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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1호 <다시뛰는>/문화

이후의 세월을 사는 법 - 다큐멘터리 <세월> 코멘터리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2. 1. 1.

영화감독 장민경

시놉시스
세월호 참사로 딸 예은을 잃은 유경근이 팟캐스트 녹음 스튜디오에 앉았다. 세월호 참사 전후로 존재했던 수많은 사회적 참사, 그 유족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고 한상임 님 어머니 황명애, 99년 씨랜드화재참사 고 고가현, 나현 님 아버지 고석, 87년 고 이한열 님 어머니 배은심. 유족들은 저마다의 일상 속에서 '이후의 삶'을 들려준다. 유경근은 예은 없는 세월을 사는 법을 알아간다.

기획 의도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이를 잃어도
예기치 못한 재난을 겪어도
삶은 계속된다.

살아남은 이는 치유책을 찾고,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란 말을 한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걸까?

아니라면,
무엇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애도 불가능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며
다시 살아가는 법을 알아온 사람들,
사회적참사 유가족들을 만난다.

이들이 걸어온 기억의 시간과
망각의 현장에 서서
위험사회를 함께 사는 법을 나누고 싶다.

2018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당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이하 미디어위)에서 활동하던 나는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기록 촬영을 위해 매주 목동에 위치한 CBS 방송국을 오갔다. 하늘 아래 오직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작은 스튜디오 안, 카메라 한 대를 사이에 두고 숨죽이며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서로 다른 참사의 유가족들이 참사 이후의 삶을 묻고 답하는 시간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참사 이후의 진실 규명과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되물었다. 나아가 상실한 존재를 안고 사는 삶에 대한 감각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촬영을 거듭할 때마다 생각했다. 오늘 내가 본 이 순간이 피해자다움’, ‘유가족다움이라는 틀을 흔들 수 있는, 연대와 책임의 이미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장면이 가닿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바람에서, 함께 활동하던 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이야기를 5주기 작업으로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각주:1] 내가 꼭 연출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결국 이 작업의 출발이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디어위는 해산 과정에 들어갔고,[각주:2] 아쉬움과 주저함을 오가며 고민하던 나는 그해 6월 총선 기간 안산시 선거 후보들을 비롯한 세월호 혐오세력들을 보며 작업을 본격적으로 결심했다.

각 당의 후보들이 416생명안전공원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산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은 도시 전체를 가득 채운 납골당 반대플랜카드였다. 그들은 마이크를 들고 동네 곳곳을 돌며 4.16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이라 부르고, 유가족이 떼를 쓴다고 표현했다. 참사에 대한 애도를 개인화시키고 이를 지역 주민간 이해관계의 일로 치환하는 프레임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추모공원은 기본적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윤리적 기획이자 사회적 책임을 행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곧 산 자들의 정의를 세우는 일과 연결된다. 세월호참사 이후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거의 전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추모공원을 짓되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열띤 토론이 일어난다거나, 그것만으로 추모를 완결짓는 것이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거라면 몰라도, 건립 취지 자체가 왜곡되고 축소되는 모습이 벌어지는 건 사실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서 재난을 애도하는 형식이나 방법을 충분히 논의한 적이 없구나. 유가족은 유가족대로 인식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혐오를 맞닥뜨리며 고통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의 한 장면. 2018년 6월 안산. 선거 후보자가 416생명안전공원 반대 연설을 하고 있고 이를 유경근이 바라보고 있다.

유가족의 고통을 참사에 관한 은폐와 망각을 강요하는 사회적 맥락과 함께 드러내는 동시에, 애도라는 것이 그저 유가족만의 일로 남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반복되는 참사를 겪으면서도 기본적인 생명 안전에 대한 권리 감각을 체계적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외려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고 마는 우리 삶의 조건을 직시하고 함께 바꾸고 싶었다.

다만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위와 같은 당위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보다 이미 내 마음 기저에 새겨진 어떤 이미지들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팟캐스트 촬영 당시, 참사 후유증으로 녹음을 잠시 중단해야 했던 황명애가 촬영자인 내게 안부를 묻던 순간, 시차를 두고 유가족이 된 고석과 유경근이 서로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위로하던 순간, ‘정말 세월이 약이냐는 유경근의 물음에 배은심이 답하던 순간과 그 사이에 피어오르는 힘이 결국 나로 하여금 참사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이들을 굳이 다시 찾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무수한 차별과 참사의 반복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계속해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잃어간다. 개인적으로도 삶의 기본값이 상실임을 절감하던 시기였기에, 상실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지 그 방법을 간절히 알고 싶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났으므로, 자석에 끌리듯 그들을 찾아가게 된 것 아닐까.

