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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호 80호 <끝말잇기>/사회

우리가 사는 집, 그들이 '사는' 집

by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중앙문화 2021. 6. 22.

서울 강남 일대 ⓒ문민기

부편집장 문민기

 

연일 부동산이다. 경제도 부동산, 정치도 부동산, 지난 4월에 열린 재·보궐선거에서도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었다. 온종일 서울 집값이 올랐네, 어디 지역에 신도시가 생기냐 마냐 떠든다. 그뿐인가? 올해 초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수도권 3기 신도시 예정지에 대거 투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당과 야당 간의 공방 사이에서 사건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부동산을 가진 자, 가질 때를 놓친 자, 그리고 아예 가지지 못하는 자의 간극은 점점 벌어졌다. ‘부동산’, 세 글자가 남긴 것은 상처뿐이었다.

암담한 현실에서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한의 면적은 102백십km²이고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인당 최소 주거 면적은 14라는데, 차라리 국토를 각자 14로 나눠 가질 수는 없을까? 너무 터무니없는 망상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런 상상까지 하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저 살기 위한 공간을 얻고자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모아야는 사회, 부동산이 도대체 뭐길래?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땅의 신화

당장 집 없고 거처가 없는 이들이 에 연연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실은 사뭇 다르다. 가진 자들은 자기가 사는집 한 채로도 모자라 평소에는 갈 일도 없는 곳에 집을 사고’, 쓸 일도 없는 땅을 알아보며 더 부동산에 열광한다. 오히려 당장 자신의 공간이 절실한 사람들은 이러한 땅의 잔치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된다.

땅의 잔치, ‘땅의 신화는 우리가 한반도에 터를 잡은 때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좁은 국토에서 한정된 좋은 땅을 찾기 위한 토지 투쟁은 곧 국가의 생존 투쟁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어떤가? 땅이 곧 힘이었던 시대에 국가 층위에서 이루어진 투쟁이 소유권, 사유지 개념의 확립에 따라 사익을 위한 개인 층위의 투쟁으로 옮겨지고 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각주:1]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어치 땅을 사 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 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 떨어진 것이었다.”

 

- 이태준, <복덕방>

1930년대에 쓰인 소설 <복덕방>은 근현대 사회에서 개인 층위로 전이된 토지 투쟁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안초시는 축항(築港)에 관한 정보를 듣고 부동산 투기를 결심한다.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자산을 몽땅 출자하는데, 이후 개발 소식이 사기였다는 것을 깨달은 안초시는 끝내 자살한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근대화 국면에서 개인들은 국가가 아닌 자신들도 땅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덩달아 동시대에 지주제[각주:2]가 자리를 잡으며 그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른바 지대추구[각주:3]의 신기루는 안초시와 같은 개인들에게 땅의 신화를 주입하며 위용을 떨쳤고,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의 사고를 관장하고 있다.

 

 

 

부동산과 불로소득

앞서 개인 차원의 토지 쟁탈전을 생존 투쟁이라 비유했지만, 정작 생존이 절박한 이들은 투쟁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듯하다. 이 불합리한 현상에 대한 가장 쉬운 변론은 자본주의. 재화는 언제나 희소하기에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이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시장은 말한다. 갈 일 없는 곳에 집을 사고, 쓸 일 없는 땅을 알아보는 것도 결국 그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재력이 있으니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다. 반면 빈자와 홈리스에게는 공간에 대한 대가를 치를만한 돈, 생존 투쟁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재력이 능력으로 인식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무능력자로 치부된다. 다소 과격한 표현이지만, 시장과 사회는 곧 무능력자 살지도 말라고 하는 셈이다.

