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호보기/2019 봄여름, 76호 <남겨진 목소리>

문제는 왜 반복될까 - 학내 성폭력 처리 과정에 대하여

by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2020. 4. 11.

<76호>,19년 봄여름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학교 차원의 대응을 요구한다. 학교의 대응이 미흡했을 때는 비판이 쏟아진다. 학생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인권센터를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혹자는 학교가 왜 대응을 해야 하느냐며 반문한다. 인권센터를 포함해 학교의 성폭력 처리 절차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려면, 학교가 왜 그래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흔히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렸을 때 경찰에 신고하라는 다소 무책임한 반문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사법부에만 의존한다면 피해자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사법부는 강간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에 따라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을 때만 강간죄를 인정한다. 그 결과 성폭력 사건 대부분은 불기소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학교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보호되어야 한다. 공동체가 구성원을 보호할 수 없다면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는 담보할 수 없다. 성폭력은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짓밟는 행위라는 점에서 학교는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한 가해자에게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학교가 사법부의 판단에만 의존한 채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언제든지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

   나아가 성폭력의 근본 원인이 공동체의 성차별적 문화는 아니었는지 공동체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의 인권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공동체의 자정 노력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사법부보다는 학교다.

  하지만 학교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평등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이면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권센터의 구조적 문제

1 구성원
  성폭력 피해자 보호라는 학교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표적인 학내 기구는 인권센터다. 학생들의 비판도 그만큼 상당 부분 인권센터를 향한다. 인권센터는 현재 신고인·피신고인의 상담, 사건 조사를 담당한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전문성을 의심할만한 사례가 많았다. 인권센터가 전문적인 일 처리를 할 만한 충분한 인력과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들을 갖췄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1) 인권센터장
  인권센터는 인권센터장과 전문연구원으로 구성된다. 그중 인권센터장은 인권센터를 이끌어가는 자리인 만큼 인권과 성평등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중앙대학교 인권센터 운영 시행세칙에 따르면, 인권센터장은 '인권 및 성평등과 관련된 전문지식, 경험과 자질을 갖춘 자로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인권센터 관련자들은 학내에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몇 명 없다고 입을 모은다. 향후 인권센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조건을 충족시키는 교원을 추가 임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인권센터 운영 시행세칙 제2조( 인권센터의구성원 )① 
인권센터장(이하"센터장"이라한다)은 본교 조교수 이상 전임교원 또는 4급 이상의 직원으로 인권 및 성평등과 관련된 전문지식,  경험과 자질을 갖춘 자로한다 .

 

(2) 전문연구원
  인권센터장의 자질을 보장할 수 없다면 전문연구원을 통해 인권센터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 전문연구원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전문연구원은 서울캠퍼스 3명, 안성캠퍼스 1명[각주:1]으로 총 4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인권침해와 성폭력 사건의 상담과 조사를 맡고 있다.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이다. 1년마다 재계약이 이루어진다. 계약기간은 박사학위 미소지자의 경우 2년을 초과할 수 없고, 박사학위 소지자의 경우 6년까지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


❶ 인력 및 전문성
  전문연구원들은 4명이 한 해에 백 건 가량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인권센터에 접수되는 성폭력 및 인권 피해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인권센터에 접수된 총 사건수는 2016년 108건에서 2017년 148건으로 증가하였고, 2018년에는 전년 대비 15.1% 증가한 171건이 인권센터에 접수되었다. 그중 성희롱‧성폭력 상담은 2017년 72건에서 2018 년 97건으로 증가했다. 접수되는 사건이 증가하면서 인권센터도 지속적으로 전문연구원을 추가 채용했다. 하지만 4명의 전문연구원이 모든 사건을 맡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이들은 성폭력 전문가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문연구원 임용 규정' 제4조 전문연구원의 자격에 대해 '관련분야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소속기관에서 연구 및 상담, 행정 등에 전념할 수 있는 자로 관련분야의 경력·연구 실적이 3년 이상인 자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성희롱‧성폭력 관련 전문성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현재 중앙대 인권센터 전문연구원들의 전공도 각각 범죄심리학, 법학, 상담심리학이다. 적은 인원이, 전문성도 담보할 수 없는 채 학내 성폭력 사건을 맡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교육 및 수퍼비전 실적

