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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5 가을겨울, 69호 <폐허, 가능성의 조건>

2015 구조조정 후속보도 ―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4.

2015 가을겨울 <폐허, 그 가능성의 조건>

편집위원 지산하

 지난 학기 구조조정안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학생 중심이었다. 2016년부터 기존 학과()를 폐지하고, 계열별 광역모집과 이중전공 복수전공 확대로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적잖은 학생들이 전과와 복수전공을 희망한다는 설문조사결과를 시행근거로 삼았다. 역사적으로 경험된 학부제의 실패를 의식했는지 대학본부는 학부제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광역모집이 중심이 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학부제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 전공 쏠림 현상이나 전공 전문성 부족 문제 등 기존 학부제에서 나타났던 폐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택률이 저조한 전공을 '융복합하겠다는 대학본부의 계획은 사실상 비인기학과에 대한 폐과 예고와 다름없었다.

 실패한 학부제를 재현하고 폐과 의도를 드러낸 것 자체도 문제였다. 허나 이에 더해 대학본부의 비민주적 태도는 대학 구성원들의 더 큰 반발을 가져왔다. 교수·학생 할 것 없이 대학본부를 규탄하는 학내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높았다. 결국 대학본부는 한발 물러섰다. 전면 폐지하기로 했던 학과() 제도를 유지하고, 학사구조에 대해 논의할 협의체(중앙대학교 학사구조 개편 대표자 회의)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후 416일에 열린 3차 대표자 회의에서 정시로 입학한 인원에 대해서만 광역모집하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57일에 열린 5차 회의에서는 전공 쏠림 문제를 막기 위해 학과별 전공 진입 상한 인원[각주:1]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간 일방적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에 비해 진일보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학생 중심의 교육혁신,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의 민낯

 광역모집 대상을 정시 인원으로만 좁힌다 한들 문제점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먼저 그 인원을 어떤 주체에서 관리할 것인지 결정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전공 전문성을 보장할 방안이나 학생 간 유대감을 형성할 방안도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기준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될 것인지도 정해진 바가 없었다. 애초 학생 중심을 구호로 한 광역모집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제대로 된 계획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 인원만 광역모집했음에도 대학본부의 대처는 허술했다.

대학본부가 제시한 광역화 모집 학생 관리방안

1: 대학본부가 주관해 광역화 모집 학생들을 관리할 새로운 조직을 구성
2: 교양학부 교수들에게 광역화 모집 학생들을 일임
3: 각 단과대학에 광역모집된 학생들의 관리를 해당 단과대학에 일임

 64일과 11일에 열린 7. 8차 대표자 회의에서 대학본부가 제시한 세 가지 관리방안이 논의되었다. 1안은 대학본부가 주관해 광역모집된 학생들을 관리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방안이었다. 적잖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조직에 대학본부가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은 필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2안은 교양학부 교수들에게 관리를 맡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1안과 마찬가지로, 교양학부 교수들이 모든 단과대에 속한 학생들을 관리하는 것은 전공 전문성 측면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3안은 각 단과대학에 광역모집된 학생들의 관리를 해당 단과대학에서 맡는 방안이었다. 1안과 2안이 지닌 한계점이 분명했기에 결국단과대학에서 관리를 맡는 3안이 채택되었다.

 단과대학에서 광역모집 입학생을 관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 611일에 열린 8차 대표자 회의에서였다. 그리고 그 이후 논의는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 11월이 다 되어서야 단과대학별로 관리방안을 취합하고 이를 학사팀에서 종합하기 시작했다. 정서 원서접수 기간까지 한 달여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11월 말이 되어서야 관리방안이 완성되었다. 정시모집요강 뒤편에 항상 게시되던 학사 안내11월 말까지 '추후 안내로 남아있었다.

 11월 중순 관리방안을 종합하던 학사팀 관계자는 세부사항에서 계속 수정사항이 생긴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입학생 중 20%가 넘는 인원의 관리방안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단 세 명뿐이었다.

