 중 2명은 7월 말에 교육이 끝났음에도 9월 중순까지 실습을 하지 못했다. 활동지원기관에 직접 방문해 실습할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계속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 실습할 수 있다”라는 대답만 들었다.
무엇보다 활동지원기관은 실습 후 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했다. 장애인 이용자와 지원사의 매칭에 그 이유가 있다. 장애인 이용자가 원하는 지원사의 연령대와 성별, 거주지, 활동지원 시간 등을 활동지원기관에 요청하면, 기관은 그런 요청에 맞는 지원사를 찾아 매칭을 진행한다. 문제는 매칭이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실습 역시 매칭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실습생만 받는 곳이 많았다.
실습 신청마저 선착순이었다. 취재진은 실습을 신청하고 한 달 후 연락을 받았지만, 기회를 놓쳐 실습을 구하기까지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취재진 가운데 오OO은 실습을 3번 신청 한 끝에 기사 마감 전날 실습을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총 40시간의 교육, 10시간의 실습을 마치고 일주일 만에 취재진은 지원사가 됐다.
[톺아보기] 장애인의 자립생활 돕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이 장애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자립생활 패러다임이란 장애인이 평생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립생활’을 중시하는 장애인복지는 장애인이 살아가기 적합하지 않은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장애인 스스로 하기 힘든 일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이를 지원해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는 사회적 돌봄 서비스 제도는 그래서 생겼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활동지원사 등이 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해 활동보조와 방문목욕, 방문 간호를 제공하도록 돕는다. 이때 활동지원사는 활동보조를 담당하며 신체활동과 가사활동, 이동보조 등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수행한다. 해당 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07년 4월부터 시범 사업을 시작해, 2011년 10월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활동지원서비스는 만 6세부터 64세까지의 등록 장애인이라면, 소득수준이나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법 제정 초기에 보건복지부는 신청 자격을 장애등급 1급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2013년 1월에는 2급까지, 2015년 6월에는 3급까지 신청 자격을 늘렸다. 2019년 7월에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모든 등록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각 가정을 방문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한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장애인의 기능제한과 사회활동, 가구환경 등을 조사해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종합조사 결과에 따라 장애인은 O시간의 활동지원급여를 받는다. 활동지원급여는 바우처 카드로 지급된다. 활동지원사가 소지하고 있는 단말기에 서비스 시작·종료 시 바우처 카드로 서비스 이용금액을 결제하면 된다.
국내에서는 비영리법인, 비영리민간단체 등 민간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이 활동지원기관에 활동지원을 요청하면, 기관은 등록된 활동지원사 중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연결한다. 활동지원사 양성교육도 민간에서 관리하다 보니 교육과정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중장년층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활동지원사는 온갖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감당한다. 일하는 중에 제대로 쉴 틈이 없고 임금도 낮아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지 않는다. 취재진은 이 점에 주목해 활동지원사의 근무 환경과 처우 등을 톺아봤다.
1부 ②‘돌봄의 질’ 개선의 첫 단추, ‘교육’
현장 간 괴리 여전한 이론교육
활동지원사 증가 막는 실습 문턱
전문가 “체계적인 교육 이뤄져야”
실습 기회 확대도 필요해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질을 결정하는 첫 단추다. 하지만 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50시간이다. 해당 교육은 2009년까지 이론 및 실기교육 과 현장실습을 포함해 총 60시간이었다. 이후 지원사의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2010년에 40시간으로 낮췄다가 현재는 10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같이 짧은 교육만으로 지원사가 전문 돌봄 인력으로 거듭나기는 어렵다. 특히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진행하는 비대면 교육은 현장성이 떨어지고 수강생의 집중도도 흐려진다. 현장에서는 더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게 교육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 비대면 교육도 관리도 허점투성이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은 세 가지로 구성돼있다. 지원사의 역할을 배우는 이론교육과, 장애유형별 활동지원방법을 익히는 실기교육, 장애인 이용자를 만나 직접 돌보는 현장실습이다. 본래 실기교육은 교육기관에서 장애인의 이동보조나 응급처치 등을 직접 해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현재는 수강생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강사와 질의응답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A 교육기관의 한 관계자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실기교육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에요.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 결과를 보면, 비대면 교육으로 바뀌면서 만족도가 8%P 떨어지기도 했죠.”
강사와 수강생 간 소통도 어렵다.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으면 강의를 듣기 힘들뿐더러 실시간 채팅이나 대화로만 교육을 진행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A 교육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전보다 교육을 준비하는 데 시간적 비용이 많이 든다고도 했다. “교재와 유의사항, 이수 확인증 등을 직접 전달하지 못해 소모적인 업무가 자주 발생해요.”
교육은 물론 수강생 관리도 허술하다. 취재진이 교육을 들었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 합회에서는 출결에 주의해야 했다. 4시간 이상 지각하면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다. 실제 수업에 참여한 시간으로 이수 기준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가령 30분 이상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1시간 지각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원칙만 그랬을 뿐, 출결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배터리 부족, 장소 이동 등 각종 이유로 화면에 얼굴을 비추지 않은 수강생들이 많았지만, 중도탈락자 없이 수강생 모두가 교육을 이수했다.
◇실무에 도움 안 되는 교육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은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교재를 이용한다. 강사는 교재를 바탕으로 강의를 준비하는데, 강사의 자율에 맡기다 보니 교육내용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교재 내용을 모두 다루지도 않았다. 장애유형별 보조기구에 관한 강의를 맡은 강사는 1시간 넘는 시간을 사담으로 채우기도 했다.
여전히 해당 교육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지원사는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며 일을 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다른 지원사도 40시간 교육이 부족해 내용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순화 다같이유니온 전국장애인활동지원사지부 사무처장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장애 유형별,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마다 장애 유형은 물론 생애주기, 요구사항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현재의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순화 사무처장은 무엇보다 장애 유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어떻게 보조해야 하는 지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형식적이죠.”
전문가들은 이론교육 중심에서 벗어나 실습 중심의 체계적인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장애학과 교수는 “교육이 실습 중심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론교육과 현장 간 괴리를 줄이고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육 커리큘럼을 지속해서 개발하고 강사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기관이 필요해요. 전문화된 교육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발판이 되죠.”
◇ 예비 활동지원사 발목 잡는 실습체계
현 실습체계는 예비 활동지원사와 활동지원기관, 장애인 이용자 모두가 답답한 구조다. 우선 실습 기회가 한정적이다. 활동지원기관에서 실습생을 받을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B 활동지원기관의 한 관계자는, 실습을 원하는 교육생들에게 모두 실습 기회를 제공할 경우 활동지원 전담인력의 업무가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2년간 근무하지 않은 지원사들은 4시간의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들도 실습을 통해 교육하고 있어요. 보수교육 대상자와 실습생 모두를 관리하려면 장애인 이용자와 지원사 간의 매칭 업무가 많아지죠.”
실습생을 집으로 불러들여야 하는 장애인도 실습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시각장애인을 지원할 때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은 물건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실습생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실습생과의 접촉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될 수 있어 실습을 더 꺼리는 실정이다.
