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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3 가을겨울, 65호 <멀리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이제는 '불판'을 갈아야 할 때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2013년 가을겨울 〈멀리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중앙문화 편집부

  앞의 「총학의 계보학」에서 살펴봤듯 지금까지의 총학생회는 서로와의 연관을 단절한 채 매번 새로움을 내세워 선거에 임했다. 같은 '라인'에 있는 선본이지만 직전 총학생회의 과오나 미숙했던 점을 그들이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지키지 못한 공약이 있었거나 임기중 학생회비를 ‘빵꾸’내는 등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도 해당 총학생회의 책임은 선거가 끝남과 함께 사라졌다. 또한 「소통 '좋아요', 갈등 '싫어요', 행동 '안 해요!'」에서 본 것처럼 총학생회는 일단 당선되면 통제되기 힘들다. 대부분의 안건을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다고 하지만, 어떤 안건들의 경우는 총학생회가 단독으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총학생회 시스템은 대통령제와 유사하다. 물론 여기서 얘기할 대통령제는 정치학적으로 연구되는 제도로 한정한다. 현실에서 제도는 언제나 가능한 가장 나쁜 모습으로 왜곡돼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적 의미에서 대통령제는 입법부로부터 분리·독립된 행정부의 통치를 투표로 선출된 1인에게 두는 제도를 뜻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되 입법부인 국회와 팽팽한 견제관계를 유지할 때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처럼 단임 대통령제를 택할 경우 임기를 한번만 수행할 수 있도록 중임 [각주:1]을 제한하고 있다.

 

권력은 과하고 책임은 없는 ‘단임 대통령제’

  대통령제는 1인에게 상당한 권력을 부여해 국정 운영에 효율성을 가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민주주의적 균형을 잃기 쉽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원리가 바로 권력 간의 견제인데, 대통령이 큰 권력을 쥐고 있는 까닭에 견제가 약화되고 권력이 더욱 집중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 대통령제는 대개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로 귀결되면서 그 양상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정당의 리더로 역할하 면서 대통령과 정당 사이 관계가 주종 관계와 유사하게 재정립되고, 이에 따라 대통령을 견제해야 할 의회는 견제 역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은 과도한 업무량으로 이어지고, 제왕으로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게다가 중임이 불가능한 대통령제는 책임의 부재를 낳는다. 대통령에서 물러나면 정계에서 정년퇴임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국정수행 에 최선을 다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임기 말 ‘레임덕 현상 [각주:2]’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된다. 미국의 경우처럼 중임 을 허용하면.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두고 국정을 수행해야 하므로 책임성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단임 대통령제에서 예상되는 이러 한 문제들은 현실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더욱 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까지는 집권당 내에 친이와 친박 간의 경쟁이 있어 어느 정도 팽팽한 견제를 유지했다면, 박근혜 대통령 시대는 더 이상 그런 견제도 없다. 뚜렷한 차기 잠룡(潛龍)이 없는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로 대동단결'한 상황이다. 의회는 제 기능을 못하다가 걸국 야당이 장외투쟁에 들어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꽃피는 계절이 오면 4대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우리 강산을 한 번 둘러보고 싶다”는 연설과 함께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우리 강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비리로 얼룩진 원전과 녹조 낀 4대강이다. 그러나 그는 비리의 총 책임자로 소환되지 않는다. 그는 강산을 파헤쳤지만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원하는 것을 하겠다’ … ‘원히는 것이 없다!’

  물론 대통령제는 효율적이다. 1인이 결정하기 때문에 복잡한 갈등 조정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총학생회 시스템에서는 그마저도 요원해 보인다. 학생 신분이리는 특수성 때문이다. 학생총회, 축제, 선거처럼 큰 사업을 포함한 각종 크고 작은 사업들의 집행권이 총학생회에 몰려있다. 집행부 구성원들이 수업을 제쳐두고 학생회 사업에 '올인’해야 겨우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늘날 세태에서 학생이 학점의 압박을 모른 체하기란 웬만한 소명의식이 있지 않은 이상 힘든 까닭에, 사업은 효율적으로 처리되지 못하고 총학생회는 과부하에 걸리고 만다.

  한편 최근 총학생회들은 집중된 권한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안건을 의결하지 않는다. 2008년 반이명박 촛불집회 이후 '소통’이라는 단어가 대두되면서 학생 사회도 소통이 주류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소위 '비권'이든 ‘운동권’이든 모든 선본이 학우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중요한 기치로 내세웠다. ‘학우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고 학우들이 원하는 것만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학우들은 쉽사리 의견을 내지 않는다. 학생 사회에 대한 기층의 관심과 열망이 점점 식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총학생회는 아무것도 의결하지 않 을 정당성을 확보한다. 다양성을 포기 하고 효율성을 담보하는 시스템에서 아무런 효율성마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학생 신분이라는 특수성은 단임에 서 비롯되는 폐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제의 경우 정책의 연속성이나 책임감이 부재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정당’이라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즉 대통령 개인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지만 정당은 다음 선거를 위해 정책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정당 사이의 조율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총학생회 시스템은 정당이나 정파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단임으로 초래되는 폐해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임기 중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총학생회장은 임기를 마치고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다. 졸업식에서 공로상’을 받는 것은 보너스다.

