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김시원
앞선 기획을 넘겨받아 공론장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 공론장을 새로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층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제대로 된 언론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학언론의 상황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중앙문화는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고,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5월 8일 저녁 7시, 중앙문화와 경희대학교 방송국 V.O.U., 대학알리, 동아대학보, 서울대저널이 화상 회의 플랫폼 ZOOM에 모여 현 대학언론의 관습과 태도를 성찰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갔다.
안녕하세요. 각자 소속되어 있는 대학언론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V.O.U. 윤다혜: 경희대학교 방송국은 1957년에 개국했고요, “여기는 정성을 다하는 경희대학교 대학의 소리 방송입니다”라는 구호가 있어요. 아나운서부, 엔지니어부, PD부, 보도기자부 이렇게 4개의 부서가 있고, 현재는 오디오 방송과 영상 방송을 업로드하면서 학생과 학교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알리 차종관: 저희는 “대학생이 대학생을 대학생에게 알리다”라는 슬로건을 두고 있어요. 2013년 외대학보의 편집권 침해 사건을 계기로 창간됐던 외대알리가 2019년 초에 대학알리라는 새로운 독립언론으로 재창간되었어요. 학교에 소속된 학보사라는 한계를 넘어서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실현하려고 해요.
동아대학보 박주현: 동아대학보는 1948년에 창간을 했고, 지금 73주년을 맞았어요. 연세춘추, 고대신문과 같이 대학언론 1세대로서 역사를 자랑하는 학보라고 소개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서울대저널 홍서현: 서울대저널은 “진보를 일구는 참 목소리”라는 슬로건으로 형성된 저널이고, 올해로 26주년을 맞았어요. 저희는 다양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부서는 학원부, 사회부, 문화부, TV부 이렇게 네 개로 운영하고 있고, 주로 네 장짜리의 긴 기사가 실린 잡지 형태로 발간합니다.
어떤 계기로 대학언론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최근에는 어떤 기사를 쓰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동아대학보 박서현: 저는 우선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기자의 꿈이 있었고, 대학 졸업 이전에 직접 발로 뛰며 기사를 작성해보고 싶어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최근 저희가 5월호를 발행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대학 정책 진단 기사와 입결에 관한 기사를 실었어요. 모두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교육 정책과 관련된 기사죠. 또 부경대신문과 함께 부산 공동 취재단을 꾸려 대학 교육 정책이나 대학 교육 역량 진단 기사를 작성하고 있어요.
중앙문화 권혜인: 저도 처음엔 기자의 꿈이 있었어요. 학내언론 활동을 하고 싶어 어디를 들어갈까 찾다가, 좀 더 품이 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중앙문화에 들어오게 됐어요. 또 학과 비상대책위원회에 있을 때 처음으로 학생자치 상황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모든 학생이 자세한 학생자치 상황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학내언론 활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등록금 반환과 장애학생 교육권을 주제로 기사를 썼어요.
V.O.U. 윤다혜: 제가 입학했을 당시 입학식에서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분을 보고 방송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최근에는 ‘포에드라마’라고 시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어 편집하고 있어요. 보도기자부에서는 미술 대학에서 있었던 실기실 사용 문제, e-캠퍼스 오류, 장학금 의제 등 교내 문제를 중심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대학알리 황치웅: 으레 그렇듯 기자를 하고 싶어서 학보사 활동을 했어요. 현재 대학알리에서는 사무국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작년에 조대신문에 있을 때는 3~4월에 총선 기획 3부작을 썼어요. 정치기사와 대학, 청년을 합쳐서 기사를 써보면 어떨까 해서 쓴 글이었죠. 이 기사로 시사인 대학기자상을 받았고, 이후 대학알리에 영입되었어요.
서울대저널 홍서현: 저는 사실 기자라는 꿈은 없었지만,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생각으로 저널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지난 호에는 탈성매매를 주제로 성매매 업소에서 실제로 어떻게 돈이 굴러가고 있고, 그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자발과 강제의 경계에 놓여있는지 살피는 기사를 실었어요. 이번에 발간된 166호에서는 트렌스젠더 퀴어 노동자라는 주제로 커버 기사를 썼어요.
