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김시원
“대화가 필요해”. 하나의 인용구가 된 이 문장은 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 이름이기도 하다. 대화가 부족한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가, 다툼이 고조되면 아버지 역할을 맡은 코미디언이 ‘밥 묵자’로 대화를 일축하는 전개였다. 평소 대화가 부족하던 가족에게 생긴 갈등이 아버지의 호통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꼬집는다. 대화는 나의 의견과 입장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또 상대방의 말을 듣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대화 덕에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합의도 이룰 수 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다툼은 흔히 ‘대화 부족’이 원인일 때가 많지 않은가.
대화의 주체가 집단과 사회로 확장되고, 주제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우리는 그를 ‘공론’이라 부른다. 사회 구성원에겐 저마다의 의견과 이해관계가 있기에 수많은 공론이 있다. 대화가 개인 간의 관계를 단단하게 하고 오해를 푸는 과정이라면 공론은 사회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공론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모두가 입장할 수 있는 공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다면 진정한 공론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공론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중앙대의 공론장은 어떨까. 학생들에게 현재 중앙대의 공론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 ‘에브리타임(에타)’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꽤 많은) 누군가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익명성과 자유로운 이용 규칙으로 대표되는 에타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각종 논란을 일으켰고, 여느 온라인 커뮤니티처럼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띠게 됐다. 익명 뒤에 숨은 이용자들은 혐오 표현도 꺼리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일베’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에타가 아닌 다른 공론장을 떠올리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학교 소식, 강의 정보, 시험 합격 수기, 아르바이트 모집공고 등 유용한 정보 때문에 에타를 향한 발길을 완전히 끊기도 어렵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비대면 학사가 시작된 작년부터는 더욱 그렇다.
에타의 공론은 건강하지 않다. 2020년 총학생회 내부 성희롱 사건, 2021년 사과대 학생회의 불법촬영기기 검사, 국제물류학과 학생회 사건[1] 등을 두고 사실 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추측성 발언이나 개인을 향한 비난이 이어졌다. 국내에서 최초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유학생들을 향한 혐오 여론이 극에 달했다. 에타의 단골 핫 토픽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대학 서열, 단과대 서열, 캠퍼스 차별 등이다. 이들은 소모적인 논쟁과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를 생산한다. 범람하는 인권 침해와 소수자 혐오 아래에서 에타의 순기능은 무색해진다. 에타에서 무질서하게 형성되는 여론과 세력은 학내 인권 의식을 저해한다. 대학의 물리적 공간 이용이 제한되며 구성원 간의 소통과 공론이 더욱 힘들어진 만큼, 새로운 대학 공론장의 건립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첫 번째, 에브리타임 해부하기
문제를 틀리지 않는 방법의 시작은 문제를 꼼꼼히 읽는 것이라 했다. 공론장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다음 공론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브리타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학생들은 에타를 얼마나 자주 이용하고, 또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학생들이 생각하는 에타의 문제는 무엇이고 유용함은 무엇일까? 중앙문화는 3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중앙대학교 재‧휴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는 총 239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에브리타임 이용률은 예상대로 매우 높았다. 239명의 학생 중 에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단 2명 뿐이었다.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능은 ‘시간표’ 기능이었지만, 커뮤니티 기능을 주로 이용하다고 답한 학생도 52.3%로 절반을 조금 넘는 비율이었다. 전공 책이나 중고 상품을 거래하는 용도도 39.1%로 높은 편이다. 그 외 기타 답변으로는 강의평 보기, 시험 합격 수기 읽기, 복수 전공 정보 공유 등으로 정보 습득의 차원에서 세부적인 용도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브리타임 커뮤니티 탭에 하루 평균 몇 회 접속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1~5회’라고 답한 사람이 73.2%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6회 이상 접속하는 이용자는 5.9%로 소수였다. 자주 접속하는 이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도합 81.2%의 학생들이 커뮤니티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 많은 학생이 가볍게 방문하는 것으로 보이며, 사용자들에게 심리적 접근 장벽이 낮은 플랫폼이라 할 수 있겠다.
