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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3 가을겨울, 65호 <멀리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총학의 계보학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2013년 가을겨울 〈멀리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의 선거 공약집 6개가 펼쳐져 있다. 

중앙문화 편집부

11월 9일, 중앙인 커뮤니티에 〈학생회 하는 짓이 너무 답답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자신이 ‘나름 고학번’으로서 '원탁회의가 한심했다’거나 '할줄 아는 게 투쟁 뿐이냐’며 56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마스터키’ 선거운동 본부(이하 선본)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것이 아니라 학생 따로 학생회 따로 논다’며 ‘마스터키’ 선 본이 추천인 서명을 받으러 올 때 '피가 거꾸로 솟을 뻔했다’ 고 분노하기도 했다. 정황상 그의 분노는 과거의 운동권 총 학생회(이하 총학)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스터키’ 는 소위 '운동권’이 아니라 ‘비권’으로 분류되는 선본이었다.

  이 같은 오해는 일차적으로 글쓴이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 선거를 둘러싼 현실을 바 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다수 중앙대 학생은 위의 글쓴이처럼 각 선본이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지 잘 구분해내지 못한다. 선거철이 되면 중앙인 커뮤니티에는 누가 운동권이고, 비권인지 묻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곤 한 다. 왜 이런 '촌극’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03년 46대부터 2013년 56대까지 10년의 총학 선거를 추적했다. 그동안 총학 선거에 출마했던 선본을 '정파’별로 구분하고, 각각을 평가할 것이다. 관계자의 증언, 해당 시점의 기사, 정책 자료집, 선본원 목록 및 기타 선거와 관련된 자료를 참고하였다. 이를 통해 책임과 연속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책임정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각각의 정파/계열은 이니셜로 표기했다. 이 글의 목적이 각 정파/계열의 지향을 밝히는 데 있지 않기 때문에 보다 용이한 구분을 위해 이니셜을 사용했다. 매체 사정상 안성캠퍼스는 다루지 못했다. 이른 시일 내에 안성캠퍼스까지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모쪼록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운동권’의 춘추전국시대(2003년에서 2007년까지)

2003년 46대 총학 선거에서 '두드림’(정 이경호, 부 홍원기)이 상대 선본 '비상’(정 최락선, 부 김두식)을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두드림'은 A정파 소속,'비상’은 B정파 소속이었다. '두드림’은 "참신한 시도로 학생들에게 접근” 했으나 “의사수렴 과정과 집행력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각주:1] 이는 총학이 당시 중운위를 장악하고 있던 한총련 계열 정파들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면서 실무 추진 능력을 상실한 결과로 보인다.

  이듬해 47대 총학 선거에서는 B정파 소속의 '의혈의 힘'(정 김민석, 부 홍석희)과 비권을 표방하는 ‘더 퍼스트’(정 박미희, 부 안수아)가 맞붙었다. '더 퍼스트'는 "고인 물은 싹기 마련”이라며 그동안의 운동권 총학을 비판하면서 “대화와 소통”을 강조했다. 한편 이 선거는 '더퍼스트’의 박미희 후보가 총여학생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성 우월주의적인 학생들에 의해 남성 대 여성의 성 대결로 왜곡되기도 했다. 선거운동 기간중에 '더퍼스트' 측의 현수막이 유실되거나 대자보가 손상되는 일도 있었다.

