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김여훈
작년 10월 역사학과 A교수와 일어일문학과 B교수는 대학본부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부교수인 두 교수에게 정교수로의 승진, 그리고 동시에 이뤄지는 정년보장 심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학본부가 두 교수에게 제시한 연구실적 기준은 '국내외 840%'였다. 메일을 받을 당시 두 교수는 대학본부가 제시하는 연구실적을 초과 달성한 상태였다. 당시 A교수의 경우 연구실적은 1073%로 안내문에서 제시한 연구실적 840%를 초과한 상태였다. B교수는 5년 전에 이미 당시 연구실적 840%를 넘긴 상태였다.
심사가 끝나고 난 뒤 두 교수가 대학본부에게 받은 결과는 면직통보였다. 사유는 이미 달성했던 양적기준 미달이었다.
두 교수는 앞서 제시했던 연구실적 기준인 840% 가 아닌 1680% 미달로 인해 2019년 1학기 정년보장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심사 전과 후에 기준이 두 배로 뛴 것이다. 교원업적평가 규정에도 '유보기간 중 기준업적실적은 가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B교수가 이전에 받았던 2014 년 정년보장심사 결과문에도 같은 문구가 나온다. 이에 의하면 2014년, 2019년 모두 두 교수의 정년보장을 위해 필요한 기준 연구업적은 변함없이 840%임이 명백하다.
두 교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시된 것과 다른 기준에 의해 정년보장심사에 탈락해 면직 당했기 때문이다. 두 교수는 정년보장심사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였으나 대학 본부는 당초 결정을 확정하고 두 교수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정년보장 심사 탈락에 따라 승진 유보기간 내에 승진임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기에 3월 31일자로 면직된다고 통보했다. 승진임용과 관련 없는 재임용 절차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학생이 아닌 본부의 학습권
두 교수의 수업을 수강 중이던 역사학과와 일문과 학생들 역시 4월부터 다른 강사로 대체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런 소식이었다. 두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직접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을 이어가던 학생들은 허탈할 뿐이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면직된 교수로부터 졸업논문을 지도받던 학생들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역사학과 학생회는 대학본부가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역사학과 A교수의 면직처분을 규탄했다. 김영록 역사학과 학생회장은 이번 사건을 "학교에 의한 학습권 침해"라고 말하며 "A 교수의 강의 커리큘럼을 보고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과 A교수에게 졸업논문을 지도받는 학생들이 있는데 본부의 부당한 결정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했다"고 했다. 역사학과 학생회와 A교수의 면직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학습권 보장을 위한 부당 면직 철회 ▪정당한 절차를 통한 재임용 심사 시행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교무처에 항의 방문했다.
그러나 대학본부에서는 이 모든 일이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행해졌다고 답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해당 학과에 두 면직 교수의 강의 배제와 대체 강의자를 구할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면직 처분을 받은 교수가 강단에 서는 것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학본부가 수업권으로 학생들과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학생들의 요구 덕분일까. 두 교수의 수업 관련해서는 대학본부와 학과 간의 타협이 이루어졌다. 대학본부는 학과장에게 해당 교수를 시간 강사 신분으로 전환하여 수업을 진행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긴 논의 끝에 두 교수는 대학본부가 소청위결정에 따른다는 조건으로 소청위결정 이전까지 시간강사 신분으로 강의를 하는 안에 동의했다. 두 교수는 수업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두 교수가 면직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직급정년제는 불법
두 교수는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소청심사의 요지 중 하나는 직급정년제였다.
직급정년제는 직급별로 정년이 있는 제도다. 특정 직급에서 정해진 기간이 될 때까지 승진 하지 못하면 당사자가 일할 의지가 있다 해도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하는 제도다. 이번 사건에서 대학본부가 면직의 근거로 주장하는 교원임용규정 제21조 3항이 대표적인 직급정년제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에서는 헌법과 교육공무원법 등을 근거로 교원의 직급정년제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사태처럼 일정 기간 동안 정년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해도 재임용 심사 없이 교수를 면직시킬 수 없는 것이다. 1
정년보장심사를 통해 정년을 보장받지 못지만 정년기간까지 임용되는 방법도 있다. 바로 재임용 심사를 매번 받는 것이다. 교원임용업적평가표를 보면 재임용 심사의 경우 정년보장 심사보다 기준이 낮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교수가 있는 인문대의 경우 기준 연구업적 국내외 450%를 채우면 된다. 다만 주기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한다 2는 점과 정교수처럼 교원 신분이 완전히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A교수와 B교수 역시 재임용 심사가 아닌 정년보장심사라는 길을 택한 것이다. 3
결론적으로 일정 기간 정년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해도 재임용 심사 없이 교수를 면직시키는 것은 교원의 재임용 권리를 박탈시키는 위법 행위다. 사립학교법에서도 재임용 절차 없이 면직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립학교법 53조에 따르면 교원의 임용기간이 만료되는 때에는 임용기간 만료일 4개월 전까지 임용기간이 만료된다는 사실과 재임용 심의를 신청할 수 있음 을 당해 교원에게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두 교수에게 재임용 심의 신청 안내 없이 두 교수에게 면직 처분했다. 이는 사립학교법을 어기는 행위이다.
이와 같이 정년을 보장받지 못했음에도 교원의 재임용 심사 권리를 보장하는 이유는 교수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교수는 단순히 논문을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선생'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학문에 있어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 에서 본인과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런 교수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면 이는 궁극적으로 대학 교육과 학문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
당연했던 소청심사 결과
두 교수가 면직이 되어 시간강사로 강의를 이어가던 중 5월 8일 소청심사 결과가 나왔다. 두 교수의 면직 무효 판정이었다. 소청심사 결과 발표 후 A 교수의 첫 수업은 학생들의 박수와 환호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는 예상된 결과이긴 했다. 이전 판례를 봐도 직급정년제를 이유로 면직이 적법하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한 사례는 없었다.
