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지산하
이 글은 2016년 지금 중앙문화가 마주친 위기에 대한 기록이다. 중앙문화는 지금 공간을 잃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다. 중앙문화 편집실이 위치한 “빨간벽돌”, 그러니까 학생문화관(206관)은 곧 다가오는 겨울방학이면 헐린다. 학생문화관의 다른 공간들은 이미 대부분 이곳저곳으로 옮겨갔다. 중대신문, 복사실, 편의점이 있던 공간이 텅 빈지 오래다. 새로 지어진 310관으로 이사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대학본부는 미디어센터에 들어오면 깨끗한 공간도, 지금까지 없던 장학금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중앙문화는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래서 지금 이곳 빨간벽돌에 남았다.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간 주기 힘들어
2015년, 작년 2학기부터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년이면 학생회관과 학생문화관이 철거된다. 교양학관으로 학생회관이 옮겨간다더라. 미디어센터는 310관으로 간다는데. 하지만 중앙문화가 이전할 공간을 배치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학생지원팀 김남원 팀장은 <중대신문> 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에 중앙문화와 녹지가 독립하면서 공식적으로 교지는 폐간됐다”며 “대학본부가 발행하지 않는 것은 중앙대의 교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교지 폐간 운운한 인터뷰를 반박하는 자보를 붙였다. 1953년부터 발행해온 교지의 정체성은 본부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공간 배정 실무를 담당하는 시설팀을 찾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중앙문화를 냉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찾아 갔을 때는 성실히 답해주었지만 늘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중앙문화를 담당해줄 ‘행정부서’가 없어 공간 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납득하기 힘들었다. 중앙문화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공간이 공사로 사라지니, 그만큼의 공간을 보장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시설팀 교직원은 본격적인 논의를 피하고 미뤘다. ‘지금 교양학관 배정 문제가 복잡하다. 교양학관 문제가 해결되면 논의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310관 공간 배정에 관여하는 부서가 많아 골치 아픈 상황이다. 일단 이 문제부터 끝내야 중앙문화 공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높은 분들”을 거론하며 중앙문화 공간 문제가 애매하고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부터 올해 3월 까지 시설팀을 수차례 방문한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만 남았다.
내부 구성원 논의 끝에 결정권자를 만나자는 결론을 내렸다.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작년에 비해 구성원 수가 많이 줄은 상태였다. 오랜 기간 활동한 편집 위원도 많지 않았다. 본부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매주 모여 이야기했다. 학칙을 찾아보니 공간을 관리하는 최고 결정권자는 공간배정심의위원회 위원장인 박해철 행정부총장이었다. 만나기나 해줄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묘한 두려움이 앞선 채 면담 요청 공문을 보냈다.
(1) 4월 8일 첫 번째 면담 (박해철 행정부총장)
면담에 앞서 중앙문화는 나름의 기준을 세웠다. 지금과 같은 크기의 공간을 보장하라. 그뿐이었다. 낯선 총장실 로비를 거쳐 들어간 부총장실의 분위기 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대신 부드러운 어조 속에 담긴 말은 가볍지 않았다.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간 주기 힘들어. 여기서 제도권은 미디어센터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미디어센터 소속이 아닌 지금 상태에선 공간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대답으로 미디어센터에 들어갔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편집권 침해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9년 본부는 발행인인 총장을 비판하고, 원고 하나를 사전 검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갓 발간한 중앙문화 58 호를 강제수거했다. 이어 2010년엔 “비판적 논조가 학교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중앙문화는 언론매체부 (미디어센터 전신)에서 독립해야만 했다. 그리고 박용성 전 이사장과 이태현 전 미디어센터장의 학내언 론 통제가 밝혀진 지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중앙문화가 미디어센터에 들어갔을 때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쉽게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우려를 말하자 행정부총장은 한술 더 떠 다시 이야기했다. “아직 자네들은 학생이라서, 완전한 자유를 하기에는(주기에는) 약간의 그게(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심이 확신에 보다 가까워 지는 순간이었다. 서로 입장을 더 정리하고 “회색지대”를 찾아본 후 4월 말에 다시 만나자는 말로 면담을 마쳤다. 1
첫 면담 이후 본부는 58호 강제수거 전, 아직 중앙문화가 언론매체부에 속했던 시절 편집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는 듯했다. 언론매체부 시절 중앙문화 내규와 현 중앙문화 내규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앙문화도 구체적으로 요구안을 다듬었다. 본부가 먼저 내민 손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편집권 및 예산 보장의 문서화와 지도교수 자체 선임을 약속하지 않으면 미디어센터에 편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굳히기로 결정했다.