  '의혈의 힘'은 B정파 특유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거기간 내내 '더 퍼스트’릅 압도했다. 개표 결과 '의혈의 힘’은 '더 퍼스트'의 두 배가 넘는득 표율을 기록하며 47대 총학으로 당선됐다. '의혈의 힘’은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9년만에 전학대회 성사, 13년만에 학생총회 성사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약을 실천했다. 뛰어난 실천력을 보여준 '의혈의 힘’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임기를 마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총학은 의혈의 힘이 유일했다. 김민석 전 총학생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전국의 비권이 한다는 사업은 다 찾아서 모조리 싹 다했다”면서 “학우들로부터 인정받는 학생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5년 총학 선거에 단독으로출마한 '스타일리스트’(정 김주식,부 이경석)는 76.7%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역시 '의혈의 힘’과 같은 B정파 소속이었다. 직전 총학인 '의혈의 힘’에서 부학생회장을 지냈던 홍석희 씨는 다시 '스타일리스트’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스타일리스트’는 당선과 동시에 교육 투쟁에 돌입하며 의욕적으로 출발했으나, 금강산 새터 불발[각주:2]과 교육 투쟁 과정에서의 총장실 낙서[각주:3]로 임기 내내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당시 사정에 밝은 김성준(가명) 씨는 "금강산 새터의 경우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 보다 정파 간의 갈등이 가시화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당시 어린 축에 속했던 김주식 씨가 다른 정파들이 모여 있는 중운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 새터가 파행으로 치달았다”고 말했다.

중앙대에서 통일대축전이 열렸다.

  2006년 49대 총학 선거는 B정파 소속의 '의혈 Revolu―tion’(정 고은선, 부 이승한)과 C정파, D정파가 연합한 'wing for you’(정 신승철, 부 이병주)의 경선으로 치러졌다. B정파와 C정파,D정파는 이념적인 지향은 비슷하지만. 노선 상의 차이가 있었다. B정파는 한대련에, C정파와 D정파는 한총련에 속했다. B정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연합한 C정파와 D 정파는 'wing for you'의 당선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wing for you' 총학 당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은 여름 방학 중 서울캠에서 개최된 ‘통일대축전’이었다. [각주:4] 행사에 참여한 단체들의 친북 성향, 행사 중 소음, 교내 기물 파손 등이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것이다. 이후 신승철 총학생 회장이 〈중대신문〉을 통해 직접 해명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시기의 특징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총학 선거는 다양한 이념을 지향하는 운동권 정파들의 각축장이었다. 시민사회운동 계열의 A정파, 한총련 계열의 C정파와 D정파, 한대련 계열의 B정파가 두루 총학을 거쳤다. 둘째, 한총련의 쇠퇴와 한대련의 결성으로 비슷한 이념을 지향하는 정파 사이의 노선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는 '스타일 스트’총학과 중운위 사이의 갈등, 'wing for you’와 '의혈 Revolution’의 경선으로 나타났다. 셋째, 다른 학교와는 달리 중앙대 비권은 당시까지 유의미한 정치세력이 되지 못하고 의견그룹 정도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학생이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운동권’의 쇠락과 ‘비권’의 합종연횡(2007년에서 2010년까지)

2007년 50대 종학생회 선거는 삼파전이었다. 'wing for you’의 계보를 잇는 '이끌림’(정 서윤덕, 부 이일섬),B정파 소속의 '젊은 의혈'(정 송주민, 부 홍석희), 그리고 E계열의 ‘ 슈퍼맨’(정 권영욱, 부 이정윤) 총 세 선본이 출마했다. ‘이끌림’의 정후보 서윤덕 씨와 부후보 이일섭 씨는 모두 전총학인 ‘wing for you’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wing for you’에서 각각 복지국장 및 인권복지위원장(준)과 기획국장 및 연대사업 국장을 역임했다. 한편 '젊은 의혈’의 부후보 홍석희 씨는 '의혈의 힘’에서는 부총학생회장을, '스타일리스트’에서는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여기에 비권을 지향하는 '슈퍼맨’까지 출마하면서 선거는 혼탁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통일대축전의 여파는 오래 갔다. 반운동권 정서가 점차 고조되었다. 주목할 점은 의견그룹에 불과했던 '비권’이 본격적으로 총학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총학 규모의 정치 경험이 없었던 '슈퍼맨’은 다른 두 선본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어설펐으나, 반운동권 정서에 힘입어 비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다. 2007년 11월 28일에서 29일 양일간 시행된 투표 결과 '슈퍼맨’과 ‘이끌림’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득표 차가 무효표 수보다 적어 다시 결선투표를 진행하게 되었다.[각주:5] 다시 진행된 결선투표 역시 선거운동 미비와 홍보 부족으로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하고 무산, 결국 총학 선거는 이듬해 3월로 미뤄졌다.

