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임희성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과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강화’를 꼽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입학예정자는 2013년 63만 2천여 명에서 2023년 39만 8천여 명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대학입학정원이 55만 9천여 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이 정원을 유지할 경우 약 16만 명의 정원초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정부 시절 7만 1천 명(2003년 대비 2008년, 10.9%), 이명박 정부 시절 3만 6천 명(2008년 대비 2013년, 6.2%)의 입학정원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입학정원의 1/3 가량을 더 줄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90년대 중반부터 학령인구 감소가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대학의 양적팽창을 방조한 결과다.
정원감축만큼 박근혜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산업수요와 대학 공급 간 양적·질적 미스매치 해소다. 산업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백화점식 학과 설치로 인해 대졸자의 전공취업률이 낮고, 산업계는 미래성장동력인 고급인력의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원감축이 양(量)적인 면의 구조조정이라면 산업수요와 대학 공급 간 양적·질적 미스매치 해소는 질(質)적인 면의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대학은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 간 불균형 심화시키는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
2014년 1월, 교육부는 2023학년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 명 감축하겠다는 계획이 담긴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1주기(2014년~2016년) 4만 명, 2주기(2017년~2019년) 5만 명, 3주기(2020년~2022년) 7만 명 등 단계별로 정원을 감축하고,이를 위해 재정지원사업과 구조개혁을 연계하며, 전체 대학을 5등급으로 구분하여 등급별 구조개혁을 취하는 새로운 평가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4년 재정지원사업과 구조조정을 연계하여 정원감축을 유도한 결과. 2013년 기준으로 2017년까지 총 4만 4천여 명의 입학정원이 감축할 것으로 예정된 가운데 76.9%(3만 4천여명)가 지방대에서 감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
올해 초 교육부는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 계획’을 통해 전국 대학을 5등급으로 구분한 뒤 최상위 등급을 제외한 대학들에 차등적인 정원감축을 권고하여 약 5천여 명의 정원을 추가로 감축하고, 하위 20% 내외에 해당하는 대학에는 정부 재정지원을 제한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에 걸쳐 평가한 결과, D, E등급을 받은 하위그룹 대학(32교)의 65.6%(21교)가 지방대학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재정지원제한(2015학년도 기준) 선정평가에서 하위대학으로 평가된 대학 가운데 지방대학 비율이 57.9%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지방대 쏠림현상이 더 심해진 것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의 양적팽창을 주도해 온 수도권 대규모 대학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전체 대학을 정원감축을 위한 평가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일부 대학 중심의 정원감축 및 퇴출을 유도한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 대규모 대학의 상당수는 구조조정과 연계한 재정지원사업 신청 시 정원감축계획을 아예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교육부 평가에서 정원자율감축 대상인 A등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줄세우기식 평가에 따른 정원감축정책은 지방대 몰락을 유도함으로써 우리 대학의 균형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자 추진 중인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은 비영리기관인 대학의 자산을 운영자에게 사적으로 돌려주는 교육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의원입법으로 발의된「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온 최근 「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으로 수정발의됐는데 이에 따르면, 해산하는 사립대학 법인은 그 잔여재산을공익법인. 사회복지법인. 직업능력훈련개발법인, 평생교육시설을 운영하는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 또는 출연하거나 설립자 기본금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설립자, 이사장, 학교법인 특수관계자가 출연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는 부실운영의 책임이 있는 대학운영자에게 면죄부를 제공하는 ‘특혜’일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비영리성을 훼손하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평가를 통해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힌 대학의 운영자들은 재산을 환원받아 문을 닫거나 다른 기관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반면 폐교되는 대학의 학생과 교직원은 설 자리를 잃은 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경제정책에 종속된 대학구조조정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소위 비인기학과, 취업률이 부진한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과 구조조정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앙대, 한국외대, 배재대, 목원대, 조선대 등이 취업에 용이한 학과 중심의 구조조정 방안을 잇따라 발표하여 대학구성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대학 구조조정이 취업률, 학생충원률 등의 평가지표를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이들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계열의 학과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 10월 교육부가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이러한 구조조정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학과 통폐합, 단과대학 개편 등을 내용으로 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은 ▲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육성사업(이하 ‘프라임사업’) ▲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이하 ‘코어사업’) ▲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으로 나뉜다.
