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관광 열풍 속 주민들은 어디에
편집위원 노치원
반찬거리를 사러 집 밖으로 나섰다. 거리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흥정하는 언성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인파를 헤집고 두리번거려 도 식료품 기세는 끝끝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구찌와 프라다의 매 장만이 오가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할 뿐이다.
최근 환경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베니스. 내 사랑I Love Venice〉이 보여준 베니스 거주민들의 현실 이디-. 베니스 인 구는 14만 명에서 현재 6만이 채 안 될 정도로 줄었지만 베니스의 하루 방문객은 10만 명이 넘는다. 남아있는 시민들은 ■이 도시는 밤이면 꺼져버리는 테마공원이 아니며 시민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연기자가 아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거리로 나서야만 했다. 비단 해 외토 픽에 불과한 이야깃거리일까.
“딱 다 떠났지〜 지금 여기 주민들은 다 최근에 온 사람들이지. 동네거리에는 한국인들 찾기도 어려워:’
베니스가 아닌 대한민국 북촌에서 40년을 살아온 윤영자(68) 할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내비쳤다. 할머니의 한숨이 무안하게 지 난 24일부터 26일, 서울시에서는 '북촌 개방 행사를 벌였다. 할머니 옆을 지나가던 한 북촌 주민은 외부인들이 자기 집 마냥 들어오는 상황에서 굳이 무얼 더 개방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성공적인 관광 사업 사례로 유명해진 전주 한옥 마을의 경우 인구가 지난해 말 1500명대에서 올해는 200명 가까이 빠져나갔 다 1 관광 사업의 수익은 그 지역 사회로 돌아온다는 상식과는 반 대로 그들은 왜 떠날까.
누구를 위한 관광지인가
최근 전주에서는 전주중앙초등학교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어이 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전을 주장하는 단체의 홍보 자료에 따른 면 '한옥마을에서 가장 어색한 공간이 전주중앙초등학교가 되었다' 고 한다. 이어서 저 초등학교야 말로 '전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장 크게 저해하는 장애물'이라는 원색적 표현 3도 서슴없었다. 가장 친 숙하고 필수적이어야 함 학교가 마을에서 가장 어색한 공간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왔다.
없어질 위기에 처한 초등학교와는 대조적으로 상업시설은 급격 히 늘어나고 있다. 십 여 년 전인 2005년 전주 한옥마을 근방의 상 업 시설은 83개에 불과했으나 현재 366개로 급증했다/* 현재 한옥 마을 일대에 있는 전통 힌-옥의 수가 총 603 채임을 고려했을 때, 5 한옥 두 채 꼴로 상업시설이 하나 넘게 있는 셈이다.
전주한옥마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주도의 경우 현재 중국계 거대 자본이 몰려 대규모 관광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부터 제주시는 일정 금액 이상 투자한 외국인 및 그 가족들에게 거주비 자 및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6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 도 내 중국인 소유 토지 현황은 2009년 1만 9702 itf에서 올해 6월 말 현재 592만 2327 irf로, 296배 이상 늘었다 7 이렇게 외국자본이 인수한 제주도의 부지들은 수익성 관광 사업으로 이용되는 중이 디-. 제주도에는 현재 8개의 카지노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중국자본들은 추가로 제주도에 카지노를 들이려 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 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이렇게 수많은 자본들이 관광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마을에 들 어서면서 주거 지역의 땅값과 물가는 폭등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변두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K 씨(50)는 마을 중심부의 임대료를 도저히 버털 수 없어 밀려난 가게들이 수두룩하다고 증언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L 씨(35) 역시 북촌의 인 기가 과열되자 옆 동네인 서촌의 임대료까지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경제논리에 따라 떠날 수밖에 없다. 살아가던 주민들은 사라지고 관광객을 기 다리는 상가만이 남았다.
관-광이라는 이름하에 섧의 공간이 점차 대형 산업화되고 있다. 사실 관광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관광이 란 분명 중요한 여가활동 중 하나다. 하지만 삶의 터전조차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에게 가고 있다 게다가 관 광수 입 또한 지역주민이 아닌 대규모 자본이 가져가면서 주민들은 점차 떠나는 추세다. 교육의 공간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있는 마을, 이 불분명한 공간에서 남은 주민들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마을에서 배제되는 주민들
마을 관광지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구사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북 촌 한옥ᄆ표 통영의 동피랑 마을, 전주 한옥마을,경주의 양동마을 등 요즘 대세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마을 관광지이다 조그마 한 마을들의 경우는 너도나도 길에 벽화를 그려 어떻게든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벽화마을만 100여 곳이 넘는다. 보통 벽화마을과 같은 관광 시-업들 은주 민 복지 천 a을 겸해서 진행된다고는 하지만,이와 중에도 주민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마을 관광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위해 촉박하게 일을 벌인다. 벽화 마을 같은 경우 주민들이 실제 로 살아가는 공간을 관광화하는 작업임에도 1년 이내의 시간이 걸 린디-. 보통 비슷한 규모의 사업에서 해외의 경우 길게는 대략 1C)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8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관주도로 진 행하는 과정에 주민과의 의사소통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 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설명회도 실제로는 관변 단체나 이 익 집단 중심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디-. 익명을 요구한 한 북촌 주민은 예정되어있는 ■종로구 주민과의 대화’에 대해. 몇몇 주민을 중심으로 떨어지는 땅값에 대해 항의하는 자리일 뿐 주민들의 이 야기나 고민을 풀어나가는 장이 이닐 거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이처럼 주민이 배제된 관광사업을 벌이다보니 주민 생활공간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다. 북촌이든 전주든 한옥마을 거리에는 휴지 통이 부족해 곳곳마다 쓰레기가 넘쳐난다. 전주 한옥마을의 한 카 폐로 출퇴근한다는 송지원(21)씨는 교통이 너무 혼잡해서 오히려 자신이 관광객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활환경의 침해로 주민들이 받는 고통은 관광사업 추진에 뒷 전이거나 대개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 식으로 논의가 된다. 지난 10월 전주시는 한옥마을 전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확대하면서, 한옥마을 주민에게 1가구 1 차량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9 이 는 주민들의 불편함은 아랑곳 않고 철저히 관광객의 편의만을 위 한 정책이다 실제 한옥마을 거주민인 김미경(22)씨는 전주시의 주 민 차량 제한에 대해 거주민들의 불만이 굉장히 많다고 토로했다 이계 이곳에서 곧 떠날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주 민이 되어버린 셈이다.
