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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보기/2016 봄여름, 70호 <소수의견>

두 선거 이야기 - 포데모스 현상, 한국에서도 가능한가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1. 2. 1.

<70호>, 2016년 봄여름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의원 장석준

 

4월 총선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다. 새누리당 압승을 점치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새누리당은 유권자의 호된 심판을 받았다. 또한 신생 제3당인 국민의당(26.74%)이 정당투표 득표율에서 더불어민주당(25.54%)을 제치며 바람을 일으켰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정의당은 6석을 획득해 현상 유지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박근혜 정권 심판 민심이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면서도 이런 정권 심판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일방적 지지가 아니라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에 표를 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흥미롭다.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마뜩찮아 하는, 기존 양당 구도에 대한 불만이 제3당 지지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총선이 있기 네 달 전인 작년 12월 20일에 스페인에서도 총선이 있었다. 스페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양대 정당이 정치권을 지배해왔다. 우파 인민당과 좌파 사회주의노동자당(사회 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회원 정당이다)이 말하자면 스페인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공산당이 결성한 정당연합(여러 정당들이 모여 하나의 정당처럼 활동하는 조직)인 ‘연합좌파’가있었지만, 지지율 5% 안팎의 소수 세력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달랐다. 지난 번 총선에서 45.0%를 득표해 집권했던 인민당은 이번에 득표율이 28.7%로 곤두박질쳤다. 비록 여러 정당들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기는 했지만, 독자적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는 없게 됐다. 이제까지 스페인 정치에서는 인민당이 이렇게 추락하면 그 반사이익이 고스란히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가는 게 보통이었다. 한데 이번에는 2위를 한 사회주의노동자당도 득표율이 지난번의 28.8%에서 22.0%로 오히려 떨어졌다.

대신 급부상한 것은 창당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신생좌파 정당 포데모스(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다. 포데모스는 20.7%를 획득하며 사회주의노동자당을 바짝 추격하는 제3당으로 떠올랐다. 포데모스와는 달리 우파 노선이지만 포데모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중앙정치에서 신진 세력인 시민당도 13.9%의 득표율을 거두며 제4위의 주요 정당으로 급성장했다. 한국 총선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기성 양당 구도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이 제3세력들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양당 구도에 맞서는 제3당 바람이 불었다는 점은 두 나라 선거 결과에 비슷한 점이 있지만, 스페인의 포데모스와한국의 국민의당은 색깔이 전혀 다르다. 포데모스의 우파 대항마로 등장한 시민당은 국민의당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말이다. 왜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두 나라 선거에서 양당 구도에 대한 도전이 이렇게 서로 다른 색깔을 띠었을까? 그 전에지난 2년간 스페인을 뒤흔든 포데모스 현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1. 포데모스 현상을 알아보자

스페인 정치를 이해하려면 1936년-1939년의 내전을 빼 놓고 지나갈 수 없다. 1936년에 스페인에서는 공화파(개혁적인 중간파), 사회주의노동자당, 공산당, 카탈루냐 지방의 민족분리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을 포괄하는 진보적 정치 세력들의 연합인 인민전선이 집권했다. 지주, 자본가, 가톨릭교회(당시만 해도 무척 보수적이었다), 파시스트 정파들로 이뤄진 기득권 세력은 인민전선 정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정부를 전복하는 데 실패하면서 쿠데타는 내전으로 비화했다. 안타깝게도 이 내전에서 F.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반란군이 승리하고 말았다.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카탈루냐 찬가〉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켄 로치의 영 화 〈땅과 자유(Land and Freedom) 등을 보면, 이 비극적 역사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내전은 마치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이 그러한 것처럼 스페인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한반도에서는 분단이 고착되면서 남한의 진보 정치 흐름이 한 동안 아예 단절됐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좌파들이 지하에서 프랑코 독재 체제에 맞서며 명맥을 이어갔다. 비록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탄압을 받기는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 등의 보수 야당이 민주화 투쟁의 구심 노릇을 하던 한국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여전히 사회주의노동자당과 공산당이 반프랑코 투쟁의 구심이었다. 그만큼 스페인에서는 한국에 비해 좌파 정치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975년 드디어 프랑코가 사망하고 민주화 이행이 시작됐다. 그런데 민주 혁명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민주화가 아니라 철저히 위로부터 관리된 민주화였다. 프랑코의 유언에 따라 왕정이 복원됐고, 프랑코를 지지하던 세력은 인민당을 창당해 계속 스페인 정치의 기둥 노릇을 했다. 좌파 중에서는 사회주의노동당이 선거에서 30%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주요 정당으로 부상했다. 구 지배 세력과 사회주의노동당은 밀실 담판을 통해 새 헌법을 만들고 이후에도 쭉 민주화 이후의 스페인 정치를 양분했다. 이렇게 해서, 현재 스페인에서 '77년 체제’라 부르는 한 시대가 시작됐다.

