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 문민기
편집위원 김현경
오늘도 성평위의 독립성은 지켜지지 않았다
성평등위원회를 향한 위협은 ‘오늘’도 이어졌다. 이는 3월 31일에 열린 서울캠퍼스 63대 총학생회(총학) 〈오늘〉의 1분기 간담회에서 드러났다. 총학이 배포한 간담회 자료집에서는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성평위)를 ‘산하 위원회’라고 명시했다. ‘산하 위원회’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었다. 해당 명칭으로는 성평위의 독자적인 위치를 보여줄 수 없었다. 성평위를 총학생회가 관할하는 기구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최승혁 총학생회장은 산하 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성평위와 총학 간 이견이 있을 때도 “협의를 통해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해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성평위가 2014년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특별자치기구’로 설립됐다는 학생의 말에는 당시 속기록을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총학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논의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
4월 6일, 1차 학생총회가 무산된 후 학생들 간 토의가 있었다. 총학생회장이 성평위가 SNS에 게시한 학생총회 홍보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정황이 드러나며 총학생회의 성평위 검열 논란이 일었다. 총학생회장단은 토의 끝까지 검열 사실을 부인했다. 임규원 부총학생회장은 성평위 게시물을 ‘검열’한 것이 아니라 게시물 업로드에 대한 ‘확인’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검열 논란을 시작으로 성평위의 독립성 문제가 대두되자 최승혁 총학생회장은 이번에도 “전학대회 자료집을 확인해 성평위의 지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고, 성평위와 논의해보겠다는 말로 토의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5월 17일, 전학대회 때까지도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4월 14일에 성평등위원회 위원장단과 총학생회장단 사이의 면담이 있었으나, 이 자리에서도 ‘성평위의 특별자치기구로서 지위 보장’은 결론이 나지 못했다. 총학생회장의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내부에서 논의를 더 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면담 이후 배부된 새내기 자료집에 성평위를 ‘산하 위원회’라고 표시했다. 성평위는 아직까지 ‘논의 중’이라는 말 외에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총학생회장의 성평위 탄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4년도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 폐지 후 이를 이어받아 설립된 성평위는 18년도에 회계권을 총학생회에 빼앗겼다. 성평위 사업 진행에 기반이 되는 회계 집행과 관리는 총학생회 관할이 되었다. 이전엔 한 학기 예산안을 제출해 그 안에서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었으나, 18년도 중간에 총학생회에게 카드와 통장을 넘겨야 했다. 이후 19년 총학생회 〈syn-〉 때부터 예산이 필요한 때마다 회계사무국과 연결해 일일이 결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올해엔 게시물 검열까지 맞닥뜨렸다. 총학생회장의 “자율성을 보장'해드릴' 예정”이라는 시혜적인 표현은 이미 성평위의 독립성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역대 총학생회장단은 캠퍼스 내 젠더 차별과 성폭력으로부터 학우들을 보호하는 성평위를 위태롭게 했다.
캠퍼스에 남은 건 무엇일까. 매년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 되고 있다. 견고한 젠더 위계구조 아래에서 안전한 캠퍼스는 아직도 요원하다. 중앙인의 새로운 오늘과 함께하겠다던 총학생회 오늘은 해가 뜰 새 없이 어제의 암흑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학생 자치기구 중에서 여성인권의 보호와 성평등 의제를 실현하는 곳은 총여학생회(총여)였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당시 각 대학에서는 '운동권'의 남성성과 폭력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총여가 등장했다. 중앙대에 총여가 들어선 것은 1985년이었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대학사회에서 소외받던 소수자와 여학생을 대변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총여는 활발하게 활동해왔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존폐위기에 봉착했다. 입후보자가 없어 선거 일정이 미뤄지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소집되지 못해 투표조차 이뤄지지 못하기도 했다. 1 그렇게 몇 년간 삐걱거리던 총여는 2014년 끝내 폐지되고 말았다. 총여의 공백은 길었지만, 총여의 역할은 여전히 캠퍼스에서 필요했다. 이에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던 해 전학대회에서 총여의 역할을 계승한 '성평등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중대신문을 비롯한 학내 언론은 성평위가 총학생회 산하 '특별자치기구'로 설립되었다고 명시했다. 2 3
이렇듯 성평위는 다른 총학생회 기구와 구분되는 특수성이 있다. 성평위는 총학생회와 동일한 지위에 있었던 자치단위인 총여를 잇는다. 여기에는 과거의 총여를 계승했다는 '역사성'과 학내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특수성'이 녹아 들어있다. 혹여 '산하 위원회' 라는 수식이 붙더라도 총학생회에 귀속되거나 압력을 받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자치기구의 성평등 감수성이 충분한지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인권 기구이자 '감시 기구' 라는 특성을 가진 성평위는 그에 따른 독립성과 자치권을 응당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성평위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번번이 무시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게시물 검열 의혹부터 자치권 침해까지, 한 학기간의 족적을 짚어본다.
