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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가을겨울, 67호 <모범대학>

선거운동원 에세이, 길 위의 정치학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편집위원 제민수

대학 로망

  누구나 대학생 때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해외 배낭여행, 내일로 기차 여행, 동아리 활동,캠퍼스 커플, 대외 활동, 자격증 취득, 악 기 연주, 다이어트 등. 거창한 것부터 소소한 것까지 사람마다 다 양한 대학 로망이 있다. 나 또한 많은 대학 로망이 있다. 특별한 것으로는 전국 명산 등반하기, TV 토론 프로그램 방청객 출연하기, 야구팀 원정 응원가기, 합창단 활동하기, 전공 관련 세미나 개최 하기 등이 있다. 능력이 부족해서든 의지가 부족해서든 아직은 이 루지 못한 대학 로망이 더 많다.

  이런 나의 특별한 대학 로망 중 하나가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 였다.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 길 위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두꺼운 정치학 전공 교재가 가르쳐주지 못하는 살아있는 정치 학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단순한 유권자가 아닌 선 거운 동원으로서 선거 과정을 조금 더 깊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 앗다. 

  선거는 자주 치러지지만 학기 중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기 회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여름방학 때 기회가 찾아왔다. 6월 지방선거 이후에 7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는 소 식이었다. 중앙대와 나의 자취방이 위치하고 있는 동작을 선거구 에서도 선거가 열리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이었다.

  

선거 D-19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후 줄곧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를 찾아봤 다. 하지만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이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서도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뒤늦게 출 마를 결정하는 바람에 선거대책본부의 구성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 운동을 하고 싶었다. 어떤 정당, 어떤 후보이든 그에 상관없이 선거운동원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고 다양한 정당의 선 거운동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운동을 한다면 양심에 걸리지 않고 선거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 자체를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후보들의 정당 홈페이지를 탐색해 도 관련 공지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초조한 마음에 선거사무소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어느 당직자가 선거운동원을 모집하는 중이라며 선거사무소로 와서 얘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그날 오후 남성역 근처에 위치한 선거사무소를 찾아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성역 1번 출구를 나서자 선거철이 임박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길 양쪽으로 커다란 선거 현수막을 내건 후보들의 선거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었다.

  지하철역 출구를 나와서 길을 걷다 보니 정의당 노회찬 후보의 선거사무소가 보였다. ‘지금 국회에 꼭 필요한 사람’, ‘50년 된 낡은 불판을 갈겠습니다.’라는 선거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 X 파일 떡값 검사 명단 폭로로 의원직 상실, 진보 정당 대표 역임, 서울 사 장 출마 등 그의 진보 정당 스타 정치인 이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무능한 거대 양당에 한 석 늘려주는 것보다 군소 정당이지만 일 잘하는 사람 한 명을 국회로 보내 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하 지만 노회찬 후보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 하더라도 그를 잘 모르 는 유권자들에게는 왜 그가 지금 국회에 꼭 필요한 사람인가를 설 명하지 못했다 또한 ‘50년 된 낡은 불판을 갈겠습니다:는 무능한 거대 양당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겨냥한 말로 보이지만 그 사람들이 정의당을 대안 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말이 다 50년 된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고기가 까맣게 타버려서 맛이 없겠지만 불이 약한 불판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군소 정당도 마찬가지다.

  어느 빌딩의 5층에 위치한 노회찬 후보의 선거사무소로 찾아가 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후보의 선거 벽보로 도배되어 있었다. 선거 사무소 문 앞에는 후보와 똑같은 크기의 스티로폼으로 만든 후보 모형이 나를 맞이했다. 최근에는 선거사무소를 편안한 카페 형태로 꾸미기도 하는데, 후보 가급 하게 출마한 것을 보여주듯 큰 사무 실 내부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컴퓨터와 복사기 몇 대만 덩그러 니 놓여있었다. 그래도 작은 현수막들과 포토월(Photo Wall)이 이 곳이 선거사무소임을 말해주었다.

  "동작을 지역에서 얼마나 거주하셨나요?"

  아까 전화를 했던 당직자와 면접 같은 대화를 나눴다. 그 당직자 가 나에게 선거운동원 지원동기를 물어본 후 선거운동원에게 필수 적인 자격이자 나에게는 치명적 약점인 질문에 대해 하였다. 나는 상도1동의 유권자이기는 하지만 고작 5개월 정도 거주한 상태였다. 민망한 마음에 나름의 장점을 피력하고자 끄집어낼 수 있는 장점 은 다 이야기했다. 내가 해당 선거구에 위치한 대학교의 학생이며,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더 민망해졌다. 하지만 당직자는 나의 약점을 더 깊이 찔렸다. 