❷ 교육
  전문연구원의 기초 역량이 부족하다면 교육과 연수의 중요성은 커진다. 전문연구원 교육은 '인권센터 운영 시행세칙' 
제2조 제3항 '센터는 전문연구원의 성희롱·성폭력을 포함한 인권침해 관련 상담 및 업무 역량강화를 위하여 교육 훈련을 지원할 수 있다.'는 규정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 성폭력상담소전국협의회 등에서 1년에 3~4번 개최하는 워크숍과 수퍼비전을 통해 전문연구원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수퍼비전의 경우 보통 한 학기에 한 번씩 이루어진다. [각주:2] 케이스 스터디도 진행되는데 이는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성폭력 사건은 사건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서라도 케이스 스터디는 자주 진행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김경희 인권센터장이 역임한 2017년 9월 이후 현재까지 1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문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케이스스터디를 제외하고 7번 이루어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전문연구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꼴의 교육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❸ 비정규직
  현재 전문연구원은 1년마다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고용된다.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인해 사건 처리 도중 담당자가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 담당자가 교체되면 사건을 연속적으로 처리하기 힘들다. '반성폭력 반성매매 모임 반' 간담회에서 한 발제자는 "이전의 사례들을 질문할 때마다 인권센터는 그때 일하던 연구원들이 없어서 알 수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며 전문연구원의 고용 형태를 비판했다. 또한 짤은 기간제 고용형태로 지속적인 역량 강화도 힘들다. 교육은 부족해도 사건 처리를 오랫동안 해본다면 성폭력 사건의 전문성도 키울 수 있겠지만, 현재의 고용 형태로는 어렵다. 김경희 인권센터장도 역량이 뛰어난 전문연구원의 경우 학교 측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 권한 부족
  구성원 문제 외에 인권센터는 공식적인 성폭력 처리 기구라는 위상과 달리 권한이 작다. 인권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인권센터는 사건 조사를 위해 인권대책위 (이하 대책위)를 꾸릴 수 있다. 대책위는 사건을 판단하고 징계위원회 (이하 징계위)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권한은 여기까지다. 대책위는 파면이나 해임 등 구체적인 권고도 통상적으로는 불가하다. 구체적인 징계 수위는 징계위에서 결정되고, 최종 승인은 학교 법인이나 총장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건 종결이 사건을 조사한 인권센터가 아닌 학교에 달린 것이다.

 

대책위·징계위: 구성과 운영

  이처럼 학교 성폭력 사건 처리 전반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권센터의 문제만을 지 적해서는 부족하다. 인권센터는 공식적인 성폭력 처리 절차의 첫 단추일 뿐이다. 유의미한 변화는 인권센터를 감싸고 있는 학교와 제도에서 시작된다. 논의 대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책위와 징계위에 대해 알아보자. 사건 판단과 징계 결정은 이들 위원회에서 이루어 진다. 대책위와 징계위의 중대한 역할에 비추어볼 때, 이들 위원회의 구성과 위원들의 자격 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공정한 사건처리를 위해서는 위원회가 민주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위원들의 전문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1) 인권대책위원회
  인권센터가 사건 결정 및 조사를 위해 꾸리는 대책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7~11인으로 구성된다. 구성원은 당연직 위원, 추천직 위원으로 구성된다. 당연직 위원으로는 인권센터장, 피해자 소속부서 장, 법학전문대 교수, 센터 전문연구원이 참여한다. 사건 당사자의 신분에 따라 학생처장, 기획처장, 교무처장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간다. 추천직 위원은 교원, 학생, 관련 전문가 중 위원장인 인권센터장의 추천에 따라 구성된다.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 학생대표 2인을 추가한다.

▲실제 대책위 구성. 현재는 관련 규정 개정으로 인권센터 장이 위원장으로 참여한다.