한 세대 동안 77년 체제는 별다른 문제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스페인은 2000년대의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거품에 의존해 경기를 부양했다. 임금은 정체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난 대신 많은 이들이 주택담보대출로 줄어든 소득을 메웠다. 한편 인민당과 사회주의노동당의 기성 정치인들은 부동산 시장을 키워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겼다.

그러나 미국 거대 투자은행들의 붕괴와 함께 다들 단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GDP의 84%에 이른 가계 대출(2015년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4%다)이 스페인 경제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우선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그러자 이들 업체와 거래하던 저축은행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당시 스페인의 사회주의 노동자당 정부도 혈세를 쏟아 부어 은행 위기를 막았다.

하지만 그 결과 불똥이 정부 재정으로 튀었다. 유럽연합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도 은행 구제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한 것을 메우기 위해 긴축 정책에 돌입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2010년 5월에 스페인 정부는 가혹한 긴축 계획을 발표 했다. 경제 위기의 짐은 고스란히 노동자, 서민의 몫이 됐다.

이에 맞서 저항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에 지중해 건너편 튀니지에서 민주 혁명이 시작됐다. 가뜩이나 전부터 실업난에 시달리던 튀니지 청년들이 경제 위기의 한파까지 몰아닥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만에 25년 가까이 버려온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이 혁명의 파고는 곧장 이집트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는 젊은 이들이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하고 시위를 이어갔다. 2월에 이집트의 독재 정권도 무너졌다. 2011년 세계를 뒤흔든 ‘아랍의 봄’이었다.

아랍의 봄은 지중해 반대편인 스페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북아프리카 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월에 스페인 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이 생겼다. 여기에 모여든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은 대개 젊은이들이었다. 대부분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들은 바다 건너처럼 우리도 거리로 나설 때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에 접속한 젊은이들은 5월 15일에 주요 도시의 거리로 나와 함께 목소리를 내자고 모의했다. "우리는 정치인과 은행가가 쓰고 버리는 상품이 아니다." 이것이 이들의 첫 구호였다.

 

▲ ‘인디냐노스'가 모인 푸에르타 델 솔 광장 ©ABC JAIME GARCIA

진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노동조합이나 기성 사회단체들이 결합하지 않았는데도 소셜 미디어의 정보 교환만으로 전국 50개 도시에서 총 13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마드리드에서는 5만 명이 가두 행진을 벌인 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결집했다. 이들은 5월 16일에 광장을 무단 점거하고 농성을 벌일 천막들을 세웠다. 경찰은 몇 차례 천막을 철거하고 농성자들을 연행했지만, 그때마다 다른 젊은이들이 다시 광장을 채우고 점거 시위를 이어갔다. 어느새 이들에게는 이름까지 생겼다. 인디냐도스Indignados, 즉 '분노한 자들’이었다. 이것은 농성장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구호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연금도 없다. 그러니 무서울 것도 없다.”

분노한 자들은 모든 것을 총회를 소집해 결정했다. 결정 방식은 투표가 아니라 전원 합의였다.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토론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누구나 자신이 의사 결정 과정에 진짜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농성 참여자들은 토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요구들을 정리했다.

푸에르타 델 솔의 점거 시위는 지방선거 며칠 뒤에 일단 종료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5월 15일 이후의 대중운동으로 자신감을 얻은 젊은이들은 긴축 정책 철회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와 점거 시위를 반복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투쟁은 다른 계층•세대에게도 대중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다.