- 게시물 검열 의혹
1차 학생총회 무산 후 진행된 토의에서 김홍윤 성평위 부위원장(국어국문학과 17)은 SNS 게시물을 검열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성평위 차원에서 학생총회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물을 게시했으나 최승혁 총학생회장(경영학과 18)이 이를 삭제하라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장은 검열의 의도가 아니었고, “산하 위원회는 총학 산하 단체이므로 회장단의 (게시물) 확인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구체적으로 총학생회장은 각 기구마다 게시물 업로드에 대한 소정의 확인 과정이 있으나, 성평위가 제작한 게시물의 경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게시되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통화를 진행했고, 그 이후에는 산하 위원회가 모인 단톡방에서 총학이 제작한 게시물을 모두 공유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의 해명은 과연 진실일까? 성평위에 따르면 검열 의혹의 자세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해당 게시물을 올리기 이전 성평위는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집행위원장, 집행차장, 그리고 5명의 위원장이 속해 있는 업로드 보고 단톡방에 홍보 이미지를 올렸다. 보고 이후 김유림 성평위 위원장(러시아어문학과 19)은 총학생회장과의 통화에서 (게시물을 올리겠다는 보고가 아니라 올려도 되는지 묻는 식으로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성평위는 4월 5일 2시 40분경 공식 SNS에 홍보물을 올렸다. 3시간 정도 지난 5시 6분경, 총학생회장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허가하지 않았는데 왜 올렸냐”며 '부총학생회장과 이야기를 해봐야 하니 게시물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총학생회장의 '성평위 위원장과 합의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일련의 과정에서 성평위와 총학 사이에는 의견의 '일치'가 없었으며, 서로간의 '의논'도 없었다. 총학의 일방적인 지시와 종용만 있었을 뿐이다.
또한 〈중앙문화〉와의 인터뷰에서 성평위 위원장은 “'특정 내용이 잘못되었으니 내리라'며 문제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압력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초에 성평위는 보고 단톡방의 목적을 업로드 여부 확인이나 일정 조율 정도로 알고 있었다. 단순 '보고' 단톡방에서 '지시'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총학은 보고 단톡방을 통한 확인 절차는 게시물의 내용 및 디자인이 자신들과 일치하는지 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성평위 위원장은 “시각적으로도 총학과의 일치성을 들었다는 점에서 (성평위의) 독립성이 훼손되었다 느낀다”고 말했다. 덧붙여 특정한 내용을 빼라는 것만이 검열이 아니라 '업로드하지 말아라', '글을 내려라'하는 등의 지시도 심각한 검열이라고 강조했다.
성평위의 SNS 게시물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었다. 지난 1월 성평위는 LG 트윈타워 여성 청소노동자에 연대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학내 성평등 담론을 이끄는 기구로서 여성 노동자와 연대하고 사회적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총학은 성평위가 사전논의도 없이 성명문을 올려 당황스럽다며 “앞으로 이런 글을 올릴 때는 상의를 미리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선 사건의 단초가 된 업로드 보고 단톡방도 이때 이후로 생겨났다.
- 자치권 침해
성평위는 게시물 검열뿐만 아니라 자치권, 인사권 침해에 시달렸다. 먼저 '이름' 논란이 있다. 성평위는 2014년 1대 〈너와나〉 성평위부터 독립적인 대수(代數)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현임 성평위의 정식 명칭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제8대 성평등위원회 〈뿌리〉이다. '8대'와 '뿌리' 라는 표현은 성평위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성평위는 매년 그들의 목표와 기조를 담아 이름을 결정한다. '뿌리'는 큰 나무의 뿌리가 땅 속에서 얽혀 나무를 지탱하는 것처럼 다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연대를 이어가겠다는 8대 성평위만의 목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은 독자적인 대수가 아닌 '63대 총학생회'를 사용하길 종용했고, “독자적인 이름을 쓰는 것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성평위 위원장은 “(이름에 담긴 방향성과 역사성에 대한 몰이해로) 중앙대의 시류를 담은 이름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성평위를 관장하려 하는 태도”라 평했다.
