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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3 가을겨울, 65호 <멀리 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오랫동안 쓰였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② 중앙대분회장 윤화자 씨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2013년 가을겨울 〈멀리 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윤화자 분회장이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다.

  대학원 지하 2층은 미술 실기 용품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로 가득했다. 주의를 기울여 찾지 않으면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만한 곳. 계단 밑 조그만 문에 적힌 ‘휴게실’이란 글자만이 청소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휴게실 안은 외풍이 심해 외풍차단 비닐을 붙여놨지만 냉냉함은 여전했다. 이따금씩 바람이 창문을 치고 달아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중앙대분회 (중앙대분회) 분회장 윤화자 씨를 만났다.

  그녀는 2008년 5월 중앙대학교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 1년 동안 학교 일을 그만두고 개인장사를 하다 2010년 11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젊었을 때는 그냥 주부였어요. 그러다 IMF가 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렵기 시작해 서 일터로 나섰죠. 맨발벗고 뛰었지. 가정형편이 어렵게 되다 보니까.” 처음엔 식당 장사를 했다. 호프집을 운영하기도 했 고 보험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아들 두 명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학교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집에서 나오면 거리는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와 학교에 도착하면 6시 언저리다. 그때부터 일을 시작한다. 학생들이 오기 전에 강의실을 다 청소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일 하기 정말 힘들어. 외곽 청소할 때 신경질도 나고, 속상하고 그렇지. 장갑 끼고 일해도 손 시리고 트고." 그녀는 인터뷰에 답하면서 자신의 거칠어진 손을 비비고 있었다.

  아프기라도 하면 서러움은 더해진다. 회사의 ‘아니꼬우면 그만두라’는 식의 태도에 불안감이 항상 마음 한편에 존재한다. "아파도 울면서 참고 일하지. 본인 자신이 초라하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서럽기도 하고. (그런 맘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입원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그만 둬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일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결근하기라도 하면 월급에서 깎이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침을 맞으러 잠깐잠깐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일을 제대로 다못하 니까 다른 언니들이 봐주기도 했어요. 미안하고 고맙죠. 회사에 이런거 말 못해요. 아니꼬우면 내가 그만둬야하니까."

  “청소노동자라서 무시당한 경험이 있다.” 인터뷰한다는 소식을 듣고 온 청소노동자 A씨가 말했다. 그녀의 몸은 분노 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는 살림을 하다 집안에 한 푼 이라도 더 보탬이 될까 해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문 제의 사건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그녀는 학교에 행사가 있어 특근을 했다. 특근을 마친 후 집에 퇴근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한 교직원으로 행사장에 있던 자신의 외투가 없어졌는데 못 봤냐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녀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또 자신의 번호를 알려 줬을 다른 노동자에게도 배신감을 느꼈다. “옷 못 봤다고 했지. 그러니까 뭐라는 줄 알아요? '아주머니가 내 옷 가져가도 못 입어요'라고 하는 거야 글쎄." 그 교직원은 이미 A 씨가 자신의 옷을 훔쳐갔다고 확신하는 듯 말했다. 자신이 '하찮은 청소노동자’이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오해받은 것에 울분이 터졌다.

  그 다음날 그녀는 그 교직원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 교직원은 외투를 자신의 근무지에 두고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과의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외투를 찾았으면 나한테 전화로 찾았다고 미안하다고 한마디 할 수 있지 않았냐"고 A 씨가묻자 그 교직원은 ’자신을 언제 봤냐'는 식으로 무시하고 떠났다. 가슴에서는 화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끓고 있었다.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내 모가지가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신문에 띄우고 싶었어.” 이 사연을 들은 가족들은 일하러 나가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자신이 덮어버리면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화를 속으로 삭혔다. "노조가 있으면 말했어요. 근데 노조가 없었으니까, 혼자라서 말 못했어요. 말 할 데도 없었고.”

  A 씨가 청소노동자로서 다른 학내 노동자에게 무시당한 경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은 한 교직원이 배달 음식을 시 키면 같이 오는 된장국을 주며 "이거밖에 드릴 게 없다”라고 했다. 거지취급을 받았다는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 국그릇을 받자마자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우리는 떳떳하지 청소하는 거 . 우리가 돈을 받고 하지만은 학교를 깨끗이 해주는 거잖아요. 근데 아직도 교직원들 중에는 이렇게 우리를 하찮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경험이 있을 때마다 꾹꾹 참았죠. 속상해도 속으로 울었죠. 겉으로 운다고 해서 누가 알아줘요?”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무시당한 경험들이 깊 은 상처가 되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씩 그 기억이 문뜩문뜩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엉켜버린다는 그 녀는 화에 여전히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에게 무시당한 경험도 털어놓았다. 금연구역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흡연을 많이 해서 청소하 기 힘든 구역이 있다. 어느 날 한 청소노동자가 그곳을 치우 고 있을 때였다. 한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뱉은 가래침이 청소노동자의 손등에 떨어졌다. 올려다보니 그 학생은 무심하게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기곤 떠났다. 인간으로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엔 힘들어도 말도 못했다. 혼자서는 힘들다는 목소리조차 낼수 없었다. 학교와 회사의 태도가 걱정되기도 했다. "처음에 노동조합이 생겼을 때 묘했어.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얼떨결에 말한 거지 들뜬 마음에." 노동조합 출범식날 마이크를 잡았을 때 감회를 물으니 윤화자 분회장은 이와 같이 답했다. 노조를 만들 때 말도 많았다. 잘린다는 둥 만다는 둥. 위법이라는 둥 불법이라는 둥. 오만생각이 다 들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정문 잔디광장 옆에 모여 앉아 오른쪽 팔뚝을 높이 올리고 있다. 노동자들 앞에는 윤화자 분회장이 서서 왼손에 마이크를 쥐고 입에 대고 있고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있다.

  두려움이 차츰 자신감이 됐다. 처음엔 '밑져야 본전’이라 는 생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생전 처음 발언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노동조합이 생겨서 떳떳하니까." 윤화자 씨는 노동조합 결성 후 아직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심적으로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편하다고 했다.

  다른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이 생겨서 '이제서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A씨는 “내가 그래도 지금은 노조가 있으니까 큰소리 칠 수 있는 거예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젊었을 때 앞에 나서진 않았어도 바른 말은 하는 편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허물없이 살고 싶은 마음에 젊었을 때저럼은 행동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생겨 떳떳해졌다는 그녀는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은 후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냥 한결 가벼운 모습이었다.

  윤화자 분회장은 분회장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았던 건 아 니라고 했다. 지금도 책임감이 많이 크다고 했다. 학창시절에도 먼저 나서서 뭘 하자고 주도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 한 번 한 게 다예요. 수줍음 많은 보통 학생이었지 나는." 평소 집회에 대해서는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거니까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그 '주체’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 른 노동자들이 힘 있게 믿어주고 호응해주니까 분회장 자리가 스트레스 받아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청소노동자들과 눈을 맞추며 웃는 모습에서 그들의 끈끈한 연대감을 느낄수 있었다.

“학생들이 없었으면 잘릴까봐 무서움에 우리가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녀는 학생들이 있어서 자신이 노동조합에 가입할수 있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처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다짐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제 칼자루를 몄으니까 죽으나 사나 해나가야지."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면서 일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청소 노동자들도 다함께 미소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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