▲ 포데모스 대표 파볼로 이글레시아스 © The Guardian

이 힘이 정치 세력으로 응집된 것이 바로 포데모스다. 2014년 5월의 유럽의회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그해 1월 “한 걸음 더 앞으로: ‘분노’ 를 넘어 ‘정치 변혁’으로” 라는 제목의 호소문이 발표됐다. 모두 30인이 서명한 이 호소문을 기획한 중심 인물들은 마드리드에 소재한 콤플 루텐세 대학의 좌파 교수강사들이었다. 이들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의 점거 시위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한 바 있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분노한 자들 운동의 '내부자들’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만들어 시사해설자로 인기를 얻은 정치학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1978년생)에다 늘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채 청바지 차림인 걸로 유명하다.

호소문이 발표되고 며칠 뒤인 1월 16일에 서명자들은 새 정치조직 '포데모스(Podemos)'의 출범을 선포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데모스는 7.98%를 득표해 5명을 당선시 다. 아직 형식적 창당 단계에 머문 정당으로서는 놀라운 결과였다. 유럽의회 선거 이후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포데모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포데모스의 실질적 창당은 2014년 10월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국 시민 총회'를 통해 완결됐다. 이는 통상적인 창당 대의원대회가 아니라 당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총회라는 형식을 취했다. 이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전인 9월에 포데모스의 정책 지향, 조직 구조, 행동 원칙에 대한 여러 입장듭이 문서로 제출됐다. 제출자만 100여 팀이었고, 온라인을 포함해 15만 명이 이들 문서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으며 전국 시민 총회에는 8천여 명이 참석했다.

이때 합의한 원칙들 중 인상적인 것으로는, 과거 서독 녹색당처럼 포데모스의 당직자 공직자는 숙련 노동자 평균 임금만큼의 급여만 받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또한 포데모스 당원은 최대 8년만 공직을 맡을 수 있으며 이후 10년간은 법인 이사나 감사를 맡을 수 없다는 규정도 있었다. 공직자 소환제도 있었다. 뜨거운 반부패 정치개혁 여론에 답하는 결정들이었다.

단, 포데모스는 전통적인 좌파 언어를 맨 앞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포데모스는 '자본주의’보다는 '77년 체제’를 더 자주 언급했고, '자본 대 노동’이 아니라 '카스트 대 서민’의 대립 구도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인민당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노동자당까지 '정치 카스트’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또한 양당이 정치를 독점하는 77년 체제를 전복해야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간층부터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를 아우르는 ‘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포데모스는 과거 좌파정당의 관행에서 많이 벗어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좌파 사이에서는 포데모스를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반 이런 발상의 전환 덕분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정치적 가능성들이 열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이나 연합 좌파를 지지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인민당 실망층이나 무당파도 포데모스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전국 시민 총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포데모스는 일약 최대 지지 정당으로 부상했다. 지지율이 27.7%에 이르러 양대 정당을 모두 제쳤다. 창당한 지 1년도 안 된 급진좌파 성향의 정당이 지지율 1위로 떠오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스페인 지배 세력은 부랴부랴 공격에 나섰다. 이들이 찾아낸 공격 무기 중 하나는 포데모스의 스타일을 따라 하는 '우파’ 정당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포데 모스 바람이 막 일기 시작할 무렵, 재계에서는 “우리한테도 일종의 우파 포데모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우파 포데모스”는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그 주인공은 카탈루냐의 작은 지역정당 시민당(Ciudadanos)이었다. 시민당은 이미 10년 가까이 된 '중견' 정당이었지만, 그간 카탈루냐 안에서만 활동하고 중앙정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당이 2014년 말부터 포데모스처럼 기성 정치권을 모두 부패 세력으로 몰아 공격하면서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카탈루냐를 넘어 스페인 곳곳에서 시민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급기야 2015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인민당, 사회노동당, 포데모스, 시민당이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이며 각축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시민당의 지지율이 높아질수록 포데모스의 지지율은 정체되거나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긴축 정책 반대와 정치 개혁을 연결하는 포데모스보다는 부패 정치 비난에만 매진하는 시민당이 더 쉽게 지지층을 규합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포데모스 지지층 중 과거에 인민당을 지지했던 이들이 시민당 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포데모스는 흔들림 없이 계속 “신자유주의 극복”을 외쳤다.