실습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만 10명 이상이라며, 대기도 받기 힘들다는 활동지원기관도 있었다. C 활동지원기관 관계자는 실습을 허락할 이용자가 부족해 직접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다고 언급했다. “늘 실습을 도와주시는 장애인 이용자가 몇 분 계세요. 그분께 실습생 한 사람만 더 받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교육과정 운영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12월 개정된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별표 3)에 따르면, 현장실습은 선임 활동지원사와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취재진 모두 실습하는 날 선임 활동지원사가 나오지 않아 혼자서 시각장애인을 지원해야 했다. 1회당 이론 및 실기교육 인원이 50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도 지켜지지 않았다. 취재진이 이수한 교육의 수강생은 총 56명으로 50명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좋은 지원’이란, 지원사가 장애인 이용자가 원하는 방법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서비스의 기본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서비스를 제공해보는 경험 역시 이런 과정의 일부일 것이다. 돌봄의 질을 논하기에 앞서 교육의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 하지 않을까.
1부 ③치열한 돌봄 현장의 노동자, 장애인활동지원사
취재진은 8월 14일부터 21일까지 8명의 장애인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활동지원 시간과 내용, 지원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점까지 여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용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지원사가 있는가 하면, 이용자가 밥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남은 밥을 감췄어야 했다는 지원사도 있었다. 일상의 어려움에서부터, 제도개선책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 돌봄의 최전선, 숨 돌릴 틈도 없다
지원사 전영자(52세) 씨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15세 남성을 지원하고 있다. 전 씨는 하루 대부분을 이용자와 인천 부평 계양산을 오르고, 동네에 있는 모든 마트를 구석구석 돌며 보낸다. “아이가 마트에 꽂혀서 동네에 있는 마트를 다 돌기 전까지 끊임없이 요구해요.”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돌봄은 계속된다. “눈에 보이는 음식은 꼭 끝까지 먹으려고 해서 딱 먹을 양만 주고 나머지는 안 보이는 데에 숨겨야 해요.”
지원사 김한숙(65세) 씨는 29세 여성 발달장애인을 3년째 돌보고 있다. “26살 때 처음 집 밖으로 나온 거예요. 신호등은 물론이고 대소변도 못 가렸는데, 이제 화장실 가는 방법은 알아요.” 김 씨는 그와 함께 낮 12부터 오후 6시까지 인천대공원 근처에 있는 산을 오르내린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춤이나 노래 등을 배우기도 했다. 요즘은 대부분 운영을 중단해서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지원사 황성욱(25세) 씨의 이용자는 55세의 남성으로 얼굴 아래의 몸이 모두 마비가 된 지 체장애인이다. 황 씨는 이용자의 하루가 여느 사람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용자분은) 일어나서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시고, 별일 없거나 쉴 때는 누워 있으세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부지런히 이용자를 돌보고 있다. 이용자의 몸에 욕창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2시간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주고, 누워서 소변을 보는 이용자의 소변통이 다 찼는지 틈틈이 확인하고 교체한다. 이용자를 휠체어에 태워 나들이를 나갈 때도 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와 빨래를 한다. 이용자의 몸을 씻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황 씨는 저녁 6시에 퇴근해야 하지만 이용자가 설사를 하는 등 긴급히 처리할 일이 생기면 늦은 밤까지 일한다.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건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에 대처하는 건 무척 어렵다. 도전적 행동이란 행동을 하는 주체나 타인에게 심각한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으로 물건 던지기, 불특정인 때리기, 자해 등이 포함된다.
지원사 김한숙(65세) 씨의 이용자 박지우(가명, 29세) 씨는 발달장애와 언어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활동지원을 막 시작했던 때의 김 씨는 이용자와의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용자의 도전적 행동을 말로 타이르기 어려웠다. 김 씨가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김 씨는 몸에 멍이 시커멓게 들기도 했다. 3년 동안 지원을 하니 요령껏 대처할 수 있게 됐지만, 이용자가 흥분하면 여전히 돌보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정말 난감하죠. 그냥 별수 없어요. 붙잡고 질질 끌고 나와야지 어떻게 해요."
지원사 전영자(52세) 씨도 이용자의 ‘도전적 행동’에 진땀을 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용자와 함께 지하철을 탔는데 그의 도전적 행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또 먹고 싶다고 했어요. 이미 하나를 먹었으니까 안 된다고 말했는데 그걸 수긍 못하고 감정이 폭발했어요. 지하철 안에서 뛰면서 화를 냈어요. 일단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내렸는데, 내렸다고 화가 더 난 거예요. 저를 꼬집기도 하고, 상황이 진정이 안 됐어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심하게 아파본 적이 없을 정도로 꼬집혀서…”
◇ 육체노동에 감정노동까지, 참고 넘어가는 게 최선?
지원사 양지원(가명, 40세) 씨는 100kg 정도의 거구인 이용자의 이동 보조 중 허리를 다쳤다. 수술 이후 재활치료까지 필요할 정도의 부상이었고, 그는 2년 동안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산재보상은 받지 못했다. 그가 지원 중 문제 상황이 발생할 시 센터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기 때문이다.
양 씨의 이용자 강영민(가명, 37세) 씨는 기도를 확보하기 위해 목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삽입해 가래를 빼는 석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면허가 있는 의료인이 아닌 경우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석션 치료는 엄연한 의료 행위다. 당시 활동지원기관은 불법 치료를 할 수 없다며 강 씨를 거절했으나, 그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이 약해진 양 씨가 나서서 각서를 쓰고 그를 지원하게 된 것이다. 양 씨는 이러한 행위를 “암암리에 다 한다”고 말했다. 치료가 하루에 몇 번씩 필요한 경우 매번 의료인을 부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법 의료 행위를 감수하는 각서를 쓰지 않았더라도, 지원사는 산재보상을 받기 쉽지 않다. 윤정훈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팀장은 “지원사가 이용자를 안아서 들어 올려 휠체어나 침상에 옮길 때 관절염, 디스크, 근육 통증 등의 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상황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보상을 받는 경우는 매우 희박”하고 대부분 자가 치료를 택한다고 전했다. 고미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조직 국장도 “지원사의 산재는 신청률도 낮고 승인 가능성도 작아서 대부분 자비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지원사 황성욱(25세) 씨는 “육체적인 노동량도 많지만 이용자와 성격이 안 맞으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이용자나 이용자의 가족이 계약사항 이외의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폭력적, 성희롱적 발언을 할 때도 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01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원사의 16.2%가 근무 중에 ‘부당한 심부름이나 일을 강요’받았다. 이유 없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 언어폭력, 성희롱, 성폭력, 신체폭력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지원사 이순화(50세) 씨가 만났던 이용자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그를 친절하게 대했다. 3일 후 이용자는 이 씨에게 지원자금 부정수급을 요구했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시간에도 바우처를 결제해서 타낸 돈을 나눠 갖자는 제안이었다. 이 씨가 이를 거절하자 이용자의 태도는 돌변했다. “밖에서 누구랑 싸우고 와서 제게 폭언을 쏟아부었어요.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더니 자기 기분이 안 좋으니 제가 (폭언을) 받아줘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용자의 가족이 계약에 없는 가사노동을 맡기기도 한다. 지원사의 서비스 제공 대상은 장애인 이용자이지 그의 가족이 아니다. 지원사 양 씨는 간혹 이용자 가족들이 자신들의 식사까지 준비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빨래와 청소를 맡기기도 한다. “원래 하는 건 아닌데 저 사람들이 잘 모르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요.”