높은 사용률에 비해 직접 글을 쓰는 사람의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커뮤니티 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을 제외한 194명 중 글을 작성해본 적 없는 사람이 42.8%(82명), 주 평균 1~2개의 글을 작성하는 사람이 53.6%(103명)로 소극적인 이용자가 대부분이다. 댓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에타의 절대적인 이용자는 많지만 커뮤니티 내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여론을 이끌어가는 이용자는 소수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중앙대 학생들은 에타를 대학 공론장으로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대학 공론장으로서 에브리타임이 개선될 필요를 느끼신 적이 있”냐는 질문에 70.3%의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개선할 점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혐오표현 규제 강화였다. 무분별한 신고 제도와 익명성의 악용을 지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편 앞서 ‘에브리타임 하루 평균 접속 횟수’를 묻는 7번 질문에서 커뮤니티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18.3%의 사람들 역시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유용한 정보는 없고, 커뮤니티 자정 능력 상실 및 에브리타임 사측 자체에서도 관리 부족” “혐오표현이 너무 많고, 적절한 정보를 찾기 지친다” “극단적 성향이 보여서 어울리기 힘들다. 기대했던 대학 커뮤니티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함”과 같은 답변들로 에타의 고질적 문제가 그 유용성을 상쇄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에타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에타를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점점 극단에 치닫고, 공론은 더욱 무의미해질 것이다.
에브리타임의 단점을 묻는 질문에서도 ‘혐오 발언 필터링 부재’와 ‘이용자의 익명성’이 차례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많은 학생이 ‘익명’ 뒤에 숨어 혐오표현을 남발할 수 있는 에타의 환경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론 조작의 가능성’을 단점으로 꼽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에타는 추천 수가 10개 이상만 되면 HOT게시판에 게시되는데, 소수의 이용자가 발화를 독점할 수 있어 여론 조작의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글은 전파되는 속도가 겉잡을 수 없이 빠르고, 잘못된 사실이 퍼진다면 바로잡기도 어렵다. 만약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여론이 조작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2017년 9월 발생한 일명 ‘240번 버스 사건’은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여론의 전파가 얼마나 문제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서울시 240번 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던 김모 씨는 ‘버스를 세워달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무시한 채 아이를 혼자 내리게 했다’는 잘못된 인터넷 글로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겪었다. 사건 이틀 뒤에 누명을 벗었지만, 그동안 온라인을 뒤덮은 악플로 그는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2]
‘이용자 구성의 편향성’을 선택한 사람은 13.4%였다. 정보 공유 차원의 온라인 커뮤니티라면 이용자 구성의 편향성은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공론장의 역할을 겸해야 하는 경우라면 단점이 된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카페나 비혼주의 여성들이 모인 사이트에서는 공통적으로 처한 상황이나 신념 하에 서로 유용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학내 공론장은 배제되는 이 없이 모두가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특정 집단이 공론장을 점유한다면 공정하고 유의미한 의논이 이뤄질 수 없다. 이용자 구성의 편향성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다음 응답에서 더 자세히 나타난다.
대다수가 중간값인 3을 선택하긴 했다. 4, 5(매우 심하다)를 선택한 사람은 도합 29%로 2, 1(전혀 없다)를 선택한 사람이 21.4%인 것에 비하면 조금 높은 수치다. 어떤 편향을 느꼈는지 묻자 남성, 보수적 성향, 저학년, 공과계열 학생들이 에브리타임을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는 답변이 많았다. 응답자 중 인문사회 계열, 여성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3] 이는 편향된 지각일 수 있다. 또한 이 질문의 목적은 에타 이용자에 전공, 성별, 학년 등의 편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에타에 특정 집단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 공과계열 전공 학생들이 에타를 점유하고 있다는 인식은 보편적이기도 하다. 아래의 글을 보자.
이 글은 ‘정시 전형’으로 ‘서울캠퍼스’에 입학했으며 소위 ‘취업이 잘 되는’ 학과 소속이고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에타에서 벌어지는 과격한 논쟁들에 휘말릴 일이 없다는 의미다. 누군가 “컴전화기 정시 군대갔다옴”이라는 댓글을 달자 글쓴이는 “’무적’이네”라는 답 댓글을 달기도 했다. 반대로 인문사회계열 전공, 안성캠퍼스 재학생, 페미니스트는 공격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다수로 인식되는 집단이 공론장 내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갈등을 관망하며 비교적 쉽게 자신의 의견과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장석준 교수는 해당 결과를 온라인 게시판의 익명성이 가진 모순으로 분석했다. “구성원들 간의 선유경향[4]과 편견에서 오는 현상으로 해석되고, 따라서 온라인 게시글 및 포털 댓글을 다수 의견으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라는 말도 덧붙였다. 따라서 에타의 극단적으로 편향된 여론을 중앙대학교 다수의 의견으로 확장해서 인식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타가 유일한 공론장인 현 상황이 더욱 위험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뮤니티 기능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4, 5(매우 그렇다)를 선택한 응답자들은 대부분 ‘정보 공유’의 차원에서 유용하다고 답변했다. 복수전공, 취업 등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특히 입학 이후 학교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기회가 없었던 많은 20‧21학번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정보가 있는 에타의 커뮤니티가 유용하다고 답변했다. 16번 질문에서 저학년 편향을 인식한 학생이 많은 것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두 번째, 똑바로 바라보기
이렇듯 에브리타임은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 상대방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표현들이 익명의 힘을 얻어 마음껏 표출되는 곳인 동시에 학생들의 정보 공유 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대면 학사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에브리타임에서 얻고 있다.