  “원래 선거대책본부에서 선거운동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거주 기간이 아니라 지역의 네트워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지역에서 2-30년씩 오래 거주하시고 활동하시는 아주머니들을 선호하죠. 선거운동 경험이 있다면 더 좋고요. 아시다시피 저희도 기반이 부족한 지역에서 급하게 선거 준비를 하!! 있기 때문에 작은 네트워크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지원만 하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거대책본부의 어려운 상황도 이해되었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 미안했다

  “그렇지만 저는 대학생들이 한 번쯤은 선거운동을 해봐야 된다 고 생각해요. 요즘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도 없고 선거운동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하면서 배우는 것이 굉장히 많거든요. 흠.. 일단은 회의를 해보고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릴게요.

  다행히 당직자가 나를 좋게 봤던 것 같다. 한숨 돌렸다, 나는 불 안 함과 기대감을 함께 안은 채 밖으로 나섰다

 

선거 D-16 새내기 선거운동원

  나는 선거사무소 방문 이후 연락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손에 달 고 살았다 3일이 지나서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아싸!’ 그 문 자를 본 순간 내 마음속에 박혀있던 걱정은 사라지고 하루빨리 선거운동을 하고 싶다는 설렘이 가득 찼다

  잠시 후 당직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선거운동 경험이 없이 니 공식 선거운동 전에 연습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흑석시 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당직자와 내 또래의 선거운동원 한 명이 있었다. 아직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평범한 옷차림으로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명함을 나눠주고 후보에 대 한 홍보를 가볍게 하자고 했다. 일명 ‘구전(□傳) 홍보’ 말이다.

  처음에는 당직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하는지 지 켜봤다. 역시 당직자는 선거 경험과 배경지식이 많다 보니 사람들에 게 명힘-을나눠주면서 자연스레 구전홍보를 이어나갔다. 기본 적으 로 후보의 출마 사실을 홍보하고 이후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홍 보 시간이나 내용이 달라졌다.

  당직자는 나에게 혼자서 인사를 해보라며 명함 몇 장을 손에 쥐 어 주었다. 너무 쑥스러웠지만 장사하는 가게 앞에서 병풍처럼 가 많이 서있을 수도 없었기에 근처에 있던 건어물 가게 사장님께 인 사를 건네며 명함을 드렸다. 인사도 뻣뻣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 다. 민망함을 떨쳐내고자 사장님께 질문을 했다. 선거운동원이 할 만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솔직한 지역 여론을 듣고 싶었다.

  “저.. 이번에 누구 뽑으실 거예요?”

  “에휴.. 어느 철새를 뽑느냐 그 문제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

  건어물 가게 사장님의 냉담한 대답에 나는 더 민망해졌다. 하지만 건어물 가게 사장님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동작을 지역은 몇 년째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민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낙하산 공천으로 지역에 연고가 없는 후보들이 출마했다. 이번 선거도 동작을 지역의 국회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해서 빚어진 일이었다. 따라서 철새 정치인이 아닌 지역에서 오래 활동 해온 지역 일꾼이 출마하기를 바라는 여론이 팽배했다.

  “아니, 동작구가 거쳐가는 정거장도 아니고 맨날 동작구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말해 놓고는 공약도 제대로 안 지키고 떠나버리잖아?”

  건어물 가게 사장님은 더 말해봐야 뭐하겠냐며 손을 내저으셨 다. 건어물 가게 사장님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들이 철새 정치인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도 주민들의 기대를 배반하며 그들의 마음을 꽁꽁 얼려버렸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지역에 연고가 없거나 부족했고 후보 등록일 직전에 출마를 결정하면서 급하게 선거 준비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약을 만들 수 없었다. 해당 지역과 주민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어느 지역에서나 내걸만한 뻔한 공약이나 지역의 시•구의원 공약을 재탕하는 경우 가 많았다. 정당들이 당리당략만을 고려한 채 유권자들의 수요를 무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에 갑의 횡포를 비판하던 정당들이 정작 선 거에서는 유권자들에게 갑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

