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위원 신현욱
“남자친구는 있어?” 새로 만난 사람들이 친해지는 과정에서 의례 적으로 묻는 질문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인사치레로 건네는 안부인사다. 그러나 그 뻔하디 뻔한 질문은 절대 애인 유무를 파악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No’일 경우, 놀랍게도 상대는 내가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주기’ 시작한다. 그 원인을 꼭 밝혀내서 문제 상황에 있는 나를 구제해주 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비치면서 말이다.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상대방은 종종 "네가 너무 철벽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눈을 좀 낮춰봐”라는 '진단’을 내려준다. 애초에 나는 처방이 필요한 환자의 상태도 아니며, 처방을 원한 적도 없다. 혹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괜찮아. 곧 좋은 사람 생길 거야.”라는 위로를 넌지시 건네기도 한다. 아니, 위로는 괴로움이나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건네는 게 아니었던가?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따라오는 잔소리나 훈수에 당황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애인이 없는 사람은 왜 항상 조언과 위로를 필요로 할까. 애인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가해지는 이러한 공격은 '그냥 듣고 넘길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 나의 우울함과 쓸쓸함은 모두 애인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로 치부되었고, 내가 영회를 보고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는 그것을 함께한 상대방이 동성친구임이 드러나는 순간 한층 재미가 떨어진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내게 애인이 생기는 순간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애인이 생긴 이후 나는 ‘신분상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치 연애하지 않을 때는 내가 ‘무능력자’이기라도 했던 양 '능력자’라는 수식어를 수없이 듣게 되었고, 애인이 생김과 동시에 할 수 있는 일과 갈 수 있는 곳의 범위가 넓어졌다. 달라진 주변의 태도에 당황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차려입고 간 날이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했고, 함께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곤 했던 친구들이 나를 내 애인에게 '양보’ 하려고 하는 바람에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연애 하지 않을 때 쏟아지던 훈수와 잔소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쁘기는커녕, 애인 유무에 따른 주변의 확연한 온도차가 혼란스러웠다. 연애를 끊임없이 권하고 강요하기까지 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다. 연애를 하는 사람은 동경과 부러음의 대상이 되며,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어딘가 결핍이 있는, 미완의 존재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연애를 절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기며 권하지 못해 안달인 이 사회 분위기가 너무나도 만연한 탓에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아니 정말 잘못되긴 한 것인지 햇갈렸다. 아무리 검색을 하고 책을 찾아보아도 이와 같은 논의를 담고 있는 매체는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남자들이 좋아하는 청순 메이크업”, “여친 생기는 룩”이 가장 '핫한’ 컨텐츠가 되는 시대에 ‘연애 하지 않을 자유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공허할 수 밖에 없었다.
• '비연애’, ‘홀로’, 그리고 ‘연애하지 않을 자유’
그래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의 저자 이진송은, 직접 썼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허먼 멜빌의〈필경사 바틀비〉에서 따온 표현으로, 바틀비는 ''나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하지 않음’으로써 체제에 저항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에 타격을 가한다. 저자는 '하지 않을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 '~할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 되어야 자유로운 연애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어에는 ‘싱글’처럼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칭하는 고유어가 없다. 따라서 저자는 “각종 ‘웃픈’ 이미지로 점철된 솔로라는 단어를 대체하기 위해” ‘홀로’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비연애’라는 말은 국립국어원이 정의한 협소한 ‘연애’의 정의(남녀 간의 열렬한 사랑)에 반하는 폭넓은 개념이며, 저자가 제시하는 ‘비연애 담론’은 연애지상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결혼지상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목소리와 움직임이다. 1 2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연애를 하라고 몰아대는 것일까. 저자는 연애 강요의 사회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주장하니, 바로 후기 자본주의다. 연애를 해야 돈을 쓰고, 돈을 써야 연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에바 일루즈의 ‘상품의 낭만화’와 ‘로맨스의 상품화’의 개념을 통해 후기 자본주의와 연애지상주의의 공모를 설명한다. 상품의 낭만화는 특정 상품에 낭만적 사랑의 상징이라는 코드를 입히는 것으로, 다이아몬드 반지가 결혼의 상징이자 청혼의 필수품이 된 현상이 그 사례다. 로맨스의 상품화는 연애 관계를 지속하려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현상을 의미한다. 3 이러한 상품화된 연애 안에서 커플들은 열심히 소비를 하고,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의 중심”이 된다. 4