이지우 학생(경영 2)과 김창은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 2)은 일명 ‘코로나 학번’으로 학교에 대한 정보 격차를 느낀 적이 있다. 이지우 학생은 학교 행사, 동아리 홍보, 강연 등과 관련된 정보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듣고 싶었던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늦게 접해 신청을 놓치는 일도 있었다.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은 에브리타임이나 학교 홈페이지였다. “학교 정보를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곳은 에브리타임이라고 생각해서 이용했습니다. 또한 장학금이나 학사일정, 여러 대외활동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확인하는 편입니다.” 이지우 학생은 에타의 동아리‧학회 게시판에서 모집공고를 자주 보며, 실제로 에타를 통해 가입한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익명으로 활동하는 에브리타임의 특성상 본인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경우가 많아 학우들 간 여러 갈등이 오갈 때가 있”으며 그로 인해 “약간의 불쾌감을 느낀 적이 있어 동아리, 학회 홍보 게시판 외에는 잘 보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회에 합격한 이후로는 학회 활동을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에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김창은 학생은 수강신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부의 졸업 학점이나, 필수 교양, 교수님의 강의평, 수업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이라면 오리엔테이션이나 선배와의 교류로 정보를 얻었을 테지만, 그러지 못해 수강신청이 어려웠다. 김창은 학생이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처음으로 찾은 곳은 학교 홈페이지였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알기 어려워 결국 에브리타임을 찾게 됐다고 했다. 김창은 학생은 주로 듣고 있는 수업의 정보, 학부에서 일어나는 일, 학생 자치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기 위해 에타를 사용한다. 특히 선배들을 만나기 전인 1학기 초에는 학생회가 만든 질문 카톡방이 있었으나, 실명 시스템으로 인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에타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창은 학생은 “어그로성 글에 대해 피로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언가 관심이 가고 위급하다고 생각한 게시물을 막상 클릭해 보면 아무 관련 없는 내용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에타에 접속하는 횟수도 작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줄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신입생 때는 정보가 많이 부족했고, 학교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에타에 자주 접속해 정보를 얻곤 했”지만 학생회, 동아리 등을 하게 되며 들어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두 학생 모두 공론장으로서 에브리타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지우 학생은 에타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며, “공론장은 모든 학생이 의견을 내고 그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창은 학생은 에타가 “비대면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데에는 분명히 효과적”이지만 “정보 전달과 학내 공론장은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에타 이용자들은 부정적인 말투로 생각을 표현하며,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비난하기 바쁜 탓에 토론을 거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에타의 “선정적으로 여론을 조작해 학우들의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에타가 중앙대 전체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더라도, ‘HOT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만큼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브리타임의 양가적인 특성은 크게 세 가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 정보를 얻기 위해 에타를 이용했다가 내부의 의견에 동화되어 함께 극화된다. 둘째, 에타에 피로감을 느껴 아예 에타를 떠나고 정보를 얻는 것을 포기한다. 셋째, 에타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적당히 무시하면서 찾고 싶은 정보만 얻는다. 첫째의 경우 에타를 '선점'한 분위기에 큰 영향을 받은 신규 이용자들이 에타의 편향성을 재생산해 집단이 더욱 극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와 셋째는 발언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한 상태다. 어쩌면 첫째보단 둘째가, 둘째보단 셋째가 낫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학생들의 공론 경험 부족을 야기한다.