이런 갈등이 발생할 때, 지원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는 참고 넘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복지재단의 설문조사 결과 무려 23.4%가 ‘개인적으로 참고 넘어 간다’고 답했다. 둘째는 이용자나 가족과 직접 대화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좋은 방법은 못 된다. 지원사와 이용자는 온종일 함께 지내고 몸을 부대껴야 하는데, 자칫 사이가 틀어지면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활동지원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지원사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중재란 ‘지원 중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방법은 그거에요. 저기 서비스 그만 가세요. 센터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어요.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죠. 새로운 이용자와 연결되기 전까지는 생계가 끊기는 거예요.” 실제로 취재진과 인터뷰한 활동지원기관은 이용자와의 성향 차이, 또는 이용자의 불합리한 요구나 폭언 때문에 지원사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입을 모았다.
◇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시급만 뺏어가는 휴게시간
지원사가 눈 돌릴 틈도 없이 고강도 노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법적으로는 이들에게도 휴게시간이 주어진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2018년부터 사회복지사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지원사의 ‘의무 휴게시간’이 생겼다. 지원사는 4시간 근무 중 30분, 8시간 근무 중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받는다. 이로 인해 지원사의 노동 환경이 개선됐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원사가 활동지원을 하는 중 30분을 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원사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돌발상황이 벌어져서 장애인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독립된 휴게공간이나 대체인력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지원사들은 그저 휴게시간을 지키기(?) 위해 업무 도중 단말기를 꺼내 휴게시간을 기록하고, 다시 지원을 이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휴게시간은 30분치 노동의 대가를 빼앗는 셈이 될 뿐이다. 8명의 지원사는 휴게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았다.
1부 ④최저임금은 매년 오르는데… 벗어날 수 없는 저임금노동
장애인의 자립생활, 사회참여,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 이들은 감내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 가족도 아닌 타인을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꼭 필요한 돌봄 노동의 대가는 너무 빈약하다.
취재진이 만난 지원사들은 현재의 임금수준이 현장의 노동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원사 황성욱(25세) 씨는 “지원사의 급여를 높여야 활동지원서비스가 더 원활히 이뤄지고 장애인 복지 수준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장애인 복지에 이바지하려면 지원사가 더 많아져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급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 시급 만 원짜리 수가, 법정수당도 지급 못 한다
지원사의 임금은 보건복지부가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비용 등에 관한 고시’에서 정하는 ‘활동 보조 급여비용(이하 활동보조 수가)’에 따라 결정된다. 2021년 활동보조 수가는 14,020원으로 작년보다 1.5% 올랐다. 여기서 센터 몫의 수수료를 뺀 10,000원 정도가 지원사의 시급이다.
활동보조 수가는 최저임금과 물가에 비해 더디게 오른다. 활동지원서비스가 본격화된 2011 년부터 올해까지 최저임금은 매년 인상됐지만, 활동보조 수가는 2018년과 2019년을 제외하고 소폭 인상되거나 그대로였다.
현 수가는 활동지원기관이 법으로 정한 수당을 지급하지도 못할 정도로 낮다. 윤정훈 성북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팀장은 지원사에게 연차수당, 주휴수당 등을 100% 지급하지 못해 지급 가능한 선에서 최대 금액을 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측은 “근로기준법에 맞춰 수당을 주면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법정근무시간 174시간만 일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이어서 “수입이 줄어든 지원사는 다른 기관에 중복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이 보건복지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확인한 결과, 전체 지원사 100,831명 중 중복으로 등록된 사람은 14,830명이다.
고미숙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동지원사지부 조직국장은 현 수가가 관공서 공휴일 수당 등의 법정수당을 보장하기에 현저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작년 노조가 요구한 수가는 15,340원으로, 현 수가는 그보다 1,320원 부족하다. 그는 “낮은 수가로 인해 활동지원사의 임금이 줄거나 체납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순화 다같이유니온 전국장애인활동지원사 사무국장 역시 2021년 수가는 15,000원 이상이어야 지원사 대다수가 유급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중증장애인 지원해도 시급은 그대로
지원사가 받아야 하는 수당이 또 있다. ‘활동지원사 연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인정되는 수급자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가산수당 1,500원이다. 쉽게 말해 최중증장애인을 지원했을 때 받는 수당이다. 심야 혹은 공휴일에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2,250원의 가산수당을 받는다. 가산수당 지급 기준은 아래 표와 같다.
취재진이 만난 8명의 활동지원사 모두 노동강도가 매우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가산수당을 받는 지원사는 한 명도 없었다. 지원사 김연주 씨의 이용자는 뇌병변장애,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인이다. 할 수 있는 건 발가락을 조금 움직이는 일뿐이다. 지원 내용이 많지만 김 씨는 가산수당을 받지 못한다. 지원사 황성욱 씨의 이용자도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 기준으로 1급 지체장애인이지만 지급되는 가산수당은 없다.
이순화 사무국장은 가산수당 지급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안내문에 따르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결과 기능제한(X1) 영역’의 합산점수가 360점 이상인 성인과 280점 이상인 아동을 특별지원급여 등이 제공되는 ‘최중증 수급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가산수당의 1순위 지급 대상은 합산점수가 446점 이상인 성인, 347점 이상인 아동으로 최중증 수급자의 기준보다도 훨씬 높다.
고미숙 조직국장은 활동지원기관이 가산수당을 지급할 만큼의 운영비가 없다고 말했다. 활동지원사의 임금, 기관 운영 비용, 교육수당, 근속수당, 가산수당을 다 지급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속 없는 교육과 부족한 지원에도 돌봄의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지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어려움은 지원사만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주인공인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다. 부실한 교육은 전문성 부족한 지원사를 양성하여 서비스의 질을 낮춘다. 낮은 수가는 새로운 노동자를 유인하지 못한다. 유명무실한 중증장애인 가산수당은 중증장애인 돌봄 공백으로 이어진다. 중증장애인의 돌봄 공백은 가족들이 채우고 있다. 가족 돌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답을 이어보기로 했다.
<2부. 돌봄 공백>
[편집자 주] 2020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주로 지원하는 사람은 ‘가족 구성원(76.9%)’인 경우가 가장 많다. 활동지원사나 요양보호사 등 사회적 돌봄 서비스의 도움이 가장 크다는 사람의 비율은 2014년 11.1%에서 2020년 18.7%까지 많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가족 구성원보다는 훨씬 적은 편이다. 시설 밖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의 자립에 필요한 지원은 가족의 손에 달려 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가족들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던 장애인 복지시설들이 대부분 휴관했다. 대면 지원 서비스가 시행되기 어려워지며 장애인의 돌봄은 오롯이 가정의 몫이 되었다. 2020 년 장애인 실태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장애인은 외출, 정서적 안정, 경제활동,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장애인의 가족들은 장기간의 돌봄 부담으로 인해 심리적인 소진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돌봄 공백이 수면 위로 올랐다. 발달장애인은 다양한 장애 유형 중에서도 오랫동안 복지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활동지원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활동지원사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지원을 중단하거나 연결을 꺼린다. 발달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탓이다. 발달장애인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서 충분한 지원 시간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2부에서는 장애인 돌봄 공백과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장애인을 확인한다. 발달장애인에게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관들의 움직임을 알아봤다. 도전적 행동으로 발달장애인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활동지원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살펴봤다. 활동지원서비스 대신 직접 장애인을 지원하는 가족이 활동지원 급여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확인했다. 또한 삶의 적극적 주체인 장애인이 활동지원제도의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남아있는 과제를 들여다봤다.