올해는 각 위원회와 집행국이 신입국원 모집을 함께 진행하며 성평위의 자율적인 인원 구성에도 차질이 생겼다. 기존에는 성평위가 별도로 국원을 모집해왔다. 작년 〈syn-〉 총학생회부터는 각 위원회와 집행국이 모집을 함께 진행했는데, '실무적으로 관리가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성평위는 민감한 성폭력, 인권침해 사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기에 다른 집행국보다 국원의 전문성과 가치관이 중요하다. 따라서 성평위 구성원이 지원자와 직접 만나 자질을 판단하며 국원을 뽑는 것이 적합하다. 허나 이번 '통합 모집 면접에 입회한 성평위 측 면접관은 위원장 한 명뿐이었다. 일련의 모집 과정에서 성평위의 조직 특성은 고려되기 어려웠다. 총학은 '편리함'을 방패로 삼아 성평위의 인사권을 침범했다.
더불어 성평위를 비롯한 위원회들은 선발 규모도 제한 받았다. 총학생회장이 '인원이 많으면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신규 국원을 최대 4명까지만 뽑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성평위는 젠더, 소수자 인권 사업 이외에도 성폭력 상담 창구 '우리같이'를 운영중이다. 성폭력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에, 즉각적인 대처를 위해서는 학사운영이나 임기 교체 기간과 관계없이 거의 상시로 운영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인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성평위는 국원을 업무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발하고 배분하는 독립적 인사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의 인사권 침해로 인해 성평위는 과중한 업무 부담을 떠안았다.
지난 한 학기간의 '억압'은 성평위를 궁지로 몰아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억압'이 다른 누구도 아닌 조직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총학생회장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성평위 위원장은 “대표자가 인권 의제에 대한 몰이해로 (성평위의) 권한을 축소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어긋나는 말들
"검열의 의도가 아니었다"
"성평위는 총학 산하기구이기 때문에 총학생회장에게 '보고'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학생회장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꿨다. 그가 말한 '게시물 보고'는 단순히 게시물 소식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성평위 부위원장은 4월 6일 1차 학생총회 무산 이후 진행된 토의에서 채팅을 통해 “성평위가 보고 후에 게시물을 업로드하자, (총학생회장이) '업로드해도 괜찮을까요?'라고 확인받은 후에 올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총학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게시물을 올리려면 총학생회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이 때 총학생회장의 확인 여부는 추후 게시물 수정
과 삭제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허가를 받기 위해 총학생회장의 의사가 게시물 내용에 개입될 여지도 있다. 총학생회장은 이미 한 차례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평위의 학생총회 홍보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1차 학생총회 토의 당시 총학생회가 가장 많이 지적받았던 문제는 '홍보 부족' 이었다. 성평위의 게시물이 성공적인 학생총회 개회를 도울 수 있었음에도 총학생회장은 삭제를 지시했다. 학생총회 홍보 게시물을 삭제시킬 만큼 총학생회장이 학생총회 개회보다 우선순위로 둔 것은 무엇이었을까.
회칙상 그렇다.
총학생회장은 성평위와의 면담에서도, 학우들 앞에서도 '회칙상 그렇다'는 말을 반복하며 성평위의 독자적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래는 총학생회장이 내세운 회칙상 근거들이다.
