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김아영
새삼스럽다는 감각, 그런 느낌에 압도될 때가 있습니다. 늘 걷던 길 위에서 머리 너머 내리쬐는 햇빛의 시선이 머문 곳, 도로변 가로수 옆 자그맣게 피어난 꽃을 바라볼 때. 그럴 때, 새삼스러운 감각에 그 시선을 따라 한참을 바라보곤 합니다. 몇 번이고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쳤을 그 거리 위에서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선에 닿지 않았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엊그제 내린 비 덕분인지 살짝 젖은 땅, 언제부턴가 살짝 깨져있는 돌, 작은 개미 몇 마리, 담배꽁초 하나까지. 찌그러진 캔이나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뱉고 간 가래침을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새삼스러움은 그렇게 수많은 감각을 던져놓고 갑니다.
어찌 보면 말입니다, 그런 새삼스러움은 너무나도 우연적입니다. 사실 거리 위 작은 개미 몇 마리를 뚫어지게 보는 일보다 담배꽁초를 더 발견하기 쉽고, 쓰레기가 없는 거리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그저 일상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햇빛이 던져준 빛 한줄기가, 우연히 마주한 개미 몇마리가 그런 일상을 새삼스럽게 만듭니다.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는 감각을 깨워줍니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2011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조우리 작가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쓰고 발표한 소설 8편이 하나로 묶인 단편집입니다. 여성, 퀴어,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각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여린 바람에도쉬이 흔들리지만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본 글에서는 그들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새삼스러운 순간들
평범함이란 무엇일까요. 누가, 언제부터 정했는지 모르게 보통의 기준은 어느새 일상 속에 녹아 있습니다. 여성에겐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남성에겐‘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한국인’이 자연스럽다고 여깁니다. 로맨스 소설엔 이성애를 기대하고, 한국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체로 한국인으로 예상합니다. 마치 그것이 기본값인 양, ‘평범하지 않다’라고 규정한 존재들은 새삼스럽게 느껴질 뿐입니다.
조우리 작가의 소설은 다릅니다. 첫 번째로 수록된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에서 여성 등장인물 윤주는 ‘상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는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 ‘금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인력사무소 ‘최 실장’이나 배려 없는 언사를 스스럼없이 던지는 운전 강사만이 새삼스러울 뿐입니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의 여성화자 ‘나’는 여자친구 ‘정윤’이 있습니다. 여느 연인처럼 평범하게 연애하고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애인을 걱정 어린 목소리로 타박하기도 하며,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고 있죠.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순간 새삼스러운 일이 됩니다. 자신의 삶을‘정상성’의 기준으로 인식하는 주변인의 발화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죠.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에서 과거 ‘나’가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친구에게 결혼소식을 왜 전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친구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무래도 너한테는 결혼이란 게 더 복잡하게 느껴질 테니까” 라고요. 목소리를 낮추고, 빠르게단어들을 내뱉으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황급히 떠납니다. 이 대목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이성애자의 시선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배려’가사실 그들의 삶을 새삼스럽게 만들고,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로 규정지어버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두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자리를 그저, 꿋꿋이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공간에서 삶을 꾸리듯, 각자의 자리는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일뿐이죠. 하지만 누가 정했는지조차 모르는 평범함을 토대로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지거나 이미 ‘다르다’라고 규정한 선을 가시화하는 순간, 자리는 위태로워집니다. ‘금자’가 불합리한 최 실장과 운전강사의 태도를 감내해야 했던 것처럼, ‘나’와 ‘정윤’이 함께 가고자 했던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서 ‘레즈비언 커플’임을숨기도록 요청받았을 때처럼 말입니다. 일상적인 자리가 새삼스러운 순간으로 변모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 경계선에 존재하는 그들이 있습니다. 두 소설에선그들의 존재가 소위 ‘정상인’을 새삼스럽게 비춥니다. 일상적인 일이라고 넘겼던 일들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면서 말이죠.