  그날 내가 평소에 자주 들리던 짜장 마루, 순대 나라, 이천쌀밥 둥 여러 식당과 그 외에도 부동산, 미용실 등 흑석시장 라그 일대를 누볐다. 처음에는 가게에 들어가더라도 번개와 같은 속도로 인사하 여러모로 선거 결과에 대한 전망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날만큼며 명함을 대충 나눠드리고 뛰쳐나왔다. 그래유;계속하다 보니 점차 여유가 생기면서 구전홍보에 제법 자신이 생겼다 ‘학생은 당원이에 요?’ ‘후보자 들이에요 7 *학생이 벌써부터 정치판에 뛰어들었네.’ 가끔은 나를 붙잡고 정치에 대해 길게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나절 정도 선거운동 연습을 했다. 선거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고민도 생겼다. 정치의 ‘정’ 자만 들어 도 멀리 돌아가거나 역정을 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정 치혐오라는 두려움을 남긴 채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선거 D-14 다짐

  공식 선거운 동 시작 하루 전, 선거사무소에서 선거운동원 사전 교육이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20여명의 선거운동원 대부분이 4,50대 아주머니들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아파트 반상회에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20대이거나 선 거운동원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3명 밖에 없었다.

  동별로 팀을 구성했는데 나는 상도1동 팀이었다. 우리 팀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상도동에서 20년 넘게 거주하셨고 선 거운동 경험도 많으셨다.

  선거운동원들이 받은 교육 자료에는 정당, 후보의 경력과 공약, 선거대책본부의 기조와 조직도 그리고 유권자들에 대한 홍보 논리와 응대법 등이 소개되어 있었다. 홍보 논리에는 후보가 동작을 선 거구에 출마한 이유, 당선되어야 하는 이유 등이 설명되어 있었고 특히 야권 단일화 관련 내용이 많았다 응대법에는 ‘내가 후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임하자: ‘유권자나 다른 당의 선거운동 원들과 절대 감정적 대응이나 논쟁을 벌이지 말고 상대 후보에 대 한 비방을 하지 말자.’ ‘외부에 유세 일정을 공개하지 말고 후보가 참석할만한 행사 일정을 발견하면 선거대책본부에 보고하자 (동네 노래교실이나 복지관. 경로당 행사)’ 둥의 내용이 있었다. 일반적인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 기호 4번 노회찬입니다.’ 였으며 시간에 따라 아침에는 ■좋은 하루 되십시오.’ 저녁에는 ‘수고하셨습니다.’ 였 다. 상황에 따라 인사가 바뀌기도 했다. 인사자세는 허리를 75도로^ 구부리면서 상대방의 시선을 마주치며 눈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저녁에는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었 는데 그중에는 TV에서 많이 보던 정치인들도 있었고 호남 향우회 등 각종 지역 단체 대표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기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거 D-13 마주침

  드디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7시쯤 숭실대입구역으로 갔다. 선거운동의 필수품인 선관위 표찰 을목에 걸고 후보 이름과 기호가 새겨져 있는 노란 캡 모자와 조끼를 착용했다. 촌스러운 복장이었지만 덥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선 거대 책본부에서 피켓을 가져다줬다 아주머니들과 당직자 한 명과 함께 지하철역 출구에서 출근인사를 시작했다. 당직자가 ‘지금 국 회에 꼭 필요한 사람’ 또는 •노회찬을 국회로’라고 선창 하면 나는 아주머니 틀과 함께 기호 4번 노회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로봇처럼 인사했었다. 처음에는 서로 인사 박자를 잘 맞추지 못해 서 힘들었다. 다른 당의 선거운동원들과 마주 보고 인사를 했는데 서로 인사가 겹치자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선거 경험이 많은 아주 머니들께서 나에게 첫날부터 힘을 빼지 말라고 조언해주셨다.

  ‘지방선거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선거야?’ 출근하는 사람들의 바쁘고 피곤한 얼굴에서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을 더 짜증 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 다. 그래도 5,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피켓에 관심을 가지거나 선 거운 동원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셨다. 하지만 2,30대 사람들은 피 켓에 짧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무심하게 지나가 버폈다. 선거 때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눈길 한 번 달라하고 한 마디라도 들어달라고 호소하지만 유권자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귀를 틀어막고 무시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거 가 끝나면 정치인과 유권자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종 종 볼 수 있다.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심지어 그런 자신을 쿨하 다고 생각할지라도 선거 때만큼은 주인 노릇을 해야되는데 그마저 도 제대로 하지 않는 슬픈 현실이다.