총학생회칙 제19조 (업무) ⑨ 총학생회 산하 위원회의 신설, 폐지 및 위원회 간부의 소환 및 탄핵 결정 총학생회칙 제55조 (각 위원회) ① (위치) 각 위원회는 총학생회장 산하기구로서 총학생회 각각의 특성에 맞는 업무를 분담하여 해당 업무를 관장, 집행한다. |
성평위는 18년도까지 특별자치기구로서 자체적으로 신입 위원을 모집하고 사업을 진행하며 학생사회의 독자적인 기구로 운영됐다. 19년도 전학대회에서도 총학생회 업무 보고와 총학생회 '특별자치기구 업무 보고를 분리해 진행했으며, 작년 〈syn-〉 총학이 제작한 2020 다이어리에서도 성평위를 특별자치기구라고 명시했다. 이는 성평위가 학생사회에서 '특별자치기구' 라는 지위를 인정받아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총학생회칙 제37조 (업무 및 권한) 중앙운영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업무 및 권한을 갖는다. ⑨ 총학생회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임명 동의 및 특기구 위원장, 위원 소환 및 탄핵 결정 총학생회칙 제37조 (업무 및 권한) (2020. 06. 03. 개정) 중앙운영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업무 및 권한을 갖는다. ⑨ 총학생회 집행국장과 산하 위원회 위원장 임명과 파면에 대한 동의 및 탄핵 소추, 소환권 |
20년 서울캠 총학생회 〈syn-〉은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총학생회칙 제37조 9항 개정안을 발의하며 회칙에 명시됐던 '특기구'를 지웠다. 개정 이전에는 회칙에서도 특기구'를 '산하 위원회와 구별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칙에 '특기구' 라는 명칭이 사라졌더라도 성평위의 지위 자체를 두고 의결을 하지 않는 이상 성평위가 독립적인 지위를 인정받아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회칙에 '특별자치기구에 대한 내용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다면 이는 회칙의 공백으로 개정이
필요한 부분일 뿐, 성평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회칙상 그렇다', 이 말을 다시 보면 회칙 이외에는 '산하기구' 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회칙은 학생사회를 운영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현재 총학생회 회칙은 학생사회의 근간이라고 하기에는 학생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성평위가 특별자치기구로 신설되고, 학생사회에서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 회칙에서는 특기구 관련 사항을 제정하지 않았다. 이 미비한 회칙을 보완하려는 시도는 없었고, 작년에는 '특기구' 의 명칭마저도 사라졌다. 이렇듯 〈오늘〉이 유일하게 근거로 내세운 회칙은 불완전하다.
게다가 성평위는 캠퍼스의 성평등을 위해 캠퍼스 내 조직들을 자문,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총학생회장이 해야 할 일은 회칙을 이유로 성평위가 산하기구라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성평위의 지위를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도록 회칙을 재정비해야 한다. 성평위 위원장은 “현행 회칙이 소수자 기구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인데도 회칙만을 근거로 성평위를 산하 기구로 치부하는 것은 학생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처사라고 꼬집었다.
회칙 개정을 반대하는 의장
총학생회장은 현행 회칙을 유지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5월 17일에 열린 전학대회에서는 사회과학대학 김민정 학생회장(사회학과 18)이 위원회 관련 총학생회 회칙 개정안을 발의했다.
총학생회칙 제57조 (각 위원회) 4 ① (위치) 각 위원회는 총학생회장 산하기구로서 총학생회 각각의 특성에 맞는 업무를 분담하여 해당 업무를 관장, 집행한다. 발의된 개정안 총학생회칙 제57조 (각 위원회) ① (위치) 각 위원회는 총학생회장 산하나 특기구로서 총학생회 각각의 특성에 맞는 업무를 분담하여 해당 업무를 관장, 집행한다. |
김민정 학생회장은 '산하기구로서' 부분을 '산하나 특기구로서'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성평위, 장인위와 협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 전학대회가 9~10월에 소집되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그 전까지 두 기구의 위치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총학생회장이 성평위 게시물에 개입한 선례가 있는 상황에서 개정 전까지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가 있다”며 해당 안건이 통과돼 특별자치기구 활동이 보장됐으면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총학생회장은 전학대회를 대표하는 의장임에도 해당 안건의 반대 토론자로 나섰다. “위원회 간 상호 논의가 진행됐으나, (논의 결과가) 정립되지 않았”다며 '특별자치기구' 라는 명칭을 수용하지 않았다. 덧붙여 "1차 학생총회 무산 이후 토의에서 총학생회장단이 학우분들께 약속을 드린 바와 같이, 일전에 진행되던 보고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음을 밝혔다. 토론 후 개정안에 대한 의결이 진행됐고, 해당 개정안은 부결됐다. 총학생회장은 “회칙이 개정되지 않아도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독립성 보장을 회칙이 아닌 총학생회장의 판단과 도덕성에 근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수차례 성평위 독립성을 훼손해 온 총학생회장의 발언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인권을 '망각'한 대표자
인권 기구 통폐합을 발의하고 성평위 위원장단을 파면한 61대 총학생회장, 성희롱 피해와 2차 가해를 방관한 62대 총학생회장. 이들과 같이 젠더 감수성을 상실한 대표자는 학생자치 '탄압'의 상징이었다. 안타깝게도 63대 총학생회 <오늘>의 대표자들 역시 그 궤적을 답습하고 있다. 성평위를 둘러싼 논란은 회칙과 지위, 절차상의 억압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사회 최고 대표자들이 성평위의 필요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평위 위원장은 총학과의 면담에서 총학생회장이 생각하는 성평위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이에 총학생회장은 성평위가 '총학 업무가 과중하지 않게금 업무를 분담하는 기구' 라고 대답했다. 앞서 정리한 대로 성평위는 인권 기구이자 견제 기구이다. 독자적인 위치에서 총학 사업에 협력하거나 자문을 제공하며 총학과 상호작용을 하는 조직이다. 허나 총학생회장은 이를 무시한 채 성평위를 그저 하나의 업무 부서로 치부했다. 그러면서도 총학생회장은 인권 관련 사업과 그 내용 구성에 있어 상당량의 업무를 성평위에 부담시켰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인권 의제를 '업무 분담이라는 명분으로 성평위에 떠넘긴 것이다.
