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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가을겨울, 67호 <모범대학>

세월호 사건과 주권의 정치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수유너머 R 연구원 박정수

이제 그만 하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 농성이 76일 만에 청운동에 서 철수했다. 그들이 지키고 있던 것은 장소만이 아니라 특정한 시 간,즉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 시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기억의 시공간(chronotope)을 지키려는 사람과 없애버리려는 사람으로 양분되고 있다. 기억을 둘러싼 이 정치 적 갈등에는 거의 무의식적이라 할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어서 이념이나 논리로는 좀처럼 풀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를 잊으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나도, 슬퍼. 하지만 이제 그만 하자. 제발” 쯤으로 요약된다. 언론에서는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유가족을 향한 은밀한 '증오심’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의 심리상태는 ■정서적 질투’로 더 잘 설명된다. 같은 감정을 공유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상태가 달라진 타자에게 느끼는 질투심 말이다.

  가령,내 아내는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판막’이얇아서 울림이 크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웃기는 장면에서는 남들보다 2% 크게, 2% 오래 웃고, 무서운 장면에서는 남들보다 2% 크고 길게 비명을 지른다. 딱 그 2%의 차이 때문에 매번 앞 뒤 사람들의 비난 어린 시선을 받는다. 겪어 본 사람은 알 텐데, 그 질시(invidia)는 라캉 이 〈세미나〉11권에서 “상대를 산산조각내고 그 독성이 본인에게 까지 미칠 만큼 표독스러운 시선”이라고 할 만큼 날카롭다. 분명히 같이 웃고 울었지만 타인이 자기보다 조금 더 많은 감정을 향유한 다고 느 낄 때 그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다. 그 타자의 ‘잉여-향락•은 자기에게서 빼앗은 몫이 틀림없으며, 그 때문에 자신은 뭔가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 족들이 '갑질’을 하고 있다거나, 과도한 보상을 노린다거나, 다른 정 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주장 이면에는 이런 무의식적 질투가 작 동하는 게 아닐까.

  슬픔의 정서도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8살배기 딸아이가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스럽다. 많은 부모가 그랬듯이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만약 이 아이가 불 의의 사고로 죽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실감 나 게 했다 틀림없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일상이 파탄날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 아마 아내와 나 사이에는 정서적 간극이 생길 거다. 아마도, 나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쪽일 테고, 아내는 여전히 슬픔의 수렁을 허우적거릴 것이 다 그럼 나는 영화관에서 아내를 질시하던 사람들과 똑같이 아내를 향한 증오심을 은밀히 키워갈 것이다 “나도 슬퍼. 하지만 이제 그만 하자”고 점잖게 타이르겠지만 그 이성적인 타이름의 속내는 '내 슬픔의 몫을 빼앗고 죄의식까지 갖게 했다’는 증오심일 것이다. 부부간의 불화는 결국 이혼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식으로 세월호 유가족, 특히 단원고 유가족의 슬픔에 동화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자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스럽고, 누추하나마 가족의 일상이 파괴되지 않은 데 감사하고, 그래서 자녀의 ‘성공’보다 일상의 '행복을 지켜줄 것 같은 교육감 후보 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상상 속 사 2와 세월호 사건 사이 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 유가족은 그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어 떤 의미가 숨어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단지 사 II라면 애도와 보 상만이 남겠지만 세월호 사건에는 그전에 이해해야 할 ‘의마가 남아 있다. 그 사건의 의미(진실)가 이해되지 않고서는 애도를 통한 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해되지 않기에 계속되는 슬픔을 ‘우울증이라 한다면,세월호 참사를 의미 없는 사고로 치부하고 ■■그만 잊자’고 하 는 것은 유가족들을 우울증으로 몰아 대는 2차 폭력이다.