 

  두 시간 동안 똑같은 자리에 서서 로봇처럼 인사를 하니 다리 가 터질 것 같았다 또 제법 큰 피켓을 들고 인사를 하느라 팔도 저 렸다 차라리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덜 힘들었다. 우리 팀은 선거운동 방식에 있어서 시간보다는 효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유권자!■의 이동이 많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출퇴근 인사를 길게 했고 유권자들의 이동이 적고 날씨가 더운 점심시간에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낮에는 상도1동 내에 위치한 경로당을 돌아다녔다. 경로당에 가서는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가끔씩 설거지를 대신해드렸다. 경로당에 가면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었고 냉커피를 얻어 마실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어떤 후보가 오든 환대를 해주셨기 때문에 선거운동원으로서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이다. 한편으로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어르신들께서 어떤 후보이든 관심을 가져주시고 환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어르신들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정치적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저녁에는 숭실대입구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퇴근인사를 했다. 국회의원실 보좌관님도 팀에 새롭게 합류하셨다. 비가 조금 내 려서 벤치 지붕 밑에서 인사를 했다. 그때 어느 분께서 자신이 노 회찬 후보의 팬이라며 빵과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나타나셨다. 하 루 종일 사람들의 무반응과 냉담한 반응에 지쳐있던 나로서는 정 말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선거운동원들이 열심히 인사하는 것보다 후보가 유권자와 직접 악수라도 한 번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선거운동 원들이 늦은 시각까지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서 유권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것도 굉장히 효과적이다. 오늘 아침 출근인 사처럼 인위적으로 하면 득표는커녕 감표 요인이 될 수 있기에 얼굴 표정과 말투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 첫날은 무리하지 않으려 했지만 밤 10시까지 선거운동을 한 탓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선거 D-10 숙련과 응용 사이

  사흘 동안 선거운동을 하니 제법 익숙해졌다 여전히 팔다리가 아팠으며 발에 물집이 생겨서 걷는 것도 힘들었다. 또 초복, 중복 의 뙤약볕 아래에서 옷이 땀에 절어서 하얗게 될 때까지 돌아다니 느라 기운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몸이 지동적으로 움직이 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바로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하러 나갔 으며 집에 들어와서 쉬다가도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서 다시 나 갔다. 정말 힘들 때는 ‘하루 일당이 7만 원이다. 오늘 하루만 버티면 또 7만 원을 버는 거다. 13일이면… 7x13 = 91만 원이구나!’라며 스 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선거운동원 아르바이 트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힘들 때 가장 좋은 최면 방법이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상도 1동 내의 여러 등산로를 돌아다녔다. 언덕에 가까운 산이었지만 등산을 하면서 인사를 하니까 ‘여기까지 선 거운 동 하러 왔어요?’라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복잡하고 시 끄러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아닌 좁고 조용한 등산로에서 인사를 하니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확실하게 인사를 할 수 있었 다. 그래서 좋든 싫든 사람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욕설과 시 비만 아니라면 무반응보다는 훨씬 좋았다.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를 집중 공략했다 건물이 크고 사람과 차가 많은 교회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해당 선거구 유권자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가‘알짜 배가 교회이다 상도 1동에는 그런 알 4 배기 교회들이 많이 있다. 다행히 주말에는 당원들이 나 자원봉사자들이 지원사 격을 해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팀으로 나눠서 각자 배정받 은 예배 입구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교회가 1부 2부 3부 계 속되기 때문에 매 예배 시각 전후 20분 동안 선거운동을 했다.

  나흘 동안 평일과 주말 이틀씩 선거운동을 해보니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새내기 선거운동원의 몸은 숙련되었고 머리는 나름대로 운용의 주 알판을 굴리기 시작했다

 