위태로운 자리에 선 사람들
‘언제든지 대체돼도 이상할 것 없는’이라는 수식어 뒤엔 어떤 단어가 어울리나요? 혹은 무엇을 떠올리셨나요. 주변의 물건들을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양말은 원한다면 언제고 바꿔 신을 수 있고, 필기감이 맘에 들지 않는 볼펜은 금세 다른 펜으로 바꾸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 뒤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어떤가요. ‘노동’이라든지요. 뭔가 어색합니다. 사람이 물건처럼 휙휙 바뀔 수 있다는 말은 거부감을 줍니다. 이러한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은 그저 괴상한 상상에그치지 않습니다. 쉽게 대체 가능한 노동력, 내일은 기약하기 어려운 자리들은 너무나도 많죠.
「11번 출구」에서 역과 지하상가 사이의 빵집에서 일하는 알바생 ‘다미’나 11번 출구가 사라진 자리에 생긴 옷 가게 직원 ‘제나’처럼 말입니다. 다미는 냉동생지를 오븐에 넣어 빵을 굽고, 간단한 커피를 만들며 계산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장은 일주일에 두어 번 오는 정도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팔린 빵의 수를 세어보고, 금고의 돈을 가져가는 일이 전부였죠. 나머지는 모두 다미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와 다미가 함께 점심을 먹던 중, 상가 재정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럼 제나는 ‘어떡하냐’는 다미에 말에 그녀는 웃으며 답합니다 ‘나한테까지 별일이 있겠어? 잘리기밖에 더 할까’
문제는 역과 지하상가를 나누는 공사가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사이에 존재했던 빵집 옆에는 담이 생기고, 손님의 발길은 줄기 시작하죠. 사장은 어느날 다미에게 ‘내일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성실한 알바생이었던 다미는 사장에겐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죠. 쉽게 고용된 제나와 다미는 ‘잉여 노동력’으로 취급됩니다. 공사 후 빵집은 새로운 가게로 바뀌고 자연스럽게 다미의 자리는 사라집니다. 제나 역시 찾을 수 없어졌습니다. 그들의 위치는 언제나 위태롭고, 타인이나 ‘공사’와 같은 사건으로 쉽게 자리를 박탈당하죠.
우리 주변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어느 조직이나 직장에서 ‘대체될 수 없는 인력’이 되기를 꿈꿉니다. 실은 우린 모두 대체될 수 없는 존재들인데도 말입니다. 미래를 상상할 때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다른 이에게 대체되지 않을지,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해 나의 일자리가 사라지진 않을지 걱정하면서요. 나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생각은 나를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도록 합니다.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노동자’라는 자리는, 있지만 없고 필요하지만 공식적이거나 정확하게 표상되지는 않는 ‘경계’로서의 ‘11번 출구’로 환유 된다.
해설|우리의 자리, 249p.
11번 출구는 지하상가를 재정비하며 사라진 출구입니다. 그 덕에 여러 가게가 입점했고 옷 가게 ‘제나’도 그중 하나였죠. 시간이 꽤 흐른 뒤에도 11번 출구를찾는 사람들은 이따금 보이곤 했습니다. 11번 출구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딘가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죠. 해설에서는 이를 노동자의 자리와 닮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1번 출구, 타의로 쉽게 사라지고, 또 위태롭지만 어딘가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자리’, 다미와 제나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나를 지키는 법
어디서든, 너도 꼭 너를 지켜. 그게 우리를 지키는 일이 될 거야.