값을 지불할 여유가 있기에 매입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이들의 거래를 유심히 살펴보면 심상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앞서 잠시 언급된 LH 사태를 살펴보자. 개발 사업과 토지 정보 획득에 있어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LH 직원들은 온갖 수법을 동원하며 거래에 뛰어들었다. 개발 예정인 토지를 여러 명이 공동 구매한 후 작은 필지로 나눠 가져 보상을 극대화하는 쪼개기는 기본이고, 소위 벌집으로 불리는 간이 주택을 올려 아파트 분양권을 노리는 경우도 등장했다.[각주:4] 심지어 농지를 사들여 농사 시늉을 하는 것도 모자라 보상가가 높은 희귀 묘목을 심는 방법도 성행했다. 시세차익, ‘(gap) 투기[각주:5], 그리고 제도 악용을 일삼는 이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지난 3월 청년진보당이 투기 직원의 처벌을 요구하며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한겨레

답은 불로소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행각은 부동산 시장에서 불로소득을 얻는 최적의 방법이다. 불로소득은 한자 뜻 그대로 일하지 않은’, 노동하여 얻은 소득 이외의 소득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오래된 속담이 무색하게 일하지 않는 자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허나 불로소득은 어느 정도의 자본이 갖춰져야만 생겨날 수 있다. 돈놀이를 벌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종잣돈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불로소득은 노동을 통한 정당한 성과가 아닐뿐더러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예컨대 육체노동은 재화라는 가치를 창출하고, 새롭게 생산된 재화가 시장에 투입되고 거래되면서 경제순환에 기여한다. 정신노동, 감정노동 역시 서비스라는 가치를 생산하며 경제순환에 이바지한다. 반면에 불로소득은 아무런 생산 활동을 수반하지 않아 이러한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가시적으로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면서도 시장에 편승하고, 투기를 조장하여 수요를 부풀릴 뿐이다. 오직 소수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말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불로소득을 향한 욕망은 주택 수요를 비생산적으로 부풀리며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 ‘다음 사람에게 비싸게 팔아넘겨야 한다라는 일념은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며 실수요자를 몰아냈다. 땅을 위한 생존 투쟁이 일부 가진 자들의 축재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불로소득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약해지는 노동, 고개 드는 불평등

부동산 시장에서의 불로소득은 투기꾼들의 불공정한 수법을 꼬집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불로소득은 곧 노동 문제로 이어진다. 땅이 땅을, 집이 집을, 돈이 돈을 복사하는 시대에서 노동은 뒤편으로 밀려난다. 폭등하는 부동산 지표와 다르게 노동의 가치는 점차 퇴색된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노동소득의 입지는 줄어드는 데서 온 상대적 박탈감, 노동 의욕 저하는 덤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자산소득은 국내 소득 불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각주:6] [각주:7] 자산소득이란 부동산, 주식, 현금 등의 자산 소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으로, 일종의 불로소득이다. 이는 비대해지는 부동산 불로소득에 비해 약해지는 노동소득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자산소득의 불평등 기여도는 2014년 기준 79.4%에 달했다.[각주:8] 자산소득 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소득의 불평등 기여도는 산출 방식에 따라 최대 83.3%까지 차지했다. 즉 불로소득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 노동소득의 기여도는 35.3%로 소득 불평등을 되레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됐지만, 부동산은 여전히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상당한 격차를 벌리고 있다. 게다가 이 연구는 7년 전 수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현 정부 집권 이후 집값 폭등과 팬데믹 시국의 투자시장 과열을 고려한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 의욕이 진작될 리가 없다. “(노동으로) 모을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는 반면에 주택은 시류만 잘 타면 몇 년 동안 평생 모을 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각주:9]는 한 노동자의 푸념은 불로소득을 둘러싼 사람들의 박탈감을 잘 드러낸다. 허탈함을 느낀 노동자들은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투자자가 된다. 이들 덕에 더욱 비대해진 부동산 광풍은 다시 소득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긴다.