 

구시대적 총학생회 모델은 이제 그만

과거 학생 사회가 활력 있을 때는 지금의 시스템이 효율성을 추구히는 본래 의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학생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산적한 대학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었고, 의지의 결집으로서 '학생회’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학생들 대부분이 공감했다. 따라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는 총학생회는 구성원들의 의견에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됐다. 구성원들의 생각과 총학생회의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총학생회 집행부에게 뚜렷한 소명의식이 있기도 했다. 이러한 조건듬을 토대로 과거 총학생회는 민주적인 정당성도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총학생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시스템 자체의 문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시대가 됐을 뿐이다. 학생 사회는 이제 정치와 거리가 멀다. 학생 사회의 관신은 하나로 수렵되지 않고 취업, 대외활동, 인권, 국제기구 등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된다. 학비 벌기는 빠듯하며, 취업문은 바늘구멍이다. 시대는 이렇게 변하고 있다. 시스템도 변해야한다. 학내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고 다양해진 관심사를 한데 수렴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할 때다.

 

80년 4월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 벽보를 많은 학생들이 앞에서 올려다보고 있다.

더 많은 구성원을, 더 민주적으로!

  이미 다른 학교들은 새로운 모델의 총학생회를 설계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는 2012년 학생회칙을 전부 개정했다. 이전 회칙이 변화하는 학생 사회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개정된 회칙은 더 많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렇게 고안된 것중 하나가 '명예회원' 제도다. “회의 발전에 공헌한 자에게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로 명예회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학교 구성원 중 학생이 아닌 신분, 즉 청소노동자나 시간강사 등 도 회원으로 인정하고 학생총회 등에서 발언권을 부여하자는 의도였다. 마찬가지로 교환·방문학생에게도 회원 자격을 부여해 발언권을 부여했다. 다만 명예회원과 교환 · 방문학생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휴학생의 경우 기존에는 회원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개정 회칙에는 '준회원’과 '정회원’ 구분을 통해 휴학생도 절차에 따라 정회원으로 등록되면 재학생과 같은 권한을 부여했다.

  나아가 ‘특별기구'라는 이름의 상설기구를 둘 수 있도록 회칙을 개정했다. 입법부의 상임위원회처럼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기구를 설치해 대의원[각주:3]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든 이슈들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외에도 각 의결기구마다 위계를 부여해 학생총회, 학생총투표, 전학대회, 중앙운영위원회, 총학생회 순으로 참여 인원이 많을수록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총학생회가 단독으로 연대 단체 가입이나 대외적 협의, 혹은 재정 지출이 필요한 대외활동을 의결할 수 없게 제어하고 있다. 선거 성립을 위한 투표율 제한을 폐지하고 '지지선본 없음’이라는 기권 조항을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동국대학교는 총학생회와 함께 '총대의원회’라는 특이한 제도를 두고 있다. 이는 회칙상 총학생회보다 상위에 놓인 기구로, 대의원 전원으로 구성된다. 총학생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장, 중앙위원회, 집행부를 두고 있다. 주로 학생회 운영을 감사 · 견제하고 회칙을 개정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즉 총학생회와 총대의원회가 이중으로 권력을 분할하는 체제다. 경희대학교는 ‘참여위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학대회, 확대운영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각 구성원의 1/5정도를 할당하여 참여위원을 선출’ 하는 제도다. 참여위원은 일반 학우를 대상으로 공개모집하며 추첨을 통해 선출된다. 대의원이 아닌 구성원들의 참여기회를 열어놓은 것이다. 여기에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하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칙 전부개정안 로고 사진이다.

이제는 불판을 길이야 할 때

  이처럼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정치학적 논의를 봐도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 무잇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논쟁 영역에 있다. 각 학교마다의 전통과 당시 상황 에 따라 논의된 대안이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오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다음 몇 가지 원칙 하에서 논의 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총학생회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총학생회가 존재함 으로써 분명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임기 중 일반 학우들이 총학생 회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을 논의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 지루하고 번거롭더라도 구성원이 한데 모여 백지부터 회칙을 그려나가는 과정. 총학생회가 점차 기능을 상실해 가는 것은 어쩌면 대학에서 그런 치열한 민주적 토론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든 학생회’라는 느낌을 받아본 것이 언젠가? 당선과 즉시 일반 학우와 분리되고 마는 총학생회에게 그런 느낌을 받을 수 는 있는가? 더 나은 공약, 더 나은 활동력을 보여주는 총학생회를 뽑는 '물갈이’는 한계에 이르렸다. 과거 한 정치인이 말했던 것처럼 '오래된 불판’에 삼겹살을 구우면 다 타버리는 법이다. 이제 불판을 갈 때다.

  1. 중임은 두 번 이상의 임기를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중임제에서는 선출되기만 한다면 대통령을 몇 차례고 계속할 수 있다. 2차대전 이전의 미국은 법적으로 중임의 회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한 차례의 중임만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뉴딜, 전쟁 국면에서 4선까지 대통령을 수행한 이후로 중임을 한 차례로 제한하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본문으로]
  2. 대통령이 임기 말에 이르면 소속 정당이나 관료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상이다. 소속 정당의 의원들은 ‘차기 후보’를 물색해 줄을 대는 것이 정치 생명의 유지를 위해 급선무이며. 관료들은 대통령의 의중에 충성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고려대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구성원으로 ‘대의원'을 두고 있다. 대의원은 '소속학부·과·반 학생회 의회원 200명당 한명을두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선거시점을 기준으로 소속 정회원 수가 400명을 넘는 학부·과·반 학생회는 등록 절차를 거쳐 부회장 한 명도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으로’인정하고 있다. 이는 각 학부·과·반별로 대표하는 인원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의결 권한을 더많이 배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제도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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