(2) 5월 13일 두 번째 면담 (박해철 행정부총장)
본부의 입장 정리가 늦어져 5월 13일에야 두 번째 면담이 이루어졌다. 그마저도 다른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20여 분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돌아오는 말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단지 “중대신문과 같은 포맷으로 들어오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미디어센터 편입 시 발행인이 총장이기에 그에 따라 어느 정도 학교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어졌다. 기대했던 논의가 가능할 리 없었다. ‘우선 미디어센터에 들어오고 이후 문제가 생길 시 지금처럼 독립하면 되지 않냐’는 말까지 나왔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교지대금 자율납부안은 절대 쉽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2010년 초부터 2011년 5월까지, 1년 반 가까운 기간 선배 편집위원들이 힘겹게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쉽게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첫 면담에서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자고 말했지만 요원해보이기만 했다.
(3) 5 월 20일 세 번째 면담 (박해철 행정부총장, 한중근 미디어센터장)
세 번째 면담 전 제출한 요구안 1) 편집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미디어센터 운영 규정 개정 |
두 번째 면담을 갖고 일주일 만에 다시 자리를 꾸렸다. 이번엔 한중근 미디어센터장도 함께였다. 면담 전 요구안을 정리해 공문으로 전달했다. 지난 두 번의 면담을 통해, 요구안을 전부 들어주리라 기대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요구안을 제시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름대로 골몰히 생각한 요구안이었다. 편집권 보장을 가장 중점에 두었다. 현 미디어센터 운영규정에는 학생들의 편집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규정상으로는 각 매체의 편집장조차 본부에서 임명한다. 학내언론을 총괄하는 미디어센터장 임명 역시 본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2011년 이전 언론매체부(미디어센터 전신) 운영규정에는 언론매체 부장(미디어센터장) 임명에 대해 “언론사가 추천한 조교수 이상의 전임교원”이라는 조항이 있었지만,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운영규정 개정은 곤란하다는 확답을 들었다. 대신 현 미디어센터장인 한중근 교수는 자율적인 편집을 비롯한 요구사항의 대부분이 현재 미디어센터 소속 학내언론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본부를 대상으로 한 팩트를 확인해주고, 모호한 표현 등을 고치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 정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있냐는 입장이었다. 면담 이후 미디어센터 소속 학내언론 담당자를 만나 물어봐도, 지금은 편집권 침해라고 할 만한 일이 전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센터장은 종신직이 아니다. 임기는 대개 1~2년으로 짧다. 현 미디어센터장이 상식적인 선에서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다음엔 어떤 사람 이 자리에 앉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좋은 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또다시 비판적인 논조를 문제 삼아 발간을 막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대학본부로부터 독립해 운영되는 현 체제 그대로 옮겨갈 공간은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
미디어센터 편입을 고려했을 때 편집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도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연거푸 만났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고분고분 면담만 갖는다면 어떤 진척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답답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4) 6월 3일 대자보 부착, 그리고 그 이후
<학생이기에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2009년 본부는 총장을 비판하고 원고를 사전 검토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앙문화> 58호를 강제수거했다. 이어 비판적인 논조를 문제 삼아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와 < 녹지>의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후 교편위는 지금과 같은 자율납부제에 합의해 자율적인 편집권 아래 책을 발행해오고 있다. 그런데 본부는 최근 교편위에게 “미디어센터로의 편입”과 “미디어센터 운영규정”에 따를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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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검찰이 박용성 전 이사장의 비리를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박 전 이사장이 재단 임원들에게 보낸 메일에는 “총장이 발행인인 중대신문의 기본 논조는 학교를 대변해야 한다”, “원칙에 반하는 편집 방향으로 1회라도 발행하면 그날로 중대신문은 폐간”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이태현 전 미디어센터장은 박 전 이사장에게 ‘중대신문에 실릴 예정이었던 B교수의 (본부 비판적)기고문을 빼고 구조개혁 관련 기획기사를 다음 호로 미루게 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대 학내언론의 현주소”, <중앙문화> 68호, 2015년을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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