우리는 어떻게 공론하는지 모른다
이번 학생총회를 보자. 〈프로젝트 탈곡기〉가 학생들의 연서명을 받아 4월 6일 소집된 학생총회는 8년만에 찾아온 공론다운 공론이 열릴 기회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3159명이라는 개회 정족수가 채워지지 못했다. 총학생회장이 무산을 선언하자,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이대로 흩어지기 아쉽다’는 의사진행발언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이후 학생총회 홍보 부족과 진행 미숙에 대한 지적뿐만 아니라 학생자치 전반에 대한 자유 토의가 이어졌다. 이때 에타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재밌다는 감상부터 특정 발언자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도 있었다. 흥미진진한 현장을 보러 오라고 하거나 정족수를 채울 수 있도록 한 명이라도 더 모이자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 덕에 1000명가량의 사람이 공론장에 입장했고, 다양한 의제에 대한 토론이 4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 날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심도 깊은 논의를 주도했기에 최근 중앙대 공론장 역사에서 가장 유의미했다. 3월 31일 총학생회가 주최한 1분기 간담회에 30명 남짓이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이에 에타가 한몫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총회 당시를 자세히 떠올려보면 에타의 한계점은 다시 분명해진다. 토의 진행 초반에는 ‘학교 다니면서 이런 건 처음 본다’, ‘학교에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 많았구나’와 같은 감탄 어린 글이 총회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특히 토의를 주도했던 학생의 전공이나 특정 발언을 따서 이름을 붙이고 그를 추앙하며 ‘누구 말하는 거 보러 와라’는 식의 글도 많았다. 학생총회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에게 왜 학생총회가 열렸는지 설명해주는 글도 속속 올라왔다. 총학생회가 간담회 및 학생총회의 속기록을 준비하지 않고 총회를 충분히 홍보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에타에서도 총학생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토의 주제가 총학생회의 성평등위원회(성평위) 검열 논란으로 넘어갔을 때, 발언을 주도했던 학생들이 성평위를 지지하고 나서자 이들을 추앙하는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앞서 말했듯 에타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용자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고, 성평위는 매번 공격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2019년 성평등위원회의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5] 사업을 반대하는 여론이 에브리타임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사업이 중단됐던 사건도 있다. 심지어 당시 한 이용자는 FOC 사업의 기획안 일부와 성평위 구성원의 실명, 연락처를 게시했다. 성평위뿐만 아니라 정치국제학과 학생 대표자의 실명까지 거론됐고, 이들을 향한 모욕과 비하발언이 쏟아졌다.[6] 학생총회에서 성평위에 대한 토의가 진행되자 에타 이용자들은 이 사건을 다시 언급하며 ‘성평위는 아직도 저러고 있냐’는 식의 조롱하는 여론으로 넘어갔다. 결국 총회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한 사후 토론도 흐지부지 됐다. 사람들이 들어와야 유효한 의결을 할 수 있다는 정보가 퍼지는 데에 에타가 유용했을지라도, 공론장이 되기엔 역부족이라는 결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5월 10일 소집된 2차 총회에서는 에타의 문제점이 보다 확실히 드러났다. 2차 총회에서는 총학생회장이 유예시간 동안 참석자의 채팅과 마이크 활성화를 차단했다. 1차 총회처럼 자유 토의가 시작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 것이다. 다시 활성화될 것 같았던 공론은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프로젝트 탈곡기〉 구성원과 몇몇 학생 대표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총학생회가 모여 있는 강의실로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도했으나, 총학생회는 진행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이에 학생들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고, 총학생회 스태프가 그를 막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에타의 여론은 어땠을까. 총학생회장이 회칙 상 유효한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진행 방식을 결정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에타에서는 총학생회가 발표한 입장문 중 스태프가 다쳤다는 말에만 온 관심이 쏠렸다. 또한 강의실을 찾아갔던 학생 측에서도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폭력 시위’를 시작한 건 학생들이라며 모든 잘못을 일부 학생들에게 돌렸다.
결국 에타는 공론의 기회가 아니라 그 현장에서 있었던 자극들에 집중했다. 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보다 이슈만을 가볍게 소비하는 양상이었다. 에타에서만 학내 공론을 체험했다면, 제대로 공론하는 법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공론장이 필요하고,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상상하기
에브리타임은 공론장이 아니다. 공론장이 될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공론장이 필요하다. 우선 모두가 입장할 수 있는 공론장이 되려면 혐오표현 규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앞선 설문 결과에서도 혐오표현은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인식한 문제였다.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지난 해 9월 대학 온라인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F5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를 펴냈다. 해당 가이드는 “이제 강의마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캠퍼스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온라인 상의 혐오표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학내 소수자 구성원들의 정당한 권리가 계속해서 침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혐오표현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 언제나 돌아오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반론은 공론장에 입장할 수 없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7]
혐오표현 규제는 단순히 혐오표현을 쓰는 이용자에게 제재를 가하고, 플랫폼 내 시스템을 통해 혐오표현의 노출을 막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모든 구성원이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내뱉은 혐오표현이 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며 공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공론장은 각자의 발언을 책임져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익명의 온라인 공간은 내가 제시하는 의견이 정확한 사실과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누군가를 지나치게 비난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구속력이 없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장석준 교수는 “한국의 경우 유교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교육과정에 남아있어 자기표현 방식의 부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오프라인 토론문화의 부재는 한국 온라인 게시판의 활성화를 촉진”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활성화의 전제 조건은 익명성이다. 즉, 오프라인에서 체면과 논리적 토론 능력 부족으로 억눌려 있던 소통 욕구가 온라인에서 익명성에 기댄 해방구를 찾아가는 것이다.
