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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가을겨울, 67호 <모범대학>

거리로 나온 극우, 부재하는 시민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유행하는 극우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편집위원 노치원

  지난 9월 28일, 세월호 추모 리본을 철거하러 가위를 든 사람들이 광장에 모 였다. 해방 전후 악명 높았던 ‘서북 청년 단’의 재건을 꿈꾸며 그들은 거리로 나 섰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일에 맞춰 계획한 그들의 모의는 결국 실패로 끝났 지만 이들의 행보가 단발성 퍼포먼스로 끝나진 않을 둣싶다.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회원들의 이른바 ‘폭식 투쟁’이 불과 몇 주 전 사건임을 떠올린다면, 이 들의 거리 투쟁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많은 보도에서 거리에 나온 이들을 '극우’라는 이름하에 묶어 내었다. 하지 만 극우를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 어 보인다.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을 대개 극우라고 하지만, 민족주의와는 반대 노선인 친일 인사들에게 도 우리는 똑같이 극우라 부른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찬양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도, 자유경제체제 신 봉자 혹은 극단적 반공주의자들에게도. 극우라는 이름표를 서슴없이 붙인다.

  사실 극우란 무엇이다, 라고 분석하는 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의미할 수 있다. 정치적 용어로써 극우를 정의하기 에 어렵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각종 미 디어 및 담론에서는 극우라는 용어를 이 미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극우란 무 엇이다’라는 식의 호기심 어린 탐구보다 는, 극우의 용례를 통해 우리가 극우라 는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반성 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극우라는 친숙한 이미지

  촛불 시위 반발 가스통 위협(2008),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 훼손(2009). 무상급식 관련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난입 (2010),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난입 (2011) 등. 우리가 극우 대중단체 하면 떠올리는 과거의 폭력적인 사건들이다. 사실 되돌 아보면 극우 단체들은 끊임없이 거리로 나왔었고, 종종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조 직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최근 거리에 나온 이들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던 극우의 모습 그대로다. '‘시민들에게 광장을 돌 려 주자”라는 일베 폭식 투쟁의 시작 구호는 어느덧 "김대중 시 XX, 노무현 개 XX” 로 바뀌었고, 우리는 전자가 아닌 후자의 모습으로 그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는 가스통을 들던 할아버지의 연장선일 뿐이다. 과거 중장년층, 노년층 중심에서 몇몇 청년층이 첨가된 구성원의 변화가 있지만, 거리에서 보여준 모습은 적어도 우 리가 기억하고 상상하던 과거 극우 대중 단체의 면모와 다를 바 없었다.

  서두에서 열거했던 민족주의자, 친일 파, 반공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보수주 의 내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여러 집단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극우로 기 억 되기 위해서는 수식어 하나가 더 필 요하다. '극단적’이라는 용어다. 극단적 민족주의자, 극단적 반공주의자, 극단적 자유주의자, 혹은 극단적 반민주주의자. 이로써 우리는 그들을 묶어 극우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과격 혹은 폭력적이라는 성격이 더해지면서. 극우에 대한 이미지는 정상과는 다른 비정상의 위상에 속하게 된다. 가 령 일베와 같이 정치성이 결여된 반사회 적인 언행에도 극우라는 이름을 붙이는 보도들을 살펴보면, 극우라는 용어는 그 저 정치성이 결여된 ■비정상’이라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우리는 이 과격하고 폭력적이라는 뻔 한 이미지로서 극우를 기억하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사실 비정상의 표지로서만 그들을 기억하는 건 일반 대중뿐만이 아 니다. 많은 지식인들 역시 극우단체의 면 모를 단지 하나의 정신병리적인 현상으 로 바라본다. 사회 구조에서 소외된 약 자층의 잘못된 분노 표출로 그들의 행동을 해석하는 건 이미 유행처럼 번져있다. 물론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발 생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경악하는 반응과 더불 어,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들이 ‘어떻게’ 혹은 ‘왜’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에 치 중한 담론의 성행은 극우라 불리는 집단의 단편만을 보게 한다.

  

정치주체로서 낯선 극우

  이러한 ‘비정상으로서 극우 이미지’ 는 그들이 사회-정치적 영역의 바깥에 놓여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해 10월 초, 김기 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보수 성향 시민단 체 대표 10여 명과 비공개 회동을 가졌 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이들을 치켜세웠 다. MB 정권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70여 개 보수단체에 정부차원에서 40여 억 지원을 하고 있으니, 1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지난 10월에는 대북전단 살포에 참여해온 4개 단체에 2년간 총 2억 원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했다는 논란이 일기 도 했다.