2부 ①활동지원사와 발달장애인 사이의 ‘힘겨루기’
◇ “내일은 싸우지 말아야지…” 퇴근 길 활동지원사의 눈물
1부에서 인터뷰를 통해 만난 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들의 이야기다. 지원사 김한숙 씨의 이용자는 자폐성 장애인, 전영자 씨의 이용자는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처음 서비스 이용자와 만나 지원을 시작할 때를 기억했다. 그들은 장애인 이용자가 도전적 행동을 보일 때 지원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도전적 행동, 혹은 어려운 행동이란 장애인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소유물에 해를 끼치는 행동을 지칭한다.
‘도전적 행동’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과거에는 ‘문제행동’이나 ‘행동장애’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장애인이 일으키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했기에 붙였던 이름이다.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김민정 조사관은 도전적 행동에 대해 “비장애인이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는 장애인이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도전적) 행동을 사용하는데 비장애인의 시선에서는 그것이 공격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전적 행동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은 지원사와의 연결이 어려워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활동지원서비스 시행기관인 예천군 장애인자립지원센터 관계자는 “발달장애인은 치료센터와 병원 일정이 많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경우도 많다.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데도 받지 못하고 가족이 돌봄 부담을 짊어지는 부분이 여전히 많아 보인다”고 전했다. 취재진이 만난 한 지원사는 “자폐성 장애 이용자를 만났던 적은 있지만, (지원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 도전적 행동에 쩔쩔매는 활동지원사, 원인은 교육 부족
지원사들이 도전적 행동에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적절히 교육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은 장애 유형별로 지원 방법을 충분히 교육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에서 배포한 교재 《장애인과 함께하는 활동지원사 교육》에서 ‘도전적 행동’에 관한 용어는 단 한 번 등장한다.
발달장애인 이용자와 보호자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지원에 답답함을 느낀다. 탁미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은 “중증 발달장애인 이용자가 하는 의사소통이나 욕구 표출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원하니 이용자가 힘들어 활동지원이 중간에 중단되어 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지원사도 예외는 없다. 탁미선 지부장은 지원사 중에도 “(중증 발달장애인) 지원을 버거워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으로는 지원사가 적극적으로 도전적 행동을 지원하기 어렵다.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논문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지원에 대한 쟁점과 전망’(2017)에서 “도전적 행동 용어에 대한 의미와 접근 방법은 매우 복잡하다. 일회성이 아닌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도전적 행동지원을 위한 다양한 ‘도전’, 활동지원서비스도 함께해야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권리와 욕구를 주장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중에서도 오랫동안 복지서비스에서 소외됐다.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은 늘 가족만의 책임이었다. 탁미선 지부장은 “(장애인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을 오직 가족이 다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라며 “사회와 상부상조하는 지원체계 없이는” 발달장애인의 사각지대는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도전적 행동을 잘 지원하기 위한 노력은 장애인 복지관과 교육센터 등 기관 종사자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설치된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는 2019년 12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지원 가이드》를 펴냈다. 도전적 행동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일상적 지원에 관한 내용부터 도전적 행동이 격화되었을 때 위험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담았다. 총 18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다. 이외에도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는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대응을 돕는 컨설팅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대안적인 사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에서는 ‘챌린지2’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인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낮 돌봄과 각자의 도전적 행동유형에 맞는 개인별 지원을 제공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중 도전적 행동 때문에 기존 복지서비스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복지서비스 이용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서울시가 두 차례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사업이다.
적절한 활동지원을 받은 장애인이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며 도전적 행동이 감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챌린지2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성민복지관 관계자는 “물건에 대한 강박행동이 있었던 참여자가 있었다. 사업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일관된 체계로 지원했다.”며 “얼마 이후에는 행동이 안정됐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에는 물건을 치우기보다는 의도적으로 물건을 노출하면서 환경에 대해서 적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의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고 장애인이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배우게 하는 ‘긍정적 행동지원’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은 지원사가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적절한 지원을 통해 장애인은 지원사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사이의 힘겨루기는 그만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김 조사관은 현재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에 대해 “이용자들의 표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원사가 소진을 겪게 되고, 장애인은 의사소통의 단절을 겪어 더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도전적 행동에 대한 이해는 곧 지원사와 장애인 사이의 의사소통에 대한 이해다. 따라서 도전적 행동 지원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은 일상생활을 밀착해서 보내는 지원사와 장애인 모두에게 중요하다.
이런 교육은 지원사 개인이나 교육기관 몇 곳이 자체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통일된 방향이 있는 종합적인 교육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민정 조사관은 “서울시는 복지 예산과 (복지 정책에 관한) 정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아주 많은 수준”이라며 “지역별로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서울시의 2021년 사회복지예산은 13조 633억 원으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가장 많다.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 등이 컨트롤 타워가 되어 집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현재 교육기관은 교육 일정을 잡아서 강의하는 수행 기관의 역할만 한다.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중앙 기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미 도전적 행동 지원에 전문성을 갖춘 지원사를 양성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전광역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활동지원사 양성교육과 연계한 ‘대전형 도전적 행동 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해당 사업에서는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에 도전적 행동 지원을 위한 교과목을 별도로 개설해 교육한다. 대전발달장애인지원센터 남지윤 대리는 해당 교육이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도전적 행동 지원을 위한 이론, 실제 도전적 행동이 있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해보는 실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 교육을 이수한 두 명의 지원사가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을 맡게 되는 결과도 있었다. 남지윤 대리는 교육 결과에 대해 “실기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셨다. (지원사들이) 실제로 도전적 행동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지원할지 알게 돼서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지원사에게도 장애인의 도전적 행동을 긍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2부 ②장애인 가족지원 활동급여
◇ 증가한 도전적 행동,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 부담
코로나19 확산 이후 발달장애인들은 외출과 경제활동,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을 겪었다. 발달장애인이 낮에 시간을 보내는 장애인복지관과 주간 보호 시설, 직업 재활 시설은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했던 2020년 2월부터 4월까지 정부에서 휴관을 권고해 운영이 크게 줄었다. 2020년 3월 각 복지시설의 이용률은 장애인복지관은 평상시에 대비해 46.5%에 그쳤고, 주간 보호 시설은 36.8%, 직업 재활 시설은 11.1%였다.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도 증가해 발달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광역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2021년 2월 셋째 주부터 4주간 발달장애인 및 보호자 777명에게 코로나19 이후 변화한 발달장애인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도전적 행동의 심각도와 발생이 늘었다. 타인을 해치는 ‘타해 행동’이 있다는 응답도 코로나19 이전 56.6%에서 이후 64.1%로 7.5% 늘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가장 많은 변화폭을 보인 타해 행동의 증가는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특성상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 특히 가장 오랜 시간 밀착해서 돌보는 주 양육자를 대상으로 가장 많이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가중된 돌봄 부담으로 발달장애인 가족의 2명 중 1명은 장기간 돌봄에 따른 심리적 소진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후 발달장애인의 가족이 겪는 어려움 두가지를 묻자 응답자들은 ‘외출, 치료 등 필수 활동의 제한(40.2%)’과 ‘장기간 돌봄에 따른 심리적 소진 (53.4%)’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11월 10일부터 6일간 코로나19 상황 에서의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보호자 1,174명 중 241 명(20.5%)이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부모 중 한쪽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 활동지원사 인력난… 활동지원 가족급여 요구
지원사의 인력난도 심각하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장애인활동지원통계에 따르면 지역별 활동지원제도 수급자 대비 지원사 비율은 평균 79.8%에 불과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세종시(117.37%)를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에서 지원사가 수급자보다 적었다. 지원사가 수급자의 90%가 넘는 지역도 총 네 곳에 불과했다. 제주(64.4%)와 인천(68.1%)의 두 지역은 수급자보다 지원사가 가장 적었다. 장애인 이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지원사를 선택하기는커녕 지원사를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사회적 돌봄 공백은 가족이 채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존의 활동지원서비스는 지원사가 장애인의 가족이라면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활동지원 가족급여제도는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직접 지원할 때에도 동일하게 급여를 제공하는 것으로 현재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생긴 돌봄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위해 가족급여제도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현재 제한적으로 허용된 활동지원 가족급여제도는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이상에서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면 기존 급여의 50%를 지급한다.