 학사팀의 설명에 따르면 단과대학별로 광역모집학생운영위원회를 만들어 광역모집된 인원의 관리를 담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사팀에서는 대개 각 단과대학의 학장과 학과장들이 관리위원을 맡게될 것으로 예측했다. 몇몇 단과대학에서 예상되는 행정업무 증대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책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본부는 지원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난 학기 대학본부는 구조조정안을 설명하면서 학부제와 선을 긋기 위해 이런저런 방안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도교수·전문가 등과의 체계적인 면담이 이루어지는 ‘Academic Advisory System’,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 촉진 등이 제시됐다. 이 중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시로 입학한 다수의 학생들은 각 학과()에 소속되어 기존 체계에 따라 교육을 받고 선·후배 관계를 맺을 것이다. 하지만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은 수시에 비해 소속과 학문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전공 진입 전 어떤 교육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일부를 광역화했을 때 빚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해결되기는커녕. 당장의 관리방안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프라임 사업: 구조조정은 계속된다

 광역모집 입학생을 단과대학에서 관리하기로 한 이후로 대표자 회의의 주된 안건은 프라임 사업(PRIME: PRogram for Industrial needs Matched Education)이 었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으로, ‘사회변화와 산업수요에 맞도록 대학의 체질개선을 이끌어내 인력의 미스매치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부 주관 재정지원사업이다. 중장기적인 인력수급을 예측했을 때 이공계열의 인력은 수요보다 부족한 반면, 인문사회·예술계열의 인력은 수요보다 많이 배출되기에 이를 조정하겠다는 이야기다. 올해 프라임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약 2000억 원으로. 앞으로 총 3년 동안 사업이 지속될 예정이다. 사업 유형은 1500억 원 규모의 사회수요 선도대학(대형)500억 원 규모의 창조기반 선도대학(소형)으로 나뉜다.

 대학본부는 보다 지원 규모가 큰 사회수요 선도대학 사업(대형)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사회수요 선도대학 사업은 9개 내외의 학교를 선정해 학교당 평균 150, 최대 300억까지 지원한다. 사회변화와 산업수요, 즉 취업과 진로 중심으로 대학 전반의 학사조직과 정원을 조정 유도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입학정원의 10%(100명 이상) 이상이나 200명 이상의 정원을 진로, 취업 중심 학과로 이동시켜야 한다. 결국 프라임 사업은 정부가 지원금을 무기로 이공계열 중심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교수협의회 자료에 따르면[각주:2], 대학본부는 정원 300명을 ()공과대학[각주:3] 또는 신설 글로벌융합대학[각주:4](가칭)으로 옮기는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1년에 200억씩 3년간 총 600억에 달하는 프라임 사업 지원금액을 해당 학과() 발전을 위한 마중물(Seed money)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지원 기준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구조조정하기로 한 맥락에는 규모에 따른 발전을 위한다는 것보다는 사업 선정에서 타 대학과의 경쟁이 근거가 되었다.

 김성조 연구부총장은중대신문과의 인터뷰[각주:5]에서 인문·사회계열과 예체능계열 등의 정원 이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문·사회·예체능 계열의 비율이 경쟁대학에 비해 높은데 비해 해당 계열의 취업률은 상대적으로 더 낮다는 논리였다. 또다시 구조조정안이 예고된 셈이다.

 지난 학기 대학본부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제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프라임 사업과의 연계성을 찾았다. 프라임사업이 공개되고 난 후 그 의혹은 더 확실해졌다. 계획안은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삼았다. 그러나 허울 좋은 구호 뒤에는 구조조정이 있을 뿐이었다.

 본인이 다니고 가르치는 대학이 발전한다는 데에 이견을 갖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발전을 위한 움직임은 큰 청사진이 그려진 이후에야 유효할 수 있다. 청사진은 모든 대학 구성원의 합의를 거쳐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학본부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시용하기보다 수단 자체를 위한 수단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합의를 통해 그려진 청사진 없이 진행한 정책의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당장 광역모집으로 입학할 학생들이 입을 피해가 눈에 선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체적인 상을 그리는 방향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1. 학과정원이 100명 미만인 경우 기존 정원의 110%, 100명 이상인 경우 105% [본문으로]
  2. 교수협의회, 11차 학사구조 개편 대표자회의 결과 보고 - ‘PRIME’ 사업 관련, 2015.10.19. [본문으로]
  3. 기계공학부나 신소재공학부(신설) [본문으로]
  4. 글로벌융합대학(가칭) 내에는 휴먼인지공학, 데이터엔지니어링. 로봇공학, 웰니스 메디컬 등 산업수요가 높은 학과를 신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5. <중대신문>, 김성조 연구부총장 인터뷰 공학을 기반으로 신설 학문단위를 만들겠다, 2015.11.2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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