포데모스는 스페인 사회의 다양한 진보적 정치사회 세력들을 한데 이으며 반격에 나섰다. 2015년 5월의 지방선거에서 그 성과가 확인됐다. 스페인의 가장 큰 두 도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포데모스가 참여한 선거연합의 후보들이 시장에 당선됐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은행 빚 때문에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이들을 위해 싸우고 분노한 자들 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여성 사회운동가 아다 콜라우가 선거연합 ‘모두의 바르셀로나 BC’의 시장 후보로 나섰다. ‘모두의 바르셀로나’가 25.21%를 득표해 제1당으로 부상하면서 콜라우가 새 시장이 됐다. 마드리드에서는 선거연합 ‘지금 마드리드'가 민주화 시기부터 여성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마누엘라 카르메나를 시장 후보로 내세워서 31.8%를 득표했다(34.6%를 얻은 인민당에 이어 2위). ‘지금 마드리드’는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좌파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카르메나 후보를 시장에 당선시켰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두 여성 시장은 지하철로 출근하고 국왕 흉상을 철거하며 자본만을 위한 재개발 계획을 취소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였다.

© The Guardian

포데모스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결성된 선거연합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총선에 대응했다. 특히 분리 독립 여부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공약으로 각 지역의 좌파 민족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한 동안 시민당의 지지율이 포데모스를 압도했으나 선거운동 기간 중에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다시 급상승했다.

투표함을 열어보니 포데모스가 20.7%를 득표해 제3위였다. 비록 3위이지만, 2위인 사회주의노동자당과의 차이는 1.3%에 불과했다. 한때 포데모스를 압도하는 둣 했던 시민당은 4위에 머물렸다. 어쨌든 인민당의 패배였고, 인민당-사회주의노동자당 정치 독점 구조의 붕괴였으며, 포데모스 바람의 확인이었다.

 

2. 포데모스 현상이 가능했던 요인들, 혹은 스페인에는 있고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것

지금까지 스페인의 새로운 정치 실험 포데모스에 대해 살펴봤다. 글 첫머리에 밝혔던 것처럼, 스페인의 포데모스 현상과 한국 총선의 제3당 바람 사이에는 맥이 닿는 데가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점이 더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국민의 당이 기성 양당 구도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정책 내용이 두 당과 별 차이가 없는 데 반해 포데모스는 정책이나 문화, 세대 등 모든 측면에서 기성 지배 정당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훨씬 단절적인 제3당 바람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경제 위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스페인은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과 함께 유럽에서 세계 금융 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나라들 중 하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민주화 이후 스페인에서는 부동산 시장 부양이 경제 성장의 주된 연료 역할을 했다. 중산층은 주택 담보 대출로 가계 소득을 메꿨다. 그러다가 금융 위기의 여파가 미치자 부동산 거품에 투자했던 은행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은행 위기가 대형 은행으로까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덕분에 은행 위기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았지만, 정부 재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은행 위기는 해결된 게 아니라 단지 재정 위기로 전이됐을 뿐이었다. 유럽연합ᅳ유럽중앙은행의 강요에 따라 스페인 정부(집권당이 사회주의노동자당이든 인민당이든 상관없이)는 긴축 정책을 실시했다. 임금이 대폭 삭감됐고, 그나마 있던 복지 제도들이 형해화됐다. 실업률이 20%로 치솟았고, 특히 그간 비정규직 일자리에 내몰리던 청년층(25세 이하)의 실업률은 40%에 육박했다.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재앙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세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용케 피했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덕분에 미국, 유럽보다는 경기가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게 먹혔다. 그래서 스페인에 맞먹는 가계 부채 비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은행 위기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양당 구조의 해체가 한국보다 스페인에서 훨씬 극적으로 나타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만사를 결정한다는 식의 속류 유물론은 피해야 하겠지만, 기존 경제 시스템이 크게 흔들릴 때 정치와 사회 전반의 심원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008년 이후의 스페인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겪고 있다. 재정 위기와 긴축 정책에 실망한 스페인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인민당, 사회주의노동자당과는 전혀 다른 기반 위에서 성장한 신생 정치 세력을 과감히 선택했다.