  세월호 참사가 사건■인 이유는 무엇일까? 304명이라는 희생자의 규모와 그중 대다수가 10대 청소년이었다는 특성은 부차적이 다 노후선박을 불법 개조하고. 화물도 초과 적재하고, 평형수도 없이 급하게 몰다가 생긴 인재였다는 사후적 설명도 세월호 사건의 외싱-적 '의미’를 온전히 담진 못한다.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가 외 상적 사건이 된 건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 해경들, 관료들, 정치인 들, 주류 언론이 보인 어떤 ‘태도’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자 너무나 빨리, 야만적 관성으로, 그 ‘사건’을 ■사고:로 치부해 버렸다. 선원과 해경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그 사건의 의미. 즉 배 안에 누가 얼마나 남아 있고 그 생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차피 일어난 사고,나라도, 보이는 사람이나 구조하자고 판단했고, 청해진 해운은 어차피 일어 난 사고,뒷수습이나 하자며 서류를 조작했다. 진행 중인 사건을 이미 끝난 사고로 여기는 야만적인 관성은 ■전원 구조’ 보도라는 전 대미문의 오보를 낳았고, 정부 관료들은 구조를 위한 추가 장비와 인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사건의 사고화’는 침몰 이후 대통령의 태도와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4월 16일 오전 10시 첫 서면보고를 받고 7시간 동안 도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수백 명의 생존자가 배 안에 남아 있다는 뉴스 속보가 5분 간격으로 떴는데도 불구하고, 오후 5시경 중대 본을 찾은 대통령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 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며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다 음 날 4월 17일 생존자 구조는 일치감치 포기한 둣 관성적으로 움 직이는 구조현장에 분노하는 진도체육관의 유가족을 찾은 대통 령은 ''위로”의 인사를 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벌”을 운운했다. 자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배 안에 남아있 는 자식을 어떻게 구조해낼지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 말이다.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는 이미 일어난 ‘사고’였지 진행 중인 '사건’이 아니었기에 남은 건 •위로’와 •수습’뿐이었다. 너 무나 당연히, 분노한 유가족 중 한 명이 “여기가 장례식장입니까? 여기는 구조 상황실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천성적으로 남에게 비 난 받는 걸 두려워하는 박 대통령은 남아서 현장을 컨트롤해 달라 는 유가족의 절규를 외면한 채 거의 도망치다시피 떠나버렸다. 그 순간 세월호의 아이들은 정부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유가 족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trauma)로 자리 잡았다. 

 

예외 상태와 주권

  4월 17일부터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들의 태도 중 의미 있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기대이다. 진도체육관에서 그렇게 버림받은 유가족들은 4월 20일 청와대로를 향해 행진했다 그들은 왜 사고 현장을 두고 청와대로 가려했을까? 그들은 왜 76일이나 청와대 앞 길바닥에서 대통령을 기다렸을까? 청운동 농 성장을 방문했을 때 나는 기자회견 중 한 유가족이 •‘나는 임금님 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돌보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며 대통 령을 '■임금님”이라 부르는 것에 깜짝 놀랐다. 한갓 5년제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한 대통령을 •국왕’으로 여기는 태도가 거북하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로서는 대통령이라는 최고 통치자의 주권적 결정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다.

  조르지오 아감벤이 누누이 강조하듯 주권의 본질은 법에 대한 께외성’에 있다 법을 창설하는 권력이기에 주권은 법 이전에 존재하며, 예외 상태를 선포함으로써 법의 효력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스스로 법을 어기더라도 유효기간 동안 면 책 된다는 점에서 주권자는 법의 예외지대에 있다. 세월호 유가족 은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그 주권 권력에 호소한 것이다. 왜냐하 면,침몰 직후부터 해경이 행사한 현장권력은 무능해서인지, 아니 면 다른 ■의 E :가 있어선지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4월 16일 오전 10시와 11시 두 차례 해군참모총장이 여객선 침몰 구조지원 공문을 통해 통영함에 출동 대기 명령을 내렸지만, 누군가의 명령으로 3시간 만에 돌연 취소됐고, SSU, UDT 등 군 잠수 병력과 국내외 민간 잠수업체의 구조지원도 거부됐다. 해경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04명의 생존자 구조라는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서 지극히 통상적인 규정대로 움직였다. 무능과 부패와 이권으로 얼룩진 그 규정대로. 세월호 유가족은 못 미더운 현장본부에 최고 통치자로서 주권적 '■명령을 내려달라”라고 절규했지만, 비난만 큼이 나 책임도 두려워하는 박 대통령은 그것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콘 트롤 타워가 아니”라면서.