대학언론의 위기를 말하기 전에,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생각하는 대학언론이 필요한 이유와 대학언론의 역할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대학알리 차종관: 기성언론이 대학까지 포괄한 사회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왜 대학언론이 필요하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죠. 하지만 대학 사회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생각해보면 대학언론은 더욱 필요한 것 같아요. 일반 학생, 학생자치기구, 대학 본부, 학교와 주민 상권, 청소노동자 이런 사람들이 대학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살아 숨 쉬고 있잖아요. 작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에 언론이 없다면,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알 권리와 목소리는 보장받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알리 홍지희: 상반되는 의견일 수 있는데, 가끔 대학언론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공회전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 주관이고 추측인데,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권,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 모인 학문의 전당’이라는 의식이 언론의 필요성을 합리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없어야 한다는 건 아니고, 그 큰 사회에서 말할 창구가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는 이런 부분을 인식해야 대학언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대저널 홍서현: 저는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 대학언론의 역할이 뭔지 정말 진지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었나 생각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대학언론의 위기랑도 연결되는 이야긴데, 서울대저널 내에서도 대학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서울대저널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면접 때 ‘대학생이 견지하는 관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대학언론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많이 하는데, 그게 충분하냐는 생각은 계속 들어요. 그래도 대학언론이 있는 이유는 저희가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를 고민하고, 기성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저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라는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거죠.
대학알리 홍지희: 대학생이 대학생의 문제를 잘 포착할 수 있고 기성언론과는 다른 관점을 견지할 수 있다는 명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당사자로서 학교의 일들을 잘 알 수 있겠지만, 핵심적인 주제나 가치에 대한 관점을 보면 기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현실인 것 같아요.
V.O.U. 윤다혜: 사실 경희대 방송국이 있다는 걸 모르는 학우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그게 항상 고민이었어요. 아무도 모르는데 왜 필요할까? 선배들이 만들었고 몇십 년 동안 이어졌으니까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그래도 대학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있는 사람,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저희밖에 없더라고요. 특히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총학생회장이 등록금 반환 때문에 본관에서 무기한 대기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소식을 저희가 말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모르잖아요. 그걸 전달하면서 이게 방송국의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아대학보 박주현: 저희도 이전까지는 그냥 70년의 역사가 있으니까, 그걸 이어가기 위해서 학교가 던져주는 소식을 받아 적고 흥미 위주의 기사만 작성했던 것 같아요. 제가 편집국장이 되고 나서도 선배들은 학내기사보다는 기획기사에 더욱 치중하라고 말했죠. 하지만 대학언론이 학내기사에 치중을 안 하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많잖아요. 예를 들어 청소노동자, 버스 기사와 같은 분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저희밖에 없어요. 학내언론은 그런 사각지대에 있는 구성원들을 조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아대학보 박서현: 지금 대학생들은 에브리타임과 같은 대학 커뮤니티에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잖아요. 제가 에브리타임 분석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전수조사를 해보니까 혐오표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사진을 도용해서 우리 학교 사람이라고 속이는 게시글도 있었어요. 이런 도용 문제를 포함해서 허위사실이 매우 많다고 느꼈죠. 이런 정보들 사이에서 팩트체크를 할 수 있고 심층취재를 할 수 있는 게 대학언론이라고 생각해요.