담론 윤리의 대가 하버마스(Habermas)가 제시한 공론장은 이성적이며 합리적 토론을 바탕으로 여론이 도출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비이성적 공론장을 주장하는 포스터(Poster)는 사람들의 일상적 담론이 항상 이성적일 수 없으며 토론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반드시 합의에 이르는 것도 아님을 주장했다. 비합리적 담론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장석준 교수는 이런 포스터의 견해에 따르면 “에브리타임에서의 비이성적 현상도 일종의 공론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학문의 영역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의 공론장에서는 하버마스의 이성적 공론장이 형성되었으며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즉, 비이성적이더라도 공론장으로 볼 수 있으나 대학에는 이성적 공론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비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은 지양되고 합리적인 논의로 대학 커뮤니티의 문제점 및 고민을 이야기하며 그 해결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공론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름을 인정하고, 순화된 언어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을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군중(crowd)이나 대중(mass)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신의 품격으로 돌아옴을 깨닫는 공중(public)이길 바랍니다.” (장석준 교수)
지난 4월 중앙문화의 메일로 ‘에브리타임’ 관련 제보가 왔다. 제보자는 에타의 시간표 기능과 강의평가 열람 기능만 사용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 다른 학과의 게시판에 글을 작성했다. 이용자들이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어 앞으로 에타를 다른 학과 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총회 이후 성평위를 두고 이어진 논쟁을 보며 생각은 바뀌었다. 여성혐오적 의견이 ‘주류처럼' 보이는 커뮤니티였다. 제보자는 ‘성평위가 왜 필요하냐’고 물으며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글에 ‘Room237’이라는 닉네임으로 댓글을 달았다. 한동안 무의미한 설전이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익명의 이용자로부터 원색적인 욕설이 담긴 쪽지를 받은 것이다. 제보자는 ‘에타 이전에는 여러 커뮤니티가 있었겠지만 에타는 시간표와 강의평가 기능 덕분에 대체 불가능한 주류 커뮤니티가 되었고, 동시에 관리, 감독, 규정이 가장 허술한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회의감이 들면서도, 활용한다면 충분히 유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냥 에타를 '없는 존재'로 여기고 고민을 멈추기 어렵네요.” 제보자가 메일 말미에 남긴 말이다.
무너진 공론장을 더는 외면하면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 막막함을 느끼고, 서로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공론장을 찾게 될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공론인지, 새로운 공론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공론장에서는 자신의 발언을 책임지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발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 책임을 나눠 지고 있다. 우리는 대화가 필요하다.
[1] 국제물류학과 학생회가 코로나로 인해 폐쇄된 과실을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 학생회 측은 사과문을 게시했으나 방역수칙 미준수 의혹, 비대면 면접으로 인한 과실 사용의 불필요성 등 논란이 이어졌다.
[2] 〈중앙일보〉, “240번 버스기사 “죽어도 악플 남는 게 두렵다””, 18.03.19.
[3] 남성 22.6%/여성 73.6%/명시 안함3.8%, 인문 39.3%/사회과학 35%/예술 19%/경영경제 2.51%/창의ICT공과 0.84%/소프트웨어 0.42%/공과 0.84%/사범 0.42%/간호 0.42%/생명공학 0.84%/예술공학 0.42%/알수없음 0.42%
[4] 사람들이 특정 사실에 대하여 미리 갖고 있는 선입견.
[5] 당시 성평위가 여러 단위에서 성평위를 신설하고 운영할 수 있게 실무적인 도움을 주고 연대하며 학내 젠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고자 했던 조직이다.
[6] 〈중앙문화〉 77호 ‘사이버 대학’, “알파위키”, 2019.12.
[7] 유니브페미 F5프로젝트, 「캠퍼스 혐오표현 새로고침 가이드」, 유니브페미(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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