  2008년 3월 재선거에는 '파워포인트’(정 강지은, 부 김주식)와 '슈퍼맨’(정 권영욱, 부 서우석)이 출마했다. '파워포인트'는 '젊은 의혈’을 잇는 B정파 소속의 선본이었다. 이미 48대 총학 ‘스타일리스트’에서 총학생회장을 지낸 바 있는 김주식 씨가 다시 ‘젊은 의혈’의 부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슈퍼맨’은 11월 선거 때와는 달리 3월 선거에는 정후보 권영욱, 부 후보 서우석으로 출마했다. 3월 재선거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중선관위와 공대의 대립은 극에 달했다. 중선관 위가 여러 가지 결격사유에도 불구하고 '파워포인트’의 출마를 인정하자 공대 측은 선거를 '보이콧’했다.[각주:6] 결국공대의 '보이콧’으로 3월 재선거도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50대 총학은 비대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B정파와 F정파가 연합한 ‘YOU’(정 이승선, 부 김민중)와 G계열의 '희망사항’(정 이지열, 부 김용성)이 맞붙었던 51대 총학 선거에서 '희망사항’이 당선됐다. 이로써 중앙대 역사상 최초로 비권 성향의 총학이 출범하게 되었다. 독자적인 후보를 내기 어려웠던 B정파는 F정파와 연합했지만, 한참 커져가던 반운동권 정서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YOU'를 700여 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희망사항’은 문화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는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재단이 바뀌면서 생긴 많은 혼란 사이에서 ‘희망사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표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78만원의 빚을 남기면서 '빚쟁이 총학’이라는 불명예 까지 뒤집어썼다.

  2009년 10월 19일 한국일보에 '중앙대가 기초학문을 포기 하고 실용학문을 중심으로 육성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길고 긴 구조조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학교는 ‘오보’라며 기사내용을 부인했지만 학생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기업 재단이 들어온 이후 줄기차게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강한총학’(정 임지혜, 부 김일건)과 ‘C-Nergy’(정 강정원,부 조정아)가출마한 52대총학 선거가 시작됐다. '강한총학’은 B정파 소속의 선본이었다. 48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던 김주식 씨가 ‘강한총학’의 선거운동원으로 함께 했다. ‘C-Nergy’는 '슈퍼맨’ 계열과 ‘희망사항’ 계열이 '조인트’한 비권 성향의 선본이었다. 강정원 정후보와 조정아 부후보는 각각 사범대 학생회장과 '희망사항’ 선전국장을 역임했다. 사범대 학생회장은 권영욱 씨 에서 박영미 씨, 그리고 강정원 씨로 이어졌다. 'C-Nergy’는 사범대 출신들과 ‘희망사항’ 집행부 출신 등으로 선본을 꾸렸다. 운동권뿐만 아니라 비권도 재생산을 통해 정파를 형성하고 그 정파끼리 합종연횡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표 견과 61.7%의 지지율로 '강한총학’이 당선됐다. '강한총학'은 임기 내내 '구조조정의 망령’과 싸워야 했다. 2010년 2월 '새터 폐지’를두고 벌어진 ‘강한 총학’과 본부 사이의 대립은 4월 '학문단위 구조조정’ 최종안이 이사회를 통과하면서 극에 달했다. '강한총학’은 본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끊임 없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몇몇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와 '소나 라인 사건', '무료식권 배부 논란’ 등으로 학생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김성준(가명) 씨는 “2010년 구조조정 사태가 워낙 급박하게 흘러감에 따라 상황에 '강한총학’ 이 끌려간 측면이 있다”면서 "본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강한총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운동권은 쇠락하고, 비권은 합종연횡했다. 'wing for you’ 이후 C정파와 D정파는 더는 총학 선거에 나오지 못했다. B정파는 꾸준히 총학 선거에 대응했지만 역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통일대축전 이후 반운동권 정서가 고조되면서 운동권 정파의 운신 폭은 한없이 좁아 졌다. 속된 말로 운동권이라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욕을 먹었다. 반면 오랜 기간 동안 총학을 운영했던 운동권 정파에 비해 경험이 일천 했던 비권 정파는 합종연횡하며 실력을 쌓았다. E계열과 G 계열이 연합했던 'C-Nergy'는 당선되지 못했지만, 서서히 ‘비권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태평천하? (2010년에서 2013년까지)