선거 D-6 사활을 건 묘수 또는 곰수

  선거운동을 하면서 유권자들로부터 하루에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은 ‘야권 단일화 안해요?’ ‘야권단일화 안하면 해보나마나한 선거 아닙니까?’ ‘또 야권단일화한다고 중간에 사퇴하지 마시고 끝까지 완주하세요!’였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 따라서든 그 반응은 달랐지만 야권단일화가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인 것은 자명했다. 사전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단일화에 대한 요구나 질문이 많아져서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하지만 선거운동원은 선거대책본부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거운동원 교육자료에서 시키 는대로 ‘저희는 야권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권자 여 러분들께서 야권단일화가 성사되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원론적 인 답변 밖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사전투표일 하루 전 날 주요 야권 후보 간의 야권단일화아 성사되었다. 야권단일 화 성사 사실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야권 단일화 방식을 놓고 협상이 결렬되는 등 여러 가지 불협화음으로 인 해 유권자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몇 년 전부터 야권 단일화는 선거에서 단골메뉴였다. 특히, 야권 후보가 여러 명 출마했다면 선거 과정에서 통과의례가 되고는 한 다. 야권 정당에게 야권단일화는 선거 때마다 그들의 사활(死活) 이 걸린 문제다 나는 대한민국의 선거제도가 만들어낸 돌연변이 가 야권단일화라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도 선거 때마다 이런 식의 야권단일화는 없다. 소선거구제 폐지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이 돌연변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식 의 야권 단일화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 야권단일화에 대해 야 당은 여러 가지 대의명분을 갖다 붙여서 야권 단일화를 •묘수’로, 여당은 그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꼼수’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여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준다. 하지만 당장에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유권자들이 꼼수의 의도와 논리적 허점을 읽어내지 못하면 꼼 수 역시 묘수로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꼼수임을 파악한다면 정치 인들에게 꼼수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 노선은 다를지라도 평소에 연대를 꾸준히 실천하거나 선거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심판론을 내세우는 것이라 생각되면 그것은 묘수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만 급하게 연대를 약속하고 선거에서 대안 없는 심판론을 내세워 승리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되면 그것은 꼼 수라고 판단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묘수와 꼼수의 차이는 진실과 거짓의 차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로서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 단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에 대한 유권자 들의 판단은 선거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거 D-1 마지막 스퍼트

  사전투표일 이후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열흘 넘게 선거운 동을 해서 힘이 빠진 탓도 크지만 사전투표 기간 동안 너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탓이 더 컸다. 하지만 본 투표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할 것이기 때문에 남은 힘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국회의원들이 동별로 지원을 나와서 함께 지도를 펼쳐놓고 동선을 표시해가며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 의원 이 지원사격을 나오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선거운동원들 이 유권자들에게 ■국회의원 누구이십니다:라고 굳이 설명하지 안 아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인지도가 낮은 의원이 라도 선거운동원들이 수 없이 떠드는 것보다 국회의원이 짧은 몇 마디 하는 것에 유권자들이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 날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선거운동을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상도 1동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선거운동원, 의원실 보좌 관, 당원 등 모두 모여서 서로 수고했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 들,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었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나는 체계적이지 못했던 선거운동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무래도 군소정당이라서 지역기반이 없다 보니 선거정보에 있어서 많이 뒤처졌다. 다른 당의 후보들은 지역 내의 각종 직능단체나 큰 행사와 작은 모임도 잘 찾아다녔지만 우리 측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모 습에 애가 탔던 어떤 지지자가 아파트 부녀회 모임 일정을 직접 알 려 주는 일도 있었다. 선거대책본부에는 사공이 너무 많아서 선거운 동 방식, 선거운동 시간과 장소 그리고 선거 피켓의 내용과 형식 등 에 있어서 선거운동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잦았다. 군소정당 선거운동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값진 서러움이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를 혐오하거나 후보와 정당에 대해 불 만을 가진 사람들이 죄 없는 선거운동원들에게 욕하고 시비 걸어서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짜증 나고 대들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조금이나마 감정노동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났다 빵을 사주던 아저씨, 음료수를 사주던 아주머니, 격려해주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다음에 내가 일반 유권자로서 다른 선거운동원들을 W 였if * 중앙 마디 하는 것에 유권자들이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만나면 ‘수고하십니다:라는 한마디라도 꼭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 0116 마지막 날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선거운동을 하고 마무리를 한마디가 선거운동원들에게는 큰 격려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 않겠다는 홀가분함과 ‘언제 다시 이 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라며 조금 더 열심히 하지 못한 후회가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모든 선거운동이 막을 내렸다.

  

선거 D-DAY 인생 공부

  투표 당일 오후, 나는 투표 참관을 하기 위해 집 앞 아파트 지하 에 위치한 투표소로 갔다. 각 후보 별로 모든 투표소마다 오전, 오 후 시간으로 나누어 2명의 투표참관인을 배치해야 한다. 투표참관 인은 투표소 내의 전반적인 감시를 하는데 특히 유권자들이 투표 함에 투표용지를 잘 넣는지 감시해야 한다.