이전부터 활동지원 가족 급여제도를 해달라는 요구는 계속됐다. 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발 달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은 가족이 활동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취재진이 설문한 5개의 활동 지원 기관 모두가 지원사가 중증장애인 돌봄을 꺼린다고 응답했다. 가정에서 아직 부족한 사회 서비스 대신 돌봄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대신 가족이 활동지원을 하는 만큼 급여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다.
◇ 활동지원 가족급여, 고민이 필요한 때
장애인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활동지원 가족급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측은 정부의 돌봄 정책이 탈시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시설 밖에서 장애인을 지원할 사람에 가족을 포함해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운동을 말한다. “국가가 장애인 가족에게 돌봄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나 당장의 하루를 살아야 하는 장애인과 장애인가족들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는 차례를 기 다리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활동지원 가족급여가 활동지원서비스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급여 제한을 풀면 그를 통해 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 여전히 가족이 일상의 신체활동을 돕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이런 가족 돌봄까지 지원하면 결과적으로 서비스가 확대되는 셈이어서 서비스 수급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진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총장은 인구 고령화를 겪는 지방은 가족급여가 허용되더라도 돌봄서비스 제공이 어려울 수 있다며 “활동지원 가족급여제도와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이 동반되어야 하고 그를 위한 예산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2부 ③활동지원서비스의 단면(斷面)... 산재한 과제
이상진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총장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문제점을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 따른 급여하락과 지방 거주 중증장애인의 연계 어려움”으로 요약했다.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10년을 맞았다. 그러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 산더미 같은 신청 서류 “간결하게 개선해야”
일부 장애인에게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는 과정부터 어렵다. 고령지역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의사소통이나 이동이 어려운 독거 장애인들은 혼자서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신청 과정에서 의사소견서가 필요하면 장애인은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그러나 지원사 없이 혼자 병원에 가기 어려운 장애인도 있다. 성북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지원사와 장애인의 연결시에 필요한 서류가 많고 서비스 제공 이후에도 변경사항에 따라 수시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용자가 처음에 구비해야 하는 서류만 해도 초기상담지, 이용인 계약서, 상호협력동의서, 정보제공동의서가 있다며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간결한 서류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24시간 활동지원, 운에 달렸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는 종합조사표에 따라 구간을 배분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받을 수 있는 1구간은 월 480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하루 16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이 있다. 전신마비 근육 장애인은 자는 동안에도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자는 자세를 바꿔 주어야 한다. 독거장애인이 집 안에서 혼자 이동하다 낙상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에 따른 활동지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장애인에게 몇몇 지역자치 단체에서는 추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대 330시간에서 360시간 활동지원을 더 받으면 평일뿐 아니라 가산수당이 붙는 주말까지 넉넉한 활동지원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지자체별로 예산 상황에 따라 활동지원 24시간의 급여 조건이 다른 것”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짚었다. 운 좋게 본인이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들어맞는 지역에 살지 않는 이상 중증장애인이 24시간 활동지원을 받기란 어렵다.
◇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장애 유형 고려 못 한다
활동지원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의 문제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려는 장애인이 수급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조사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기능제한, 사회활동, 가구활동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 영역에 해당하는 동작이나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산정 방법에 따라 합계 점수를 산정한다. 점수가 높을수록 활동지원 시간을 더 오래 받을 수 있다.
각자 다른 장애유형에도 똑같은 항목으로 조사를 진행하니 일부 장애유형은 높은 활동지원 인정 점수를 받기 불리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장애 유형에 따라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한 문제를 개선하고 각 장애인이 필요한 지원을 고려하기 위해 장애 등급제에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로 변화했”으나 “현재의 활동지원은 여전히 신체기능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생활에 필요한 활동지원을 파악하기에 서비스종합지원조사는 적합하지 않다. 일상생활과 평가 상황이 달라 실제 어느 정도로 지원이 필요한지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탁미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은 “발달장애인 분들은 일상생활에서 본인의 의견이 배제되기 쉬워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다. 종합조사를 하러 오시는 평가자 분이 칭찬하시면 거기에 힘입어 일상에서 하기 어렵던 행동까지도 하곤 해서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추가로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확인할 방법이 필요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현재 종합조사표상으로는 일부 유형의 장애인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없어 돌봄 공백이 생기는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전 보다 종합조사에 따라서 오히려 지원시간이 감소한 분들도 많았”으며 “서비스 삭감 인원 중 61%가 발달장애인”이었다고 밝혔다. 신체적 장애인의 기능 제한보다 시청각 장애인이나 발달 장애인의 기능 제한이 상대적으로 적게 집계되기 때문이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팀장은 “기능제한 영역의 평가 지표는 주로 신체적 장애인의 기능 제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음식물 넘기기, 누운 자세에서 자세 바꾸기, 옮겨 앉기, 앉은 자세 유지, 배변, 배뇨’ 등 일상생활동작의 평가지표는 신체활동 기능 제한과 관련된 항목이다. 가중치와 총점이 매우 높게 배점되어 있으나 감각장애, 정신장애인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약챙겨먹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주의력, 환각・환청・망상, 조울 상태’ 등 정신장애인이 보이는 기능제한은 배점이 낮아 가중치가 적은 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각 장애 유형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이용자가 필요한 지원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종합조사에서 소외되어 있던 감각 기능이나 발달장애인의 기능을 더 고려하는 지표 개선을 통해 유형에 따른 지원 시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65세 이상 장애인, ‘노인장기요양’과 ‘장애인활동지원’ 사이에서 줄다리기
2020년까지는 활동지원을 받던 장애인이 65세가 되어 노인장기요양 수급자로 전환되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24시간 지원이 필수적인 장애인도 65세가 되면 급여량이 대폭 줄어들어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복지부는 2020년 12월 “2013년 이후 장기요양 수급자가 되어 급여량이 삭감된 장애인 322명에 대해 부족한 활동지원을 보충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활동지원법을 개정해 65세 이후에 ‘혼자서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은 새로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앞으로 65세가 넘는 장애인 모두가 부족한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기요양 등급에 따라 지원 시간이 활동지원서비스 최저 구간인 월 60시간보다 적을 때에만 장기요양과 활동지원서비스를 둘 다 이용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에 65세가 도래하는 활동지원 기존 수급자 1,582명 중 양 돌봄 서비스를 모두 이용하게 되는 장애인은 90명 정도라고 추정했다. 이를 두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측은 “해당 기준을 충족시키는 대상자는 올해 65세가 되는 수급자의 4.4%에 불과한 미미한 수치”라고 지적했다.