물론 최근 한국 경제도 전 세계적 경제 침체(이제는 중국의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의 회오리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스페인만큼 큰 혼란의 와중에 있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많은 유권자들은 기성 양당 체제를 비판하되 새누리당ᅳ더불어민주당과 색깔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국민의당에 우선 표를 던졌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대규모 사회운동의 경험을 들 수 있겠다. 실은 경제 사정이 안 좋다고 항상 좌파가 약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극우파가 급성장하는 기회가 되곤 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결정론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 때에도 독일에서는 극우 나치당이 득세했다.

▲ 사실상의 미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Newsweek

2008년 이후 미국, 유럽 상황도 마찬가지다. 경제 침체를 경험하고 있는 유럽 각국에서는 ‘이주민 반대’를 내건 극우 정치세력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국민전선이 언론 기사의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독일과 영국에서는 각각 ‘독일을 위한 대안’과 영국독립당이 기존 좌우 정당들의 지지 기반을 갉아먹으며 세를 넓히고 있다. 최근 실시된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극우파 자유당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복지 국가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에서도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극우 정당이 사회민주당 및 정통 우파 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미국에서도 유럽 극우파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일보직전이다. (5월 말 현재).

한데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이들 나라와 달리 인종주의 극우파가 아니라 신생 좌파 정당이 약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대중적인 사회운동 경험의 유무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2011년에 스페인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분노한 자들 운동이 시작됐다. 물론 미국, 영국 등에도 긴축 정책에 항의하는 운동들이 있었다. 하지만 유독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 운동이 다수 청년 대중의 참 여 이래 장기간 지속됐다. 그러면서 청년층을 넘어 사회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경제 위기에 고통 받는 여러 계층, 집단이 분노한 자들 운동을 본떠 자발적 시위, 집회에 나섰다. 노동조합 역시 점거 시위가 벌어진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전국 집회의 집결지로 삼는 등 분노한 자들 운동과의 연대에 주력했다. 포데모스는 이러한 분노한 자들 운동의 정치세력화 산물이었다. 즉,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자들 운동의 매개 덕분에 경제 위기에 대한 불만이 극우파 지지로 이어 지지 않고 신진 좌파 지지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에는 아직 분노한 자들 운동과 같은 규모의 대중적 저항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운동과 같은 시대 정신에 바탕을 둔 저항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2008년 촛불 시위는 분노한 자들 운동의 투쟁 형태를 몇 년 전에 미리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2013년 철도 사유화 반대 투쟁 과정에서 돌출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은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들이 좀처럼 거대한 폭발로 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한국도 이런 대중운동을 경험했다면, 분명 국민의당이 제3당 지지의 주된 수혜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당보다는, 선명한 진보 정책들을 내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 선택받았을 것이다.

©민중의소리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은 정치 제도의 차이다. 어떻게 창당한 지 몇 달 안 된 포데모스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당선자를 낼 수 있었는가? 유럽의회 선거 제도가 완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였기 때문이다. 포데모스를 지지하면 그게 사표가 되는 게 아니라 곧바로 포데모스 후보들의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존 체제에 대해 반란표를 던지고 싶었던 유권자들이 과감하게 포데모스에 표를 던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5명의 당선자를 배출하자 포데모스는 삽시간에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만일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분노한 자들 운동 규모의 대중운동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포데모스처럼 쉽게 제도 정치 안에서 성장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각급 선거 중 어느 것도 완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가 있다 하더라도 의석의 극히 일부만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의석은 소선거구제(기초의원의 경우는 일부 중선거구제를 병행하지만)에 따라 선출한다. 1위 득표를 한 1인만이 당선된다. 나머지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항상 기성 양대 정당의 후보 둘을 놓고 판단을 하곤 한다. 다른 정당에서 아무리 참신한 후보가 나오더라도 사표 심리 때문에 이 후보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별로 없다. 이번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당이 바람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정당 투표 결과와 지역구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다. 정당투표에서는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였지만, 이 당의 지역구 당선자는 25인에 불과했다.