  대통령의 주권에 배신당한 유가족은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예외적인 법 권력. 즉 특별법에 호소했다 특별법은 말 그대로 일반법으로는 다룰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예외적인 법이 다. 그 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조사위원회 또한 예외적인 권력을 통 해 목적을 수행한다. 유가족은 4.16 참사 진상조사위원회가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당 국 회의원 들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면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으며, 야당 의원들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조사위원회는 협상 카드에서 제외시켰다. 헌법에 어긋나지도 않고 국회의원이 지닌 제 헌 적 권한으로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특별법과 제헌적 권력

  새누리당은 그 동안 수많은 진상조사기구가 특별법으로 만들어 졌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전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동 안의 특별법을 특별’ 하지 못하게 만든 선배들의 '잘못’을 ‘근거’로 삼아버리는 것도 모자라 명백히 있는 전례조차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조사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 진 전례는 정말 없었나? 아니다. 있다 비-로 1948년 9월 제헌국회에서 만든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의해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그 전 례다. 일제청산을 위해 제정된 이 특별법은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함은 물론이고 특별 검찰부, 특별재판부, 특별경 찰대까지 두게 했다. 물론, 이 제헌적 권력에 대한 저항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검찰부를 대검찰청 소속으로 하 며 특별 재판관과 특별 검찰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는다는 반민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금의 여당이 특별법을 무력 화하 기 위해 취한 방법과 똑같다. “삼권분리 원칙에 위배된다” "사법체 계의 근간을 흔든다”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뜨린다” •북한만 이롭 게 한다” 등 여론조작 멘트도 똑같다. 하지만 이승만이 낸 개정안 은 제헌국회에서 단숨에 부결됐다. 결국 이승만은 경찰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반민특위를 해산시켰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주의 청산의 골든타임을 날려버렸다.

  이런 명백한 전례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 크다”라고 대답했다. 6개월 전의 일도 벌써 잊은 자가 60여 년 전의 일은 뭘 기억한다고 “그때와는 다르다”는 걸까? 인간으로서 최소 한의 사유 능력을 가진 자라면 60여 년 전 반민 특별법을 통과시킨 시대정신과 6개월 전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한 시대정신이 얼마나 닮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터, 그 둘의 공통점은 이전 역사와의 '단절’ 의지이디*. 일제 식민지 역사와의 단절 의지가 반민특별법을 제정한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세월호 사건 이전처럼 살 수 없다” 는 일반의지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60여 년 전 의 제헌국회가 ‘국가 수립’의 의지로써 반민특별법을 제정한 것처럼 세월호 특별법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의 말처럼 근본적인 “국 가 개조”를 위해 요청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두 상황에서 반복된 것은 기억’을 둘러싼 정치 적 대립이다. 36년 동안 식민지 민족사 안에 얼룩져온 비겁 과 타 락의 “적폐”를 기억하려는 자와 망 각하려는 자의 대립이 세월호 사건을 낳은 우라사회의 비겁과 타락을 기억하려는 자와 망각하 려는 자의 대립으로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을 목도하게 된다. 기억과 망각은 겉으로는 대립하는 둣 보이지만 운동의 차원에서 기억은 망각을 위한 실천이다. 치 욕스런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그것을 망각하기 위 해서는 그 치욕의 중핵을 기억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괴롭다고, 불화가 두렵다고 자기 안의 치욕을 의도적으로 망각하려 할 때 치욕스러운 과거는 스스로를 기억하며 계속 되돌아온다

  여당은 그렇다 치고 왜 야당 국회의원조차 세월호 특별조사위 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데 주저한 걸까? 그들은 세 월호 사건을 기억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기억은 그저 ‘사고’ 책 임자 처벌을 위한, 희생자 추모를 위한 '회상’ 일뿐 세월호 ■사건’ 이전 사회와 '단절’ 하기 위한 실천적 기억이 아니다. 세월호를 침 몰시킨 이전 사회,이전 국가와 단절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 가를 창설할 주체로 자기를 규정하지 않기에 그들은 60여 년 전 야당 국회의원들이 행사한 제헌적 권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제헌 적 권력(constituent power)의 주체이기를 방기하고 이미 제정된 권력(constituted power)의 상속만을 바라는 그들 역시 특 별법이 지닌 특별함, 즉 예외 상태에서의 제헌적 권력을 망각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잠재적으로 최종 주권자인 국민밖에 없다. 유 가족들이 청와대 농성장과 국회 농성장을 접고 나서도 광화문 농성장은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세월호 이후의 주권적 삶