  대책위와 징계위는 다양한 위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대학 내 특정 집단 위주로 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집단의 관점에서만 사건이 비춰질 수 있다. 중앙대 대책위는 대책위원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이 신고인인 경우 학생위원 2인의 참여를 보장한다. 외부 성폭력 전문가의 참여 가능성도 규정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규정은 여전히 교수로 구성이 치중되어 있다. 대책위가 <표1>과 같이 구성됐 다고 가정해보자. <표1>은 교수가 가장 적게 참여하는 방향으로 구성했다. 학생이 신고자라 가정하고 학생대표 2인을 대책위원으로 참여시켰다. 외부 전문가도 포함했다. 그렇다 해도 당연직 위원은 모두 교수이다. <표2>는 신고인이 학생이 아닌 경우로 학생위원을 필수로 참여시키지 않아도 된다. 추천직 위원을 모두 교수로 구성해도 문제가 없는 만큼 최대한 교 수로 구성해 보았다. 9명 중 전문연구원을 뺀 8명이 교수다. 대책위 구성이 교수라는 특정 집단 위주로 이루어진다면 이뤄진다면 피신고인이 교수인 경우 '제 식구 감싸기'가 충분히 우려된다.

  위원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담보되어야 한다.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수가 대책위원이 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배제하기 위해 단순히 성비 균형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성인지감수성 내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로 대책위와 징계위가 구성되어야 한다. 대책위의 경우 특정 성이 60%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만 성비 규정만으로는 성인지감수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대책위원들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책위원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없다. 교수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전문성을 보완할 수 있지만 외부 전문가 참여는 필수가 아니다.

(2) 징계위원회
  다음으로 징계위는 학교 법인 이사와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다. 교원 징계위의 경우 법인 밑에 두도록 되어있다. 구성원은 교직원, 법인 이사, 법조계/행정학 및 교육학 분야의 인사 9인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위원 1명을 위촉해야 해야 한다. 교원 징계위의 경우에도 구성원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9인의 위원 중 외부위원을 최소 1명 포함해야 하고, 법인 이사가 전체 위원 수의 50%를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교수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또한 징계위원들의 성인지감수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징계위는 대책위와 달리 가장 기본적인 성비 균형 조항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징계위원도 성폭력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징계 관련법

  마지막으로 징계 관련법에 대해 살펴보자. 학교의 징계는 징계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사립학교 교원의 징계 절차는 「사립학교법」, 「사립학교법시행령」, 학교법인 정관에 명시된 내용에 의해 이뤄진다. 중징계는 파면, 해임, 정직으로 이루어진다. 파면은 직위에서 배제(퇴직)하고 5년간 재임용이 불가하다. 연금 및 퇴직금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해임도 직위에서 배제되며 3년간 임용이 제한된다. 파면과 달리 경제적 불이익은 없다. 

  그런데 해임과 그 다음 단계인 정직 사이의 징계 수위 간격이 다소 크다. 정직은 1개월에서 3개월간 신분은 보유하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보수의 2/3를 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징계위의 부족한 성인지감수성도 원인이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이 징계제도에서도 기 인한다. 가해교수가 파면 및 해임 수준의 비위를 저질렀음에도 학교 측이 정직 처분을 내린다면 가해교수는 최대 3개월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해당 교수는 교수로 계속 강단에 설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촘촘하지 못한 징계 제도로 가해자 처벌에
빈틈이 생길 수 있다.

  징계수위가 적절하지 않다면 피해자는 이에 대해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징계위가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징계위의 결정을 알려줘야 할 명문의 규정이 없다. 게다가 징계위 결정이 학생사회에 공개되지도 않는다. 피해자가 징계위 결정을 알지 못한다면 그 결정이 부당해도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원천 차단된다.

 

또 다른 용기가 되어야 할 대학사회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렸을 때 끊임없이 무고를 의심하고 피해자를 나무란다. 하지만 어렵게 용기 낸 이들을 학교는 보호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인권센터와 학교의 성폭력 처리 절차를 겪으면서 답답함을 호소하곤 했다. 그리고 그 미온적인 대응 이면에는 수많은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성폭력 사건을 제일 먼저 접수하는 인권센터는 인력난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건을 판단하고 징계를 결정하는 대책위와 징계위는 민주적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위원들의 성인지감수성도 담보되지 않았다. 그 외 징계 관련 제도도 여러 문제점이 존재했다.

  학교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미투 운동으로 어렵게 시작된 변화의 물결이다. 대학 사회는 변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또 다른 용기가 될 수 있도록 학교는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길 바란다.

ⓒ연합뉴스

 

  1. 5월 기준 안성캠퍼스 인권센터 전문연구원은 공석으로 채용 중에 있다. [본문으로]
  2. 출처 김경희 인권센터장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