중앙대의 경우에도 2017년 경영학과 교수가 연구업적으로 인한 면직 관련해서 본부를 상대로 소청심사를 냈을 때 학교가 패소한 경험이 있다. 당시 소청위는 재임용을 위한 연구업적 최저 기준을 달성했을 경우 교수의 재임용을 거부할 수 없고 연구업적을 소급적용해 평가할 수 없기에 C교수의 면직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청위에서는 이번 사건을 이른바 '직급정년 제도'를 사유로 한 면직 처분으로 보았다. 학칙 등을 통해 교원이 재임용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재임용심사 신청권을 보장한 <사립학교법> 제53조의2 규정 위반이라고 규정하였으며 이번 면직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정확한 '기준'이 존재하는가?
비단 이번 면직처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본부가 정년보장심사를 운영하는 방식을 보면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대학본부는 교원임용업적평가표에 직급별 승진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2016년 개정된 교원임용업적평가표를 보면 중앙대학교 정교수 승진기준(5년) 연구업적 국내외 900%라고 언급되어 있다. 정년보장 권고기준의 경우 연구업적 국내외 1800%라고 하여 정교수 승진과 정년 보장을 사실상 구분 짓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시키면 정교수 승진기준은 통과하고 정년보장 권고기준에 따라 심사는 통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A교수와 B교수 모두 정년보장 권고기준에는 미달하지만 정교수 승진 조건은 충족하고 있다. 현재 중앙대에서 정년보장심사와 정교수 심사를 동일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교수 승진과 정년보장에 있어 혼선을 야기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정년보장심사 역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일례로 B교수는 2014년 정년보장심사에서 단독 연구 실적 및 게제 학술지 다양성 부족을 이유로 정년보장임용이 유보되었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대학원생과의 공동논문이 많고 단독논문이 없다는 점, 한국일본학회가 발행하는 <일본학보>에 논문 게재가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B교수가 정년보장 유보를 받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B교수가 정년유보 판정을 받았다고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이유이다. '단독논문' 관련 조항과 '논문의 다양성'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교원업적평가에 관한 세칙 을 봐도 공동연구 관련된 조항만 존재할 뿐 단독논문이 몇 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 은 없다. 논문의 다양성 관련된 조항은 전무하다. 5
무엇보다도 대학본부 정년보장심사 심사위원 중 인문학 관련 전공자가 없다는 사실은 인문학 에 대해 명확한 기준 없이 평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교수는 "현재 대학본부 정년보장심사 평가위원 중에는 인문학 전공 교수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A교수는 "인문대에서 한 평가에서는 통과하고 대학본부에서 한 평가에서는 미통과했다."고 말했다. 각 학문마다 논문의 특성이 다르고 당연히 내용 또한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인문학 전공 교수를 사회과학이나 경 영 계열 교수가 평가한다는 것,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보면 제대로 된 평가는 불가능하다.
면직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
대학본부 역시 이번 면직 사태가 질 싸움이라는 점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법을 어겨가는 무리수를 둬가며 교수를 면직시켰다. 그렇다면 대학본부는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 교수협의회 장인 방효원 교수는 이를 �교수들에게 대한 경고�라고 했다. 두 교수를 면직시킴으로서 교수의 논문율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중앙문화>는 65호 기사 '교수를 향한 매서운 발전의 칼부림'에서 교원업적평가와 교수연봉제 도입으로 인해 교수를 평가와 관리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학교 본부의 실태에 대해 비판했다. 그 후 6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학교 본부는 대학평가에서 순위를 높여 학교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지속적으로 연구업적 양적기준을 올리며 교수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두 교수의 면직을 통해 연구업적을 통해 교수들을 통제한다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면직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편집하고 있는 시점에서 두 교수에 대한 면직 취소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5월 23일 소청심사 결과통지서가 배부되었으나 학교 본부는 두 교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소청위 결정이 났기에 학교 본부는 두 교수를 재임용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두 교수를 재임용하는 것만으로 이 사건이 끝나는 건 아니다. 두 교수에 대한 정년보장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위법한 임용규정이 올바로 바로잡아져야 진정으로 이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더 나아가 학교 본부는 대학 평가에서 중시하는 양적 연구 실적만을 중시하지 않고 '학문의 발전'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진정한 '학습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이번 교수 면직 사건은 단순히 학교와 교수간의 다툼이 아니다. 학교 본부의 교수에 대한 인식과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건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이는 학교 본부와 교수간의 관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본부가 학문 그리고 학생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교원임용규정 제21조3항 "유보기간 내에 승진임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면직한다." [본문으로]
- 주석내용교원임용규정 제17조2항 "신규재임용 이후 재임용 기준은 제19조 및 제21조 제1항 승진기준의 1/2 이상으로 하되, 재임용 기준 미달시 면직한다." [본문으로]
- 교원임용규정 제18조1항 "본교의 교원은 소정의 교원업적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교원으로서 자질이 인정되는 경우에 다음 각 호의 범위 내에서 임용조건을 정하여 재임용할 수 있다." 3. 부교수 : 5년 [본문으로]
- 일어일문학과 B교수의 연구업적 양적기준은 1273%이다 [본문으로]
- 교원업적평가에 관한 시행세칙 3장 15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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