• 괜찮지않다, 사랑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회는 소비를 부추기고 우리의 삶의 형식을 ‘연애’라는 방향으로 획일화한다. 그렇다면 어느새 우리 삶의 중심에 들어선 연애는 권장할만 한, 모두에게 좋은 것일까. 그러나 저자는 사회가 강요하는 이 연애가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고 말한다. 로맨스의 핑크빛이 연애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매일 20여 명의 여성이 폭행, 협박, 성폭력 등 데이트 폭력을 당한다. 또한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매년 100명 정도가 데이트 폭력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좋아서 시작하는’ 연애 안에서 이처럼 수많은 폭력이 발생 하고 은폐되는 것은 연애 관계의 ‘지극히 사적이고 배타적인 성격’과 연인의 기본적 조건인 ‘독점적 관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개인이 연인 관계가 되고 나면 둘 만의 독점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를 ‘통제’하고 ‘감시’한다는 것이다. 5
물리적 폭행이나 성적 폭력은 이를 어겼을 때 돌아오는 처벌로 기능한다. 6
데이트 성폭력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피해자에게 불쾌한 성 접촉을 한 가해자가 그 접촉의 원인으로 ‘로맨스'를 들고 나왔을 때 폭력이 사랑 놀음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수많은 폭력이 ‘치정 싸움’이라는 모호한 말 속에 은폐되고 스토킹 끝에 여성을 살해한 가해자가 ‘구애남’ 으로 불리는 등, 우리 사회는 로맨스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사랑을 “딸기우유의 농축 과즙”과 같다고 표현한다. 단 몇 퍼센트만으로 함유되어도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모든 것을 핑크빛과 딸기우유 향으로 뒤덮어버리기 때문이다. 7
• 사랑과 우정의 이분법
대학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동기들과 무리지어 신나게 학교를 휘젓고 다닐 때, 우연히도 우리에게는 모두 애인이 없었다. 그러자 애인을 사궐 생각은커녕 ‘자기들끼리 좋아죽는’ 우리의 상태를 우려한 누군가가 “너무 너네끼리만 붙어 다녀서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거야”라는 신박한 진단을 내려주었다. 연애는 내가 만족을 느끼고 있는 공동체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인가? 나에게 소중한 공동체에서 탈퇴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상태인 것인가? 연애하지 않는 나의 상태를 결핍의 상태로 보는 것을 넘어, 내가 선택하여 맺고 있는 관계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이처럼 끊임없이 연애하는 사람은 능력자가 되고, 쉬지 않고 공감 공동체와의 관계에 몰두하는 이들은 무능한 사람으로 보는 현실을 비판한다. 연애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 중 가장 우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관계 간의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연애 이외의 관계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열화는 연애 이외의 관계를 황폐화시키고 다른 관계에 대한 상상을 빈곤하게 한다. 8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정이다. 저자는 연애에 비해 무시되는 우정 안에서도 ‘여자들 사이의 우정’이 폄하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는 여자들의 우정은 “더 괜찮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질투하거나 경쟁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일컬어지는 반면, 각종 미디어에서 남자들의 우정은 “고차원적이고”, “진실하며”, “오직 남자들끼리만 향유할 수 있는 독점적인 것”으로 묘사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는 여자들의 우정을 평하하는 동시에 남 자들의 우정을 획일화하고 그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사소한 일로 전화해서 몇 시간 동안 떠들고, 둘 사이의 사소한 일로 삐지고 화해하며, 같이 맛집 탐방을 하고 잘 꾸며진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 등을 영 어색하게 느끼는 남 자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는 누가 연애에 자신을 내던지든, 우정에 몰두하든 상관 하지 말고 그저 그들을 내버려둘 것을 권유한다.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연애가 아닌 관계’가 존재하며, 누가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9
• 굳세어라, 홀로여!
저자는 이처럼 연애를 강요하고 비연애 인구를 미완의 상태로 몰아가는 사회의 편견에 반기를 든다. 우리 사회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군림하는 ‘연애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연애를 기준으로 나뉘는 계급이나 서열을 타파하고자 한다. 이 땅의 홀로들은 정서적, 언어적 차별뿐만 아니라 정책적 • 제도적으로 배제되며 사회의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 연애지상주의 사회에서 내수 경기 침체 • 저출산 • 만혼화 등의 혐의를 뒤집어쓴 채 싱글세를 내고, 보험 및 복지 제도에서의 차별을 받으면서 말이다. 비연애는 삶의 자연스러운 상태 중 하나이다. 그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누군가와 맺고 있는 관계이자,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형식 중 하나다. 10 그렇기에 비연애 상태를 희화화 하거나 조롱하며, 그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11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케빈과 보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벌써 귀에 들리는 듯하다. 애인과 함께 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우울하고 의미 없는 시간으로 싸잡아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각종 SNS가 애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는 홀로들을 조롱하는 컨텐츠들로 가득찰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연애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중한 공동체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연애여도 좋지만, 연애일 수밖에 없거나 연애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모두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각자의 소중한 연애 안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이 땅의 모든 홀로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인간의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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