세월을 담는 시간과 조건

스튜디오에서 만났던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기획서를 들고 찾아갔다. 참사 당시 시신 수습에 있어 큰 난관을 경험했고 현재 추모공원 조성 문제를 겪고 있는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 황명애, 끝내 진실 규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안전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고석,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이끌어왔던 배은심과 팟캐스트의 진행자였던 세월호참사유가족 유경근을 섭외했다. 참사의 내용에 있어서도 연결지점이 있었지만, 그들이 각 사건과 현재의 활동 중 계속해서 질문하고 성찰하며 변화하는 지점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 넘나들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2018년 초 팟캐스트 촬영을 시작으로 약 3년간 촬영을 했다. 다만 갑작스러운 역병의 시기를 거치면서 촬영을 중단한 시기도 있었다. 영화의 특성상 대구, 광주, 안산 등 여러 지역을 오가야 했는데 한동안 이동 자체를 삼가야 했기에 그 지점이 좀 힘들었다. 그 기간에 우선 편집을 시작했고 20년 중반부터 다시 촬영을 재개했다. 추가촬영을 병행하며 1년 정도를 편집을 포함한 후반 제작 기간으로 보냈다.

사실 촬영도 촬영이지만 그 기간에 또 한 가지 어려웠던 지점은 제작비 확보였다. 아무리 좋은 기획 의도와 마음이 있다 해도, 자본이 없으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가장 큰 인건비부터 시작해서 각종 진행비, 장비 구입 및 렌탈비, 여러 지역을 오가다 보니 교통비도 만만찮았다. 다행히 나의 경우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이라는 영상활동가 제작지원사업이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제작지원사업로부터 일부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어 큰 어려움은 면했지만, 그 또한 4년간 작업을 이어나가기엔 부족했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별도로 내 생계를 위한 일들을 병행해야 했는데, 집중을 요하는 편집 단계에서 두 가지 일을 다 해야 하는 게 실은 가장 어려웠다.

흔히 독립다큐멘터리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압력에서 큰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경우도 종종 발생하지만[각주:3] 일상적으로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앞서 언급한 제작지원사업들도 실은 그 수가 몇 안 되기에 아무리 해당 작업이 좋은 의도와 내용을 잠재하고 있다 해도 제작에 있어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곧잘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 없으면 사람이라고 했던가...)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스텝들뿐만 아니라, 다른 독립다큐멘터리 동료들과 작업 내용, 제작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운 점 등을 공유하고, 때때로 장비도 대여하며, 제작비로 감당되지 않는 부분을 품앗이와 같은 형태로 해결했다. 특히나 장편 연출을 처음 하는 나로서 어려운 지점이 더 많았는데 그렇게 함께 고민을 나눈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됐다.

세월을 사는 동력

여러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촬영 과정에서 담은 순간들이 작업뿐만 아니라 내 삶의 동력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촬영본을 수백번 돌려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잃는과정이었다. 녹취록을 읽는 것이 뭔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잃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말을 따라 참사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고, 이후의 폭력 앞에 세워지며, 공허한 마음을 견뎌야 했다. 상실된 존재의 흔적을 돌보며, 내가 안은 존재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다는 건,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연출자로서 출연자들과 일정 정도 거리감을 유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과몰입될 때 종종 참사 현장에 있는 꿈을 꾸었고, 한동안 내 꿈의 주요 등장인물과 내용은 유가족들과 인터뷰 내용이었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쉽지 않았는데, 하물며 실제 당사자들은 어떠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힘들기만 했을 것 같은 시간이 어떻게 동력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이들의 서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팔로우하는 곳곳에 존재하던 연대자들이 그들이 고립되는 일을 막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곁에 서 있던 다른 유족들의 존재 또한 커다란 힘이 되었다. 세월호 어머니들에게 오월 어머니들이, 유경근에게 배은심이, 고석이, 황명애가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다. 인터뷰 촬영 중 유경근이 참사 초기 광주에 내려갔을 때 경험을 말하며, 오월 어머니들이 세월호 어머니들을 안아줄 때 느꼈던 감동을 말하는데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던 것이 기억난다. 세월호가 518과 무슨 관련이 있냐며, 세월호가족이 광주에 왜 내려가느냐며, 연대보다 고립을 강요하던 사회적 시선 속에서, 먼저 다가와 내가 다 안다며 상처입은 자신들을 안아주는 이들을 느낀 그 순간이, 그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 곁에 다가와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나와 함께 일어서 나아가 줄 누군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내게도 큰 힘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세상의 끝에 서는 날이 올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말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다만 그렇게 오롯이 희망의 전도사 역할만을 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변하지 않는, 바뀌어야 할 문제도 있으므로. 반복하자면 주인공들은 모두 시차를 두고 유가족이 된 이들이다. 그 말은 2014년 세월호참사로 유가족이 된 유경근도 지금은 1999년 씨랜드화재참사 유가족 고석과 나란이 앉아서 참사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99년 당시에는 뉴스 보도의 시청자였을 뿐이었단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족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유가족들은 종종 타자화되어 마치 본래부터 유가족이었던 것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우리 모두는 참사 전날까지만 해도 그저 언제든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공통된 조건을 공유한 한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족만 잘 챙기면 가족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안전이란 건 주변 관계, 모르는 이들의 안전이 지켜져야 가능했던 것임을 절절히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았고, 스스로를 바꿔내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 뼈아픈 성찰과 변화는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한편 이 지점은 참사의 서사를,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은 가족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부터,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내 가족주의를 짚어내고 이를 넘어서는 시민사회의 책임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희망은 따뜻한 연대에서도 나오지만, 때론 냉정한 직시를 거쳐야 나오기도 하니까.