 

사람들은 불평등에 따른 박탈감을 무마하고 계층 이동을 위해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동산 과열 때문에 오히려 계층이동[각주:10]이 어려워진다고 이야기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아주 소수가 계층이동을 위해 아주 열심히 연구해서 주택을 사고팔며 계층이동을 할 수 있지만, (다수가 뛰어든 과열 시장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며 부동산 불로소득의 태생적인 비생산성, 비대칭성이 사회 전반에 득보다 실을 가져오고 있다 지적했다.[각주:11]

 

영끌의 시대

청년들에게도 부동산 광풍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판이 커지는 땅의 잔치는 갓 사회에 나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청년 노동자에게 큰 타격을 준다. 이에 맞서 취업난, 경제난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집을 사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한다는 신조어 영끌도 등장했다. 내 공간을 위해 영혼까지 기꺼이 바치는 사회이지만, 청년들은 역설적으로 꿈과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다음은 가상 속 한 20대가 겪는 이야기이다.

수도권에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A. 대학 새내기 때부터 주택청약통장에 꾸준히 돈을 넣고 있지만 진짜 변변한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도 A씨는 항상 부동산 뉴스를 예의주시하며 오르내리는 서울 집값에 민감한 편이다. 살 수도 없는 아파트의 매매가에 울고 웃으면서도 자신의 처지가 착잡하기만 하다. 한편 A씨는 얼마 전부터 비트코인과 주식 투자에 빠졌는데, 주변 지인 중에서는 가장 늦게 시작했다. 어느샌가 코인과 존버얘기뿐인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없어 소외감을 느낀 A씨는 이제 누구보다 열심히 발품을 팔며 일확천금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이제 허황된 말일 뿐인 걸까. 실제로 많은 청년은 현실과 시장의 간극에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자력으로 집을 구하려면 죽기 직전까지 집값만 갚아야 한다는 비관도 나온다. 어찌어찌 집을 매입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노동으로만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기사에서는 어렵게 내 집 마련에 성공한 한 20대의 사례가 이렇게 실렸다. “(22세 강 씨는) 지난해 11월 울산에서 2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분양가 18000만 원은 직접 주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마련했다. 물론 종잣돈 5000만 원은 부모님이 줬다. 하지만 그걸 4배 가까이 불린 건 강 씨다.”[각주:12]

 

부동산과 불로소득의 시대에서 암호화폐와 주식 투자 까지 활개치고 있다. 최근 들어 20, 30대의 개인투자는 눈에 띄게 급증했다. 일례로 지난해 주식, 코인 투자로 인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상담 건수는 5,523건으로 전년(3,540) 대비 56% 증가했다. 그중 20대 상담 이용인원은 223% 폭등했다.[각주:13] 도무지 퇴로가 보이지 않는 부동산 시장 앞에서 청년들은 투기성이 다분한 개인 투자에 투신해 한탕을 노린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노동소득도 한몫한다. 부동산 과열로 비대해진 개인 투자는 청년들의 우회적인 투기처가 되기도, 혹은 위 강 씨의 사례처럼 불평등한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생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부동산이 불러온 상대적 박탈감, 불로소득이 불러온 소득 불평등과 노동의 약화,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청년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 <소공녀> 스틸 컷 ⓒCGV 아트하우스

 

마침 요즘 청년들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한 편이 있다. 영화 <소공녀>는 우리에게 주거와 라이프스타일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도시 공간을 그려낸다. 집을 얻고 취향을 잃거나, 취향을 지키되 집을 잃어야 한다. 작중 대용은 넓은 신축 아파트에 혼자 살지만, 월급의 절반을 대출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하우스푸어 처지이다.[각주:14] 아래는 대용의 독백으로, 2021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비애를 대표하고 있다.

 

누나, 여긴 못 벗어나. 집이 아니고 감옥이야 감옥. 여기, 한 달 이자가 얼만 줄 알아? 원금 좀 포함해서 100만 원이다? 근데 월급이 190이거든? 근데 100만 원, 그걸 얼마나 내야 되는 줄 알아? 20, 20. 매달 100만 원씩 20년을 내면 이 집이 내 꺼가 된다? 그때 되면 집이 되게 낡겠지?”

