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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4 가을겨울, 67호 <모범대학>

군의 50가지 그림자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군인권센터 사무국

  대한민국 군대는 바람 잘 날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매스컴의 이목을 끈 대형 사건들만 요약해보더라도 올해는 그 면면이 몹시 화려하다.

►연초에는 성추행을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故 오 대위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군들의 인 권과 군대 내 성범죄가 군의 중대한 개선과제로 대두되었다.

► 5월 말에는 공군 복무 중 목숨을 끊 은 故 김지훈 일병의 유가족들이 헌병에 대한 의혹을 공론화시켰다. 사건은 가해자로 지목된 한 모 중위가 유명 연예인의 친동생으로 밝혀지면서 일 파 만파로 퍼져나갔고, 결국 공군본부 로부터 철저한 재수사 약속을 받아내 는 일이 있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22일, 이 번에는 22사단에서 소위 ‘임 병장 사 건’으로 잘 알려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두 자릿수의 사상자 를 내고서야 마무리되었다, ‘임 병장 사건'은 총기 사고들과 달리 가해자가 전역을 겨우 며칠 앞둔 말년 병장이었 던 것으로 밝혀져 사람들에게 충격을 심어주었다. 이 사건에서도 문제의 핵 심은 병영 내에서의 괴롭힘과 따돌림. 병사들의 처우 및 관리 미흡에서 찾아볼 수 있다.

►7월 말부터 8월 초에 걸쳐서는 28사 단 故 윤 일병 구타사망 사건의 진상과 군 당국의 은폐 시도가 군 인권 센터의 폭로를 시작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윤 일병 사건은 이전의 어떤 군 관련 사고보다도, 광범위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엽기적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관심은 뒤이어 열린 군사재판으로 이어졌고, 이는 군의 열악한 인권현황과 군사법원의 비 합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형성시 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 10월 중순 들어서는 현역 사단장이 부하 여부사관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유례없는 긴급체포 조치에 처해졌다. 특히 피해 여부사관의 경우 이미 기존 부대에서 성추행을 당한 전력이 있어,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사단 본부로 배 치시켰다고 알려졌는데, 오히려 사단 장 스스로에 의해 성추행 피해가 되풀 이 되다니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이등병 시절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져, 2년 가까이 식물인간으로 지냈던 구상훈 이병은 기적 적은 로 의식을 되찾았다. 구 이병은 일어나자마자 선임들이 본인의 머리를 각 목으로 구타했기 때문에 쓰러졌던 것이라고 증언했다. 군 당국의 당시 사 건 수사기록은 구타의 가능성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는 동기생활관 제도를 운영하는 전방 8사단의 모 부대에서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는 동기들 사이에 8개월에 걸 쳐 성추행 및 가혹행위가 일어나고 있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 이뿐 아니다.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수사는 해를 넘겨 아직까지 이 어져오고 있고, 이번 국정감사의 뜨거워 운 감자였던 방산 비리 및 전관예우 논란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중이다.

  자, 지금까지 2014년 한 해 동안 세간 의 화제에 올랐던 군의 '그림자’들을 간 약하게 정리해보았다. 정말이지 읽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맹렬하고 기나긴 리 스트이지 않은가. 어떤 그림자는 명료하 게 드러났고, 어떤 그림자들은 아직도 사건과 행간 사이에 숨어 있다. 이제 서 로를 위해서라도 팩트 위주의 딱딱한 사 건일지 식의 서술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 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 서 먼저 한 가지 물음을 짚고 넘어갈 필 요가 있다.

 

어떤 착시

  그러니까 이런 질문이다. 이 무수한 그림자들은 언젠가부터 급작스레 자라 난 것일까, 아니면 꾸준히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가 이제야 발견되기 시작한 것 일까? 얼핏 생각해서는 어째 근래 들어 서 유난히 많은, 또 중대한 사건들이 군 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하 기가 쉽다. 단순히 수치를 통해 살펴보더라도 올해 벌어지고 있는 군 관련 사 건의 빈도와 화제성은 결코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약간의 착시가 작용하고 있음을 유념 하 여야만 한다. 군 통계의 필연적인 착시 말이다.