  지난 10월 29일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렇게 절규했다. “대통령님, 살려주세요:’ 살 려달라니? 세월호의 아이들은 이미 죽었고, 유가족들은 살아 있는데 누굴 살려달라는 걸일까? 세월호가 침몰한 후 그와 함께 침몰해버린 가족의 일상을 국회,청와대,광화문 광장과 그 외 숱한 길 위의 삶으로 대체해 버린 유가족들을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는 그 기이한 외침의 출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그 어미 아비들 은 침몰하는 배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영혼으로'‘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친 것이며. 인태범군의 아버지(고 인병선) 처 럼 자식을 따라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살려달라” 외 친 것이다 18번째 생일날에 맞춰 물 위로 올라온 295번째 희생 자 고 황지현 양의 아버지가 “아침마다 지 밥상 차려주다가 요 며 칠 안 차려줬거든요. 생일 밥 먹으려고 나온 것 같아요. 마지막 엄마한테 밥 한 끼 얻어먹고 가려고”라며 죽은 자와의 교감을 이 야기할 때 그 누가 •미신’이라고 핀잔함 수 있을까?

  세월호 시군의 어미 아비들은 지금 4월 16일 그 외상적 시간 (골든타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예외상태의 삶을 살고 있다.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어미 이-비로서,그 모든 일상적 삶의 형식들이 붕괴된 채 오직 죽 은 자와 동화된 생명을 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예외상태에 남 아있는 유일한 삶의 형식은 주권자에게 진실을 호소하는 정치적 삶이다. 국회 본청으로 들어가는 대통령, 그 주권 대행자 앞에서 “살려달라”라고 외치는 그들의 모습만큼 오늘날 국민의 생명을 전 적으로 보호하는 동시에, 전적으로 몰수할 수도 있는 주권 권력 의 실상을 드러낸 장면이 또 있을까? 그들의 모습은 위태로운 일 상생활의 형식들에 매달려 애써 망각한 우리 모두의 잠재적 모 습, 즉 생살여탈권을 휘두르는 주권자 앞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하지 않는가? 

  유가족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대통령을 뒤로하고, 청운동 농성장을 철거하면서 유가족들은 “더 이상 대통령에게 애걸하지 않겠다:'‘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처절한 불신임 속에서 그들은 이제 스스로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위한 인민주권 을 행사할 것이다. 더 이상 주권대행자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겠 다’는 그 주권적 결단 속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세월호 ‘이후’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가만히 기다리다 죽어가는 세월호의 삶을 청산하는 과제는 이제 ‘정치권’을 벗어났다.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반쪽짜리 특별 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고 •정치권’은 세월호 사태를 정리해 버 렸다. 정치권의 ‘핫한’ 이슈만 쫓아다니는 언론은 더 이상 세월호 사건을 현안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세월호 현수막과 함께 세월 호의 기억을 걷어내자는 여론만 기사화될 뿐이다. 이 '망각의 중 력’은 세월호 시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대문자 인민(People)으로부터 분리시켜 소수 인민(people)으로 배제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배제의 작용은 동시에 기억의 연대를 더욱 선명하게 만 든다. 기업의 이윤 논리 속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국익의 논리 속에서 삶의 근거지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세월호의 기억을 묶으면서 유가족들의 기억 투쟁에 연대하고 있고. 앞으로 도 더욱 연대할 것이다.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들 은 고립된 기억이 강요하는 우울증으로부터 탈출할 것이고, ■순수 유가족’이라는 가증스러운 이데올로기를 깨고 세월호 사건의 정치 성을 자각해 나갈 것이다. 자본을 믿고,국가를 믿고 가만히 기 다리는’ 삶을 청산하는 도정에 누가 힘*께 하는지, 누구와 함께 그 세월호 ‘이후’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함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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