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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21 가을겨울, 81호 <다시 뛰는>

바둑 한 판 두면서, 잠시 쉬어갈까요?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2. 1. 1.

편집위원 석기범

* 필자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둑을 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누가 있을까?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과 같은 바둑 전설들과 함께, 우리는 지금 신진서와 박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바둑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고 레이팅(Go Rating)‘은 올해 10월 세계 최고의 기사로 신진서와 박정환을 가리켰다. 다양한 국내대회에서 이미 5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린 신진서 九단과, 슬럼프를 겪었지만 삼성화재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박정환 九단. 한국바둑의 미래는 아직도 창창하다.

인생에서 바둑을 접해 본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년층과 노년층에게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도 했다. 부모님께 가르침을 받거나 근처의 학원, 기원을 본 사람 역시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바둑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계속되며, 많은 사람들이 유학과 연구에 매진했던 것일까?

바둑은 일종의 턴(turn)제 게임이다. 두 사람이 흑백의 바둑돌을 선택한 후, 바둑판 위에 번갈아 가며 승부를 겨루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둑판에 얻는 ‘집’[각주:1]이 많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 것 이다. ‘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만 알면 누구나 간단한 규칙으로 바둑을 둘 수 있다. 하지만 바둑의 묘미는 생각과 예측이다. 제한된 바둑판 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여태껏 수많은 수와 이론, 정석들이 연구되었으며 수 하나에 엄청난 변수가 생기기에 각 수마다 많은 시간과 생각을 필요로 한다.

물론 수를 연구할 때 바둑을 혼자 둘 수도 있지만, 바둑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진행하는 것이다. 번갈아가며 바둑판에 돌을 얹어서 상대의 바둑돌을 포위하면 잡는다는 매우 간단한 룰을 갖고 있지만, 정해진 방법이 없는 만큼 활동이 자유롭다는 것이 게임의 승부를 가른다.

바둑은 이기려고 두는 것이 아니다

바둑을 둘 때 많은 대국 설정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반집 형태의 덤이 주어지는 호선에서는 승패가 갈리게 된다. 바둑에서는 단위수가 한 집이기 때문에, 바둑판에서 ‘만들 수 없는 반집’으로 인해 대국자의 승패가 갈린다. 두 대국자의 실력이 치열한 경우에는 바둑판 위의 집이 같아 덤의 반집으로 승부가 갈리기도 한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대국이 급격히 기울지 않는 이상 이 한 집을 위해 온 힘을 쏟아 붓는다. 불계승[각주:2]을 거두거나 몇 집 차이, 아니면 반집으로 이겼을 때의 기분은 짜릿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둑을 이기려고 두는 것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둑은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내적 요소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바로 마음가짐이다. 왕적신(王積薪)[각주:3]은 그의 저서 위기십결(圍棋十訣)에서 바둑을 둘 때 명심하고 준수해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대한민국의 바둑 황제였던 조훈현은 어렸을 때 일본에서 세고에 겐사쿠 九단에게 숙식을 제공받으며 바둑을 배웠다. 바둑의 거장 우칭위엔(오청원, 吳淸源)과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를 만들어낸 세고에는 일본 바둑계의 스승으로 추대 받고 있었다. 조훈현이 일본 유학을 준비할 때 74세로 연로한 탓에 도장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고, 제자를 들일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였다.

그가 조훈현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제자로 받아들인 후 가르친 것은 ‘바둑’이 아닌 바른 마음이었다. 세고에는 엄격했지만 매몰찬 스승은 아니었다. 그는 나름대로 조훈현의 일상과 성장과정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조훈현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일부러 강아지 ‘벵케이’를 데려올 정도로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그렇게 조훈현은 먼저 마음을 배움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알파고의 등장과 바둑 혁명

그렇게 조훈현은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의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김인·조남철 국수에 의해 대한민국에도 바둑이 보급되고 발전하면서, 바둑은 한·중·일 3파전의 양상을 띄었다. 바둑의 규모와 대회가 점점 커지면서 많은 바둑학원이 들어섰다.

동시대의 다른 한편, 인공지능은 전략 보드게임의 한계에 도전해 왔다. 그 시작은 체스였다. 아무도 체스 그랜드마스터를 이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카스파로프[각주:4]가 세계 챔피언에 올랐을 때 IBM이 만든 딥 블루는, 2차전에서 복수에 성공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바둑은 왕좌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체스에 비교하여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와 변화구, 대국자들의 수읽기와 승부수, 흔들림 등은, 사람의 실력 이외에도 승패를 가르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므로, 바둑은 아직까지 인간들의 영역이었던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개발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아자 황과 구글 딥마인드 프로젝트 팀은 끝없는 노력에 이어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를 개발했다. 딥 러닝으로 1만 5천 기보를 학습했을 때, 유럽의 챔피언 판 후이 二단은 알파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중·일에는 내로라하는, 그것도 한 시대를 아우르는 바둑 기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직 미지수였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기보[각주:5]를 본 프로 바둑기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존에 연구가 되지 않은 신수들이 계속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챌린지 매치의 상대로 정상 기사인 이세돌 九단을 상대로 지목했다. 처음에는 손쉽게 인간의 승리를 예상했다. 현재 세계 2위[각주:6]인 중국의 커제 九단은 이세돌의 압승을 점쳤지만, 조심스럽게 알파고의 학습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인간, 아니 이세돌은 4:1로 기계에게 패배하였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스스로 기보를 배우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며 세계 정상급 기사를 꺾는 것은, 인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알파고를 보며 이창호 九단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그가 중시한 끊임없는 형세판단이었다. 알파고는 마치 어느 한도까지만 이기려는 모습을 보이며, 이기기 위해서 손해를 보아도 상관없는 마음인 것 같았다. 그 이후 커제 九단과의 대결에서 승부수를 던지는 커제의 대마를 잡았을 때, 알파고가 정말 사람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 알파고 대국 이후 한편 바둑 인공지능의 개발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동안 프로기사들이 신수를 탐구하며 그것을 배우고 분석했던 움직임은, 이제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연구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공지능을 통해 이전까지 연구된 수가 재평가되기도 하였다. 일명 ‘마늘모 정석’의 경우 그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화점 한 칸 협공 정석’은 조금씩 변화되기도 했다. 또한 3.3을 기반으로 한 실리 위주의 초반 움직임이 새롭게 주를 이루었다.