  선거운동원이나 당원만으로는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선거운 동원들을 통해서 동네 이웃들을 투표참관인으로 배치하는 경우 가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투표참관인으로서 선거 감시를 제 대로 할지 걱정되었다. 심지어 자기가 어느 당의 투표참관인으로 왔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오후 1시부터 투표 종료 시간인 8시까지 무려 7시간 동안 투표참 관을 하는데 투표소 시설이 열악해서 하나의 큰 소파에 모든 투표 참관인들이 앉아 있어야 했다. 오전 내내 투표율이 올라갔지만 날 이 더운 낮에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끊어져서 투표율이 주춤했다.

  8시가 임박했고 투표율은 40% 중반을 넘어섰다. 어떤 유권자가 신분증을 놓고 오는 바람에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던 그때, 8시 정각이 되자 투표소의 문이 매정하게 닫혔다. 각 후 보의 투표참관인 2명 중 1명은 개표소까지 선관위 직원,경찰과 함께 차를 타고 투표함 이송을 해야 한다. 우리 측에서는 내가 투표함 이송 작업을 하기로 했다. 투표함이 제대로 봉함되었는지 확인하고 확인 서명을 했다. 개표소에 도착하니 개표작업이 정해진 절 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개표참관인 경 험도 해보고 싶었다.

  개표함 이송 작업을 완료하고 선거사무소로 곧장 달려갔다. 이 번 선거에서 개표방송의 출구조사는 따로 없었다. 때마침 후보가 TV 뉴스 생중계 인터뷰 중이었다 기자가 사람들에게 인터뷰할 때 후보 뒤에 서있어 달라고 요청해서 나는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채로 TV에 출연했다.

  개표소에서 투표용지 분류기가 고장 나서 개표가 다소 지연되어 다. 개표는 거소투표와 사전투표 그리고 일반투표 순서로 진행된 다. 거소투표는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서 자신의 거소에서 우편으로 투표하는 것이다. 거소투표는 야권 단일화가 성사되기 전에 실시되었기 때문에 우리 측이 엄청난 차이로 뒤처졌다. 하지만 사 전투 표와 일반투표가 개표되자 상당히 따라잡앗다. 작은 지역구 라도 동별로 그 세대나 계층의 구성에 따라서 득표율이 다르기 때 문에 어느 동네의 투표함이 열리느냐에 따라서 득표율이 달라졌 다. 개표 이후 계속해서 야금야금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2%(900여표) 차이로 패배했다. ‘아...’ 선거운동을 시작할 때에 비해서 정말 선전한 결과였다. 차라 리 큰 표 차이로 패배했다면 그렇게까지 안타깝지는 않았을 것 같 았다. 원래부터 후보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선거운 동을 시작한 사람도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자신의 후보가 당선되길 바란다. 선거 승리에 따른 보너스? 자신이 13일 동안 고생해서 선 거 운동했던 후보의 당선을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많던 기자들이 전부 선거사무소를 빠져나갔다. 나도 선거사 무소를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길 맞은편 승리한 후보의 선거사무소 앞에는 지지자와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선거 패배가 이번 경험에 있어서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하진 않는 다. 승리는 승리대로 패배는 패배대로 모두 의미 있는 경험이다. 선 거가 끝난 이후 내가 복기하고 싶은 것도 후보의 패배 원인이 아니 라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 경험이었다.

  선거운동원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고자 선거사무소를 찾아와서 님-성역 1번 출구를 나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그 출구 앞으로 왔다. 길 위에서 살아있는 정치학을 배우고자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였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값 진 것을 배웠었다. 경로당과 복지관의 어르신, 시장과 상가의 상 인, 주택가와。 1파트의 주민, 교회의 신자, 등산로의 등산객, 어린 이 집과 유치원의 학부모님 등 작은 지역이었지만 그곳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 앗고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마주 치 며 세상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세상 속에는 저마다의 인생 교훈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어쩌면 길 위의 정치학 이 아니라 길 위의 인생 공부가 아니었을까? 일하고 돈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러한 인생 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 트가 얼마나 될까? 나는 깊은 보람과 짙은 여운을 함께 간직한 채 또 다른 대학 로망을 떠올리며 지하철역 출구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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