24시간 활동지원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활동지원서비스에 지자체의 추가 지원이 더해진 장애인이 65세가 되어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자로 전환되면 지자체의 추가 지원을 받기 어려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명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위원회 활동가는 “24시간 활동지원이 절실한 사지마비 최중증 장애인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외’ 판정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심사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으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은 할 수 없어도 받고 있었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65세 이상 장애인이 24시간 지원을 받기 어려워지는 것에 대해 “지자체의 추가 지원은 지자체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명희 활동가는 “복지부가 ‘지자체 여건에 따라 추가지원이 가능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추가지원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의 사회보장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중증장애인 가산수당 현실화, 중증장애인 돌봄 공백을 위한 필수요건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증장애인 기피현상이다. 중증장애인 지원은 노동 강도가 높아 이를 꺼리는 지원사가 많다.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최중증 와상장애인은 호흡줄, 소변줄 갈기, ‘석션’을 수행해야 하거나 욕창이 있는 장애가 심한 유형이나, 외부 외출이 잦은 경우 지원사분들이 다른 이용인과 비교해 거부한다”고 응답했다. 무주자립생활센터는 “지원사 전원이 여자다. 이용자가 남성이고 거동이 어려우면 여성 지원사가 지원하기 어려워 활동지원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지원사는 노동 강도 내용과 관계없이 시간당 같은 수가를 적용받는다. 대신 지원 난도가 높은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지원사에게는 가산수당을 지급한다. 지원사가 중증장애인을 피하는 현상을 완화하고 지원사와 중증장애인의 연결을 원활하게 하려고 마련되었다. 가산수당은 기존에 받는 활동지원서비스 급여에 추가로 지급하는 수당이다. 가산수당은 2021년 기준 시간당 1,500원을 지급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지금 수준의 가산수당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취재진이 만난 지원사는 가산수당을 받아도 “차비 정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인상 속도도 매우 더디다. 가산수당이 도입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680원에 머물렀다가 2019년 1000원으로 인상되었다. 2021년 들어 가산수당은 1,500원으로 인상되었다. 합리적인 가산수당에 진입시키기 위해 크게 인상하기보다는 1년에 136원꼴로 조금씩 인상하는 모습이다.
가산수당 대상자를 선별하는 기준이 너무 높다는 비판도 있다. 가산수당 1순위 대상 수급자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 따라 기능제한 영역의 합산점수가 성인 446점 이상, 아동 347점 이상인 사람이다. 이는 장애유형에 따라 가산수당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2021년 7월 14일 정부에서는 ‘한국판 뉴딜 2.0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돌봄격차 해소를 위한 1+4 돌봄 체계의 일부로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서비스 가산수당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가산수당 개선은 활동지원이 절실한 장애인에게 지원사를 만날 기회를 늘려준다. 활동지원제도에서 배제되는 유형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가산수당의 현실화가 시급하다.
<3부. 방향>
[편집자 주] 활동지원사의 부당한 처우, 복지 사각지대의 장애인. 이들이 처한 상황은 서로의 탓이 아니다. 무리한 요구로 활동지원사를 힘들게 하는 장애인 이용자의 행위는 체계적인 이용자 교육과 적절한 센터의 중재가 있다면 사라질 수 있다. 중증장애인 지원을 거부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지원하지 못하는 활동지원사에게는 현실에 맞는 가산수당과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현 구조는 이런 지원과 체계가 부족하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중 한쪽이 권리를 챙기면 다른 한쪽이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누구의 권리도 침해돼서는 안 된다. 활동지원사와 장애인은 서로의 권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다. 장애인은 활동지원사가 있기에 자유가 박탈된 시설에서 벗어나 주체로서의 지역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 활동지원사는 돌봄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보람을 느끼며 직업의 가치를 느낀다.
취재진은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장애인의 진정한 ‘탈시설’과 ‘자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로드맵도 들여다봤다. 마지막으로 장애인활동지원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여 국회 의정대상을 수상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만나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들었다.
3부 ①낮은 수가 어떻게 높여야 하나
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의 치열한 일상을 담은 1부, 장애인이 마주한 돌봄 공백의 원인을 짚은 2부에 걸쳐 ‘활동보조 수가’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최소치에도 못 미치는 수가는 지원사와 장애인의 존엄을 무너뜨렸다.
“올해 장애인활동지원 사업의 예산은 1조 5,070억으로 보건복지부 단일 사업 중 최고 수준이지만 당사자들이 만족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이상진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총장은 지원사의 임금과 법정수당, 활동지원기관의 운영비를 모두 감당하려면 수가가 최저임금의 1.5배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가 인상은 현 활동지원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수가 인상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논의를 짚었다.
◇ 사회적 돌봄 비용 확대해야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통해 사회적 돌봄과 일자리까지 제공하려고 해요. 하지만 들이는 비용은 적죠.”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장애학과 교수는 정부의 무리한 목표 설정이 돌봄과 일자리의 질 모두를 저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정부가) 지원사를 사회적 일자리로 간주해서 수가를 낮추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지원사의 임금은 전문 인력에 대한 유인 효과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원사는 사회적으로 필수적이지만 수익성이 낮은 사회적 일자리다. 저임금과 고용불안, 서비스의 질 문제는 다른 사회적 일자리, 특히 돌봄 영역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경력 단절 여성이 대부분인 돌봄 노동자의 능력을 비전문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편견도 있을뿐더러, 지원사는 표준화된 시험이 없으니 전문성을 기르기도, 증명하기도 어렵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원사 자격도 국가공인의 형태를 갖추어야 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가는 서비스 전문성에 따라서 측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요양보호사의 시간당 수가는 22,460원으로 활동지원 수가보다 8,000 원가량 높다.
◇ 월급제 도입 논의도 필요해
수가 인상이 급선무지만, 수가의 75%를 지원사의 시급으로 매기는 ‘시급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원사들은 언제든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현장에서 단말기를 꺼내 근무시간을 입력해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지원사 이순화(50세) 씨는 단말기 접속이 원활하지 않거나 이용자의 긴급한 요구가 있을 때 근무 시간을 제때 기록하지 못하면 무급노동시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원사 양지원(가명, 40세) 씨는 시급제에서는 월차 휴가나 병가를 사용할 수 없고 체계도 허술해 월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원사가 기관과 월급제로 계약하면 지원사의 소속감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 인력이 유입돼 양질의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 장애인 당사자, 지원사, 활동지원기관 모두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진 사무총장도 “지원사의 사회적 지위와 고용 안정성을 위해 월급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월급제를 기반으로 임금을 적용하는 경우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서비스 편차가 커질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주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월급제 도입의 타당성과 효율성 검토가 선행되어야 해요.”
3부 ②장애인활동지원제도, 모두의 존엄을 찾아라
올해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의 보완책을 내놓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에게 활동지원 가족급여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거나, 노인장기급여로 전환하여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던 만 65 세 이상의 장애인 중 일부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실제 개선 폭은 당사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올해 65세가 되는 장애인의 4.4%만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고, 대상자에 대한 지역자치단체의 추가지원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활동지원사(이하 지원사)의 노동 환경 개선도 아무 진척이 없다. 민주노총 전국활동지원사지부는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유급휴일을 보장하라”며 1인 시위를 진행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보완이 필요할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 활동지원사 노동 환경 개선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장애학과 교수는 지원사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당연히 시급을 올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서 휴게시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조한진 교수는 지원사를 노동자로 보는 측면에서는 휴게시간이 필수적이지만 “노동권을 지키는 문제와 업무의 특성상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힘든 문제가 충돌하는 딜레마”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원사가 쉬는 시간에 대체인력을 어떻게 공급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는 지원사의 휴게시간, 응급상황, 야간이나 공휴일에 활동 지원을 할 수 있는 공무원이 있어요. 이렇게 대체할 수 있는 상시인력을 준비하지 않으면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어려워요.”