  비정상이라고 치부되는 극우대중단체 는 오히려 사회-정치적 영역의 안에서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일 베로 대표되는 청년층과 기존의 극우단 체들은 연합하기 시작했다. 이제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그들을 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물 론 아직 그들은 대중적인 기반을 갖추지 못했고 힘 역시 강하다고 보기에는 무리 다. 게다가 유럽처럼 극우 정당이 등장 하기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양당 위주의 정치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 성급 한 판단을 하기엔 섣부르다. 하지만 중요 한 건 그들이 직접 여의도 정치판에 뛰 어들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치에 이미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단지 과격하고 비정상적인 면모가 극우의 전부는 아닌 셈이다.

  의외로 느껴지겠지만 서북청년단(이 하 서청단)이 활동하던 혼란스러운 해방 당국 당시에도, 지금의 비난담론처럼 그 들의 과격성에 대한 비판은 많았다. 당 시 서청단의 한 갈래인 재건 서북청년단 위원장이었던 문봉제는 군사정권이던 1972년도에 중앙일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 ■'서청단의 성격은 이미 알 사람은 알다시피 철저한 극우였다. 우 익의 최선봉에 서서 닥치는 대로 좌익세 력을 쳐부수는 말하자면 거친 전위 행 동부 대였다. 피비린내 나는 살상, 바로 그 연속이 서청단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당시 일부에서 서청단을 ‘백색 테러단'으로 규정지은 소이도 여기에 있다: 3 지금의 극우 대중단체에 대한 담론처럼 당시 서청단에 대한 여론 역시 ‘백색 테러단’이었다

  이처럼 서청단은 대중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몰고 다녔지만, 정권의 비호 하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 당시 정권은 각종 반정부 시위 진압을 비롯해서 악명 높았던 제주 4.3 항쟁 진압, 심지어 군의 각종 업무에까지 서청단을 투입한다. 이렇게 서청단은 우익 정치세력의 기반을 탄탄히 하는 데 기여하지만, 정부는 사 회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1953년 도에 서청단을 강제 해산시킨다 4 결국 정권의 체제 유지에 이용당한 채 서청단 은 토사구팽 당한다.

  2014년 현재를 돌아보자.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 무성 후보는 ‘강성 노조’의 폐해를 지적하며 “이 시점에서 이들을 두들겨 잡지 않으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5 마치 극우 대중단체에서 즐겨하는 발언과 흡사해 보인다. 실제로 2009년 에 고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 강제철거와 폭력 행사로 유명한 •애국기동단’의 발대 식에서 민병돈 고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좌익들은 말로 하면 안 된다. (중 략) 그런 자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압해야 한다.”6 애국기동단의 과격함 과 폭력성이라는 표지를 제외하고 나면, 저 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차이를 구 별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참고로 애국 기동단은 올해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 4,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럼에도 마치 서청단을 토사구팽 하 던 당시의 정권처럼,지금의 보수 정치세력 역시 극우 대중단체와 종종 선을 긋는 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단체와 엮여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하태경 새 누리다 의원은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 회에 대해 극우 망상증 환자들이라며 강 도 높은 비판을 했다. 8 하지만 ‘노란 리 본을 자르려’는 폭력적인 행위에 담긴 정 치적 함의는 보수정당이 최근 세월호 참 사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별 다르지 안 다. 극우 대중단체의 과격성 덕분에 보수의 입장에서는 저들을 이용하기도, 혹은 선을 긋기도 쉬워진다. ‘서북청년단’에 서 시작해서 '서북청년단(재건위)’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식의 극우 역사는 단지 같은 이름을 공유해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시기를 둘러싼 제반 조건의 유사함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부재하는 시민 그리고 광장

  힘을 얻은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모두가 극우들이 왜 광장으로 나왔는 가에만 주목할 뿐, 그럼 시민들은 왜 광 장으로 나오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일 수밖에 없 다. 광장이 비었으니 극우는 나올 수 있 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겠 다. 이번 세월호와 관련해서 많은 인원들 이 광화문 앞에 나왔지 않았냐고. 항상 주말만 되면 교통마비가 될 정도로 시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지 않냐고. 돌이켜 보면 극우라 불리는 이들의 거리 행진만 큼 시청과 광화문 역시 끊임없이 누군가 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광장은 물리적 공간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버마스에 따른 면 정치적 차원에서 광장은 권력의 과시 적 공공성의 공간임과 동시에 시민적 여 론이 조성되는 공론장이다. 9 광화문 광 장이나 시청 광장의 경우 서울의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공간임에는 분명하다. 이 정치권력과 시민적 여론이 소통할 수 있는 정치적 공공성이야말로 공론장의 핵 심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시민들의 정치 적 커뮤니케이션은 활성화되고 있을까.