- 영화 <소공녀>

아마 대용이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더는 끌어들일 영혼이 없다가 아닐까.

 

정부는 어디에

대용의 걱정은 우리 모두의 걱정이다. 부동산 시장의 건전한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선 정부의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정부가 일관된 지침을 신속히 제시해 문제 상황에 제동을 걸고, 정치는 민간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정책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모든 국가 정책 수렴과정의 기본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시장이 널뛰기할 때마다 특단의 대책을 천명하며 온갖 수를 내놓았다. 어느샌가 부동산 안정이 제1목표가 되어버린 현 정부가 지난 4년간 공포한 크고 작은 부동산 정책은 무려 26개에 달한다. 정부의 정책 핵심기조는 주택 공공성 강화, 투기수요 근절 실수요자 보호 생애주기별·소득수준별 맞춤형 대책의 3대 원칙에서 포용적 주거복지를 위한 주택시장 안정책과 실수요자 중심의 지원·공급책을 주안점으로 두고 추진했다.[각주:15] 8.2, 6.17, 12.16 대책이니 하는 정책이 수차례 발표되었는데, 쉽게 말해 투기와 공급 대책으로 집값하나는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의 결과는 당장 주요 일간지 1면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한국감정원의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각주:16]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593.8에서 작년 5134.6으로 불어나 임기 중 무려 43.5% 올랐다. 비슷한 기간 1평당 평균 매매가는 85%가량 솟았다. 스물여섯 번의 야심 찬 맹공이 아직도 시장의 아성을 뚫지 못한 채 헛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특단의 대책’, ‘맹공이라는 말을 써가며 정부의 엄중한 태도를 살폈지만, 이런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부동산 대응은 일관적이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정책들을 짚어보면 시장 규제와 서민 지원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투기과열지역 지정, 공시가격 조정, 청년층 금융·공공주택 지원, 다주택자 대출 규제 및 세율 인상이 그것으로, 정부의 기조인 공공성시장 정상화에 충실한 정책 시도였다. 반면 최근 들어서는 시가지 고밀화 정책과 대규모 공급 계획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정부는 교외 그린벨트와 군사시설 해제, 공공기관 부지 재개발을 통해 도심 밀도와 내부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또한 전국 광역시와 수도권에 2025년까지 83만 호, 2028년까지 127만 호에 육박하는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각주:17] 이는 기존의 시장 견제에서 시장 확대, 이른바 공급 쇼크를 주는 방향으로의 선회다. 여기에 더해서 4.7 보궐선거 이후 여권은 민심을 수습하고자 각종 세제 감면, 종합부동산세 기준 상향조정, 대출 규제 완화 등 친시장적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정부·여당은 이로써 자신들의 과거 정책을 번복하며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정책을 유동적으로 고쳐나가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부의 급박한 기조 선회는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미 주택 수요가 투기를 등에 업고 거짓으로 부풀려진 마당에, 정부가 나서 이를 훨씬 뛰어넘는 초대형 공급을 단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처럼 시장이 극도로 민감한 상황에서는 주택 매수심리가 자극되어 광풍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다.[각주:18] 더 나아가 최근 들어 급물살을 탄 세제 감면, 대출 규제 완화와 맞물려 빚내서 집 사자’, ‘지금 아니면 안 된다라는 투의 투기 여론을 조장할 수도 있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안정이 목표라면 이 같은 규제 완화를 하면 안 된다"며 여태까지의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정반대의 흐름이라고 꼬집었다.[각주:19] 또한 장기적으로는 거품이 꺼진 뒤 과잉 공급으로 곤욕을 치를 게 뻔하다.