퇴색해가는 마을의 모습
"예전에는 한약방거리라고 있었지. 히지만 지금은 거의 다 떠나 고 대형 카페들이 들어섰어. 지금은 그 거리 앞에 "약전 골목’이라 는 조그만 비석만이 남았지"
50년 가까이 한옥마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김남수(74)씨는 떠나간 수많은 한약방들을 회상하며 씁쓸해했다 하지만 그가 말 한 •약전 골목’ 비석은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조차 그 위치를 알지 못하는, 과거의 흔적이 되어버렸다. 한약의 그윽한 향 대신 국적 불명의 갖가지 음식들의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냄새의 자취를 쫓아 고개를 돌리면 한옥의 형태를 갖춘 기이한 기게 들만이 무 성하다.
이 중 가장 긴 줄을 자랑하는 곳은 츄러스를 파는 음식점이다. ■전주을 보러 몰려온 관광객들은 줄을 서서 스페인의 류러스를 먹 기 위해 기다린다. 전주시는 수많은 보도 자료에서 지금과 같은 현 상에 대해 ‘한옥마을’의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다시 베니스로 가 보자. 식료품점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주민은 또 다른 이상 한 광경을 보게 되는데, 베니스의 명물 곤돌라에 미국 디즈니사 의 캐릭터가 타고 있다. '베니스를 보러 몰려온 관광객들은 줄을 서서 미국의 디즈니 곤돌라를 기다린다 이윽고 관광객들은 강변 의 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키마우스와 함께 당당히 외친다. "I love Venice!
점차 마을의 경계가 희미해져간다. 베니스의 곤돌라와 미국의 디즈니, 전주의 한식과 스페인의 추로스, 밀려나는 주민들과 몰 레오는 관광객들. 마을은 희미해지고 소비 공간은 뚜렷해진다. 물론 외부인들의 소비로 지역 경제는 활성화될지 모른다. 지금도 관광 사업을 벌이는 지자체들은 이를 ■성공적 사례’라고 평가한 다. 하지만 관광사업의 진정한 목적은 공동체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유구한 문화와 지역 환경을 보전해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 리는 일이 아닐까. 마을 없고 주민 없는 경제적 수익은 무의미 하 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마을 관광 사업은 본말(本末)이 뒤집힌 채 진행 중이다. 언론에 성공 사례로 소개되는 동안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 간다.
''새마을'에서 정치 가능한 마을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정치란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국가와 자본의 탐욕이 아닌, 마을 공동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문 제를 결정할 수 있는, 정치 가능한 마을은 가능할까.
일본 구마모토현 오구니 마을의 연간 방문객은 100만 명이라 한다 이는 주민수의 110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황폐화된 여타 관 광지 마을과는 달리, 주민 인구의 증감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이 곳 주민들은 외지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 여러 기획을 했다 처음에는 한 두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이나마 변화가 생길 수 록 참여하는 주민들 역시 늘어났다. 그렇게 주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10 주민이 참여하면서 관 역시 협 조하기에 이르렀다. 주민 스스로가 마을의 문제를 침착하게 결정하고, 마을의 매력을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린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박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경험과 노하우를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겠다”며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치켜세웠다 오구니 마을과 달리 새마을은 국가 발전이라는 무궁한 목표를 위해 마을 주민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던, 위로부터의 마을 사업이 다. 굳이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협동이라는 가치를 마을 구성원이 공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협동은 오 구니의 사례처럼 마을 공동체 스스로를 향하지 않고, 당시 유신정권의 정치적 동원으로 이어졌다. 개인이 없는 일사불란한 마을, 반항 없는 마을,그 리고 정치 없는 마을이야말로 새마을'의 본체였다. 하지만 예전을 그리워할 정도로 우리의 마을은 '새마을의 그늘에서 벗어났을까.
여전히 한국의 마을 관광 사업에서 새마을의 뿌리는 이어지고 있다. 주민이 없는 마을 사업은 여전하다. 타인들의 탐욕에 의해 마을 공동체의 삶은 짓밟히는 중이다 교육권을 위협받는 초등학 생부터 왜곡된 마을의 모습을 관광하는 여행객들까지, 관광 사업 화된 우리 마을의 비극적인 풍경이다. 한 학자는 '■관광의 목적은 오로지 무제한의 성장이고, 관광객의 목적은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방문하는 것밖에는 없다”” 고 했다. 관광객은 곧 떠날 사람들이 지만, 주민들은 마을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마을의 삶은 성장이 아닌 지속이며, 지나감이 아닌 정주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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