동아대학보 장유진: 말씀하셨듯이 에브리타임이라는 정보 공론장이 있는 차원에서 대학언론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만약 대학언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봤어요. 정보의 장이라고 하지만 그 정보들이 진실과 가깝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대학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고 구성원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내가 해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대학언론 구성원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서울대저널 홍서현: 작년 N번방 사건 관련해서 성명문을 어떻게 낼 것인지 연석회의가 열렸는데, 여러 논란 때문에 회의가 엄청 길어졌어요. 저도 밤새 회의 속기하고, 이 회의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우리가 이 이슈에 대해서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기사를 썼죠. 저는 그때 ‘내가 학내언론에서 활동하는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지금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하는 일을 기사에 담았던 게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중앙문화 김시원: 제가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에 관한 기획을 쓴 적이 있어요. 신 캠퍼스 사업 실패와 무리한 정원이동의 후유증이 안성캠퍼스에 남아있거든요. 학생들은 기본적인 건물 보수나 행정부처 균형화 등을 꾸준하게 요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어요. 이런 내용을 담아 기사를 썼는데, 어떤 안성캠 학생분이 기사를 보시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준 것 같다’고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리신 걸 봤어요. 그때가 가장 뿌듯했고 내 글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V.O.U. 윤다혜: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은 학내 소식을 취재했을 때, 그리고 누군가 영상을 보고 에브리타임에서 ‘방송국에 이런 영상 올라왔는데 봤냐’ 이렇게 말할 때인 것 같아요. 작년에 총학생회와 학교 본부가 등록금 반환 관련 회의를 여러 번 했는데, 저희가 촬영을 해서 보도를 했거든요. 사실 저희는 등록금을 반환할 수 없는 이유가 납득되면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저희의 영상을 본 학생들이 ‘학교도 나름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반응을 조금이라도 했을 때 학교랑 학생을 연결해주는 키가 된 것 같아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학알리 차종관: 단국대에서 독립언론을 하던 시절 한 제보를 받은 적이 있어요. 자신이 1년 동안 일하던 학교 앞 업체에서 불법촬영을 당한 이야기를 알려달라는 제보였어요. 곧장 제보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지요. 저희는 그분의 익명을 완전히 보장한 채로 학내에서 건강하게 해당 이슈를 공론화하는 것에 성공했어요. 추후 가해자 역시 학교에서 퇴학 조치가 되었죠. 다른 학내언론이라면 이런 것을 학교 이미지 나빠진다며 싣지 못했을 겁니다. 학교로부터 독립된 언론이기에 피해자분과 함께 연대해서 어떻게 가해자에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경찰 신고와 검찰 기소까지 지켜볼 수 있었어요. 기자이기도 하지만 활동가에 가까운 일을 하기도 한 셈인데, 이 기억이 제일 뿌듯합니다.
동아대학보 박서현: 작년 12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는 ‘비대학 청년’ 기획기사를 냈어요. 저는 평소 제 또래를 만나면 너무 자연스럽게 ‘어디 대학 다니냐, 전공이 뭐냐’ 물었고 상대가 대학생이 아닌 걸 알았을 때 상당히 무안했던 경험이 있어요. 대학 친구들 중에서도 대학 공부가 너무 안 맞아서 자퇴한 친구들도 있었고, 취업하고 싶어서 진학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남의 일이라 느껴지지 않았어요. 취재하면서 기성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청년 담론이 얼마나 대학생 중심인지 느낄 수 있었고, 또 대학생들은 대학 커뮤니티가 있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들은 네트워크 형성이 잘 되어있지 않아 소통이나 정보 습득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독자 위원분들도 저랑 비슷하게 또래 사람들을 만나면 어느 학교 다닌다고 말했었는데, 기사를 읽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해주셔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동아대학보 장유진: 저는 올해 3월 대학가 상권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상인분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아드렸어요. 또 각 영업장에 일일이 방문을 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상인분들께서 영업이 어렵지만 학교가 쉬기 때문에 이걸 말할 창구가 없었는데, 저희를 통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게 되면서 ‘속이 편해진다’라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그런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저희 대학언론에서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죠.