 

 

정책 선회의 시기와 그 불명확성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지난 보궐선거를 분수령으로 정부·여당이 새롭게 제시하는 정책 선회가 명확한 목표나 철학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장기적인 대안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당장의 지지율 악화와 선거 참패에 대한 임시방편을 내세웠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정부의 섣부른 정책 번복과 근본적인 철학 결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귀결되고 있다.

 

정치는 어디에

정부가 맥을 못 추고 있는 동안 정치는 무얼 하고 있었나? 위에서 잠깐 소개한 정책 수렴 도식에 따르면 정치는 정부 정책에 피드백을 제공하며 건설적인 환류 작용을 이끌어야 한다. 즉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정책의 행위자이자 심판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정치권은 자신들 본연의 책무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거대양당은 좌우를 막론하고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알맞게 부동산 이슈를 악용하고 있다. 이른바 부동산 정치의 등장이다.

부동산 정치의 대표적인 예시로 지난 4.7 보궐선거를 들 수 있겠다. 당시 서울·부산시장직을 두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오가던 와중, 단골 주제로 등장한 것은 상대 후보의 부동산 의혹이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투기 근절 공약을 내세운 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도쿄 아파트 보유 사실을 문제 삼으며 내로남불이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에 맞서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하며 막판 수세 뒤집기에 나섰다. 부산에서도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LCT아파트 특혜 거래 논란, 민주당 오거돈 전임 시장의 가덕도 공항 예정지 투기 의혹이 고개를 들며 서로 간의 정쟁 도구로 쓰였다.

지난 3월 서울지검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투기 관련 고발장을 접수중이다. ⓒ뉴시스
지난 3월 서울지검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의 재산 신고 누락 관련 고발장을 접수중이다. ⓒ연합뉴스

선거 주자들의 부동산 의혹에 여론이 쏠리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부동산 광풍을 방증한다. 하지만 부동산 의제를 둘러싼 정치의 선정성은 실제로 시장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 확인조차 부족한 정치인들의 막무가내 의혹 제기는 시장에 더욱 자극을 줄 뿐이며, 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 기조와도 충돌한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정치는 관련된 정치권의 논의들을 그저 정치적 이익을 위한 근시안적, 소모적 논쟁에 그치게 해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게 막는다.

부동산 정치를 부추기는 데에는 부동산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내로남불태도도 한몫한다. 세입자 보호 입법을 준비 중이던 박주민 의원은 정작 자신이 세놓은 건물의 월세를 대폭 인상했다. 지난해 말 새롭게 임명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듬해 밝혀진 ‘LH 사태당시의 사장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공사 차원의 부정을 방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각주:20] 이렇게 행정부를 견제하고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할 정치는 정책에 대한 피드백 제공은커녕 스스로가 부동산 정치에 빠지는 우를 범하며 광풍을 부추겼다. 치솟는 부동산 지표 앞에서 노동의 결실이 외면받을 때, 청년들이 이 집 저 집 전전긍긍하다 사지로 내몰릴 때, 정부와 정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이제 어디로 가야하오

15세기 말에 쓰인 정치학의 기본서, <통치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각주:21]

 

하느님은 인류에게 세상을 공유물로 주셨다. (...) 그는 세계를 싸우는 것과 언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변덕과 탐욕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근면하고 합리적인 자들이 사용하도록 주었다. 자신의 삶의 증진을 위해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토지에 대해 불평을 할 필요가 없고,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해서 개간된 것에 대해서 간섭할 필요가 없다. 만약 불평을 한다면, 그는 자신이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않는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얻은 이익을 원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 존 로크, <통치론>