기사 중심의 바둑 연구는 이제 인공지능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기사들의 행마에서 어렵게 답을 구하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인공지능에게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신수에 오랫동안 연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다른 말로, 바둑판에 답이 정해진 것이다. 가장 최선의 수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바둑을 두며, 그 명목도 유지되고 있다. 왜 그럴까?

웹툰·드라마 <미생> : 앞을 내다본다

바둑을 둘 때 대국자들은 수읽기를 한다. 상대방이 다음 수를 둘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한 수에 짧게는 몇 초에서 길게는 몇 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바둑의 수는 다양하고, 우리는 몇 수에서 몇 십 수까지 내다보면서 신중하게 다음 수를 결정한다.

수읽기는 바둑의 승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수를 생각해서 두는 것은 당연시된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수를 벗어난 승부수나 변칙수 등 다양한 수들이 연구되고 개발되는 것이다. 초읽기에 몰렸을 때도 시간을 이용해 상대의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수들이 이용되곤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답을 구해주어도, 현재 나오는 모든 프로 기보는 항상 최선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 프로기사들의 연구와 위기십결에서 알 수 있듯, 바둑은 답을 구하기 위해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둑을 둘 때, 바둑 안에서 우리의 인생을 거울처럼 바라볼 수 있다, 바둑 안에서 삶을 찾아볼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바둑의 외적 요소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과 사회에서의 삶이다. 바둑을 그만두었던 한 연구생이 원 인터내셔널에 계약직으로 들어가면서 진행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 ‘미생‘은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았다. 장그래가 직장의 상황을 바둑의 용어를 사용하여 풀어내는 흥미로운 장면들은, 그가 이전에 연구생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프로의 문턱은 높고도 험하다.[각주:7] 장그래 역시 일 년에 10명 정도 선발하는 프로의 문턱에서 아깝게 떨어졌다. 한국기원 연구생을 명찰을 단 장그래의 하루 일과는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장그래는 ‘바둑’이 뭔지 알았던 사람이었다. 수많은 기보를 접하고, 변화무쌍한 바둑 돌의 움직임을 외웠던 장그래는, 무역사전과 단어집을 며칠 만에 외우고,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머리에 담아 둔다.

미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둑에서 미생이란 두 눈(집)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아직 돌들이 완전히 살아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 돌이 완전히 죽어있지 않아 살지 죽을지 모른다는 상태이다. 살리거나 잡는 것은 바둑을 두는 양 대국자들, 즉 장그래,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어떻게 바둑을 두는지에 따라 그 돌들은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아직 ‘미생’인 장그래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회사에서 고군분투한다. 전략적인 모습과 아무 것도 모르는 사회에 갓 입사한 초년생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제목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마치며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바둑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있으면 ‘미생마’라는 바둑동아리에 가입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대면 학기에서도 바둑은 비대면으로 계속 진행 가능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릴 적에 바둑을 접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어릴 적에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시작했다. 바둑 학원을 다녔을 때 기사님은 “바둑을 통해 상대방을 읽으라고, 바둑은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단지 접바둑[각주:8]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속기를 통해 빠른 수를 찾으며, 또 상대방이 실수하기를 바라며, 졌을 때도 투정을 부리고 바둑알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게 바둑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 집중하면서, 점점 인생에서 바둑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신기하게도 스스로 나와 타인의 인간 관계를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두는 나의 바둑알들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입시가 끝나고 바둑을 다시 시작했을 때, 손을 땐 지 6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더 많이 향상되었다. 마침내 바둑을 두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낸 건지, 바둑의 묘미를 깨달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둑은 더 재미있게 다가왔고 대학에 와서도 손에 습관처럼 바둑알이 잡히기도 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다. 한 판의 바둑은 한 판의 인생이다. 내가 어떻게 바둑을 짜나가는 지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 가끔씩 보이는 묘수와 악수는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은 대국자인 ‘나’에게 달렸으며, 인생에서 패배할지 승리할지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각자 완생을 위해 성찰하며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는 우리의 삶, 어쩌면 우리도 아직 장그래와 같은 ‘미생’이 아닐까?

  1. 한 색의 바둑돌이 둘러싸고 있는 빈 공간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기권했을 때 자신이 얻는 승리를 말한다. [본문으로]
  3. 중국 당나라 현종(玄宗) 시대의 명인이다. [본문으로]
  4. 러시아의 프로 체스 선수로, Elo Rating(체스 레이팅)에서 부동의 최상위권을 기록하였다. [본문으로]
  5. 바둑을 둔 내용의 기록 [본문으로]
  6. 2021년 11월 기준 [본문으로]
  7. 정보훈. “바둑기사도 칭찬하는 <미생>의 매력 포인트“. 〈오마이뉴스〉. 2014.10.25. [본문으로]
  8. 대국을 시작하기 전에 실력차가 나는 상대에게 돌을 몇 개 깔고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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