대학언론은 왜 위기일까요? 활동하시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V.O.U. 윤다혜: 일단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인지도도 떨어지고요. 학교에 직접 가면 교내 스피커를 통해서 라디오를 들을 수 있지만, 요즘은 학교에 제대로 갈 수 없잖아요. 이런 시기에 저희의 방향성을 설정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또 학교 측에서는 계속 예산을 계속 삭감하려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저희가 감사를 받았는데, 방송제작비라고 해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은 일정한 금액을 받거든요. 이렇게 받을 수 있는 돈이 점점 줄어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중앙문화 김시원: 대학언론의 위기는 많은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회의 위기, 학생자치의 위기와 같은 말이 나온 지도 꽤 됐잖아요. 크게 보면 학생사회의 위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원인에 학생들의 문제도 있지만, 대학 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이후로 학생사회가 공동 의제를 상실했다고 하는데 사실 지금 대학의 구조를 봤을 때 민주적이냐고 하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거든요. 이런 분위기에서 저희는 독자를 잃고, 신입 기자들도 잃게 됐죠. 내부적인 것 중에는 재생산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저희 스스로 역량을 기르기도 어렵고, 전수하는 과정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대학알리 차종관: 아시겠지만, 위기 원인은 복합적이에요. 그래서 무엇이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왜 위기가 지속되는지는 알 것 같고, 이는 대학언론이 자초한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언론이 왜 필요한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선배들이 하던 일을 관성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취재 중 교직원으로부터 학보사 기사 질이 낮아져서 챙겨보지 않게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왜 위기냐’보다 ‘왜 아직도 위기냐’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현재 상황은 위기를 넘어서 소멸과 붕괴로 가고 있거든요. 다른 대학언론들과 함께 모여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대학알리 홍지희: 말씀하신 대로 대학언론의 위기는 오래됐어요. 언론끼리의 네트워킹이 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은 있는데 그것이 의제화되지 않고,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거죠. 언론이 너무 독자만을 생각하는 것도 좀 문제가 있다고 봐요. 독자를 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대학언론도 학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정체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학교를 보고 있는 관찰자 정도의 역할에 머무르려고 하다 보니까 학내 구성원들과 연결 고리가 부족한 것 같아요. 교내 다른 주체들을 더 떠올려봤으면 좋겠고, 학교에는 대학생 독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의제도 다양해질 수 있어요. 지금의 탈정치와 기계적 중립을 외치는 관점은 실패했으니 언론인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의식을 반성하는 게 먼저가 아닌가 생각해요.
동아대학보 박주현: 주변 친구들에게 ‘왜 학보를 안 읽냐’고 물어본 적도 있는데, 저는 일단 요즘 20대들이 활자를 안 읽는다고 생각해요. 대신 뉴미디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죠. 그래서 저는 지면 발행은 교직원 대상, 모바일 콘텐츠 발행은 학생 대상으로 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원이 너무 부족해서 이뤄지기 어려워요. 또 다른 어려움은 편집권 침해인데, 저희는 학교의 간섭을 심하게 받는 편이에요. 담당 교수가 학교가 예민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며 1면 기사의 헤드라인을 기사의 내용에 맞지 않게 고친 일도 있었어요.
서울대저널 홍서현: 요즘 저희 저널이 정말 위태롭다고 느껴요. 우선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오는 사람도 없고, 총학 선거도 무산되고, 단과대까지 연석회의로 돌리는 곳이 너무 많아요. 저희조차도 학내 이슈에 관심이 떨어지고 학원부를 피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학외 이슈를 더 많이 다루게 되는데, 저희는 격월간지니까 당연히 매일매일 기사를 쓰는 기성언론을 따라가기 힘들죠. 더욱 깊이 있는 기사로 승부를 보자고 하지만, 점점 학교 일을 따라잡지 못하다 보니 ‘우리가 학내언론인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사실 편집장이 공석이에요. 이 조직을 어떻게 재생산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고, 또 회의를 비대면으로만 진행하니 실제로 만난 사람도 없고 친해지기도 힘들잖아요. 우리가 대학언론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깊이 있게 토론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아요. 조직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 같달까요.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반성과 성찰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대학알리 차종관: 대학알리의 핵심가치 네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성찰이에요. 지금까지 운영하면서 별별 이슈를 겪었는데 항상 기본적인 자세는 성찰이었어요. 편집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독자의 피드백에 주목하고 그걸 두려워하는 마음이 구성원 모두에게 있어요. 지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학알리라는 새로운 언론을 창간하고,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자립과 확장을 모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게 바로 성찰이라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V.O.U. 윤다혜: 조직에 실무자가 있고 일반 국원들이 있잖아요. 사실 일반 국원들과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반성하고 성찰하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실무진들끼리는 반성과 성찰을 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원론적인 얘기인 것 같아서 아쉬운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 사실 보도부가 없어졌다가 2년 전에 새로 생겼거든요. 보도부가 방송국의 가장 중추적인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없었다가 다시 생기는 과정에서 반성했고 지금도 보도부를 좀 더 키우기 위해 성찰하고 있어요.