  2010년 11월 치러진 53대 총학 선거는 'Im yours’(정 정예슬. 부 곽상헌)만 입후보함으로써 단선으로 치러졌으나.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 이듬해 3월 'Im yours’는 ‘Hello’(정 정예슬. 부 곽상헌)로 선본명을 바꾸고 다시 출마했고. 결국 88.19%의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정예슬 총학생회장과 곽상헌 부총학생회장은 모두 '희망사항’ 출신으로, 두 사람 은 각각 대외사업국장과 문화위원장음 역임했다. 이런 점에 서 ‘Hello’는 G계열의 '적통’이었던 셈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 으로는 곽상헌 부총학생회장을 편두로 공대의 '비권 러시’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G계열은 E계열을 떠나보내고 공대를 포함한 H계열로 정리되었다. ‘Hello’는 소통과 복지를 중점적으로 내세웠지만,제시한 수많은 공약에 비해 실천한 것은 많지 않았다.

  2011년 54대 총학 선거에는 무려 네 개의 선본이 출마했다. 우선 '진짜대학’(정 백시진. 부 이도경)은 B정파 계열로 ‘의혈 Revolution' 정후보였던 고은선 씨가 대표 참관인을 맡고 있었다. '카우V’(정 지봉민, 부 강동한)는 H계열 선본이었다. 지봉민 정후보는 2010년 공대 부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공대 학생회장은 ‘Hello’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했던 곽상헌 씨 였다. 강동한 부후보는 'Im yours’ 선본원을 하기도 했으며, 'Hello' 문화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퐁당’(정 장창원, 부 정 영수)은 F정파로 구분되었다. F정파는 주로 동아리 연합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장창원 정후보는 2010년 동아리연합회장을 역임했으며 정영수 부후보 역시 2010년 동아리연합회 전통분과장을 역임했다. '선택과집중’(정 조희승, 부 박민혁) 은 두 후보 모두 지식경영학부 재학생으로, 출마의 목적으로 '자신들의 학과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54대 선거는 46.55%의 지지를 받은 ‘카우V'의 당선으로 끝났다. 이는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진짜대학’과 '풍당’의 득표율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 '카우V’는 마라톤 대회인 '달려’ 개최, 흡연구역 설치 등으로 일 잘하는 총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반면, ‘식물총학' 또는 ‘동사무소 총학'이라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2년 55대 총학 선거는 '샤우트’(정 김창원, 부 김상민)와 ‘좋아요’(정 이재욱. 부 김윤환)가출마하여 경선으로 치러졌다. '샤우트’는 B정파 계열의 선본으 로 김상민 부후보는 54대총학 선본이었던 '진짜대학' 선본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좋아요’는 H계열 선본이었다. ‘좋아요’의 이재욱 정후보와 김윤환 부후보는 모두 'Im yours’ 선본원으로 활동을 했으며, ‘Hello’ 총학에서 각각 사무국장과 기획/선전국장을 역임했다.

  55대 총학 선거는 사전 선거운동, 자극적인 공약 등으로 논란이 되었다. 우선 '용감한 녀석들' 활동이 ‘샤우트’ 측의 사전 선거운동이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는 ‘사우트’가 선관위에 경고 1회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샤우트’는 학교의 뻥튀기 예산문제를 지적하며 등록금을 무려 22.7%나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학교가 즉각적인 반박을 하는 일도 있었다. 55대 총학 선거는 결국 ‘좋아요’의 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 3년간 중앙대 총학은 계속 비권이었다. 다시 말해 3년 내내 H계열과 함께 했던 것이다. B정파는 지속적으로 총학 선거에 출마했으나 '강한총학’ 이후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다른 운동권 정파들은 후보조차 내기 어려웠다. 학교는 확실히 조용해졌다. 두 번의 학과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2010년에 비하면 고요하게 지나갔다. 그야말로 태평천하다. H계열 총학과 함께 한 3년, 소통 없이는 못살 것 만 같던 그들은 학생들과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까?