지원사의 감정노동 강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활동지원기관이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해야 한다. 한성대 정석환, 최천근 교수의 ‘서울지역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직무스트레스 요인에 관한 연구’(2017)에 따르면 이용자와 지원사 간의 마찰이 발생할 때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야 하며, 국민연금공단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국민연금공단이 이용자와 그 가족들에게 부정수급 및 실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다양한 서비스 지원과 정책 추진
조한진 교수는 무엇보다 장애인의 자율권을 늘리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 장애인이 서비스를 요청하면 기관에서 교육받은 지원사를 파견하는 방식이지만 미국의 경우는 연결된 이용자에게 직접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에 대해 직접 알려줄 수 있고, 획일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진정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지원사를 내가 교육하지도 않았고, 인력이 부족하니 내가 원하는 지원사를 고르기도 힘들죠.”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종합조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발달장애 등의 특정 장애 유형이 급여를 못 받는지 그 실태와 원인을 조사하고, 그들에게 부족한 서비스 영역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장애 유형을 획일적으로 보고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유형에 맞게 각각 필요한 대안을 제시해줘야죠.”
2021년도 보건복지부 소관 장애인 정책 지출예산은 3조 6,662억 원으로 2020년도 추경예산 대비 11.9% 증가했지만, OECD 평균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상진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사무총장은 장애인복지예산을 OECD 평균수준인 8조 원가량으로 높여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활동지원서비스 외에도 돌봄 인프라 구축해야
돌봄의 난도가 높은 중증장애인의 경우 아직은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활동지원 가족급여를 허용한다 해도 장애인의 가족이 고령인 경우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정부 기관은 활동지원서비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는 “활동지원서비스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돌봄 공백 문제가 해소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활동지원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돌봄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진 사무총장 역시 “전국적으로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이 가능한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예산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예산을 스스로 관리하는 제도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 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의 폭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이상진 사무총장은 이를 통해 활동지원제도에 유연성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개인예산제를 실행하고 있다.
제도적인 장치뿐만 아니라 활동지원 전반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전북대 김미옥 교수의 논문(2018)에 따르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서비스 제공자와 시민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의 준비와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3부 ③“탈시설을 탈시설이라고 부를 수 있게”
“장애인 중 한 사람으로서 폼 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장애인 중 한 사람으로서 권리가 박탈당한 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다운 삶, 제가 원하는 자립생활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7월 29일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컨테이너 위로 올라갔다.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하 전장연)가 ‘탈시설로드맵 탈시설 권리 명시’를 촉구하는 시위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장애인들이 고소작업차를 타고 3m 높이의 컨테이너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자, 경찰차에서 “위험 하니 그만 내려가라”는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컨테이너 아래 장애인들의 일상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날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투쟁에 참여해 목소리를 보탰다. 장 의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에서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촉구했다. “장애인의 권리를 권리답게 의결하십시오. 거주시설로 보내지는 장애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평생 다른 사람이 먹으라는 것을 먹고, 하라는 것을 하고, 가고 싶은 데 못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면서 살아야 합니다. 권리를 잃은 채 인간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하 탈시설로드맵)은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이들의 자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장기 실행계획이다. 탈시설로드맵은 문재인 정부의 42번째 장애인 분야 국정과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탈시설로드맵은 장애인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 내용에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및 종합지원체계 도입 추진’을 목표로 수립됐다.
탈시설로드맵은 발표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장연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폐지’를 촉구하는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탈시설민관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2018년 2월 탈시설민관협의체를 조직해 논의를 시작하는 듯했지만, 2019년 4월부터 2020년 8월까지 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1년 넘게 아무 진전이 없자 전장연은 성명문을 내고 옥상투쟁에 들어갔다.
정부는 2021년 8월 2일이 돼서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개최하고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날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2022년부터 3년 동안 시범사업을 통해 관련 법령 개정 및 인프라 구축으로 탈시설·자립지원 기반 여건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25년부터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을 추진해 매년 740여 명의 장애인에 대해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할 경우, 2041년경에는 모든 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와 장애계는 ‘탈시설 지원방안’을 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먼저 정부는 탈시설 지원에 대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시설 장애인의 거주지 이전을 지원하거나, 시설 거주 환경을 당사자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일련의 지원정책”이라고 정의했다. 거주시설을 폐쇄하기보다는 24시간 의료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시설로 남겨두려는 모습이다.
전장연은 “(정부안이) 탈시설을 탈시설이라고 명명하지 않는 안”이라며, 탈시설 이후 자립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시설 장애인이 탈시설한 이후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것은 장애인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 장애계는 장애인이 자신의 삶에 관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중증 발달장애인의 활동보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지자체별 예산의 상황에 따라 활동보조 24시간의 급여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탈시설을 논할 때 시설 존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탈시설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활동 브리핑에서 “시설 안이든 밖(지역사회)이든 장애인 스스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선택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이라며 “장애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당사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부와 장애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탁미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장은 탈시설의 의미에 대해 “(장애인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좋아하는 TV도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장애인이) TV를 잠깐이라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지원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라고 전했다.
활동지원사들은 탈시설로드맵을 어떻게 볼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국활 동지원사지부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탈시설로드맵이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게 돼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지원주택을 구하는 과정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이 시설에서 나왔을 때 자립생활을 지원해주는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죠.”
장애인을 거주시설에서 나오게 하는 탈시설로드맵,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활 동지원제도.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탈시설과 장애인 자립의 미래를 물어봤다.
3부 ④자립은 ‘능력’이 아닌 ‘권리’
[장혜영 정의당 의원 인터뷰]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미래를 갖고 싶어서였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존엄한 삶이 평등하게 보장되는 미래, 모두 무사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미래요. 그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금을 가로막는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다.”
8월 2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회의에서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탈시설 정책의 초점이 ‘장애인의 자립’이 아닌 ‘주거전환’에 있어 탈시설한 장애인의 자립지원체계가 미비한데다, 이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국내에서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장애인활동지원법 일부개정안’으로 제1회 국회 의정대상을 수상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을 공동발의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대표발의했다. 장혜영 의원에게 장애인 정책에 관한 생각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투쟁을 함께했다.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
“광화문 지하차도에 있던 농성장이 생각났습니다. 무려 1,842일 동안 장애등급제·부양의무 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외치던 농성장에 처음으로 복지부 장관이 방문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으니까요. 하지만 탈시설로드맵 발표는 하염없이 미뤄졌고 그마저도 ‘탈시설’을 언급하지 않으려 고집하는 정부 때문에 다시 농성장이 만들어졌습니다. 4년 전과 대비되는 풍경이었죠. 그 더운 날, 위험을 무릅쓰고 컨테이너 옥상에 올라서는 당사자들과 부모님을 보면서 제대로 된 탈시설로드맵을 만들고 이번 국회에서 탈시설 지원법을 제정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진정한 탈시설의 의미와 그 필요성은 무엇인가.
“장애인이 누군가의 가족이기 전에 한 사람의 고유한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주거를 포함해, 삶 전반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한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시설에서 기약 없이 통제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답할 분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10년 후 우리 사회에서 시설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한다’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탈시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발표된 로드맵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이 무엇인가.