포데모스가 작년 12월 총선에서 제3당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과는 다른 선거 제도 덕분이었다. 스페인은 의회 역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뽑는다. 그래서 득표율에 3위를 한 포데모스가 의석수 역시 3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만약 스페인의 선거 제도가 우리와 마찬가지의 소선거구제라면 포데모스는 20% 넘게 득표하고 나서도 당선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정치 세력은 아예 선택의 대상에서 배제하곤 한다. 한국에서 포데모스 같은 신생 정치 세력의 약진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당은 사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발당 의원들이 만든 정당이라서,포데모스처럼 기성 양대 정당 바깥에서 등장한 완전히 새로운 정치 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스페인의 선거 제도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스페인 의회의 선출 방식은 '완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 할 수는 없다. 일부 특별 행정 구역을 제외하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뽑는 것은 맞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처럼 전국적 정당투표 득표율에 맞춰 전체 의석을 각 정당에 배분하지는 않는다. 스페인에서는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선거구를 나누고 각 선거구 안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 따라서 광역자치단체의 인구 규모에 정확히 비례해서 의석수를 할당하지 않을 경우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정당투표의 합산과 의석 수가 꼭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보다 농촌 지역인 안달루시아가 인구 규모에 비해 더 많은 의석을 배당 받는다. 따라서 오랫동안 안달루시아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온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포데모스에 비해 의석수에서 이득물 보게 된다. 총선 결과가 실제로 그러했다. 2위 사회주의노동자당과 3위 포데모스의 득표율 격차는 1.3%에 불과했지만, 의석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총 350석 중 90석, 포데모스가 69석으로 21석 이나 차이가 났다. 인구 비례에 좀 더 가까운 선거구 재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스페인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폐쇄형’이다. 우리의 비례대표제와 같은 방식이다. 유권자는 정당만 선택할 수 있다. 후보 및 그 명부 순위는 정당이 결정한다. 즉,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상위 순위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여기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유권자가 선호하지 않는 낡은 정치인들이 단지 거대 정당 안의 영향력만으로 계속 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총 300석 중 5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석만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전체 의석을 이런 식으로 뽑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체감된다. 그래서 위에 소개한 것처럼, 분노한 자들 운동 참여자들이 “폐쇄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개혁”을 정치 개혁 과제로 주창한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골간은 유지하면서 이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개방형’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다. 유권자가 지지 정당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해당 정당이 제출한 후보 명부 중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까지 선택하는 방식이다. 즉, 유권자는 단순히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특정 정당의 후보 명부 중 가장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이렇게 되면 정당이 일방적으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의 의사를 반영해 당선자가 결정된다. 스웨덴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이렇게 개혁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힌국에서 선거 제도를 완전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진보 세력이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아무튼 한국에서 포데모스 현상과 유사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는 다름 아니라 소선거구제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주목하지 않으면서 포데모스 현상 같은 외국 사례를 바라보게 되면, 이들 사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한국의 선거 제도가 스페인 정도의 비례성만 갖춘다 하더라도 정의당 등 한국의 진보 세력도 충분히 '한국의 포데모스’라 할 만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그만큼 선거 제도라는 벽은 강력하고 중요하다.

지금까지 스페인과 한국의 최근 정치 양상의 차이를 낳은 요인들을 살펴보았다. 이 목록은 곧바로 한국 진보정치가 도 전해야 할 과제들의 목록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분노한 자들 운동처럼 비정규직, 청년층의 요구를 결집시키는 대중운동이다. 이 대중운동은 혁명/개혁, 제도권/비제도권, 정당/사회운동 등의 이분법에 갇히지 않 고 끊임없이 정치세력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한국의 소선거구제 중심 선거 제도를 개혁해나가 야 한다.

한국에도 미구에 스페인과 같은 경제, 사회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아니 그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위의 과제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들 과제를 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적극 도전할수록 이번 총선 같은 ‘겉만’ 제3당 바람이 아닌 한국판 포데모스가 힘을 얻을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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