프라임사업은 산업인력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부가 제공하는 산업별·직업별 인력수급전망에 따라 학사구조를 개편하고, 학과·계열별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코어사업 역시 인문학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회수요에 부합하는 인문학 육성'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평생교육 단과대학 육성사업은 성인학습자의 계속 교육을 대학 체제로 개편해 대학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사업이다. 2
교육부는 이상의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대학교육을 현장 중심으로 개혁’해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고등교육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을 학과별 전망까지 세분화해 대학에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미 대학들이 대졸 취업난과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 떠밀려 기초학문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취업중심의 학과구조 개편을 노골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업은 2014년 12월 대통령 주재 하에 개최된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장관회의에서 ‘2015년 경제 정책 방향’을 확정하면서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육성사업’ 계획으로 시작됐다. 제시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총 2,706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대학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는 것은 대학정책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수요와의 미스매치를 대졸 취업난의 주원인으로 몰아가는 것도 문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고등교육 계열별 취업률을 보면, 공학계열 취업률은 2010년 64.7%, 2011년 69.3%, 2012년 69%, 2013년 68.6%, 2014년 66.9%로 2011년 이후 하향세다. 공학계열 취업률이 인문계열 취업률에 비해 높긴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지금까지 대학들은 기초학문 학과를 줄여 취업률을 올리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인문과학 분야나 자연계열의 수학·물리·천문·지리 등 기초학문 분야의 입학정원은 2003년 대비 2013년 각각 9.8%, 43.3% 감소했다. 반면 경영·경제 분야나 공학계열의 정밀·에너지 분야, 의약계열의 치료·보건 및 간호학과 입학정원은 동일 기간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증가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졸 취업난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전공분야별 미스매치가 대졸 취업난의 핵심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창출을 통해 대졸 취업난을 해결해야 할 정부가 그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졸속적 구조조정으로 퇴보하는 대학 민주화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대학들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배재대, 목원대, 원광대, 서원대, 청주대 등에서는 학교당국의 일방적인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농성, 수업 거부 등이 이어졌으며, 중앙대 역시 학교당국이 2016년부터 학과제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방인:을 제시해 대학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학교당국과 대학구성 원의 갈등이 깊어지는 이유는 학과재편 등에 관한 민주적인 논의 절차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신대에서는 교무회의 의결만으로 ‘2016년 학제개편안’을 통과시켜 학생·교수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경남과학기술대 교수와 학생들은 ‘학교본부가 보직교수 중심으로 구성한 T/F팀을 통해 졸속적인 학과통합안을 발표했다’며 반발했다. 이외에도 대학구성원과의 논의와 의견수렴의 절차를 무시한 채 학교당국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학교당국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민주적 논의구조가 정착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교육부가 구조조정 정책을 졸속적으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교육부는 재정지원과 연계하여 정원감축을 추진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대학특성화사업 사업신청서를 4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석 달 만에 학과구조조정 안을 수립하라고 한 것이다.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도 의견수렴 기간을 2달여로 제시하고 있으며, 2~3개월 만에 평가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물론 교육부는 ‘2015학년도 대학 및 산업대학 학생정원 조정계획’에서 학과 통폐합을 할 경우 대학구성원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법령 및 학칙에 따른 사전공고, 심의 및 공포 등의 절차를 준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졸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이러한 권고가 대학 내에서 충실히 지켜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구조조정 정책 전면 재고해야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교육생태계 조성’, ‘대학교육의 질 제고’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평가를 통한 구조조정은 수도권과 지방간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학벌과 대학서열에 기대어 규모만 키워온 대규모 대학의 교육의 질도 끌어올릴 수 없다. 산업수요와 대학공급 간 미스매치를 해소하겠다는 노력도 대학을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은 전면 재고되어야 한다. 정원감축은 교육의 질 제고와 지역균형발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해야한다. 유명무실화된 교육여건 및 법인 관련 법정 기준을 강화하여 적용한다면 정원도 줄이고 교육의 질도 높일 수 있다. 대규모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기 위한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세계 주요 대학의 학부생 규모가 대부분 5~6천 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대규모 대학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들 대학의 정원축소는 필요하다.
부실대학 퇴출은 대학퇴출이 아니라 부실운영의 책임이 있는 ‘운영자’ 퇴출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극심한 부정·비리, 재정난으로 더 이상의 대학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은 잔여재산을 환원하는 ‘특혜’ 없이도 현행 사립학교법에 근거하여 폐교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산업수요에 맞춰 대학의 학과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대졸 취업난은 정부가 앞장서서 청년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해결해 나가야 하며, 고급인력의 부재는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 특성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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