“우선 탈시설을 탈시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탈시설의 의미를 온전히 실현하기보다, 단순히 ‘주거전환’으로 한정했습니다. 그 근거로 당사자의 ‘선택권’, ‘결정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탈시설을 개인적 차원으로 협소하게 인식하고 있는 점이 드러납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당사자가 탈시설하는데 있어 필요한 지원에 관한 내용이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영위를 위한 활동지원, 경제적 지원, 건강 분야 등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데요. 장애인이 어떤 지원을 통해 어떻게 탈시설할 것인지 그려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탈시설은 지금까지 시설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시행해온 역사에 대한 반성이 반 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진지한 성찰을 통해 시설시대를 종결하기 위한 방안과 시기가 분명히 제시돼야 합니다.”
-탈시설 지원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이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간활동 서비스의 확대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궁금하다.
“2020년에 시행된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에 따르면, 지금 시설에 계신 분 중 98.3%가 중증장애인이고, 64~81.4%는 일상생활 전반에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평균 입소기간이 18.9년이니, 입소 전보다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원인원뿐만 아니라 그 지원의 정도에 있어서도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간활동서비스가 대폭 확대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죠.”
◇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활동지원서비스에 관한 질문
-아직 활동지원서비스가 국내에서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
“맞습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이후로는 모든 등록장애인의 신청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줬을 뿐이고, 심의를 거쳐 결국 탈락되거나 아니면 형편없는 수준의 지원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예산을 한정해놓고 자격과 지원기준을 엄격히 다스리기 때문에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에 진입할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기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공공의 사회서비스 체계가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국회에서 「사회서비스원법」이 통과되어서, 현재 전국 12개 시·도에서 운영 중인 사회서비스원이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민간에 맡겨진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공공의 책임을 더 강화하기 위함인데요. 이처럼 민간에서 발생하는 돌봄 공백에 대해 공적체계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활동지원사의 처우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동안 국회에서도 활동지원이 매칭되지 않는 문제, 낮은 단가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정부와 국회 차원의 예산 증액을 통해 단가 인상으로 활동지원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다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내년 복지 예산 중 장애인 사업 예산은 4.8% 증가에 그쳤다. 현재 예산안 책정이 활동지원사업 확대에 기여할 수 있나.
“정부예산안을 보면, 내년 활동지원급여대상은 올해 99,000명에서 107,000명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들의 수에는 미치지 못한 수준입니다. 시간당 단가는 올해보다 785원이 오른 14,805원이지만, 이 역시도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정수당이 지켜지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탈시설로드맵을 실현할 복지 예산과 관련해 앞으로의 활동지원서비스 확대를 위해 이번 예산심사에서 중점적으로 검증, 요구할 내용이 있나.
“현재 탈시설로드맵은 ‘지역사회 거주전환 초기 집중지원’, ‘주거공간 지원’을 두루뭉술하게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서비스 내용과 예산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자립정착금의 예산은 아예 지자체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중앙정부는 단지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탈시설한 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역시 현행(6개월간 월 20시간 특별추가급여)에서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선언만 있을 뿐 지원의 내용이 빠져있는 로드맵이지요.
한편, 정부는 내년 예산 중 22억을 ’탈시설 시범사업‘ 예산으로 편성했다며 대대적인 선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로드맵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 가이드를 제시하기보다는 시범사업을 10개 지역을 선정해서 시행한다는 것인데요. 대체 이 시범사업 예산을 통해 몇 명의 장애인이 어떻게 탈시설할 수 있는지 집요하게 묻고, 정부가 지자체에 시범사업을 맡기는 것 외에 어떤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에 관한 질문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의 골자는 무엇이었나.
“일명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에 세 가지를 담았었는데요. 첫째,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지원 상한선인 16시간을 24시간으로 보장하는 것. 둘째, 만 65세 이하의 장애인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나이 제한을 폐지하는 것. 셋째, 코로나와 같은 재난 상황 시 수급자격이 없더라도 긴급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이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지원서비스가 국가에 의해 24시간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하루는 16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니까요.”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난해 12월 2일,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만 65세 이후에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도 65세 도래한 분들에 대해 활동지원 시범사업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하지만 활동지원제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해서 65세가 되기 전 장기요양을 먼저 신청하거나, 신청을 못 한 채 65세를 넘긴 경우 활동지원제도에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 추가적인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또한, 제가 담은 세 가지 중 나머지 두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24시간 지원의 법적 근거 마련이 어려웠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지역사회에서 최중증장애인과 취약계층장애인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지원 서비스와 예산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국가는 장애를 개인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사회적 책임은 외면합니다. 예산과 행정 중심적인 제도장벽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 수가 책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개정안은 수가에 어떤 영향을 끼치 게 되나.
“현재 수가 책정에 관한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책정하는 예산 총량 내에서 최저임금 인상분 정도를 고려하여 수가 책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정안을 통해 수가 책정의 기준선을 법으로 정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최저임금, 물가상승률 등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수가 책정의 폭이 들쭉날쭉한 것이 아니라 점차 인상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아가 활동지원사의 법정수당, 기관운영비 등이 현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정안 추진 시 토론회와 간담회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
“법안 추진을 위해 장애인 당사자,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다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몇 분이 용기 내어 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을 발의하는 기자회견에 증언자로 함께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싸우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되었기 때문에 법안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돌봄의 사회화에 관한 질문
-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법이 ‘돌봄의 사회화’를 실현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돌봄의 사회화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당사자와 가족에게 오롯이 전가해왔습니다. 장애를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불행으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시민의 권리는 외면한 채 아주 제한적인 복지를 베풀어왔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차별이라 부를 수 있는데요. 돌봄의 사회화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의지입니다.”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돌봄 노동자의 능력이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인간은 누구나, 전 생애에 걸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돌봄에 담겨있는 공적인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돌봄 노동은 사적인 노동이거나 또는 비숙련 저임금 노동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그 인식은 돌봄이 필요한 당사자들에게도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노동자 개별의 ‘선의’나 양자 간 ‘관계’에 맡겨지기 때문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아동, 노인 등에 대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필요성을 정부에서 꾸준히 언급하는 만큼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도 책임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장애인 자립’의 의미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자립을 ‘능력’의 여부라고 생각하지만, ‘자립’은 능력이 아닌 ‘권리’입니다. 자기 삶에서 타인과 끊임없이 서로 의존하면서도 필요한 지원과 의지를 가지며, 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장애가 있든 없든 말입니다.”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과제가 있다면.
“흔히 ‘장애’를 생각하면 ‘복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장애 관련해 모든 사안은 복지부만의 과제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복지부가 여러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은 우리 일상의 공간 어디에나 있고, 있어야 한다는 걸 인지하시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함께 배워야 하고, 시민의 보편적 이동수단인 전철과 버스에 함께 타야 하고, 직장에서도 동료로서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장애아동은 특수학교로 밀려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전철역에선 장애인을 볼 수 없으며, 프리미엄 버스가 도입된 이 시대에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시외이동 버스는 없습니다. 공공기관마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고 차라리 고용부담금을 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맞춰져 있는 일상의 공간과 그 보편성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당면한 과제를 미루지 않고 모든 부처, 정부기관이 제자리에서 책임을 다해주시길 당부드리며, 저 역시도 국회의원으로서 치열하게 의정활동에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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