이는 성평위를 비롯한 위원회가 인권 의제를 전담하고 있으므로 총학생회의 나머지 조직은 인권 문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라는 총학생회장의 인식을 드러낸다. 인터뷰에서 성평위 위원장은 이와 같은 상황을 '인권 외주화'로 정의했다. 젠더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대표자가 불러온 '위험의 외주화'는 오늘도 학우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의 1분기 간담회 이후 개정된 '중대중심' 조직도 역시, 인권과 성평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표자들에 의해 수정되었다. 현재 중대중심에 게시된 총학생회 조직도는 '학내 혐오 및 차별 문화 종식과 평등한 학생자치 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 진행'이라는 문구로 성평위를 설명하고 있다. 종전의 학내 성평등 및 반성폭력 문화의 확산을 목표로 활동에서 '성평등', '반성폭력'과 같은 젠더 관련 키워드가 빠진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조직도상 '특별자치기구'로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올해 총학은 성평위를 '산하 위원회'로 개칭했다. 5
조직도 수정이 이루어질 당시 성평위 위원장은 본인이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음에도 수정된 조직도가 게시되었다며 미비했던 업로드 절차를 술회했다. 수정된 조직도는 피드백을 위해 국장·위원장 단톡방에 먼저 공유되었다. 하지만 업로드 마감 시간이 촉박했던 탓에 그 사이 확인한 사람은 인복위 위원장뿐이었다. '보고'와 '확인'을 중요시하던 총학생회장이었지만, 이 경우는 달랐던 모양이다. 성평위 위원장은 “성평등'이라는 명시가 없으면 '성평위' 라는 단어도 무색해진다"고 짚었다. 인권 의식은 물론 성평위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총학이 '반성폭력', '성평등'이란 단어를 절삭함으로써 성평위의 필요성과 존재 의의는 온전히 드러나지 못했다.
우리에겐 성평위가 필요하다
성평위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소수자 기구라는 특성의 이해가 기반된 회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총학생회장단의 성평위 억압을 막을 뿐만 아니라 캠퍼스 내 모든 위협으로부터 학내 구성원을 보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는 소수자 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학사회의 구성원을 향한 성폭력 위험은 엄연히 현존한다. 2018년 중앙동아리 성폭력 사건, 2019년 영어영문학과 A교수 성폭력 사건, 2020년 총학 내부 성폭력 사건 등 중앙대학교에서는 매해 끊임없이 성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한 폭력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과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 역시 학생사회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편 성평위는 올해 5월 27일 '2021 중앙퍼레이드 〈있습니다〉'를 개최했다. 성평위는 퍼레이드에 참여한 이들과 함께 연대하며 성소수자를 지우는 대학을 지적하고, 캠퍼스 구성원들에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일깨우기도 했다. 지금도 성평위는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캠퍼스를 위해 달리고 있다. 그들이 캠퍼스에 꼭 필요한 이유다.
성평위는 역사 속에서 특별자치기구로 '있었고', 현재에도 그 필요성이 '있다'.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인권 규약을 만들겠다던 〈오늘〉의 인권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총학생회장단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성평위와의 논의는 끝나지 않았고, 임기도 충분하다. 제도적으로 성평위의 독립성을 인정함으로써 학생들이 안전한 캠퍼스를 꾸리는 일은 총학생회장단의 역할이다. 캠퍼스의 새로운 오늘은 〈오늘〉에 달렸다.
'지난호보기 > 2021 봄여름, 80호 <끝말잇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껍데기는 가라, '탈곡기'와 함께한 진솔한 인터뷰 (0) | 2021.06.22 |
---|---|
중앙대학교 노동을 짚어보다 -중앙문화와 톺아보는 학내노동 가이드 (0) | 2021.06.22 |
우리가 사는 집, 그들이 '사는' 집 (0) | 2021.06.22 |
웬만해선 능력주의를 막을 수 없다 (0) | 2021.06.22 |
〈더 디그〉, 학문과 배움의 의미를 탐색하다 (0) | 2021.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