  군대 내 성범죄 사건 통계는 군 통계 의 문제점을 뒷받침해준다. 기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군에 보고된 성범 죄 사건의 발생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 여 2011년 정점을 찍었다가 조금씩 내 려오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표면적으로 만 해석한다면, 증가하던 성범죄 문제가 2011년을 기점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범죄에 대한 통계는 인권 개선상황과 무관하게, 발생 건수와 보고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안 다. 이는 내부로부터의 고발이 어렵고, 투명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군 대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더욱 주의해서 보아야 할 대목이다.

  비슷한 예로 군복무 중 사망자의 자 살률에 대한 통계가 그렇다. 군 자살률 은 90년대보다 2000년대의 자살율이, 그리고 2000년대보다 10년대의 자살 률이 높다. 이 또한 겉보기에는 90년 대의 군대가 지금보다 덜 가혹했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에 는 故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처럼,사 망자들의 사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은폐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안들을 고려하지 않고 서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해내기 쉽다. 때문에 통계적으로 접수된 신고의 양 만을 고려하여 군내 성범죄가 증가해 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문제로 시끌벅적한 군을 보며 “내가 복무할 적에도 군 문제가 이렇 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는 예비역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금처럼 군 문제가 매스컴을 통해 빈번하게 보도되면서 지속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로 군의 구조적인 병폐들이 요즘에 와서 심각해진 것이며 오늘날의 군 인권 실태가 십수 년 전의 그것보다 도 엄혹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근래의 ‘강한 군대’ 기조가 병영문화 의 혁신과 개선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군 복무 여건 이 현재보다도 나았다는 주장은 매우 우 려스러운 인식이다. 여기에는 사실과 부 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군이라는 조직은 자정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 무수한 인권침해 사례들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중의 일부가 외부로의 알려져 서 군대 관련 사건의 절대량을 증가시켰 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당하지 않을까.

 

강한 친구들, 혹은 조금 나쁜 친구들

  군에서의 인권침해가 나날이 심각해 져만 간다는 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군대에서 드러나 는 인권침해의 양상마저 과거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반을 기점으로 군대 내 인권침해 사례 들은 뚜렷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과 거의 군대에서는 입대 순서, 입대 방식에 따른 우열을 바탕으로 하는 군대 본 연의 질서에 충실한 폭력이 되풀이되었다. 하급자가 암만 기질적으로 사납고 간부 및 병사들로부터 두루 인정받고 있다고 하여도, 상급자가 정말이지 기 질적으로 약하고 아무리 부대에 적응하 기를 어려워하여 고문관 대접을 받아온 인물이었어도 선임은 선임이었다. 둘 사 이의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언 제나 계급 상의 상급자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추세는 급격하게 변화한다. 이제 군에 서의 괴롭힘은 단순한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의 권력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 니다. 소수를 향한 다수 집단의 배척과 가학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임 병장은 부대 집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는 이 유로 선임과 동기는 물론 후임들에게까지 무시당하다가 끔찍한 참사를 일으켰다. 8 사달에서 일어난 성추행 및 가혹행 위 사건의 가해자도 선임이 아니라 동등 한 신분에 위치한 생활관 동기들이었다. 윤 일병 사건 가해자들 사이의 역학 관계는 이런 측면에서 몹시 흥미롭다. 의무대를 지휘해야 할 유 하사를 비롯해서, 분대장인 하 병장과 이 상병까지 주모자인 이 병장을 ‘형’이라 부르며 따 르고 있었다. 사건의 수사기록을 보면, 해당 의무대의 권력구조는 이 병장을 정 점으로 유 하사, 이 상병. 하 병장 순의 서열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 측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군대가 군 스스로의 위계질서에 맞추어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 미 한다. 이제는 동기 사이는 물론 아래에서 위로의 계급질서까지 역전시킬 수 있는 모종의 새로운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이 새로운 질서를 요약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은 다름 아닌 ‘전체주의’이다.