「미션」, 96p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소설 전반에서 ‘자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과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위태로운 사람들, 그리고 나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까지. 「미션」에서 ‘미경’은 한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그리고 미경은 어느날 부산지사로 발령 난 전 직장 상사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내 업무용 프로그램 ‘미션’에서 나눈 팀원들의 메시지를 늦게 본 결과로요. 결혼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입사원이던 미경의 사수였던 ‘정준석’입니다. 미경을 개인비서처럼 대리기사로 부르고, 셔츠를 세탁소에 맡기게 시키고, ‘야’, ‘어이’라고 부르면서 폭언을 일삼기도 했던 사람이죠. 그로 인해 미경은 원형탈모가 생기고, 항상 밤잠을 설쳤습니다. 공황장애약을 끊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그런데도 미경은 축의금 봉투를 들고 부산에 가고, 겨우 입꼬리를 올리며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미경은 회사원이라는 ‘자리’에 위협받지 않습니다.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이었지요. 정준석으로부터 사물처럼 다뤄진 미경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큰 결심을 합니다. 정준석의 횡령을 고발하는 투서를 조심스럽게, 대표실 문틈으로 밀어 넣기로 한 것이죠. 이에 미경의 친구의 수아는 “네얘기는 하지 마, 너를 지켜야지”라는 말을 건넵니다. 그저 회사원일 뿐인 미경이 ‘나’를 지키는 방식은 익명의 투서를 몰래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블랙제로」에는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근무하는 ‘나’가 등장합니다. ‘나’의 동료 ‘경’은 고객의 시착을 돕다 말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내동댕이쳐지고 발길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경은 가차 없이 해고당합니다. 경이 응대한 고객이 ‘로얄’ 등급이었기 때문이죠. 경의 인간성은 무참하게 짓밟혔지만 잠깐의해프닝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매장의 친절 교육에 이런 멘트가 추가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부디 너그럽게 제 실수를 용서해주십시오.”
「블랙제로」에서 ‘블랙제로’는 구매 이력은 없지만, 항상 백화점 개장 시간 첫 번째로 입장해 인사를 받고 나가는 손님을 말합니다. 어느 날 블랙제로는 ‘나’가근무하는 매장에 찾아오고, 시착을 해봅니다. 도와달라는 블랙제로의 손짓에 다가가 멈칫하는 사이 블랙제로는 ‘나’를 밀치고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옵니다. 마치 경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사과를 강요받는 상황에 놓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블랙제로의 발길질에 바닥에 넘어진 채로 말입니다. 주위에선 ‘죄송합니다. 부디 너그럽게 제 실수를 용서해주십시오.’라는 소리가 울립니다. 동시에 빨리 사과하라는 직원들의 눈초리가 느껴지고요. ‘서비스직 노동자’라는 자리에서‘나’의 인간성이 훼손되어버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미경과 ‘나’는 모두 노동자입니다. 미경은 익명의 투서로 나의 존재를 보호했지만, 여전히 그 회사에 남았습니다. 미경의 인간성을 해친 정준석이라는 존재를마주하는 일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블랙제로」에서 노동자로서 ‘나’의 인간성은 참혹하게 지워지기에 십상입니다. 서비스업 종사자인 ‘나’는 항상 ‘을’을 자처할 수밖에 없고요.
위험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은 소극적인 형태로 발현되거나, 어쩌면 당장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죠. 홀로 위험을 헤쳐나가기에는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가미약하기만 합니다. 이 순간 미경이 수아에게 해주고 싶었던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어디서든 너를 지키라고, 그게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요. 각자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닐까요. 나를 지키는 일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고 연대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경은 혹은 조우리 작가는 이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지키려는 노력, 자그마한 꿈틀거림이더라도 그 움직임은 결국 우리를 지키고, 나를 지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바람길이 있는 소설
“조우리의 소설을 읽을 때, 숨쉬기가 편안하다. 다정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비정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적절한 바람길이 있어서 절망으로 가빠지지 않는다.