  사실 광화문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면모는 여전히 광장의 부재를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현재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정치적 의사소통이 활발한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이라 기보다는 절망적 현실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피해자로서의 경우가 대다수 다. 이러한 현상을 광장의 핵심인 ‘시민 적 여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시민적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게 또한 자주적인 처지에서 발언할 수 있어 야 하며, 그들의 발언이 권력이나 기타의 사회적 압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되거 나 금압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 건이다. 10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들부터 각종 노동자들의 시위까지. 현재 광화문 앞에 선 시민들의 경우 이 전제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해 쫓기듯 거리로 나오는 이 들 아닌가. 민주화 이후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4년 언론자유지수’를 보면 한국은 전체 180개 국가 중에서 57위였다. 국 경황없는 기자회는 한국의 언론자유를 ‘눈에 띄게 문제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미 국의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5월 발표한 언론자유 순위에서도 한국은 지 난해보다 네 단계 떨어진 68위에 머물렀 다. 11 여태껏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광장이 없 어서이다. 정치적인 의사소통 창구가 없는 힘겨운 현실에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광장으로 쫓기듯 나오는 상황. 광화문으 로 사람들이 나옴은 이제 시민사회의 관 성이 되어버렸다.

  이번 일베 폭식 투쟁에서 내건 “시민들 에게 광장을 돌려주자”라는 뻔뻔한 구 호는 지금의 상황을 어김없이 잘 보여준 다. 저 구호에서 시민이란 그저 광화문 이라는 공간을 자유로이 가로지를 수 있 는 사람을 의미할 뿐이다. 오히려 텅 빈 공간을 요구하는 저 구호는 “시민들에 게 광장을 벳자”와 다름 아니다. 광장을 꿈꾸는 자들과 광장을 없애자고 말하는 자들의 역설적 공존은 우리 사회에 광장 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폭식투 쟁이든 서청 단재 건위든 간에 지금의 대중과는 달리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에 대항하여 시민들은 광장이라는 공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일베충 혹은 정신병자라며 냉소하 며 광장 사이를 가로지를 뿐이다

 

광장을 꿈꾸며

  “제 남자 친구가 일베 하는지 의심 스러 워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혹은 현실의 대 화에서 종종 오가는 질문이다. 일베를 극우의 범주 하에 묶는 행태에 따른다 면, 극우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활 속에 서 너무나 흔해졌다. 극우 대중단체로 불 리는 이들의 시위 혹은 폭력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일상적이지 않은가. 냉 소 혹은 모르쇠로 일관하기란 생활 속 평범한 의제들에 대한 반응으로 적합한 태도일지 모른다.

  글의 말미에서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극우를 굳이 정의하자면 ‘정치 없는 극 우’이다.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핵심적이 지만 해로운 속성을 제거한 ‘정치 없는 극우’는 사실 너무나 안전하다. 반(反)사 회적 과격함의 아이콘으로서 극우는 신 기함과 분석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에게 누구나 비난의 돌을 던질 수 있고, 그 앞에서는 누구나 정의가 된다. 그저 냉소하 기 좋은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냉소는 시민들의 정치적. 패배의식과 직결된다. 정치적 패배의식이란 대중이 자신이 갖고 있는 엄청난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보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현상이 다.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던 역사적인 사 례는 민주화 과정에서 무수히 보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그 힘을 믿지 않고 있다. 어쩌면 불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지금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면모는 대중들의 무한한 가능 성보다는, 정치에 대한 절망적 현실에 기 인한다. 거리에 나온 극우는 우리의 편 견보다 현실 내에 강하게 뿌리를 내린 집단이다. 오히려 그래서 광장이 필요하 고 시민이 나와야 한다. 그들은 사회의 바깥에 있는 비현실적 존재들이 아니기 에, 그들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결국 시민들이 정치의 영 역으로 뛰어나온다면 자연스럽게 그들 은 사라지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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