첫 문장의 세상세계토지로 바꾸어 읽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토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부의 생산수단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토지를 정녕 소유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투입하여 자연 상태였던 토지를 개발하고 개선해내야 한다.[각주:22] 물품의 가치는 생산에 관여한 수고스러움, 즉 노동이 부여한다고 보았던 그는 토지 소유와 재산, 노동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람에게 충분한 것보다 더 넓은 땅을 탐하는 자는 노동 없이 부를 갈취하려는 것이므로, 남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가진 자들이 자신의 분수 이상으로 토지를 쓸어 담고, 막대한 부를 얻는 대가로 아무런 땀방울을 흘리지 않으며, 노동이 의미를 잃어버린 현실에 대해 로크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 작금의 사회는 당초 그가 분석했던 바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제멋대로 널뛰는 시장, 속수무책인 정부, 제자리걸음 중인 정치가 불러오는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흑석동에서, 혹은 내리[각주:23]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말이다. 투기와 불로소득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제 영끌하다 지친 청년들은 세상에 묻고 싶다. 갈 곳 없는 우리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을 찾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 아파트 전경 ⓒTBS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주(地主)' [본문으로]
  2. 이 시기 지주제의 급성장과 더불어 농민의 토지로부터의 분리, 즉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분리가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한편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질서의 확립에 따라 토지에 대한 지주적 권리는 강화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
  3. Rent seeking.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 활동을 경쟁적으로 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온다. (출처: 한국경제) [본문으로]
  4. <중앙일보>, “벌집·빽빽·쪼개기전문가도 놀란 LH 땅투기 수법”, 21.03.18. [본문으로]
  5. 주택의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간 격차가 작을 때 그 차이()만큼의 투자금액으로 주택을 매수하고, 시세차익을 누리는 방식의 부동산 투자 방법을 말한다. (출처: 경실련) [본문으로]
  6. 이성재, 이우진, “샤플리값을 이용한 한국인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의 원천별 기여도 분석”, 한국경제의 분석, 2017. [본문으로]
  7. 논문에서는 공동의 성과물에 대해 각 참여자에게 기여도를 분배하는 샤플리값이 분석 수단으로 쓰였다. 여기서 공동의 성과물은 국내 소득 불평등, ‘각 참여자는 소득 원천으로 치환된다. [본문으로]
  8. 김태완 외, 한국사회 격차문제와 포용성장 전략,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본문으로]
  9. <참여와 혁신>, “부동산 열탕에 익어버린 삶과 노동”, 20.10.10. [본문으로]
  10. 사회에서 일생 동안 노력하여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본문으로]
  11. <참여와 혁신>, “부동산 열탕에 익어버린 삶과 노동”, 20.10.10. [본문으로]
  12. <동아일보>, “내집 마련 생각하면 답 없지만정부 정책 별로 기대 안해”, 21.04.01. [본문으로]
  13. <매일경제>, “"낮엔 주식, 밤엔 코인"20대 투자 중독 3배 급증”, 21.03.18. [본문으로]
  14. <ㅍㅍㅅㅅ>, “집의 취향과 존엄, 영화 소공녀”, 20.09.28. [본문으로]
  15.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부동산 정책 [본문으로]
  16. 공인중개업소 호가, 시세가 아닌 실제 신고된 아파트 거래 가격만을 지수화한 것이다. [본문으로]
  17. <서울경제>, “홍남기 '이번 부동산 대책, '공급쇼크' 수준시장 안정될 것'”, 21.02.04. [본문으로]
  18. <한겨레>, “‘부동산 민심=종부세 민심’?민주당, 원칙없는 정책 선회”, 21.04.20. [본문으로]
  19. <한국일보>, “여당의 역주행? '부동산 민심 폭발'에 대출 규제까지 풀었다”, 21.03.29. [본문으로]
  20. <연합뉴스>, “변창흠 'LH 사장' 당시 투기 11건 확인경질론에 힘 실리나”, 21.03.11. [본문으로]
  21. 아주대학교 <통치론> BBS팀 번역, 2015. [본문으로]
  22. 이석희, 변창흠, “토지공개념 논의와 정책 설계 : 개발이익 공유화 관점에서”, Journal of Korea Planning Association, 2019. [본문으로]
  23. 전자는 서울캠퍼스, 후자는 안성캠퍼스의 대학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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