  월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고립된 집 단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약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성립되는지, 그리고 그것 이 어떻게 막을 도리 없이 야만적인 폭 력과 광기로 물들어 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한국 군대는 이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돌 아간다. 단순히 계급이 낮아서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부터 배척받 기 좋은 기질과 조건을 보유한 인원들이 자연스럽게 약자가 되고, 집단의 희생양 이 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침해 양상의 변모를 파악하 지 않고는 제대로 된 대책의 수립 역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가 적고, 구체적인 개선 안 역시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군 장병들이 집단적인 광기에 빠져 폭 력의 악순환 구조에 접어든다고 하여 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지휘관들의 의지와 간부들의 철저한 대웅이 정상적으로 작용했다면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고들이 짧은 주기로 일어나고 있는 데에는 지난 정부에서부터 추진해온 ‘강한 군대’ 론의 책임이 작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장기적 인 로드맵의 구축 하에 진행되고 있던 병영혁신계획을 일거에 중단시키고 이상 희 국방부 장관의 주도 아래 ‘군대답게’ 강한 부대를 육성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지휘관들은 군내의 인권침 해에 예민하게 대응하고 적극적인 개선에 나서기보다는 전투형 군대, 군대답게 군기로 가득한 군대의 형성에 일조할 것 을 요구받았다. 군대는 정말 살기 좋아져야 할 공간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힘들어야 정상인 공간처럼 취급되었고, 자 연스레 일정 수준의 부조리와 폭력이 다 시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 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휘관과 간부들이 적절한 시점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다면 인권침해의 발생 양상은 큰 폭으 로 개선될 수 있다.

  윤 일병의 경우만 보아도, 당장 폭력 의 가해자였던 유 하사부터 간부다운 태도를 보였으면 충분히 미연에 차단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해당 부대의 포대 장이 결코 폭력을 용인할 수 없다는 태 도를 보였더라면, 관리가 소홀할 수 있는 해당 의무대의 내무생활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그 싹조차도 제대로 트지 못했을 만한 사건이다. 강한 군대 보다도 ‘악하지 않은 군대’가 더더욱 절 실해지는 지점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군이 개선해나가야 하는 인권 현안은 실로 다양하다. 우리는 윤 일병 사건과 오 대위 사건의 재판을 통해 현행 군 사 법제도의 우스꽝스러운 작동구조와 군 당국의 명백한 사건 축소 의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여군이 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을 감안했을 때, 여군들의 인 권 문제 역시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사 안이다. 군 당국은 ‘성군기’나 ‘성적 기강’ 따위의 표현을 사용하여 마치 위계질서 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다는 듯이 얼버무리고 있지만, 군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 역시 더는 미뤄둘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에 더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제도 역 시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장병 간 의 구타 및 가혹행위는 가장 범국민적인 공감을 얻을 만한 당면과제이며, 병사들 의 의료권 역시 다소 진전을 이뤘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크게 부족하다. 군 역시 도 내부고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가 되어야 하며, 병사들의 봉급과 보급품 현황을 개선하여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

  SNS와 주요 포털의 댓글을 보면, 열 거된 현안들의 시급성에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사람들은 군 인권문제의 작동원리와 원인을 분석하는 데 각자 나름의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그러나 이 목소리들이 개선방안으로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기까지는 겪어야 할 어려움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국방부 역시 여론의 십자포화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민 • 관. 군 협조체제로 구성된 병영문화혁 신위원회를 발족하여 외부 전문가들의 구체적인 개선 방 안 들을 대상으로 구 체적인 수용 가능성을 논의하는 중이 다. 이 자리를 빌려 군인권센터의 군대 개혁안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려 보 고자 한다.