참사의 반복 가능성은 한 사회의 시공간을 관통하며 일어난다. 이전 참사의 진실규명이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사회라면, 그 기반 위에서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어제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 오늘은 내가 있는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참사가 일어나고, 참사를 수습하고, 기억하고 책임지거나 혹은 그러지 않는 조건을 함께 공유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세월 앞에 유족이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이 이런 말을 해준 적 있다. 우리는 모두 세월 앞에 유족이라고. 세월을 중의적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다만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건, 세월 앞의 유족이라는 우리의 존재 조건이다. 참사에 대한 애도 앞에서 그만 우려먹어라라는 말들이 여전히 횡횡하는 사회다. 그러나 망각하는 존재인 우리는 말 그대로 우려먹지라도 않으면 반복되는 참사 사회에서 스스로를 또다시 참사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물론 우려먹는다는 말도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그보단 안고 산다는 말이 맞겠다.

상실된 존재들을 내 안에 오롯이 들여, 성급히 봉합하여 박제하는 기억이 아니라, 되살리고 함께 살아가며 서사를 구성하는 기억으로 가져간다면.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조금 더 나은 나를, 시민을,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실된 존재를 품고 산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고 완결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바꿔낼 길을 열 수 있다.[각주:4]

참사로 인한 상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각자가 훼손된 경험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차별과 일상적 참사가 만연한 사회에서 과연 스스로 안전하고 완전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그 고통을 피하거나 부정하며 고립되지 말고, 아픔과 살아 숨 쉬는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연대는 본래 완전한 천사가 아닌 끊임없이 스스로를 잃고 훼손되는 이들이 이루는 일이다. 생명과 안전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로 가는 길에 각자의 바람을 함께 나누고 불어넣을 수 있다면 좋겠다. <세월>에 그런 바람을 넣었다. 훼손된 존재로서의 스스로를 긍정하고, 상실된 존재와 새로이 관계 맺고, 그 아픔의 감각을 되살려 타인의 곁에 서는 태도, 그렇게 기꺼이 함께 잃고, 안고 사는 삶의 감각이 모두의 마음에 실금을 내어 가늘고 깊게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영화감독 장민경

대학기업화의 흐름 속 대학에 입학한 후, 캠퍼스에서 출발해 곳곳을 오가며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2013~14년 학내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투쟁 과정을 취재하던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안녕들하십니까>를 연출했고, 재현을 연대의 방법으로만 알던 그 해,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를 연일 접했다. 한동안 카메라 드는 일을 두려워하며, 동료들과 차별에 저항할 언어와 윤리를 공부했다. 2017년 416미디어위원회에 들어가 세월호활동 기록을 시작했고,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세월>(2021)을 연출하며 재난 이후를 사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죽음과 질병을 안고 사는 삶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1. 미디어위는 세월호참사 주기마다 <망각과 기억 1, 2>, <공동의기억 : 트라우마>를 비롯한 옴니버스 영화를 제작해왔다. [본문으로]
  2. 세월호참사 4주기 프로젝트를 마친 후, 미디어위는 해산준비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1년간 미디어위 촬영본을 비롯한 기록물 아카이빙, 활동의 성과와 반성의 지점을 돌아보는 백서 편찬, 4주기 프로젝트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위력 행사 사건 대책위 활동을 진행했다. 204월 백서 편찬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본문으로]
  3. 올해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이 상영 초기부터 상영중지 시도와 압력을 받아오다 결국 상영중지 가처분 소송까지 받은 바 있다. <학교 가는 길>은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개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본문으로]
  4. 철학자 자크 데리다 유령론을 비롯한 여러 관련 이론과 책들이 있습니다. 이것저것이 뒤섞인 상태라 하나를 인용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작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애도 개념을 중심으로 여러 이론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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