정세랑(소설가) 추천사 中
책 뒷면 추천사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추천사의 말처럼, 조우리 작가의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소설 곳곳에 바람길을 내어줍니다. 부당한일을 당하고, 현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읽어도 어쩐지, 가슴 한 켠에 통증만 남지는 않는 이유입니다. 현실의 절망보다는 희망을, 기분좋게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죠.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에서 금자와 명숙은 운전 강사의 폭언에도 동일한 운전학원에 재등록합니다. ‘왜’라는 질문에 유쾌하게웃으며 이렇게 답하죠. “거기가 제일 가깝고 싸대!”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담담히 감내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끝내 불합리함을 회피하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미션」에서 미경이 결혼식에 참가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결심한 듯 사내 업무용 프로그램 ‘미션’을 다시 켜며 단편이 끝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많은 상상을 할 수 있죠. 아마도 방식은 다를지라도 생각의 방향은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미경은 지금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 자신의 자리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하리라는 것이겠지요. 명숙, 금자 그리고 미경을 보며 우리는 낙관하고, 웃음 지을 수 있습니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에서 ‘나’와 정윤은 ‘레즈비언 커플’임을 숨기길 강요받고 친구 아들의 돌잔치에서 준비한 선물만 둔 채, 셀카 한 장을 찍고 돌아옵니다. 집에 돌아와 같은 날짜에 열리는 ‘수지’의 비혼식에 가기로 합니다. ‘나’와 정윤 앞으로 보내진 청첩장을 함께 다시 보면서요. 그리고 두 이름 사이 그냥 점이 아니라 작은 하트가 그려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죠.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님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작은 표식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 주위의 존재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숨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평범할 뿐이라는것. 그리고 함께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핸들을 번갈아 잡는 일
소설은 우리에게 수많은 세계를 던져 줍니다. 고도화된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상의 현재를 그려내는 SF소설과 절절한 로맨스 소설 그리고 잠시 과거로 데려다주는 역사 소설까지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지금을 마주하고 숨겨진 진실을 마주합니다. 때론 상상 속의 일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하기도 하면서요.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는 과학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랑의 아픔을 겪고 이를 극복해 끝내 진정한 사랑을 찾는 절절한 로맨스도 찾아볼 수 없죠. 그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어쩌면 비관적이기까지 한 우리의 삶에 대한 일들이죠. 눈을 돌리면 쉬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사의 잡일까지 맡아 하는 말단 사원, 어떤 일에도 웃어야 하는 서비스업 노동자,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 그리고 동성애커플까지요.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를 말입니다. 조우리 작가는 그들의 삶을 현실적이지만 유쾌하게 비추고, 끝내 낙관합니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을 읽으며 저는 ‘주인공’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가진,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서 있으니까요. 모두를 단순히 미워할 수 없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죠.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주인공이 없는, 달리 보면 모두가 주인공인 소설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조우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 속의 여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죠. ‘소설이 마침표를 찍었어도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소설이 끝나도 그들의 삶이, 혹은 그와 비슷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현실의 ‘우리’들이 존재하니까요. 그들의 삶을 둘러싼 불합리한존재들을 새삼스럽게 비추고, 절망 속에서도 끝내 낙관하는 혹은 자신의 힘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는 것.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에서 조우리 작가가 주고자 했던 작은 다정이 아닐까요.
하지만 상미야,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고 네가 말했잖아. 결국 우리는 영원히 아무것도 완전히 조심하지는 못하면서 살 텐데. 계속 조심하려고 노력만 하면서 살 텐데. 혼자서만 애쓰면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번갈아 핸들을 잡는 게 아닐까. 그것부터가 아닐까.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 29p
우리는 여전히 살아갑니다. 어찌 됐든, 세상이 나에게 어떤 시련을 가져다주든 나의 자리에 서서, 그 자리와 나를 스스로 지키면서 그저 살아갈 겁니다. 많은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마주하고, 새삼스러운 순간들도 발견하면서요. 쉽게 흔들리고 위태로운 자리에서도 웃을 수 있고 낙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그런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홀로 ‘나’를 지키는 것이 버겁다면 가끔 번갈아 핸들을 잡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면 될 것입니다.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의 단편을 전부 소개하지도, 단편 속 모든 삶과 이야기를 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요. 여러분도 그들의 삶을 슬쩍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가 서로 힘을 주고받아볼 수 있도록말입니다.
'지난호보기 > 2021 봄여름, 80호 <끝말잇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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