 

‘중원의 패자’와 ‘강동의 호랑이’(2013년 현재)

56대 총학 선거가 진행 중이다. ‘마스터키'(정 강동환, 부 정원재)와 'BrandNEW'(정 박준성, 부 황미나) 두 선본이 출마했다. '마스터키’ 강동한 정후보는 53대 'Hello’ 총학에서 문화위원장을, '카우V'에서 부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정원재 부후보는 ‘카우V' 문화위원장을 역임했다. ‘마스터키’ 정 · 부후보는 모두 ‘카우V' 출신으로 H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BrandNEW’는 A정파 소속이다. A정파는 46대 총학 ‘두드림’ 이후 정경대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이후 사회과학대로 재편되면서 박준성 정후보는 1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H계열은 벌써 네 번째 선거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출마하 던 B정파는 이번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A정파는 9년 만에 총학에 도전한다. 그동안 선거에 나왔던 D정피-, C정파,표정 파 등과는 전혀 다른 정치성을 지니고 있는 A정파의 출마로 이번 선거는 새로운 양상을 떨 것으로 예상된디-. ‘중원의 패 자’와 '강동의 호랑이’ 중 누가 2014년 중앙대를 이끌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책임정치’의 조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두 종류의 윤리를 제시한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그것이다. 이상과 도덕, 동기를 중시하는 것이 신념윤리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것이 책임윤리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라고 막스 베버는 강조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운동권이든 비권이든 자신들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실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책임질 수 없는 말 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지 않을까? 운동권과 비권 모두 학내 정치세력인 이상 정치적인 주체들의 재생산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비권은 매년 자신들을 새로운 인물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그들도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운동권은 최근의 쇄신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과오에 여전히 발목 잡히고 있다. 46대 총학부터 55대 총학까지 무슨 정파가 혹은 계파가 어떤 정치적 활동을 했는가? 그리고 선거 때마다 내걸었던 공약을 그들은 당선 뒤에 충실히 이행했는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참신한 시도…의사 수렴 과정과 집행력은 미흡‘, 〈중대신문〉, 2004.11.21 [본문으로]
  2. 금강산 새터는 ‘스타일리스트’ 총학의 공약 중 하나였으나 중운위 구성원들의 반발로 불발되었다. [본문으로]
  3. “2006년 4월 11일, 학생들이 본관에 진입하여 총장실과 비서실 벽면에 낙서를 하고 역대 총장단 액자를 훼손시키는 일이 있었다. 이때 김주식씨와 다른학생 한 명이 이 집회를 주관했고 상벌위는 이를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동이란 판단을 내려 김주식씨와 다른 학생 한명에게 근신 4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3개월 후, 박범훈 총장은 학생들이 충분히 개선하였다는 판단 아래 김주식씨와 다른 학생의 징계를 사면했다.", ‘중앙대 학생 징계 역사 살펴보기’, 〈중대신문〉.2010.05.02 [본문으로]
  4. 통일대축전은 남한·북한·해외동포 대표가 참가하는 범민족 행사다. 2007년은 정부가 해외측 대표단의 방남을 불허하면서 애초 계획되었던 부산이 아닌 중앙대에서 열리게 되었다. [본문으로]
  5. 두 선본의 득표차는 75표, 무효표는 1,345표였다. 총학생회 선거세칙은 9장 53조인 '1,2위 간의 득표차가 무효표 수 이하일 경우 재투표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본문으로]
  6. '파워포인트'측이 정해진 시간보다 3분 늦게 후보 등록서류를 제출했으나, 중선관위가 이를 받아들면서 공대측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선거 세칙에는 정해진 시간 외에는 후보 등록을 거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대측이 고은선 중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노상현 공대학생회장이 중선관위에서 사퇴하고 해당 사건을 알리는 대자보를 붙였다.'無총학중앙대, 도대체 왜!', 〈중앙문화〉, 59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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