서울대저널 홍서현: 사실 없습니다. 반성과 성찰을 해야겠다는 성찰을 지금 하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에도 사람들끼리 조금씩이라도 만나서 이런 얘기도 나눠보고, 저널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조금 키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고요.
동아대학보 박서현: 저희는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종이 신문이 가치가 있는지, 이런 변화를 수긍해야 하지 않을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했어요. 다만 학보사에는 영상 편집을 할 인력이 없어서 에브리타임이나 페북에 세 줄로 요약한 기사와 링크를 게시해서 기사를 많이 볼 수 있게 하고, 뉴스레터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학보 배부를 할 때 전월 호가 많이 쌓여있는 걸 보면 씁쓸하죠. 아무래도 저희 조직엔 신문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욱 딜레마에 빠지는 것 같아요.
대학언론은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요? 환경이 변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현재 대학언론들의 상상력이 한계에 부딪힌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대학알리 차종관: 첫째로 중요한 건 무조건 내부 교육을 통한 역량 강화에요. 좋은 콘텐츠 제작의 기반이 될 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성장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도 있죠. 그 외에도 다채로운 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대학언론 자체적으로 위기 상황에 대한 성찰 워크숍을 가지고 혁신안을 내거나, 재정 및 행정적으로 학교로부터 독립해 학생자치언론기구가 되아 검열받지 않는 활동 환경을 조성하거나, 파격적으로 지면을 줄이고 온라인 콘텐츠 제작 방법을 배워서 매체 형태를 전환하거나, 경영 부서를 신설해서 예산을 검토하고 어디에 투자할지 논의하는 체제를 도입하는 거 등이 있겠죠. 그리고 내부의 구성원들과, 외부의 언론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해요. 무엇보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에 많이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려요. 다양한 대학언론인의 필요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실행해 지금의 대학언론의 위기가 지속하지 않고 해소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고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대학언론이 좋은 콘텐츠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서 대학 구성원들이 즐겨보는 매체가 되고, 지역 언론들과도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언론이 됐으면 좋겠어요.
V.O.U. 윤다혜: 아까 말씀드린 오디오 방송도 사실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요. 60년 동안 해왔던 걸 발전시키거나 없애려고 하니까 선배들은 ‘그거 말고 뭘 할 수 있냐’고 말하고, 학교는 ‘아무도 안 듣는데 왜 하고 있냐’고 하거든요.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유튜브에도 올려보고, 보이는 라디오를 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최근 1년 동안 생각해왔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대학알리 홍지희: (경희대학교) 구성원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좀 더 희망을 가지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상상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하셨는데, 제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이지만 가장 극복하기 힘든 부분인 것도 알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학내 조직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 동아리, 비건 동아리, 학생회 등 생각보다 재밌는 주제를 알고 있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들과 더 친해지고 연결성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동아대학보 박서현: 앞에서 많이 언급해주셨던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주저하지 않고, 겁먹지 않고, 뚝심 있게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다른 학보사 기자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학교는 기자들이 학교로부터 장학금과 예산을 받기 때문에 등록금 문제는 기사로 쓰기 어렵고 인터뷰도 안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대학언론은 학교의 공보실로 전락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해야 하죠.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취재하고 기사 쓰는 걸 넘어 평소에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통찰력을 쌓아 학내, 그 지역의 청년과 관련된 의제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런 문제의식이 독자에게 전해져야 하죠.
서울대저널 홍서현: 사실 저는 조직이 위기 상황인 만큼, 어떻게든 친해지고 시작하자는 생각이 커요. 일단 소속감이 생겨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잖아요. 같이 고민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언론의 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성찰이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되게 공감했고, 대대적인 리뉴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린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할지 노베이스로 논의해서 다시 쌓아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대학알리 차종관 대표님의 요청으로 대학알리의 답변 내용이 일부 수정 및 보충되었음을 알립니다. (최초 게시: 21.06.24. / 수정: 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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