 

하나, 국방 옴부즈만 제도

  인권문제가 대한민국 국군의 가장 중 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군 당국에는 인권전문가가 거의 존 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군에서 벌어지는 인권문제를 최종적으로 감독하고 지휘 해야 할 국방부에도 전문적인 인권 담당 자라고는 법무관리관실 산하의 인권 담 당관 한 명뿐인 상황이다. 더군다나 군 내부 인사들은 고하를 막론하고 인권에 대한 전문성은커녕 필수적인 인권적 소 양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전문성을 갖춘 민간의 인권 전문 가들로 구성된 군 인권위원회를 설치하 여 국방사업 전반에 대한 인권문제를 관 리 감독하도록 만들어야한다. 물론 군 스 스로 도 국방부 및 산하 단위들마다 인권 전담 부서를 설치하여 자기 개혁에 힘을 쏟아야겠지만, 옴부즈만 제도란 기 존의 관료체제 외부에서 감시자 및 대리 인으로서 활약한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다. 군의 지나친 폐쇄성 이면에는, 조직 자체의 안정을 향한 강박적인 추구가 자 리 잡고 있다. 군이 국방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자기 조직의 보호에만 열을 올리는 괴물로 퇴화해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민간으로부터의 감시와 개입이 더더욱 절실한 요즘이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소수자의 인 권을 신장시키며, 각종 인권침해의 사례 에 즉각적으로 대응해나가기 위해서라 도 국방 옴부즈만 기구가 필요하다. 이 러한 법안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군 인권 센터와 참여연대, 다 산 인 권 센 터. 천주 교인권 위원회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 군사 및 사법 전문가들과 함께 태스크 포스를 구성, 연내 제정을 요청하는 것 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둘, 군사법원 폐지

  군사법원을 전시 아닌 평시에까지 상 시로 개설하여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를 관할하도록 일임하는 것이 국군 의 현행 사법제도이다. 군사법원은 각 사단, 군단. 사령부마다 보통 군사법원을 두어 소속 부대로부터의 사건을 재판하 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항소심을 주관하는 상급법 원으로서의 역할은 국방부 산하의 고등군사법원이 담당한다.

  군사법원에서 열리는 군사재판에서는 법조인 자격을 갖춘 두 명의 군판사 위로 심판관이라 불리는 재판장이 임명돼 어 재판부를 지휘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심판관은 법조인 출신이 아니다. 심 판관은 법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 면서도 군에서의 계급만큼은 다른 군 판 사들보다 훨씬 높은 일반 고위 장교로, 해당 군사법원의 관할 지휘관에 의해 지 명 되는 인물이 담당한다. 때문에 애초부 터 군사법원의 재판부는 군 당국의 영 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게다가 군사법원이 속한 관할 부대의 지 휘관은 감경권이라는 것을 지녀서 스스 로가 판단하기에 선고된 형이 지나쳤다 싶으면 임의로 형량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 지휘관이 감경시킬 수 있는 형량의 범위와 한도에는 제한이 없다.

  군 검찰 역시 군 조직의 일원으로 복 무하면서 군사법원 및 소속 부대 상관들로부터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인 것이다. 이처럼 현행 군사법원 제 도는 재판부와 검찰부 모두를 법군 당 국 아래에 두고 좌지우지함으로써,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건들을 은폐하고 축소시키며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많은 국가들에서 는 군사법원을 폐지하거나, 그 운영 방 식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은 군사법 원을 완전히 폐지하여 평시에 군에서 일 어나는 모 든 사건을 민간법정에서 그대로 재판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에는 군사법원의 비상설화를 추진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으로 운영되는 군판사와 군 검찰. 변호인으로부터 담당자를 소집하여 법 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군 사법제도 개선 방안 가운데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심판관 제도와 감경권 의 폐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내세워 무마시키기에 는 군 사법 제도의 비합리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미 너무 거대해져 버린 형국이 네 말이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들을 위하여

  어느 문제에나 그렇겠지만, 제도와 법 령 차원에서의 개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특히 인권 문제의 개선은 개개인의 의식 수준과 제도적인 인권 확충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당사자들의 인식 개선 은 필수적이다. 군 장성에서부터 간부, 선임 병사, 전입 신병, 훈련병 그리고 예 비군이나 친지를 군으로 보낸 모든 남녀 그리고 부모들에 이르기까지. 신분이 군 인이라 하여 고통받아도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군인으로서의 고하 이전에 동등한 인격체이자 동료, 동거인으로서 서로를 마 주 하 는 것이, 안보라는 미명 하에 찢긴 인간적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개인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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